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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사람을 찾습니다! (렘5:1-6) [2019년 2월 24일, 주현절 일곱째주일/ 삼일절기념주일]
2019-02-22 18:59:54
박신진 목사
조회수   96
설교일 2019-02-24
설교말씀 예레미야5:1-6
설교제목 한 사람을 찾습니다!

한 사람을 찾습니다!

5:1-6

2019224[주현절 일곱째주일/ 삼일절기념주일]

 

한 사람이 없어서

고대 그리스 아테네의 거리에서 어느 날 환한 대낮에 어떤 사람이 등불을 켜들고 여기저기 무엇인가를 찾고 있었습니다. 지켜보던 사람들이 궁금해서 물어봤습니다. “환한 대낮에 등불을 켜들고 무얼 그리 열심히 찾으시오?” 그러자 그 사람은 뒤도 안 돌아보고 대답하는 것이었습니다. “나는 사람을 찾소.” 그는 디오게네스였습니다. 사람으로 들끓는 대도시 한복판에서 사람을 찾아 헤맸다는 이 철인의 마음을 헤아려보면서 문득 하나님의 마음을 생각해봅니다. 혹시 하나님께서도 오늘날 부지런히 무언가에 바빠 다니는 사람들 사이에 오셔서 등불을 켜들고 한 사람을 찾아 헤매시는 건 아닌가. 그 생각을 하니 가슴이 아파집니다.

예레미야 시대의 예루살렘은 완전히 타락했습니다. 하나님은 참을 만큼 참으시다가 드디어 오늘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예루살렘 거리마다 쏘다니며 살펴보고 알아보아라. 한 사람이라도 만날 수 있는지 광장마다 찾아보아라. 올바르게 행동하고 진실을 찾는 이가 있어 내가 그곳을 용서할 수 있는지 알아보아라.” 이스라엘이 어떤 나라인가요? 예루살렘이 어떤 도시인가요? 놀랍게도 그 거룩한 도성에 참된 하나님의 백성이 한 사람도 없었다는 것입니다. 한 사람만 있었다면 예루살렘은 용서 받았을 텐데. 유다가 바벨론에 의해 망해버리는 것을 막을 수 있었을 텐데. 먹을 양식이 없어서가 아닙니다. 학교가 없어서가 아니었습니다. 군대가 없어서도 아닙니다. 공의를 행하며 진리를 찾는 한 사람이 없어서 망했습니다. 이 말씀을 통하여 하나님의 아리고 슬픈 마음을 봅니다. 그리고 이 시대와 나 자신을 조용히 돌아봅니다.

성서의 교훈으로 보거나, 근대 역사의 여러 나라들의 역사를 보아도 국가 민족의 안전과 번영은 군대에 의해서가 아니요, 법에 의해서도 아니요, 그 나라 국민의 양심의 수준에 의존한다는 사실을 외면할 수 없습니다. 한 사람 한 사람이 중요합니다. 아담 한 사람의 죄 때문에 모든 사람이 죄인이 되고, 반면에 한 사람 예수님의 순종으로 인하여 수많은 사람이 의인이 되었습니다. 한 사람의 가치와 능력은 실로 놀랍습니다. 헌신된 한 사람에 의하여 위대한 일이 일어납니다. 성경은 헌신된 한 사람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일하신 사건들로 가득합니다. 우리 하나 하나가 민족과 역사의 진로에는 그렇게도 소중합니다. 꼭 그렇게 대단한 인물이나 뛰어난 인물이 아니어도 하나님의 마음에 맞는 한 사람을 이 나라는 찾고 있습니다. 유관순 같은 어린 소녀라도 주님의 손에 붙잡히기만 하면 위대한 역사를 새로 쓰는 도구가 됩니다.

 

삼일절 백주년

오늘은 이번 겨울의 끝 주일입니다. 금요일이 31일이 됨으로 드디어 겨울이 끝나고 봄이 옵니다. 늘 봄이 되는 때에 우리 민족은 삼일절을 지킵니다. 만물이 새옷을 갈아입는 푸르른 봄에 기미독립만세사건을 기억하는 것이죠. 특별히 올해는 1919년 기미년에서 백년이 되는, 삼일절 백주년 기념의 해입니다. 이 시대는 어느 때보다 개인주의의 시기이지만, 민족과 나라를 생각하며 삼일절 백주년을 기념하는 것은 우리 인생과 역사에 큰 의미가 있습니다. 일제의 식민통치를 당하면서도 떳떳하게 자랑스러운 한민족의 자녀임을 선포했던 선조들처럼 우리도 민족의 한 일원임을 기억하고 역사를 책임지는 하나님 자녀가 되어야겠습니다.

백 년 전 삼일절에 나라 잃은 부끄러움과 억울함을 참을 길 없어 2천만 민족이 하나 되어 맨손으로 일어나 목숨 걸고 독립만세를 외쳤습니다. 당시 그리스도인은 인구의 1.5%에 불과한 30만이었으나, 교회가 중심이 되어 독립만세 운동을 이끌었다는 것은 통계로도 쉽게 알 수 있습니다. 체포 구금된 사람은 천주교인 55, 불교인 220, 유교인 346, 천도교인 2,282명에 비하여 기독교인은 3,373, 절반이 넘는 인원으로 그 희생이 가장 컸습니다.

우리는 조금 전에 한글로 풀어쓴 독립선언서를 읽었습니다. 독립선언서가 밝힌 독립선언의 이유는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우리는 자주 국민이기 때문에 독립을 선언하는 것이요, 둘은, 지금이 무력의 시대가 아니라 도의의 시대이기 때문에 독립을 비폭력으로 선언하는 것입니다. 삼일절 이후에 한국 국민은 자주 국민이요, 한국사회는 무력으로 통치하는 사회가 아니라 도의가 다스리는 사회라는 말입니다. “우리는 여기 조선이 독립된 나라인 것과 조선 사람이 자주하는 국민임을 선언하며”, “무력의 시대는 지나가고 도의의 시대가 도래하였다고 선언하였습니다.

 

한 사람을 찾는 예레미야

예레미야는 유다가 멸망하던 시대에 예언했던 선지자였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뜻을 따라 우상을 숭배하고 악한 일을 저지르는 유다 백성들을 향하여 하나님이 주시는 말씀, 즉 민족의 멸망을 선포하였습니다. 오늘 성경도 심판 선언 한 가운데 들어있는 말씀으로서 하나님이 유다와 그 도성 예루살렘을 심판하실 것을 전합니다. ‘여호와여, 주의 눈이 진리를 찾지 아니하시나이까! 주께서 그들을 치셨을지라도 그들이 아픈 줄을 알지 못하며 그들을 멸하셨을지라도 그들이 징계를 받지 아니하고 그들의 얼굴을 바위보다 굳게 하여 돌아오기를 싫어하므로.’(3) 그들이 허물이 많고 반역이 심하여 심판을 피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6).

지금 예레미야는 나라가 바람 앞에 등불 같이 흔들리는 위기의 시대에 한 사람을 찾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택한 백성 유다를 내리치려는 까닭은 그들 중 한 사람도 정의를 행하며 진리를 구하는 사람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아주 속속들이 썩어버렸고 하나님을 배반했습니다. 도무지 희망을 찾아보려야 찾아볼 수가 없었던 것이죠! 이 하나님의 실망이 오늘의 말씀 속에 들어 있습니다. 만일 정의를 행하며 진리를 구하는 자를 한 사람이라도 찾으면 내가 이 성읍을 용서하리라, 유다 백성들을 향하여 하나님의 실망이 깊이 나타납니다. 이제는 망하는 길밖에 없다, 뒤집어엎어야 한다, 하나님이 그렇게 결론을 내리셨습니다.

1차 세계 대전 후 프랑스는 다시 독일에 짓밟히는 일이 없도록 하기 위해 마지노 장군이 국방저지선 계획을 세웁니다. 프랑스 국내외의 전략가들로부터 아낌없는 찬사를 받았던 마지노선이 그렇게 탄생되었습니다. 마지노 국방선을 무너뜨리려면 300만 명의 군인이 동원되어야 할 것으로 진단했습니다. 그러나 정작 제2차 세계대전이 일어나자 두 주일도 못되어 마지노선은 뚫리고 말았습니다. 실로 어처구니없는 비극이었지요! 알고 보니 프랑스의 관리들과 업자들이 결탁하여 날림공사를 했던 것입니다. 결국 독일군이 강했던 것이 아니라 프랑스의 양심이 약했던 것입니다. 국가의 안전은 초소나 철책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 국민의 양심에 있음을 보여주는 산 교훈이었던 겁니다.

우리 민족도 누구 탓을 하겠습니까! 이완용을 비롯한 친일 민족배반자들이 있었지만, 나라와 민족이 양심과 정의를 따라 살지 못했으니까 국력이 약해졌고, 나라가 허약하니 외세에 짓밟히고 말았습니다. 국가의 멸망은 예나 지금이나 백성들에게 큰 고통을 지워줍니다. 정신대와 보국단의 치욕적이고 비극적인 이야기를 우리는 기억합니다. 어린 초등학생들까지 사냥하듯 올가미를 씌워 위안소의 노리개를 삼았다는 일인들의 야만적인 행위를 자존심을 가진 민족으로서 우리가 어찌 잊겠습니까!

2차 세계대전 말기 태평양전쟁 때 국가총동원령에 의해 남양군도, 일본, 중국, 사할린, 동남아 등지로 짐승처럼 끌려가 전쟁에 직간접으로 참여한 국내외 한인강제동원 총인원은 8096251명으로 노무동원, 군대-군무원동원, 성동원(위안부)을 포함한 인원입니다. 그리고 희생자가 150만이나 된다고 합니다. 나라 잃고 외세의 지배를 받게 되면 백성들은 노략질을 당하고 생명까지 빼앗기고 마는 것을 역사는 보여줍니다.

세계적으로 나라 잃은 민족이 얼마나 고통과 희생을 당하는지는 지금도 터키와 아랍 지역을 떠도는 쿠르드족의 예를 보더라도 잘 알 수 있습니다. 종종 제4세계 사람들로 불리는 세계의 유랑민족은 아시아의 쿠르드족 외에도 카쉬미르, 타밀, 유럽의 집시족을 비롯하여 바스크족, 중동의 팔레스타인과 아프리카의 많은 민족들 등, 무려 수억에 해당합니다. 결국 세계 평화는 나라 잃은 이 민족들을 어떻게 평화롭게 하느냐에 달려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만약 백년 전 우리의 자각한 힘이 민족자주를 부르짖고 선포하지 않았다면 우리도 일본의 변방으로 전락하여 나라 잃은 민족의 슬픔을 가지고 떠돌았을지도 모릅니다.

 

불의한 나라 어리석은 국민

역사 속에서 의롭지 못한 나라는 패망하였습니다. 나찌 독일도 위대한 독일을 부르짖으며 힘을 과시했으나 그들의 범죄행위와 도의의 파탄이 스스로 멸망을 불러왔습니다. 로마제국의 폼페이는 번영과 향락을 누렸으나 베스비우스 화산재로 덮여버렸습니다. 얼마 안 되는 푼돈때문에 인명을 빼앗고 가정파괴범들이 산적처럼 날뛰는 사회가 되었음을 볼 때 우리도 정신을 차리고 회개해야 합니다. 어린 여학생들이 유흥가를 기웃거리고 부정식품을 만드는 사람들이 아직도 돈을 벌며, 죄 없는 사람을 겨냥하는 보복행위가 수시로 일어나는 세상입니다. 민주주의를 이기주의로 착각하는 사람들의 무례함과 부도덕을 걱정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런 흉흉한 세대에 도대체 요즘은 명철을 지닌 사람을 찾기가 얼마나 어려운지요! 노력 없이 공돈을 벌어보려고 무리하다가 사기 당하고 망하는 사람들의 얘기가 매일이다시피 뉴스에 도배를 합니다. 최근에는 유명가수가 관련되어 있는 강남의 무슨 나이트클럽이 마약을 쓰고 있는 것이 발견되어 논란이 되었는데, 여기뿐 아니라 마약 쓰는 사람들이 걱정할 정도로 점점 늘어가고 있답니다. 거의 모든 청소년이 인터넷이나 유투브로 음란한 문화에 무제한으로 노출되어 있고, 사람들은 스마트폰 중독이라 할 만큼 많은 시간을 거기에 매달려 있습니다. 우리 시대의 심적 공허와 영혼의 질병이 심각한 정도로 치달아가고 있음을 염려합니다.

100년 전 우리 선열들이 죽음으로 독립을 외친 나라는 이렇게 삭막하고 퇴폐한 나라가 아니었어요! 그들이 바라던 살기 좋은 나라는 어디에 있나요? 자주독립한 나라로서 삼일절 노래에 있듯, ‘의와 생명과 교훈이 되는 나라로서 시민들이 자유를 숨 쉬고 깨끗하고 풍요로운 나라를 꿈꿨던 것입니다. 힘의 시대는 가고 도의의 시대는 온다고 외치지 않았습니까! 우리가 본래 타고난 자유권을 지켜 풍성한 삶의 즐거움을 마음껏 누릴 것이라고 선언했습니다. 나라 세운 지 100년이 되었건만, 깨끗한 사회 번영한 나라의 꿈은 엉망진창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일찍이 프랑스 사상가 몽테스키외는 공화국은 사치에 의해서 멸망하고 전제국가는 빈곤에 의해서 멸망한다.”고 하였습니다. 남쪽은 사치와 방종, 북쪽은 독재와 빈곤이 치유되어야 합니다. 어디 지혜로운 지도자가 있어 남과 북을 아울러 치유하고 공생하는 미래를 밝히 열 수 있겠습니까? ‘사노라면이라는 노래를 아십니까? “사노라면 언젠가는 좋은 날도 오겠지. 흐린 날도 날이 새면 해가 뜨지 않더냐? 새파랗게 젊다는데 한 밑천인데. 쩨쩨하게 굴지 말고 가슴을 쭉 펴라. 내일은 해가 뜬다. 내일은 해가 뜬다.” 미래의 소망을 바라봐야 합니다. 그러려면 공의와 진리를 따라 사는 한 사람이 우리에게 필요합니다. 가정에 그 한 사람이 필요합니다. 학교에 그 한 사람이 필요합니다. 직장과 시장에 그 한 사람이 필요합니다. 공직사회에, 정치판에 그 한 사람이 필요합니다.

 

그 한 사람을 찾습니다.

삼일운동 당시 정신여중 기숙사 사감이었던 김영순 씨가 그때의 일을 회상한 기록이 있는데, “밤 열 시 취침종이 울린 후 살며시 일어나 학생들의 방을 점검하다 보면 학생들이 하나도 없었다. 모두 기숙사 4층의 강당에 올라가 책상 밑에서 촛불을 밝히고 태극기를 그리느라고 열중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큰 죄라도 지은 것처럼 발걸음 소리를 죽이며 돌아오곤 했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그분이 강조하기를 주권 없는 국민은 주인 있는 강아지보다 못한 천대를 받았다.”고 비분강개했습니다. ‘주권 없는 국민은 주인 있는 강아지보다 못합니다!’ 애국선열들은 엄청난 희생을 무릅쓰면서 만세를 불렀으며 나라를 살리려 개인적으로는 고난의 길을 주저하지 않았기에 그나마 우리가 여기까지 온 것입니다.

겨레의 양심과 나라의 도의가 짓눌려 시든 것을 다시 살려 키우려면, 사람마다 제 인격을 옳게 가꾸어 나가려면, 불쌍한 아들딸에게 부끄러운 유산을 물려주지 않으려면, 자자손손이 길이 완전한 행복을 누리게 하려면, 우선 급한 일이 겨레의 독립을 뚜렷하게 하려는 것이라.”고 선조들은 외쳤습니다. 민족대표들은 이 선언문을 태화사회관에서 낭독한 뒤 조선총독부에 전달하고 스스로 체포되는 것을 꺼리지 않았으며 온 나라 백성들은 방방곡곡에서 독립만세의 함성을 터뜨렸습니다.

영국의 시인 토마스 켐벨은 자유를 위해 깨끗이 죽는 것은 하나의 승리다.”라고 말했습니다. 삼일절의 선열들이야말로 그런 삶을 살았고 또 그렇게 목숨을 바친 분들입니다. 우리는 민족정기도 버리고 시민의 도덕도 내동댕이친 허수아비로 살아서는 안 됩니다. 나라와 민족마다 자유와 번영을 위해 수고하고 희생한 영웅들이 있습니다. 삼척에서도 4월에 삼척보통학교를 중심으로 만세운동이 일어났다고 합니다. 최인규권사는 일제에 끝까지 항거하며 신사참배를 거부하다 감옥에서 순국하였습니다.

이제 바야흐로 한반도는 위대한 세기의 첫 출발에 서 있습니다. 이번 주간에 북한 미국의 수뇌가 베트남 하노이에서 역사적인 2차 정상회담을 합니다. 여기에는 문재인 대통령을 비롯한 우리 남한 동포들의 간절한 기대도 들어있습니다. 세계의 열강들이 그들의 이익을 위해 죽기살기로 싸우는 이 때, 우리까지 서로 갈려 헐뜯고 싸우고 있다니 원통한 일입니다. 국회는 나라 살리는 일, 미래를 바르게 세워가는 중요한 안건에 대해서는 어떤 당리당략을 떠나 하나가 되어 참여해야 합니다. 경제를 이끌어가는 기업과 사업가들도 삼일정신의 토대 위에 서있는 나라의 명운을 위해 공의와 자유, 평화를 이루어가는 데에 한 마음이 되어야 합니다.

 

감리교 목사이며 연세대 교수요 상지대 총장이었던 김찬국 교수는 삼일절을 한국교회의 명절로 지키자는 운동에 앞장서기도 했습니다. 삼일절이야말로 하나님의 뜻을 이 땅 위에 이룬 교회의 절기라는 것입니다. 올해도 새싹이 움트는 아름다운 봄의 첫 주간에 성도들은 하나님이 이루실 새 나라를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힘써 평화롭고 의로운 나라를 세우도록 힘과 지혜를 모으십시오! 아무쪼록 정의를 행하며 진리를 구하는그 한 사람이 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그 한 사람을 찾으십니다! 내가 서있는 삶의 자리에서 나라를 구할 그 사람은 누구입니까? 모두 깨끗한 사회, 남북이 하나 되는 통일된 민족, 번영하고 평화로운 나라, 도덕적으로 성숙한 세상을 만드는, 그 한사람이 바로 여러분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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