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전문
설교일 | 2025-02-0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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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말씀 | 민6:22-27 |
설교제목 | 제사장의 복을 받자! |
제사장의 복을 받자!
민6:22-27
2025년 2월 2일 [주현절 넷째주일]
나는 어릴 적부터 교회에서 ‘복 준다’ 하는 소리를 싫어했다. 기독교가 기복종교로 타락하는 듯이 느꼈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교회에서 복을 선언하며 복을 종교적으로 포장해서 팔아넘긴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교회생활을 계속하면서, 특히 목회를 하면서부터 차츰 하나님이 내려주시는 복이 얼마나 중요하고 귀한가 하는 것을 깊이 느낀다. 인간은 하나님으로부터 생명을 받아 태어나고 살면서 하나님이 위로부터 베풀어주시는 복을 받아 누리며 살고 있다. 하늘 복이 없다면 우리의 삶은 외롭고 춥고 메마를 것이다.
요즘 자연과 친하게 지내는 사람들 중에 ‘백페킹족’이 있다. 모든 장비들을 작고 가볍게 만들어 한 배낭에 다 넣어가지고 산에서 하루 비박을 하면서 간단한 음식도 해먹고 등산을 하는 사람들을 가리킨다. 밤에 춥고 바람 불고 적막한 산에서 지내면 자연의 진면목을 만나는 묘한 느낌과 맛이 있다 한다. 어떤 때는 너무 추워서 산 위에서 자다가 깰 때도 있는데, 새벽을 기다리며 바람이 좀 덜 부는 쪽으로 피신해 있다가 아침을 맞이하기도 한단다. 해가 뜨기 직전에 춥고 떨리다가 해가 딱 떠오르는 순간! 갑자기 주위가 온화한 느낌이 확 들어온다고 한다. 그때 ‘아, 우리는 해를 의지하고 살고 있구나!’ 하는 깨달음이 든다고 하더라.
복도 그렇다! 하나님이 무슨 설날 세뱃돈 주듯이 그렇게 물질적인 복을 막 준다는 것이 아니라, 하늘복이 따뜻한 햇볕같이 임하여 우리의 삶이 살만한 따뜻함으로 채워지는 복이다. 최선을 다하여 살아가는데, 안 되는 듯 하다가도 뭔가 풀리는 것을 느낄 때가 있지 않은가? 인생 혼자만 힘들게 달려가는 것 같았는데 가다보니 비슷한 사람들이 함께 달리고 있어 서로 힘이 되는 경우가 있다. 대지와 나무들이 햇볕이 필요하듯이, 우리는 하나님으로부터 내려주시는 복이 필요하다! 내일이 입춘인데, 설 지내고 봄을 맞이하는 여러분에게 하나님의 복이 임하기를 바란다!!
구약에서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복을 빌어주는 사람들이 제사장들일 것이다. 히7:6-7을 보면, ‘레위 족보에 들지 아니한 멜기세덱은 아브라함에게서 십분의 일을 취하고 약속을 받은 그를 위하여 복을 빌었나니.’ 여기서 아브라함 시대에 멜기세덱이라는 인물은 아직 제사장이 나오기 전 고대에 제사장 역할을 한 사람이다. 이어서 ‘논란의 여지없이 낮은 자가 높은 자에게서 축복을 받느니라.’고 한다. 이 말씀처럼, 왕은 백성들을 축복하고, 어버이는 자녀들을 축복하며, 제사장은 성도들을 축복한다. 여러분 모두가 제사장들이 복을 선언할 때마다 풍성한 복을 누리는 인생이 되기를 바란다.
민수기 6장은 단 두 가지 내용만을 다루고 있는데, 첫째는 ‘나실인의 서원’이요(1-21절), 둘째는 오늘 본문인데 ‘제사장의 축복’이다. 이 두 가지 내용은 서로 관계가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제사와 복은 밀접한 관계라는 구약의 방식을 보여준다. 나실인이 자신을 구별하여 하나님께 제물로 드릴 때, 하나님께서는 제사장들을 통하여 삶의 구석구석을 축복하신다. 성도 여러분, 을사년 한해 동안 스스로를 거룩하게 지키고 바른 예배를 드리라. 그러면 교회 안에서부터 여러분의 삶의 이 구석 저 구석에 이르기까지 제사장의 축복이 흘러들어갈 것이다. 평생토록 거룩한 예배를 절대 놓치지 말고 드려라. 그러면 새벽 어두움과 추위를 뚫고 떠오른 태양이 대지를 온화하게 하듯이 삶이 복으로 가득찰 것이다!!
봄이 오는 동안, 입춘 정월대보름 우수에 이르기까지 절기를 지나면서, 우리는 복에 대한 소원을 품는다. 그 소원을 위해 자신의 몸과 마음을 새롭게 구별하는 기간이다. 이런 점에서 우리들의 새봄맞이는 나실인의 서원과 같은 의미를 갖는다. 집집마다 신년 대심방을 하는 마음으로 오늘의 이 본문은 드린다. 모든 교우들께 이 복을 선포한다. 이 기간에 제사장의 충만한 복이 예배에 임하기를!!! 제사장의 복은 곧 교회의 복, 믿음의 복을 가리킨다.
1. “너를 지키시기를 원하며”
‘여호와는 네게 복을 주시고 너를 지키시기를 원하며.’(24절) 지켜주시는 복이다!
무엇이 복인가? 상황과 사람마다 다를 것. 부귀 공명 장수 등등. 건강하기를 원하고, 부자 되기를 원하고, 명예롭기를 원하고, 외롭지 않기를 원한다. 이 모든 복 가운데 가장 기본적인 복, 그것을 잃어버리면 다른 모든 것이 의미가 없는 복이 무엇일까? 바로 안전한 것이다.
아이들, 여성들, 노인들, 안전하고 보호받기를 바란다. 모든 시간 모든 장소를 지키겠나? 하나님이 지켜주셔야 한다. 위험과 범죄로부터 시민을 어떻게 안전하게 지킬 수 있나? 폭력으로 폭력을 막을 수는 없다. 공권력도 한계가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모든 안전과 건강에 대한 대비를 하되, 하나님께서 올해에도 우리 건강과 가족들의 안전과 생업과 직장의 모든 삶을 지켜주시기를 기도해야 한다. 하나님은 그 손으로 우리 생명과 안전을 지켜주신다!
몸도 안전하게 지키지만 마음을 잘 지켜야 한다. 마음이 상하고 마음이 흔들리며 마음을 잘못 빼앗기면 큰일난다. ‘모든 지킬 만한 것 중에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잠4:23) 여러분 자녀들의 마음이 큰 상처를 입지 않아야 한다. 열등감이나 상처가 얼마나 평생을 힘들게 하고 무겁게 하는지!
살다가 어떤 일로 큰 상처를 받아 살 의욕을 잃어버린 남자에게 복음 전도자는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당신의 문제에 대한 해답은 여기에 있습니다. 주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셨을 때 그분은 당신의 죄를 담당하셨을 뿐만 아니라 당신을 담당하셨습니다. 그분이 못 박히셨을 때 당신의 옛사람도 그분 안에서 그분과 함께 이미 못 박혔습니다.”(웟치만 니, 그리스도인의 삶의 비결, p.36f)
물에 빠진 사람을 구하는 방법은 두 가지인데, 하나는 그 사람이 허우적거리다 힘이 다 빠지면 건져주는 방법이고, 또 하나는 그 사람을 때려 기절 시켜 육지로 끌고 나오는 방법이라고 한다(위의 책, p.38). 하나님은 우리가 할 수 없는 방법으로 우리 마음을 지켜주신다. 아무리 아프고 상처가 있을 때에라도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마음을 지켜주시면 된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몸과 마음을 안전하게 지켜주시기를 축복한다.
2. “은혜 베푸시기를 원하며.”
“여호와는 그의 얼굴을 네게 비추사 은혜 베푸시기를 원하며.”(25절) 은혜 베푸시는 복이다.
장사, 목이 좋고 기술이 좋으며 모든 준비가 잘 갖추어져도, 운이 따라야 한다. 즉 하나님의 도우심이 필요하다. 우리에게는 값없이 주시는 하나님의 도우심, 은혜가 필요하다. 가정, 좋아 죽겠어서 결혼, 참 어울리는 천생연분! 그러나 은혜가 필요하다. 은혜가 임하면 가정이 평안하고 잘 되는 가족이 된다. 대학 갈 때, 은혜가 필요하다. 열심히 공부하고 모든 노력을 다 하여 좋은 점수를 받았어도, 끝까지 하나님의 도우심이 필요하다. 일반적인 은혜이다.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에게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빌2:13) 우리만 행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도 우리 인생에서 우리와 함께 행하신다. 그래서 은혜이다.
그의 얼굴을 네게 비추사. 밤하늘을 밝히는 보름달을 보면 무언가 풍성함을 느낀다. 정월 대보름에 달을 쳐다보며 소원을 빈다. 그러나 보름달은 자기 스스로 빛을 발하는 것이 아니다. 지구 반대편에 있는 햇빛을 받아 반사할 따름이다. 따라서 빛의 근원인 태양이 가려진다면, 달은 단 한 줄기도 빛을 발하지 못한다.
연예인, 아름답게 보이는 데에는 조명발이 정말 중요하다고 한다. 조명을 잘 비추지 않으면 절대 뽀얗고 보송한 피부를 사진 찍을 수 없다고 한다. 요즘은 사람 앞에 설 때 조명에다 메이크업까지 신경을 써야 한다. 여러분의 인생에는 영적 조명발이 필요하다! 하나님의 은혜, 도우심이다.
어떤 교회에 부부가 교사와 공무원으로 안정된 생활을 하는 사람이 있는데, 착실하게 교회를 다닌다, 그런데 도무지 신앙에 성장이 없다. 항상 문제는 없으나 구원의 기쁨이나 파워있는 신앙생활이 아니다. 거기에 여동생이 교회에 전도받아 나왔다. 삶에 지치고 찌들려 힘이 하나도 없다. 얼굴이 시커멓고 주근깨가 다닥다닥 났다. 언니와 어떻게 저렇게 다르게 생겼나 싶었다. 그런데 교회에 나와 말씀을 두 주일 듣고 나더니 하나님의 은혜를 의지하기 시작한다. 기도시간에 눈물을 펑펑 쏟으며 전 존재를 하나님의 은혜에 의지하여 치유받고 회복하기 시작했다. 몇 달도 되지 않아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와 능력을 체험하는데, 사람이 얼굴색이 완전히 빛나고 밝아졌다. 신앙이 사람의 외모까지 그렇게 바꾸어 놓는 것을 사람들이 알았다고 한다. 하나님의 은혜의 복이 필요하다!
우리가 교회를 다니는데, 이 신앙생활은 은혜가 없이는 한걸음도 진행할 수 없다. 교회 오래 다녀도 도무지 발전과 성장이 되지 않고 신앙생활이 낡아지는 사람이 있다. 구원의 확신도 없고, 영적인 발전도 없으며, 도무지 변화되는 게 없다! 은혜 없이 신앙생활을 하기 때문이다. 자기 상식, 자기 노력으로 신앙생활을 하니, 율법적인 신앙에 머무르는 것이다. 영적 진보는 노력으로 되는 게 아니지 않나? 신앙생활은 세상에서 깨지고 부서져서 하나님께 나와 하나님의 은혜만을 간절히 구하는 사람들이 더 잘 할 때가 많다! 하나님께서 은혜 베푸시기를 축복한다!!
3. “평강 주시기를 원하노라.”
“여호와는 그 얼굴을 네게로 향하여 드사 평강 주시기를 원하노라 할지니라 하라!”(26절) 평강의 복이다!
아멘, 할렐루야 다음으로 많이 쓰는 히브리어가 샬롬이다. 평화다. 전쟁이나 불안이 없는 평안과 평화이다. 나라가 평화가 없으면 전쟁과 갈등이고, 개인이 평화가 없으면 불안과 불화이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평강을 주시는 분이시다. 우리는 두 가지 평화를 누린다. 주의 집에 거하는 평화와 이웃 간에 생겨나는 평화이다.
주님의 집에는 평화가 있다. 전쟁 중에도 거룩한 주님의 집은 보존되었다. 그곳은 전쟁을 잠시 멈추고 원수들이 함께 예배할 수 있는 거룩한 곳이다. 분주하고 소란한 생활 속에서도 우리 마음이 쉼을 얻을 수 있는 곳이며, 주님의 백성들이 모여 꿈을 나누고 아픔을 치유하는 곳이다. ‘사람이 내게 말하기를 여호와의 집에 올라가자 할 때에 내가 기뻐하였도다.’(시122:1) 이곳에 세상이 줄 수 없는 참 평안이 있다.
여러분, 교회에 올 때 마음의 평화가 있는가? 이곳은 누구든지 오라오라 부르시는 주님의 자비하신 손길에 붙들린 곳이다. 여기 오면 참 평화가 있다. 여기에 오면 눈물이 마르고 한숨이 걷어진다!! 그러므로 주의 집에 거하는 백성에게 복이 있다. ‘주의 제단에서 참새도 제 집을 얻고 제비도 새끼 둘 보금자리를 얻었나이다... 저희는 눈물 골짜기로 통행할 때에 그곳으로 많은 샘의 곳이 되게 하며 이른 비도 은택을 입히나이다.’(시84:3,6) 이곳에서 눈물이 변하여 샘이 되며, 광야가 변하여 옥토가 되는 은혜를 받기를 바란다.
하나님은 이웃과 함께 하는 평화를 축복하신다. 관계가 중요하다. 관계가 보배이다. 이런 관계가 깨어지면 사회적으로 죽은 것이다. 이것은 생물학적으로 죽은 것만큼 비참하다. 실제로 이렇게 될 때 자살하는 사람들도 있다. 형제와 친구 사이의 깨어진 관계는 갈등과 싸움의 원인이 된다. 화해해야 관계가 회복되고 평화를 이룬다. 누구와 관계가 깨어져 갈등의 골이 깊어졌을 때, 극단적인 선택으로 더 큰 싸움을 부르지 말라. 그럴 때 화목하게 하시는 주님의 평강이 임해야 해결된다.
부부 사이에 소 세 마리를 키우면 문제가 다 해결된다고 한다. “옳소, 맞소, 좋소!” 그러나 어떻게 사람이 이렇게 세 마리 소만 키울 수 있나? 교회에 나올 때 부부가 불화한 가정은 벌써 얼굴 색깔이 다르다. 아무리 감추고 속이려 해도 얼굴 근육이 경직되어 좀처럼 웃게 되지 않는다. 이럴 때, 예배를 통하여 여러분 자신을 온전히 주님께 드리라. 예배 속에서 오직 하나님만이 우리 가운데 나타나게 하시라. 하나님이 평강의 복을 주셔야 한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우리 사이에 있던 불화를 없애주시고 평화의 중매자가 되신다. 여러분이 예배에서 큰 은혜를 받으면, 화해는 차츰 따라오게 될 것이다.
지켜주시는 복, 은혜 베풀어주시는 복, 평강 주시는 복- 이 복을 누리기 바란다. 그런데 이 복이 어디에서 오느냐, 그걸 알아야 한다. 그 복은 하나님에게서, 하늘에서부터 온다. 신약이후에 부귀영화를 누린 사람들은 많다. 그런데 구약에서 제일 좋은 옷을 입고 좋은 것을 먹으며 호사했던 사람은 솔로몬을 대표적으로 들 수 있다. 그런데 솔로몬은 하늘에서부터 오는 복을 먼저 잘 붙들었기 때문에 그런 복을 모두 받았다. 복 달라고만 기도하기 전에 정말 여러분은 무엇을 우선으로 삼고 사는지를 생각해보라!
솔로몬은 왕이 될 때 먼저 모든 것을 마다하고 하나님께 기도하며 일천번제를 드렸다. 그리고 일천번제를 드리고 났더니 하나님이 응답을 주셨다. 지루하고 거창한 예배였다. 그것을 끝까지 하고 나니까 하나님이 응답하셨다. “내가 네게 무엇을 줄까? 너는 구하라!” 하셨다. 솔로몬이 필요한 것을 하나님이 아신다. 그런데 솔로몬의 믿음을 시험해보려 이렇게 물으셨다. 그때 솔로몬은 “나는 어린아이입니다. 이 백성을 다스리려면 제일 필요한 것이 지혜 같습니다. 지혜를 주십시오!” 하였다. 열왕기하에 보면 ‘듣는 마음을 주사 주의 백성을 재판하여 선악을 분별하게 하옵소서!’라고 하였다. 같은 말이다. 왕상3:10, ‘솔로몬이 이것을 구하매 그 말씀이 주의 마음에 든지라.’
솔로몬이 몇 백번의 제사를 드리면서 무엇을 구하였을까? 장수도, 부귀도, 전쟁의 승리도 구하였을 것이다. 그러나 제사를 드릴수록 기도와 소원이 더욱 성숙해진 것이다. ‘하나님이 주시는 지혜만 주십시오, 그 외에는 다른 것은 하나님이 알아서 해주세요!’ 유대인들은 지금도 어릴 적에는 어머니를 중심으로 철저히 율법교육, 신앙교육을 시킨다. 14세가 되면 ‘견진’이라고도 하는 성인식을 베푸는데, 거창하게 친척들까지 불러다가 한다. 그러고나면 부모가 할 일은 다했다고 여긴단다. 14살까지 성경을 철저히 가르치면 된다. 그다음에는 ‘네가 알아서 살아라! 네 복대로 살아라!’ 라는 것이다. 아파트 사주고 과외시켜 주고, 시집장가 보낼 때 바리바리 싸주고 할 필요 없다. 하늘복을 이미 받았기 때문이다.
올해, 복 제대로 받으라!! 1)안전하게 보호하시고 지켜주시는 복이 있기를 바란다! 2)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푸시기 바란다! 3)평강 주시기를 원하노라! 이 모든 복은 믿음으로부터, 하나님으로부터 온다. 유대인들, 단일민족으로는 세계에서 노벨상을 제일 많이 받았다. 지구상에 1300만 명밖에 없는 민족이 노벨상을 30% 가까이 받았다. 왜 하늘복이 임하였기 때문이다. 이 사람들은 성경을 가까이 하는 사람들이다.
여러분과 가문에 제사장의 축복이 임하기를 진정으로 바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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