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말씀   >   설교전문

설교전문

예수님이 주시는 선물 (요한복음 14:25-28) [2020년 1월 12일, 주현절 첫째 주일]
2020-01-18 16:33:49
박신진 목사
조회수   52
설교일 2020-01-12
설교말씀 요한복음 14:25-28
설교제목 예수님이 주시는 선물

예수님이 주시는 선물

14:25-28

2020112[주현절 첫째주일]

 

강철왕 카네기는 가난한 철도국 직원으로 있을 때, 털실로 짠 내복 한 벌을 선물로 받은 것을 평생토록 잊지 못했다. 작년에 한참 힘들 때 어떤 교우께서 목사님들 힘내라고 한약을 지어 먹도록 선물을 했는데, 정말 눈물이 나도록 고마웠다. 새해 들어 교우께서 무언가를 주시며 나가셨다. ‘손이 차가우신 것 같아서...’ 수줍어하며 주신 선물은 손을 따뜻하게 하는 손난로였다. 따뜻한 손으로 성도들과 악수할 것을 바라는 세심한 배려가 느껴졌다.

선물은 값없이 마음을 담아 주는 것이기 때문에 우리를 위로하고 기쁨을 주며 힘을 내게 하는 것이다. 정성 어린 선물은 나그네를 기쁘게 하고 힘든 것을 잊게 만들며 감사와 사랑으로 충만하게 한다. 목회자들도 잊지 못한 선물이 힘을 내게 하고 용기백배하게 할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두고두고 감사할 일이다.

예수님은 십자가 지시기 전날 밤, 제자들과 작별하는 자리에서 좋은 선물을 제자들에게 주셨다. 잊을 수 없는 귀한 선물, 예수님만이 주실 수 있는 작별의 선물이요 격려와 사랑의 선물이기도 하였다. 야고보는 말하기를, “온갖 좋은 은사와 온전한 선물이 다 위로부터 빛들의 아버지께로부터 내려오나니 그는 변함도 없으시고 회전하는 그림자도 없으시니라.”(1:17) 하였다. 인간에게 주신 하나님의 최대의 선물은 다름 아닌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시다.

오늘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주셨던 선물이 무엇인지를 상고함으로, 지금 우리 모두에게 주시는 예수님의 선물이 무엇인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그리고 이 선물을 믿음으로 받아 누리기를 바란다. 주님은 지금 우리에게 가장 좋은 선물을 주시는 분이시다.

 

주님은 평화를 선물로 주신다. 오늘 말씀에서 주님은,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27) 하셨다. 예수님은 평화에 대한 관념을 말씀하신 것이 아니라, 실제적인 평화를 선물로 주신다고 하셨다. 그 선물은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않은 평화였다.

여기서 평안은 내적 평안만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모든 관계에서 이뤄지는 평화를 다 포함하는 것이다. 평화를 끼친다는 표현을 잘 보니까, 예수님이 가시면서 당신의 평화를 남겨두고 가신다는 뜻이다. 예수님이 이 땅에서 사명을 마치시고 승천하실 텐데, 예수님이 떠나고 나신 자리에 평화가 있을 것이라는 뜻이다. 예수님은 떠나시지만 평화는 남아있다. 이것이 교회를 향한 예수님의 선물이요 축복이다.

평화는 물질적인 것보다 크고 놀라운 값을 지녔다. 세상이 우리에게 주지 못하는 것이다. 세상은 근심과 두려움을 줄 때가 많다. 예수님께서 그래서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고 꼭 집어서 당부하신 것이다. 무슨 일을 하면 왜 그리 갈등이 많고 불화가 많이 일어나는지, 근심하고 두려워해서 그렇다! 그러나 주님은 세상이 주지 못하는 평화를 우리에게 주신다.

로마의 5대 황제였던 네로는 14년 동안 제위에 있으면서 황금궁전을 짓고 온갖 영화를 다 누렸다. 그러나 그는 근심과 두려움을 버릴 수 없어서 동생과 어머니와 아내 옥타비아를 차례로 살해했다. 하나님을 떠난 그의 마음은 점점 황폐해져서, 결국에는 로마 성에 불을 지르고 기독교인들에게 누명을 씌워 죽이는 폭정을 하였다. 나중에는 스승인 세네카도 처형하고 말았다. 마침내 네로는 그의 불안한 인생을 견디지 못하고 30세의 젊은 나이에 자살해서 죽었다. 그에게는 세상의 모든 것이 있었으나 평화가 없었다. 예수님이 없었던 그는 평안을 얻지 못하고 자멸하고 말았다.

제자들에게 남긴 예수님의 마지막 선물은 평화였다. 예수님이 떠난 후 제자들은 머지않아 박해의 시련을 당할 것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세상이 깰 수 없는 평화를 얻을 것이다. 그러므로 언제든지 마음의 평안과 관계의 평화가 있으면 흥하고 평화가 없으면 망할 것이다. 주님은 십자가에 달리실 때 한 벌 겉옷마저 로마군인들에게 빼앗기셨다. 골고다에서 참혹하게 희생되셨다. 그러나 사람들에게 자기가 마지막까지 가지고 있던 평화를 선물로 남겨주셨다.

예수님은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않은 평화를 주셨다. 유대인들은 항상 샬롬!”이라며 평화를 인사하는 백성이다. 그러나 그들이 빈 샬롬은 빈 이름 뿐이었고 무력했으며 그래서 가식일 뿐이었다. 그들이 십자가에 죽인 예수만이 참 평화를 선물로 주시는 분이시다. 온 세상 사람들의 인사말이 된 “Good-bye”는 본디 하나님이 당신과 함께 계시기를!”이라는 인사 “May God be with you”라는 옛 기도의 한 구절을 줄인 것이라고 한다. 지금은 굿바이가 본디 종교적인 의미를 잃어버렸지만, 원래는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평화를 기원한 인사였다.

주님이 주시는 참 평화는 풍랑과 시련 속에서도 사라지지 않는 평화다. 바울은 두 주간이나 계속된 유라굴로 광풍 속에서도 홀로 평안을 누렸다. 혹독한 풍랑에 시달리면서도 276명의 배에 탄 다른 사람들처럼 근심이나 두려움은 없었다. 예수님이 그에게 평안을 주셨기 때문입니다. 요한 웨슬리도 인디안 선교를 바치고 돌아올 때 이렇게 그의 일기에 적었다. “17351021, 화요일 저녁 여덟 시에 다시 모여 서로 격려하고 아홉 시부터 열 시 사이에 취침했는데, 바다의 노도도 배의 동요도 하나님께서 주시는 유쾌한 잠을 빼앗을 수 없었다.”고 하였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참 평화를 주신다. 평화는 예수 믿는 제자들에게 주시는 예수님의 선물이다. 가난해도 평화가 있으면 행복하다. 낮은 자리에 있어도 평화가 있으면 부럽지 않다. 세상 사람들이 외면해도 평화가 있으면 두렵거나 불행하지 않다. 주님이 주신 선물, 이 평화가 가득한 한 해가 되기를 축복한다.

 

다음으로 예수님은 기쁨을 선물로 주신다. 오늘 말씀에서 주님은 내가 아버지께로 감을 기뻐하였으리라. 아버지는 나보다 크심이라.” 한다. 누구에게나 기쁨은 사랑에서 온다. 사랑이 없기 때문에 기쁨이 없는 것이다. 세상이 어둡고도 살고 싶지 않은 슬픈 골짜기가 되는 것은 사랑을 잃었기 때문이다. 어린아이로부터 어르신들에 이르기까지 사람은 사랑을 요구하며, 사랑 때문에 기뻐하고 사랑 없으면 슬퍼하고 분노한다.

에덴동산에서 아담은 하와를 사랑했기 때문에 기뻐했다. 그러나 선악과를 먹은 후 아담은 자기 반쪽인 하와를 원망했기 때문에 기쁨을 송두리째 잃어버렸다. 가인은 농사하는 자로 목축하는 아벨과 형제로 같이 살 때 그래도 행복했다. 그러나 동생을 돌로 쳐죽인 후에는 고통과 슬픔이 찾아왔고 기쁨은 사라져버리고 말았다. 야곱은 라헬을 사랑했기에 외삼촌 집의 고달픈 노동착취도 기쁨으로 감당할 수 있었다. 여러분의 사랑함으로 기뻐하는 그 기쁨이 충만해지기를 바란다.

예수님은 하나님 아버지께로 가시면서 제자들에게 기쁨을 주셨다. 사랑의 대상이 있고 그것을 위해 헌신할 때 인간은 기뻐한다. 도산 안창호는 샌프란시스코의 거리에서 교포 두 사람이 상투를 마주 잡고 피투성이가 되어 싸우는 것을 보았다. 노점 자리다툼 때문이었다. 부끄럽게도 외국에까지 와서 동족끼리 작은 이권 때문에 미워하고 싸울 수가 있나? 도산은 교포들이 서로 협력해서 살아갈 수 있도록 계몽운동을 펼쳤다. 즉 동족사랑운동이다. 그러자 그들의 생활이 기쁨으로 충만해졌다.

하나님을 사랑하라 기뻐질 것이다. 이웃을 사랑하라 기쁨이 충만할 것이다. 하나님 사랑, 사람 사랑, 주께서 주신 계명을 실천할 때 기쁨이 충만해진다. 주님은 기쁨을 선물로 주셨다. 주님을 따라 행했던 사도 바울도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4:4)고 하였고, 베드로는 예수를 너희가 보지 못하였으나 사랑하는도다. 이제도 보지 못하나 믿고 말할 수 없는 영광스러운 즐거움으로 기뻐하니 믿음의 결국 곧 영혼의 구원을 받음이라.”(벧전1:8-9) 하였다. 예수님을 사랑할 때 거기에 넘치는 기쁨이 있다. 주님이 기쁨을 선물로 주셨기 때문이다.

<보물섬>의 작가 스티븐슨은 임종할 때 자기 묘비에 이렇게 썼다. “나는 기쁘게 살았고, 기쁘게 죽는다. 나는 자원하여 여기 눕는다.” 참 대단한 작가다. 허약한 체질로 평생 폐결핵에 시달렸으나, 문학과 아이들에게 심취한 사랑의 일생을 살았다. 기쁨으로 살다, 죽음도 자의로 기쁨으로 받아들이는 것은 정말 인생의 승리자라 하겠다. 여러분도 사랑의 사람들이 되라. 주님 주신 사랑으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과 친구를 사랑함으로 주님 주시는 기쁨이 충만하기를 바란다.

 

예수님이 주시는 선물 중에 최고의 선물은 보혜사 성령이다. 오늘 성경말씀의 맥락을 생각해보면 예수님이 평화를 주시며 기뻐하시는 것이 이해가 되지 않는다. 이것은 이별의 장면이다. 그것도 어디 잠시 떠나오거나 이전해가는 것이 아니라 십자가의 죽음으로 영원히 이별할 것을 준비하는 장면이다. 그런데 어떻게 평화를 선물로 주며, 아버지께로 감을 기뻐할 수가 있단 말인가? 이 모든 의문의 대답은 보혜사 성령에 있다. 주님은 가시고 보혜사 성령이 오시므로 기뻐할 수 있다.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리라.”(26)

보이는 이 교회는 성령이 오신 오순절에서부터 시작되었다. 성령이 강림함으로 교회가 조직되었고, 온 세계를 향하여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는 일이 이루어지게 되었다. 그런데 성령은 주님이 부활승천하신 후에 주님을 대신하여 보내신 것이었다. 교회는 성령의 임재로 가능해졌고 믿음의 역사도 성령이 오심으로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이다. 성령은 하나님의 계명을 따라 살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은혜를 사모하는 사람들에게 임하는 거룩한 영이다. 그리고 사람들에게 임한 이 성령에 의해 교회는 조직된다. 교회는 성령의 공동체이며, 성령이 없이는 교회는 존재할 수도 없다.

성령이 오시면 하나님 나라를 보게 된다.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면 하나님 나라가 내 안에서 시작된다. 하나님이 다스리는 새로운 생활, 새로운 나라가 시작되는 것이다. 하나님 나라는 있을 수가 없다, 우리에게는 이생 뿐이다.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은 육체를 위해 향락에 열심을 낸다. 그런 곳을 찾아다니기도 한다. 우리는 하나님 나라를 믿고 그 나라가 지금 여기에서부터 시작되며, 죽음 이후까지 이어진다고 믿기 때문에 하나님 나라의 기쁨과 은혜를 중요하게 여기는 사람들이다. 이런 가치관을 가지기 때문에 더 멀리 바라보며 하늘의 것을 찾는 것이다.

리차드 버크의 <갈매기의 꿈>이라는 책을 보면, 조나단 시걸이라는 갈매기는 먹이만을 위해 경쟁하는 보통 갈매기와는 다르게 산다. 그는 높이 하늘을 올라가 수평선 너머 더 먼 바다를 바라보며 그 바다의 깨끗한 먹이를 먹으며 살아가고 싶은 욕망을 가진다. 그는 열심히 날아올라 동료 갈매기들이 상상할 수도 없는 높은 데로 올라가 가장 높이 날아 올라간 갈매기는 가장 먼 바다를 볼 수가 있다.”고 말한다. 그리스도인들도 거룩하게 높이 올라가 하나님 나라를 바라보며 지평선 너머의 세계를 바라보는 것이다. 성령을 받으면 그 나라를 꿈꾸며 그 나라에 속한 자로 살며, 새로운 희망과 능력을 가지게 된다.

모든 종교에는 두 가지 깊은 동기가 있다. 하나는 죄와 죄책의 문제다. 죄를 범한 사람, 죄를 깨달은 사람은 죄의 가책 때문에 괴로워하며 신앙을 찾게 된다. 또 하나의 동기는 죽음의 공포와 허무 때문에 사람은 신앙을 찾는다. 이 죄의 가책과 죽음의 공포와 허무에서 우리를 구원해 주는 것은 신앙밖에 없다. 이 말은 우리가 날마다 하나님의 나라를 봄으로써, 오늘 이 세상에서 죄에서 벗어나며, 죽음에서 해방되는 인간이 될 수 있다. 하나님 나라를 바라보고 그 나라에 속하게 됨으로, 죄의 문제와 죽음의 문제를 해결하려면 보혜사 성령이 임해야 한다.

보혜사란 상담자, 곁에서 말씀하는 이란 뜻으로, 성령을 가리키는 표현이다. 성령은 우리를 진리 가운데로 인도한다. 요삼 14절에는 사도의 제자들, 교인들이 진리 안에서 행하는 것을 듣는 것보다 더 기쁜 일이 없다고 한다. 우리 자녀들이 공부 잘하기를 바라고, 나이에 비해 성숙하고 똑똑하여 훌륭한 생활을 하는 사람들이 되기를 바란다. 이처럼 진리 안에서 바르게 사는 사람이 되기를 우리는 바라는데, 그러려면 성령의 인도를 받아야 한다.

신앙이란 진리에 근거해야 한다. 만일 신앙이 진리에 근거하지 않고 기분이나 인간관계에 근거하게 될 때, 신앙은 미신으로 빠지거나 광신에 빠지게 된다. 아무리 좋은 열심있는 신앙이라도 신비주의나 감정주의에 빠져 방황하게 되면 골치아픈 신앙이 되고 우리를 구원할 수 없다. 여러분이 믿는 복음이 미신에 빠지지 않고 진리에 근거하기를 바란다.

진리가 무엇인가? 8:31-32, “너희가 내 말에 거하면 참으로 내 제자가 되고,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 하셨다. 진리라는 것은 인간을 자유롭게 하는 것이다. 인간의 온갖 자유를 제한하고 구속하는 것은 진리가 아니다. 어떤 이유로든지, 국가의 공권력이나 교회의 권한이라 해도 인간을 얽어매어 힘들게 하는 것이 아니라 자유롭게 하는 것이 진리이며, 성령이야말로 진리를 알게 함으로 인간을 자유와 구원에 이르게 하는 것이다.

예수님이 떠나시자 성령이 임하셨다. 성령은 초대교회 때부터 능력이었다. 초대교회 때부터 종교적 단체가 셋 있었는데, 쿰란이라는 민족독립 사회정의를 외치던 교단이 있었다. 또 세례 요한의 대를 이어가던 에세네라는 이름의 광야 금욕주의 종파가 있었다. 그리고 그리스도를 따르는 제자조직이 있었다. 그런데 역사의 흐름을 따라 쿰란도 없어지고 에세네도 사라졌는데,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단이 기독교회가 되어 온 세계에 가득차게 되었다. 무엇이 교회를 이토록 장구하게 위대하게 엄청난 단체로 만들었을까? 성령의 권능이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1:8)

시릴 파킨슨이라는 경제학자가 이런 말을 했다. 인간 사회의 패망의 원인은 두 가지가 있는데, 첫째는 무능력이요, 둘째는 질투심이다. 사람이 질투심에 빠지면 이성이 마비되고, 이성이 마비되면 판단도 그르치고 폭력적이 되기 쉽다. 신앙생활도 제대로 할 수 없게 된다. 무능력은 인간으로 하여금 좌절감에 빠지게 하고 자신감을 잃어 불안과 두려움에 싸이게 한다. 그러므로 성령을 받아 내적 능력을 얻어야 한다. 예수님을 세상을 떠나 하나님 보좌우편으로 돌아가시면서 우리에게 성령을 선물로 주셨다. 그리하여 하나님 나라를 보게 하고, 진리를 알게 했으며, 능력을 받아 힘있게 살게 했다.

 

프랑스 남동부의 지중해에 면한 모나코는 인구 4만 명도 안 되는 작은 나라인데, 평화로운 나라이다. 국립 교향악단 단원이 100여 명인데, 군대 숫자보다 많다고 한다. 연주가가 군인보다 많은 나라! 정말 부럽지 않은가! 이 세상은 평안이 없고 기쁨은 사라지고 무기력해져 있다. 증오의 칼을 쓰는 자보다 평화의 나팔을 부는 자가 많은 세상을 만들어야 한다. 모두가 사랑으로 기뻐하며 행복한 나라를 만들어야 한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평화의 선물을 주시며, 기쁨을 풍성하게 채워주시고, 성령으로 권능을 받아 온 세상을 행복하게 구원하신다. 새해에 이 선물을 받고 누리라. 예수께로 돌아가 그분이 주시는 놀라운 선물을 풍성히 누리고, 남에게도, 온 세상 땅끝까지, 전해주는 사람들이 되라! *

 

댓글

번호 제목 작성자 등록일 조회수 첨부 파일
485 산 위에서 사십 일 (출24:12-18) [2020년 2월 23일, 주현절 마지막/ 변화주일] 박신진 목사 2020-02-23 8
484 반석에서 샘물이! (출17:1-7) {2020년 2월 16일, 주현절 여섯째주일] 박신진 목사 2020-02-16 20
483 은혜의 강물이 이르는 곳마다 (겔47:6-12) [2020년 2월 9일, 주현절 다섯째주일] 박신진 목사 2020-02-08 31
482 십자가를 자랑하자 (고전1:18-31) [2020년 2월 2일, 주현절 넷째주일] 박신진 목사 2020-02-06 26
481 주께 하듯 하고 (골3:18-25) [2020년 1월 26일, 주현절 셋째주일] 박신진 목사 2020-01-25 48
480 새 언약의 직분 (고후3:4-9) [2020년 1월 19일, 주현절 둘째/ 임원임명(취임)주일] 박신진 목사 2020-01-18 48
479 예수님이 주시는 선물 (요한복음 14:25-28) [2020년 1월 12일, 주현절 첫째 주일] 박신진 목사 2020-01-18 52
478 믿음의 달리기 (히브리서 12:1-3) [2020년 1월 5일, 성탄후 둘째/신년주일] 관리자5 2020-01-07 60
477 가라, 네 믿은 대로 될지어다! (마태복음 8:5-13) [2019년 12월 29일, 성탄후 첫째/송년주일] 관리자5 2020-01-07 59
476 침묵하는 요셉 (마태복음 1:18- 25) [2019년 12월 22일, 대림절 넷째주일] 관리자3 2020-01-06 46
475 주의 날을 기다리라! (야고보서 5:7-10) [2019년 12월 15일, 대림절 셋째주일] 관리자3 2020-01-06 44
474 하나님, 몸을 입으시다 (요한복음 1:12- 14) [2019년 12월 8일, 대림절 둘째주일] 관리자3 2019-12-08 106
473 무너뜨리고 세우시는 하나님 (호세아 14:1-3) [2019년 12월 1일, 대림절 첫째주일] 박신진목사 2019-12-01 130
472 아나니아와 삽비라 사건 (행4:36-5:11) [2019년 11월 24일, 성령강림 후 마지막주일] 관리자5 2019-11-29 124
471 복을 부르는 습관 (이사야 65:17-25) [2019년 11월 17일, 추수감사절] 관리자3 2019-11-16 140
1 2 3 4 5 6 7 8 9 10 ... 3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