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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인의 3덕 (마6:1-6, 16-18) [2026년 3월 29일, 종려주일(고난주일)]
2026-03-28 11:50:49
박신진 목사
조회수   9
설교일 2026-03-29
설교말씀 마6:1-6, 16-18
설교제목 그리스도인의 3덕

그리스도인의 3

6:1-6, 16-18

2026329[종려/고난주일]

 

한 농부가 있었다. 그는 장미꽃을 사랑해서 매년 장미를 심고 정성을 다해 가꾸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꽃은 잘 피지 않고 가시만 무성해졌다. “왜 이렇게 가시만 많지?” 그때 지나가던 한 노인이 말했다. “가시가 없으면 꽃도 없어요! 가시는 꽃을 지키기 위한 겁니다!” 가시에 손이 찔릴지라도 정성을 다해 꽃을 가꾼다면 장미꽃은 활짝 피어 향기를 낼 것이다. ‘No cross, no crown!’ 십자가 없이는 면류관 없다. 고난이 있을 때 온전한 평강도 있을 것이다.

여러분! 오늘이 무슨 날인가? 고난주일이라고도 하는 종려주일이다. 주님께서 사람이 한번도 타보지 않은 어린 나귀를 타고 예루살렘으로 입성하셔서 평화의 왕이 되셨고, 그 이후 한 주간동안 고난받고 십자가를 지심으로 인류의 죄값을 당신의 생명으로 치루셨으며, 무덤에 들어가신 것을 기념하는 주간이 이번 주간이다. 달리기나 경주를 할 때 교관이나 경기진행자가 주목!” 소리를 지르고 바로 이어 출발을 알리는 총을 쏜다. 지금이 바로 영적으로 그런 때이다. 모든 성도는 예수께 주목하여 주님이 하신 일이 무엇인지, 우리는 어떻게 주님을 따를지를 깊이 생각하고 집중해야 한다.

왜 요즘 교회가 고난주간과 사순절을 강조할까, 가톨릭의 전통을 따라가는 것일까, 의구심을 가지는 분들도 있을 것이다. 그런 것은 아니다. 가톨릭이 전통을 중시하기는 하지만, 개신교도 전통이 없는 것은 아니다. 사순절과, 거기에 이어지는 고난주일이라고도 하는 종려주일, 부활절을 강조하는 것은 예수님의 생애주기를 교회의 일년 생활에 적용하여 예수를 따라가려는 교회의 신앙적인 노력이다. 이 사순절기와 종려주일, 고난주간, 특히 성금요일에는 금식기도 하면서 예수님을 바라보라! 예수님을 따라가라! 예수님을 붙들라!!

 

전통적으로 구제와 기도와 금식은 그리스도인의 3덕으로 칭송받았던 것들이다. 이 세 가지 덕은 경건생활에서 매우 중요한 요소이며,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바라보는 성도들이 오늘에 그 도를 실천하는 데 매우 유익한 방법이다. 구제는 사람에게 대한 신앙적인 덕이다. 기도는 하나님께 대한 신앙적인 덕이다. 금식은 자기 자신에 대한 신앙적인 덕이다. 무릇 그리스도인은 사람에게 잘해야 하고, 하나님께 바로 서야 하며, 결국 자기 자신을 바르게 다스려야 한다.

 

구제할 때

너는 구제할 때에 오른손이 하는 것을 왼손이 모르게 하여, 네 구제함을 은밀하게 하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너의 아버지께서 갚으시리라!’(6:3-4) 구제할 때 자만심을 가지거나 생색을 내서는 안된다는 말씀이다. 하나님께서 내게 맡겨주신 물질을 없는 사람에게 나누는 것은 당연한 것이요, 주인의 것을 대신 전달해 준 것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먹고 입고 쓰고도 여유있는 돈은 내 이름으로만 재산을 불리고 내 자녀에게만 유산으로 물려주라고 주신 돈이 아니라, 할 수 있다면 가난한 자를 돕고 하나님 나라 사업에도 힘있게 쓰라고 주신 것이다. 땅 투기, 재테크에 힘쓰는 것만큼 이웃돕기에 힘쓰는 것은 당연한 일이니 내세울 것도 없다. 교회의 발전이나 복음의 유익을 위해 드러내고 해야 할 때가 많지만, 하나님은 은덕(隱德), 은밀한 중에 세우는 덕을 기뻐하신다.

구제는 이웃을 향한 하나님의 뜻이요 명령이다. 구제와 선교에 얼마나 깊은 관심을 가지느냐에 따라 그 교회와 성도의 신앙수준을 가름할 수 있다. 가난한 자를 돕고, 억눌린 자를 위로해 주며, 소외된 자에게 관심을 가져야 한다. 외경 토빗서 2:8-9, “자비는 죽음에서 구하고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한다.” 자비롭게 구제하는 일을 귀한 종교적인 덕으로 칭송하고 있다. 초대 알렉산드리아 교회에서는 신도가 10만 명이 있었다고 하는데, 그들이 알렉산드리아에 있던 걸인 2만 명을 구제하였다 한다. 이웃을 도와주는 것에 불신자들보다 앞장서도록 하자.

우리는 구제와 헌금을 다른 것으로 여기고, 때로는 구제와 헌금을 서로 반대되는 것으로 생각하기까지 한다. 그러나 구제와 헌금은 서로 연관이 있는 것으로 신앙생활의 같은 부분이다. 헌금을 드려 그것이 하나님 나라의 일과 이웃을 위한 봉사에 쓰게 하는 것이 바로 구제이다. 헌금은 경건에 큰 유익이 된다. 헌금은 나의 것을 드려 주님의 것을 삼고, 주님이 기뻐하시는 일, 선교와 구제에 쓰게 하니 훌륭한 구제의 방법이고, 이것이 우리의 절제생활과 믿음의 실천을 행하게 함으로 신앙에 큰 도움이 된다.

이차 대전 때의 일이다. 연합군에 속한 한 부대가 적군에 포위되어 악전고투하고 있었다. 잠시 쉬는 시간이 되어 모여보니 모두 전사하고 40명만 남았다. 무엇보다 물을 못마셔 갈증이 심하였다. 물이 없느냐 확인해보니 군목에게 물 한 통만 남아있었다. 혼자 마셔도 넉넉지 않은데 수통 하나의 물은 40명에겐 턱도 없이 부족한 양이었다. 군목은 40명을 앉히고 기도했다. “하나님, 이들에게 갈증을 해결하게 하시고 힘을 주셔서 이 포위망을 뚫고 무사히 본부로 돌아가게 해주십시오.”

그리고 수통을 들고, “여러분, 목마른 내 전우가 지금 이 수통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남은 전우를 생각하며 마시기 바랍니다.” 한사람 한사람 수통을 가져다 입에 대고 마셨다. 그런데 맨 마지막 군목에게 수통이 돌아올 때까지 그 수통의 물은 남아있었다. 그들은 남을 위해 자신을 절제하여 물을 조금씩만 마신 것이다. 병사들은 일제히 감격했다. 죽음을 앞두고 그들은 비장해졌다. 나를 사랑하는 전우를 생각하며 힘을 다하여 전투하여 포위망을 뚫고 부대로 귀환하였다. 남을 배려하고 조금씩 내 몫을 주님의 이름으로 드릴 때, 모두가 풍족하고 사랑이 넘치는, 살만한 세상을 만들게 될 것이다.

 

기도할 때

기도는 신앙의 자원이요 영적인 생명줄이다. 기도가 없거나 죽어있으면 화초가 말라죽듯 영적으로 메말라 죽는다. 기도는 영혼의 호흡이요, 내적인 씨름이며, 영적인 대화다. 보이지 않는 기도에서 보이는 복과 생활이 결정된다. 그리스도인은 생각함으로 성장하는 것이 아니라, 기도함으로 성장한다. 기도가 다 같은 것이 아니라, 잘하는 기도가 있고 잘못하는 기도가 있다.

예수님은 기도할 때 사람에게 보이려고 하지 말라고 하신다. 기도를 잘하느냐 못하느냐는 오랜 기도시간, 기적이나 능력, 신유나 방언과 같은 은사, 개인의 신앙적인 체험에 있지 않다. 그것은 기도의 결과들이다. 중요한 것은 진심이 어떠한가 하는 마음의 동기이다. 기도의 대상은 하나님이어야 한다! 사람을 의식하거나 자신에게 몰두하는 기도에 불과하다면? 이것을 주님은 위선, 혹은 잘못된 기도라 하신다. 개인 기도생활에 대한 점검이 필요하다. 정직하게 기도를 돌아보고 잘못된 것을 치유하라! 여러분의 기도는 바로 되어 있는가? 기도를 바로 잡고, 진정한 기도생활을 회복하라. 사순절에 여러분의 기도가 바로 잡히길 축복한다!

주님은 회당과 큰 거리 어귀에 서서 기도하던 위선자들을 꾸짖으시며 골방에 들어가 문을 닫고 기도하라고 하신다. ‘너는 기도할 때에 네 골방에 들어가 문을 닫고 은밀한 중에 계신 네 아버지께 기도하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갚으시리라!’(6:6) 골방에 들어가야 한다. 은밀한 시간, 은밀한 장소, 주님만이 보시는 곳에서 기도하자. 아무도 보지 않을 때 하나님만 바라보며 기도하라! 문을 닫으라는 말씀은 세상으로 향한 욕망과 분주한 생각들을 닫아버리고 오직 주님께만 집중하라는 뜻이다. 주님이 꾸짖으시던 위선자의 기도가 우리 기도가 아닌가? 깊이 자신을 돌아보며 고난주간 특별기도 기간을 맞이하자.

대화가 관계 속에서 우러나오듯 기도는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 우러나온다. 좋은 관계, 편한 관계에서는 대화가 잘된다. 죄와 위선으로 하나님과의 관계가 멀어져 있으면 기도가 죽는다.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하라, 하나님과 친밀함을 유지하라. 하나님만 바라보는 영적 집중력을 길러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기도가 타락되고 기도가 죽으면 우리 영이 죽는다.

하나님을 의식하는 코람 데오’, 하나님의 거룩하신 얼굴 앞에서, 하나님과 대화하며 하나님 앞에서 성장하는 기도가 되게 하여야 한다. 기도에 관한 문제는 사람이 판단할 수 없다. 눈물 흘리며 경건하게 뜨겁게 기도했다고 거룩한 사람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 기도가 어설프고 부족하다고 쉽게 무시할 수 없다. 유창한 기도가 다 좋은 게 아니고, “주여!” 하며 눈물 흘리는 기도가 훨씬 진정성을 담은, 무게 있는 기도일 수도 있다. 중심을 보아야 한다. 하나님만이 중심을 보신다. 동기가 거룩해야 거룩한 기도의 사람이 된다.

어느 부흥목사님이 전해주신 이야기다. 수원에 있는 한 교회에서, 어느 주일날 30대 초반의 자매가 등록을 했다. 예배를 마치고 목사님이 자매와 면담을 하는데 병이 들어서 뼈와 가죽만 남아있었다. 청년시절에 청년회장까지 했던 일꾼이었는데, 예수 안 믿는 애인을 사귀고 나서 믿음도 예수도 사명도 잃어버렸다. 그리고 결혼해서 아이를 가진 후 병이 들었다. 그런데 아무리 치료를 해도 차도가 없고 점점 더 중하여졌다. 그런 중에 둘째 아이를 가져서 출산하고는 건강이 더 악화되었다. 절망적인 것은 두 아이가 모두 엄마의 병이 전염된 것이다. 그래서 자살하기로 결심하고 약국에서 수면제를 사 모았다. 어느 정도 약이 모이자 죽기로 결심하고 약을 먹는데, 자신의 처지가 너무 억울하고 불쌍하더라고. 그래서 통곡을 했다.

한참 울고 기진해서 자기 집 안에서 창문을 바라보자니 전에는 눈에 띠지 않던 십자가가 새로 보이더라는 것이다. 십자가를 보니 전에 예수 믿은 것이 생각나고 교사로 아이들을 가르치면서 예수님이 많은 병자를 고쳐주신 말씀을 들려주던 것이 생각났다. 그녀는 자살을 뒤로 미루고 그 십자가를 찾아 주일날 교회로 나왔다. 목사님은 얘기를 다 듣고, 의지할 분은 하나님 밖에 없으니 모든 예배에 참석하고 기도에 힘쓰라고 권고했다. 무엇보다 새벽기도와 일상 기도생활에 힘쓰라고 조언하셨다. 이 자매는 그대로 했다. 다시 주님을 자기 마음에 영접한 후에 주님께 열심히 마음을 다해 기도한 것이다. 6개월 만에 자신도 두 아이도 모두 치료되는 기적을 얻어, 그 교회의 좋은 일꾼이 되었다.

 

금식할 때

금식은 기본적인 욕망을 끊음으로써 자기를 절제하는 행위다. 주님도 금식하며 자신의 공생애를 준비하셨고 회개한 사도 바울도 금식하며 회개의 열매를 맺으려 했다. 웨슬리는 금식을 은총의 수단으로 중요하게 여겼다. 우리는 사람에게 보이려고 금식하지 말고, 은밀하게 함으로 은밀히 보시는 하나님의 보상을 기다려야 한다. 6:16-17을 보면, 주님은 금식할 때 슬픈 기색을 보이지 말고, 기름을 바르고 얼굴을 씻으라고 하신다. ‘이는 금식하는 자로 사람에게 보이지 않고 오직 은밀한 중에 계신 네 아버지께 보이게 하려 함이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갚으시리라!’(18)

저희 부친이 목회하실 때, 꽤 여러 날 금식하였을 때, 금식 후 첫 보식하시면서 나온 죽 그릇을 받고 많이 우셨다. 죽 한 그릇이라도 얼마나 고마운가 하는 것을 느꼈고, 배고픈 자의 심정을 이해하게 되었으니 얼마나 큰 은혜인가 하셨다! 금식은 육신을 가장 기운 없게, 약하게 만든다. 모든 것을 비운, 제로 지점에서 새롭게 보게 되니 모든 것이 감사다. 호의호식, 생활의 여러 가지 일들이 다 부질없는 것임을 꿰뚫어 보게 된다.

사울 왕이 죽었을 때 길르앗 야베스 거민들이 장사를 하고 칠일 간 금식한다(삼상31:13). 다윗도 사울왕과 요나단 왕자의 죽음을 슬퍼하며 금식하였다(삼하1:12). 다윗은 자기와 밧세바 사이에서 태어난 아기가 병들어 죽기 전에 죄를 슬퍼하며 금식한다. 인생의 슬픔은 삶을 깨끗하게 하며 자신을 새롭게 만드는 정화장치이다. 회개하되 금식하며 회개할 때 하나님은 우리를 고치신다. 회개해야 하는데, 후회하는 ’()는 되나 새롭게 행하는 ’()가 안될 때, 금식을 통하여 회개의 은총이 임한다. 나쁜 습관, 강퍅한 마음을 고칠 수 있다.

신앙적 금식이란 자기의 의지를 보여주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께 낮아지고 비워지는 것이다. 하나님 앞에서 더욱 겸손하여 지면서 진정으로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하게 된다. ‘나로는 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함께 해주셔야 합니다. 내 삶에 개입하옵소서.’ 모세, 시내산에서 하나님의 법을 받기 위해 40일 동안 금식하였다. 오직 하나님의 백성을 위해 자비와 긍휼을 바랐다. 예수님, 공생애 전에 40일 금식기도 했다. 자식의 문제가 있을 때, 부부관계에 위기가 닥쳤을 때, 불치의 병에 걸렸을 때, 큰일을 시작할 때, 해결되지 않는 어려운 문제를 놓고 번민할 때, 하나님의 자비를 기다리며 금식하라. 금식은 형편에 맞게 조절할 수 있다.

우리 큰 아이 후배, 금호재단 장학금, 2학년에게 주는 3년 전액 장학금에 도전하였다. 가정 사정 때문에 장학금이 꼭 필요했다. 모든 서류를 다 갖추고 최선의 인터뷰를 하였다. 최종 2명에 들어갔다. 그러자 몇 주간을 하루 한끼 금식하며 친구들 몇 명이 작정 기도하더라. 선발되었다고, 간증하더라.

자기를 이겨 주의 일을 이루려고 금식한다. 고린도전서, “이기기를 다투는 자마다 모든 일에 절제하나니 저희는 썩을 면류관을 얻고자 하되 우리는 썩지 아니할 것을 얻고자 하노라.”(9:25) 주의 뜻을 이루는 데 제일 문제가 되는 게 바로 나다. 나를 이기고 온전케 하기 위해 금식을 통하여 연단하고 수련한다. 습관의 노예에서 해방된다. 욕심에서 자유케 된다. 여러분에게 금식 실천하기를 권유한다. 금식은 자아를 죽이고, 자신의 변화에 유익하다!

 

사람에게 보이려고

1절상, ‘사람에게 보이려고 그들 앞에서 너희 의를 행치 않도록 주의하라.’ 유대인들은 이 모든 일을 사람 앞에서 사람을 의식하며 했다. 그러나 주님은 구제와 기도, 금식을 할 때 겸허하고 정직하게 할 것을 거듭 강조하신다. 예수님은 이 모든 일을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께 인정받도록 하라고 하신다.

참된 신앙은 사람 앞에서가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이루어진다. 사람에게 보이려는 행위는 참된 신앙이 아니다. 사람에게 보이려는 구제, 사람에게 보이려는 교회출석, 찬양, 봉사 들이다. 사람을 의식하고 행하는 구제나 기도나 금식은 인간적 의로서 하나님의 의에 미치지 못한다. 때로 인간적 의는 우리 영혼에 해를 미친다. 사람에게 보여 칭찬 들으려고 할 때 시작을 의로 하나 마침을 악으로 끝낼 때가 많다.

완전하고 영원한 축복은 하나님께로부터 온다. 사탄은 그 축복 대신 일시적이고 현실적인 축복을 가지고 유혹한다. 영원하고 참된 복보다 사람에게 인정받는 일시적이고 현실적인 복을 더 사모하게 한다. 감미로운 칭찬으로부터 오는 입술의 상급에 머무르게 한다. 사람에게 칭찬받고 인정받는 것보다 하나님께 인정받는 일을 하자.

 

주님의 십자가의 자취를 바라보며 고난을 묵상하고 참 믿음을 찾아가는 사순절에 여러분 모두에게 청한다. 가시가 뾰죽할수록 향기가 깊다. 고난을 피하지 말고 감당하라! 믿음의 3, 구제와 기도와 금식에 힘쓰라. 그것이 여러분의 영혼에 큰 유익을 가져다 줄 것이다. ‘코람 데오’, ‘하나님 얼굴 앞에서의 신앙으로, 사람을 의식하지 말고 하나님을 바라보면서 행하라. 하나님이 주시는 변치 않는 영원한 복이 여러분을 풍성하게 채워줄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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