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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수할 일꾼 보내주소서! (마9:35-38) [2020년 6월 14일, 성령강림후 둘째주일]
2020-06-12 17:55:16
박신진 목사
조회수   130
설교일 2020-06-14
설교말씀 마태9:35-38
설교제목 추수할 일꾼 보내주소서!

추수할 일꾼 보내주소서!

9:35-38

2020614[성령강림후둘째주일]

 

백상예술대상은 매년 우리나라에서 공연된 대중문화예술에 대한 가장 권위있는 종합예술상이다. 최근에 시상식이 있었는데, 올해 시상식에서는 아역배우들이 중심이 되어 공연한 특별무대가 화제가 되었다. 요즘 코로나19 때문에 모든 생활이 거리두기의 영향으로 제약을 받고 있는 세태를 반영한 당연한 것들이라는 짧은 음악공연이다. 우리의 지금 현실을 따뜻하게 바라보는 노래다. 많은 사람들의 공감을 일으켰다.

 

당연한 것들.’(56회 백상대상 특별무대/ 5)

 

감동적이지 않은가? 아이들이 정말 노래를 잘한다. 순진한 목소리가 감동을 주었다. 우리가 당연하게 여기던 평범한 일상이 언제 돌아올 수 있을까? 본래 별 게 아닌 게 사실은 가장 중요한 거다. 거기에서 다시 시작하자고 아이들은 권유한다. 제일 어린 배우의 마지막 노래구절, “웃어요~” 마음에 남는다.

 

무리를 보시고 불쌍히 여기시니

예수님께서 이스라엘에서 복음을 전하실 때 보셨던 현실도 지금의 우리와 비슷했다. 예수께서 갈릴리 지방의 모든 도시와 마을에 두루 다니시며 그들의 회당에서 가르치시고, 복음을 전파하셨고, 병자와 약한 자들을 고치셨다. 사람들이 예수 주위로 몰려들었는데, 그 모습을 성서는 전해준다. ‘무리를 보시고 불쌍히 여기시니 이는 그들이 목자 없는 양과 같이 고생하며 기진함이라.’ 2월 중순에 첫 확진자가 생긴 이후로 코로나19는 온 나라를 삼켜버렸다. 우리나라는 지혜롭고 용기있는 의료진과 공무원들이 국민들과 함께 잘 대처해서 이겨내고 있지만, 온 세계에는 엄청난 환자들과 희생자들이 생겨나고 있다. 목자 없는 양과 같이 고생하고 기가 다 빠져버린 불쌍한 양들이다! 온 세상 사람들이 다 그렇다!

목자 없는 양과 같이 고생하며 기진함이라!’ 여기에 나오는 양은, 귀여운 어린 양이 아니라 장성한 양들인데, 이스라엘 백성을 의미할 때 썼다. 돌보고 이끌어줄 목자가 없어서 지저분하고 지치고 병든 양들이다. 목자 없는 양 모습의 사례가 9장 앞에 나온다. 9:20, 열두 해를 혈루증 앓는 여자이다. 아주 고치기 힘든 고질병인 데다가 오랫동안 앓았다. 12년 병치레에 남아있는 게 뭐가 있을까? 온 세계는 지금 4달 코로나 병치레에 난리가 났다! , 죽은 야이로의 딸이 나온다. 회당장이면 지역교회의 종교지도자이고 유대인들 사이에서 존경받는 유지다. 그런데도 딸을 잃으니 가장 비참하고 불쌍하다.

27, 맹인들이 불쌍히 여겨달라고 외친다. 목자 없는 양과 같다. 당시에는 고칠 수도, 대처할 수도 없는 질환이었다. 32, 말 못하는 사람이 나온다. 그 원인을 귀신들려 말 못하는이라고 적었다. 말을 못하니 소통 부재인 데다가 귀신 때문에 그렇다, 귀신이 덧씌워졌다. 그의 삶은 소외가 두텁게 가로막혀있고, 세상 모든 사람들로부터 멀어진 관계, 낙인이 찍힌 인생이었다. 죽음과도 같은 고독과 소외감의 고통을 겪고 있다!

여기 예수님에게서 우리가 주목할 점은 목자 없는 양과 같이 고생하며 지쳐있는 그들을 보시고 불쌍히 여기셨다. 공감하셨다. 우리는 불쌍한 사람이나 소외된 사람은 외면하고 피해가려는 마음을 가진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들에게 가까이 다가가셨다. 이것이 우리와 다른 점이다. 그들을 위해 사람을 모으셨다! 예수님의 일은 목자 없는 양과 같이 고생하며 지친 사람들을 보시고 공감하는 데에서 시작되었다. ‘목사님, 생각한 것보다 많이 어려워요!’ 어떤 교우가 저와 대화 중에 요즘 삼척 상황을 얘기하다 하신 말이다. 우리가 보통 생각하는 것, 상식적으로 판단하는 것보다 어려운 상황이다! 우리는 여기에서 도망가서는 안 된다. 예수님도 목자 없는 양처럼 고생하고 기진한 사람들을 보시고 공감하셨다. 이웃사랑은 공감능력에서 시작된다는 것을 잊지마시라! 교회는 지치고 병든 양들을 끌어안고 그들 곁에 있는 데에서 그 사역과 활동을 시작해야 한다.

먼저 나는 여러분에게 그럼에도불구하고, 요즘 4G(4‘’) 정신을 찾자고 한다는 말씀을 드린다. 그럼에도 감사/ 그럴수록 감사/ 그러니까 감사/ 그래도 감사다!! 코로나19로 병들고 지친 세상 사람들에게 당연하고 평범한 일상에서 다시 시작하자고 권유하면서 힘껏 웃어요!” 권유하는 아이들처럼, 우리도 감사하며 나아가자! 4‘!! 그럼에도 감사/ 그럴수록 감사/ 그러니까 감사/ 그래도 감사! 병들고 지친 한 마리 양에서 시작할 수 있다고 성경이 말씀한다. 목자 없는 양, 고생하고 지친 양 한 마리 같은 한 사람에서 시작하는 것이 예수님의 사역, 예수님의 사랑이다. 여기에서 능력이 나타나고 기적이 일어난다. 예수님이 무리를 보시고 불쌍히 여기셨다! 그리고 추수할 일꾼들을 모으셨다.

 

예수의 사역

예수님이 하신 일이 세 가지로 요약되어 있다. 예수님은 모든 도시와 마을에 두루 다니셨다. 제한과 차별을 두지 않으시고 두루 다니시며 천국 복음을 전하셨다. 모가 없고 제약이 없는 예수님의 보편 사역을 우리가 바라보아야 한다. 우리교회도 지금 부목사님을 한 분 찾고 있는데, 지방이라서 안 되고, 영동이라서 어렵고, 그런 말을 들을 때가 있다. 빈자리를 채우느라 사역자들이 조금 피곤하지만, 나는 서두르지 않는다. 복음이 필요한 곳, 하나님의 사랑이 있어야 할 곳이 목사가 있을 곳이지 뭐가 더 필요한가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런 예수님의 마음을 가진 적합한 일꾼을 보내주시리라 믿는다.

예수의 3 사역을 성경이 보여주는데, 우리가 알아야 한다. 왜냐하면 교회는 예수가 하신 일을 하는 곳이기 때문이다. 복음서에 나오는 여러 가지 사역 중에서 본문은 세 가지를 말한다. 1) 가르치시며, 2) 천국 복음을 전파하시며, 3) 병과 약한 것을 고치시니라. 교회는 예수의 일을 하는 곳인데, 첫째는 가르치는 일, 교육사역이다. 둘째는 천국 복음을 전파하는 일, 복음전도이다. 셋째는 병과 약한 것을 고치는 일, 치유사역이다.

1. 교육 사역: 예수님은 가르치셨다. 교회는 가르치고 배우는 곳이다. 교회가 하는 사역은 말씀을 가르치고 배우는 일이다. 요즘 배우려고 하지 않는다. 너무 듣고 아는 것이 많은 정보화시대이다 보니 누르면 나오게 되어 있다. 굳이 배우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하나님께 배워야 그 길을 따라갈 수 있다. 지식과 정보의 양이 문제가 아니다. 신학과 성경, 교리를 따로 외우는 게 능사가 아니다. 진리를 듣고 깨달아 바른길로 가는 사람이 필요하다. 진실하게 가르치고, 겸손하게 배우면서 하나님 나라를 이루어가야 한다.

2. 선교 사역: 예수님은 천국복음을 전하셨다. 요즘 데이비드 플랫이라는 목사의 책을 읽고 있다. 히말라야의 높은 길을 트랙킹하면서 얻은 감상을 적은 <복음이 울다>라는 책을 보았는데, 거기 보면 여행 중에 복음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안타까워하는 마음을 적고 있다. 평생 예수님의 복음을 정식으로 듣지 못한 사람들, 복음에 대한 오해만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 우리에게 주님은 세상에 복음을 주라고 명하신다. 복음이 얼마나 놀라운 생명력을 가지고 있는가! 예수의 이름이 얼마나 큰 능력이 되는가! 수단과 방법을 다 동원하여 이들에게 복음을 바로 제시할 책임을 우리는 가지고 있다.

3. 치유 사역: 치유사역은 공동체의 삶의 회복으로 연결되어야 한다. 열 두 제자의 병고치는 치유사역을 통하여 결국 이스라엘에 하나님나라가 회복되었다. 우리의 치유사역도 사람을 살리고 민족을 살리는 하나님나라 사역이 되어야 한다. 비정상적인 것을 정상으로 돌리는, 정상의 선포가 이뤄져야 한다. 예수 이름으로 모든 잘못된 것들이 바로 될 것이다. 하나님과 동행하면 거룩한 생활, 거룩한 인격이 된다. 거룩이 생활화 될 때 치유가 따라온다.

예수님이 하신 것, 이 당연하고 별 것 아닌 것에서부터 새롭게 시작해야 한다. 우리도 가르쳐야 하고, 복음을 전해야 하며, 병든 것과 약한 것을 고쳐주어야 한다. 배우는 자의 자세가 매우 중요하다. 또 예수 복음, 이 중심을 잃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항상 깨어있어야 한다. 마음의 병을 앓고 있는 이들도 많다. 또 사회적 병, 소외와 고독이나 갈등의 고통을 겪고 있는 이들이 많다. 육신의 병, 마음의 병, 사회적인 병이 서로 연관되어 있다. 그리스도와 함께 할 때, 온전한 삶을 추구하는 전인치유가 이뤄진다.

좀 전에 소개한 데이비드 플랫의 책을 보면, 나부터 변해야 한다. 모든 큰일은 지극히 작은 한 가지 일에서 시작된다. 내가 예수께서 하신 일을 해야 한다. 가르치고 배워야 하고, 복음을 전하고 예수 이름을 항상 드러내야 하며, 병든 것과 약한 것을 고치는 예수의 능력을 선포함으로 치유해야 한다. 변화가 필요하다. 나부터 달라져야 한다. 어렵지 않다. 본질로 돌아가서 하나부터 시작하면 된다. 교육, 전도, 치유다!

 

열매를 맺으려면

도덕현이라는 분은 농사꾼인데, 포도나무를 기가 막히게 기르는 분이다. 먼저 포도나무를 키울 땅을 비옥하게 만든다. 유기농 비료를 주고 지력을 높인다. 그러면 무엇을 심든지 잘 자란다. 문제는 땅이 곯아버리면 무엇을 심어도 잘 안 된다. 지력을 높여서 영양이 충분한 땅을 만들어야 한다. 거기다가 병충해를 방지해줘야 한다. 농사를 아무리 잘 지어놓아도 한 주간동안 병이 들어와서 퍼져버리면, 일 년 농사가 하루아침에 망한다. 도덕현 씨는 하우스를 잘 해서 병충해를 완전히 막아주었다. 얼마나 포도나무를 사랑했는지 자면서도 끌어안고 잘 정도였다고 한다.

땅을 비옥하게 만들어 잘 자라게 하고, 병충해를 완전히 막아 병이 들지 않게 하며 최선을 다해 사랑하니까 저절로 열매를 맺더라고. 한 그루에서 4,500송이의 포도열매를 맺었다고 한다. 세계기록이다. 우리교회에서 신순녀 집사님네 포도나무가 집을 몇 바퀴나 둘러서 자랐기에 깜짝 놀라 TV 프로그램에 나가보라고 몇 번 얘기해도 그 정도로는 안 되요.’ 하시더라. 그런데 이 사람은 포도나무 한 그루 잘 키워서 4500송이 포도를 열게 했다. 사진을 보니까 밭 한 마지기 정도가 포도 한그루 자란 밭이 되었더라. 교역자회의에서 설교 중 들은 이야기다. 포도 한 그루에 4500송이 열매를 말하자면, 삼척에서 교회학교의 한 반을 맡았는데 수백 명이 모이는 것과 비유할 수 있을까? 한 속회가 부흥되어 열 속회가 되어 한 교구를 이루는 것과 같다고 하겠다.

추수할 일꾼들을 찾으신다. 이제 열매를 거두기만 하면 된다. 목자 없는 양과 같이 고생하며 기진한, 즉 기가 다 빠져버린 무리를 보시고 불쌍히 여기신 주님께서 추수할 일꾼을 찾고 계신다. 오늘의 교회가 예수의 사역을 하면 추수하게 될 것이라는 말씀이다. 추수할 일꾼이란 예수의 사역을 감당할 능력 있는 일꾼이라는 말이다. 세상을 새롭게 하고, 풍성히 열매 거두게 할 일꾼이 필요하다.

오늘 본문을 보면, 몇 가지 추수할 일꾼들이 해야 할 일들을 가르쳐주신다. 열매를 맺는 성도가 되려면, 먼저, 기도해야 한다. 다음은 부르심에 응해야 한다. 그리고 권능을 받아야 한다.

1.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추수할 일꾼들을 보내달라고 기도하라 말씀하셨다. “그러므로 추수하는 주인에게 청하여 추수할 일꾼들을 보내 주소서 하라 하시니라.”(38) 주인에게 무언가를 청한다는 것은 바로 하나님께 기도할 것을 말씀하신 것이다. 고생하며 기진한 양들을 보시고 불쌍히 여기셨다. 그들을 붙잡아 줄 수 있는 삶의 목적과 이유가 분명하지 않았기 때문에 방황하는 것임을 아셨기 때문이다. 그래서 예수님은 추수할 일꾼들을 보내달라고 기도하라고 말씀하셨다. 회복과 변화, 능력을 위해 제일 먼저 기도해야 한다. 기도를 통해 하나님이 내 삶과 공동체에 일꾼들을 보내주실 것이다. 왜 변화되지 않나? 일꾼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나? 기도해야 한다!

2.주님은 그들을 부르신다. 오늘 마태 9장의 말씀에 이어 나오는 10장에서는 바로 열두 제자의 명단이 나온다. 일꾼들은 하늘에서 떨어지는 게 아니다. 기도하는 사람들, 주님께서 부르실 때, 작은 일이라도 응답하는 사람들에게서 일꾼들이 길러지고 나온다. 지금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어떤 예배의 순서로 부르신다. 지금 하나님이 작은 모임의 리더로 부르신다. 지금 하나님이 무슨 일이나 역할로 여러분을 부르신다. 주님이 부르실 때 응답할 수 있도록 준비된 자들이 되라. 안내위원, 봉헌위원, 기도담당, 이런 게 작게 여겨지는가? 응답하여 참여하는 사람이 추수할 일꾼이다. 부르실 때 응답하는 사람을 하나님은 일꾼으로 세우시고 능력을 덧입혀 주신다.

무슨 예배에서 기도를 맡아주세요, 무슨 모임의 리더가 되어주세요. 무슨 일에 책임을 맡아 수고 좀 해주세요.” 이번 주에 어느 모임에서 들은 이 이야기들이 여러분을 향한 주님의 부르심일 수 있다. 힘들다고, 귀찮다고 물리치지 말라. 응답하며 나갈 때 일꾼 삼으시고, 감당할 수 있는 능력을 주시며, 더불어 평안과 복을 주신다. 제자들은 부르심에 전폭적으로 응답하는 사람이다. 우리를 빛으로 부르신다. 빛을 비추니 빛이 되라!

3.주님께서 귀신과 약한 것을 고치는 권능을 주신다. 예수님이 이스라엘을 고치고 회복시키기 위해 사용하신 권능과 같은 권능을 주신다. 그것이 초월적 권능, 귀신을 쫓아내고 병을 치유하는 기적이 아닐지도 모른다. 대신 세상을 이해하고 문제를 해결하는 지혜, 어려움을 당하는 사람과 함께 해주고 이야기를 들어줄 줄 아는 공감능력으로 임할 수 있다. 교만한 사람은 가진 권능도 빼앗길 것이다. 그러나 겸손하고 진실하게 기도하며 응답하면 지혜와 권능을 더 많이 주실 것이다.

권능을 받아 먼저 자신과 가족, 그리고 교회를 온전케 해야 한다. 이방인의 길로도, 사마리아인의 고을에도 가지 말라 하셨다. 먼저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에게로 가라! 먼저 나부터 변화시키고 바로 잡도록 회개하고 스스로 믿음의 부족을 채워주시도록 기도해야 한다. 그 권능을 자기과시용, 교만의 도구로 사용하지 말라. 나의 안에 어둠을 몰아내는 회복사역이 먼저다. 내 안에 빛을 채우고 나아가 빛을 비추라.

권능에는 책임이 있다. 어떤 대가도 바라지 않고 오해나 고난도 감당하는 제자의 책임을 가져야 한다. 추수할 일꾼을 부르시되 책임있는 일꾼이 되도록 부르신다. 책임을 망각한 유다는 예수를 팔고 자기 생명까지 잃었다. 시몬 베드로는 두려움에 예수를 부인하고 저주하였으나, 다시 회개하고 자기를 바로 세워 온전히 예수의 능력을 드러내는 삶을 살 수 있었다.

 

내가 여기 있습니다!”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명하신 대로 우리도 기도해야 한다. “추수할 일꾼들을 보내주소서!” 그러나 기도하면 할수록 이런 기도를 하게 될 것이다. “내가 여기 있습니다. 나를 보내주십시오!”(6:8) 이 고백은 선지자 이사야가 성전 제단 앞에서 하나님께 드린 고백이다. 원래 이사야는 자기 자신이 입술이 부정한 사람이요 입술이 부정한 백성 중에 거주하는 사람이라고 하였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제단 숯불로 그 입술을 정결케 하시면서 부르실 때 거역하지 않고 응답하였다. ‘너희 눈을 들어 밭을 보라! 희어져 추수하게 되었도다!’(4:35) 이제 여기에서 시작해야 한다. 일꾼이 적으니! 추수할 일꾼을 보내주십시오~ 기도하라!

그리고 중요한 기도는 이사야처럼, ‘나를 보내소서!’ 하는 데까지 나아간다. 응답하라! 일꾼이 어디서 오나? “추수할 일꾼, 나를 우리 집으로, 우리 교회로, 우리 속회로 보내주십시오! 나부터 변화되게 하소서!” 우리는 또한 성령에 감동되어 이렇게 기도해야 한다. “여기에서 시작하게 하소서, 한 사람부터 시작하게 하소서! 내가 하는 지극히 작은 일부터 행하게 하소서! 이 당연한 작은 일에서 하나님나라가 움터오게 하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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