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전문
설교일 | 2020-08-3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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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말씀 | 출3:1-5 |
설교제목 | 너의 선 곳 |
너의 선 곳
출3:1-5
2020년 8월 30일 [성령강림후 열셋째주일, 왕국절시작]
최근에 UN이 세계 인류의 체질과 평균수명을 측정하여 연령 분류의 새로운 표준을 5단계로 발표했단다. 거기에는 이렇게 되어 있다. 1단계는 0-17세로, 미성년자이다. 2단계는 18-65세로, 청년이다. 65세까지, 55년생 이하는 혈기방장한 청년이라는 것이다! 3단계는 66-79세로 중년이다. 우리 나이로 80세 전까지는 충분히 어디서나 활동할 수 있는 중년이다! 4단계는 80-99세로, 노년이다. 5단계는 100세 이상인데, 장수노인이 되겠다.
이 연령구분에 의하면 우리교회는 청년들이 엄청나게 많다. 6여선교회 이하는 다 청년이다. 인생의 한창 때인 것이다. 남선교회도 1-2남선교회는 중년, 2남선교회 일부와 3남선교회부터는 청년이다. 장로님들 가운데에도 청년들이 여럿이고, 나도 청년이 되더라. 코로나19 바이러스가 서울경기 지역을 중심으로 크게 퍼져 걱정이 많지만, 청년과 장년 여러분! 염려하지 말고 인생 주심을 감사하면서 건강과 활력으로 이겨내기 바란다!
오늘의 성경말씀은, 출애굽기 앞부분의 중요한 내용으로서 모세가 미디안으로 도피하여 40년을 살다가 이집트로 돌아가는 2-4장 단락에서 핵심 부분이다. 3장은 하나님을 만나고 출애굽의 소명을 받는 장면인데, 그 중에서도 앞부분, 하나님을 만나는 장면을 읽었다. 오늘 이 말씀이 여러분을 일깨우고 감격하게 하기를 바란다!
1. 먼저 생각해볼 사실은, 모세가 하나님을 만났다는 것이다. 하나님과 만남, 이것이 신앙의 중심이다. 사람은 누구를 만나는가? 누구와의 관계가 핵심이냐? 여기에 삶의 내용과 수준이 달려있다. 자꾸 깡패들을 만나고 거친 곳에서 생활하면 사람이 반년도 못되어 그렇게 세속화되고 거칠어진다. 대기업 직원이었다가 노숙자로 살았던 사람에 관한 다큐멘터리 영상을 보았는데, 밥을 얻어먹고 지하철에서 자며 노숙자들과 어울려 지내니까 불과 몇 달 사이에 완전히 안팎이 노숙자가 되어버리더라.
믿음의 사람은 하나님을 만나는 사람이다! 모세는 하나님 백성 가운데도 거룩한 지파 레위족속이었다. 아버지는 아므람, 어머니는 용기있고 지혜로운 사람 요게벳이었다. 그는 이집트의 유대인 박멸정책 때문에 태어나서 숨겨 기르다가 어머니와 누이의 지혜로 바로 왕궁에서 공주의 양아들로 자라면서 어머니 요게벳의 젖을 먹으며 믿음의 교육으로 자랐다. 말씀 속에서 하나님을 만나며 자랐으나, 오늘 말씀을 보니, 나이 80이 되어서 하나님과 특별한 만남의 경험을 한다.
어느 날, 그날도 평소처럼 모세는 장인의 양떼를 치면서 우연히 광야 서쪽으로 가게 되었는데, 알고보니 그 산은 하나님의 산으로 알려진 호렙산이었다. 갑자기 떨기나무라고, 광야에서 많이 볼 수 있는 가시나무 비슷한 작은 나무에서 불이 붙어 타는 것을 보았다. 땡볕이 내리쬐는 광야에서는 열기 때문에 메마른 나뭇가지에 불이 붙는 경우도 있었다. 그런데 그날 불은 나무에 불이 붙었으나 그 떨기나무가 타서 사라지지 않았다. 정말 이상한 광경이었다. ‘아니 떨기나무가 어떻게 불꽃이 일어나는데 타지 않는단 말인가!’
나무를 태우지 않고 그냥 불꽃으로 일어나는 불! 이 신기한 불이 무엇이었나? 바로 하나님이셨다! 야웨 하나님께서 모세가 다가오는 것을 보시고, 모세를 부르셨다. “모세야, 모세야!” 보이지 않는 분, 불꽃 속에서 말씀하시는 분의 목소리가 들린 것이다. 그러자 모세는 “내가 여기 있습니다!” 그렇게 대답했다. 그러자 야웨의 음성이 들렸다. “이리로 가까이 오지 말아라. 네가 선 곳은 거룩한 땅이니 네 발에서 신을 벗어라!” 모세는 불꽃과 목소리로 하나님을 만나고 하나님과 대화를 나누었다. 나이 80에 들어 경험한 특별한 하나님과의 만남이었다.
여러분은 하나님을 만났는가? 여러분은 하나님을 지금도 만나는가? 신앙인은 하나님 만난 경험이 있어야 하고, 지금도 하나님을 만나는 생활을 해야 한다. 그게 기독교 신앙인이다. 나는 목사의 아들로 어렸을 적부터 교회 울타리를 벗어난 적이 없지만, 하나님을 만나는 것을 자각하는 경험을 하지 못했다. 그런 채로 부모님 권유를 받아들여 신학대학에 들어갔지만, 하나님을 만난 자각이 없었기 때문에 소명의 삶을 살지 못했다. 그러다가 신학교 2학년 가을이 되었는데, 그때까지 신학을 다 마치고 평생 목회자가 될 수 있을까 확신이 없었다. 3학년이 되면 다른 곳에 편입시험을 쳐서 일반대로 옮겨갈 생각을 하고 있었다.
하나님께서는 더 미루지 않고 신학대학 2학년 가을학기에 나를 만나주셨다. 그해 신학대학의 가을수련회 때 교수님들의 강연과 동료들과의 활동을 통해 나는 내게 다가오시는 하나님, 말씀하시는 하나님, 나의 미래를 인도하시는 하나님을 만나게 되었다. 하나님은 내 마음에 너무도 분명하게 감동과 깨달음을 주셔서 거역할 수 없는 분으로 알 수 있게 만나주셨다. 그 가을을 감격과 기쁨으로 거의 울면서 지냈다. 특히 하나님은 예언자의 소명에 감동하게 하시어, 나를 이 시대의 예언자가 되라고 불러주셨다. 지금 생각하면 유치하지만 뜨거웠던, 신학대학 시절의 하나님 체험이었다.
하나님은 우리들의 인생에 이렇게 유치하게, 일상생활의 작은 일이나, 생각지도 못한 의외의 사건으로 우리에게 찾아오신다. 떨기나무 불꽃처럼 하나님이 아니라면 하실 수 없는 어떤 일을 통하여, ‘아! 하나님이시구나!’ 알 수 있게 찾아오신다. 여러분은 하나님을 만났는가? 우주자연과 역사의 톱니바퀴 아래에서 생활하는 우리는 삶에서 홀연 하나님을 만나게 되면, 세상을 보는 눈과 인생을 맞이하는 태도가 달라진다. 그리고 하나님을 한번 만나고 그분과의 만남을 소중하게 살려가는 사람들은, 그 후부터 하나님과 동행하는 생활을 하게 된다.
2. 1절을 보니까, 모세가 별 생각없이 양떼들을 이끌고 다가간 곳은 야웨 하나님과 특별히 관계있는 산이었다. 이 산은 하나님이 자기 백성과 언약을 맺은 산으로서 호렙산으로도 불리고 시내산이라고도 하였다. 바로 하나님의 산이었다. ‘이리로 가까이 하지 말라! 네가 선 곳은 거룩한 땅이니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 영감으로 가득한 5절 말씀은 우리가 하나님을 어떻게 만나야 하는지, 하나님은 어떤 분이시고, 그분을 만날 때는 어떠해야 하는지를 가르쳐준다.
하나님을 만나려면 하나님이 계신 곳으로 가는 것이 좋다. 물론 하나님은 어디에나 계시기 때문에 어디서든 우리를 만나주실 수 있다. 그러나 가장 하나님 만나기 좋은 곳, 하나님 만날 만한 곳이 바로 하나님 계신 거룩한 곳, 성소이다. 하나님은 호렙산의 불꽃 가운데에서 모세를 만나주셨다. 하나님은 시내산 율법의 수여 장소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만나주셨다. 하나님은 지금도 성전에서 우리를 만나주시며, 찬송부를 때에 감동과 눈물 속에서 만나게 하시고, 설교를 듣거나 성경말씀을 들을 때 깨달음 속에서 만나주신다. ‘내가 너를 지었다, 지금까지 인도했으며, 끝날까지 내가 너와 함께 하겠다.’
너의 선 곳이 어디냐? 거룩한 산, 성소이다. 이것은 하나님의 산 시내산 전승과 관련이 있다. 성소에서 주님은 우리를 만나주신다! 코로나 바이러스의 엄중한 시간에도 우리가 성전으로 나오는 것은 그곳에서 주님이 우리를 만나주시리라는 기대가 있기 때문이다. 밥을 먹으려면 식당에 가야 하고, 공부하려면 학교에 가야 하며, 운동하기 위해서는 체육관에 가야 하듯이, 하나님을 만나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성산 호렙에 서야 했다. 시내산이 없이는 출애굽이 없다. 구원역사가 이뤄지기 위해서는 성전에서 하나님과 만나야 한다. ‘하나님이여 주는 나의 하나님이시라. 내가 간절히 주를 찾되 물이 없어 마르고 황폐한 땅에서 내 영혼이 주를 갈망하며 내 육체가 주를 앙모하나이다. 내가 주의 권능과 영광을 보기 위하여 이와 같이 성소에서 주를 바라보았나이다.’(시63:1-2)
요즘 대면예배 비대면예배 논란이 뜨겁다. 물론 비대면예배에도 하나님은 찾아오신다. 인터넷이라고 하나님이 역사하지 않으시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우리의 연약함과 쉽게 변하는 속성 때문에 대면예배가 필요하다. 기억을 새롭게 하고 경험을 다시 일으키는 일을 하려면 우리의 감각과 의식 속에 하나님이 찾아오셔야 한다. 종교학자들은 하나님 만남을 근본경험이라 하면서 초월적이고 신비한 실재를 만나는 두려움과 떨림의 감정이라고 한다. 이것을 ‘누미노제’라고 표현한다. 하나님 만남은 시공을 초월하는 절대적 만남이지만, 그것이 우리의 경험이 되기 위해서는 시공 안에 있어야 한다. 그러므로 구체적인 장소와 구체적인 시간이 필요한 것이다. 우리를 위해서... 따라서 대면예배가 아주 매우(!) 우리에게 필요하다.
3. 하나님과의 만남은 떨기나무의 불꽃경험이었다. 모세에게 하나님을 만나는 경험은 곧 거룩한 불의 경험이었다. 여기서 ‘여호와의 사자’는 곧 야웨 하나님을 의미한다. 떨기나무 가운데로부터 나오는 불꽃 안에서 그에게 나타나셨다. ‘불에 타지 않는 떨기나무 불꽃’은 대개 하나님의 열정적인 사랑과 해방의 의지를 상징한다. 이 불꽃체험을 모세의 이전과 이후를 가르는 영적 체험의 순간, 곧 중생의 체험이다. 하나님은 타오르는 불꽃이다. 하나님은 다양하게 여러 가지로 나타나신다. 그런데 모세의 경우처럼 불로써 나타나실 때가 많았다.
성경은 성전의 등불을 끄지 말 것을 제사장들에게 엄히 명령하신다. 레6:12-13. ‘제단 위의 불은 항상 피워 꺼지지 않게 할지니 제사장은 아침마다 나무를 그 위에서 태우고 번제물을 그 위에 벌여 놓고 화목제의 기름을 그 위에서 불사를지며, 불은 끊임이 없이 제단 위에 피워 꺼지지 않게 할지니라.’ 단 위에 불이 꺼지지 않게 한다는 것은 하나님이 늘 거기 계신다는 사실을 암시하는데, 이처럼 하나님이 백성이 하나님을 섬길 때에는 불이 타오름으로 섬기곤 하였다.
신약시대에 와서 초대교회 때 하나님은 성령을 부으신다. 성령은 불의 경험이다. 행2:3-4a, ‘마치 불의 혀처럼 갈라지는 것들이 그들에게 보여 각 사람 위에 하나씩 임하여 있더니, 그들이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하나님이 임재하시고 우리 안에 거하시는 인격이 성령이신데, 성령은 불로 임하였다. 타오르는 불이 보이지는 않았지만, 엠마오길에서 예수님과 함께 하던 제자들은 주님이 말씀을 들려주실 때 마음이 뜨겁지 아니하더냐 하였다. 여기서 ‘뜨겁다’는 ‘불타다’라는 단어이다. 역시 불이 속에서 나온 것이다.
하나님은 현현하신다. 하나님은 함께 하신다. 하나님은 임마누엘의 하나님이 되셨다! 하나님은 보혜사 성령으로 임하신다. 그런데 하나님의 임재와 역사에는 불로서 임하시고 역사하실 때가 눈에 띠게 많다. 만약 우리가 교회에서 하나님을 만나기를 원한다면 어떻게 하면 될까? 불을 받으면 된다. 말씀 중에 우리 가슴에 불이 타오르면 하나님을 만난 것이다. 찬송 중에 감격의 불이 타오르면 우리가 하나님을 만난 것이다. 기도하는데 불이 임하여 내 안에서 이상한 말이 터져나오거나 말할 수 없는 기쁨을 체험하면 하나님이 내게 오신 것이다.
웨슬리는 옥스퍼드 출신 성공회교단의 엘리트 신부였다. 그러나 차가운 머리로는 온전히 하나님을 모실 수 없었다. 그는 미국 인디언 선교에 실패하고 실망하여 배를 타고 귀국하였다. 그러던 어느날 올더스게잇 거리에서 작은 집회가 모일 때 그들이 읽는 루터의 로마서주석 서문을 듣는 중에 ‘이상하게 가슴이 뜨거워졌다.’ 불 가운데 하나님을 만난 것이다. 그후에도 겉으로는 달라질 게 없었다. 그러나 하나님 만난 그의 내면에는 혁명이 일어났다. 구원의 기쁨과 하나님의 사랑이 흘러넘치게 된 것이다. 여러분도 하나님의 불을 만나시기 바란다!
4. ‘네가 선 곳은 거룩한 땅이니~’ 하나님 만나는 그 곳이 거룩한 땅이요 성소다. 우리는 성전에서 하나님을 만날 때가 많다. 예배드릴 때, 기도하고 찬송할 때, 무엇보다 하나님의 계시로 가득한 말씀을 들을 때 우리는 하나님을 만난다. 그리고 모세처럼 떨기나무 불꽃을 만나는 것이다. 가슴이 뜨거워지고, 그 불이 내 눈에 눈물이 흐르게 하며, 그 불이 나로 감격과 떨림을 가지고 인생을 만나게 한다! 내가 서있는 이 곳이 거룩한 땅이다. 여기 삼척이 거룩한 땅이다. 여기 우리 집이 거룩한 땅이고, 내 직장이 거룩한 땅이며, 내가 만나는 사람들이 거룩한 사람들이다.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 하나님은 모세에게 다가와 불꽃을 보여주시며, 네가 선 곳이 거룩한 땅이라고 선포하셨다. 그리고 이어서 명령하시기를,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 하신다! 신발을 벗어야 한다. 1)거룩한 곳에서는 있는 모습 그대로의 진실로 나아와야 한다. 근본적으로 종교적 경건을 무언가를 꾸며야 하는 것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하나님을 만나려면 무언가를 감추고 준비를 많이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사실은 그 반대이다. 하나님 앞에는 본래 상태, 벌거벗은 모습으로 나와야 한다. 예배드리는 한 시간은 가장 정직하고 있는 모습 그대로의 시간이어야 한다. “신을 벗으라!” 신발은 사람을 나타내주는 이력 같은 것이다. 이력서 할 때 ‘이’ 자가 신발이라는 뜻이고, 이력서는 신발 신고 돌아다닌 내력을 적은 종이다. 따라서 맨발이 되라는 것은 남이 인정하는 자아, 사회적으로 공인된 자아와 영원히 이별하는 것이다. 자기를 죽이는 것, 자기 인생의 여러 길을 내려놓는 것, 그리고 부르신 분의 절대 목적에 복종하는 것이 바로 신을 벗는 것이다!
2)또 하나님 앞에 나올 때는 무엇보다 겸손해야 한다. 하나님 앞에서 겸손해지기 어려운 게 성도들이다. 유대인처럼 부름받았고 택함 받았다는 기본적인 교만이 있다. 이걸 내려놓아야 진실한 신자가 될 수 있다. 하나님을 만난 모세에게 하나님은 신을 벗으라고 하심으로 겸손을 가르쳐주신다. 신을 벗는 것은 종이 하는 일이다. 하나님 앞에서는 종이라는 낮은 신분으로 서라는 말씀이다. 하나님 앞에서는 겸손해야 한다. 겸손하지 않고는 하나님을 받들 수 없다. 소명 앞에서는 겸손해야, 말씀 앞에서는 겸손해야 한다. 예배드릴 때는 누구나 겸손해야 한다.
불꽃경험을 사모하라! 삶에는 뜨거움과 감격이 살아있어야 한다. 연애세포가 죽은 젊은이, 큰일이다. 가정에 대한 열정과 희망이 없으면 이 또한 큰일이다. 예배에 대한 감격과 열정이 사라진 것, 큰일이다. 신발을 벗고 자기 이력이나 사람의 영광을 추구하는 인생에서 하나님이 부르시는 절대목적을 향해 새롭게 서는 성도가 되라!!
하나님을 만났는가? ‘글쎄요.’ 이게 정답일지도 모르겠다. 하나님 만남은 오묘막측이다. 삼라만상 일체만물이 다 하나님 만남의 방편이다. 모든 창조와 역사가 하나님 만남의 자리다. 매일 어디서나 우리는 하나님을 만날 수 있다. 그러나 가장 어렵고 가장 특별한 게 하나님 만나는 것이다. 어떻게 피조물인 우리가 창조주 하나님을 만났다 할 수 있나? 불가능하다, 안 된다! 그러나 내 친구 내 스승 예수를 통하여 매일 하나님을 만나라!
여러분은 어디 서있느냐? ‘너의 선 곳은 거룩한 땅이니!’ 미디안 광야에 버려졌다고 생각한 팔십의 노인 모세를 부르시어 너의 선 곳이 거룩한 땅이라 하시며 출애굽의 소명을 맡기신다. 어두운 자리, 하나님 없는 자리, 불평 원망을 일삼는 자리를 떠나라! 이제 주님과 함께 새롭게 출발하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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