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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를 이루려면? (이사야2:4-5) [2026년 4월 12일, 부활절 둘째주일]
2026-04-11 14:26:58
박신진 목사
조회수   7
설교일 2026-04-12
설교말씀 사2:4-5
설교제목 평화를 이루려면?

평화를 이루려면?

2:4-5

2026412[부활절 둘째주일]

 

전쟁의 위험스런 소식이 온 세계를 꽉 누르고 있다. 미국의 이란 공습으로 시작된 이번 사태는 조기 종결을 예상했던 트럼프의 대국민 연설과는 달리 장기화 국면으로 들어설 것으로 여겨졌는데, 초토화 공습을 예고하던 마지막 몇 시간을 앞두고 이란의 10가지 타협안을 미국이 일단 받아들임으로 휴전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이란은 폭격이 예상된 지역에 혁명수비대와 민간인들이 인간띠를 이어서 폭격에 대항한다는 소식이 있었고, 트럼프는 우월한 공군력을 총동원하고 특수부대의 지상전도 불사하여 이란이 다시 회생하지 못할 정도로 파멸시키겠다고 장담했었다.

이 전쟁은 이란의 최고지도자 야톨라 알리 하메네이가 미국과 이스라엘의 공습으로 사망한 데서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이 공격에서 이란 혁명수비대와 군 수뇌부 인사들도 함께 사망한 것이다. 트럼프는 유럽의 나토 동맹국들과 일본과 한국에게도 참전을 계속 요구하였으나, 전쟁을 일으키는 데 부담을 느낀 나라들이 참전을 거부했었다. 전쟁의 여파는 특정지역에 국한되는 게 아니고 세계 경제와 안보 상황에 광범위한 충격을 줄 것으로 보인다. 이란이 봉쇄하고 있는 호르무즈 해협은 세계 원유의 주공급원인 아랍제국들의 원유수송의 주된 루트이므로, 호르무즈 해협이 막히면 유가가 올라가고 원유를 비롯한 세계경제의 공급망이 불안정해지기 때문에 세계경제가 불안정해지는 문제가 있다.

당장 4월 들어서면서 기름값이 천정부지로 뛰어 서민 가계에도 영향을 주고, 기름값은 더 오를 것이라는 예상이 나오고 있다. 이런 때에 자칫 경제 혹은 안보의 이름으로 블럭을 이루고 있는 유럽이나 일본, 혹은 한국이 참전하고 러시아나 중국이 움직이게 되면 일거에 세계 전쟁으로 들어갈 수 있는 상황이므로, 우리 그리스도인들도 예의 주시하며 기도하지 않을 수 없다. 중대한 사건이지만, 이쯤에서 확전을 막고 휴전을 유지하면서 잘 타협하여 종전함으로 세계 전쟁을 막고 평화가 다시 오도록 했으면 좋겠다.

 

갈등과 싸움이 그치고 평화가 오게 하는 일은 국가 간의 전쟁에서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다. 작게는 가정과 사회생활에서도 항상 나타나는 일이다. 오늘은 가정과 교회생활에서 우리가 부딪히는 평화의 문제를 생각해 보려 한다. 평화를 이루어 칼을 삽으로, 창을 낫으로 만들어 서로 전쟁하는 사람들이 아니고 평화한 사람들이 되라고 이사야는 노래한다. 그리고 오라! 우리가 여호와의 빛에 행하자!”는 이 구절 마지막 말씀은 우리가 하나님의 빛인 사랑으로 행하여 평화를 완전히 이루자는 말씀으로 이해할 수 있다.

사람은 모두 어딘가에 속하고 싶어 한다. 어떤 사람, 어떤 단체, 아니면 우리 자신보다 큰 어떤 대의에 속하고 싶어 한다. 어딘가에 소속되어 있다는 느낌은 우리를 든든하게 하고 외로움을 극복하게 한다. 특히 가정이 그렇다!! 나도 관심과 사랑을 받고 있다는 느낌이 없고 동떨어져 있을 때, 가족들 뒤에 몇 걸음 떨어져 따라오던 세 살 난 아이처럼 우리는 때로 외톨이라고 생각한다. 이럴 때 사회적 소속감이 사람에게는 필요한데, 조금만 이런 소속감이 약해져도 우리는 소외감을 느끼고 힘들어한다.

우리가 속한 가족과 교회, 그리고 친척이나 친구 사이에서 여러분은 얼마나 사랑을 느끼며 사는가? 사람은 하루라도 사랑을 먹지 않고는 살 수 없는 존재이다. 밥이나 사랑이나 하루만 굶어도 힘들어진다. 친구들 사이에서 조금만 밀려나 있다고 느끼면 금방 섭섭해하며 친구들의 사랑과 관심을 요구한다. 배고픈 것보다 사랑에 목마른 것이 더 심각한지도 모른다. 가족들 사이에서 사랑을 확인하지 못할 때 우리는 엄청나게 스트레스를 받으며 힘들어한다. 수많은 사람들이 사랑에 갈급하여 이리저리 방황하고 있다.

 

본문은 포로 직전, 세력이 약해져 가던 유다의 모습이다. 이사야 선지자는 모든 민족들을 위한 평화의 질서를 노래하고 있다. ‘그가 열방 사이에 판단하시며 많은 백성을 판결하시리니 무리가 그들의 칼을 쳐서 보습을 만들고 그들의 창을 쳐서 낫을 만들 것이며, 이 나라와 저 나라가 다시는 칼을 들고 서로 치지 아니하며 다시는 전쟁을 연습하지 아니하리라.’(2:4) 하나님께서 예루살렘 성전으로부터 온 누리에 평화를 이루실 미래를 내다보고 있다. 이어 선지자는 이렇게 권면한다. ‘야곱 족속아, 오라! 우리가 여호와의 빛에 행하자!’(5)

먼저 오늘 전쟁이 그치고 평화를 임하게 한다는 말씀을 생각해 볼 때, 교회 안에서 노인과 젊은이들 사이의 관계에 적용할 수 있다. 요즈음 교회 안에서 세대차를 극복하지 못한 교회들이 많다. 노인 따로 젊은이 따로 놀면 그나마 괜찮은 경우이고, 서로 견제하고 문제 삼고 공격하는 경우도 있다. 노인들은 요즘 젊은이들이 믿음도 없으면서 교회에 문제만 일으킨다고 혀를 차고, 젊은이들은 노인들 때문에 교회가 발전하지 못한다고 노골적으로 불만을 터뜨린다. 실제로 경기도의 어느 교회는 목사님 은퇴를 앞두고 나이 지긋한 어른들과 팔팔하게 젊은 청장년들로 교회가 얼마간 갈라져 있던 것도 봤다.

많은 교회는 노인 장년 중심으로 교회가 흘러가다 보니 청장년과 청년들이 다 떠나가 버렸고, 반면에 어떤 교회는 청년 청장년들을 중심으로 하다 보니 쉰 살만 되어도 노인 취급을 받는 교회도 있다. 건강한 교회는 노년 장년 청장년 청년 어린이가 골고루 섞여 있으면서 갈등하지 않고 사랑으로 협력하는 전세대교회’(all-generation church)인데, 그렇게 되기가 정말 쉽지 않다. 우리는 중년 이상에 비해 청장년과 교회학교가 약한 편인데, 각별한 노력을 기울여야 하겠다. 요즘 젊은 새가족들이 점점 늘어나고 청년들도 부흥되며, 유치부에 젊은 엄마들이 아이들을 데리고 드나드는 것은 우리교회 생장점이 살아나기 시작하는 징조로 보아도 좋다. 더욱 기도하고 힘쓰자!

교회 안에서 노인과 젊은이들이 화합하고 협력하는 것은 교회의 지속적 발전과 사랑의 관계를 위해 대단히 중요하다. 교회마다 사실은 청장년 그룹이 자라기가 쉽지 않다. 처음에는 교회적으로도 노력해야 하지만, 자기 부서에서 각별한 관심을 가지고 기도하고 힘쓰는 씨앗 회원들이 좀 있어야 한다. 그러나 막상 청장년들이 자라기 시작하면 장년 교인들이 조금 불편해하는 경향이 있다. 교회마다 다음 세대들이 등장하고 세력이 커 가면 약간의 긴장감까지 느낀다. 교회에서 청장년회가 하나였다가 둘, , 넷까지 늘어나면 나이 많은 교인들이 목사님은 청장년들만 좋아한다고 불평한다. 당회를 앞두고는 어른 교인들이 젊은 사람들만 데리고 목회하지 말라는 요청을 하기까지 한다.

바울서신 가운데 목회의 실제에 대해 권면하는 디모데전서 5장을 인용하여 몇 가지 가정 평화에 대한 말씀을 살펴본다. 나이 많은 이들에게는 아버지에게 하듯 하고, 젊은이들에게는 동생(형제) 대하듯 하라(1)고 권면하고 있다. 먼저 교회 어른들 노인들이 마음을 열고 청장년들을 귀엽게 여기고 사랑해 주고, 청장년들의 버릇없음도 여유롭게 받아주면 청장년들이 바르게 큰다. 아무개 집사, 아무개 엄마 해가면서 관심과 사랑을 기울여 주면, 교회 자꾸 나오고 싶어 한다. 또 청장년들도 이에 호응하여 어른들을 존경하고 귀하게 여기는 풍토를 조성하는 거다. 세대 간의 소통이 잘 이뤄지면 여기에 각별한 기쁨과 재미가 있다. 교회가 세대 간의 갈등을 극복하는 훈련장이 되는 것이다. 가정과 직장생활에까지 큰 도움이 된다. 노인과 젊은이들이 서로 존경하며 사랑하는 교회를 하나님이 많이 기뻐하신다. 성경 말씀을 인용해 보면, ‘이것이 하나님 앞에 받으실 만한 것’(딤전 5:4)이다.

성경에 보면 젊은이들은 노인을 꾸짖지 말고 권하되 아버지에게 하듯 하라고 하였다. 노인들은 옛날얘기, 시대에 뒤떨어진 잔소리들을 많이 하는 편이다. 그러나 아버지가 나를 사랑해서 그러겠거니 하고 감사하게 생각하라는 것이다. 젊은이들에 대해서는 젊은이들이 예의와 범절을 잘 못 지키고 질서를 깨뜨릴 때도 있으니, 속상해하지 말고 내 동생처럼 잘 대해 주라는 것이다. 사랑으로 잘 지도하면 다음부터 잘할 수 있다. 나이 많은 여자교인들에게는 어머니에게 하듯 하고, 젊은 여자들에게는 여동생에게 하듯이 온전히 신사적으로 깨끗하게 대하라고 하였다. 장년들이 젊은 여성들을 희롱하듯이 함부로 대하지 말아야 한다.

노인들이 자꾸 주장하려고만 하고 젊은이들은 자꾸 이유를 대고 대들려고만 하면 공동체가 무너진다. 어른들은 젊은이들을 인정하고 기회를 주며, 젊은이들은 어른들을 존중하고 사랑하면서 따라가라. 젊은이들에게 참여할 기회와 자리를 주고, 젊은이들은 거룩한 주인 의식을 가지고 어른들을 존경하면서 헌신하라.

 

또 가족 안의 평화가 이뤄지고 사랑으로 돌보아야 한다. 바울서신에 보면 참 과부라는 말이 나온다. 당시 사회에서는 모든 역할을 남자들이 했는데, 젊어서 남편을 여의면 이 여자는 아무 권리나 위치가 없으므로 굉장히 생활이 어려워진다. 따라서 교회에서는 홀로 된 여인을 돌볼 사회복지 차원의 책임을 졌다. 그중에서 기도와 봉사를 많이 하는 신실한 과부들은 참 과부라고 불리며 존경의 대상이 되었다. 그런데 교회에서 이런 좋은 일을 하니까 어떤 집에서는 가정이 넉넉지 못하다는 핑계로 자녀들이 어머니를 돌볼 책임을 교회에다 떠넘기는 일이 있었다. 사도는 이 문제에 대하여 가족을 돌볼 책임을 소홀히 하는 것은 믿음을 가진 사람이 할 일이 아니라고 단호하게 말씀하고 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부모에게 효를 행하는 것, 가족들을 돌보는 것은 믿음의 행위라는 것이다. 이것이 하나님이 받으실 만한 것이라고 하였고, 가족을 돌보지 않으면 믿음을 배반한 자요 불신자보다 악한 자라고 한다. 가끔 믿는 사람들이 부모에게 소홀하며 가족 친척들에게 무심하다는 말을 듣는다. 안 될 일이다! 그리스도인들이 유교의 형식주의를 배격하고 실용적인 노선을 택하다 보니, 관혼상제의 무리한 허례허식을 많이 철폐하였다. 여기까지는 좋다. 이걸 불효라고 할 수는 없다. 그런데 그러다 보니 효도와 형제 우애의 내용까지 소홀히 여기고 무시하는 경우도 생겼다. 이것이 문제이다! 돌아가신 대대 조상은 못 섬기더라도 살아계신 부모 형제, 삼촌 아재 돌보는 일을 결코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 ‘누구든지 자기 친족 특히 자기 가족을 돌보지 아니하면 믿음을 배반한 자요 불신자보다 더 악한 자니라!’ 아멘!

먼저 자기 집에서 효를 행하여 부모에게 보답하기를 배우게 하라고 깨우치시며 이것이 하나님 앞에 받으실 만한 것이니라.’고 언급한다. 마음의 태도, 심정적으로 배려하는 것을 가르친다. 부모와 친척에게 사랑하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 가정 평화를 이루려면 진심으로 돌보고 배려를 하라는 거다. 적극적인 마음으로 가족을 대할 것을 성경은 명령하고 있다. 이것은 선택사항이 아니라 그리스도인의 계명으로서 의무 사항이다. 싫어도 해야 한다. 사랑을 가지고 따뜻하게 대하며 내 몸과 같이 배려하는 태도가 믿는 자로서 기본이다. 부모를 사랑하는가? 심정적으로 친척들을 배려하는가? 가족들에 깊은 관심을 기울이는가? 이것이 믿는 자의 마땅한 본분이다. 여기서 벗어나는 것은 불신앙이다!

성경은 또 우리에게 마음의 태도 뿐 아니라 실질적인 도움을 주어야 함을 가르치고 있다. 친족 특히 가족을 돌보다는 말씀은 성경에서 프로노에오라는 단어로서 관심하다, 돌보다, 준비하여 제공하다라는 의미다. 즉 그들을 위하여 마음만 가지고 있는 게 아니라, ‘준비된 물질이나 음식을 제공하다는 뜻이다. 성서적인 의미로 보면 친척들이나 가족들에게 고마운 마음을 가지고 늘 기억하고 사랑하는 마음도 중요하지만, 미리 살펴 실제로 모시고 식사라도 한 번 하거나 작은 선물이라도 전하는 것을 말한다. 너무 잘하려고 하다가 아무 것도 안 하는 것 보다는 작은 것 한 가지라도 실천하는 게 귀하다. 빈말만 하지 말고 실천하는 것, 명사형으로 프로노이아인데, 이것이 신앙인의 미덕이다. 명절이 지났더라도 외로운 친척 어르신들 찾아뵙고, 어려운 조카나 일가들에게 정표라도 준비하여, “프로노이아!” 돌봄을 표하는 것이다! 사실, 부자들도 선물 주면 되게 좋아한다. ‘저 사람은 많이 있을 텐데, 내가 뭘해?’ 이런 마음은 평화를 가져다주지 않는다. ‘내 마음을 표하고 싶어, 내 사랑을 드릴 수 있을까?’ 이것이 성령이 주는 사랑의 마음이다. 사랑의 노력이 평화를 가져온다.

 

사랑이 없으므로 사람들이 죽어가고 있다. 사랑이 없으므로 가정이 위험에 처하고 있다. 얼마나 외로워하는지, 손잡고 기도해주면 펑펑 우시는 분들도 많다. 사랑이 우리를 살린다! 5, ‘야곱 족속아 오라! 우리가 여호와의 빛, 사랑의 빛으로 행하자!’ 사랑의 비방으로 위기에 빠진 가정을 살리라! 작은 말 한마디, 표현과 작은 노력으로 시작하라! 거창한 사랑이 아니어도 구체적이고 유치한 사랑에서 시작하자! 사랑의 묘약으로 위기에 빠진 인생을 일으키시기를 바란다. 아름다운 교회 안에서 풍성한 사랑을 경험하고, 여러분의 가족과 친족들 사이에 사랑으로 배려하고 돌보는 아름다운 미덕을 쌓아가라.

이것이 처음에는 부담스럽고 귀찮은 일이지만 꾸준히 행하면 우리 인생에 그보다 더 좋은 길이 없다. 돈을 들여 보험을 들거나 노후를 위해 저축을 하는데, 그것도 좋지만, 그보다 먼저 돈을 조금만 들이고 시간을 조금만 투자하여 가족과 친척에게 투자하라! 그 사랑으로 어렵고 힘들 때에 여러분은 인생에 힘이 되는 좋은 가족과 친구를 만나게 될 것이다.

 

정의를 세우고 악을 제어하기 위해 전쟁이 필요하다며 나라들끼리 전쟁을 하다보니, 인간사회에는 가정과 교회 안에까지 서로 무시하고 사랑하지 못하여 갈등과 어색함이 있다. 지상의 권력자들이 휘두르는 창검이 하나님의 공의를 수행하는 도구인지 아니면 자신의 탐욕을 채우기 위한 약탈의 수단인지를 분별하는 지혜를 하나님께 구해야 한다. 그리고 멀리 가서 공의와 사랑을 이루려는 것보다, 우리 가정과 우리 교회에서부터 정의와 사랑을 이루는 성도가 되어야 한다.

인생은 크게 수리형 인생과 정비형 인생이 있다. 자동차도 고장이 나야 수리하는 사람이 있다. 그런 사람은 고속도로나 산 중턱에서 자동차가 멈춰 서면 큰 낭패를 당한다. 반면에 평소에 정비를 잘 해두는 사람이 있다. 이런 사람은 별로 돈도 들이지 않고 큰 어려움을 당하는 경우도 거의 없다. 사람 사이도 그렇다. 갈등이 생기면 그때 문제를 해결하려고 애를 쓴다. 지혜로운 사람들은 미리미리 때를 따라 사랑을 표현하고 관심을 보여주어 돈독한 관계를 맺어둔다. 그러면 무슨 일이 생겨도 신뢰와 사랑의 관계로 쉽게 극복할 수 있다.

이란 전쟁 끝나기를 위해 기도하자! 평화가 우리를 살린다! 주님이 명령하셨고, 우리에게 복이 되는 길이다. 우리도 내가 서있는 가정과 교회에서부터 사랑으로 서로를 돌아보아 이 땅 위에 평화가 가득한 하나님 나라를 이루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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