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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송하며 감사하라! (시100:1-5) [2018년 11월 11일, 성령강림절후 스물다섯째주일]
2018-11-10 17:35:46
박신진 목사
조회수   134
설교일 2018-11-11
설교말씀 시100:1-5
설교제목 찬송하며 감사하라!

찬송하며 감사하라!

100:1-5

20181111[성령강림 제25]

 

97년도에 발간된 잠수복과 나비라는 책이 화제가 되었었는데, 그것은 전신마비 환자가 눈 깜빡임 신호로 알파벳을 지정해 글을 쓴 책이어서 입니다. 95년에 세계적인 여성잡지 엘르편집장이며 훌륭한 외모와 화술로 프랑스에서 활발히 사회활동을 하던 장 도미니크 보비가 뇌졸중으로 쓰러졌습니다. 그의 나이 43세였습니다. 그는 3주 후에 의식을 회복했지만 전신마비가 된 상태에서 유일하게 왼쪽 눈꺼풀만 움직일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는 눈을 깜빡이는 신호로 알파벳을 지정해 글을 쓰기 시작했는데, 어떤 때는 한 문장을 쓰는 데 꼬박 하룻밤이 걸리기도 했습니다.

그런 식으로 대필자인 클로드 망디빌에게 20만 번 이상 눈을 깜빡여 15개월 만에 쓴 책이 그 책입니다. 책을 출간하고 8일 후, 그는 심장마비로 그토록 꿈꾸던 나비가 되어 하나님 품에 안겼습니다. 그는 책 서문에서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흘러내리는 침을 삼킬 수만 있다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입니다.” 그의 말에 따르면 자연스런 들숨과 날숨을 가진 것만으로도 우리는 가장 행복한 사람입니다. “불평과 원망은 행복에 겨운 자의 사치스런 신음입니다.” 히브리 시인은 하나님께 찬송하며 감사하는 활기찬 삶을 노래합니다.

 

오늘의 시편은 이스라엘 사람들의 감사와 찬송을 담은 찬송시입니다. 회중이 성전으로 들어가면서 부르는 예배 중 찬송시입니다. 오랜 바벨론 포로에서 돌아온 유대인들이 폐허가 된 예루살렘 제2성전에서 하나님께 예배드릴 때 감사예물을 그리면서 이 시편찬송을 불렀다고 합니다. 우리는 이 아름다운 시편에서 가난과 역경 속에 살았던 하나님 백성들의 지칠 줄 모르는 감사정신을 만납니다.

이 찬송이 어떻게 불렸을까, 재구성해보면 이렇습니다. 1-3절은 회중이 성전 문 앞에서, 4-5절은 성가대가 궁정에서, 즉 성전 구역 안에서 불렀습니다. 회중이 노래하면서 그의 앞에 나아갈지어다!”(2) 찬송하면, 성가대가 감사함으로 그의 문에 들어가라!”(4) 화답하였습니다. 구약시대 예배자들이 즐겨 부르던 감사와 찬송의 전형적인 시편입니다. 훗날 유대인들이 세상 모든 땅으로 뿔뿔이 흩어졌을 때에도 곳곳마다 세운 회당에서 그들은 이 시편을 중심으로 하나님을 찬송하고 감사했습니다.

마르틴 루터도 이 찬송시를 낭독하기를 즐겼다고 합니다. 제네바를 성시로 만들기 위해 종교개혁정신을 끊임없이 실천하였던 요한 칼뱅도 이 시편을 자주 애창했다고 알려집니다. 위대하고 능력 있는 교회는 항상 살아있는 찬송과 감사를 끊임없이 하나님 앞에 올려드렸습니다. 감사와 찬송이야말로 모든 시대 모든 교회에서 신앙생활과 예배의 중심이 되었습니다. 요즘 우리교회는 저녁마다 교회에 모여 다니엘기도회를 진행하면서 찬송하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드리는데 그렇게 은혜로울 수 없습니다. 찬송하며 감사하는 영혼을 하나님은 기뻐 받으십니다. 할렐루야!

오늘 시편 100편의 3절을 보면, “여호와가 우리 하나님이신 줄 너희를 알지어다, 그는 우리를 지으신 이요, 우리는 그의 것이니 그의 백성이요, 그의 기르시는 양이로다.”라고 노래합니다. 여기에 보면 여호와를 자기 하나님으로 아는 자들이 품어야 할 세 가지 감사의 내용이 적혀 있습니다. 하나님은 창조주이십니다, 하나님은 왕이십니다, 하나님은 목자이십니다! 찬송하며 감사하는 성도가 되기 위해 이 말씀의 내용을 나눌 때 여러분에게 새로운 찬송과 감사가 강 같이 흘러넘치기를 바랍니다!

 

1.창조주이신 하나님

우리는 창조주이신 하나님을 찬송하며 그분께 감사해야 합니다. 3절 상반절에 그는 우리는 지으신 이요.”라고 노래하였습니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셨습니다(1:1). 요한복음을 보면, 태초에 말씀이 계셨고 이 말씀이 바로 하나님이신데, 만물이 다 그로 말미암아 지어졌습니다(1:1-3). 그렇습니다! 하나님이 이 모든 세상을 지으셨습니다. 사람은 부모에게서 태어났더라도 생명의 근원은 하나님에게서부터 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지으실 때 세상의 다른 동물이나 피조물과는 다르게 지으셨습니다.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하나님의 모양대로 지으셨기 때문입니다. 인간은 다른 동물과 달리 땅만 쳐다보고 살지 않고 똑바로 서서하늘을 바라보며 살게 지으셨습니다. 불을 사용할 줄 알고 탁월한 언어와 사상을 가졌으며, 영원을 항상 그리워합니다. 세상 모든 피조물 가운데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지은 것은 인간뿐입니다.

8:5을 보면, 하나님이 사람에게 영화와 존귀로 관을 씌우셨다고 찬송합니다. 139:14절에서는 내가 주께 감사하옴은 나를 지으심이 심히 기묘하심이라. 주께서 하시는 일이 기이함을 내 영혼이 잘 아나이다.”라고 노래합니다. 공동번역으로는 내가 있다는 놀라움, 하신 일의 놀라움, 이 모든 신비들, 그저 당신께 감사합니다.”라고 찬양합니다. 성서의 시인들은 기회 있을 때마다 창조주 하나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실제로 인간은 40만 명의 기술자가 동원되어 700만 개 부속품을 조립하여 만든 달나라 왕복 우주선보다 더 신기하고 수준이 높습니다. 인간은 창조주 하나님의 최고 걸작품이요 창조의 으뜸입니다.

공자는 춘추전국시대에 복잡한 시대풍조 속에서도 몸과 머리털과 피부는 모두 부모에게 물려받은 것이니 조금도 상처를 입혀서는 안 된다.”고 가르쳤습니다. 조선시대 공자맹자의 교훈을 따르던 우리 조상들은 머리카락 한 올이라도 소홀히 하지 않고 보존하려고 정수리에 상투를 틀고 다니기까지 하였습니다. 오늘의 성도들은 천하보다 귀한 생명 주신 창조주 하나님께 얼마나 감사를 드리고 있습니까?

보고 듣게 하신 하나님께 감사해야 합니다. 발로 걷고 손으로 일할 때 손발을 지으신 하나님을 찬양해야 마땅합니다. 요즘 허리가 좀 아프니 뛰거나 무거운 것을 드는 데 어려움이 있습니다. 걷는 기쁨과 뛰는 즐거움을 빼앗기지 마시기 바랍니다. 걷고 뛰는 것, 손을 들고 찬양할 수 있는 것도 다 창조주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마음으로 감사하고, 지으신 입으로 찬송하며, 빚어주신 몸으로 건강할 때 헌신하기를 게을리 하지 마십시오! 자연 안에서는 하나님의 발자취를 발견하고, 인간 안에서는 하나님의 닮음꼴을 만날 수 있습니다. 인간은 범죄함으로 하나님의 형상이 깨어졌지만, 하나님 형상의 파편, 하나님 형상의 바탕이 남아있음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모든 피조물은 창조주 하나님께 감사하는 것이 당연합니다. 하나님 형상대로 지음 받은 인간은 하나님을 찬송하고 감사하는 대열에 앞장을 서야 합니다. 우리는 자기 생명의 주인이 아닙니다. 생명의 주인은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이 주셔서 호흡하게 하시고, 때가 되면 하나님이 거두어 가실 텐데 우리는 감사하며 주께 돌아갈 것입니다. 우리는 다만 우리 몸의 청지기일 뿐입니다. 창조주 하나님께 경배하십시오! 때를 따라 창조주 하나님께 감사하며 항상 하나님의 이름을 찬송하시기 바랍니다.

 

2.왕이신 하나님

우리는 왕이신 하나님을 찬송하며 그분께 감사드려야 합니다. 3절 중반절을 보면, “우리는 그의 것이니 그의 백성이요.” 하였습니다. 이 노래를 부르는 성서의 시인과 성가대는 하나님의 통치에 대해서 감사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것이요,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왕이 되셔서 우리를 소유하고 계시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것이요, 하나님의 백성입니다! 하나님의 통치하시고 인도하십니다. 왕이신 하나님 백성이 된 것을 찬양합니다!

오늘날 선진국 국민들은 자기 나라가 강대국이요 부유한 나라인 것을 엄청나게 자랑스러워 합니다. 그 나라 시민권을 따려면 엄격한 심사를 거쳐야 합니다. 주전 6세기의 희랍인 탈레스는 자신이 야만인으로 태어나지 않고 자랑스러운 그리스인으로 출생한 것을 날마다 감사했다고 합니다. 그들이 선진 강대국의 국민으로 태어난 것, 문명국의 백성이 된 것을 감사한다면, 우리가 하나님의 백성이 된 것을 어찌 감사하지 않겠습니까! 우리는 하나님을 믿음으로 천국 백성이 되었고 하나님의 통치와 인도를 받는 사람들이 되었습니다. 우리는 왕의 왕이요 주의 주이신 하나님의 소유가 되었고, 그의 다스림을 받는 하나님의 백성들입니다.

이사야는 43:1에서 이렇게 외칩니다. “너를 창조하신 여호와, 너를 지으신 이가 말씀하시느니라. 너는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고,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 우리는 하나님의 것입니다. 하나님이 관리하시고, 책임지시고, 지키시며, 통치하십니다!

바울은 로마의 시민권을 가진 사람이었으나 그 시민권을 자랑하지 아니하고,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다.”(3:20)고 자랑스럽게 말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다스리시는 왕이시라는 고백입니다.

세상에는 가짜 왕들이 많습니다. 북왕국의 아합은 강하지만 나쁜 왕이었습니다. 남와국의 므낫세는 오래 통치만 했지 제대로 다스리지 못한 못난 왕이었습니다. 중국의 모택동이 중국에서는 엄청나게 존경을 받지만 영원하신 하나님의 관점으로 보면 참된 통치자라 할 수 있을까 싶습니다. 얼마 전에 죽은 쿠바의 수상 피델 카스트로도 쿠바인들이 식탁감사를 카스트로에게 돌릴 만큼 나름대로 자국인의 존경을 받았으나 쿠바의 가난을 떨치지 못한 지도자에 불과합니다. 세상의 모든 왕들은 다 사이비요 진정한 왕이 못됩니다. 우리를 영원까지 다스릴 진정한 통치자, 참된 왕은 하나님이십니다. 예수 왕이야말로 진짜 왕입니다. 그런데도 우리의 찬송과 감사는 냉랭하고 형식적이며 소극적이고 부실합니다. 참된 왕, 영원하신 주님께 진정으로 찬송하며 감사드립시다!

 

3.목자이신 하나님

우리는 목자이신 하나님을 찬송하며 그분께 감사해야 합니다. 3절 하반절을 보면, “그의 기르시는 양이로다.”라는 찬양으로 중심이 되는 내용을 마무리 짓고 있습니다. 우리는 양이고, 하나님은 우리의 목자가 되십니다. 목자이신 하나님에 대한 뿌리깊은 신앙고백이 히브리인의 삶에는 항상 있었습니다. 오랜 세월 유목민족이었던 이스라엘 자손에게 하나님은 목자가 되시어 변치않는 든든한 신뢰의 대상이셨습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23:1) “그가 나를 푸른 초장에 누이시며 쉴 만한 물가로 인도하시는도다.”(2) 하나님이 우리의 목자이심을 알고 만족과 감사로 따라가는 신앙이 우리에겐 필요합니다.

목자 하나님은 우리의 일상생활을 돌보십니다. 먹고 입고 쓰는 것이 다 하나님에게서 온 것입니다. 햇빛이 반짝 빛날 때 아침에 일어나 하루를 시작하고 별이 빛나는 캄캄한 밤에는 누워 쉬며 단잠을 자는 것도 목자이신 하나님의 돌보심이 있기에 가능합니다. 시련과 역경을 만나 고통받고 울 때 하나님은 우리를 버리지 않으시고 기다리고 계시며, 다른 방법으로 돌보시며 우리 곁에 계십니다.

요즘처럼 먹는 음식보다 남겨 버리는 음식이 많다시피 한 세월에도 굶주리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70억이 넘는 세계 인구 가운데 10억 명 정도가 굶주리고 있으며, 그 대부분의 사람들은 아프리카에 살고 있답니다. 최근에는 기후변화와 지역분쟁 때문에 굶주림으로 죽어가는 사람이 더 늘고 있다고 합니다. 지난 주간 다니엘 기도회 강사 중에서 서울대 의대를 나오고 서울대병원에서 일하다가 하나님의 부르심을 따라 아프리카로 간 김태훈 선교사가 봉사하는 나라가 에티오피아인데, 남수단과 함께 세계 최빈국 중에 하나라 합니다. 그들 나라들은 국민의 30% 이상이 굶주림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다닐지라도 안위하시는 목자이신데, 그들을 먹이시고 채워주시기를 기도합니다.

구약에서 목자로 번역되는 보케르는 세 가지 책임을 지는 사람입니다. 먹이의 풍요와 목마름의 해결, 그리고 통행의 안전입니다. 푸른 초장으로 양떼를 이끌어 풍요로운 먹이를 제공하고, 쉴만한 물가로 인도하여 목마름을 해갈시켜 주며, 출몰하는 도적과 노략질하는 맹수의 해를 입지 않도록 지켜야 합니다. 목자장 되시는 하나님의 인도를 따라 이스라엘의 지도자들도 목자들이었습니다. 모세는 호렙산 기슭의 목자였으며, 다윗도 아버지의 집에서 충성하는 목자였지요. 선지자 아모스는 드고아 산지의 목자였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선한 목자시며,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립니다.

세상의 무한경쟁은 사람을 빼앗고 죽이고 망하게 합니다. 그러나 목자이신 하나님은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케”(10:10) 하십니다. 성도들은 부족함이 없는 삶과 더 풍성한 생명을 누리게 하시는 목자이신 하나님을 의지하여 살아야 합니다. 목자이신 하나님은 실망과 좌절에서 우리를 건지시며, 때를 따라 모든 필요를 채우시고, 항상 도와주시고 양육하십니다. 음침한 골짜기와 위험한 절벽에서 목자는 양을 지킵니다. 선한 목자이신 주님을 바라보며 찬양하고 감사하십시오. 그분의 품 안에서 보호를 받으며 인도를 받으십시오. 양들로 풍성케 하시며 안전하게 도우시는 주님을 의지하며 감사하십시오!

 

다음 주일은 교회의 추수감사절입니다. 이스라엘은 추수감사절에 해당하는 명절이 초막절입니다. 초막절에는 가정집 근처, 집 앞, 지붕, 빈 광장에 초막을 짓고 온 가족이 7일간 초막에 살면서 초막절을 지킵니다. 성인 남자는 예루살렘 성전이나 회당에 가서 7일 동안 성회에 참가합니다. 다른 나라에 흩어져 살던 사람은 이 절기에 추수감사 예물을 가지고 예루살렘까지 가서 순례하는 풍습이 있습니다.

유럽의 여러 나라는 교회에 나가 예배드리며 감사하며 교회는 상수리 나뭇잎과 사과, , 푸른 야채로 장식하고, 카톨릭 국가들은 교회에 봉헌된 햇곡식과 과일, 채소를 제단에 펼쳐 성전을 장식하고 성 암브로시우스의 감사 찬미(Te Deum)로 찬양하며 미사를 드립니다. 예배를 마치면 사제는 이날을 교회축제일로 선포하여 온 마을은 풍년축제를 벌입니다.

미국이나 캐나다는 추수감사절이 국경일인데 이렇게 시작되었습니다. 영국에서 국교회를 반대하는 청교도들을 영국왕이 박해하자, 청교도들은 신앙의 자유를 찾아 네덜란드 암스테르담과 라이덴으로 도피하여 10년 이상 망명생활을 합니다. 그러나 언제 잡혀서 화형 당할지 모르는 위험이 계속되었으므로 그들은 결국 큰 마음을 먹고 미국으로 도피할 계획을 세웁니다. 브류스타의 지도를 구해가지고 1622102명이 메이플라워호를 타고 대서양을 건넙니다. 남자 78, 여자 24명인데 63일간 배를 타고 죽을 고생을 한 끝에 미국 메사추세츠 플리머스항에 상륙합니다.

그들은 신앙의 자유를 얻어 교회부터 세우고 그 겨울을 보내는데, 얼마나 추웠는지, 추위와 굶주림, 질병으로 노인 어린이들은 그 겨울을 못 이기고 거의 죽고 절반도 안 되는 49명이 살아남았습니다. 봄이 되자, 인디언 추장 사모세트가 씨앗을 주고 농사법을 가르쳐주어 황무지를 개간하여 농사를 시작하고 가축을 기르기 시작했습니다. 그들은 곡식이 결실할 때까지 풀, 나무열매, 해초, 들사슴만으로 연명하였습니다. 그때 심한 가뭄까지 겹쳐 기도의 날을 정하고 금식하고 회개하며 합심기도를 드렸습니다. 그 기도는 응답되어 단비가 내렸답니다.

개척자들의 첫 추수는 초라했지만, 그들은 추위, 가뭄, 굶주림과 질병을 이기고 첫 수확을 거두어 이웃 인디언들을 초청하여 감사잔치를 벌였는데, 인디언들은 맨손으로 오지 않고 칠면조구이 요리와 호박파이를 가지고 왔답니다. 그들은 함께 즐거워하며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를 드렸답니다. 이것이 첫 번 추수감사절의 유래입니다. 후에 추수감사절은 11월 넷째 목요일로 정해 지금도 국경일로 지킵니다.

우리는 미국과 동맹을 맺은 이웃나라요, 신앙을 전해 받은 나라이기도 한데, 알고 보면 찬양과 감사는 미국을 일으킨 원동력이요 기본 정신입니다. 그리고 모든 하나님의 백성은 믿음으로 일년의 추수열매를 가지고 하나님을 찬양하며 감사하는 사람들입니다. 이 주간에 스스로를 돌아보아, 하나님께 찬송과 감사를 돌려드리는 거룩한 백성의 자리로 돌아오시기 바랍니다. 우리를 지으신 창조주 하나님, 우리를 다스리시는 왕 하나님, 우리를 돌보시는 목자 하나님을, 찬양하며 감사합시다. 그때 우리의 삶은 온전해지며, 모든 좋은 것이 빛들의 아버지로부터 우리에게 임할 것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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