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말씀   >   설교전문

설교전문

베드로, 물위를 걷다! (마태14:22-33) [2026년 8월 23일, 성령강림후 열셋째주일]
2026-08-22 14:28:58
박신진 목사
조회수   3
설교일 2026-08-23
설교말씀 마태14:22-33
설교제목 베드로, 물위를 걷다!

베드로, 물위를 걷다!

마태14:22-33

2026823[성령강림후 열셋째주일]

 

영웅을 잃어버린 시대이다. 모두가 소시민이 되어 자기 집과 직장 주위의 작은 이야기에 머물며 각자의 행복을 소소하게 누리려는 시대이다. 이런 때, 여름을 지나면서 영화 <오디세우스>가 전국을 강타하고 있다. 몇 주 만에 600만 관객을 돌파했다고 한다. 천만 관객은 무난히 넘길 것이다. 트로이 전쟁을 마치고 고향으로 돌아가는 오디세이의 이야기이다. 오디세우스는 신들의 이야기, 신화니까, 몇 번이나 오디세이를 평안히 살게 해주려는 유혹이 있었다. 그러나 그는 영원한 평안의 영역에 안주하기 보다는 시련과 고통이 있는 이 세상에서 살고자 하는 열망을 놓지 않는다. 그는 고향 이타카로 돌아가 아내와 아들을 만나 남은 삶을 살고자 한다. ‘대적들이 기다리고 있고, 언제 죽을지 모르며, 질병과 위험과 환란과 도전이 있을지라도, 이 위험한 세상에서 굴하지 않고 살아가리라! 고향으로 돌아가리라!’ <오디세우스>는 한 인간이 자기 가정과 고향을 지키냄으로 인간으로 승리하는 이야기이면서 동시에 인간이 자기를 초월하여 위대함을 이뤄가는 과정을 보여주는 서사시이기도 하다!

이 시대에 사람들이 초월과 위대함에 대한 도전과 성취를 열망하지 않고 매일매일 어울려 다니면서 먹고 마시는 일, 스포츠나 영화보기, 음악감상, 주말이면 놀러다니는 재미, 방학이나 휴가를 만나면 먼 나라로 가서 즐기려는 마음으로 가득차 있다. 인생을 위대하게 살려 했던 이전 시대의 사람들보다 훨씬 높은 문화와 풍족한 생활을 누리면서도 더 이상 먼 도전의 바다로 나아가려 하지 않는다. 우리 안에 있는 영웅을 잃어버렸다. 소영웅주의라고 하던 옛날 이야기들을 잊어버렸다. 인간 속에 있는 신적 이미지, 신의 그림자가 인간을 위대하게 만드는 걸 사람들이 망각해버렸다. 인간이 신이 되고 싶어하는 욕망을 다 포기했는가? 점점 비신화의 시대, 하나님을 잃어버린 시대를 살아간다. 이런 때에 오디세이의 이야기가 사람들에게 던져졌다.

우리 시대는 더 이상 하나님이 필요하지 않은가? 우리는 얼마든지 우리 스스로 인생을 살아갈 수 있는 성숙한 사람들이 되었는가? 우리는 영웅처럼 위대해질 수 있는가, 우리는 신들의 이야기에 동참할 수 있는 위대함과 초월을 간직하고 있는가? 사실은 우리시대의 인간은 신들의 형상을 잃어버렸다고 할 수 있다. 어리석고 무능한 사람들은 위대한 영웅이 될 능력이 없고, 지혜롭고 유능한 사람들은 소시민적 작은 행복만 추구할 뿐, 하늘의 소리를 들으려 하지 않는다. 우리가 훌륭하게 성취하고 성숙하게 되었을 때 하나님을 바라보고 더욱 온전함을 생각해야 한다. 이제 인간은 더욱 하나님을 의식하고 자신을 겸손히 낮은 곳에 둘 줄 알아야 한다. 인간의 안일함, 자기만족과 고집이 세상을 망치고 사람들을 점점 무기력하게 만든다. 위대해지고 인류문명이 발전할수록 우리는 하나님께로 나아가야 한다.

오늘 말씀에서 우리는 두 가지 도전 앞에 서게 된다. 하나는 배 안에 머물러 있다가 거기에 갇혀버리는 삶을 살 것인가, 배 밖으로 나와 물 위를 걷는 삶에 도전할 것인가? 많은 사람들이 너무 작은 범위 안에 자기를 가둬놓고 그렇게 평생을 살아버린다. 더 많은 꿈과 위대한 성취와 놀라운 가능성이 있음을 그냥 포기해버린 채 말이다! 오디세이는 고향으로 돌아가는 길에서 여인이 주는 안전하고 즐거운 삶에 머물러서 고향 돌아갈 생각을 하지 않는 때가 있었다. 또 하나의 도전은 배 밖으로 나왔을 때, 물에 빠지는 신세가 될 것인가, 물 위를 걷는 사람이 될 것인가? 바람과 물결을 보자 두려움이 베드로를 지배하였다. 그러자 물 속으로 빠져들어 갔다. 배 밖으로 나오면 우리의 주시오 온전케 하시는 이이신 예수님을 바라보고 집중해야 한다. 위대한 삶을 꿈꿀수록 하늘을 바라보아야 한다. 예수의 제자인 우리는 예수님과 상의하고, 예수님 말씀을 따라가야 한다.

 

오늘의 성경말씀은 우리에게 익숙한 이야기이다. 예수님은 제자들을 배에 태워 보내시고 따로 기도하러 따로 산에 올라가셔서 혼자 계셨다. 제자들은 예수님 없이 갈릴리 밤바다를 항해하였다. 인생은 밤바다를 항해하는 것과 같다. 내일 일을 알지 못한다. 제자들이 탄 배는 바람이 거슬려 불어 물결 때문에 고난을 당했다! 이때 예수께서 바다 위를 걸어 제자들에게로 다가오셨다. 다른 제자들은 배 안에 있고 베드로는 물 위를 걷게 해달라고 주님께 부탁한다. 배 안에 머문 다른 제자들은 당연히 물 위를 걸을 기회를 가지지 못했다. 전능하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이 자기들에게로 다가와 배 곁을 지나고 있는데도 배 안에 머물러 있기만 했다. 그들은 풍랑을 피하기에 바빴다. 풍랑을 거슬러 도전하는 삶을 살지 못했다.

배 안에 머물러 있는 삶과 물 위를 걷는 삶이 있다. 배 안에 머물러 있는 길은 쉽다. 그 길로 들어가는 문은 크고 그 길 넓어 많은 사람들이 들어간다. 그러나 물 위를 걷는 삶은 어렵다. 그 문은 좁고 길이 비좁아 가는 사람이 많지 않다. 배 안에 머물러 있는 삶은 지루하고 재미없고 무의미한 생활일 것인 반면, 물 위를 걷는 삶은 위험하나 새롭고 놀랍고 짜릿한 생활이 될 것이다. 많은 사람들은 도전이 없고 위기가 없는 안전한 생활을 택하려고 한다. 그러나, 삶을 변화시키고 역사를 새롭게 이루는 소수자들은 위험하지만 새 일을 이루기 위해 배 밖으로 나가는 선택을 한다.

베드로는 두 번째 방법을 택했다. 베드로는 위험을 무릅쓰고 주님과 함께 물 위를 걸으려고 했다. 배 안에 있던 다른 제자들은 안전을 선택하였다. 그들은 물 위를 걷는 특별한 발전을 택하지 않았다. 성장과 목적을 성취하기 위한 모험보다는 안전을 귀하게 여겼던 것이다. 그들은 배 밖으로 나가기 위해 어려운 결단을 하지 않았다. 그러나 배 안에 머물러 있는 것이 얼마나 큰 대가를 치러야 하는지 알지 못했다. 변화와 성장, 인생 목적의 성취라는 가치를 이루기 위해 때로 우리는 예수와 동행하기 위해 배 밖으로 나가는 결단을 해야 한다. 예수님과 함께 물 위를 걷는 기적을 체험하기 바란다. 우리는 어떻게 예수와 함께 물 위를 걷는 인생을 살 수 있을까?

 

 

먼저 배에 붙어있는 사람들을 생각해보라! 다른 제자들은 모두 배에 타고 있었다. 그들은 배에 붙어있는 배붙박이였다. 사람들은 대부분 배 안에 머물러 있으려 한다. 안전하게 자기를 지키려는 것은 모든 인간의 본능이다. 그러나 인생의 어느 때에는 안전하게 자기 위치를 지키고 있는 것이 가장 중요한 것을 잃어버리는 것이 될 때도 있다. 아이들이 처음 말을 배울 때에도 되지도 않는 말을 마구 하다가 조금씩 말이 되는 것이 아닌가! 어린 손자가 아빠도 아빠!’ 할아버지도 아빠!’라고 한다. 그렇게 족보도 흐트러지게 말한다고 화를 내고 말 못하게 하면 아기는 말을 배울 수 없다. 그냥 말해야 한다. 말이 되든 안 되든 자꾸 발성하고 시도하는 게 중요하다! 아이는 이미 같은 말 속에 자기 나름의 의미를 담아 말하고 있다. 그러면 나중에 진짜 말이 된다.

베드로가 물 위를 걷는 것을 생각해보라! 모든 인간이 땅 위를 걷는 것은 어떤가? 처음 걷는 것은 걷는 것이라 할 수도 없다. 세 걸음도 못가서 넘어지고 자빠지고 그러다가 계속 걸으면 걷게 된다. 자기 배에 붙어있으면 모든 성장, 모든 자기 초월은 그친다. 베드로는 물 위를 걷기 위해 배 밖으로 나왔다! 자기 배에서 나와야 한다!! 이것이 참으로 중요하다. 물 위를 걸으려는 자는 먼저 배 밖으로 나와야 한다. 우리는 배 밖으로 나오지 않고 환경을 탓한다. 바람이 너무 불고 물결이 일어난다는 것이다. 안전하지 않다고 핑계한다!

 

내 재능을 발휘하려 해도 직장 분위기가 영 아니예요.

다른 일을 새롭게 하고 싶지만 지금 이 직장이 안정되어 있어요.

진실로 뜨겁게 사랑하는 부부가 되고 싶지만 그냥 문제없이 지내고 싶어요.

영적으로 성장하고 싶지만 생활이 바빠서 성경공부나 기도할 시간이 없네요.

생활을 새롭게 하고 싶지만 지금 생활이 편해요, 변화된다는 게 어렵군요.

 

주님은 우리 인생에 물 위를 걷는 기적과 능력을 보여주시기를 원하신다. 그러나 우리가 배 밖으로 나오지 않는 한 우리는 절대로 물 위를 걷지 못한다. 교회도 안전 운행, 모험 회피만 해가지고는 하나님 뜻이 나타나는 위대한 교회 공동체가 될 수 없다. 그때 배 밖으로 나가려 할 때, 사람들이 한결같이 느끼는 감정은 두려움이다. 하나님이 모세, 여호수아, 기드온, 에스더 등을 부르셔서 위대한 일을 하게 하실 때 최고의 장애물은 두려움이었다. 그러나 택한 백성들은 이 두려움을 이겨내고 예수님을 향하여 전진해야 한다. 우리가 배 밖으로 나오느냐, 풍랑을 두려워하며 배 안에만 붙어있느냐는 결정적인 순간에 두려움에 지배를 받느냐, 두려움을 이겨내느냐에 달려있다.

외람되게 말씀드리지만, 저는 젊은 때 한때 유능한 전도사와 젊은 목사로 과분한 인정과 사랑을 받았던 적이 있다. 그때 나는 두려움을 모르고 과감히 새로운 일들을 시도했다. 교통이 불편할 때 교회학교 교사 수십 명을 데리고 서울의 교사강습회를 일주일 끌고 다녔다. 교사들은 그 열심에 호응하여 연차를 내고 땀과 눈물을 쏟으며 함께 다녔다. 성가대 지휘자일 때, 남의 교회 성탄절 칸타타 연주를 듣기 위해 전 성가대원들을 서울 교회로 부르기도 했다. 이 열정에 성가대원들이 응답할 때 인원이 늘어나고 소리가 좋아지는 기적이 일어났다!

지나친 편안함은 매우 위험하다. 영적 세계, 믿음의 영역에서는 풍랑이 몰아치는 위험한 바다가 위험한 게 아니라, 풍랑을 피하여 숨는 배 객실이 더 위험하다. 버클리 대학의 연구진은 아메바를 완벽한 환경 속에 집어넣고 반응을 살폈다. 최적의 온도와 습도, 양식, 질병 방지 등등. 그 결과가 어떻게 되었을까? 이상하게도 아메바는 죽었다. 살아있는 모든 피조물은 도전을 필요로 한다. 도전과 응전의 역동적인 과정을 통하여 성숙하고 성장하는 것이다. 선생님은 답이 아닌 문제를 준다. 답을 미리 알려주면 편하겠지. 그러나 성장할 수 없다. 문제를 주면 어렵다, 머리를 쥐어짜고 고민해야 한다. 그러다 성장한다. 편안함에 젖어 여러분의 낡은 배에 언제까지 머무를 것인가?

물 위를 걷기 위해 여러분의 낡은 배 밖으로 과감히 나오라! 하나님 안에서 저 푸른 하늘과 바다를 향해 날아오르려면, 낡은 옛 습관의 집을 뛰쳐나오지 않으면 안 된다. 특히 속회들과 선교회들, 교회학교에 담임목사로서 강력히 요청한다. 이제 배 밖으로 나올 때가 되었다! 여러분이 물 위를 걷는 기적의 주인공이 되기 위해 배 밖으로 나올 것인지, 계속 배 안에 머물러 옛 악습을 반복하는 어리석은 생활을 할 것인지, 여러분은 지금 선택해야 한다.

 

 

물 위를 걸으려면 바람을 보지 말고 예수를 보아야 한다. 물 위를 걷는 경험은 제자 베드로로서 환상적인 위대한 경험이었다. 이것은 모든 것을 대가로 지불해도 좋을 만큼 대단한 것이었다. 베드로는 배를 나와서 예수님께로 걸어갔다. 베드로는 풍랑을 이겼다! 베드로는 바다를 밟고 나아갔다!! 감히 풍랑이 이는 바다에 맞서다니! 한번도 경험해본 적이 없는 일이었다. 이런 베드로의 용기와 행동은 모든 새롭고 위대한 일을 위한 조건이다.

 

나아만은 문둥병을 치료하기 위해 물속에 일곱 번 씻어야 했다.

모세는 홍해를 건너기 위해 백성을 데리고 진군해야 했다.

기드온은 300명 군사로 한밤중에 미디안의 진으로 가야 했다.

떡과 물고기를 먹기 전에 먼저 사람들을 그룹을 지어 앉혀야 했다(떡도 없는데!).

씨앗은 열매로 나타나기 전에 먼저 땅에 묻혀 죽어야 했다.

 

마틴 루터에게 한 여인이 와서 말했다. “오 박사님, 저는 믿지 못하기 때문에 잃어버린 영혼이며, 구원받을 수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부인, 사도신경을 믿습니까?” 그녀는 손을 맞잡고 대답했다. “, 분명히 믿습니다. 그것은 가장 분명한 진실입니다.” “그렇다면 부인, 하나님의 이름으로 평안히 가십시오. 당신은 나보다 믿음이 좋습니다.” 루터보다도 위대한 믿음을 가진 사람이 루터를 부러워하며 한 걸음도 전진하지 못하고 있다. 바람을 보지 말고, 믿음의 주시요 완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님을 바라보라!

바람을 자꾸 바라보면 빠져 들어간다. 목회자들도 사람들 소리 듣고, 세상의 풍조만 바라보면 낙심하고 좌절할 수밖에 없다. 말씀에 감동되어 예수님만 바라보아야 한다. 예수님이 한 아이와 그 아버지에게 말씀하신다!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느니라!” 사람들은 계속 바람을 바라본다, 물결을 두려워한다. 결국 아무 일도 못하고 두려움에 빠져 배에 붙어있다 만다. 그래서 예수님 앞에서조차 하실 수 있거든이라는 조건을 붙인다. 할 수 없을 거라는 말이다. 하면서도 실패를 준비한다. 앞으로 전진하는 폼만 잡고 도망갈 궁리만 하는 것이다. 실패했을 때 탈이 없도록 예비한다. 그러니 어떻게 물 위를 걷겠는가!

영적 세계에서는 한계 앞에서 도전하는 것이 가장 안전하고 성공하는 길이다. 믿음을 가지고 전진하라. 집중하라! 바람을 보고 두려워하지 말고 예수를 바라보고 달려가라! 가치와 목적과 의미를 바라보아야지 현실적인 조건이나 가능할까 하는 염려를 앞세워서는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다. 예수님을 바라보고, 예수님이 원하시는 뜻과 계획과 일을 위해 담대히 걸어나가야 한다.

몰아치는 바람과 성난 파도를 보면서, ‘할 수 있을까?’의 가능성만을 묻지 말고, 예수님을 바라보고 도달한 안전한 항구의 기쁨을 생각하면서 담대하게 주님을 향해 나아가야 한다! 주님이 오라!” 하시면 되는 거다. 주님이 손을 내미시면 걱정 없다! 하늘과 땅의 주시오, 전능하신 하나님이시며, 온 세상을 다스리시는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시다! 그분이 내 배 곁에 계시는데 무엇을 염려하는가? 그분이 함께 가시겠다는 게 무슨 걱정이 있겠는가!

개인의 능력과 끼와 가능성들을 하나님께서 발휘하기 원하신다. 그렇다면 주님을 바라보고 담대히 전진하라!! 가정을 향한 은혜와 행복이 있는데, 당신의 남편, 아내에게 집중하라. 우리 가정이라는 내 샘에서 흐르는 샘물로 갈급한 영혼의 목을 축이라! 대화하고, 타고난 성품과 서로를 향한 마음을 잘 조화시켜 나가면 된다. 우리교회 창립 116년째를 지나고 있다. 지난 주로 내가 우리 교회 부임한 지 16년이 지났다. 감사할 일뿐이다! 그러나 한편 아쉬움이 많다. 교회에 얼마나 위대한 축복과 약속을 주셨는지 모른다! 전에 함께 사역했던 김덕영 전도사가 하는 말이 있다. “목사님, 삼척제일교회는 다 갖췄어요! 나가보니까 알겠어요!” 새벽기도회에 참석한 사람들, 오후예배와 수요기도회를 채우는 자리들, 주일 1, 2부 예배 때 모여든 회중들을 보니, 우리가 주님과 함께 배 밖으로 나가 전진한다면 놀라운 일이 일어날 것이다!

 

여러분 모두의 생애가 물 위를 걷는 기적의 삶이 되기를 축복한다!!! 물 위를 걸어 주님과 함께 나아가라! 여러분도 모두 풍랑이 이는 바다에서 배안에 머물러 떠나지 못하는 비겁한 삶을 살지 말고, 물 위를 걷는 기적의 주인공들이 되기를 바란다. 물 위를 걸으려면 어떻게 하나? 축복된 삶을 살려면? 멋진 인생, 멋진 신앙생활을 이루려면?

두 가지를 기억하자. 첫째로, 배 밖으로 나가야 한다. 일상적인 습관, 그릇된 안일함에 머무르지 말고, 작은 일부터 한가지씩 도전하고 새롭게 시작하라. 믿음의 용기를 가지고, 안일과 게으름의 배에서 뛰쳐나오라!! 둘째로, 바람을 보지 말고 주님을 바라보라! 할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지고 의미와 가치에 투자하라! 절대 현실과 너무 쉽게 타협하거나 안주하지 말고, 예수님을 바라보면서, 하나님 나라의 위대한 일을 이룰 것을 꿈꾸면서, 담대히 물 위를 걸어 나아가라!!

물 위를 걷는 이 시대의 주인공이 되라! 여러분을 이 시대의 오디세이로 부르신다! 부름받은 그리스도의 제자, 작은 영웅들이여! 물결을 헤치고 바다를 열고 안전한 고향의 항구에 도달할 때까지, 물결치는 바다로 나서며 예수와 함께 그분의 손을 붙잡고 담대히 나서기를 축복한다!! *

 

댓글

댓글쓰기 권한이 없습니다.
번호 제목 작성자 등록일 조회수 첨부 파일
822 베드로, 물위를 걷다! (마태14:22-33) [2026년 8월 23일, 성령강림후 열셋째주일] 박신진 목사 2026-08-22 3
821 자유케 하시는 하나님 (출애6:10-13) [2026년 8월 16일, 성령강림후 열두째주일] 박신진 목사 2026-08-15 42
820 우리는 진흙, 주는 토기장이 (사64:4-9) [2026년 8월 9일, 성령강림후 열한째주일/ 광복기념주일] 박신진 목사 2026-08-08 53
819 환난을 이기는 믿음 (시20:1-9) [2026년 8월 2일, 성령강림후 열째주일] 박신진 목사 2026-08-01 69
818 풀밭과 물가로 인도하신다! (시23:1-6) [2026년 7월 26일, 성령강림후 야홉째주일] 박신진 목사 2026-08-01 52
817 복 받는 백성이 되는 길 (창25:21-34) [2026년 7월 19일, 성령강림후 여덟째주일] 박신진 목사 2026-08-01 56
816 주의 말씀- 발에 등, 길에 빛 (시119:105-112) [2026년 7월 12일, 성령강림후 일곱째주일] 박신진 목사 2026-08-01 54
815 맥추절 축제 (출23:14-17) [2026년 7월 5일, 멕추감사절/ 성령강림후 여섯째주일] 박신진 목사 2026-07-04 114
814 두려움이 없는 믿음 (마가5:25-36) [2026년 6월 21일, 성령강림후 넷째주일] 박신진 목사 2026-06-20 129
813 복음으로 돌아가자! (롬1:16-17) [2026년 6월 14일, 성령강림후 셋째주일] 박신진 목사 2026-06-14 129
812 택하신 백성 왕 같은 제사장 (벧전2:1-10) [2026년 6월 7일, 성령강림 둘째/ 평신도주일] 박신진 목사 2026-06-06 149
811 성경말씀의 유익(시19:7-10) [2026년 5월 31일, 성령강림후 첫째/삼위일체주일] 박신진 목사 2026-05-31 131
810 성령의 충만함 (행2:1-4)[2026년 5월 24일, 성령강림절/웨슬리회심288주년기념주일] 박신진 목사 2026-05-23 155
809 안디옥교회처럼 (행11:19-26) [2026년 5월 17일, 부활절 일곱째/ 창립115주년기념주일] 박신진 목사 2026-05-18 149
808 거듭난 자의 효도 (엡6:1-3) [2026년 5월 10일, 부활절 여섯째/ 어버이주일] 박신진 목사 2026-05-10 146
1 2 3 4 5 6 7 8 9 10 ... 5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