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택하신 백성 왕 같은 제사장 (벧전2:1-10) [2026년 6월 7일, 성령강림 둘째/ 평신도주일]
2026-06-06 10:32:09
박신진 목사
조회수   5
설교일 2026-06-07
설교말씀 벧전2:1-10
설교제목 택하신 백성 왕 같은 제사장

택하신 백성 왕 같은 제사장

벧전2:1-10

202667[성령강림후 둘째/ 평신도주일]

 

미국의 지미 카터 대통령은 양심적이고 진실한 대통령이었으나 그리 성공적인 업무수행을 한 것으로 인정받지 못했다. 그는 독실한 기독교인으로서 다른 역대 대통령들과 달리 자신의 도덕적 신념을 현실정치에 실천해보려 했던 인물이다. 그러다보니 현실에 실용적으로 기민하게 대처하지 못하고 도덕적인 기준을 자꾸 내세우니까 재임기간 동안 역대 제일 무능한 대통령이라는 평가를 받아야만 했다. 그러나 한편으로 카터 대통령은 퇴임 후에 가장 성공한 대통령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카터가 앞장섰던 집 없는 사람들을 위한 해비타트운동은 전세계로 퍼져 이곳 삼척에서도 그 성과를 내었다. 특히 은퇴 후에 고향 조지아주 교회에서 성인반 성경교사 역할을 계속한 것은 유명하다. 1994년 한반도 위기 때에는 평양을 방문하여 평화의 전도사 역할을 하였다. 그는 은퇴 후 더 사랑받는 전직 대통령이 되었다. 그는 교회의 평신도로서 훌륭한 모범을 보인 크리스천이었다.

 

오늘은 평신도주일이다. 1979년 총회의 결의에 의하여 감리교회에 평신도국을 두고 지방마다 평신도부를 두어 매년 5월 마지막 한 주간과 6월 첫째주일을 평신도주간으로 모든 감리교도가 지키게 되었다. 평신도란 예수의 제자로서, 청지기로서 선교와 봉사를 통하여 안으로는 개인과 교회 성장에 이바지하고 밖으로는 사회구원의 밀알이 되어 하나님 나라를 이루어 가는 일을 하는 사람들이다.

우리는 어떤 평신도가 되어야 하나? 베드로 사도는 하나님의 새 백성들을 이렇게 표현하였다. 평신도주일에 많이 인용되는 말씀이다. ‘그러나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이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게 하려 하심이라. 너희가 전에는 백성이 아니더니 이제는 하나님의 백성이요, 전에는 긍휼을 얻지 못하였더니 이제는 긍휼을 얻은 자니라.’(벧전2:9-10) 크고 영광된 직분이 바로 평신도이다.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며,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다! 하나님의 복음을 온 세상에 전하고 세상 가운데에서 실천하라는 것이다.

 

자리만 차지하고 있으면 안된다. 우리 시간과 물질과 사랑을 주님께로 가져와야 하고 또 주님께 들려져서 세상으로 나아가야 한다. 이런 일을 하는 데에는 부지런한 일꾼들의 수고와 노력이 필요하다. 바로 평신도들이 할 일이 여기에 있다. 말꾼만 되지 말라, 구경꾼만 하지 말아야 한다. 예수님의 심부름꾼이 되어야 하고, 사람들의 일꾼이 되어야 한다. 오늘날 평신도들의 가능성이 바로 여기에 있다. 시간도 바치고 땀도 바치고 물질도 바치면서, 좋은 일 위하여 주의 이름으로 열심히 일하는 평신도 일꾼들이 되라. 여기 복음을 이루는 놀라운 힘이 있다, 나 혼자 가지고 있으면 별 힘이 아니지만, 주님께 드려 주님 손에 들려지면 위대한 기적을 나타낸다. 우리가 함께 힘을 모아 좋은 일하면 세상이 얼마나 아름답고 밝아지겠는가? 쉬지 말고, 배고픈 사람에게 밥주는 역할, 외롭고 메마른 사람에게 사랑 주는 역할, 희망 잃은 사람에게 꿈을 주는 역할, 무엇보다 죄인들에게 믿음을 주어 영혼을 구원하는 역할을 여러분이 하라. 평신도들이여! 우리들의 삶의 자리에서 행동하라, 일하라!!

오늘의 교회와 사회의 관계는 어떠한가? 사회가 교회를 보기를 돌 보듯 한다. 세상에 나가 우리가 복음이 되지 못하고, 생명과 사랑을 전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평신도들은 교회에 속해있지만 또 세상에서 많은 날들을 살아가고 있다. 사회에서 교회는 예수님을 대신한다, 사회는 구원받지 못한 무리들이다. 성경에 보면, 예수와 무리들 사이에 제자들이 있어서 중간역할을 하고 있다. 이같이 평신도들은 교회와 사회를 연결시키는 다리 역할을 하고 있다. 세상에서 문제와 고통을 가득 안고 교회로 나와서 죄를 회개하고 문제를 해결받으며, 세상의 죄악을 씻어내는 역할을 평신도 제자들이 한다. , 교회에서 은혜받고 하나님 뜻을 알고 능력을 받아, 사회에 나가 그 능력과 사랑을 전해주는 일을 하는 것이 바로 평신도 제사장들이다.

평신도는 사회에 있는 것을 교회로 가져와야 한다. 사회는 여러 가지 병을 앓고 있다. 언젠가 새벽기도에서 누가복음에서 종말을 보여주는 21장을 읽을 때, 하나님의 재앙과 심판에 대하여 묵상한 적이 있다. 누가복음 2134절에 세 가지가 나와 있다! “너희는 스스로 조심하라, 그렇지 않으면 방탕함과 술 취함과 생활의 염려로 마음이 둔하여지고 뜻밖에 그날이 덫과 같이 너희에게 임하리라.” 첫째는 방탕함이다. 육체적 정욕과 쾌락에 몰두하느라 사람들의 영혼이 잠들어 버렸다는 점이다. 둘째는 술 취함이다. 여러 가지 중독 현상이 위험하다. 셋째는. 생활의 염려다. 돈 문제에 사람들이 너무 매여있다. 여기에서 방탕함은 게으름과 타락, 사람들이 육체적 정욕과 쾌락에 몰두하는 것이다. 요즘 이 방탕과 타락은 이미 브레이크가 고장난 차처럼 무섭게 달려가고 있다. 많은 가정 문제가 이 성적 타락과 함께 꼭지점을 향하여 치달아 간다. 이제 이 방탕함을 그쳐야 한다. 정결한 그리스도의 신부로서 본래의 바르고 깨끗한 자리로 돌아오라.

술취함은 중독현상을 통틀어 표현한 것이다. 사람들이 마음을 못잡고 점점 감각적인 데에로 치달아 나가니까 술에 취하는 것처럼 많은 중독현상이 일어나고 있다. 스포츠 중독이 있다. 노름 중독, 성적 중독이 있다. 게임 중독, 인터넷 중독이 있다. 어떤 취미가 지나쳐 거기에 심리적으로 의존하여 몰두하는 게 중독 현상 아닌가? 마약에 중독된 사람들도 점점 늘어나고 있다. 원주 있을 때 한 청장년이 평일 점심 때쯤 눈이 풀려서 목사관으로 왔다. 횡설수설 하다가 갔다. 술냄새가 나는 것 같기도 하고 이상했다. 나중에 알고 보니까 마약 중독이었다. 의지할 것을 딴 데서 찾는 거다. 하나님은 당신을 의지하도록 인간을 지으셨다. 우리는 하나님을 의지하고, 하나님이 허락해주신 사랑하는 사람들을 의지하면 된다. 그러나 하나님을 버리니까 의지할 곳을 찾지 못하여 우리는 병든 사랑에 빠진다. 그것이 중독이다!

생활의 염려가 있다. 생활의 염려라는 게 알고 보면 돈 걱정이다. 날마다 돈, , 돈 한다. 교인들 가정을 심방해보면, 겉으로 멀쩡하다. 아무 일도 없는 것 같다. 그런데 조금 대화가 되고 마음이 통하여 자기 문제를 노출하게 되면, 거의가 다 돈 문제로 귀결된다. 사람들이 정말 돈 염려로 날이 새고 진다. 왜 우리가 이렇게 돈에 집착하나? 돈보다 귀한 것, 돈보다 중요한 것에 대한 가치관을 잃어버렸다! 근심걱정에 빠지지 않도록 책임있게 살면서도, 그 생활의 염려에 영혼이 찌들지 않은 고결한 사람들이 있다. 질병의 문제, 가난의 문제, 불의한 생활 등등. 이런 사회적인 문제와 죄악을 그대로 보고만 있는 것은 믿는 사람의 도리가 아니다. 이런 문제를 주님 앞으로 가져와야 한다. 하나님 앞에 죄를 가져와 씻어내는 제사장의 역할을 해야 한다.

만인 제사장직을 루터가 주장하니까 평신도 지도자들이 자기들도 목회자들과 다를 바가 없이 제사장이라고 하는데, 이것은 중요한 점을 놓치고 있다. 평신도들의 제사장직은 세상의 문제와 죄악을 주님께로 가져와 씻는 중보역할을 강조하는 것이지 교회 안에서 직제상 평신도들도 목회자와 같다는 것을 말하는 게 아니다. 내 남편, 내 아내, 내 자식, 내 형제, 내 동료와 내 친구들의 죄악을 주님께 가져와 중보하며 기도함으로 씻어내는 역할을 잘 감당하라. 성도들이여, 주님과 무리들 사이에 서서 이 사회와 우리 이웃들의 죄악을 위하여 기도하며, 그 죄악을 덜어내고 싸워 이기는 제사장들이 되라! 신자가 있는 가정에 죄악이 줄어들어야 한다. 신자가 있는 학교가 좋은 학교가 되어야 한다. 타락과 방탕과 왕따가 사라져야 한다. 신자가 있는 직장이 무언가 다른 좋은 기운이 흘러야 한다. 뇌물과 부정부패와 비인간성이 점점 적어져야 한다. 여러분이 가는 곳에서 제사장 역할을 하라!

 

다음으로 평신도는 교회의 좋은 것을 사회로 가져다 주어야 한다. 교회 안에 있는 복음과 능력, 사랑과 희망 모두를 사회에 나눠주어야 한다. 교회가 가지고 있는 갖가지 좋은 것을 사회에 전달해주기 위해서 주님은 여러분을 부르셨다.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다! 교회는 거룩한 물류 창고이다. 물류 창고에는 물건이 너무 오래 있으면 안 된다. 빨리빨리 대리점으로 소비자에게로 가서 순환이 잘 이뤄져야 좋은 물류 창고이다. 교회에 있는 좋은 것을 전달해주지 않고 가만두면 그냥 사라져버리거나, 아니면 교회 안에 영적 질병을 일으킨다.

교회의 좋은 것을 자꾸 사회에 가져다 주는 신자가 좋은 평신도이다. 이번 주일에는 무엇을 교회에서 가져다가 사람들에게 갖다줄까, 생각하는 신자가 좋은 신자이다. 성령의 열매를 주신다. 사랑, 기쁨, 평화, 인내, 친절, 선함, 믿음직함, 온유함, 절제(성령의 9가지 열매), 이런 것들을 세상에다 자꾸 전해주라! 바로 평신도들이 이런 일을 해야 한다. 그래야 교회가 건강해지고 밝아지며 성령의 능력 가운데 행하게 된다. 우리끼리 모여 쇳소리나게 믿씁니다!”를 부르짖어야 성령이 임한다는 것은 이것 저것 안 따지고 순박하게 믿을 때 얘기이고, 이제는 정말 교회가 복음의 능력을 사회로 전하기 시작할 때 성령이 강하게 역사하고 기적이 나타난다.

오늘날 교회의 가장 큰 문제가 무엇인가? 우리 삶과 동떨어져 있는 현상이다. 사회의 일이 교회의 관심 밖이며 교회의 일이 사회와 아무런 관계가 없는 단절 상태, 그러다보니 교회 따로 사회 따로- 평신도들도 사회생활과 교회생활이 따로 따로- 무슨 따로국밥도 아니고, 교회생활과 사회생활이 연결되지 못하고 분리되어 있는 것이 따로 따로 잘 있는 것 같으나 사실은 둘 다 죽어있는 것이다.

좋은 교회는 사회를 끌어안는 교회이다. 삼척시를 끌어안고, 남양동 교동 성내동 시내와, 바닷가 정라진과 갈천동을 끌어안는 교회가 좋은 삼척제일교회이다. 좋은 신자는 생활이 신앙 속에 들어와 있는 신자이다. 사회의 것을 주님께로 가져오고, 교회의 것을 사회에 가져다주고 있는가? 가져오지도 못하고 갖다주지도 못하는 무능함을 회개하자! 평신도가 살아있는 교회, 밭이 좋은 교회는 이런 점에서 교회와 사회의 높은 벽을 허물고, 자기 마음 속에 있는 이 양 극단도 허물고 진실하게 어디서나 하나님과 함께 사는 사람이다. 평신도는 무한한 교회의 힘이다. 평신도야 말로 실세이며 위대한 잠재력을 가지고 있는 교회의 보배이다. 이 막강한 평신도의 힘을 교회 내의 구조적 행정적 관심에만 쏟을 것이 아니라, 사회에서 하나님의 사랑을 나타내는 일, 실현하는 일에 집중해야 한다.

특히 웨슬리가 개인의 경건과 절제를 통한 성화와, 사회생활 속에서 구원받은 자의 생활이 나타나야 한다는 사회구원을 강조함으로써 회심과 생활이 연결되어 온전한 그리스도인의 삶이 되게 하려는 데 감리교 평신도 운동의 목적이 있다. ‘인간이란 무엇인가?’ 성서는 인간이란 본래 죄인이고 본질상 진노의 자녀라고 한다. 희망이 없고 전적으로 타락한 존재다. 그런데 죄인인 인간을 하나님이 부르셔서 자녀 삼아주셨고, 하나님 나라의 거룩한 백성이 되게 하셨다.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속량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3:23-24) 이제 신앙인이란 어떤 사람이냐?’를 묻는다. ‘보배로운 산 돌이신 예수께로 나아가, 산 돌 같이 신령한 집으로 세워진다.’(4-5)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다. 전에는 아니었는데, 이제는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위대하고 거룩한 백성의 사명을 다해야 한다. 쏠티(소금기가 짭짤하게 들어있는)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한다.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다!

 

플로깅(Plogging)이란 말은 이삭을 줍다는 스웨덴 말 ‘Plocka’에다가 조깅을 합한 말로 조깅하면서 쓰레기를 줍는 활동을 가리키는 신조어다. ‘산책의 방식이 바뀌면 세상이 바뀐다.’는 슬로건을 내걸고 사람들은 집게와 쓰레기봉투를 들고 조깅 달리기를 나서라고 권유하고 있다. 플로깅은 유럽을 거쳐 전 세계로 퍼져나가고 있다. 운동하면서 환경도 지키자는 켐페인이기 때문이다. 플로깅은 유산소운동이지만 하체운동에도 유익하다. 쓰레기를 주우려고 앉았다 일어서는 동작을 반복하다 보면 자연스레 스쿼트 운동과 자세가 비슷해진다. 플로깅하는 사람들을 플로거라 하는데 플로거들은 인터넷으로 서로 연결하여 활동을 함께 해나가고 있다. 건강도 지키고 환경도 지키는 운동이다. 우리 말로는 줍깅이라고도 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쓰레기를 줍기 위해 몸을 굽히는 동작이다. 몸을 낮추는 것, 조금 환경과 지구에 대하여 겸손한 자세를 가지는 것이 지구도 구하고 자기 건강도 구한다는 것이다. 제가 언젠가 예화집에서 본 얘기에 의하면 평생 몸을 낮추어 땅에 사람들이 흘리고 간 물건을 수집했던 사람이 있는데, 몸을 낮추어 아래를 내려다보며 살았더니 엄청난 물건을 많이 주웠다고 한다. 평신도의 본문을 다하라! 복음을 가지고, 예수를 가지고 세상으로 나아가라! 마치 걸으면서 쓰레기를 주워 지구를 지키는 플로깅을 하듯이, 생활 속에서 겸손히 하나님께 함께 행하는 평신도들이 교회를 살리고 지구를 살린다!

 

먼저 우리 안에 영적인 힘이 있어야 한다. 소금기가 가득해야 한다. 소금이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겠는가? 개인묵상이 중요하다. 성경을 매일 묵상하고 말씀과 교통하면 기도가 힘이 있어진다. 홀로 있을 때 하나님을 떠나있지 않게 된다. 내적인 힘이 생긴다. 성경말씀에 순종해야 한다. 이기적이고 자기중심적으로 믿으면 무기력해진다. <자기 입장 변호>, <자기 편한대로> 하려는 의도를 내려놓아야 하나님이 일하신다.

나아가 자꾸 뿌려지라. 믿음의 행위, 믿음의 실천이 따라야 한다. 진짜 구원받은 사람은 아무공로 없이 오직 믿음으로 공짜로구원받았음을 알기 때문에 행동하게 된다. 실천하고 싶어 견딜 수 없다. 드리고 싶고, 행하고 싶고, 실천하지 않고는 못 견딘다. 오래 사귀고 교류하는 믿음의 친구들을 보면, 정말 아름답게 실천하는 사람들은 무조건 풍성한 열매를 맺게 하시더라. 내가 보니 제일 먼저 속회 즉 자기가 속한 소그룹이 달라지더라. 그 후에 또래집단이 생긴다, 선교회가 달라지는 것이다. 가정이 좀 오래 걸린다, 나중에 달라진다.

 

평신도들이여! 정신차리라!! 여러분은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이며,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다! 세상이 여러분이 보여주고 전해줄 복음과 사랑을 기다리고 있다. ‘쏠티 크리스천이 되라! 삶 속에서 그리스도인다운 맛을 나타내는 평신도 혁명이 일어나기를 축복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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