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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숙한 믿음 온전한 믿음 (마태15:21-28) [2020년 8월 16일, 성령강림후 열한째주일]
2020-08-16 10:31:15
박신진 목사
조회수   115
설교일 2020-08-16
설교말씀 마태15:21-28
설교제목 성숙한 믿음 온전한 믿음

성숙한 믿음 온전한 믿음

마태15:21-28

2020816[성령강림 후 열한째 주일]

 

믿음이 필요하다!

이미 90년대부터 신자의 수가 늘지 않고 멈추어 있거나 줄어든다는 보고가 있던 차에, 코로나바이러스가 처음 대구 경북지역에 지역감염으로 무섭게 퍼져나갈 때 신천지가 전파의 숙주가 되어 온 나라의 염려와 비난을 샀었다. 문제는 신천지를 교회라고 부르니 기독교 교회까지 사회의 비난을 받는다는 거였다. 게다가 심심찮게 코로나전염의 통로로 교회가 언급되다가 좀 잠잠해지려는 요즘 들어 고양시와 김포에서 교회를 통해 코로나바이러스가 전파되고 있어서, 마치 교회가 사회의 가장 취약한 곳이 되기라도 하는 것 같은 분위기가 느껴지고 있다.

극히 일부에 불과하지만, 어떤 교회에서는 자발적으로 방역에 협조하지 않고 반발하는 분위기까지 나타나서 교회를 향한 국민들의 시선이 곱지 않은 때이다. 요즘은 한국 교회의 선교에 대해 사람들이 그리 우호적이지 않은 시대이다. 해외에 복음 전하는 문제는 대단히 중요한 교회의 사명이고 앞으로 계속 노력해야 하겠으나, 그에 앞서 지금은 우리 이웃과 도시에 어떻게 복음을 전하며 예수를 증언할 수 있을까, 나오고 있는 초신자들과 믿음이 약한 이들을 어떻게 인도하고 양육할까 고민해야 할 때다.

이런 상황에서 효과적인 선교 전략은 무엇일까? 이제는 길거리나 집집 방문 전도에 머무를 것이 아니라, 이미지 홍보를 통한 전도가 필요하고, 대인 관계를 통한 전도가 있어야 하며, 인터넷 영상과 소통을 통하여 불신자에게 다가가야 한다는 전략이 소개되고 있다. 그러나 신천지나 안상홍증인회를 이어받은 이단인 하나님의 교회와 같은 사이비 이단들도 그런 전략을 이미 쓰고 있다. 어떻게 해야 할까? 우리는 성서에서 하나님께서 가르쳐주신 좋은 선교전략이 이미 나와 있다. 요즘처럼 어려운 시기에 가장 좋은 선교는 역시 그리스도인의 생활과 모범을 통해 사람들에게 빛이 되고 소금이 되는 것이다.

하박국 선지자는 시대가 악하여 믿음대로 되지 않고 모든 것이 거꾸로 가고 있을 때,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산다고 외쳤다(2:4). ‘보라, 그의 마음은 교만하며 그 속에서 정직하지 못하나, 의인은 그의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믿음 외에는 시대를 거스려 의롭게 살 수가 없다. 믿음 외에는 개인과 사회의 병을 고칠 수 없다. 믿음 외에는 바르게 살아갈 수 없다.

믿음을 가지되 성숙한 믿음, 온전한 믿음을 가져야 한다. 믿음이 자라나야 하고 온전해져야 한다. 믿음이 큰 나무처럼 자라 그늘을 드리워야 한다! 본문에 예수님이 인정하신 큰 믿음의 본이 나와 있다. 예수님은 여인을 무시하였고 여인의 강청을 못들을 척 하심으로 이방여인의 믿음을 시험하셨지만, 여인은 끝까지 주님께 성숙한 믿음, 온전한 믿음을 가지고 나아가 결국 소원을 이룬다. “여자여, 네 믿음이 크도다! 네 소원대로 되리라!” 예수님의 말씀이다. 우리에게 이런 믿음이 필요하다!

 

수로보니게 이방 여인

가나안의 한 지방 수로보니게는 바알과 아세라를 섬기는 이방 민족의 땅이다. 그녀도 우상숭배자요 종교적인 잡인출신이다. 그러나 그녀는 구원하실 분은 예수 그리스도라고 믿고 주님에게까지 찾아왔다. 이방인인 데다 여인의 신분이다. 이방여인은 유대인과는 상종도 하지 않을 때이니, 이중의 장벽이 있었던 것이 사실이었다. 예수님께 나왔다는 것 자체가 믿음이요 용기다. 온전한 믿음은 자기들끼리 어울리는 게 아니라 예수님께 나오는 것이다!

그런 사실을 잘 아시는 예수님이 왜 이 불쌍한 여인의 간절한 외침을 못들은 척 하시고 침묵하셨을까? 여자를 거절하신 것 아닌가? 무엇을 거절하셨을까? 이방여인은 병을 고치려고 주님께 나아왔다. 주님은 정말 하나님을 믿는지, 아니면 병을 고치기 위한 수단으로 하나님을 믿는 척하는 것인지 시험해 보기를 원하셨다. 믿음은 없고 고치려는 욕심만 있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동기의 순수성을 보려 하신다. 그 여인이 정말 믿음을 가지고 있는지 알아보시려 짐짓 거절하셨다. “나는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 외에는 다른 데로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노라.” ‘병만 고치려고 신앙을 수단화하지 말라!’ ‘네 믿음을 보고 싶구나...’ 이런 뜻이 그 속에 들어 있었다.

그러자 그 여인은 25절을 보니까, 조금도 굴하지 않고 예수께 절하며 주여, 저를 도우소서.” 하지 않는가? 이게 믿음이다! 절하는 것은 모든 것의 포기요 철저히 맡기는 것이다. 예수님은 이것이 믿음인지, 아니면 병 고치려는 욕심인지 확인하셨다. 병 고치려는 욕심 가운데에도 믿음이 있어야 하는데, 이 여인은 엎드려 절하는 순수하고 뜨거운 믿음으로 주님께 나왔다! 그때 예수님은 더 냉혹한 말씀을 던지신다. “자녀의 떡을 취하여 개들에게 던짐이 마땅치 아니하니라.”(26) 여인을 개로 비유하여서 말씀하셨다. 거의 욕을 한 것이나 다름없다. 믿음이 없이는 도저히 받을 수 없는 모욕이었다! 강력한 시험이다.

인간으로서는 견딜 수 없는 치욕적인 말이다. 병만 고칠 생각이라면 이 말을 참아낼 수 없다. 순수한 마음으로 찾아온 여인에게 개들에게 떡을 줄 수 없다는 심한 말을 하시다니! 아마 요즘 같으면 대표 갑질로 인테넷에 올라 예수님 퇴출운동이 벌어질지도 모를 일이다. 자존심과 체면이 산산조각나는 말씀을 하셨다! 그러나 여인은 놀랍게 응답한다. “주여! 옳소이다마는, 개들도 제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먹나이다.” 여러분, 예수님 말씀에는 무조건 옳습니다!’ 하고 나가는 게 믿음이다! 말씀 앞에서는 이런 태도가 필요하다! “주여, 옳소이다마는!” 일단 주님 앞에서는 옳다고 하고 보는 거다! 이게 성숙한 믿음이다. 예수님은 여인의 믿음을 보셨다. 얼마나 그 믿음이 순수하고 뜨겁고 강한지를 아셨다. “여자야 네 믿음이 크도다! 네 소원대로 되리라.”(28) 그 때 그의 딸이 나았다!

 

성숙한 믿음 온전한 믿음

믿음이라고 다 같지 않다. 제임스 파울러(에모리대 교수)의 믿음 6단계가 있다. 인간도 발달단계가 있듯이, 믿음도 성장하는 과정이 있다. 첫째로, 아기같이 뭐가 뭔지 모르는 믿음이 있다. 그리고 첫 단계로 유치원생 믿음이 있는데, 그냥 직접 느끼는 초보적 믿음이다. 둘째는 초등학생 믿음인데 어른들이 집어넣어줘서 그냥 따라 외는 믿음이다. 예수 믿으면 천국 간다는 식이다. 세 번째 믿음의 단계는 청소년 믿음인데, 자기 의지도 있고 때로 열정도 있으나 분위기에 휩쓸리는 믿음, 기도하다가 눈물이 나서 평생 예수님을 따르기로 하였다는 식이다. 여기까지는 열정적이고 순수한데 조금 흔들리고 불안한 초보적 믿음이다.

신앙인 가운데 앞의 초보적인 세 번째 단계 안에 머물러 있는 사람들이 많다. 나이가 많거나 세상의 학식이나 경험이 풍부하다고 해서 믿음의 단계도 높아지는 것은 아니다. 나이 든 어린이, 많이 배운 미숙한 신앙이 얼마나 많은지 모른다. 네 번째는 어른의 믿음인데, 나름의 인생관 세계관에 자리 잡힌, 뿌리가 내려 흔들리지 않는 믿음이다. 다섯째는 성숙한 믿음인데 자기 믿음의 세계를 형성한 믿음이어서 남을 인도할 수 있는, 영향력 있는 믿음이다. 마지막 여섯째 단계는 온전한 성자의 믿음인데, 사랑으로 충만한 믿음, 순교할 수 있는 믿음이다. 이 중에 이 여인의 믿음은 4-5단계의 성숙한 믿음이다. 믿음이라도 다 같은 게 아니다! 여러분의 믿음은 어디에 속했나?

유치원생(1단계)은 재미있어야 하고 잘해줘야 한다. 재미없고 자기 욕망을 채워주지 않으면 울고 떼쓰며 유치원 안 간다고 한다. 문제는 어른 교인 가운데, 오래 믿은 사람 중에서도 재미있기를 바라고 잘해주기만을 기대하는 신앙인이 있다는 점이다. 초등학생이 되면 선생님이 자기에게 잘해주어야 한다. 선생님이 엄하거나 또래끼리 어울리지 못해 삐지면 학교에 가기 싫어하고 공부에 소홀해진다. 목사에게 이유를 많이 대는 신앙인이다. 언제까지 유치원만 다니고, 초등학교에 머물러 있겠는가? 이제 초보 믿음에서 졸업하시라! 수십 년, 대를 이어 신앙생활하면서도 유치원생 초등학교 믿음을 못 벗어난 사람들도 있다. 여러분 안에서 성령께서 근심하신다!

청소년의 신앙에 이르면 자기가 참여할 수 있어야 한다. 자기를 끼워주고 인정해주면 기분이 좋아서 더 열심히 최선을 다한다. 따돌림 당하면 그대로 뛰쳐나가 버린다. 열정도 있으나 삐지기도 잘 한다. 인정욕구에 빠져 뭐 조금 봉사하고 일하면 칭찬해줘야 하고 자기 등급이 당장 올라가야 만족하는 신앙이다. , 어른의 신앙에 이르면 보람이 있어야 한다. 무언가 결실을 볼 때 열심을 낸다. 자기에게 맞는 보람 있는 일을 하기 원한다. 이때 직분 문제에 걸려넘어질 때가 많다. ‘깃발을 들려주어야 할 때이다. 이런 믿음은 많이 성장한 것이기는 하나 아직 성숙된 것은 아니다. 충분히 인정받지 못하거나 자기에게 가시적인 결과가 없으면 금방 넘어져 버린다. 나름대로 신앙생활 열심히 하는 사람에게서 이런 문제가 나타난다. 여기에서 과감히 더 성장하기를 바란다.

성숙한 믿음은 재미에 좌우되거나 자기만 잘해주기를 바라거나, 인정받고 참여할 때에만 열심을 내거나 눈에 보이는 결과에만 좌우되지 않고 거기에서 더 나아간다. 바로 가나안 여인이 보여준 믿음, 예수님이 인정해주신 믿음이다. 믿음의 길에서 모욕을 당하고 손해를 봐도 예수님만 바라보는 믿음이다! 여러분이 이 믿음에 이르라! 성숙한 믿음은 우리를 계속 성화되게 하여, 결국은 온전한 믿음에 이르게 한다. Saint! 성자가 되는 거다! 결국 사랑으로 충만하며, 순교할 수 있는 단계에까지 이르게 된다. 웨슬리는 이 마지막 단계를 그리스도인의 완전이라 했다. 우리 교회에 이런 믿음 수십 명만 있다면 삼척과 동해, 태백을 다 변화시키고도 남을 것이다! 크고 온전한 믿음이다!

 

여인의 믿음

1. 이 여인의 믿음은 겸손했다. “옳습니다마는 개도 부스러기를 먹습니다하는 것은 자기를 개로 인정하는 겸손과 부스러기라도 달라고 말하는 지혜를 보여준다. 믿음의 성장은 낮아지는 과정이다. 자기를 높이 보는 사람은 어리석은 사람이다. 영적 세계에서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다! 교만한 마음에 얼마나 은혜를 담기가 힘든지 날이 갈수록 뼈저리게 느낀다. 교만하면 쉽게 실망한다. 남을 비판하느라 자기를 보지 못하고 하나님이 안 보인다. 교만하면 선입견이나 자기주장이 앞선다. 말씀이 잘 들리지 않기 때문에, 절대 영적 생명을 누릴 수 없다. 교만하면 영적으로 파산한다.

큰 믿음의 사람은 자기를 깊이 성찰할수록 자신의 부족함을 잘 안다. 바울도 죄가 많은 곳에 은혜가 많다하였다. 믿음이 크고 성숙할수록 진심으로 나는 죄인입니다하게 된다. “내가 뭐 부족한 게 있냐?” 하는 것은 믿음이 적은 어리석은 사람의 얘기다. 겸손한 가나안 여인을 주님은 큰 믿음의 소유자로 인정하셨다. 개라는 용어가 가리키는 뜻은 이방인, 남창, 적을 의미한다. 가장 더럽고 상종못할 존재라는 표현이다. ‘주님, 개와 같은 어리석은 나를 불쌍히 여기십시오.’ 얼마나 진실하게 자기의 연약함과 부족함을 인정하느냐가 얼마나 성숙한 믿음이냐를 결정하는 척도가 된다.

 

2. 이 여인의 믿음은 예수만 바라보았다. 자기 기분의 믿음, 어울리는 믿음, 자기 소원을 이루는 믿음에 머물러 있지 않고, 예수를 바라보아야 한다. 얼마나 자기를 극복하느냐, 넘어서느냐, 그리하여 예수 앞에 나아가느냐가 믿음의 성숙을 나타내는 결정적 요소이다. 그는 자기 문제를 가지고 예수 앞에 나아갔다. 예수님과 대화했다.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만난다. 예수님의 인정을 받는다. 오직 예수께 집중한 것이다!

어떤 사람이 교회에 왔다가 앞사람 때문에 은혜가 되지 않아서 나오지 않기로 했다. 그 앞사람은 기도할 때 머리를 좌우로 흔들면서 끙끙 앓는 소리를 내더란다. 도무지 이상해서 교회 다니지 않겠다고 했다. 얼마나 기분 나쁘고 불쾌했으면 그랬을까? 그러나 또 한 편으로 보면 그 사람을 보지 말고 예수님을 더욱 바라보았으면 어땠을까? 그 사람 때문에 예수님 바라보는 데 실패했다. 머리를 흔들며 끙끙 기도하는 게 못 참겠으면, 다른 자리로 옮겨가 예배드리면 어떨까? 우리의 초점을 어떻게든 예수께로 맞추어 보자! 뭐가 되도 되지 않겠나?

교회에서 사람을 찾고 자기만을 찾으면 예수님을 잃는다. 교회에 왔으면 신 앞에 선 단독자로 먼저 예수께로 직진해야 하지 않을까? 예수님을 바라보고, 만나고, 대화하고, 고침 받고, 인도함을 받도록 하자. 어떻게든 예수님을 향하여 손을 내밀어 보자. 방해되는 게 있다면 먼저 나를 바꾸어보고, 그래도 안 되면 피해보고 다른 길로 나아가 보자. 목사님이나 지도자는 인도자요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에 불과하다. 손가락을 통해 가리키는 달을 바라보라. 매 주일마다 예수님께 좀 더 관심을 집중하면 더욱 큰 은혜를 받을 것이다. 그렇게 온전한 믿음을 가지고 나서 이웃과 친구도 하고 그룹과 어울리기도 하라!

 

3. 이 여인의 믿음은 오래 참음으로 실천했다. 실천! 한국교회는 어느 때보다 믿음의 실천이 필요하다. 생각만 하는 믿음이 있다. 말만 앞세우는 믿음도 있고. 그러나 언제까지 말만 앞세우고 생각만 할 것인가? 실천하는 믿음을 보이라! 가나안 여자는 화를 내지 않고 포기하지 않았다. 문제, 고통, 시련이 있을 때 오래 참음으로 실천해야 한다. 교회에 쉽게 삐치는 사람들이 있다. 무어 그리 속상한 게 많고 섭섭한 게 많은지 늘 불평이 있고 입이 부어있다. 그러니 자꾸 시험이 다가온다. 쉽게 흔들리지 않고 믿음을 실천하면 마귀도 어쩌지 못할 텐데, 삐치는 것은 마귀에게 틈을 보이는 것이다. 지도자의 말을 오해하여 상처를 입거나 자기들끼리 시험에 빠진 교인들은 믿음을 실천하지 않고 넘어진 것이다.

온전한 믿음이 되려면 걸려 넘어지지 않고 실생활에서 믿음을 실천해야 한다. 히브리서 13장은 신앙인의 생활실천에서 중요한 점을 권면한 말씀이다. ‘모든 사람은 결혼을 귀히 여기고 침소를 더럽히지 않게 하라. 음행하는 자들과 간음하는 자들을 하나님이 심판하시리라. 돈을 사랑하지 말고 있는 바를 족한 줄로 알라. 그가 친히 말씀하시기를 내가 결코 너희를 버리지 아니하고 너희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 신앙실천에서 제일 문제가 되는 것이 성과 경제에 대한 문제이다.

내 안의 욕심을 제어하고 거룩한 생활을 하는 것이다. 이 세대는 음란과 거짓으로 가정의 거룩함을 위협한다. 또한 돈을 지나치게 사랑하여 많은 사람들이 유혹에 빠진다. 혼인은 소중하니 모든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이 맺어주신 이 결혼관계를 소중히 지켜나가야 한다. 결혼을 소중히 여기고, 배우자를 믿음으로 받아 결혼생활을 행복하게 가꾸어야 한다. 또한 그리스도인의 생활에서 돈을 어떻게 쓸 것인가 하는 문제가 점점 중요해지고 있다.

성경은 돈이 행복에 필요하지만, 탐욕으로 죄짓지 말고 자족하는 마음으로 살 것을 명령한다. 하나님이 허락하셔서 부자가 된다 해도 깨끗한 부자가 되어야 하고, 가난하게 살더라도 추하고 불행하게 살지 말고 당당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 자족하는 것과 허락하신 물질을 먼저 하나님께 헌신하고 바르게 쓰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생활에 합당한 태도가 아닐까? 참 행복은 주님 안에 있다. 이것을 보여줄 때 그리스도인의 삶이 세상에 희망이 될 것이다.

 

큰 믿음, 소원을 이루는 믿음

주님은 여인의 믿음이 큰 것을 보시고(!) 그 질병과 문제를 해결해 주셨다. 이 여인의 믿음은 겸손한 믿음이고, 주님만 바라보는 믿음이었으며, 오래 참음으로 실천하는 믿음이었다. 우리도 수로보니게 여인처럼 성숙한 믿음 온전한 믿음으로 나아가기를 바란다. 성숙하고 온전한 믿음은 소원을 이룬다! 주님은 여자야 네 믿음이 크도다!” 하시며 소원을 이루어 주셨다. 돈이 없다고 원망하며 도와주는 사람이 없다고 핑계하지만, 결국은 믿음의 문제다. 교회의 선교가 안 된다, 부흥이 어렵다고 하지만 이 또한 믿음의 문제다! ‘주여, 나의 믿음 없는 것을 도와주소서!’ 간절한 심정을 가지고 더욱 큰 믿음 주시기를 기도하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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