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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를 새롭게 할 성숙한 믿음 (욥42:1-6,10-17) [2018년 10월 28일, 성령 스물셋째주일/종교개혁주일]
2018-10-27 17:31:25
박신진 목사
조회수   10
설교일 2018-10-28
설교말씀 욥42:1-6, 10-17
설교제목 교회를 새롭게 할 성숙한 믿음

교회를 새롭게 할 성숙한 믿음

42:1-6, 10-17

20181028[성령스물셋째, 종교개혁주일]

 

90년대에 경기도에 있으면서 지방 목사님들과 함께 목회를 잘하고 있는 교회를 탐방하여 목회를 배우는 프로그램을 진행한 적이 있습니다. 그 교회 목사님은 이른바 머슴론으로 머슴처럼 충성하면서 새벽기도로 크게 부흥하는 교회였습니다. 그분이 하는 목회의 자세와 새벽기도의 부흥은 정말 꼭 닮고 싶어서 그때 참여한 모든 목회자들이 다음날 새벽 일찍 그 교회의 새벽기도회에 참석했는데, 구름떼와 같은 사람들이 새벽에 모여들어서 깜짝 놀랐습니다. 그 교회의 열정적이고 헌신적인 목회는 모든 이들의 귀감이 되기에 충분했었죠.

그런데 요즘 그 M교회가 교회와 목회의 의미를 변질시킨 교회로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고 있습니다. 담임목사의 후임자로 결국 아들을 정하고 말았기 때문입니다. 많은 뜻있는 사람들이 자칫 교회 사유화의 오해를 받을 수 있으니 아들 목사님이 훌륭하고 꼭 모시고 싶더라도 한국교계에서 제일 큰 교회이니만큼 그것만은 삼가주었으면 좋겠다했으나, 결국은 그리되고 말았습니다. 그러자 그 교회뿐 아니라 한국교회 전체에 대한 비난이 쏟아졌습니다. 목사직이 무슨 특권이냐 아버지가 아들에게 물려주게-부터 시작하여, 가장 큰 교회가 그러니 한국교회에 무슨 희망이 있느냐-하는 의견에, 그러기에 한국교회에 목사다운 목사는 눈을 씻고 찾아보려 해도 찾을 수 없다는 논리에까지 비약하는 얘기들이 저잣거리에서도 들려옵니다. 이럴 때 그 교회는 그렇더라도 다른 교회들은 아직 건강하고 바르다고 교회를 변호하지는 못할망정, 우리 주위에서 교인들마저 그렇게 막말을 하는 사람들이 있더군요!

오늘은 종교개혁 501주년 주일입니다. 모든 살아있는 것은 세월과 함께 변질되기 마련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변하지 않는 하나님의 말씀에 비추어 날마다 새롭게 일신우일신해야 할 것입니다. 지난 해 루터 종교개혁이 온 세계교회의 주제였다면, 500주년을 지난 올해부터는 이제 한국교회의 개혁, 우리교회의 개혁이 주제입니다. 실제로 신앙을 새롭게 하고, 교회를 새롭게 하는 일은 피할 수 없는 과제가 되었습니다. 이전에는 개혁보다는 부흥이다. 개혁을 부르짖다 보면 부흥이 안 된다.’ 하였으나, 이제는 개혁은 피할 수 없다, 부흥을 위해서라도 개혁이 필요하다.’고 합니다. 그만큼 한국교회가 새로워지는 일이 절실해졌습니다.

문제는 어떻게 새로워질 것인가 하는 문제입니다. 뭔가 달라지기는 해야 하는데, 어떻게 달라질 것인가 하는 겁니다. 새로워지는 과정, 새로워지는 방법론을 고민해야 합니다. 한국교회는 이제 120년이 조금 지났습니다. 사실은 진리의 깊이와 세계교회의 광범위함에 비해 볼 때 역사가 얕고 규모가 작은 교회에 불과합니다. 따라서 우리 기준으로 섣부르게 개혁을 부르짖다보면 교회를 망치게 됩니다. 교회를 새롭게 하는 일은 위험합니다. 따라서 우리는 먼저 내 믿음부터 잘 지키고 돌보면서 교회를 진심으로 사랑하는 가운데 새롭게 만들어가야 합니다. 한두 가지 잘못이 보인다고 하여 섣부르게 개혁의 칼날을 휘둘렀다가는 교회를 힘들게 하고 복음에 큰 상처를 줍니다. ‘빈대 잡으려고 초가삼간 태우는 격입니다.

 

교회를 새롭게 하는 일은 위험합니다. 교회를 향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렇잖아도 세속화라는 거대한 물결이 교회를 삼킬 듯이 솟아오르고 있어 위태합니다. 오늘날 교회는 발전하는 시대 앞에서 설 자리를 잃어가고 있습니다. 저의 은사님은 너희들이 목회할 시대에는 예수님의 십자가 대신 기술을 상징하는 ‘T’자가가 강단에 설지도 모른다고 했습니다. 저는 솔직히 영상화면이 강단 앞에 떡 서있으면 은사님의 그 말씀이 생각나곤 합니다. 인터넷과 영상기술이 얼마나 발전했는지, 교회의 가르침과 전통이 힘을 쓰지 못합니다.

세상 사람들은 교회와 지도자들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지 않습니다. 군사독재 시절에도 안 듣는 것 같으면서도 사회는 교회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습니다. 그 시절에 함석헌, 김동길 같은 기독교 연사가 명동의 작은 교회에 모여 강연회를 하면 동향을 조사하느라 정부가 신경을 많이 썼습니다. 요즘은 시대변화에 대해 교회가 무엇을 말하는지 관심을 가지는 사람은 별로 없습니다. 이런 시대에 그나마 약해진 교회를 향하여 대수술을 하려고 하면 교회의 명맥이 치명상을 입을지도 모릅니다. 몸이 약한 어르신이 암에 걸리니까 위험해서 수술하지 않고 그냥 치료만 하더군요. 그런 셈입니다.

교회를 새롭게 하는 일은 위험합니다. 교회의 지도자들을 문제 삼기 때문입니다. 개교회나 교단에서 지도자들의 권위와 신뢰가 상처를 입으면 교회는 오랫동안 침체를 당합니다. 그러므로 지도자들을 지키고 지도자들을 세워줄 필요가 있습니다. 그러나 대부분 교회개혁의 목소리는 지도자들을 향해 있습니다. 결국 새롭게 하자는 목소리들이 그 칼날을 교회의 지도자들, 목사님들에게 들이대고 있기 때문에 아주 위험한 것입니다. 말씀을 전하는 이들의 인격과 권위가 상처를 입으면 어떻게 말씀에 대한 신뢰와 순종이 가능하겠습니까! 이런 점에서 섣부른 교회개혁은 위험합니다.

또 교회를 새롭게 하는 일은 위험합니다. 자라나는 세대들과 예비 신자들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교회에서 잘못된 것을 바로 잡으려는 과정에서 신앙이 여린 사람들이 상처를 받아 신앙 자체를 버리는 일이 생겨나게 됩니다. 그래서 교회를 새롭게 하는 일은 절대 자라나는 세대들과 예비 신자들에게 악영향을 미치지 않는 범위에서 하도록 힘써야 합니다.

양식이 있는 부모는 자식들 앞에서 무엇이 옳으니 그르니 하며 싸우지 않습니다. 혹 싸울 일이 있더라도 조용히 바닷가에 가서 따져보든지 아이들 없는 데에서 얘기하는 게 좋습니다. 아이들은 천하 좋은 명분을 가졌더라도 부모가 싸울 때 상처입게 마련이며, 그것은 평생 그들의 삶에 악영향을 줄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먼저 믿은 우리들, 신앙생활에 많은 경력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변질된 신앙과 교회의 관습에 대해 고치고 바로 잡으려 할 때 꼭 자라나는 세대들의 믿음과 예비 신자들의 영혼을 고려해야 합니다. 만약 전도할 사람이 있는데, 이 일이 그 사람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줄 것이 확실하다면 아무리 개혁이 좋아도 미루거나 다른 방법으로 해야 마땅합니다.

 

한 마디로 교회를 새롭게 하는 일은 신중하고 조심스럽게, 거듭 거듭 기도하면서 해야 합니다. 그러나, 위험하다고 해서 교회개혁을 마냥 미룰 수만은 없습니다. 시대가 변화되면서 정치 경제 교육 문화, 모든 분야도 바꿀 수밖에 없습니다. 그 중에 교회도 좀 바뀌어야 합니다. 모든 생명은 낡아지고 변합니다. 우리의 믿음도 교회의 생활도 예외가 없습니다. 학교, 학원, 시장, 시의회, 이런 것들을 보세요. 교회도 그렇습니다. 처음에는 아름답게 좋게 시작하지만, 세월의 흐름을 따라 그 처음의 감격이 사라지고 평안한 데에 안주하며, 많은 사람과 상황에 타협하다보니 변질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거룩한 믿음의 공동체인 교회도 변질된 것을 바로 잡고 잘못된 것을 고치는 개혁을 외면해서는 안 됩니다. 이때 교회의 상처를 안에서부터 치료하면서 고쳐가야 합니다. 성급한 성장이 아니라 차근차근 성숙이 필요합니다. 또 남에게 바꿀 것을 요구하기 보다는 나부터 고쳐가야 합니다. 남 고치겠다고 부르짖는 이들이 가만 보면 제일 자기를 고칠 것이 많은 법입니다! 나부터 바로 잡고, 안에서부터 고치며, 서로 힘을 합쳐 고쳐야 합니다.

요즘 교회에 대해 우리는 이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바보야, 이제는 성장이 아니라 성숙이야!” 어떻게 성숙한 신앙을 가질 수 있을까요? 이제는 급격한 성장을 이루려고 애만 쓰기 전에 안에서부터 성숙을 이루려는 노력이 있어야 한다는 겁니다. 깊이 있는 반듯한 믿음을 가진 성숙한 교회가 되고, 그 바탕 위에서 지속적인 개혁이 이뤄질 때 교회가 바로 설 수 있습니다. 성숙하지 못한 채 섣불리 수술을 하면 모든 것을 그르칠까 염려됩니다. 미숙한 믿음으로는 자기도 구원할 수 없습니다. 자신도 감당하지 못하면서 세상을 구원하려 하니 모든 것이 맞지 않습니다.

 

욥기를 읽고 있으면 인생이 생각대로 풀리지 않을 때 만나는 수많은 질문들을 마주치게 됩니다. 새벽기도 때 욥기를 읽었던 기억이 새롭군요! 억울하게 당하는 고난에 대해 하나님께 반항도 해보고, 깊은 인생의 부조리와 모순들과 씨름하기도 합니다. 욥은 이런 씨름을 하다가 폭풍 가운데 찾아오시는 하나님을 만납니다. 자신의 존재와 모순을 뒤흔드시는 압도적인 하나님 체험 앞에서 욥은 무너집니다. 그때 그동안 그에게 이해되지 않았던 어려운 문제들이 풀려집니다. 욥은 문제를 하나님께로 돌리지 않고 자기를 돌아보게 됩니다. 이렇게 자신을 성찰할 때 신앙이 성숙해지는 것입니다. 욥기의 앞과 뒤가 다 믿음의 사람이지만, 앞부분에는 착실하기는 하나 성숙하지 못한 믿음, 뒷부분에는 성숙한 믿음의 사람입니다. 오늘 종교개혁주일, 거창한 개혁을 말하기 전에 먼저 나부터 돌아봅시다! 욥처럼 우리도 성숙한 신앙인이 되어 자신과 교회를 새롭게 합시다.

1. 성숙한 신앙이란 자기가 체험한 실제적인 신앙입니다. 욥은 기가 막힌 고난과 시련을 겪은 후에 이렇게 고백합니다. “내가 주께 대하여 귀로 듣기만 하였사오나 이제는 눈으로 주를 뵈옵나이다.”(5) 하나님이 보입니까? 겪어보니 이제는 보인다는 겁니다! 여러분의 믿음은 남을 따라 믿는 것입니까, 자신이 알고 경험하고 확신한 것입니까? 바울은 빌립보교인들에게 너희는 내게 배우고 받고 듣고 본 바를 행하라. 그리하면 평강의 하나님이 너희와 함께 계시리라.’(4:9) 하였습니다. 자기가 체득하고 확신하는 믿음이 대단히 중요합니다. 그런데 많은 그리스도인들은 자기 확신을 뚜렷이 가지지 못하고 분위기에 휩쓸려 다니는 경향이 있습니다.

욥은 온전하고 정직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던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자랑거리였습니다. 그러나 그의 믿음은 사람들로부터 전해들은 것이었습니다. 귀로 듣는 신앙으로도 얼마든지 사람들의 인정을 받을 수 있습니다. 문제는 그 믿음이 고난과 문제 앞에서 한계를 드러내게 된다는 사실입니다. 욥은 자신의 옳음을 강조하다가 하나님을 옳지 않으신 분으로 만드는 잘못에 빠집니다. 하나님을 폭풍 가운데에서 만나고, 그 체험을 겪으면서 욥은 눈으로 보는 신앙, 체험적인 확신을 가지게 됩니다. 한번 문제와 위기를 겪게 되면 우리가 정말 믿음을 가졌는가, 기초가 흔들립니다. 터전이 흔들리는 경험을 하는 것입니다. 그때 남에게서 빌려온 신앙, 귀로 듣던 신앙은 여지없이 깨집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지진과 태풍에도 흔들리지 않을 성숙한 신앙, 눈으로 보고 체험한 나의 신앙을 가져야 합니다.

요즘 한국교회 중에 문제 속에 빠진 교회들이 적지 않습니다. 우리 동부연회에도 꽤 큰 교회 중에서 춘천의 한 교회, 강릉 주변에 한 교회가 엄청난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그런가 하면 교회는 괜찮은데 개인적으로 신앙에 시험이 들어 헤매는 교인들도 많습니다. 교회를 안 나가는 교인들을 가나안교인이라 한다는데, 가나안 교인이 요즈음 점점 늘어나는 추세에 있어, 1000만 그리스도인 중에 190만 명이 넘는다는 통계가 있습니다. 교회에서 떠나 있으면 줄기에서 떠난 그리스도인이므로 바른 그리스도인이 아닙니다. 여러분 자기의 신앙고백과 분명한 체험으로 성숙한 신앙을 가꾸시기 바랍니다. 기본적인 말씀공부에 힘써야 하고, 기도생활을 쉬지 말아야 합니다. 교회에 소속감을 가지고 교회 안에서 충성하며 기쁘게 헌신하세요. 그래서 바람이 불고 파도가 쳐서 흔들릴지라도 뿌리가 뽑히는 법이 없어야 합니다.

2. 성숙한 신앙이란 통회자복(痛悔自服)하는 신앙입니다. 욥은 결국 폭풍 중에 임하시는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교만과 안일함과 죄악을 통회자복합니다. “그러므로 내가 스스로 거두어들이고 티끌과 재 가운데에서 회개하나이다.”(6) 욥이 당하는 고난은 단순한 고난이 아니었습니다. 거창하게 표현해서 신앙적이고 신학적인 고난이었던 것입니다. ‘의인의 고난과 역경은 왜 오는가, 하나님은 사람을 항상 옳게 대하시는가, 우리는 극단적인 실패를 하거나 불의한 일을 당했을 때에도 하나님을 믿을 수 있는가?’ 이런 문제를 가지고 욥은 씨름해야만 했습니다. 오늘날 교회와 성도들이 가지고 있는 고민이요 문제입니다.

그러나 욥은 자기의 고난 속에서 지나치게 자기 위주로 생각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고난은 자기 연민자기 의로움의 함정에 사람을 쉽게 빠지게 합니다. 욥처럼 온전하고 정직하게 신앙생활 잘 하던 사람이 이유를 알 수 없는 억울한 고난을 받을 경우에 쉽게 불평하고 억울해 하며 반항합니다. 남을 비난합니다. 만일 고난이 없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욥은 자기 의로움이라는 율법주의 신앙생활의 함정에 빠져 헤어나오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욥은 고난을 통해 자신의 한계를 깨닫고, 하나님 앞에 엎드리게 되었습니다. 이처럼 고난은 우리를 바로 잡고 훈련시키는 하나님의 학교입니다. 성숙한 신앙인은 자신의 부족함을 회개함으로 하나님께로 바르게 돌아섭니다.

작곡가 베토벤의 삶은 고난의 연속이었지요. 17세 때 사랑하던 어머니를 여의었습니다. 27세에 귓병을 앓기 시작했습니다. 음악가가 못 듣는 것은 청천벽력과도 같은 비극입니다. 음악을 포기해야 하는 것이지요. 그는 희미해지는 청력을 보충하려고 네 개나 되는 보청기를 사용하면서 결사적인 노력을 했습니다. 그러나 고난은 점점 그를 위협하며 눌렀습니다. 32세의 젊은 베토벤은 자살을 결심하고 하일리겐슈타트에서 유서를 썼습니다. “그 굳센 용기도 이제는 다 사라졌다. 아아, 하나님! 순수한 기쁨의 날을 단 하루라도 나에게 다시 한 번 주옵소서!” 그는 절체절명의 상황에 빠졌을 때 완전히 하나님께로 돌아섭니다. 하나님만을 바라보고 하나님을 의지하는 통회자복이 일어납니다. 그때 그는 교향곡 9, 가장 위대한 음악을 작곡하게 됩니다. 성숙한 믿음, 성숙한 인생은 자기중심적인 오만에서 떠나 통회자복하여 하나님께로 돌아서는 데에서 이뤄집니다.

한국교회와 성도들은 진심으로 회개하여 하나님께로 돌아가기를 힘써야 합니다. 약속의 땅을 얻기 위하여 구약의 이스라엘은 두 번 죽어야 했습니다. 홍해에서, 그리고 요단강에서! 사실 홍해를 건너는 기적은 이스라엘의 자아가 물에 빠져 죽는 기적입니다. 물로 씻어 정결케 된 이스라엘을 하나님은 광야의 40년 세월로 연단하셨습니다. 그런데도 그들은 불평하고 원망하고 자기중심적인 생각으로 하나님을 시험하였습니다. 그래서 한 번 더 물로 씻어야 했습니다. 법궤를 앞세우고 물이 철철 넘치는 요단강을 건넜던 일입니다. 여러분, 불신자의 회개와 함께 거듭난 신자의 회개도 필요합니다. 어쩌면 아직 우리는 홍해도 못 건너서 거듭나지 못한 채 세속의 애굽땅에 머물러 있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정녕 예수 믿고 옛자아를 버리고 거듭난 것이 확실하다면, 구원받았다고 교만하지 말고 다시한번 거듭 회개하고 요단강의 물로 정결케 해야 합니다. 한국교회 성도들은 통회자복하는 성숙한 신앙을 가져야 희망이 있습니다.

3. 성숙한 신앙이란 남을 배려하며 남을 위해 기도하는 신앙입니다. 욥기 초장의 욥과 종장의 욥이 가장 다른 것은 친구들을 위해 중보기도하기 시작했다는 사실입니다. “욥이 그의 친구들을 위하여 기도할 때 여호와께서 욥의 곤경을 돌이키시고 여호와께서 욥에게 이전 모든 소유보다 갑절이나 주신지라.”(10) 여기서 곤경은 히브리어 쉐부트인데, 포로라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 욥을 포로생활에서 풀어주셨습니다. 욥은 착실한 믿음의 사람이었지만 자기 연민과 자기 의로움에 포로잡혀 있었습니다. 누가 자기를 건드리거나 자기를 내려놓는 일은 상상할 수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고난으로 모든 것을 잃고 수많은 논쟁을 거친 후에, 폭풍 속에서 다가오시는 하나님을 만난 뒤에, 욥은 남을 배려하며 남을 위해 기도하는 이타적인 인간으로 변합니다. 한국교회는 이기적인 집단이 되지 말고 이타적인 공동체가 되어야 합니다. 한국교회는 교만하고 남을 비난하는 공격적인 사람들이 되지 말고 겸손하여 누구든지 포용하고 사랑하는 사람들이 되어야 합니다. 그게 변화된 욥의 모습이요 성숙한 신앙인입니다.

하나님께 자유함의 은총을 받은 사람은 남을 배려하고 남을 위해 기도하게 됩니다. 욥은 곤경에서 돌이키자, 친구들을 위해 기도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우리도 진심으로 눈높이를 남에게 맞추고 겸손하고 진실하게 남을 배려하는 사람들이 되어야 합니다. 자기를 지키려고 남을 비난하거나 공격하지 말고, 진심으로 남이 잘되기를 위해 기도하며 남의 형편을 돌아볼 때 비로소 교회는 새로워지며, 사람들이 교회의 고결함과 진실함을 인정하고 교회로 돌아오기 시작할 것입니다.

 

교회는 새로워져야 합니다. 그러려면 성숙한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성숙한 믿음은? 스스로 체험한 확실한 신앙입니다. 통회자복하여 나부터 바꾸는 신앙입니다. 남을 배려하고 남을 위해 기도하는 신앙입니다. 욥기 앞부분의 욥이 아니라 뒷부분의 욥과 같은 믿음을 가질 때, 교회와 성도는 새로워지고, 갑절로 축복하시는 새로운 부흥의 시대를 맞이할 수 있을 것입니다. 남에게 새로워지라 하지 말고 나부터 새로워집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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