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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광스런 변화 (누가9:28-36) [2019년 3월 3일, 산상변화주일]
2019-03-02 18:46:08
박신진 목사
조회수   62
설교일 2019-03-03
설교말씀 누가9:28-36
설교제목 영광스런 변화

영광스런 변화

누가9:28-36

201933[변화주일]

 

산에 올라 변화되다

어느 날, 예수님은 제자 셋을 데리고 산에 오르셨습니다. 일상에서 떠나 일터인 세상과 일감인 사람을 잠시 접어둘 필요를 느끼신 듯해 보입니다. 거기에서 주님은 영광스러운 모습으로 변화하셨습니다. ‘용모가 변화되고 그 옷이 희어져 광채가 나더라.’(29) 본문에 나타난 주님의 영광은 가장 신비하고 거룩하고 초월적입니다. 용모가 변화되었는데, 모세와 엘리야가 나타나 같이 대화할 정도였습니다. 베드로는 그 형상만으로도 매우 감동하여 그 산 위에 초막 셋을 짓고 영원히 머물자고 할 정도였습니다. 이 신비한 경험은 무엇이며, 그것이 우리에게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오늘의 말씀은 예수님의 산상변모사건을 보여줍니다. 그래서 오늘을 변화주일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예수님의 변화되셨던 사건을 통하여 우리도 변화를 추구해야 한다는 의미를 가진 주일인 것이죠. 세속에 거하여 사는 사람은 이따금 하늘의 신비를 보아야 합니다. 종교란 으뜸가는 가르침으로서 사람을 습관적인 흐름에서 끄집어내는 초월적 가르침입니다. 사람은 가끔 산에 올라야 합니다. 으뜸 되는 가르침과 그 말씀을 접해야 한다는 것이죠. 거기서 하늘을 보고, 주님의 영광을 만나야 합니다. 일상에서의 탈출이 좀 필요합니다. 곧 땅에 것에 정신 팔리는 세속화를 미리 방지하고, 하늘의 것에 마음을 쏟는 거룩한 믿음이 생활을 하려면, 주님의 영광을 바라보고 감동하는 신앙체험이 필요합니다.

변화산에서의 이 주님의 영광에 대한 체험 후에 예수님은 더 기사와 이적을 많이 행하셨고, 무엇보다 중요한 일은 영광스러운 변화산의 일 이후에 예수님의 십자가 사역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습니다. 예수님의 공생애 3년에 있어서나 제자들의 삶에 있어서 변화산 사건은 대단히 중요합니다.

 

기도와 신비 체험

먼저 생각할 일은, 기도하러 가셨다가 주님의 영광을 보게 되었다는 사실입니다. 예수님은 기도의 사람이었고, 기도의 본을 보여주셨습니다. 기도는 들뜨기 쉬운 기분을 차분히 가라앉히고 우리의 마음을 활짝 열어줍니다. 기도는 헛된 욕심을 버리고 주님의 뜻에 집중하도록 만들어줍니다. 기도는 하나님의 마음을 바꾸기보다 오히려 우리 마음을 변화시킵니다. 기도는 주님의 영광에 이르는 지름길이 됩니다. 신령한 체험을 한 사람들 얘기를 들어보면, 대부분 기도 많이 하는 사람입니다. 기도하다가 그런 주의 영광을 바라보게 되었습니다.

기도는 죄를 멈추도록 이끌지만, 죄는 기도를 멈추도록 유혹한다.’(존 번연) ‘기도는 정신에 뿌리는 향수이며 우리에게 명예와 용기를 회복시켜 준다.’(아미엘) ‘기도는 하나님께 이야기하는 것으로 시작하지만 더 조용히 들어가 보면 결국 기도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것이다.’(키케가드) 어떤 사람은 말하기를 기도하는 한 사람은 기도하지 않는 한 민족보다 강하다.”하였습니다.

기도하다 신비한 떨림을 경험하고, 기도하다 이루 말할 수 없는 향기로운 냄새를 체험하며, 기도하다 쓰러져 입신하거나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기도하다 방언한 사람들이 많습니다. 저도 신비한 체험이나 방언은 남의 일이라고 생각하는 이성적인 사람이었는데, 어느 날 나도 모르게 러시아말 같은 것을 반복해서 하고 있었는데 그게 바로 방언이더군요. 기도하다가 나도 모르게 쓰러져 누워 있었는데, 그게 바로 입신임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기도하다가 말할 수 없는 평안을 얻게 되고, 기도하다가 큰 위로와 치유를 경험하기도 합니다. 간절한 마음으로 저에게 기도를 부탁하고 새벽기도를 꾸준히 하는 사람에게 겸손한 마음으로 도와주시기를 구하며 매일 안수기도 했더니 암병이 낫고 고질병이 치유되는 경험을 하기도 했습니다. 초월한 능력이요 신유의 역사입니다. 한마디로 기도는 주님의 영광에 이르게 하는 중요한 통로입니다. 신비한 경험, 거룩한 체험을 얻기 원한다면 오늘부터 기도를 시작하십시오. 기도하기를 쉬지 말고, 응답하실 때까지 기도에 정진하셔야 합니다!

 

모습의 변화

주님의 영광은 모습이 변화된 데에서 나타납니다. 주님의 얼굴이 변하고 옷이 눈부시게 하얗게 되었습니다. 주님의 얼굴이 해와 같이 빛났다고 마태는 표현했습니다(17:2). 하나님의 영광은 감각을 통하여 나타나고 체험됩니다. 보고 느낍니다. 함께 있으면 알게 됩니다. 옷이 빛처럼 하얗게 되어 그 모습만으로 신적 본성을 가지셨음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예배를 통하여 주님의 영광을 체험하십시오. 은혜받고 나니까 얼굴이 예뻐집니다. 빛깔이 달라집니다. 환해집니다, 태양처럼 빛나지요, 그러니까 아름다운 거예요.

고양시에 살던 김집사님은 뒤늦게 예수를 믿어 신앙생활 하다가 권사 되시기도 전에 집사로 돌아가셨습니다. 그러나 믿는 동안 전심을 다하여 주님을 사랑하고 충성하셨습니다. 너무 은혜를 받아 늘 교회 쪽으로만 보면 광채가 환히 났다고 고백했습니다. 제가 심방을 가면 아파트 베란다쪽 문을 열고 보라고, 저쪽 교회쪽에서 광채가 나서 보기만 해도 위로가 되고 은혜가 된다고 하셨습니다. 정말 영광의 빛이 비친 겁니다. 그 집사님은 믿음으로 교회를 바라볼 때마다 주님의 영광을 보았습니다. 이것은 개인의 느낌을 넘어서 사실입니다.

예배의 영광을 회복하십시오! 그 영광의 빛을 찾아야 합니다! 한참 예배에 은혜를 체험할 때면, 예배 시간 예배 자리에 앉으면 그렇게 감격스럽고 기쁘고 은혜가 되었습니다. 찬송을 불러도 은혜가 되고, 기도를 해도 눈물이 나고, 말씀을 들을 때, 또는 전할 때 주님의 존재를 가깝게 느끼고 체험하는 겁니다. 위대한 시간, 놀라운 시간, 능력의 시간인 겁니다. 그렇습니다. 이 영광을 회복해야 힘 있는 그리스도인이 됩니다. 이 영광을 회복해야 말씀이 살아 역사하고, 은혜가 구체적으로 느껴지고 나를 움직이는 힘이 되지 않겠습니까!

믿음으로 주님을 바라보면 우리 안에도 주님의 영광이 머물러 비췹니다. 열심히 기도할 때 나도 모르게 다른 사람들이 내 모습에서 하나님의 신비를 볼 때가 있습니다. “목사님 손에서 불이 나와요!” 깜짝 놀랐습니다. 불이 나오다니요, 나도 몰랐습니다. 열심히 기도에 정진할 때였습니다. 나의 부족하고 연약하며 가끔 화도 내고 실수하는 모습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나다니! 그렇습니다! 감히 말씀드리거니와 주님의 은혜로 충만한 사람은 그 안에서 영광의 빛이 비칩니다. 내가 훌륭하고 위대해서가 아니가 진실하고 순결한 믿음으로 충만할 때 하나님의 영광의 빛이 나를 통해 비쳐나가는 것입니다!

어떤 집사님, 주님의 사랑을 깨닫고 감격하여 누구라도 구원해야겠다고 열심히 전도 다녔습니다. “예수님, 믿으세요! 예수님 믿으면 너무 좋아요. 내 안에 천국이 열린답니다! 교회 나와요! 나와 같이 하나님을 예배합시다!” 그 모습을 물끄러미 보던 이웃집 아이가 이렇게 물어봅디다. “아줌마, 아줌마는 하나님 부인이어요?” 실제로 있었던 일입니다.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내 모습에서 주님의 영광이 나타나니 순진한 어린아이가 그 모습에서 하나님의 모습을 본 겁니다.

여러분의 표정에서 주님의 영광이 나타나게 하십시오! 평생 예수 믿고도 못 생겼다는 말을 들으면 회개해야 합니다. 생긴 골격과 모양은 어쩔 수 없지만 표정만은 달라질 수 있습니다. 초월과 영광의 빛이 나오는 것입니다. 주님의 영광을 바라보고 그 영광에 감격하며 그 하늘 영광을 바라보며 살게 되면, 저절로 내 모습 속에서 주의 영광이 나타나게 될 것입니다!

 

그 영광에 머물러 있으려고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은 주님의 영광에 머물러 있으려는 간절한 바람이 있었습니다. 여기에 성도의 특징이 있어요. 주님의 영광에 머물고자 하는 간절한 바람이 있을 때 그와 같이 닮게 됩니다. 제자는 주님의 영광을 사모하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그 영광의 광채로 우리 안에 빛과 생명을 채워가는 사람이 바로 그리스도의 제자입니다. 그럴 때 우리도 어느덧 변하여 예수 닮아가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은 주의 영광에 머물러 있습니까, 세속의 기쁨에 머물러 있습니까? 아이들이 공부에 재미를 붙이면 학교에서 뱅뱅 돌고 학교 공부에 집중합니다. 그러나 공부에서 점점 처지고 흥미를 잃으면 학교 가기를 소가 도살장으로 끌려가듯 싫어합니다. 그리고 학교가 쉬거나 공부하지 않게 되면 뛸 듯이 기뻐합니다. 은혜를 잃어버리면, 교회는 잠시 의무적으로 들르는 곳이고, 예배는 드리기는 싫지만 안 드리면 마음에 부담이 있는 의식으로 머물기 때문에 점을 찍듯이 드립니다. 여기에는 진정한 은혜와 신앙의 기쁨이 없지요.

여러분은 주의 영광에 머물러 있으려는 간절한 마음으로 사모하십시오! 예배 시간을 기다리고 찬송 부르기를 간절히 바라셔야 합니다! 주의 얼굴을 바라십시오! 찾고 찾으세요! ‘주여 이제 내가 무엇을 바라리요! 나의 소망은 주께 있나이다!’(39:7)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심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해 하는가? 너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라. 그가 나타나 도우심으로 말미암아 내 하나님을 여전히 찬송하리로다.’(42:11) 세상 영광과 이익과 쾌락을 속으로 간절히 바라면서, 교회를 다니면 교회를 형식적으로 껍데기만 다니게 됩니다. 그러나 주님의 영광을 사모하면서 그 영광에 감격하고 기뻐하여 다니면, 정말 은혜가 되고 기쁨이 있습니다!

 

순종하는 믿음

주님의 영광을 체험하면, 주님께 순종할 수 있습니다. ‘순종이 제사보다 낫다.’ 이는 사무엘이 사울 왕에게 던진 말입니다. 사울은 좋은 풍채와 대단한 전략을 가진 장군이었지만, 이스라엘의 하나님께서 세우신 지도자 사무엘에게 순종하지 않았습니다. 그 결과는 역사에서 버림받은 것입니다. 사울이 주의 종에게 순종하지 못한 것은 믿음이 깊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주님의 영광이 그의 삶에 머물러 있었다면, 사울이 순종하기 훨씬 쉬웠을 것입니다. 그러나 당신 사울에게는 영광이 빛이 떠나 있었기에 순종하지 못했던 겁니다.

오랜 역사를 가진 베네딕트 수도원의 핵심원리는 세 가지로 요약됩니다. 순명(順命 oboedientia), 정주(定住 stabilitas), 정진(精進 conversatio)입니다. 순명은 하나님의 권위에 순종하기 위해서 수도원 규칙과 가르치는 사람의 지시에 절대 순종하는 것입니다. 정주는 한 수도원에 죽을 때까지 머무는 것이며, 수도생활을 하는 사람들의 인간관계를 끝까지 유지하는 훈련입니다. 정진은 주를 바라보며 주께서 가신 영성의 길을 착실하게 따라가는 훈련입니다.

그 중의 첫째인 순명은 자기를 이길 수 있는 강한 그리스도인에 이르는 최상의 길입니다. 즉 지도자와 어른의 명령에 절대 순종하는 것이 강한 그리스도인이 되는 훈련입니다. 이 일을 위해서는 무엇보다 하나님께 대한 분명한 믿음과 하나님의 권세에 복종하려는 강한 의지가 필요합니다. 어떻게 가능할까요? 수도자의 영적 생활을 통하여 주님의 영광에 깊이 감동되었을 때 가능합니다. 마음에 주의 영광이 가득하여 압도될 때 진정한 순종이 이뤄집니다.

 

능력의 사람

주님의 영광을 체험하면, 능력을 받게 됩니다. 주의 영광을 바라본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은 그때부터 주님의 사역을 힘 있게 돕게 되고, 십자가의 고난까지 따라갑니다. 훗날 예수님 부활 이후에 이 세 사람이 초대교회의 지도자들이 되었는데, 그것은 이 변화산의 영광 체험이 바탕이 되었음은 두말할 필요도 없습니다! 주의 영광을 바라보는 만큼 하나님께 쓰임 받는 사람이 됩니다. 능력 있는 성도는 한결같이 주의 영광의 신비한 체험으로 은혜가 충만한 사람입니다.

모세는 시내산에서 하나님과만 대면하며 지냅니다. 하나님의 신비와 영광을 모세만큼 직접 대면한 사람은 전에도 없었고 후에도 없었습니다. 그러했기에 모세는 전무후무한 지도자로 택한 백성을 지도합니다. 받은 은혜만큼 위대하게 일하는 법입니다. 체험한 영광이 클수록 능력 있게 일할 것입니다. 은혜 받지 못하고 주의 영광이 빛이 없이 중직을 맡아 일하려하니까 불협화음이 일어납니다. 먼저 은혜 받으세요! 주의 영광의 빛을 체험해야 합니다!

바울은 다메섹으로 가는 길 위에서 신비한 빛이 비취고 신령한 음성을 듣습니다. 부활하신 주님의 영광을 만나게 된 것이지요. 그는 거꾸러졌고 장님이 되었습니다. 수일동안 음식도 먹지 못하고 주님의 영광에 압도되어 살면서 철저히 회개하고 변화되었습니다. 이렇게 은혜 받은, 그 이후로 바울은 세계 곳곳에 주님의 복음을 전하는 이방인의 사도가 되었습니다. 예루살렘에 베드로가 있었다면, 이방의 모든 땅에 바울이 있어서 세계 선교의 기초를 만들어 놓았던 것은 주의 영광이 빛이 비쳐 능력의 사람이 되었기에 가능했던 일입니다.

무기력하고 성장하지 않으며 침체되어 있는 그리스도인들, 능력 없는 그리스도인들은 주님의 영광을 사모해야 합니다. 주의 영광을 덧입지 않고는 능력있는 주의 일꾼 될 수 없습니다. ‘주여, 당신의 영광을 내게 보여주소서. 주님 영광의 빛으로 나를 비추시어, 나도 그의 빛 가운데 빛을 보이게 하소서!’ ‘진실로 생명의 원천이 주께 있사오니 주의 빛 안에서 우리가 빛을 보리이다.’(36:9)

 

한 이십년 전에 나는 교회에서 어떤 성서공부그룹을 지도하고 있었습니다. 사십여 명되는 참가자들은 두 반으로 나뉘어 정말 열심히 성서공부에 참여하고 있었습니다. 구약을 다 공부하고 신약으로 들어갔을 때 예수가 위대한 스승이요, 병을 고치는 자요, 기적을 일으키는 사람이지만, 그것만으로는 예수님을 바로 알았다 할 수 없고, 예수님을 하나님으로 알아야 바로 아는 것이라고 가르쳤습니다. 그리고 예수에게서 신의 본질을 보는 것이 바로 성경공부의 핵심이라는 설명을 두 주에 걸쳐서 하였습니다. 그랬을 때 몇 사람들이 큰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특별히 자신들이 예수님에 대하여 너무 인간적인 감동만을 가지고 있었음을 반성하고 예수님을 하나님으로 보는 새로운 믿음에 눈을 뜨게 되었다고 간증하였습니다.

기도원에 가서 특별기도를 하든, 부흥회에서 뜨거운 성령의 역사를 체험하든, 아니면 소그룹 성경공부에서 특별한 깨달음과 감동을 얻든, 우리에게는 예수의 초월적인 신성한 은혜를 체험할 필요가 있습니다. 아마 예수님이 세 제자들을 데리고 산 위에 올라간 것은 그런 영적 체험의 필요성을 느끼셨기 때문이었습니다. 은혜받기를 사모하십시오! 성령 충만하기를 힘쓰세요! 체험적인 신앙을 추구해야 합니다! 오래 신앙생활 하면서도 그런 뜨거운 경험이나, 깊은 깨달음이 없으면 신앙이 무기력해지고 심지가 깊지 못합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변화를 요구하십니다! 그런 점에서 이번 주일은 굉장히 중요한 주일입니다. 변화산의 체험은 예수께 진정한 왕권이 있음을 보여주는 사건이었습니다. 또한 예수님의 신적 본질을 깨닫게 하여, 제자들도 변화되게 하는 깊은 신앙의 역사이기도 했습니다. “영광중에 나타나서 장차 예수께서 예루살렘에서 별세하실 것을 말할새”(31). 또한 제자들에게는 예수님에 대한 분명한 각인을 새기는 잊을 수 없는 순간이었습니다. 우리가 믿음으로 끝까지 살아가려면, 이 문제 많은 세상에서 주의 복음과 의의 최후승리를 이루려면, 주님의 영광을 바라보고 그 영광 속에 살아야 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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