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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혜로운 생활 (엡5:15-20) [2018년 8월 19일, 성령강림 후 열셋째주일]
2018-08-18 16:01:27
박신진 목사
조회수   16
설교일 2018-08-19
설교말씀 엡5:15-20
설교제목 지혜로운 생활

지혜로운 생활

에베소5:15-20

2018819[성령강림 후 열셋째주일]

 

예전에 원주에서 살 때 꼭 여름 말미에 태풍과 장마철이 되면 이상하게 개미들이 집에 많이 들어왔습니다. 여름휴가 때 출타하면서 개미에게 집을 맡기는 것 같아서, 할 수 없이 개미 퇴치 약품을 요소요소에 붙이고 다녀왔는데도 주방 쪽에는 개미가 끓곤 했어요. 왜 개미들이 이렇게 집에 많이 들어왔을까요? 장마에 비가 오고 물이 넘치니 개미들이 미리 알아차리고 집으로 들어온 것입니다. 작은 생물인 개미도 기후나 주변 환경을 사람보다 먼저 아는 지혜가 있더군요. 듣기로는 개미가 땅 속 상당한 깊이까지 집을 만들고 공동생활을 하는데 이만 저만 지혜로운 것이 아닙니다.

사람은 그런 미물보다는 훨씬 위대한 문명을 만들고 살아갑니다. 사람은 만물의 영장이지요. 그러나 사람이 위대한 문명을 누리며 사는 것 같아도, 기본적인 능력 면에서 다른 생물보다 떨어지는 면이 많다고 합니다. 말이나 개는 태어나서 바로 걸어 다닐 수 있지만, 사람은 1년은 지나야 겨우 밥숟가락을 들 수 있고, 자립하려면 거의 20년은 길러줘야 합니다. 장마나 태풍이 다가오면 사람은 스스로 알지 못하나, 새들은 알아차리고 벌써 이동한다고 합니다. 박쥐가 날고 새들이 날면 태풍이 오거나 지진이 온답니다.

인생은 창조주 하나님 앞으로 돌아갈 때에라야 진정으로 지혜로운 생활을 할 수 있습니다. 타락한 인류는 하나님과 끊어져 있으면, 기술적인 지식은 높이 쌓을 수 있지만 진정 지혜로운 인생을 살 수는 없습니다! 지혜의 근원이신 하나님 안으로 들어가서 영혼이 회복되어야 죄를 반복하며 악한 습관을 일삼는 어리석음에서 깨어나 지혜로운 생활을 할 수 있고, 지혜로운 생활을 할 때 비로소 위대한 삶을 누리게 됩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정말 복을 좋아합니다. 저희 어릴 적에는 자가 든 이름이 많았죠. 복순이 복자, 복남이를 비롯하여, 대복이 금복이 수복이도 있었습니다. 대원군의 아들로 후에 근대조선의 황제가 된 고종도 역시 이 복 자를 곁들여 명복이란 이름으로 부르던 소년이었습니다. 서민들은 박복한 팔자를 서러워했고, 다섯 가지 복인 5복을 추구했습니다.

구약에 보면 솔로몬이 가장 복을 많이 받은 왕으로 기록됩니다. 솔로몬은 하나님께서 부와 귀와 장수를 주셨습니다. 엄청난 물질의 복을 받았으며, 명예와 존귀가 솔로몬만한 왕이 없었고, 건강과 장수의 복도 받았습니다. 사람들은 이런 복을 엄청나게 부러워합니다. 그러나 정말 솔로몬에게 부러워할 것은 그가 지혜를 하나님께로부터 받았다는 사실입니다. 솔로몬은 지혜인 듣는 마음을 하나님께 구했는데, 지혜도 받고 여기에 더하여 부와 귀와 장수도 복으로 받았습니다. 자고로 지혜롭게 살면 복이 따라옵니다.

 

사도 바울은 에베소교회를 향하여 지혜로운 생활을 권면하고 있습니다. ‘그런즉 너희가 어떻게 행할지를 자세히 주의하여 지혜 없는 자 같이 하지 말고 오직 지혜 있는 자 같이 하여’(15). 당시 에베소의 심각한 문제는 53절에서 언급되듯이, ‘음행과 온갖 더러운 것과 탐욕이었습니다. 또한 언어생활의 타락이 심했어요. ‘누추함과 어리석은 말이나 희롱의 말이 마땅치 아니하니’(4)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은 어두움의 일을 벗고 빛의 자녀들처럼 행해야 했습니다(8).

어떻게 하는 것이 지혜로운 생활일까요? 사도는 에베소교인들에게 구체적인 가르침을 주고 있습니다. 이것은 우리 시대의 성도들을 향하여도 지침이 됩니다. 왜냐하면 에베소 도시의 영적 상태가 오늘날 사람들의 생활과 비슷하며, 지금 더욱 심각한 상태에 빠져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육체의 소욕을 따라 사는 어리석은 삶의 모습을 넘어서서 영과 진리로 새로움을 입는 지혜로운 삶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지혜는 하나님이 주십니다. 겸손히 믿음으로 행하며 기도생활을 쉬지 않고 말씀묵상을 지속할 때, 지혜를 주시는 거죠. 믿음으로 사니까 지혜를 주시고, 지혜로운 생활에 복이 임하더라는 겁니다. 일례로 구약에서 신약의 예수님의 족보로 이어지는 사람 가운데 기생 라합이 나옵니다. 이 사람은 이방 사람인데다 신분이 기생이었습니다. 여호수아와 갈렙이 광야생활 40년 지난 다음에 가나안으로 들어가는데 첫 번째 관문이 여리고성입니다. 이때 성을 치기 전에 정탐꾼을 똑같이 보냅니다. 전에는 12명을 보냈더니 10명이 부정적인 보고를 내고 2명만 믿음으로 보고하였지요. 이번에는 2명만 보냅니다. 이스라엘은 예나 지금이나 정보력이 탁월한 나라입니다. 그런데 2명의 정탐꾼이 들어간 정보가 샜습니다. 여리고성 수색대가 들이닥쳤습니다. 그때 이들은 겁이 나니까 기생 라합의 집에 가서 숨었습니다.

그런데 뜻하지 않게 기생 라합은 가나안 여자인데도 신고도 하지 않고 이들을 숨겨주는 것입니다. 아주 위험한 일이죠. 들키면 본인만 죽는 게 아니가 가문 전체가 죽을 위기가 닥치는데, 정탐꾼들을 목숨 걸고 숨겨줍니다. 왜냐하면 기생 라합은 술집을 하니까 많은 손님들이 드나들면서 하는 이야기를 들은 겁니다. 거기에서 정보를 얻은 거죠. 이스라엘 사람들이 믿는 여호와 하나님은 능력의 하나님이라는 겁니다. 홍해를 가르고, 광야에서 만나와 메추라기를 내려 먹이시며, 아모리의 두 왕인 시혼을 옥을 쳐부쉈다는 소식도 들었습니다.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는 위로는 하늘에서도, 아래로는 땅에서도 하나님이시니라.”(2:11) 이런 고백을 기생 라합은 귀기우려 들었습니다. 그러면서 귀동냥으로 믿음이 생겼습니다. 그 믿음이 라합에게 지혜가 되었어요!

라합은 시대변화의 흐름 속에서 하나님을 믿는 믿음으로 지혜를 얻어 이 정탐꾼들에게 자기 가문의 운명을 맡기는 결단을 합니다. 당신들이 와서 이 성을 점령할 때 내 공로를 기억해서 우리 부모도 살려 주고 모든 후손도 살려달라고 부탁합니다. 이스라엘이 여리고를 칠 때 라합은 붉은 줄을 내어걸고 이스라엘을 반깁니다. 라합은 후에 살몬이라는 명문가의 남자와 결혼하는데, 그가 바로 다윗왕의 고조할아버지입니다. 그 후손 가운데 왕들이 나오고, 예수님이 나왔으며, 번성한 가문이 되어 놀라운 복을 받았습니다. 믿음으로 말미암은 지혜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에베소서를 보면, 첫째로 지혜로운 생활은 시간을 잘 활용하는 생활입니다. 주 안에서 세월을 아끼십시오! 당시 에베소 문화 중 심각한 것은 술 마시고 취하여 음란하고 악한 말을 반복하는 것이었습니다. 마치 짐승이 동굴 속에서 살아가는 것과 같은 타락한 삶의 모습이었던 거죠. 이런 생활은 시간을 낭비하게 됩니다. 16절에 세월을 아끼라, 때가 악하니라.”고 합니다. 세월을 아끼라는 것은 기회를 사라.’고 번역할 수도 있습니다. 참으로 지혜로운 생활을 하는 사람은 시간을 잘 활용하는 사람입니다.

시간은 모든 사람에게 똑같이 주어지는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그런데 진실한 성도는 세월과 시간을 아끼고 선용해서 빛의 자녀다운 삶을 가꾸어 갑니다. 결국 우리 인생의 가치는 시간과의 싸움에서 결정됩니다. 시간활용을 잘 못하는 사람은 교회 일 조금 하고는 모든 생활에 시간을 다 빼앗겼다고 엄살을 부리지만, 시간을 잘 쓰는 사람은 교회 봉사도 잘 하고, 자기 발전도 충분히 하면서, 가까운 사람들을 위해서도 시간을 잘 내줍니다! 60대의 젊은 할머니, 아침이면 일어나 집안일을 돕고 자기 발전과 자아실현을 위한 일에 즐겁게 몰두합니다. 자기 생활을 즐기지만, 자녀들이 필요로 할 때 적절하게 도와주기도 합니다. 얼마나 건강하고 재미있게 사는지 다 부러워합니다! 한 중학생, 방학을 잘 활용하여 부족한 국어에 집중했더니 공부도 한 단계 올라갔고, 독서를 많이 해서 재미도 있었고 자기 취미생활에 큰 발전이 있었습니다.

1)남보다 일찍 움직이는 생활을 해야 합니다. 요즘 젊은이들과 지성인 화이트칼라들이 오히려 아침 일찍부터 생활하지 못하고 밤늦게 자는 밤 문화를 주도한다고 합니다. 그러나 세월을 아끼는 태도가 아닙니다. 조기조침의 습관, 새벽 혹은 아침기도의 생활화가 세월을 아끼는 습관입니다. 저도 일찍 하루를 시작하는 편이 못되지만, 우리 모두는 이런 생활을 하도록 힘쓰는 것이 지혜로운 생활입니다. 2)목표가 있는 생활을 해야 합니다. 어떤 시기-20대 혹은 50대처럼-의 목표, 한 해의 목표, 그 절기나 달의 목표, 한 주의 목표, 하루 동안 이룰 일에 대해 늘 목표의식을 잃지 않을 때 시간을 아끼게 됩니다. 제가 교회학교 전도사로서 열심히 일할 때 교사들과 함께 교수학습과정을 꼭 도표로 적도록 했는데, 거기에 보면 교육목적과 그 과목의 목표를 꼭 적도록 되어 있습니다. 이런 훈련이 큰 도움이 되더군요. 목표가 있는 생활은 지도가 있는 여행입니다. 좀 더 효율적인 인생을 살려면 목표를 세우며 나아가야 합니다. 3)시간계획을 잘 세워 자투리 시간을 활용해야 합니다. 계획적인 시간은 힘이 있으나 계획 없는 시간은 떠돌고 무의미하게 흩어져 버립니다. 3510분을 잘 활용하면 무언가를 이루어가는 멋진 생활을 하게 됩니다. 제가 고 3때 서울에 공부하러 온 세 친구가 함께 하숙을 하면서 생활을 했는데, 거의 공부시간이 같았지요. 세 친구가 아이큐도 비슷했어요. 그런데 예비고사를 본 결과, 제가 그 친구들보다 20전 쯤 점수가 높았습니다. 저는 자투리 시간에 영어단어와 공식들을 카드에 써가지고 다니며 외웠던 겁니다.

 

둘째로, 지혜로운 생활은 주의 뜻을 깨닫는 생활입니다. ‘그러므로 어리석은 자가 되지 말고 오직 주의 뜻이 무엇인가 이해하라!’(17) 음란한 생활, 욕망을 추구하는 생활은 에베소 사람들의 큰 문제였고 교인들조차 그런 문화에 휩쓸리는 경향이 있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구체적으로 이 문제에 도전합니다. 주의 뜻이 무엇인지 이해하고 성령 충만을 받으라는 것이죠! 주의 뜻을 이해하라는 것은 머리로 아는 데에서 끝나서는 안 되고, 가슴으로 깨닫고 손으로 행하는 데까지 나가는 것입니다.

생각이 바뀌어야 합니다. 말씀이 깨달아질 때 생각이 바뀝니다. 그런데 생각은 항상 감정과 밀접한 관계가 있어서 생각이 바뀌려면 마음이 함께 바뀌어야 합니다. 마음이 세속적인 것을 동경하고 물질 욕심과 육체의 욕망을 추구하는 마음으로 가득 차 있다면, 어찌 거룩한 생활, 지혜로운 생활을 할 수 있겠습니까? 먼저 주의 뜻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리고 마음에 변화를 받아야 합니다. 사람이 오른 쪽으로 가려면 먼저 생각을 오른 쪽으로 향하고, 눈을 오른 쪽으로 보며, 핸들을 오른 쪽으로 돌려야 합니다. 생각이 변하고 마음이 그쪽으로 움직이지 않으면 어떤 일도 일어나지 않습니다. 그러려면 깨달음이 있어야 하고 마음이 열려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성령 충만함을 받으라고 권고합니다. 한국교회는 다시 부흥이 일어나야 한다고 외치고 있습니다. 왜 부흥이 일어나야 합니까? 홍수가 넘치면 나무가 뿌리째 뽑히고 토사가 밀려와 큰 피해를 받기도 하지만, 개울이 완전히 청소가 되고 다시 살아나게 되는 효과가 있습니다. 자연의 신비이지요. 큰 불이 일어나면 온갖 세균이 다 타죽는다고 합니다. 그래서 쥐불놀이라는 것을 일부러 했답니다. 병충해를 죽이고 새해 농사에 도움이 됩니다.

이처럼 성령께서 강하게 충만하게 임할 때 심령이 변화되고 생활이 달라집니다. 지혜로운 삶을 위한 비결은 성령 충만이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내 마음이 성령으로 충만해지면 기도가 바뀌고 찬송이 바뀌고 언어가 달라집니다. 성령 충만하면 찬송하고 싶어지고 기도하는 시간이 너무나 소중해집니다. 성령 충만하지 않았을 때는 욕을 하면 마음이 후련한 면도 있었는데, 성령 충만해지면 말씀과 선한 말을 하는데 그렇게 충만하고 기쁩니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으십시오! 그리하여 마음이 바뀌어 주의 말씀으로 채워지며 깨달음이 있는 생활을 하기를!

 

셋째로, 지혜로운 생활은 찬송과 감사가 넘치는 생활입니다. ‘시와 찬송과 신령한 노래들로 서로 화답하며 너희의 마음으로 주께 노래하며 찬송하며’(19). 20절은 기도 속에서 감사하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므로 지혜로운 사람은 말씀, 기도, 찬송을 생활화하여 풍성한 은혜의 생활을 하는 사람을 가리킵니다. 말씀이 충만하고, 기도에 기쁨이 있으며, 찬송이 넘치는 생활을 하는 것은 행복하고 거룩한 삶의 기둥과도 같습니다.

솔직히 요즘 우리 가정은 전처럼 찬송을 많이 부르지 못하고 있습니다. 아이들이 결혼과 일로 떠나 있고, 바쁘다는 핑계로 모이기 힘들어 찬송 부르는 시간을 갖지 못합니다. 그러니 절로 세속적인 것들이 들어오고, 생활이 경건한 가운데 즐거워하던 모습을 잃어가고 있는 것을 느낍니다. 예전에 아이들이 어릴 때 얼마나 찬송을 많이 불렀는지! 늘 주님의 은혜를 묵상하였었는데... 찬송을 회복하십시오! 하나님께 감사하며 찬송 소리 가득할 때, 마귀가 떠나가고, 세속적인 욕망을 조절하며, 거룩한 열망을 가진 행복한 가정을 이루게 됩니다!

무엇보다 입술에 감사를 담으세요! 먼저 감사하는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마음에 감사를 채우십시오! 감사하는 마음은 자족하는 데에서 옵니다. 지금의 내 모습, 지금의 가족들의 형편, 지금의 우리 교회, 지금의 내 환경을 자족함으로 받으십시오! 아무리 못마땅하게 여긴다 해도 달라질 것은 없습니다. 여기에서 출발해야 하니, 우선 있는 대로 받읍시다! ‘있는 모습 그대로, 있는 모습 그대로, 있는 모습 그대로 오시오! 하나님은 우리의 있는 모습 그대로, 있는 모습 그대로, 그대로 받으십니다!’ 마음의 감사를 회복하시기를 바랍니다!

입술에 무엇인가가 담기는데, 감사를 담지 않으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불평과 원망이 담깁니다. 불평과 원망으로 서로 상처를 주기 전에, 감사를 입술에 담으십시오! 교만은 불평을, 겸손은 감사를 가져옵니다. 우리는 은혜 받지 않으면 불평하기 쉽습니다. 원망하는 것은 타고난 소질이어요. 그러므로 성령님을 의지하여 감사를 표현하도록 노력하고 생활화하십시오. 의도적으로 감사를 생활화하면, 나중에는 마음마저 감사로 가득 차게 되고, 무엇보다 감사를 표현하는 동안 듣는 상대가 서로 감사를 발견하게 되어 행복한 관계로 발전합니다.

어떤 부인, 남편이 마땅치가 않아서 늘 불평하였습니다. 남편은 돈도 제대로 못 벌어 와서 가족들 고생시키면서도 가부장적이어서 꽥꽥 소리만 질렀습니다. 따뜻함이 있나 겸손함이 있나, 실력이 있나 인간성이 있나, 게다가 믿음마저 없어서 교회에서도 자기 자리를 찾지 못하였으니 불평을 살 만도 했습니다. 그러나 어느 날 성령의 감동을 받은 이 부인은 있는 모습 그대로 남편을 받기로 했습니다. 그러자 한 인간으로서 남편의 고뇌와 노력이 느껴졌습니다. 최선을 다하지만 잘 나타나지 않으니 힘들어 하는 남편의 마음을 느낀 것이죠. 그가 얼마나 애쓰고 노력하는가! 감사가 나왔습니다. 남편이 존경 받을 만한 따뜻한 사람인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조금만 지혜롭게 생활하십시오! 얼마나 어리석은 생활로 세월을 낭비하였고, 젊음을 소비하였으며, 인생을 헛되게 하였습니까! 통탄할 일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돌아갑시다! 사도의 가르침에 귀를 기울이세요! 지혜롭게 살려면, 세월을 아껴 시간을 잘 활용하십시오! 후회 없이 살려면, 성령 받아 깨달음을 얻어 마음이 세속적이고 정욕적인 데에서 거룩한 마음으로 달라져야 합니다. 정말 행복하고 보람 있게 살려면, 찬송과 감사가 있는 하루하루를 살아야 합니다.

어느 때보다 믿는 이들에게 지혜가 필요한 때입니다. 지혜로운 생활을 하면, 삶이 커지고 강해집니다. 모든 관계가 좋아집니다. 사람을 얻고 기회를 얻고 지위를 얻습니다. 지혜롭게 살면 정말 행복하고, 보람있고, 넉넉하며 여유로운 삶이 나타납니다. 여러분 모두가 조금만 지혜로워지면 하나님께서 맡기신 사명을 감당할 수 있게 될 겁니다. 더운 여름이 끝나가고 가을을 기다리는 계절에, 스스로를 돌아보아 지혜로운 생활로 새로 출발하기를 축복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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