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전문
설교일 | 2025-06-22 |
---|---|
설교말씀 | 골3:15-17 |
설교제목 | 감사하며 삽시다! |
감사하며 삽시다!
골로새3:15-17
2025년 6월 22일 [성령강림후 둘째주일]
오늘, “성령받은 사람들! 감사하며 삽시다!” 외치고 싶다! 어느 목사님이 유럽에서 여러 나라의 그리스도인들이 참여하는 연수과정에 참여했다가, 한번은 점심먹는 식탁에서 아프리카에서 온 몸집이 좋은 흑인 참가자가 예고도 없이 자기 몫의 음식을 듬뿍 건네주었다고 한다. 그 목사님은 당황하고 별로 내키지 않아 잠잠히 앉아있었는데 옆에 있던 백인 친구가 충고하기를 여자의 호의를 받았으면 우선 감사하다는 말부터 하는 법이라고 일러주는 바람에 엉겁결에 고맙다는 인사를 하였다고 한다. 음식을 나누어주는 것에 대해 감사로 응답하지 않으면 마음이 머쓱할 뿐 아니라 뭔가 불편한 관계를 극복하기 어려운 면이 있지 않겠는가? “감사합니다!” 표현하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은 확실히 사람 사는 생활에서는 상당한 차이가 있는 것 같다. ‘잘 사는 사람’은 항상 감사를 표현할 줄 아는 사람이다.
구원받은 하나님의 백성은 언제나 감사하며 산다. 매일 천지를 지으신 하나님께 감사하고 건강하게 오늘도 살아가는 것에도 감사드린다. 형통하고 잘될 때 잊지 않고 감사를 생활화하다 보면, 어렵고 힘든 때에도 저절로 감사를 잊지 않게 되고, 그러다보면 역경과 시련을 어렵지 않게 이겨낼 수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구원받은 은혜의 감격과 기쁨이 모든 어려움과 시름을 이기고도 남기 때문이다. 어두움과 죄악이 우리를 얽어매도 예수로 말미암아 찬송을 부르며 인생길을 갈 수 있다. 물론 인생은 만만치 않은 어려움을 우리에게 준다. 어떤 때는 비바람이 우리 앞길에 들이쳐서 도저히 감사하며 찬송하며 갈 수 없게 만들기도 한다. 그때 얼마간 감사가 그친들 또 어떨까? 비바람이 그치면 곧 평온을 찾고 다시 감사할 수 있을 것이다. 바울은 우리에게 “너희는 감사하는 자가 되라!”고 권면한다.
왜 우리가 감사하는 사람이 되어야 할까? 어렵고 힘들 때에도 하나님이 주신 것이 훨씬 많기 때문이다. 우리는 아무 것도 가지고 온 것이 없지만 많은 것을 가지고 누리며 산다. 마음이 건강해지려면 감사를 표현할 줄 알아야 한다. ‘너희는 평강을 위하여 한 몸으로 부르심을 받았나니, 너희는 또한 감사하는 자가 되라.“(오늘 말씀 15절 하반절) 거의 습관적으로 감사를 말하는 서양사람들에 비하여 나는 확실히 감사의 표현이 능숙하지 못하고 좀 부족한 편이다. 나이가 들어가니까 나도 모르게 감사와 친절이 줄어들 때가 있다. 아내가 바꾸 조언을 해준다, “웃으세요, 사람들에게 친절히 대하세요.”
처음 미국에 갔을 때, 도서관이나 휴게실 같은 데서 미국 친구들을 만나면 무조건 웃고 말을 걸어준다. 처음에는 ‘아는 사람인가, 나는 모르는데...’ 싶어 매우 당황했다. 그런데 모르는 사람이나 처음 만나는 사람이라도 우선 웃고 호의를 표한다는 것을 아는 데에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요즘 대통령 트럼프가 전세계민들을 대상으로 가끔 무례하게 해서 문제지, 잘 보면 하나님을 믿는 미국인들은 항상 감사를 표현하는 “나이스한!” 사람들이다.
우리 생활 속에 감사의 표현이 빈곤하면 감사의 마음도 작아지고 감사하는 마음이 사라지면 불평과 원망이 자리잡게 되어 우리 마음이 병들게 된다. 우리 몸에서 어떤 부분을 계속 쓰지 않으면 아주 쓸 수 없게 되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감사의 마음을 자꾸 사용하고 발전시켜야 감사하며 나눌 줄 아는 행복한 삶을 누릴 수 있다. 할 수 있는대로 감사하라, 행복이 가까이 찾아올 것이다!
강단에 서보면 우스운 얘기를 해도 웃음을 참으며 무표정하게 앉아있는 사람들이 있다. 여성들이 잘 웃는 편이고 순박한 사람들일수록 잘 웃는 편이다. 연대교수 지내시다 돌아가신 황수관 장로님이 많은 곳에 가서 강연을 해보니 제일 안 웃으시는 분들이 정년퇴직을 앞둔 교장선생님들이었다고 한다. 선생님들 미안하다! 그러나 누구라도 친절하게 대하고 감사하라! 웃기도 잘하고 울기도 잘하는 사람은 감정의 순환이 잘되어 마음이나 몸이 건강해진다고 한다. 작은 호의나 배려를 받더라도 감사를 표하라. 하나님과의 관계도 은혜롭고 건강한 관계로 발전하기 위해서는 하나님께 대한 감사가 풍성해야 한다. 달라고만 하지 말고 감사해 보자. 그러면 더욱 큰 은혜를 누리게 된다.
무사하게 지나는 것에 대하여 감사해야 한다. 얼마나 많은 사건 사고가 우리를 휩쓸고 지나가는가! ‘별일 없었다’는 것은 원망할 일이 아니라 감사할 일이다. 어떤 부인이 암에 걸렸다는 진단을 받았다. 유방암이 손에 잡힐 정도로 발전되었으므로 심각하다는 거였다. 가족들이 난리가 났다. 다른 병원에 가서 검사를 해도 같은 결과였다. 온 가족들이 모든 일을 멈추고 함께 병원에 가서 정밀검사를 받았다. 이 부인이 병원에 가는데 속이 벌벌 떨리고 죽음이 바로 앞에 와있는 것처럼 감당할 수 없었다고 한다. 그런데 정밀검사 결과는, 악성이 아니라 양성 종양으로서 암이 아니라는 거였다. 이 부인이 가족들과 함께 암에서 해방되어 병원에서 나오는데, 하늘이 새롭게 보이고 땅도 새롭고 밥을 먹고 물을 마셔도 무사하다는 것이 그렇게 감사할 수 없었다고 하였다.
사람들은 무슨 큰 손해를 보거나 큰 병을 앓거나 사고를 당한 뒤에야 별일 없이 무사하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지를 안다. 그냥 오늘 내가 여기 가족들과 함께 살면서 교회에 나와 ‘별일 없이’ 예배드리고 있다는 사실이 얼마나 큰 은혜인지를 깨달으시라! 어떤 수필집에 이런 글이 있다. “지상에는 아름다운 것이 참으로 많다. 들에 핀 한 송이의 백합꽃, 밤하늘에 총총히 빛나는 별들, 산마루에 뭉게뭉게 피어오르는 흰 구름, 일곱 가지 색깔의 찬란한 무지개, 젊은 처녀의 맑은 미소, 갓난 아기의 보드라운 손 모두가 아름답다. 아름다운 노래, 아름다운 그림, 아름다운 시, 아름다운 얼굴, 아름다운 마음, 아름다운 인정, 이렇듯 우리 인생에 아름다운 것이 가득하다는 것이 얼마나 고맙고 축복된 일인가?”
또, 지나간 시간동안 받은 은혜와 호의를 기억하고 감사해야 한다. 부모님은 평생동안 자식들에게 많은 것을 베풀어 주신다. 그러고도 금방 잊어버리고 뭘 더 줄 것이 없을까를 연구하신다. 사랑하는 사람들로부터 받은 은혜를 우리가 무엇으로 다 보답할까! 올해도 입시 준비하는 고3들을 보면 생각나는 것이 있다. 나는 경상도 안동에서 내가 학교에서 1-2등을 하니까 공부 잘하는 줄 알고 중학교 때까지 지났다. 그러나, 고등학교에 진학하기 위해 서울로 갔다가 입시에 실패하여 재수를 하였다. 어린 아들을 서울에 보내고 넉넉히 뒷바라지도 못하면서 부모님이 얼마나 애를 쓰셨겠는가! 그러다가 대학입시에 응시했을 때, 고입시에 너무 고생한 부모님을 생각하여 절대 올라오지 마시라고 고집을 부렸는데, 집에 계시면서 아버지가 시험시간을 정해놓고 아들은 이 추위에 시험을 보고 있는데 당신은 쉴수 없다 하시면서 시험시간과 똑같이 교회에 가서 기도를 드리셨다고 한다. 우여곡절 끝에 신학교에 가서야 아버님의 지나간 일기를 서재에서 우연히 보고 얼마나 감사의 눈물을 흘렸는지 모른다. 올해 시험 볼 수험생이나 취준생들은 함께 마음 고생하는 부모님의 은혜에 감사하면서 최선을 다하라. 감사하면서 최선을 다하면 하나님께서 좋은 결과를 주실 것이다.
어떻게 감사해야 할까? 무엇보다 먼저, 우리 마음이 감사하는 마음으로 넘쳐야 한다. ‘그리스도의 평강이 너희 마음을 주장하게 하라! 너희는 평강을 위하여 한 몸으로 부르심을 받았나니 너희는 또한 감사하는 자가 되라!’ 15절 말씀, 한마디로 마음에 감사로 똘똘 뭉쳐야 한다는 것이다. 영어로 감사하다는 말(thank) 속에는 생각한다(think)는 뜻이 들어있다. 히브리어로 감사하다는 말(토다)은 인정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생각해보니 감사하다!! 하나님이 내 인생 중에 하신 일을 인정하고 마음으로부터 감사하는 사람이 되자. 마음에 감사가 없이 말이나 물질로만 감사하는 것은 매우 위선적이고 기분 나쁘다. 그렇게 감사하다는 말을 잘하는 미국 사람들도 같은 ‘Thank you'를 이상한 발음으로 하면 욕이 될 수도 있다. 먼저 마음에 감사를 채우라! 긍정적으로 모든 것을 바라보시도록 노력하라.
우리 집 얘기를 좀 하면 아내가 매사를 긍정적으로 보고, 받아들이는 편이다. 그래서 내가 배우는 점이 많다! 목회를 계획할 때나 사람을 만날 때, 나는 먼저 예상되는 어려움과 부정적인 면을 생각한다. 물론 후에 균형을 잡는 편이기는 하지만, 이때 옆에 있는 사람의 긍정적인 관점에 도움을 많이 받는 편이다. 감사하고 시작하면 내가 살 뿐 아니라, 남도 살린다!
언제나 불평불만을 일삼는 남자가 있었다. 이 사나이는 늘 자신을 재수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한번은 마을 사람들이 다 모여서 멀리 있는 곳으로 짐을 옮기에 되었다. 이 사람도 다른 사람들처럼 짐을 짊어지고 나섰다. 한참 가다보니 사나이는 다른 이들보다 자신의 짐이 더 무겁고 커보여 몹시 기분이 나빠졌다. “난 역시 재수가 없어!” 그는 갑자기 힘이 빠져 가장 뒤쳐져 걸었다. 길이 너무 멀어 마을 사람들은 중간에서 하룻밤을 자고 가게 되었다. 이 때다 싶어, 사나이는 모두가 잠든 깊은 밤에 몰래 일어나 짐을 쌓아 둔 곳으로 살금살금 걸어갔다.
사나이는 어둠 속에서 짐을 하나하나 들어보았다. 그러고는 그 중 가장 작고 가벼운 짐에다 자기만 아는 표시를 해 두었다. 날이 밝자 그는 누구보다 먼저 일어나 짐이 있는 곳으로 달려갔다. 그리고 어젯밤에 몰래 표시해 둔 짐을 찾았다. 그랬더니 어땠을까? 글쎄, 그 짐은 바로 어제 온종일 자신이 불평하며 지고 온 그 짐이었다. 여러분! 불평할 시간이 있으면 그 시간에 감사하라. 여덟 가지의 불평할 일이 있다 해도, 찾아보면 두 가지 감사할 일은 있는 법이다. 여덟 가지의 감사할 일을 다 놓아두고 굳이 두 가지의 불평할 일만 늘 생각하며 마음에 쌓아두는 이유가 무엇인가?
다음으로, 말로 감사하는 것이 중요하다. 16절 말씀, ‘그리스도의 말씀이 너희 중에 풍성히 거하여 모든 지혜로 피차 가르치며 권면하고 시와 찬송과 신령한 노래를 부르며 감사하는 마음으로 하나님을 찬양하고.’ 하나님을 찬양하고 노래를 부르고, 말씀을 나누는데 감사가 담겨있도록 하라는 것이다.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른다”(롬10:10)고 사도 바울이 말한 것처럼, 입으로 시인함으로 우리가 변화될 수 있다.
똑같은 사실 앞에서 말로 감사하느냐, 불평하느냐가 우리 삶을 행복하고 평안하게 할수도 있고, 불행하게 만들 수도 있다. 우리 속담에도 말 한마디로 천냥 빚을 갚는다 했다.. 감사하는 말은 마음을 유순하게 하고 관계를 부드럽게 만든다. 여러분의 입술에 파수꾼을 세우라. 그리하여 감사하며 기뻐하며 긍정하는 말을 습관적으로 할 수 있게 여러분의 혀를 훈련하라! 그러면 큰 복을 받을 것이다.
예전에 제가 잘 알던 여자 권사님은 언제나 좋은 게 없었다. 신앙생활도 잘하시고 남에게 봉사도 많이 하시는 분인데, 그래서였는지 남들이 하는 게 늘 못마땅했다. 식탁에 앉으면 일단 타박부터 했다. 젓가락으로 뒤적이면서, “에이 시어꼬부라졌네. 짜서 먹을 수가 있어야지, 발로 무친거야, 손으로 무친거야!” 이렇게 타박을 했다. 후배들이 하는 게 못마땅한 것이다.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부정적으로 보는 태도가 마음에 자리를 잡아버린 거였다. 내가 아주 사명감을 가지고 충성스럽지만 감사하지 않는 그 권사님 면박을 주고 싸움을 했는데, 하나님의 은혜로 얼마 지나자 감사하고 받아들이는 말을 많이 하기 시작했다. 입술의 감사로 성령의 열매를 맺으라. 마음에 있는 고질적인 불평불만, 부정적인 생각과 태도를 성령의 불로 태워버리고 감사의 말을 하라!
마귀는 만성적인 불평불만자이다. 성령받은 여러분은 말로 감사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말로 감사를 자꾸 쌓으라! 자신도 원망과 불평이 사라지고, 남들도 감사함으로 기뻐하게 만들 수 있다. 기도할 때 모든 사람에게 들리도록 큰 소리로 꾸짖듯이 원망불평하는 사람이 있었다. 여러 사람이 내게 와서 “목사님, 그분이 그러지 못하게 말려주세요!” 부탁하였다. 자기들이 말하기 부담스러우니까 목사님이 말려달라는 것이었다. 그 불평과 저주를 들으면 기도가 되지 않는다는 거였다. 나는 어느 날 준비기도를 하고, 조용히 그분께 찾아가서 귀에다가 분명하게 말했다. “아무게님! 그렇게 불평하는 기도하지 마세요, 성령이 근심하십니다! 감사의 기도를 많이 드리세요, 하나님이 그 기도를 받으십니다!” 하였다. 그러자 그날로부터 불평과 원망의 기도를 그치고 하나님께 감사하면서 기도하시다가 하나님나라 가셨다.
끝으로, 특별한 것으로, 물질이나 기념하는 일이나, 행동으로 감사할 수 있다. 17절 말씀, ‘또 무엇을 하든지 말에나 일에나 다 주 예수의 이름으로 하고 그를 힘입어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하라!’ 우리는 마음의 어떤 선행을 말로만 때우는 사람을 경멸하는 경향이 있다. “말로만?” ‘사랑합니다, 말로만? 열심히 하겠습니다, 말로만?’
주님은 네 물질이 있는 곳에 마음이 있다고 하셨다. 루터는 사람의 회개는 지갑이 회개했는지를 보아야 알 수 있다 했다. 마음의 감사는 당연히 기념비나 기념 축제로 나타난다. 이스라엘은 년중 여러번의 감사제사를 하나님께 드렸다. 이집트에서의 구원을 기념하는 유월절과 첫 열매 주심을 감사드리는 맥추절, 그리고 광야를 건너 약속의 땅으로 인도하심을 감사드리는 초막절이 있다.
우리 교회는 모든 예배에 감사헌금이 많이 드려지는 교회다! 물질로 감사를 표현하는 것이 건강한 영성을 유지하는 하나의 바탕이 아닐까 생각된다. 마땅한 제물을 드려 감사하는 것은 하나님이 기뻐받으시는 예배다. 아브라함은 아들 이삭을 드려 모리아산에서 하나님을 예배하고자 했다. 천금보다 귀한 아들, 무엇으로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것을 하나님께 드리고자 했을 때, 하나님은 아브라함이 낭패를 보도록 두지 않으시고 그의 믿음을 받으셔서 크게 축복했다. 막달라 마리아는 구원하신 주님의 은혜를 갚을 길 없어 가장 소중한 향유 옥합을 깨뜨리고 주님 발에 부어드렸다. 예수님을 배반할 가룟 유다는 300데나리온 어치의 물질적 가치만을 생각했지만, 주님은 그러한 물질의 감사가 얼마나 향기로운 제사인지를 사람들에게 가르쳐 주셨다.
무엇보다 우선되고 큰 은혜는 하나님께서 베풀어 주신 은혜이니 하나님께 가장 큰 감사를 드려야 한다. 하나님께 감사하고 나면 마음이 평안해진다. 하나님께 감사하면 생활에 활력이 넘친다. 하나님께 감사하면 어려운 일이 술술 풀려간다. 감사하는 사람은 하나님과의 관계가 좋아지고, 하나님과의 관계가 형통하면 다른 일들이 형통하게 되는 것은 당연한 이치다. 성서는 하나님께 감사하라는 것을 중심되는 교훈으로 우리에게 가르쳐주고 있다. 시편의 반은 감사의 시이다. “여호와께 감사하라, 그는 선하시며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시136:1) 말씀대로, 마음으로 감사하며, 말로 감사하고, 행동과 물질로 감사하는 사람이 되자. 여러분의 삶과 믿음이 감사로 더욱 풍성해지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바란다.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