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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 앞에 선 이스라엘 (느헤8:1-12) [2019년 1월 27일, 주현후 셋째주일]
2019-01-25 14:38:28
박신진 목사
조회수   129
설교일 2019-01-27
설교말씀 느헤8:1-12
설교제목 말씀 앞에 선 이스라엘

말씀 앞에 선 이스라엘

8:1-12

2019127[주현후 셋째주일]

 

사경 전통

날씨는 여전히 추운 혹한기를 지나고 있지만, 교회 안팎에서는 말씀을 읽으려는 마음과 말씀을 배우려는 열기로 뜨거워지고 있습니다. 바야흐로 낮이 짧고 밤이 길어 집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은 겨울은 말씀을 읽고 익히는 말씀의 계절입니다. 지방적으로는 내일부터 수요일까지 아침 9시 반부터 1220분까지, 80분씩 두 강의와 중간의 쉬는 시간 10분씩 월, 화 이틀 동안 성경을 배우는 사경회를 엽니다. 이 사경회는 그 역사가 백년도 넘은 것으로서 초기에는 겨울철 농한기에 합숙을 하면서 두 주간씩 하던 것입니다. 요즘은 사경회에 잘 참석하지 않으니까, 저녁시간과 새벽시간에 부흥회를 함께 엽니다. 가능하면 오전 사경회에 참석하기 바라고, 직장과 개인 사정으로 어려우면 저녁시간에라도 동참하시면 좋겠습니다.

선배 목사님 중에 한분이 어떤 모임에서 평신도 지도자 한 분과 서로 인사를 하고 대화를 하다가 갑자기 !” 하면서 반가이 외쳤습니다. 웬일인가 하여 모두 쳐다보았는데, 30년 전에 감리교 어느 지방에서 겨울사경회 할 때 같이 참가했던 분이 아닌가 하면서 반가워하였습니다. 30년이 지났는데도 그때가 생각난다면서 정말 재미있고 많이 배웠다고 회고하는 것이었습니다. 무엇보다 과거 교회의 전통 속에서 사경회는 배우는 사람들의 열기가 뜨거웠습니다. 모든 사정이 어려웠고 많이 불편했지만, 장작과 쌀과 솥단지에 김치와 장을 싸들고 가서 꼬박 숙식하며 배웠습니다. 제가 원주지방에서 전도사로 첫 목회를 할 때, 겨울사경회가 원주제일교회에서 열렸는데, 멀리 떨어진 문막과 귀래에서 온 교인 중에 수십 명은 동부신학교 기숙사 방에서 합숙하면서 참석하더군요. 저는 옛 사경회의 모습을 본 마지막 세대인 셈입니다.

말씀을 읽고 배우는 모임들을 통하여 회개운동이 일어났고, 기독교적 가치와 사상으로 인생의 기초를 다졌으며, 그때 한 주간씩 한데 어울려 배우고 익히는 동안 아름다운 성도의 교제와 단합이 이뤄졌습니다. 말하자면 성도의 신앙을 업그레이드하는 집회였습니다. 요즘도 서울의 어느 지방(서대문지방입니다)은 낮 성경공부에 수천 명씩 모여 사경회를 한다는데, 우리 지방의 경우는 거의 관심 밖의 일로 되어가고 있습니다. 여러분에게 사경회 참가를 권유합니다. 할 수 있는 한 참가하십시오! 사경회에 수십 명 이상 참가하면 주최 측에서 깜짝 놀랄 것이고, 그것 자체가 신선한 도전이 될 것입니다. 내가 경기도에서 목회할 때 교인들을 사경회에 30명 쯤 데리고 가니까 지방 전체가 깜짝 놀라고 사경회 분위기가 확 달라졌던 기억이 있습니다. 감리사 때 사경회를 부흥시켜보려고 여러 가지 새로운 시도를 해봤는데 호응이 잘 되지 않았던 섭섭한 기억도 있습니다.

 

계시의 종교, 말씀의 종교

기독교는 계시의 종교, 즉 말씀의 종교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원래 말씀을 따라 살아가는 말씀의 사람들입니다. 웨슬리는 스스로를 한 책의 사람즉 성경의 사람으로 불리기를 좋아하였습니다. 프랑스 작가 빅토르 위고는 이런 말을 하였지요. “영국에는 두 책이 있다. 바로 성경책과 셰익스피어의 책이다. 영국은 셰익스피어를 만들었지만, 성경은 영국을 만들었다.” 영국만 만들었나요, 서양역사 세계역사를 만든 것도 알고 보면 성경입니다.

오늘날 세계의 경찰을 자처하고 있는 최강국 미국도 성경으로 시작되었습니다. 미국의 선조 청교도들은 성경말씀을 가지고 아메리카 대륙으로 건너갔어요. “성경은 그들과 함께 건너왔다. 자유와 성경 읽기 때문에 그 시대에 남자들이 시민의 자유에 대해 바른 생각을 하게 되었다는 데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미국의 정치가 다니엘 웹스터의 말입니다. 우드로 윌슨 대통령은 미국은 성경의 계시에 나오는 의의 요소들에 대한 헌신으로 태어났다.”고 하였습니다.(워렌 위어스비, 견고하여라, p.110.) 세계와 우리나라를 위하여, 성경으로 시작한 미국이 성경으로 다시 돌아오기를 바랄 뿐입니다.

 

성경에는 하나님의 택한 백성 이스라엘이 말씀 앞에 섰을 때 나라가 회복되고 부강하였음을 보여줍니다. 출애굽기 24장을 보면, 애굽에서 나와 광야에 있을 때 이스라엘은 시내산에서 최초로 하나님의 백성으로 하나님과 말씀으로 계약을 맺습니다. 제단을 세우고 언약서를 가져다가 백성에게 낭독하여 듣게 하니, 그들이 이르되 여호와의 모든 말씀을 우리가 준행하리이다.”(24:7) 맹세합니다. 이와 같이 이스라엘 민족의 탄생은 바로 하나님 말씀에서 비롯되었던 거죠.

이스라엘이 가나안 정복을 다 끝내고 약속의 땅에서 새로운 나라로 출발할 때에도 역시 말씀으로 기초를 놓았습니다. 이스라엘은 세겜에 모여,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행하셨던 능력과 은혜를 선포합니다. 그리고 여호수아는 그 자리에서 백성들에게 자신들이 섬길 신을 오늘 택하라, 오직 나와 내 집은 여호와를 섬기겠노라-고 말합니다. 그때 모든 이스라엘은 오직 하나님만 섬기고 그 말씀만을 따르겠다고 응답하였습니다.(24:15-18) 약속의 땅 가나안에서 그들은 말씀 위에서 나라를 시작했던 겁니다.

그뿐 아니라, 왕조시대에 이스라엘에 큰 위기가 닥쳤는데, 그것은 그들이 말씀을 잃어버려 민족의 중심을 상실한 데에서 온 것이었어요. 요시야가 왕이 된 지 18년 되었을 때, 성전 수리하는 사람들이 발견한 율법책에서부터 말씀으로 돌아가자!”는 종교개혁 운동이 점화하게 됩니다. 왕은 하나님의 말씀을 발견하여 읽고는 옷을 찢으며 회개합니다. 왕의 솔선수범으로 모든 백성이 말씀으로 다시 돌아가는 운동이 일어납니다. “왕이 단 위에 서서 여호와 앞에서 언약을 세우되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여호와께 순종하고, 그의 계명과 법도와 율례를 지켜 이 책에 기록된 이 언약의 말씀을 이루게 하리라 하매, 백성이 다 그 언약을 따르기로 하니라.”(왕하23:3)

 

포로에서 돌아온 이스라엘

본문은 이스라엘이 역사상 가장 극적으로 말씀 앞에 돌아온 사건입니다. 그들은 망했었습니다! 망한 나라로서 바벨론에 포로 잡혀 50년에서 70년을 살다가 돌아온 사람들입니다. 붙잡혀갔던 할아버지 할머니들은 다 돌아가시고 이제 그 자식 손자들이 제 나라라고 돌아와 나라를 재건하는 시절의 이야기입니다. 그들은 돌아와 느헤미야의 감독 아래 무너진 성벽을 재건하였습니다. 사실 바벨론은 남의 나라이기는 하지만 수십 년간 대를 이어 살다보니 이제 말도 통하고 기반도 잡았던 터였습니다. 그들이 다시 돌아와 나라를 처음부터 재건하려니 얼마나 힘이 들었을까요!

그러나 정말 그들에게 중요한 것은 집을 짓고 농사와 목축을 하여 경제를 재건하는 것보다 먼저 그 나라의 정신을 세우는 것이었습니다. 그 민족의 영혼을 바로 잡는 것이었지요! 이스라엘은 여전히 하나님의 백성으로 선택받았으며 하나가 되어 있었습니까? 무엇이 그들로 하여금 이 폐허된 고향에서 다시 나라를 세우라 합니까? 그들은 이 문제에 확실한 대답을 찾아야 했어요! 그들은 예루살렘 수문 앞 광장에 모여 대대적인 율법 낭독 의식을 거행합니다.

사람은 밥만 먹고 살 수는 없습니다. 좋은 옷을 입고 얼굴에 분칠을 했다고 그저 행복해지는 것은 아니죠. 왜 삽니까? 삶의 목적과 의미를 알아, 서로 사랑하는 사람들과 생각이 맞고 뜻이 맞아야 사는 것처럼 살 수 있습니다. 그런데 사람을 의미 있게 하고 정신을 바르게 하며, 서로 사랑하는 마음으로 그 영혼을 하나 되게 하는 것이 무엇일까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이스라엘은 성벽을 재건하고 각자 돌아가 자기 집을 짓고 있었지만, 그들을 하나 되게 하는 하나님의 말씀이 필요했습니다.

그들은 수문 앞 광장에 모여 새벽부터 정오까지 남자나 여자나 알아들을 만한 모든 사람이 말씀 앞에 귀를 기우립니다. 학사 에스라는 특별히 지은 나무 강단에 서고 그의 곁 오른 쪽에 몇 사람 지도자들이 서고, 왼쪽에도 또 몇 사람이 섰습니다. 이 장면을 떠올려 보세요! 말씀 가르치는 선생 에스라가 백성 위에 서서 그들 앞에서 강단에서 책을 펴니 책을 펼 때 모든 백성이 일어섰습니다. 에스라가 위대하신 하나님 여호와를 송축하니 모든 백성이 손을 들고 아멘! 아멘!” 하고 응답하고 몸을 굽혀 얼굴을 땅에 대고 여호와께 경배합니다! 참으로 이스라엘이 말씀 앞에 서서 하나님께 돌아오는 모습은 위대한 장관이 아닙니까!

70년 포로생활 끝에 고국으로 돌아온 백성들이었어요. 이미 모국어인 히브리어를 잊어버리고 그들은 아람어를 생활어로 쓰고 있었습니다! 남자든 여자든, 알아들을 만한 사람으로 백성들이 새벽, 대략 아침 6시부터 정오까지 6시간씩, 일주일 동안 말씀을 들었습니다. 7일 동안 매일 아침 동트는 시간부터 6시간을 절실하게 말씀을 들었던 것입니다.

이 부분이 중요하기 때문에, 자세히 한번 다시 정리해보죠. 랍비 에스라가 책을 펴는 것을 봅니다 -> 책을 펼 때 모두 일어섭니다 -> 읽는 소리에 귀를 기우립니다 -> 에스라가 하나님을 찬양하면 모두 아멘!” 하고, 엎드려 얼굴을 땅에 대고 주님께, 즉 주님의 말씀인 율법책에 경배합니다 -> 레위 사람들이 아람어로 통역합니다 -> 말씀의 뜻을 깨닫습니다 -> 모두 울었어요(9)! 설움과 기쁨의 감동이 뒤섞인 눈물이죠. -> 느헤미아 에스라 레위 사람들이 백성들 사이로 다니면서 달랩니다, “오늘은 거룩한 날 성일이니 근심하지도 슬퍼하지도 울지도 말라.” -> 백성이 들은 바를 밝히 깨닫고 크게 기뻐하며 식사를 나눕니다. -> 초막절을 지킵니다 -> 동일한 과정을 일주일 동안 반복했습니다(18).

그들은 말씀을 듣고 깨달았습니다. 그들이 말씀을 깨달을 때 큰 감격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백성이 율법의 말씀을 듣고 다 울었던 거죠. 총독 느헤미야와 율법 가르치는 선생 에스라와 백성을 가르치는 레위 사람들이 울지 말라고 말려야 할 정도였습니다. 큰 감격과 눈물이 있었고, 이어 음식을 해먹으면서 기뻐하였습니다. 그들이 그제서야 나라 잃은 섭섭함과 폐허 속에서 재건하는 고달픔을 잊고 힘을 얻게 되는데, 이것이 포로에서 돌아온 이스라엘 나라의 진정한 새출발이었습니다!

 

‘TOO BUSY, TOO NOISY!’(너무 바쁘고, 너무 시끄러워!)

글랜 힌슨은 말하기를 현대인들이 하나님의 음성을 가까이 귀담아 듣지 못하는 이유가 두 가지 있다 하였죠. 하나는 ‘too busy!’, 너무 바쁘다는 것이고, 또 하나는 ‘too noisy!’ 너무 시끄럽다, 산만하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사람들이 일과 직업에 몰두하고 성공을 위해 달려가느라 마음이 급하여 뛰고 있습니다. 열심히 뛰고 바쁜데 왜 바쁜지도 모르겠고, 그냥 힘만 드는 것이지요. 생각할 겨를도 없고 마음에 힘을 얻지 못한 채 분주합니다. 그러니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가 없습니다. 너무 바빠요!!

또 사람들은 너무 들을 소리가 많아서, 영혼이 시끄러워서 주님의 말씀에 귀기우릴 수가 없습니다. 볼거리가 많고 들을 거리가 많습니다. 특히 TV, 인터넷 동영상들에 마음을 빼앗기고 시간을 점령당합니다. 사람들은 감각적으로 끌어당기는 것이 많기 때문에 깊이 조용히 듣는 것을 놓치게 되죠. 선택의 여지가 없이 들어야 하고 보아야 합니다. 만나고 싶지 않은 사람도 만나야 하고, 귀찮은데도 보고 들어야 해요. 또 뭔가 있을까 싶어, 방송 채널을 돌리고 인터넷을 이러 저리 찾아보는데, 허전하고 산만할 뿐입니다. 이렇게 우리 마음이 산만해졌고 하나님의 말씀 앞에 집중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바쁘게 시끄럽게 돌아가죠. 무언가 일이 이뤄지고 있는 것 같지만, 공허합니다. 우리에게는 말씀이 필요한 것입니다.

그러나 가장 심각한 장애물은, 우리가 우리 삶에 최고의 권위를 하나님과 그 말씀에 두지 않고 자기 자신에게 둔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너무 자기중심적인 데에 빠져버렸어요. 자아가 하나님이 되는 시대입니다. ‘성경 대신에 나는 내 인생에 내 자아를 나의 권위로 삼기로 했어!’ 사람들은 이렇게 자기 자신 속에 외치고 있습니다. 우리는 살기위해 어느 때보다 말씀 앞에 서기를 힘써야 하는 시대에 와 있습니다. 자아는 혼돈 속에 빠져 절망과 불안으로 달려가므로, 우리는 하나님 말씀 앞으로 돌아와 우리 인생의 방향과 의미를 찾고 기쁨과 힘을 회복해야 합니다. 다 마음의 병을 앓고 있으므로 멈추어서 말씀 앞에 차분히 앉는 일은 정말 젊은이들이나 나이 드신 이들에게나 시급합니다.

우리 시대의 영성가로 큰 호응을 얻고 있는 유진 피터슨 목사님은 캐나다의 리전트 대학에서 가르치면서 작은 소도시의 2-3백 명 모이는 교회의 담임목사로 사역하다 은퇴했는데요. 그는 하나님의 말씀 앞에 주의 백성들이 속히 돌아가야 함을 역설하면서, 말씀을 읽는 것 가지고는 부족하고 말씀을 먹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이 작업을 나는 우선 이 책을 먹으라!”는 은유에서 시작하고 싶다. 나는 이 은유를 회복하고 싶다. 나는 내가 속한 이 기독교 세대의 상상력에 이 명령을 각인시켜서, 예수님을 따르는 모든 사람들이 가장 첨예하게 의식하는 복음의 여러 위대한 명령들 가운데서 명예로운 자리를 차지하기 바란다. 이 책을 먹으라!” 단지 성경을 읽는 것이 아니라 이 책을 먹으라!’(유진 피터슨, 이 책을 먹으라, p.44)

 

새해의 다짐, 말씀 안으로!

난 개인적으로 새해 들어 몇 가지 작정을 하였는데 그 중에 한 가지가 매일 주님과 얼굴을 맞대고 교제하는 생활을 계속하겠다는 것입니다. 말씀 묵상하고 기도일지 쓰겠다는 거죠. “그거 안했었어요?” 반문하는 사람들이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부끄럽게도 계속하지 못했었어요. 이제 이것을 설교에서 공개하면 부담이 되겠지만, 실천을 위해서 얘기해 봅니다. 혹시 말씀 묵상을 계속 하지 못하면 저를 꾸짖어주세요. “설교까지 하더니, 목사님 성경 묵상해야 삽니다.” 이렇게 말이죠!

삼척제일 가족 여러분! 올해는 우리도 이스라엘이 수문 앞 광장에서 말씀 앞에 서서 새 백성이 된 것처럼 말씀 앞에 새롭게 서기를 간절히 권유합니다. 이스라엘은 쓰라린 포로생활의 경험을 했습니다. 그들이 말씀 앞에서 울기도 하고 기뻐하는 것은 이런 슬픈 경험 속에서 우러나온 것입니다. 우리의 죄와 허물과 연약함 때문에 빚어진 고난과 실패의 세월이 있었더라도, 말씀을 가까이 하고, 심령 속에 말씀의 샘을 파면 우리 심령이 소생함을 얻고 힘이 생깁니다. 내 마음에 은혜의 샘이 솟는 거예요! 그러려면 말씀을 읽어야 하고, 말씀 배우는 자리에 와있어야 하며, 말씀을 깨닫고 새기고 그 말씀이 여러분의 힘이 될 때까지 말씀 가운데 있어야 합니다.

몇 년 전, 이맘 때 정초였을 때 목욕탕을 갔는데, 풍채가 좋은 아담한 할아버지가 손자 둘을 데리고 왔습니다. 큰 애는 열 살 쯤 되었을까 좀 뚱뚱했고, 작은 애는 대여섯 살 되어 보이는데 좀 마르고 귀여웠어요. ‘나도 우리 손자를 데리고 목욕 오면 좋겠다.’ 부러워하며 보고 있었습니다. 작은 애가 할아버지 물 뜨거워?” 그러자 할아버지가 웃으면서 들어와 봐, 괜찮아.” 합니다. 그런데도 아이는 발만 조금 담가 보다가 앗 뜨거운데!” 하면서 좀처럼 들어오지 못합니다. 한참 후에 할아버지가 손자를 안아 천천히 탕에 담갔습니다. 생각보다 뜨겁지 않자 아이는 괜찮네!” 하더니 그 이후로 제 집처럼 편안하게 목욕을 잘 했습니다. 여러분, 자꾸 망설이고 의심하지 말고 말씀에 몸을 푹 담그세요! 지금입니다, 말씀 안에서 사랑이 넘치시는 하나님을 바라보세요! 아직 새롭게 시작할 새해입니다. 말씀으로 충만해지세요! 그러면 말씀이 여러분을 평안과 기쁨과 새 힘으로 인도할 것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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