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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광의 빛을 발하라!" (이사야60:1-7) [2019년 1월 6일, 주현절/신년주일]
2019-01-05 15:09:35
박신진 목사
조회수   99
설교일 2019-01-06
설교말씀 이사야60:1-7
설교제목 "영광의 빛을 발하라!"

영광의 빛을 발하라!

60:1-7

201916[주현절/ 신년주일]

 

2019년이 밝아 첫 주일을 맞이했습니다. 이번 한 해는 여러분 가정에 주님의 은혜가 충만하기를 바랍니다. 어둡고 슬픈 일들은 떠나가고 즐겁고 행복한 일들이 많아지기를 바랍니다. 주님 때문에 기쁘고 즐겁고 보람있기를 바랍니다. 오늘도 하나님의 말씀을 함께 나눌 때 그런 은혜의 강물이 우리 가운데 흐를 줄 믿습니다! 장사나 사업을 시작한 분들은 조금만 더 힘을 내십시오. 올해 삼척이 좋아진답니다. 한걸음만 더 나가면 좋은 결과를 볼 것입니다. 자녀 문제로 기도하는 이들도 낙심하지 말고 주께 맡기고 기도하세요. 정년퇴임하는 이들, 가정의 문제로 기도하는 이들, 염려하지 마세요. 하나님이 더 나은 새 길을 열어주실 것입니다.

 

지난 주간에 며칠 뉴스를 장식했던 기사 가운데, 동해에서 일본 비행기가 저공비행을 하다가 우리 군함과 서로 마주칠 뻔 했는데, 일본 총리의 지시를 받아 일본 외교관이 그 문제를 들어 우리 군함이 일본 비행기를 겨냥하여 레이저를 쏘았다고 정식 항의하는 일이 있었습니다. 오히려 자기들이 우리 군함 가까이로 저공비행을 하여 무례를 범했다는 평가도 있는 만큼, 일본의 이런 행동에 대해 언론에서는 기가 차다는 반응입니다. 그러나 한편 일본은 중국 미국과 함께 가장 가까운 이웃이므로 절대 나쁜 관계를 지속시키지 말고, 해결해야 한다는 얘기도 있습니다. 경제나 외교, 통일문제를 위해서는 일본과 나쁜 관계로 있어서는 절대 유리할 게 없다는 말입니다.

제가 연초 설교 첫머리에 일본과의 관계를 언급하는 것은 올해가 3.1운동 100주년이 되는 해이기 때문입니다. 기독교는 물론 현실 정치에 지나치게 반응하거나 참여하는 것을 자제하는 편입니다. 그러나 3.1운동은 당시 소수에 불과했던 기독교가 주도했던 독립만세운동, 민족구원운동이었기 때문에 다른 어떤 정치적 사건과는 다른 면이 있습니다. 기독교 신앙은 항상 우리의 현실과 역사를 외면하지 않고 참여했습니다. 유럽을 선진국으로 이끄는 데에 기독교 정신과 윤리가 바탕이 되었고, 미국을 세우는 데에도 기독교 신앙이 중심이 되었음을 생각해 볼 때, 예나 지금이나 적극적인 면에서 교회는 현실을 책임지고 선도하는 역할을 해야 합니다.

아마 올해는 어느 때보다도 건국절 논쟁이 심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사실 건국은 반만년 역사를 가지고 있는 우리이기 때문에 말할 수 없고, 정부수립일을 가리킵니다. 그동안은 이승만 정권이 출발한 1948815일을 정부수립일로 여겼습니다. 당연히 북한은 김일성 정권 수립을 그날로 삼겠지요. 그러나 앞으로 북한과의 화해와 통일을 생각하고 우리 민족의 주권의식을 강조한다면 상해임시정부 수립일을 근대국가 출발로 보아야 한다는 관점이 있습니다. 100년 전에 일어났던 3.1운동은 해외에 민족독립운동을 일으키도록 부추겼고 그해에 상해임시정부가 시작되었기 때문에 건국이 3.1운동과 상해임시정부 수립에서 비롯된다는 겁니다.

그러므로 삼일절과 상해임시정부수립을 건국으로 보면 올해는 건국 백주년이 되고, 남북관계나 국제관계에서 우리나라의 위상이 훨씬 발전하는 중요한 해가 됩니다. 각별한 마음가짐과 결심으로 맞이해야 할 것입니다. 국민일보 지난 목요일자의 어떤 칼럼을 보니 삼일운동 이후 백년간 일궈낸 민주화, 산업화, 경제성장을 앞으로 더 발전시킬지 아니면 후퇴할지 올해 달려있다고 써있습니다. 2019년은 그만큼 중요한 해라는 말입니다. 미국 중국 일본, 거기에 러시아까지 달려들어 이리 끌고 저리 끄는 대로 휘둘려 다니다가 다시 전쟁이나 냉전 대결로 들어갈지, 아니면 평화와 번영의 새 역사를 만들어갈지 올해 달려있다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말씀은 포로에서 돌아온 유다를 향하여 이사야 선지자가 외친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한 마디로 포로의 고난세월을 다 겪었지만, 이제 유다에게는 영광의 빛이 비치리라는 말씀이지요. ‘보라, 어둠이 땅을 덮을 것이며, 캄캄함이 만민을 가리려니와 오직 여호와께서 네 위에 임하실 것이며, 그의 영광이 네 위에 나타나리니, 나라들은 네 빛으로, 왕들은 비치는 네 광명으로 나아오리라.’(2-3) 희망에 가득차서 외치는 말씀입니다. ‘네 눈을 들어 사방을 보라, 무리가 다 모여 네게로 오느니라. 네 아들들은 먼 곳에서 오겠고 네 딸들은 안기어 올 것이라. 그 때에 네가 보고 기쁜 빛을 내며 네 마음이 놀라고 또 화창하리니, 이는 바다의 부가 네게로 돌아오며 이방 나라들의 재물이 네게로 옴이라.’(4-5)

바벨론과 페르시아 두 제국의 식민지로 살아온 지도 어언 140여년이었습니다. 얼마나 고달프고 힘들고 속상했겠습니까! 이제 새로운 나라의 소망마저 사라질 판이었어요. 이러한 고난 세월의 한복판에서 빛과 예언자이사야는 유대인들에게 위로를 전하면서 하나님 뜻을 선포합니다. 저는 어쩐지 이 말씀이 바로 이 시대 우리에게 주시는 주님의 말씀이라는 생각이 들어, 예언자 이사야와 같은 심정으로 선포합니다. 어둠 가운데 빛이 비칠 것입니다!!

근래 우리 교우들 가족에 아기들이 태어나 새 식구가 많이 늘었습니다. 저희 집에도 큰딸아이가 둘째 아이 딸을 낳았습니다. 그러고 보니 딸아이 가족의 모든 생활이 달라집니다. 한 사람이 새로 태어나니 온 식구가 기쁨과 행복도 갑절이고, 분주함과 힘든 것도 갑절인 것 같습니다. 가정이나 사업이나 사회나 국가도 올해 그런 변화들이 일어날 것입니다. 우리교회에도 하나님께서 은혜의 강이 흐르도록 인도하실 것입니다. 그러면 은혜가 임하는 곳마다 변화가 나타나며 생명이 역사하고 하나님의 약속이 현실이 될 것입니다.

 

1. “너는 빛이다!” -사명을 깨달아야.

주님은 우리를 향해서 말씀하십니다, “너는 빛이다!” 여러분, 우리는 빛으로 부름 받았습니다. 사명을 깨닫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리스도인은 자기가 서있는 곳에서 주님이 부르신 빛이 되어야 합니다. 지금은 어두운 포로시대, 역사의 밤입니다. 그러나 주님은 어딘가에 등불을 켜실 텐데, 바로 우리더러 등불이 되라, 빛을 비추라 하십니다. ‘일어나라, 빛을 발하라! 이는 네 빛이 이르렀고 여호와의 영광이 네 위에 임하였음이니라.’(1) ‘이스라엘아, 너는 하나님의 빛이다! 일어나라, 너 자신을 알라, 주저앉아 있지 말라. 사명을 깨달아라!’ 그런 말씀이지요.

촛불이나 전깃불, 태양빛이든 모든 빛은 자신을 위해 존재하지 않습니다. 빛은 비추는 것이 목적이지요. 어둠의 때에 필요하고, 어둠을 비추어 밝힐 때 존재의 의미를 가집니다. 지금은 어둠이 땅을 덮었고, 캄캄함이 만민을 가리는 시대이지만, 우리는 빛이 되어 밝혀야 합니다. 따라서 지금은 교회가 세상을 향해 빛을 드러내야 할 때입니다. 어두운 곳을 찾아가 빛을 드러낼 때 사람들은 교회를 향해 나아올 것입니다.

우리의 빛은 내게서 나오는 선행이나 장점의 빛이 아닙니다. 우리의 빛은 하나님에게서 오는 빛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이 우리 위해 임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영광, 히브리어로 카보드가 임할 때 어둠은 소멸할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빛을 받고 하나님의 빛을 전하고 하나님의 빛 가운데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어두운 세상을 향한 빛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과 유다를 택하신 하나님의 뜻도 인류구원의 계획이었습니다. 온 세상에 구원과 평화를 전해주기 위해 유다를 택하셨습니다. 이처럼 오늘 우리들을 그리스도인으로 부르신 것은 세상을 구원하도록 빛을 비추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이 작은 나의 빛 비치게 할 테야, 이 작은 나의 빛 비치게 할 테야. 빛내리 빛내리 빛내리.// 독 안에 안 두고 비치게 할 테야, 독 안에 안 두고 비치게 할 테야. 빛내리 빛내리 빛내리.

 

2.회개해야 한다.

이스라엘이 누군지, 유다가 무엇인지 그들은 자기 사명과 정체성을 깨달아야 합니다. 교회와 그리스도인은 자기가 어떤 존재로 부름받았는지를 깨달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너희는 세상의 빛이다,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다.”(5:)라고 우리의 원래 모습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우리는 이렇게 자기 이익만 생각하며, 자기 혼자의 영달만을 바라며 살 사람들이 아닙니다. 세상을 위해 기도하며, 문제 있고 잘못 살고 있는 사람들을 끌어안고 바로 인도하는 사람들이 되어야 합니다. 교회 때문에 나라가 살고, 그리스도인 하나 때문에 가정이 살며, 성도가 깨어있고 살아있어 직장이 살아나는 그런 은혜가 임하기를 축복합니다.

그러려면 믿는 우리가 먼저 회개해야 합니다. 회개란 후회하고 바꾸는 것입니다. 어원으로도 메타노이아지금까지의 잘못된 생각과 행동을 거꾸로 하는 것입니다. 먼저 잘못을 깨닫고 후회하기를 바랍니다. 잘못 하고도 잘못 한 줄을 모르면 소망이 없습니다. ‘내 탓입니다, 나 때문입니다.’ 적어도 이런 자각이 있어야 그리스도인이지요. 말씀에 불순종하여 살고, 가족들에게 상처를 주며, 주위에 하나님 영광을 가리는 사람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그런 일이 있었다면 빨리 회개하세요! 그리고 바꾸어야 합니다. 깨닫는 는 하는데, 바꾸는 를 하지 못하여 늘 회개가 미완성인 채 끝납니다. 미완성의 회개는 회개가 아닙니다. 회개할 때 빛을 비출 수 있고, 회개해야 어둠이 물러갈 수 있습니다.

아무리 못된 사람, 아무리 잘못을 크게 저지른 사람도 주님은 용서하십니다. 다만 진실하게 잘못을 뉘우치고 회개할 때 주님은 우리를 붙드십니다. 얼마나 크게 소리지르고 울면서 회개하느냐가 중요한 게 아니라, 얼마나 진실하게 잘못을 깨닫느냐가 중요합니다. 진실한 회개는 생각과 행동의 변화를 가져옵니다. 포로잡혀 가도록 잘못 산 이스라엘의 죄가 있습니다. 나라가 망하게 되기까지 불순종했던 유다의 잘못이 있습니다. 그것을 확실히 깨우쳐야 합니다. 수백 년 포로세월, 할아버지의 할아버지 때부터 쌓여온 잘못을 청산하려면, 말씀 앞에서 무엇이 잘못인지를 뼈저리게 깨달아야 합니다. 그래야 바로 설 수 있습니다. 빛이 되려면, 나를 통해 세상에 빛을 비추려면 회개의 아픔과 통곡소리가 교회 바닥을 적셔야 합니다.

대전지역에 남편 없이 홀로 아이를 기르는 여인이 돈 만원을 쥐고 동네 구멍가게로 분유를 사러 가 한 통을 들고 계산대에 놓으니 16천원이라는 겁니다. 아이 엄마는 분유가 이렇게 올랐냐며 돈이 모자란다고 힘없이 돌아섰습니다. 이 손님을 안쓰럽게 여기던 가게 주인이 분유통을 제자리로 가져다 놓는 척하다가 땅바닥에 슬쩍 떨어뜨리더니 분유통을 주어들고 나와 돌아가던 부인을 불러 찌그러진 분유값은 반값이라며, 아이 엄마가 내놓은 만원을 받은 뒤 2천원과 함께 분유통을 건네주었습니다. 남을 도와주면서도 배려하는 세심한 사랑의 모습입니다. 회개는 사랑 없는 사람이 주님이 우리에게 보여주신 참 사랑으로 돌아오는 것입니다.

교회에서 연말과 연시를 지나다보면 목회자도 거의 시험에 빠지려 할 때가 많습니다. 성도들의 이기적이고 자기중심적인 모습 때문입니다. 조금만 더 서로를 배려하고 하나님의 뜻을 생각해보면 어떨까요? 하나님은 큰 변화를 요구하시지 않습니다. 지극히 작은 배려, 약간의 순종, 하나님을 위한 즐거운 헌신이 교회를 변화시키고, 이런 교회가 세상의 어둠을 물리치고 빛을 비추는 믿음과 사랑의 공동체가 될 수 있습니다.

 

3.꿈을 가집시다.

아이들에게 꿈이 무엇이냐 하면 굉장히 머쓱해하면서 쉽게 말을 하지 못합니다. 예전에는 웬만한 아이들은 대통령, 여자들도 이순신 장군, 119구조대, 뭐 이런 대답들이 불쑥 튀어나왔는데, 요즘 아이들은 좀처럼 꿈을 말하지 못합니다. 가장 절망을 느끼는 포로시기에 예언자는 놀라운 희망을 선포하고 있습니다. ‘게달의 양 무리는 다 네게로 모일 것이요, 느바욧의 숫양은 네게 공급되고 내 제단에 올라 기꺼이 받음이 되리니, 내가 내 영광의 집을 영화롭게 하리라!’(7) 하나님의 아름다움과 기쁨과 영광을 꿈꾸며 노래합니다.

믿는 사람들은 꿈의 사람들이며, 교회는 꿈공장이 되어야 합니다. 여름철 나방들이 불빛으로 모여들 듯, 어둠 속에 갇힌 사람들도 빛이 있는 곳으로 모여듭니다. 여러분, 가슴에 비전을 품으십시오! 꿈을 간직하세요! 저는 살다보니 목회여정이 30년을 훌쩍 넘겼습니다. 지금까지 해오던 것에서 무어 새로운 것이 있겠나, 이런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그러나 저는 두 가지를 새해에 꿈꾸고 있습니다. 하나는 하나님께서 제 인생 최고의 목회를 앞으로 허락해주시리라는 꿈입니다. 또 하나는 우리 교회에 젊은이들과 부부들이 크게 부흥되어 이 도시에 영향을 미치리라는 꿈입니다.

사람들이 쉽게 107년 된 우리교회를 놓고 나이 많은 사람들의 교회’, ‘교회학교가 약한 교회라고 말하려 한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내 앞에서 그런 말을 하는 사람들을 저는 미워하기로 했습니다.ㅎㅎ 우리교회는 젊은이들로 가득찬 교회, 가정이 거룩하게 변화되는 교회, 다음 세대의 꿈과 희망으로 가득찬 교회가 될 것입니다. 은혜의 강이 내 안에서부터 솟아올라, 교회를 돌아흐르고, 충만하고 넘쳐서 세상으로 흐르는 교회가 됩시다.

 

저는 지난 주간에 아프리카 남부의 바오밥나무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뉴스전문채널 CNN이 바오밥나무들이 잇따라 죽어가고 있다고 보도했습니다. 지난 12년 동안 수령이 오래 되고 덩치가 매우 큰 14그루가 말라 죽었거나 줄기 일부가 갈라져 반고사 상태가 됐답니다. 2000년 이상 된 나무가 3그루, 천년에서 2천년 된 나무가 6그루랍니다. 바오밥나무는 아프리카 남부와 대륙 남동쪽 섬 마다가스카르, 호주 북부에서 자라는 희귀종입니다.

다 자라면 키는 20m가 넘고 큰 나무는 줄기 둘레가 3-40m가 됩니다. 가지는 나무 윗부분에 몰려있어서 뿌리를 닮아 나무를 거꾸로 심어놓은 듯하게 보입니다. 이 나무는 아프리카에서 생명의 나무로 불립니다. 주로 열대 초원지대에서 자라는데, 3000년을 사는 생명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몸집을 불린 줄기에 물을 저장했다가 거의 반년 동안의 건기를 버팁니다. 최대 10만 리터가 넘는 물을 저장하는 나무도 있습니다.

프랑스 작가 생텍쥐페리의 소설 어린 왕자에서 소개해 사람들에게 잘 알려진 나무지요. 어린 왕자에서 바오밥나무는 위험한 나무로서 내버려뒀다가는 크게 자라 손 쓸 수 없게 되고 그러다보면 소행성(B612)을 완전히 뒤덮게 되는 나무이지만, 실제로 이 나무는 주변 동물들에게 열매와 물을 제공하고 피난처가 되기도 하는 유익한 나무입니다. 이 나무가 죽어가고 있다는 것은 지구생명의 관점에서 불길한 징조입니다. 지구 온난화로 제때 수분을 보충하지 못해 기상이변의 피해를 보았을 것이라는 겁니다. 바오밥나무처럼 유럽교회는 소멸해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동방의 이 나라와 여러 대륙의 교회들은 그 생명력이 더욱 커지고 자라고 있지요!

우리 시대의 바오밥나무 교회야말로 생명의 공동체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며 말씀을 전파하고 거룩한 사랑을 간직한 믿음의 공동체, 교회를 지키고 교회를 통해서 일해야 합니다. 교회가 바로 서야 하고 빛이 되어야 합니다. 은혜의 강이 우리 가운데에서 흘러 세상으로 나가는 교회가 되게 합시다. 하나님으로부터 빛을 받아, 영광의 빛을 발하십시오! 나부터 살아 생동하는 그리스도의 나무가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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