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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리"인가 "제자"인가? (눅14:25-33) [2025년 9월 7일, 성령강림열셋째/하나님나라둘째 주일]
2025-09-06 14:33:12
박신진 목사
조회수   6
설교일 2025-09-07
설교말씀 눅14:25-33
설교제목 "무리"인가 "제자"인가?

무리인가 제자인가?

누가14:25-33

202597[성령강림열셋째/ 하나님나라둘째 주일]

 

중국인 복음전도자 워치만 니는 고등학생 때 회심하여 평생을 오직 복음으로만 살다가 복음 때문에 순교한 성자로 알려져 있다. 그는 로마서 주제인 생명과 성령의 법을 신앙 주제로 삼았다. <영에 속한 사람>25살 때 쓴 책으로 제일 많이 읽히는 대표 저서인데,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려면 영에 속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내용이다. 고등학교 때 학교에서 1등을 놓치지 않던 똑똑한 학생이었으나, 18세에 회심한 그는 대학 진학을 포기하고 오로지 성경 연구와 복음 전파 사역에 헌신한다. 오랜 병마에 시달리면서도 하나님을 온전히 신뢰하며 살았다.

1930년대에 작은 무리회라는 교회를 세운다. 중국 여러 지역에서 작은 가정교회로 시작된 그 모임은 외국 선교기관으로부터 완전히 독립한 중국인만의 교회가 되었다. 공산주의자들은 그의 능력을 인정하여 국가의 종교적인 일을 맡기려 하지만, 그는 거부했다. 그는 그리스도의 영에 속한 사람으로 겸손히 사는 편을 택했다. 워치만 니에 대한 평가는 한편으로는 성자라는 평가가 있고, 다른 한 편으로는 지방교회 등 별도 교단으로 흘러갔다는 평가도 있다. 그러나 그의 믿음과 생애는 우리에게 참된 그리스도의 제자는 무엇인가를 돌아보게 한다.

설교를 시작하면서 여러분께 묻는다. 예를 들어 워치만 니같이 복음에 헌신한 성자들의 믿음을 볼 때, ‘나는 누구인가?’ 오늘 성경에서 예수 당시에 두 부류의 사람들이 예수를 따르고 있었다. 25절에 보면, ‘수많은 무리가 함께 갈새라고 되어 있는데, ‘무리가 예수 주위에 있었다. 앞서 큰 잔치 비유에서 조건 없이 초대받은 사람들로 잔치 자리가 가득했다. 사람들이 많이 있었다. 그러자 예수께서 사람들을 향해 고개를 돌이키시고 말씀하셨는데, 어떤 사람이 내 제자인가 하는 것이었다. “무리가 있었고, “제자가 있었는데, 여러분은 무리인가, 아니면 제자인가? 나는 예수님이 보실 때 무리일까, 제자일까, 한번 물어보고 오늘 설교를 들으며 대답해 보기 바란다.

 

오늘의 말씀은 예루살렘으로 향하여 가는 예수님의 여정 가운데 속한 말씀으로서, 951절부터 시작되는 내용이다. 이 여정을 가시면서 예수는 당시 사회적이고 종교적인 가진 자들’, 기득권층을 비판하신다. 놀라운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시고, 병든 자를 고치시거나 귀신을 쫓는 기적을 보여주신다. 이에 많은 무리가 예루살렘으로 향하는 예수의 뒤를 쫓는다.

수많은 무리가 함께 갈새라는 말씀에서 무리는 헬라어로 오클로스라고 한다. 병을 고치고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그때 믿음 없이 그냥 모여든 사람들, 예수님께 대한 특별한 목적 없이 모여드는 사람을 성경은 무리라고 하였다. “오클로이 폴로이”, many people이다! 많은 무리들이 예수께로 모여들었다. 배가 고파서 먹을 것을 얻으려고 모였거나, 병이 들어서 병 고치러 모이거나, 특별한 목적도 없이 소문을 듣고 모였거나 하였다.

예수님은 그들에게 고개를 돌이켜 제자에 대하여 말씀하셨다. ‘예수께서 돌이키사 이르시되’, 제자에 대하여 말씀하셨다. 오늘 성경 본문은 제자가 어떤 사람인지, 제자가 어떠해야 하는지를 보여주는 말씀이다. ‘무릇 내게 오는 자가 자기 부모와 처자와 형제와 자매와 더욱이 자기 목숨까지 미워하지 아니하면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하고, 누구든지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지 않는 자도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하리라.’ 26절과 27절에 나오는 말씀에서 두 번 반복하여 제자에 대해 말씀하신다. 또 망대를 세우는 사람에 대한 비유와 싸우러 나가는 임금에 대한 비유를 말씀하시면서 결론으로 제자에 대해 말씀하신다. ‘이와 같이 너희 중의 누구든지 자기의 모든 소유를 버리지 아니하면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하리라.’(33)

무리는 그냥 많이 모여있는 사람이다. 예수님께 대한 목적보다는 경제적 이익이나 심리적 이익을 위해, 자기 안일과 문제의 해결을 위한 수단으로 모인 사람들이다. 앞의 비유 말씀을 보면 큰 잔치자리에 모인 사람들이 왜 모인 줄도 모르고 그냥 강권함으로 자리를 채운 것처럼, 뭔지도 모르고 자리를 채운 사람들이다. 교회에도 그런 사람들이 적지 않게 모여있다. 왜 여기 왔는지도 모르고, 왜 누구를 향하여 예배드리는지도 애매모호한 사람들이다. 추우면 춥다고 불평하고, 더우면 덥다고 원망하며, 모든 게 다 지루하고, 남들에게 나왔다고 눈도장을 찍으러 나와준 사람들이다.

그에 비하여 오늘 성경말씀을 보면 제자들이 있다. 예수께서는 “...하지 아니하면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하리라는 말씀을 세 번 반복하고 계신다. 26, 27, 33절이다. 첫째는, 가장 사랑하는 이들, 부모와 처자와 형제와 자매와 더욱이 자기 목숨까지 미워하지 아니하면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하고’, 둘째는, 누구든지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지 않는 자도 내 제자가 되지 못하리라하였으며, 셋째는, 망대를 짓는 공사 시작할 때 공사비 계산과 전쟁할 때 사병 숫자로 승패 예상하는 것처럼, 이런 자기 계산이 없이 자기의 모든 소유를 버려야제자가 될 수 있다고 하신다.

 

제자는 첫째로, 자기 부모와 처자와 형제와 자매와 더욱이 자기 목숨까지 미워하지 아니하면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한다! 여기서 중요한 구절은 미워하지 아니하면이다. ‘미워하다로 번역한 그리스어 동사 미쎄오는 유대인과 이방인을 구분하는 표현으로 종종 사용된다. 5:43, 산상설교 내용 중에 보면, ‘또 네 이웃을 사랑하고 네 원수를 미워하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라는 말씀이 있는데, 여기서 이웃은 유대인들끼리를 가리키고, 원수는 이방인들을 가리킨다. 그들은 정서적으로 가까운 유대인만을 사랑하고 이방인들은 미워하고 멀리하였는데(미쎄오), 예수님은 유대인들을 덜 사랑하여 좀 멀리하고(미쎄오!) 대신 이방인들을 사랑하라고 말씀했던 것이다.

예수를 따르는 제자들은 하나님의 일을 하거나 인생의 중요한 일들을 도모할 때, 자기 자신까지 포함하여 친족, 가까운 사람을 우선시하지 말라는 의미를 가진다. 여기서 미워하다’(미쎄오)너무 친근하게 하지 않다, 거리를 두다라는 뜻으로 쓰인다. 즉 주의 제자들은 자기 자신과 친족을 덜 사랑해야 한다는 뜻이다. 제자의 길은 자기와 자기 가족을 우선시하는 길이 아니다. 예수는 친족을 덜 사랑하는 길, 거리를 두는 길이 제자의 길이라 말씀하신다. 제자의 삶이란 자신이 갖고 있는 친분관계, 편견과 배타적인 마음을 내려놓고 모든 이들을 차별없이 대하고 공평하게 사랑하는 마음으로 진리를 전하는 것을 의미한다.

사람들이 얼마나 자기와 가족을 배타적으로 사랑하는가! 유치원이나 학교에서 부모들의 모습을 보면 자기 자식 사랑이 쩔어있다! 말 안 듣는 아이를 선생님이 혼내기라도 하면, 남의 귀한 아이를 왜 함부로 대하느냐고, 고발이라도 할 듯이 엄청난 항의를 하는 부모들이 많다. 얼마나 끔찍이도 자기와 자식과 부모와 친족들을 사랑하는지! 그것이 더 나아가 우리 편, 내 사람, 동향, 동문들 모임, 계모임이나 친척 모임으로 발전하여 이 나라가 모든 분야에서 얼마나 인의 장막으로 감싸여 있는지 모른다. 정말 대단하다! 예를 들면 정치가들, 경제인들, 법조인들, 의사들, 공직자들 사이에서 자기 출신학교 선후배 챙기고 몰려다니는 것 보면 엄청나다. 그런 동아리모임들이 정치를 좌우하고 경제를 좌우한다. 서울대 법대 출신 아니면 정치할려고도 하지 말라고도 한다. 서울 4대 병원 출신들은 장래가 보장되었다 한다. 거기에 목숨 걸다시피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예수님은 그리스도의 제자들은 그러지 말라는 것이다. 동창, 동향, 친척, 가족들을 챙기는 것이야 인지상정이니 누가 말리겠는가! 그러나 신앙의 이름으로, 예수 앞에서는 그러지 말라는 것이다. 예수께 오는 자들은 자기 부모와 처자와 형제와 자매와 더욱이 자기 목숨까지 미워하지 아니하면(미쎄오! 거리를 두고, 지나치게 내 가족, 내 편에 연연하지 말라는 것이다!),내 제자가 되지 못한다!! 참 제자는 공의와 사랑의 법, 예수님의 십자가 아가페 사랑에 매여, 개인의 인간적인 친밀과 사랑에 복음의 가치를 묻어버려서는 안 된다! 이것이 제자의 길이다. “내 고향, 출신학교, 보수 진보 진영논리, 우리 편, 우리 가족, 이것을 미쎄오(!) 하겠습니다. 거리를 두고 조금 멀리하여 냉정하게 하겠습니다. 그래서 주님처럼 정의와 사랑에 근거한 참 평화와 함께 하는 기쁨이 강같이 흐르게 하는 참 제자가 되겠습니다!”

 

제자는, 둘째로 누구든지 자기 십자가를 지고 따르지 않는 자도 능히 예수의 제자가 되지 못하리라 하였다. 제자가 되기 위해서는 십자가만을 의지해야 한다. 십자가를 지고 따르지 않으면 제자가 되지 못한다는 말씀이다.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십자가가 미련한 것이지만, 복음 진리를 깨달은 이들에게 십자가는 하나님의 온전한 능력이 된다.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받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고전1:18)

예수를 따르는 무리들은 예루살렘에서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희생당하실 것이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이들이 소망하고 의지하는 세상적 권력과 소유에 대한 집착, 그리고 민족적 배타주의는 진리를 향한 길을 어둡게 할 뿐이었다. 이를 넘어서지 못한다면, 그냥 무리에 불과할 뿐이다. 자기 십자가는 괴롭고 힘들고 피하고 싶은 것이다. 그러나 십자가를 지고 따르는 자만이 그리스도의 제자가 될 것이다!

서울 양화진에 로버트 하디 영적 대각성 기념비가 있다. 평양 대부흥 백주년을 눈앞에 둔 20065, 존 웨슬리회심기념일에 세웠다. 그곳에는 100년 이전부터 하디 선교사의 어린 두 딸이 묻혀 있었다. 작고 보잘것없는 묘비에 두 딸의 이름 마리(0)와 마가릿(7)이 새겨져 있었다. 작은 묘석은 마치 우리 민족의 아픔의 역사처럼 깨져 있었다. 두 딸의 무덤 자리에 조성한 영적 대각성 기념비는 마치 암탉이 병아리를 품듯 아버지가 두 딸의 묘석을 감싸고 있다.

하디 목사는 이 땅에서 45년 동안 생명의 복음을 전한 신실한 감리회 선교사이다. 1890, 의사로서 선교사의 직임을 가지고 이땅에 찾아왔으며,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우리 민족과 고난을 함께하였다. 하디 선교사가 불을 지핀 영적 부흥운동은 그 자신이 고백한 공개적인 참회가 불씨가 되었다. 19038, 원산대부흥운동에 이어 1907년 평양 대부흥운동에 이르기까지 하디의 영적 자취는 오늘의 한국교회를 가능하게 하였다. 거기에 우리나라에서 죽은 어린 두 딸, 마리와 마거릿이 있다. 그 아이들은 0세 갓난 아기일 때 이 땅에서 죽었고, 일곱 살 어린 아이일 때 죽어 이 땅에 묻혔다. 이 조선땅에 복음을 전하여 죄악의 어두움에 사로잡힌 사람들을 살리려고 아이들을 미처 돌보지 못하여 먼 이방땅 조선에 묻어야 했었다. 아직 너무도 어린 아기들, 자기 자신들을 돌보지 않고 미워하지 않고는 참 제자가 될 수 없다. 십자가를 지고 따르는 길이 바로 제자의 길이다.

 

제자는, 셋째로 자기의 모든 소유를 버리지 아니하면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하리라 하였다. 예수의 가르침은 제자는 자기 편, 자기 사람을 내려놓아야 하고, 십자가를 지고 모두를 품어야 할 뿐아니라, 자기 소유를 내려놓아야 한다. 예수는 자기의 모든 소유라고 모든 자를 넣으심으로써 단지 물질적 소유뿐만 아니라 사회적 지위나 명예까지도 포괄한 모든 소유를 내려놓으라고 말씀하신다. 십자가의 길을 따르는 것보다 어느 것도 앞서서는 안된다는 것을 강조하시는 말씀이다.

두 가지 비유를 제시함으로 제자 됨의 의미를 설명해주신다. 첫 번째는 자원을 확보하지 않고 포도원 망대를 건설하려는 어리석은 포도원 주인에 관한 비유다. 두 번째는 전쟁에 나갈 때 자신의 병력 규모에 따라 싸울지, 화친할지 헤아리는 임금에 대한 비유이다. 이 비유들은 왜 했느냐? 자신이 진정으로 의지해야 하는 것이 무엇인지 깨달을 때에만 성공할 수 있음을 강조한다. 영원한 영적 진리의 측면에서 봐야 한다. 세상적 수단과 물질만을 의지하는 자는 제대로 계산하지 못하고 망대를 짓거나 무모하게 전쟁에 나가는 어리석은 자와 같다.

제자는 자기 희생내려놓음이 있어야 한다. 물질적인 소유와 사회적 지위, 그리고 각자가 갖고 있던 인간관계와 자기들의 선입견, 이런 것들을 내려놓을 준비가 되어 있어야 제자의 길을 갈 수 있다. 부자가 되지 말라는 말이 아니다. 부자가 되면 좋지, 편리하고 일이 잘 풀릴 수 있다. 그러나 거기에 매이고 거기에 끌려다녀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이번 주일 성구일과 말씀 중에 빌레몬서도 있는데, 잠깐 소개하면 빌레몬은 부자고, 오네시모라는 사람은 빌레몬 집에서 뭔가 맞지않아 도망친 노예다. 상식적으로 보면 여기 바울은 못할 짓을 하고 있는 것이다. 도망친 노예를 신고해서 주인집에 돌아가게 해야 한다. 그런데 오네시모가 복음을 받아들이고 변화되었다. 복음을 위하여 귀하게 쓰임받는 일꾼이 되었다. 그래서 바울은 신앙인인 빌레몬에게 주의 이름으로 무리한 부탁을 한다. 도망친 오네시모가 잘못했음을 알고 뉘우치고 있으니 그를 풀어주어 바울 곁에서 복음 전하는 사역을 도와주게 해달라는 것이다.

빌레몬이 어떻게 했을까? 예수의 제자라면 십자가의 길을 걸으려는 오네시모를 용서하고 바울의 일꾼으로 쓰게 했을 것이다. 바로 이것이다. 그리스도의 제자들은 자기 선입견과 인간관계, 자기 편과 자기 사람을 차별하지 않는다. 가까운 사람을 오히려 멀리하고 거리를 둠으로써 모든 사람을 품고 동일하게 대함으로 하나님 나라의 평화와 기쁨이 있게 하는 것이 제자이다. 자기 입장을 내려놓고, 자기 이익도 포기하면서 십자가의 길을 걸음으로써 복음이 이뤄지게 하는 것이 제자의 삶이다!

 

<당신은 무리인가, 제자인가?> 언약 백성, 예수 그리스도의 뜻을 이루는 참된 제자에게 주시는 복이 있다. 30:15-18, 언약의 백성들, 그리스도의 제자들에게 주시는 복이고, 그냥 무리일 뿐인, 실질적인 불신자들에게 임하는 저주의 말씀이다.

보라 내가 오늘 생명과 복과 사망과 화를 네 앞에 두었나니, 곧 내가 오늘 네게 명령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고 그 모든 길로 행하며 그의 명령과 규례와 법도를 지키라 하는 것이라. 그리하면 네가 생존하며 번성할 것이요, 또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가 가서 차지할 땅에서 네게 복을 주실 것임이니라.

그러나 네가 만일 마음을 돌이켜 듣지 아니하고 유혹을 받아 다른 신들에게 절하고 그를 섬기면, 내가 오늘 너희에게 선언하노니 너희가 반드시 망할 것이라. 너희가 요단을 건너가서 차지할 땅에서 너희의 날이 길지 못할 것이니라.

내가 오늘 하늘과 땅을 불러 너희에게 증거를 삼노라. 내가 생명과 사망과 복과 저주를 네 앞에 두었은즉 너와 네 자손이 살기 위하여 생명을 택하고,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고 그의 말씀을 청종하며 또 그를 의지하라. 그는 네 생명이시요 네 장수이시니 여호와께서 네 조상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주리라고 맹세하신 땅에 네가 거주하리라!”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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