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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 받는 백성이 되는 길 (창25:21-34) [2026년 7월 19일, 성령강림후 여덟째주일]
2026-08-01 15:48:22
박신진 목사
조회수   11
설교일 2026-07-19
설교말씀 창25:21-34
설교제목 복 받는 백성이 되는 길

복 받는 백성이 되는 길

25:21-34

2026719[성령강림후 여덟째주일]

 

나는 6.25전쟁 지난 지 얼마 지나지 않은 해에 이곳 삼척 정라진에서 태어났다. 어릴 적에 우리 생활은 항상 가난하였다. 당시 우리 민족은 세상에서 제일 복 없는 백성이었다. 우리 입는 옷은 가장 단순한 티셔츠나 런닝 옷이었고, 운동화는 엄두도 내지 못하고 발에 꼭 맞지 않아 헐렁거리는 검은 고무신을 신었다. 겨우내 밥반찬은 김치 한 가지였고, 봄에서 가을에는 길가와 밭고랑에서 나는 나물들을 철따라 먹었던 것 같다. 생일에도 쌀밥에 고기국은 먹기 힘들었다. 어느 해인가 생일에 김이 상에 올랐다. 얼마나 맛있든지 김만으로 밥 한 그릇을 다 먹었던 것 같다. 어떤 때는 끼니를 잇지 못해 걱정하는 때도 있었다.

그런데 우리 집만 가난했던 게 아니라 주위에 있던 사람들이 거의 가난했다. 고급공무원이나 의사, 광업소 간부들 자식들 외에는 대부분이 찢어지게 가난한 사람들이었다. 후에 자라면서 왜 우리나라는 이렇게 가난할까? 왜 나는 돈 많은 부모에게서 태어나지 못하고 이렇게 전쟁피난민의 자녀로 태어나 변변한 권리도 없이 살까?’ 그런 생각을 해 본 적은 있다. 성경적인 표현으로 하자면, 우리도 복받는 백성이 될 수 있을까, 그런 것이었다. 그러다가 역사를 공부하고 나름대로 한번뿐인 인생을 어떻게 살 것인가 할 때에, 가난하고 외로운 사람들을 위해서 사는 목회자가 좋겠다는 생각을 한 것이다.

사람은 어릴 적에는 대부분 삶의 조건과 운명이 어느 정도 주어진다. 미국에 처음 가보았더니 이 사람들은 잘난 것도 없고 뛰어난 것도 없는데 어떻게 이렇게 부유하고 넉넉하고 여유로운 환경에서 태어났을까, 우리하고 비교가 되면서 한없이 부러웠다. 미국사람은 미국에서 태어났다는 그 한 가지 때문에 누리는 것이 참으로 많더라. 요즘 라오스나 캄보디아 같은 데 가보면, 우리가 거기 태어나지 않고 이 나라에 태어났다는 것이 얼마나 큰 특권인가 하는 생각이 든다. 타고나면서 복 받은 민족이 있고, 박복한 백성이 있다.

아이들이 한참 감수성이 예민할 때, 외모나 자기 집에 대해 엄마에게 불평을 한다. 왜 이렇게 작게 태어나게 했느냐, 우리 집은 왜 가난하냐? 우리가 어떻게 할 수 없는 부분이다. 어떤 집이 세 자매가 다 미스코리아 탤런트로 날 때부터 쭉쭉 뻗은 집이 있는가 하면, 어떤 집은 아무리 매일 운동을 하고 화장 위장 분장을 해도 못난 외모를 가릴 수 없는 집이 있는 걸 어떡하나? 아무리 부모를 탓하고 출신을 원망하며 환경을 시비해도 할 수 없다. 그럴 때 우리는 사실을 그대로 인정하고 그 범위 안에서 최선을 다하여 행복을 가꾸며 사는 방법밖에는 없다. 성경에는 복 받는 길이 나와 있다!

 

1. 먼저 오늘의 말씀에서 우리는 주어진 운명일지라도 기도로 개척해가는 이삭 가문의 이야기를 읽었다. 우리 삶의 조건은 누구나 희망대로 만족하게 주어지지는 않는다. 그렇기에 삶에는 많은 문제가 찾아온다. 복 있는 백성이 있고, 복 없는 백성이 있는 게 사실이다. 삶의 문제들은 사람마다 시간마다 다르게 나타난다. 여기서 문제보다 중요한 것은 닥치는 문제를 어떻게 풀어가느냐이다. 별것 아닌 문제를 어렵게 풀어서 그 문제에 인생 전체가 매여 있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아주 어렵고 해결하기 불가능한 문제인데도 지혜와 용기를 가지고 쉽게 풀어나가는 사람도 있다. 여러분이 쩔쩔매는 그 문제는 별 문제도 아닌데 뭘 그렇게 온 힘을 다 쓰고 있는가? 저주를 풀고 복 있게 해결하라! 돈 문제, 과거문제, 건강문제, 감정문제 등등! 인생 난제를 풀고 복을 부르면 되지 않나? 어려운 문제에 더 이상 매여 있지 말고 복되게 풀어가라!

이삭 가정의 문제는 결혼한 지 20년이 다 되어가지만 두 사람에게 아기가 없다는 문제였다. 농경사회에서 아기가 없다는 것은 미래가 없고 산업이 없고 보호가 없다는 심각한 문제이다. 아기, 특히 아들이 없으면 장차 농사를 이어갈 미래 일꾼이 없는 것이고, 외적이 침입해 들어올 때 보호할 군사를 준비하지 못한 것이다. 큰 문제였다! 그런데 사람의 힘으로 어쩔 수가 없었다. 이삭 집은 짐작컨대 20년 동안 아이를 열심히 만들었는데도 생기지 않았다. 자식은 복의 통로인데, 생기지 않았다. 정말 어려운 문제다.

그런데 성경은 아주 편안하고 분명한 문제해결책을 제시한다. 그것은 그들이 기도했다는 것이다. ‘이삭이 그의 아내가 임신하지 못하므로 그를 위하여 여호와께 간구하매 여호와께서 그의 간구를 들으셨으므로 그의 아내 리브가가 임신하였더니.’(21) 여기 간구하매라는 단어는 히브리어로 아타르인데, ‘향을 피우다라는 어근에서 유래한 말이다. 향을 피우듯이 끊임없이 하나님께 냄새를 피우고 탄원하고 간구하였음을 뜻한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약속을 기다리지 못하고 하갈과의 사이에서 자손을 얻으려 했던 반면에, 이삭은 하나님께 간구하였고, 하나님이 그 간구를 들으셔서 문제를 해결하였다! 우리는 이삭이 특별히 축복의 증거가 없는 세대로 알고있는데, 이삭은 어려운 문제 앞에서 기도하고 간구함으로 복을 이루어가는 믿음의 사람이었다!

간구하는 기도는 두 가지 의미가 있다. 하나는 하나님께 아룀으로써 그 간구가 응답되게 한다는 것이다. 하나님은 들으신다. 하나님은 응답해주신다. 하나님은 우리의 소원을 살피신다. 향을 피우듯 하나님을 향해 계속 냄새를 피우면서 나는 그게 필요해요, 하나님이 해결해주셔야 합니다.’ 떼를 쓰듯이 매달려, 쉬지 않고 기도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언약 백성의 진실한 기도를 아주 중요하게 들으신다. 아이들이 부모에게 뭘 달라고 매달릴 때, 경우에 맞거나 꼭 필요한 것만 요구하는 게 아니다. 그러나 간절히 바라면 부모는 거기에 응답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간구의 기도가 바람대로 응답되지 않을 때도 많이 있다. 그때 사람들은 말한다. ‘어떤 때는 응답해주시고 어떤 때는 응답해주지 않으신다면, 하나님이 기도에 응답하시는지 안하시는지 어떻게 알 수 있단 말입니까?’ 하나님은 응답하지 않으시는데, 그냥 우연히 기도하는 게 이뤄지면 응답되었다 하고, 이뤄지지 않으면 응답하지 않았다 하는 게 아닐까? ... 그러나 하나님은 기도에 응답하신다. 하나님은 응답되지 않을 때 기도하는 사람에게 그 상황에 대처할 수 있는 힘을 주신다.

기도하지 않고 좌절할 때 사람들은 자기 방법을 쓴다. 하갈을 데려오는 거다! 이 방법, 저 방법을 갖다 대는 거다. 그러나 기도하는 사람은 옳은 방법, 바른 길로 가다가 안 되더라도, 나오는 결과를 받아들인다. 아브라함의 길은 하갈을 대안으로 세우는 방법인데, 실패한다. 이삭의 방법은 간구하는 것인데, 하나님이 들으시고 결혼 20년 만에 쌍둥이를 주셨다. 쌍둥이는커녕 한 아이를 주지 않더라도 우리는 기도하고 간구하면서 나가야 한다! 언약백성에게는 못 이루더라도 기도하며 나가는 그 길이 정도, 바른길이다. 언약백성은 자기 방법과 수단을 자꾸 쓰기보다는 먼저 기도해야 한다. 그때 하나님께서 복을 주신다.

 

2. 오늘 본문에는 날 때부터 팔자가 달랐던 쌍둥이 아들이 나온다. 한 사람은 언약의 백성이었고 한 사람은 아무리 잘나고 남자다워도 하나님으로부터 외면당한 백성이었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의 아들 이삭은 아내 리브가와의 사이에서 쌍둥이 아들을 낳았다. 이삭은 오랫동안 아기를 가지지 못했다. 리브가는 무려 20년 동안 아기를 가지지 못했다. 그런데 아기를 가졌을 때 언제부터인가 쌍둥이인 것을 알게 된다. 뱃속에서부터 이 두 아기가 발길질이 다른 데다 서로 싸웠기 때문이다. 이 두 아기는 태어나기 전부터 다른 삶의 궤도를 간다. 두 쌍둥이 아들의 장래는 많은 부분에서 날 때부터 가는 길이 달랐다.

아마 임신 중에 리브가는 아이가 정상이었는지 많은 걱정을 해야 했다. 쌍둥이라 유난히 배가 부를 뿐 아니라 성경에 보면 두 아이가 뱃속에서 싸워대니 내가 어찌할꼬?’ 하여 여호와께 물어보았다. 우리도 때로는 설교를 통해 하나님 뜻을 찾기도 하고, 주의 종 목사님이나 선배 신앙인에게 물어보기도 한다. 하나님은 리브가에게 이렇게 응답하셨다.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두 국민이 네 태중에 있구나. 두 민족이 네 복중에서부터 나누이리라. 이 족속이 저

족속보다 강하겠고, 큰 자가 어린 자를 섬기리라 하셨더라(23).

하나님의 예정이 본래부터 야곱에게만 있었느냐, 이 문제는 단정할 수는 없다. 하나님만이 아신다는 것이 정답이겠지. 문제는 인생이 같지 않다는 거다. 두 개의 궤도가 있다. 구원으로 가는 길과 멸망으로 가는 길이다. 가인의 길이 있고 아벨의 길이 있으며, 이삭의 길이 있고 이스마엘의 길이 있다. 여기 야곱의 길이 있고 에서의 길이 있는가 하면, 신약시대에는 베드로의 길이 있고 가룟 유다의 길이 있다. 차이가 있다! 구원의 백성이 되어 하늘에 속한 삶을 살 수도 있고, 멸망의 백성이 되어 땅에 속한 삶을 살다가 죽을 수도 있다. 이게 하나님의 예정이라는 것인데, 쉽게 단정할 수가 없다. 하나님의 소관이다! 우리는 겸손하게 받을 수밖에 없다. ‘하나님, 왜 이래요? 나만 억울하잖아요!’ 할 수가 없다. 믿음으로 잘 받으면 하나님께서 새로운 기회를 주신다!

독일의 학제는 특별한 점이 있는데 초등학교를 졸업하면 장래 어떤 방향으로 갈 것인가가 나뉘어지는 것이다. 그들은 만 6세 때 우리 초등학교와 같은 그룬트슐레에 들어가 4년을 배우고 나면 자기 진로를 따라 두 학교 중에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 김나지움은 대학을 진학하는 학교이고, 직업학교인 하웁트슐레 혹은 레알슐레로 가면 전문직업교육을 받을 수 있다. 적성이 맞지 않아 공부보다는 직업 쪽으로 가려는 학생이 반이 넘는다고 한다.

영적 진로에도 두 가지 길이 확실하게 갈라진다. 믿음의 길에는 언약의 백성에게 주시는 영생과 구원이 있고, 불신의 길에는 멸망의 백성에게 임하는 죄악과 심판이 있을 뿐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언약의 백성이 되기를 힘써야 하고 결단해야 하며 복된 길로 따라갈지언정 결코 다른 길로 가지 말아야 한다! 야곱과 에서가 같은 어머니에게서 태어났지만 두 운명이 된 것처럼, 우리도 같은 장소에서 같은 삶을 누릴지라도 멸망의 백성이 가는 길을 내어버리고, 언약의 백성에게 주신 구원과 축복의 길을 선택해야 한다.

 

3. 이삭의 두 아들이 나아가는 삶의 방식은 우연한 한 사건을 통해 드러나게 되었다. 어느 날 야곱이 집에서 팥죽을 쑤었다. 에서는 바깥에서 일하고 들어와 붉은 팥죽을 달라고 한다. 이때 야곱은 ! 내가 팥죽을 줄 테니 장자 명분을 내게 팔아!” 한다. ‘무슨 소리냐?’ 하며 펄펄 뛸 줄 알았는데, 의외로 에서는 선선히 지금 배고파 죽겠는데 장자의 명분이 무슨 소용이야? 가져가, 가져가!” 하면서 팥죽하고 바꾸어 버린다. 이때 약삭빠른 야곱은 맹세하도록 한다. 인쇄술이 발달하지 않고 종이나 펜도 귀하던 시절에는 구두계약과 하나님 이름으로의 맹세가 유효하고 실질적인 계약이었던 거다.

장자의 명분이 무엇일까? 사회적인 관행으로 장자는 부모의 재산을 다른 자식들의 배나 되게 상속받을 수 있는 권리이다. 또 다른 아들들이 종의 아들이면 재산의 전부를 상속받을 수 있었다. 그런데 야곱은 종의 자식이 아니니까 에서는 아버지 재산의 삼분의 이를 상속받을 수 있었는데, 지금 팥죽 한 그릇에 재산 삼분의 일을 내어놓은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장자는 집안일에 대해 재판할 수 있었다. 중요한 결정을 내릴 수 있으며 집안사람이 음란한 죄나 부정한 일을 저질렀을 때 사형도 명할 수 있었다. 또 장자는 가족들을 위해 축복권한도 있었다. 당시에는 맹세 뿐 아니라 축복도 재산과 같은 권한이라고 보았다. 재물은 실현된 축복이요, 축복은 아직 겉으로 나타나지는 않았지만 언젠가는 반드시 나타날 약속어음 같은 것으로 보았다. 이런 축복권한을 장자가 가지는 거다. 아마 에서가 그 사실을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팥죽 그릇 앞에서 한 맹세가 설마하니 효력이 있겠어?’ 하는 안일한 생각을 했던 것 같다.

하나님께서는 장자에게 영적인 우선권을 주셨다. 장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받는 권한이 있고, 예배를 대표하여 드리는 사람이었다. 하나님은 장자를 통해서 말씀을 전하였고, 죄 용서를 베풀어 주셨다. 이 장자권한은 돈으로 사거나 팔 수 없고 하나님은 원하시는 자에게 이 장자권을 주셨다. 공교롭게도 창세기에서 장자의 권한은 맏아들이 아닌 지차들이 차지하는 역사를 보여준다. 여기 이삭의 두 아들 야곱과 에서 중에서 야곱이 그랬고, 야곱의 열두 아들 중에서도 열한 번째 아들 요셉이 장자의 권한을 가진다.

장자의 권한은 원한다고 해서 주는 것은 아니었지만, 에서처럼 장자권을 업신여겨서 포기했을 때는 그 장자의 축복으로부터 멀어지게 되었다. 에서가 이렇게 하나님의 축복의 통로인 장자권한을 소홀하게 생각한 이유가 무엇이었을까? 그에게는 미래를 보는 눈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는 당장 인정받고 칭찬받는 것에만 만족했다. 그의 관심은 지나치게 현재적이었던 것이다. 그는 미래의 축복을 믿지 않았다. ‘내가 죽게 되었으니 이 장자의 명분이 내게 무엇이 유익하리요!’ 이 말 속에 에서의 가치관이 다 들어있지 않은가? 34절을 보라. ‘야곱이 떡과 팥죽을 에서에게 주매 에서가 먹으며 마시고 일어나 갔으니 에서가 장자의 명분을 가볍게 여김이었더라.’ 에서는 팥죽에 더하여 떡까지 먹은 현재의 형편으로 만족하였다.

그러나 야곱은 달랐다. 그는 팥죽에 더하여 떡까지 형에게 내어줄지라도 미래의 축복을 전해주는 장자의 명분을 얻으려 했다. 하늘의 것을 사모하며 추구하는 삶의 태도다. 지금은 조금 못 얻어먹고 배부르지 못할지라도 장자의 명분과 권한이 주는 축복과 은혜를 사모하였다! 언약 백성이 누릴 복은 장자의 명분이었다. 하나님의 백성들에게는 반드시 보장된 미래가 있다. 하나님의 백성이라 하면서도 에서처럼 오늘 힘을 다 탕진하고, 모든 음식을 다 먹어버리고, 다 즐겨버리고, 당장 보이는 것을 기준으로 사는 사람은 하나님 앞에서 얻을 것이 없다. 오늘 우리는 무엇을 위하여 살고 있나? 여러분은 육적이고 땅의 것만 추구하는 현재적인 에서인가, 영적이고 언약백성의 축복을 사모하여 하늘의 것을 추구하는 미래지향적인 야곱인가?

 

구약을 보면 모압여인 룻 이야기가 나오는데, 원래 복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박복한 여자였다. 팔자에 복이 없었다. 실패한 여자였다, 슬픈 인생이었다. 유다 땅에 가서 외국 남편과 결혼했으나 사별하여 청상과부가 되었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을 경외하였고 부모에게 효도하였으며, 무너진 자기 집안을 지키고 이삭 줍는 작은 일을 성실히 하였다. 그러자 하나님이 복을 주신 것이다. 유다의 명문가 농장주인 보아스가 보니 이 여인이 참으로 귀했다. 감동을 받아 프로포즈를 한다. 그래서 결혼을 한다. 보아스는 여러 모로 관례를 깨고 룻을 맞이한다. 룻은 마음이 바르고 효성도 깊지만 매력적이기도 했다.

둘은 결혼해서, 오벳을 낳고, 오벳은 이새를 낳았으며, 이새가 다윗 왕을 낳았다. 당시 재혼한 이방 여인이 유대의 왕족이 되었다. 팔자 드샌 박복한 여인이 믿음으로 복을 받아 위대한 왕의 증조할머니가 된다. 하나님 안에는 실패가 없다. 지금 예배하고 하나님을 신실하게 섬기는 것이 답답하고 손해인 것처럼 보여도, 그것이 복받는 길이다! 지금 충성하고 헌신하는 것이 손해인 것 같아도, 복을 부르는 비결이다. 환란과 가난이 변하여 복이 되며, 행복한 가정이 될 것이다! 계명을 지키며 하나님 잘 섬겨 충성하고, 기도하며 부모에게 효도하는 것이 복 받는 길이다!

 

사랑하는 이들이여, 하나님의 은혜는 기도하는 자에게 주어진다! 하나님의 은혜를 사모하는 사람들의 가는 길은 에서의 길과 야곱의 길이 다르듯이 다르다. 돈을 추구하고 세상 쾌락을 추구하지 않는 것은 그것을 몰라서가 아니라, 좀 더 나은 도성, 좀 더 위대한 미래를 바라보기 때문이다. 참된 복을 받는 백성이 되기 위해 지금 말씀을 보고 예배를 드리며, 변화된 삶, 장자권의 축복을 놓치지 않기 위해, 야곱처럼 오늘 참고 하나님을 경외하며, 계명을 지키고 충성하여, 믿음의 길로 달려나가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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