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전문
| 설교일 | 2026-05-2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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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말씀 | 행2:1-4 |
| 설교제목 | 성령의 충만함 |
성령의 충만함
행2:1-4
2026년 5월 24일 [성령강림절]
성령강림절
오늘은 성령강림절, 유대식 명칭으로 오순절이다. 기독교에는 4대 절기가 있다. 성탄절, 부활절, 추수감사절, 그리고 성령강림절이다. 우리 신앙생활에서 성령이 차지하는 부분이 얼마나 중요한지 말이 필요 없다. 오순절이라고도 하는 성령강림절은 부활절에서 50일 지난 날이요, 부활의 의미가 완성되는 날이다. 지금 세계 개신교 인구에서 계속 성장하고 있는 종파가 성령을 강조하는 오순절 계통의 교회이다. 전통적인 교리 중심의 교회들이 쇠퇴하는 반면, 성령역사를 일으키는 오순절 교회만은 모든 대륙에서 성장하고 있다.
성령강림절인 오늘은 또한 웨슬리회심 288주년 기념주일이다. 교회력으로 보면 성령절기가 거의 일년의 반을 차지한다. 지금은 성령시대요, 하나님의 창조와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이 다 성령의 임재를 통하여 우리에게 나타나고 일하신다. 그러므로 성령 안에서 하나님이 지금 우리를 만나주시고, 성령을 통하여 죄를 이기시고 우리를 성결하게 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이 현재에 실제적으로 나와 여러분에게 나타나게 된다. 하늘의 생명으로 가득찬 이 성령주일에 성령을 받으라! 성령충만하기를 축복한다!!
존 웨슬리에게 네 번의 회심이 있었다. 첫째 회심은 옥스퍼드 대학시절에 있었던 회심이다. 이때 매일 1시간 이상 2시간까지 기도했고, 하나님께 완전한 헌신을 결심했다. 두 번째 회심이 우리가 기념하는 웨슬리 회심인데, 35세 때 있었다. 그는 32세 때 미대륙 조지아에 선교사로 나간다. 최선을 다해 선교했지만 열매를 거두지 못한 채 2년 만에 귀국한다. 실의에 빠져 지내던 중 1738년 5월 24일 저녁 8시 45분 쯤에 올더스게이트 거리에 있는 모라비안들의 모임에 참석했다. 어떤 사람이 루터의 로마서 주석 서문을 읽고 있을 때, 믿음을 통해 하나님께서 역사하시는 변화에 대해 설명하고 있는 동안, 마음이 이상하게 뜨거워짐을 느꼈다. ‘내 마음이 이상하게 뜨거워짐을 느꼈다.’(I felt my heart strangely warmed.) 그때 비로소 웨슬리는 성령이 내주하시는 성령체험을 하였다. 웨슬리의 성령강림절이다.
우리는 보통 두 번째 회심만 아는데, 웨슬리는 그 이후에 강한 성령의 은사 체험을 한다. 1739년 1월 1일, 마음이 뜨거워진 회심의 그 해가 지나고 새해가 된 첫날 저녁에 굉장히 뜨거운 성령체험을 한다. 홀, 킨친, 잉햄, 휫필드, 허친스, 그리고 동생 찰스까지 60여 명이 페터레인에서 애찬에 참석하고, 새벽 3시까지 기도하는 중, 하나님의 능력이 강하게 임해서, 많은 사람이 기쁨으로 소리치기도 하고 땅에 거꾸러지기도 했다. 또 빼놓을 수 없는 웨슬리의 네 번째 회심은 사명의 회심이라고도 하는 노방설교의 경험이다. 이즈음 1739년 4월 1일 조지 휫필드의 노방설교 권유에 응해 작은 거리 모임에서 산상수훈을 설교하게 되는데, 여기에 성령이 강하게 역사하심을 체험한다..
여기서 알 수 있는 것은, 성령은 가끔씩 두드러지고 강하게 역사하시나 한 번만 성령체험이 있는 것이 아니고, 삶 전체를 통해 여러 번 나타난다. 그리고 우리의 생애 전체를 통해 하나님의 영이신 성령님은 역사하신다. 지금도 이 자리에서 성령께서 역사하시고, 이번 주간도 올해도 여러분의 삶에 성령은 교통하시고 일하시어, 움직이고 채우고 일으켜 세우시며, 강하게 하시고 새롭게 하신다.
예수님 승천하시고, 오순절에 예루살렘 마가의 다락방에 모인 예수의 제자들에게 성령이 충만하게 임한다. 그래서 교회가 탄생하고 세계의 역사가 바뀐다. 예수 믿는 사람들이 부활하신 예수가 구주시라고 증언하기 시작했다. 말씀을 듣는 이들이 회개하고 그 복음을 듣고 하루에 믿는 자가 3천 명이나 더하였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시고 부활 승천하신 다음에 오순절 날 갑자기 성령의 댐이 무너져 쏟아진다. 어마어마한 성령 역사가 120명 제자들에게서 시작된 거다! 여러분도 다락방에서 시도 때도 없이 모여 기도하면서 성령을 기다렸던 제자들처럼 성령 충만을 사모하라! 우리 삼척제일교회 모든 성도들이 성령충만하기를 바란다.
성령이 그 마음에 내재하고 있는 사람, 성령의 감동이 있는 사람, 기도할 때나 찬양할 때, 혹은 말씀 들을 때 성령과 내적 교제가 있는 사람, 성령의 음성을 듣는 사람, 그 사람이 바로 진정한 그리스도인이다. 성령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다. 항상 자기 의, 사람의 의만을 추구하기 때문에 성령이 없이는 육신의 욕심과 정욕을 따라 살기 때문이다. ‘육신에 있는 자들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느니라. 만일 너희 속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면 너희가 육신에 있지 아니하고 영에 있나니,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 로마서 8장 8-9절의 말씀이다.
성령 받으면 그리스도께서 보여주신 하나님의 의를 따라 살게 된다. 성경에 나오는 인물들과 기독교 역사에 나오는 하나님의 사람들은 모두 기도하면서 성령님과 교제하였고, 성령의 음성을 들으며, 자기 의를 버리고 하나님의 의를 따르는 사람들이다. 그러면 첫 번 성령강림절에 무슨 일이 있었나? 성령 충만한 사람들은 무슨 일이 일어나는가?
1.바람 소리를 들었다.
홀연히 하늘로부터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가 있어 그들이 앉은 온 집에 가득하며.(2절)
성령강림절에 그들은 바람소리를 들었다. 성령은 바람으로 시작했으며 그의 오심은 강한 바람 같은 소리로 나타났다. 성령은 영이므로 눈에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생명의 바람이 불었다. 하늘로부터 급하고 강한 바람이 불어왔다. 미국연회에 참석하기 위해 이맘 때에 미국에 여러번 갔었는데, 토네이도의 뉴스가 거의 매년 나온다. 그때가 태풍의 시기인 것 같았다. 한번 바람이 불면 이것이 회오리바람이 되어 도는데, 자동차, 트럭, 탱크까지 딸려 올라가고, 집이 휩쓸려서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리기도 한다. 어마어마한 바람이다. 성령 충만하면 어마어마한 바람이 분다! 생명의 바람이요, 구원의 바람이다!
히브리어로 바람은 ‘루아흐’인데, 그것은 “영” 혹은 “숨결”이란 뜻으로도 쓰인다. 오순절의 바람 소리는 하나님의 숨결이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창조하실 때 흙으로 사람을 만드시고 그 코에 생기, 즉 숨을 불어 넣으시니 사람이 살아있는 사람이 되었다. 오순절의 바람은 바로 생명의 바람이다. 성령 받기 전의 제자들은 마른 뼈와 같이 무기력하고 초라했다. 그러나 성령의 급하고 강한 바람이 불어왔을 때 그들은 힘센 군대처럼 일어나 부활의 능력으로 하나님이 하시는 새 일을 이루어 낸다. 매년 교우들의 가정들을 심방해보면 가정마다 공기가 다른 것을 느낄 수 있다. 성령충만한 가정은 거의 다 새바람이 불고 생명의 기운이 느껴진다. 온기가 흐르며 거룩한 공기가 느껴진다. 영적으로 따뜻하다.
바람은 바람이 부는 방향으로 사물들을 움직여 간다. 나뭇가지가 흔들리면서 어디서 불고 어디로 가는지 방향을 제시한다. 바울은 아시아 사람이다. 지금의 튀르키예의 한 지방인, 소아시아 길리기아 다소사람이다. 그런데 하나님의 영이 바울을 자꾸 마게도냐, 빌립보로 인도하신다. 유럽이다. 어떤 사람이 꿈에 나타나 “와서 우리를 도우라!”고 소리친다. 성령의 바람이 바울을 유럽으로 인도하였다. 그래서 복음이 2천 년 동안 유럽에서 미국과 남미로 가고, 한국으로 왔다. 또 한국에서 중국으로, 방글라데시, 네팔, 베트남, 인도네시아로 나아간다. 이것이 성령의 역사이다.
언더우드는 뉴브런즈윅 신학교에서 공부했는데, 네덜란드 계통의 개혁교회 신학교다. 그는 원래 인도 선교사로 가려고 했다. 그런데 그의 친구가 조선이라는 나라에 선교의 문이 열렸다면서 자꾸 권했다. 그래도 언더우드는 인도로 가려했다. 그러다 어찌어찌 모든 게 잘 안되어 그냥 어느 교회 담임목사로 가게 되었다. 그 교회 담임목사로 가겠다고 수락하는 편지를 우체통에 넣으려 하는데, 성령님이 ‘언더우드야! 조선은 어떻게 하려느냐? 너 조선 가야 하잖아?’ 그런 마음의 소리를 들려주시더란다. 그래서 자기 교단이 아닌 장로교 선교부를 찾아가서 물어보았더니 거기 조선선교를 위한 기금이 있어, 언더우드가 장로교 파송을 받아 오게 되었다. 성령은 바람을 일으켜 움직이게 하신다. 성령은 받으면 움직이는 역사가 일어난다!! 언더우드를 인도한 것은 성령님이시다. 여러분도 성령의 바람소리를 듣고, 속회에서 선교회에서 지역사회에서 전도대와 중보기도 모임에서 새 바람을 일으키기 바란다!
2.불의 혀를 보았다.
마치 불의 혀처럼 갈라지는 것들이 그들에게 보여 각 사람 위에 하나씩 임하여 있더니,(3절)
성령강림절에 그들은 불의 혀를 보았다. 불의 혀 같이 갈라지는 것이 각 사람 위에 임했다고 했다. 뜨거운 불이 점화되었다, 불꽃이 각 사람에게 타올랐다는 것이다. 불이 타면 하늘로 올라가고 불의 가지가 옆으로 퍼진다. 그런데 성령은 하늘에서 아래로 내려오는 불이다. 120명의 기도하던 사람에게 각자 불꽃이 임했다. 이것이 보였다.
원래 성령강림절, 오순절은 첫 곡식을 바쳐 하나님께 감사드리는 축제다. 후에는 모세가 시내산에서 하나님의 율법을 받은 날로 기념했다. 출애굽기 19장에 보면, 율법을 받는 날 “여호와께서 불 가운데서 거기에 강림하심이라.”(18절) 한다. 그때 시내산은 옹기점의 연기처럼 타올랐다. 주의 영이 강림하실 때에도, 백성들이 의지하고 살아야 할 율법이 선포될 때에도 강력한 불의 상징이 함께 한다.
감리교의 탄생에는 마음이 뜨거워지는 불의 역사가 있었다. 성령의 일이 아니고는 이렇게 말씀만 들어도 마음이 뜨거워질 수가 없다. 1738년 5월 24일 저녁 8시 45분에 모라비아 교도 모임에 가서 예배드리다가 로마서 1장 17절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는 말씀을 듣고 은혜를 입는다. 원래 웨슬리는 ‘내키지 않는 마음으로’ 그 집회에 참석했다. 수요일 저녁에 어디 기도할 데가 없을까 하다가 모라비아 교도들이 모여 기도회를 한다니까 한번 들어나 볼까 하여 간 것이다. 그런데 성령께서 일하시니까, 그 낙심하고 열심도 없었던 웨슬리의 가슴에 뜨거운 불이 임한 것이다. 그의 마음이 이상하게 뜨거워졌고, 여기에서 감리교 복음운동이 시작되었다.
성령은 불이다! 불은 뜨겁다. 불이 마음에 들어오면 열정이 된다. 웨슬리의 선교 열정은 누구와도 비교할 수 없었다. 선교하러 가는 말 위에서 책 읽는 모습이 바로 웨슬리의 대표적인 모습이 될 만큼 그는 길 위를 달려가는 선교사였다. 하나님은 불을 체험한 사람을 들어 쓰신다. 구약에서 모세는 불꽃이 타오르는 떨기나무에서 부름을 받는다. 선지자 엘리야는 바알과 아세라의 숭배자 수백 명과 싸울 때, 하나님께서 불을 보내 제물을 싹 태워주심으로 임재하심을 보여주셨다. 부흥설교자 빌리 그래함은 말하기를 “현대는 하나님의 불 속을 통과해야 하는 시대”라고 했다. 빛으로 나타나며 순결하게 되기 위해 뜨거운 불의 세례를 받지 않고는 진정으로 변화되지 않는다. 불은 에너지의 원천이다. 성령의 불을 받으라! 성령 불을 사모하라!
예전에 인천에서 교회를 개척하신 목사님이 있었다. 예배당도 없고 교인도 많지 않아 힘들 때, 교인 가운데 한 자매가 급성 맹장에 걸려 데굴데굴 굴렀단다. 요즘 같으면 119를 불러 앰뷸런스를 태워 보내겠지만 그때만 해도 그렇지 못했다. 그래서 다급하니까 그 목사님이 그 자매의 맹장 부분에 손을 대고 기도했다. 그랬더니 아픈 통증이 싹 사라졌다. 병원에 갔더니 맹장염이 다 나아 없어졌다는 것이다. 목사님이 안수 기도를 한 곳에 목사님의 손자국이 불로 인두를 지진 것처럼 남아 있었다. 얘기만 들어서는 믿어지지 않는데, 내가 아는 목사님이다. 성령은 불로 역사하는 능력이다!
3.다른 방언을 말했다.
그들이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언어들로 말하기를 시작하니라.(4절)
여기 ‘성령의 충만’이라는 말이 처음 나온다. 성령 받으면 다 같은 게 아니고 충만하게 받기도 하고 조금 받기도 한다. 아주 뜨겁기도 하고 미지근하기도 한 것이다. 그들은 각자의 방언으로 말했다. 아마 아람어로 기도했을 것이다. 또 서신의 내용들을 보면 방언을 다른 사람들이 잘 알아듣지 못하는 신비한 언어로 볼 수도 있다. 여기서는 각자 다른 방언으로 말했는데, 열다섯 나라에서 온 사람들이 다 자기 나라 말로 들었다고 한다. 통역이 필요 없이 모두 알아들었다. 풍성한 언어의 잔치, 소통의 잔치이다.
부부 싸움은 왜 일어날까? 소통이 되지 않아서이다. 싸우다가 가슴을 치면서 외친다. “왜 이렇게 내 말을 못 알아들어?” 한국말을 하는데도 마음이 통하지 않으니까 말을 알아듣지 못한다고 난리다. 성령은 소통의 영이다. 성령 받으니까, 말이 다르고 풍습이 다르고 행동방식이 다른 사람들이 와서 지금 쉽게 소통하고 하나가 된다. 성령충만함을 받으면 된다. 우리는 성령 받아 복음을 믿으며 하나님의 뜻 가운데 하나 될 수 있다.
성령이 임하니 언어가 달라진다. 성령께서 혀를 주장하신다. 성령은 믿는 이에게 뒷담화, 못된 말, 믿음 없는 공론을 그치게 하신다. 성령 충만한 사람은 우선 입에서 ‘아멘’이 겸손하고 정직하게 나온다. 아멘도 자기주장의 방편으로 악다구니 쓰듯이 하는 사람들이 있더라. ‘아멘.’ ‘아멘!’ 여러분의 입술에 복음에 응답하는 말이 나오기를 바란다. 감사가 나오고, 칭찬이 나오고, 격려가 나오고, 신앙고백이 나오고, 사랑의 말이 나온다. 예수님을 자랑하고 교회를 높인다. 전도가 되고 복음이 간증된다.
부흥회 마치고 수요기도회에 즉흥 간증을 나누었다. 야, 우리 교인들 그렇게 짧으면서도 적절한 말씀을 잘 하는지, 짧은 간증들에 큰 은혜를 받았다. 수요기도회에 나오지 못하고 집에서 유투브로 수요간증을 들은 이들 중에서 은혜를 받았다는 사람들이 여러 명 있었다. 성령이 임하니 무겁게 닫혔던 그들의 입이 열렸다. 말도 못하고 표현도 못하는 사람들이 성령 받고 화통하게 하나님 살아계심을 간증하는 것이다!
참으로 성령이 임한 다락방 밖의 사람들을 놀라게 만든 것은 바람소리나 불꽃이 아니었다. 그것은 120명 제자들이 일제히 말하기 시작한 전도의 함성 때문이었다. 아무 소리 안하고 살던 사람들이 성령받자 ‘인플루언서’(영향력을 끼치는 사람)가 되어 말하기 시작했다. 새술에 취한 사람들은 비로소 천국의 방언, 복음의 간증을 말하기 시작하는 것이다. 베드로는 원래 말을 잘 못하는 무식쟁이이지 않았나? 그는 본래 학문이 없는 평범한 사람으로 멸시를 받았다. 바울도 고후 10장에 보면 ‘편지들은 무게가 있고 힘이 있으나 그가 몸으로 대할 때는 약하고 그 말도 시원하지 않다’는 평가를 받은 사람이다. 그러나 성령이 그들에게 임하니 그들은 이러한 약점들을 이겨냈으며 말로 세상을 바꾸는 위대한 사람들이 된다.
세상 사람들은 성령에 취하지 않고 술이나 쾌락에 취한다. 거기에 타락과 죽음이 기다리고 있을 뿐이다. 우리는 성령의 새 술에 취한 사람들이 되어야 하겠다. 우리는 일심으로 성령의 충만을 받아야 한다. 생명의 바람이 불어가게 되고, 능력의 불길로 뜨거워질 것이다. 성령강림절의 사도들처럼 말로써 위대한 일을 이루는 주인공들이 될 것이다. 기필코 진리의 말씀으로 배부르고 성령의 충만함을 받으라! 세상을 이겨낼 힘은 성령 충만함에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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