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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포도주를 새 부대에! (마가2:18-22) [2020년 10월 25일, 종교개혁 503주년/ 성령강림후 21주일]
2020-10-24 13:53:31
박신진 목사
조회수   46
설교일 2020-10-25
설교말씀 마가2:18-22
설교제목 새 포도주를 새 부대에!

새 포도주를 새 부대에!

마가2:18-22

20201025[성령22, 종교개혁503주년]

 

16세기 종교개혁은 사실 성직매매에서부터 시작되었다. 독일 브란덴부르크의 알브레히트라는 욕심 많은 주교가 있었다. 그가 마그데부르크의 주교로 임명을 받았다. 주교는 요즈음 감독이다. 말하자면 동부연회 감독이 된 것이다. 그러나 여기에 만족하지 않고 할버쉬타트 교구의 관리자 주교직까지도 함께 얻었다. 그런데 이것도 만족하지 않고 마인츠 교구의 대주교가 공석이 되었을 때 대주교직도 얻으려고 했다. 말하자면 어떤 목사가 동부연회 감독에다 호남연회 관리감독까지 겸직했는데, 이제는 감독회장도 함께 하려고 했던 것이다.

대주교는 황제를 선출할 수 있는 엄청난 권력을 가지고 있었다. 문제는 당시 독일천주교회법에 의하면 교구 하나의 사제직만 가질 수 있었는데, 두 개 주교직을 얻고도 또하나의 대주교 자리까지 얻으려 했다. 교황청에서는 허락이 나올 수 없는 위법이었다. 그러나 뇌물은 그때도 통했던 것 같다. 보통 뇌물도 아니고 어마어마한 큰 뇌물이었다. 교황청은 성베드로 성당을 재건축 중이어서 그런 큰돈이 필요했기 때문에 서로 양해하고 받아들이기로 거래가 성사되었다. 드디어 알브레히트 주교는 엄청난 돈을 주고 마인츠의 대주교까지 되었다.

그러나 강력한 교권을 손에 쥔 알브레히트 대주교는 뇌물도 자기 돈으로 주기가 아까웠다. 그래서 어마어마한 뇌물을 당시 자본주의 초기 은행인 아우크스부르크시의 갑부 야콥 푸거라는 사람이 은행을 설립하게 해서, 거기서 돈을 빌려서 교황청에 보냈다. 이걸 갚으려고 기발한 아이디어를 하나 내었는데, 그것이 바로 교황청의 이름으로 발행하는 면죄부였다. 면죄부란 가톨릭교회가 찍어내는 부모님이나 조상의 죄를 면해주는 티켓이었다. 면죄부를 팔면 사람들이 살 것이고 엄청난 금액을 모을 수 있을 거였다. 그러면 면죄부 수입의 50퍼센트를 알브레히트가 가지고, 교황청이 나머지 50퍼센트를 가지는 방식이었다.

결국 면죄부는 판매되었고, 성베드로 성당 건축기금과 푸거은행 대출금도 상환되었다. 욕심 많은 주교의 성직 욕심에서 면죄부가 탄생했고, 면죄부는 단순히 가톨릭교회의 금융사기 같은 것에서 머물지 않고 전체 교회의 비리와 불신앙, 위선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건이었다. 이 상황을 보고 참다못한 젊은 신부 루터가 의분을 가지고 이 문제를 집중적으로 다룬 95개조 논제를 자기가 가르치던 대학채플 대문에 붙였고, 여기에 독일 지방정부의 대표인 제후들이 열광적으로 참여하여 교황청에 항거한 것이 바로 종교개혁의 시작이 되었다.

 

오늘은 종교개혁 503주년 기념주일이다. 종교개혁을 기억하고 오늘 교회개혁의 동력으로 살리려는 주일인 것이다. 개혁을 말하면 대부분의 교인들은 자기와는 상관없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골치 아픈 문제를 들고나와 신앙생활을 피곤하게 하느냐고 한다. 그러나, 개혁은 단순히 교회 지도자들이나 개혁주의자들만 관심하는 문제일 수 없다. 교회를 개혁하는 일은 미룰 수 없는 시급하고 중요한 일이다. ‘개혁교회는 계속 개혁되어야 한다.’ 우리 시대는 급격한 변화를 경험하고 있는데, 교회는 그 변화의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고, 사회로부터 지탄을 받고 있다. 그만큼 교회와 우리 신앙이 개혁을 요구하는 때가 되었다.

예전에는 개혁을 말하는 사람들은 믿음이 없고 부흥에 관심이 없다고 했다. 부흥을 말하던 분들, 부흥사들은 절대 개혁을 말하지 않고 오히려 개혁의 대상일 뿐이었다. 개혁과 부흥은 서로 반대되는 것이요, 상충한다고 보았다. 그러나, 2000년대를 지나면서 교회와 신앙이 개혁되지 않고는 진정한 부흥, 지속적인 부흥이 안된다는 것을 알았다. 동시에 교회개혁도 부흥으로 뒷받침이 되지 않고는 말로만 끝난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지금은 개혁과 부흥이 함께 이뤄져야 할 때이다. 지금은 개혁 안에 부흥이 있고, 부흥 안에 개혁이 있는, 새로운 모델의 목회를 연구하고 시작해야 할 때다.

 

유대인들은 포도주가 늘 식탁에 올라왔고 포도주 저장법을 익숙하게 알고 있었다. 오래된 포도주는 헌 부대에 담겨있는데, 그것은 이미 발효가 끝나고 숙성되고 있기 때문이다. 발효가 충분히 된 헌 포도주는 헌 부대에 담겨있어야 잘 보관된다. 그러나 새 포도주는 왕성하게 발효가 되고 가스가 나오기 때문에 헌 부대에 둘 수가 없고 새 부대를 사용해야 했다. 만약 새 포도주를 헌 부대에 담는다면 굳어진 헌 가죽부대가 맹렬한 발효가 이뤄지는 새 포도주를 감당할 수 없어 부대가 터지는 사고가 날 것이다. 그러면 부대도 버리고 포도주도 버리게 된다.

이 말씀은 어떤 사람이 세례요한의 제자들은 금식하는데 왜 예수의 제자들은 금식하지 않느냐고 물을 때 해주신 말씀이다. 또 이 말씀의 앞부분에는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식사하시다가 바리새인의 서기관들에게 비난받으시는 내용이 나온다. 옛 관습, 그들의 전통으로는 경건한 종교인은 금식해야 했고, 세리나 율법에 규정된 죄인들과는 함께 자리를 하지 않는 것이 마땅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것이 예수님의 복음에는 합당하지 않음을 말씀하고 있다.

루터시대도 그랬다. 그 시대는 고대의 모든 문헌들이 새롭게 해석되어서 새로운 가치관, 계몽의 여명이 눈뜨는 시대였다. 중세의 낡은 교회의 전통과 권위는 더 이상 사람들을 주장할 수 없었다. 교황의 절대권위에 지방제후들은 무조건 순종할 수 없었다. 이제는 새로운 시대가 열려 새로운 믿음과 가르침을 필요로 할 때였다. 과거 천년의 중세 교회전통으로는 세상을 품을 수 없었던 것이다. 루터는 새 부대를 준비하는 선구자였다. 이제 시대변화라는 새 포도주는 개신교회의 새 가르침이라는 새 부대에 담아야 했다. 루터의 95개조 논제는 바로 시대변화라는 새 포도주를 담는 새 부대였던 것이다.

한국 여자와 결혼해서 한국의 신학교에 와서 가르치는 독일 사람 말테 리노 목사님이 4년 전에 독일에 가서 루터교회 예배에 참석했는데, 여자 목사님이 설교하면서 주일예배에 꼭 참여하지 않아도 된다고 설교하는 것을 듣고 깜짝 놀랐다고 한다. 한국교회 목사들은 절대 그렇게 설교하지 않는다. ‘주일을 성수하라, 절대 교회에 빠져서는 안 된다.’ 그렇게 설교하는 것이다. 독일교회의 그 여자목사 얘기를 더 발전시키면 교회 나오지 않아도 된다는 얘기가 아닌가!

그런데 그 설교의 배경은 로마서 12장의 말씀, ‘너희 몸을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이다. 즉 성전예배, 교회예배도 중요하지만, 하나님이 받으시는 진정한 예배는 몸 전체로 드리는 인격적인 예배, 생활의 예배라는 말이다. 그 목사님의 설교는 주일에 오지 않아도 된다는 데 초점이 있는 게 아니고, 생활의 예배, 전인격적인 예배가 중요하다는 것에 있었다. 주일예배는 정성껏 드리고 나서 생활은 전혀 믿음 없는 자처럼 살거나, 성전예배는 뜨겁게 드리는데 인격적으로 그리스도인이라고 할 수도 없는 사람이 되어 있는 것은 잘못이라는 것이다. 차라리 나오지 않음만 못하다는 지적이다. 주일날 교회에서 드리는 예배도 중요하지만, 이후에 몸으로, 생활로 이어지는 예배가 참으로 중요하다는 것이다!

지금 코로나19 사태로 한국교회는 충격을 받았다. ‘예배에 나오지 마시오, 집에서 영상으로 예배해요!’ 하는 것이다. 사실 그동안 한국교회는 교회에 와서는 다 선교사요 순교자처럼 믿음을 뜨겁게 고백하는데, 교회 밖에 나가서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가정이나 직장에서, 친구들과 취미활동을 하거나 자기 인생의 현재와 미래를 만들어나갈 때 그 믿음이 그대로 살아있느냐 할 때, 매우 의심스러웠다. 우리들의 믿음은 교회중심이요, 예배중심이요, 주일중심인 것이다. 이것이 물론 필요하다. 그러나 여기에 머물러 있어서는 안 된다! 그러면 선데이 크리스천이 되고 말기 때문이다. 우리 시대는 새로운 부대가 필요하다. 즉 생활신앙, 인격신앙, 사회적 신앙이다. 그러면 오늘 말씀에서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새 부대는 어떤 신앙, 어떤 종교를 말하는가?

 

1. 예수님의 복음은 금식의 종교가 아니라 축제의 종교다. 슬픔과 탄식, 엄숙한 형식에 머무르지 않고, 기쁨의 노래와 춤, 활기있는 감동을 향해 나아간다. 신랑과 함께 있는 잔치에는 금식할 수 없다는 말씀이 바로 그것이다. 주께서 주신 은혜와 행복이 넘치는데, 종교적인 엄숙함을 꾸밀 필요가 어디 있겠느냐는 것이다. 내가 뭔가 도덕적이고 율법적인 것을 준비해야 예배가 된다고, 예배의 중심, 초점이 내게 있다고 생각한다. 사실은 세상을 창조하시고 구원하신 하나님이 예배의 중심이요 초점이다. 우리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이뤄주시는 일을 받고 감격하고 감사하면 되는 것이다.

한국의 기독교는 유교적인 문화배경에 전해졌기 때문에 유교적인 영향을 많이 받고 있는데, 그 중에 하나가 엄숙주의다. 예배를 시작할 때 묵도하면서 시작하는 게 기독교 문화가 되었다. 예배에서 기쁨과 감동을 추구하지 않는다. 장례식과 같이 무거운 분위기가 지배한다. 이러니, 살아있는 예배가 아니고 형식적인 예배가 되어버릴 때가 많다. 신랑이 있는 동안에는 금식할 수 없다는 주님의 말씀은 예수와 함께 기뻐하라, 예수와 함께 마음껏 행복하라, 즐거워하라는 말씀이다. 신앙은 기쁨이며, 예배는 축제다!

이미 교회는 예수님의 정신을 따라 축제의 종교를 향해 나가고 있다. 여러분, 우리가 이 흐름을 막을 수 없다. 제가 목회 시작하던 80년대만 해도 교회에다 드럼을 놓고 키보드를 치면 이단이라고 했다. 그러나, 이제 현대적 복음찬양을 하지 않고 찬송가만을 부르면 청년 학생들이 모이지 않는다. 원주 있을 때, 20년 전에 어느 가을에 소리엘이라는 남성듀오가 교회 왔을 때 깜짝 놀랐다. 그전에 보지못한 생기있는 모습으로 예배드리는 청년학생들 때문이었다. 학생회장은 그날 이후에 교회 홈페이지에 글을 올렸는데, 자기 생애 최고의 날이었다고 하더라. 감리교 신학대학에 지원하는 학생들 중에 반 정도가 찬양에 은혜를 받아 감신에 왔다고 한단다.

아직도 기쁨과 축제를 향하는 교회의 흐름을 이해하지 못하고 과거의 보수적 엄숙주의만을 추구하는 교회와 교인은 복음의 낙오자가 되고 만다. 주 안에서 감격하라! 기뻐 뛰라! 춤추며 뛰놀라! 함께 서로 다른 사람들과 어울려 평화를 노래하라! 이것이 하나님이 이 시대의 교회에 요구하는 새 부대다.

 

2. 예수님의 복음은 전통의 내용을 지키는 획일적인 종교가 아니라 살아있는 다양한 사람들과 함께 어울리고 살아가는 개방과 용납의 종교다. 그들은 종교적으로 금지된 사람과 세리를 멀리할 것을 가르쳤으나, 예수님은 그들을 구원시키러 왔다고 하신다. 예수를 따라가는 교회가 세상에 대하여 담을 높이 쌓고 폐쇄되어 있기보다는 주님처럼 세상에 개방되어 있고 세속의 여러 가지 입장을 이해하는 교회가 되어야 한다. 마음을 열고 오늘의 세리, 오늘의 종교적 죄인들을 받아들이고 이해하는 여러분이 되라.

존 윔버는 교회에서 청년들이 떠나가는 것은 그들을 이해하지 못한 데에 원인이 있다고 생각하고 세속의 노래와 분위기를 예배에 접목시키고, 청년들의 눈높이에 맞추어 아주 대중적이고 쉬운 예배를 드렸다. 그러자, 청년들이 교회로 돌아오고 주님께로 돌아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은사운동이라 하며 많은 기도운동을 지속하였다. 악이 물러가는 체험, 감정이 완전히 해방되어 마음껏 웃는 경험 등, 은사운동이 일어났다. 그러자 그분이 담임하는 빈야드교회가 얼마나 부흥했는지 그 마을 주민보다 교인들이 더 많아졌다.

우리와 다른 방식으로 믿는 사람들이나, 세속 문화에 대하여 담을 높이 쌓고 폐쇄된 신앙생활은 이제 재고해 보아야 한다. 진리를 보수한다는 미명 아래 담을 더 높이 쌓고, 현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을 다 부인하고 문화를 다 범죄시하는 것은 말씀을 오해하는 것이다. 교회는 오랜 역사 속에 시장과 학교와 병원과 함께 있었다. 세상을 등지고 산속에 들어가지 않았다. 세상속에 들어가 문화에 파묻혀 물들어버리면 안되지만, 문화 속에 들어가 문화를 변화시키는 주체가 되어야 한다. 일어나 서서 세상과 함께, 세상 안에서, 세상을 변화시켜라!

 

3. 새 포도주이신 복음을 잘 지키고 사용하기 위해서 교회의 노장화를 극복해야 한다. 교회의 어른들은 어려운 시절에 교회를 지켜왔던 훌륭한 믿음이 선진들이다. 이분들을 존경하고 그 믿음을 잘 배워야 한다. 그런데 이와 함께 이 시대의 교회는 젊은이들에게 기회를 주고 교회의 중심에 서도록 해야 한다. 그래서 젊은이들은 어른들의 사랑과 격려 속에서 배우고, 어른들은 젊은이들이 힘있게 서는 것을 보면서 기뻐하며, 서로 협력하고 동역해야 한다. 금방 늙고 병들어 일하지 못하게 되고, 시대가 너무 빨리 변하기 때문에 나이 많은 이들은 도저히 따라갈 수 없다. 늦기 전에 젊은 일꾼들을 빨리 키워야 한다.

저는 시카고의 윌로우크릭 지역교회를 여러 번 방문했던 기억을 잊지 못한다. 그곳은 지금은 수만 명 모이는 교회지만, 빌 하이벨스 목사님이 청년 시절에 자기 후배 청년 몇 십명으로 시작한 교회다. 빌은 주말에 지역의 클럽이나 카페를 빌려서 청년들을 모이게 했다. 그들은 모여서 아주 편하게 차를 마시고 간식을 먹으며 복음을 이야기했다. 아주 자유롭고 영감이 충만한 복음성가를 부르고 소그룹모임을 가졌다. 그 청년들이 주체가 되어 다른 청년들에게 복음을 전하였고, 교회를 이루기 시작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 교회는 청장년과 청년이 중심을 이루는 교회가 된다. 그 모임이 커져서 정말 새로운 형태의 교회문화를 세웠다. 그 교회가 초창기부터 시작한 ‘seeker's service'(구도자예배)는 세계적으로 모방하는 새로운 예배모델이 되었다.

기독교 문화를 세워가도록 도와야 한다. 서울의 몇몇 교회는 이런 것에 눈을 떠서 이미 교회 안에 청년교회를 세워서 청년들을 활성화시키려 하고 있으며, 몇몇 교회는 청년들이 부흥되는 대표적인 교회로 소문나 있다. 교회에서 모두가 자기 목소리를 낼 수 있었으면 좋겠다. 전에는 조용하라, 순종하라는 것이 미덕이지만, 이제는 경우에 맞게 자기 소리를 내라, 참여하라, 봉사하라는 것이 미덕이다. 무사안일, 복지부동, 비개성화의 길을 걷고 있는 기독교가 창의성과 새 도전이 인정받는 풍조를 일으켜야 한다. 새 포도주를 새 부대에 담자!

 

개혁할 때의 자는 가죽 () 자다. 개혁이라는 말의 뜻은 가죽을 벗기는 것이다. 가죽을 벗겨서 새가죽을 입히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가죽을 벗기려면 아프고 힘이 들기 때문에 틀림없이 반대에 부딪친다. 그러나 개혁을 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은, 시대가 이미 개혁을 요구하고 있고 개혁이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개혁 안 하면 밀려난다.

장사나 사업을 할 때도 남 따라 하는 사람들은 늘 돈을 못 번다. 한때 메추라기 농장이 돈번다는 소문을 듣고 그때서야 배워가지고 메추라기 농장 시작한 사람들은 다 망했다. 신선초 잘된다고 소문 듣고 흉내내던 농사꾼들도 같은 운명을 맞이했다.

교회도 시대변화에 둔감하고 사람들의 영적 요구에 무감각하면 부흥되기 어렵다. 다른 사람이 다 개혁을 이룬 후에 우리도 따라가려고 하면 늦다. 개인신앙도 고리타분하게 믿지 말고 좀 개혁적이 되시라! 새 포도주를 새 부대에! 여러분의 개인 신앙이나, 우리 교회의 나아가는 길에 개혁을 이루어 신앙과 삶이 새로워지기를 바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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