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전문
| 설교일 | 2026-05-0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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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말씀 | 눅2:49-52 |
| 설교제목 | 신앙적 자녀교육 |
신앙적 자녀교육
눅2:49-52
2026년 5월 3일 [부활절다섯째/ 어린이주일]
가정은 세상 가운데 세워주신 작은 교회이다. 가정은 하늘나라의 출장소요, 세상을 향하여 열린 하나님의 창문이다. 사람은 태어나서 가정을 통해 하나님나라를 경험하고 가정을 통해 하나님을 알아가게 된다. 따라서 가정은 교회처럼 하나님을 모신 거룩한 곳이 되어야 한다. 한편, 교회는 가정처럼 따뜻하고 친밀한 곳이 되어야 한다. 그래서 “가정은 교회처럼, 교회는 가정처럼!”
오늘날 가정의 위기를 말하는 소리를 늘 듣는다. 부부 간의 사랑이 메말라서, 남편이나 아내 한쪽이 마음이 간절해서 눈빛을 보내고 손이라도 잡을라치면, “가족끼리 왜 이래?” 하면서 도망간다고 한다. 사랑의 불꽃이 타오르고 있는가, 아니면 재만 남아있나? 재만 남은 사랑은 쓸쓸하게 먼지만 날린다. 결혼한 남남으로 살고 있으면서도 사고만 나지 않으면 다행이라는 심정으로 적당히 달래고 있지는 않는가? 5월은 가정의 달이다! 하나님이 만들어주신 가정에 사랑의 불꽃이 타오르게 하자!
주일학교에서 선생님이 꼬마들에게 물었다. “교회에서 조용히 해야 되는 이유를 아는 사람?” 그러자 한 꼬마가 손을 들고 대답하였다. “엄마가 그러셨는데, 다른 사람이 잘 땐 조용히 하랬어요.”
목사의 아내가 자기 집 과일나무에서 과일을 훔쳐가던 어린이들을 붙잡았다. 그녀는 화가 나서 이렇게 물었다. “너희는 성경이 도둑들에게 대해 뭐라고 말하는지 아니?” “물론이죠.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가 있으리라.”
반전 매력이 있는, 톡톡 튀는 아이들 모습이다! 무엇보다 요즈음 심각하고 어려운 문제가 자녀들을 바르게 교육하는 일이다. 자녀들과의 세대차가 너무 심각하여 마치 딴나라 사람들을 대하듯, 진정한 만남과 교류가 이뤄지지 못할 때가 있다. X세대가 나타났는가 했더니, 금새 Y세대가 지나가고, 이제는 주위 공간에 컴퓨터가 설치되어 있고 디지털 시대의 새로운 미디어인 인터넷, 스마트폰으로 의사소통을 하는 N세대가 등장하였다. 밀레니얼 새천년 세대라는 말과 넷트워크로 소통하는 세대하는 말을 합쳐서 요즈음 청소년들을 MZ라고 부른다. 얼마나 변화무쌍한지 갈피를 잡을 수가 없다. 그러나 변치 않는 사실은 세월이 지나도 변함이 없이 우리는 진리 안에서 자녀들을 바로 양육할 수 있다. 다만, 이전보다 더욱 노력하고 기도하는 부모만이 자녀를 바르고 아름다운 자녀로 양육할 수 있을 것이다.
어떤 사람이 말하기를 “한 어린이가 자라서 웨슬리와 같은 성자가 되느냐 히틀러와 같은 폭군이 되느냐 하는 것은 그들을 키우는 어른들의 책임이다” 하였다. 자라기도 전에 깊은 병이 들어있거나, 마땅히 행할 길을 아이에게 가르쳐주지 않아서, 어떻게 행할 바를 모르는 아이들이 있다면, 이는 가정의 근심이요 사회의 문제가 된다. 아프리카 격언에 이런 말이 있다고 한다. ‘한 아이를 바르게 키우려면 한 마을이 필요하다.’ 자녀양육에는 공동책임이 있고, 사회와 나라가 함께 노력해야 다음 세대를 잘 키울 수 있다는 말이다. 카톨릭 선교사 프란시스 사비에르(F. Xavier)는 “아이들을 일곱 살까지 나에게 맡겨준다면 그 후에는 누가 맡아도 좋다“고 하였다.
“가지 많은 나무에 바람 잘 날 없다.”는 말이 있듯이 자녀들 키우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모른다. 아주 똑똑하고 건강하며 일 잘하는 한 젊은 집사는 쌍둥이를 낳고 아이를 키우느라 얼마나 힘든지 아무 일도 하지 못하고 지쳐버렸다고 한다. 자녀를 낳고 키우는 과정은 정말 어렵고 힘든 일이다. 마음먹은 대로 되지 않고 배운 대로도 되지 않는다.
그러나 자녀 양육에는 축복이 있고 약속이 있다. 우리의 미래는 자녀와 함께 밝아진다. 잘 키운 자녀는 그 어떤 사업이나 경제와는 비교할 수 없는 삶의 기쁨과 보람을 준다. 우리 민족이 21세기 세계복음화에 기여할 제사장 나라가 되기 위해서는 신앙적 자녀교육이 가정과 교회에서 새롭게 부흥해야 한다.
본문은 예수 안에서 나타난 신앙적인 자녀교육을 보여준다. 특히 누가복음은 ‘사람복음’이라는 별명이 붙을 정도로 예수님의 인성을 잘 보여주고 있는 복음서이다. 여기서 예수님의 어린 시절이 드러나 있다. 어린 예수는 ‘아버지의 집’ 성전과 친밀하였다. 또 예수는 하나님의 말씀을 잘 알고 있었다. 그뿐 아니라 예수는 지혜와 키가 같이 자랐고, 하나님과 사람에게 더욱 사랑스러워 갔다.
여기서 우리는 성경적인 인간관과 성경적인 교육관을 배운다. 하나님은 창조주이시기에 인간 자신보다 인간을 더 잘 아신다. 하나님이 여기서 인간에게 기대하는 인간상이 있다. 이렇게 되었으면 좋겠다는 것이다. 그것을 예수님은 보여주신다. 참 교육, 바른 교육이란 이런 인간의 모습을 성장하도록 돕는 것이다. 이런 교육을 가리켜 ‘신앙적인 자녀교육’이라고 부르겠다. 하나님이 인간을 창조하신 대로 지혜와 키, 정신과 육체 양쪽 면에서 고루 발달되어야 참 인간이 된다는 것이다. 그럴 때 비로소 행복한 인생이 되며, 참 성공을 이룬다.
예수님의 신앙적 성장에는 네 분야가 있다. 첫째는 육체적 성장이다. 하나님이 창조하셨고, 성령이 거하시는 성전이 될 수 있는 몸은 중요하다. 너희 몸은 성령의 전이기 때문에, 자신의 것이 아니라고 바울은 말하였다(고전6:19). 그러므로 육체를 튼튼하게 하고 건강을 잘 관리하는 것이 중요하다. 육체적 순결을 지키는 일도 중요하다. 아무리 공부 잘 하고 실력을 갖추어도 육체가 건강하고 건전하지 않으면 소용이 없다. 영양섭취, 운동, 절제된 생활을 통해 육체의 건강을 지키자!
우리 아파트 헬스장에 운동하러 나오는 우리 교인들과 다른교회 교인들이 있다. 지나가다 만나면 반갑게 인사한다. 참 보기 좋다. 하나님이 주신 신체를 잘 관리하고 열심히 단련하는 것은 얼마나 충실한 믿음의 자세인가! 우리는 육체적으로 건강을 담고, 활발한 생활을 누릴 수 있도록 잘 관리하고 지켜야 한다.
둘째는 지적 성장이다. 사람은 지적으로 성장해야 판단력을 가지고 일을 해결할 능력을 가지게 된다. 지적으로 자란다는 것이 무슨 학사 박사가 된다는 말이 아니다. 분별력을 가지고 지혜롭게 살 수 있도록 착실하게 준비하고 훈련한다는 것이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식의 근본이다. 모든 지식을 하나로 꿰어 삶의 지혜가 되도록 하기 위하여 성경을 배워야 한다. 지식이 많아도 지혜가 부족하면 죽은 지식이요, 인생에 유익을 주지 못하기 때문이다.
특히 성경을 많이 읽으라. 교인들을 두 종류로 나눌 수 있는데, 성경을 읽는 교인과 성경을 읽지 않는 교인이다. 성경을 읽고 묵상하기를 생활화한 교인들은 내면이 든든하여 쉽게 흔들리지 않고, 꾸준히 인격이 완전을 향해 나아가며 계속 성장해가는 사람이다. 그러나 성경을 읽지 않고 개인묵상도 게을리하는 사람은 세월이 지나면서 점점 믿음이 약해진다. 여러분은 성경을 많이 읽고 기독교 고전도 읽음으로 지적으로 성장하는 성도가 되라! 그리고 자녀들과 손자녀들에게 경건생활의 모범을 보여, 온 가족이 말씀을 묵상하는 가족이 되게 하라!
셋째는 사회적 성장이다. 인간은 사회적 존재이다. 다른 사람들과 어울리는 법, 남을 배려하고 섬기는 법을 배워야 한다. 현대로 올수록 더욱 인격 교육, 사회성 계발이 필요해지고 있다. 아무리 지적으로 훌륭해도 인격적으로 성숙하지 않으면 지도자가 될 수 없다. 한국 부모들은 자기 아이만 잘 하면 된다는 사고방식이 있다고 한다. 이것을 넘어서서 함께 잘 되는 길, 다른 사람을 배려하고 도와주는 사회성을 가르쳐 주어야 한다. 교회생활을 잘 하면 틀림없이 사회적인 성장이 잘 이뤄진다.
때를 따라 인사할 줄도 알아야 하고, 무슨 일을 만날 때 남의 입장을 배려할 줄도 알아야 한다. 자기만 옳다 하고 자기만 위해달라는 사람은 사회생활에 큰 어려움을 주어서, 직장에서나 가정에서, 그리고 교회에서 많은 문제를 일으키는 사람이 된다. 어른은 아이들을 이해하고, 남자는 여자를 이해하며, 윗사람은 아랫사람들의 마음을 알아차리는 넓은 마음이 필요하다. 사회생활을 잘하고, 공동체 안에서 사람들이 행복하기 위해서는 ‘역지사지’ 거꾸로 남의 입장에서 생각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넷째는 영적 성장이다. 인간은 영혼이 중요하다. 영적 차원은 인간 마음의 깊은 중심이다. 영적 차원이 잘 자라야 영생을 얻고 보다 의미있는 삶을 누릴 수 있다. 하나님이 인정하시는 진짜 일류 인생을 살기 위해서는 신앙을 심어주어야 한다. 자녀들의 영혼이 하나님을 만날 수 있게 해야 한다. 이 부분에 소홀하거나 나태하면 큰일 난다. 목사 가정도, 장로 가정도 이 문제에 소홀하여 나중에 크게 후회하는 가정들을 보았다. 사람의 마음을 살피려면 영적인 차원이 자라나야 한다.
육체적 성장과 지적 성장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사회적 성장과 영적 성장이 정말 중요하다. 영혼이 변화되지 않으면 다른 것들이 좋아도 아무 소용이 없기 때문이다. “재산을 물려주는 것은 조금 주는 것이다. 공부시키는 것은 많이 주는 것이다. 그러나 신앙을 물려주는 것은 전부를 주는 것이다.” 그렇다! 우리가 자녀들을 얼마나 책임지고 돌봐줄 수 있겠는가? ‘품의 자식’이지 크면 어찌 할 수 없다. 자기가 커야 한다. 하나님께서 자녀들을 책임져 주셔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자녀들의 영혼이 성장하고, 하나님을 만나도록 해야 한다. 최고의 유산은 단연 신앙 유산임을 기억하라!
먼저 우리가 삼가야 할 것은 어린이와 다음 세대를 함부로 대하는 것이다. 어린이 홀대는 어른들의 명백한 잘못이다. 사람들이 예수님의 만져주심을 바라고 어린아이들을 데리고 왔을 때 제자들이 꾸짖었다. 왜 주님이 일하시는 자리에 어린아이들을 데리고 와서 방해가 되게 하느냐는 것이었다. 여기에는 당시의 관습이 여자들이나 아이들을 업신여기는 것이 일상화된 것을 보여준다. 그러나 그때 사람들의 상식이 그랬다고 해도 제자들은 그래서는 안 되었다. 당시 어린이들을 ‘아이’라고 불렀는데, 헬라어로 ‘미크로스’이다. ‘작은, 보잘것없는-’ 이란 뜻이다. 고대 사회에서는 어린이들을 무시했다. 그런데 예수님만은 이런 태도를 분하게 여기셨다고 복음서는 기록하고 있다.
오랜 역사는 어린이들이 어른들에 의해 희생물이 되고 수단으로 이용되었던 것을 보여준다. 모세가 태어날 때 이집트 왕 바로는 히브리 여인들이 낳는 남자 아이들은 모조리 죽이려고 했다. 예수님이 탄생하셨을 때 분봉왕 헤롯은 자기의 권좌를 지키려는 욕망에 눈이 어두워 두 살 이하의 사내아이를 남김없이 살해했다. 고대 스파르타에서는 국가 관리가 약한 아이로 판정을 하면 내다버려야 했다고 한다. 용사나 선수가 되기에 알맞은 아이들만 골라서 키웠다.
오늘날도 이와 같이 보통의 어린이를 홀대하는 어른들을 많이 본다. UNICEF(국제연합아동기금)의 보고에 의하면 2초마다 어린이 한 명이 죽고 있다고 한다. 날마다 4만 명의 어린이가 질병과 영양실조로 생명을 잃고 있다는 얘기가 된다. 1억 명이 넘는 어린이가 교육을 받을 기회를 얻지 못해 문맹으로 자라나고 있다. 집 없이 방황하는 어린이의 수만도 세계 도처에 1억 명이나 된다고 한다. 국제구조위원회의 최근 보고에 의하면, 급성 영양실조에 대한 쉬운 치료법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역사적으로 도움이 필요한 어린이들의 80%가 생명을 구할 수 있는 치료를 받지 못하고 있으며 매년 100만 명에서 200만 명의 사망자가 발생하고 있다. 어린이의 절망은 결국 우리 모두의 절망이다. 죽어가는 어린이, 병든 어린이 곁에서 누구도 희망을 자랑스레 말할 수는 없다.
미국의 22대와 24대 두 번 대통령을 지낸 클리블랜드가 있다. 그는 목사의 아들로 태어난다, 9남매 중 다섯째로. 그런데 아버지가 시무하시는 교회가 너무 작고 경제적으로 어려워 수없이 많은 교회를 옮겨다녔다. 그는 여러 개의 학교를 다녀야 했다. 16세가 될 때 아버지가 갑자기 돌아가셔서 학업을 포기한다. 숙부 집에 가서 백화점 점원을 하고 맹인학교 교사, 변호사 사무실의 서기를 지냈다. 너무 힘들고 좌절되어 환경에 지고 말았다. 청년시절엔 고달픈 인생을 위로받느라, 친구들과 어울려 술집에 다니곤 했다. 그런데 어느 날 교회 앞을 지나다가 그날 담임목사님의 설교제목을 보았다. “죄의 값은 사망.”
그는 목사 아들로서 어릴 적부터 받은 신앙교육을 생각하며 부끄러웠다고 한다. 죄지으러 다니고 쾌락을 추구하느라 방탕한 생활을 하는 자신의 모습에 가책이 왔다. 그날 저녁 그는 친구에게 술집에 안 가겠다고 했다. 친구는 기분 나빠 하면서 술집으로 가고 그는 교회로 가서, 그때부터 신앙의 삶으로 돌아왔다. 시간이 흘러 클리블랜드는 버팔로 시장이 되었고, 뉴욕 주지사를 지낸다. 그리고 1885년에 드디어 미합중국의 대통령이 되었다. 그가 대통령이 되던 해는 우리나라에 아펜젤러와 언더우드 선교사가 인천 제물포항을 통해 복음을 전하러 들어온 해이다.
그가 당선되던 날, 감옥에서 한 죄수가 신문을 보고 울고 있었다. 그래서 간수가 왜 우느냐고 물었다. 그러자 그 죄수는 그날 신문에 난 클리블랜드 대통령이 자기 친구라고 말했다. 30년 전 어느 날 저녁에 함께 술집으로 가다가 헤어져 교회로 간 그 친구가 바로 오늘 대통령이 되었다는 것이었다. 그는 믿음으로 뜻을 정하여 살아 대통령이 되고, 자기는 계속 방탕한 생활을 하다가 결국은 범죄자가 되어 감옥에 있으니 어찌 울지 않겠느냐는 것이었다.
미국의 명문대학 가운데 뉴저지에 있는 프린스턴 대학교는 캠퍼스가 웅장하고 아름다운 학교로 유명한데, 그곳에서 가장 유명한 건축물은 클리블랜드 타워이다. 그것은 장로교학교인 그 대학이 장로교인이요 목사 아들로서 대통령에 두 번이나 당선된 클리블랜드를 기리는 탑이다.
하나님의 기준으로 볼 때 온전한 교육을 하고 있는가? 예수님처럼 우리 자녀들도 지혜와 키가 함께 자라게 하자! 우리 세대에서 이루지 못한 일들을 다음 세대가 다 이루어 가도록 정성을 다해 자녀를 양육하자. 하나님의 꿈이 자녀들을 통해서 나타나도록 기도하고 지금부터라도 믿음으로 양육하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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