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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밭과 물가로 인도하신다! (시23:1-6) [2026년 7월 26일, 성령강림후 야홉째주일]
2026-08-01 15:52:07
박신진 목사
조회수   11
설교일 2026-07-26
설교말씀 시23:1-6
설교제목 풀밭과 물가로 인도하신다!

풀밭과 물가로 인도하신다!

23:1-6

2026726[성령강림후 아홉째주일]

 

파리에 있던 콜레트(Collette)라는 회사가 20171220, 개점 20년을 끝으로 스스로 문을 닫을 때 사람들은 놀랐다. 콜레트가 어떤 회사인가? 최초, 최고의 아이디어 사업 회사였다. , 음반, 카메라, 그리고 물까지 파는, 문화와 취향을 만들어내는 공간, ‘취향의 가게였다. 에르메스, 샤넬, 생로랑과 같은 세계의 쟁쟁한 유명 브랜드들과 협업하여 디자인, 제품의 이름, 개념 등 반짝이는 아이디어를 파는 회사였다.

독특한 가치관을 가지고 새롭게 운영하는 콜레트 회사는 세계적으로 유명하고 영향을 끼치는 회사였으나 스스로 문을 닫고 말았다. 오늘날 우후죽순처럼 나타나는편집숍이나 라이프스타일가게가 추구하는 방향이 이 파리의 3층 작은 매장에서 시작되었다고 사람들은 말한다. 그런데 아이디어가 지루해지고 참신하지 못하다, 이제는 쉼이 필요하다는 자체 판단에 따라 스스로 문을 닫고 말았다. 현대인에게 있어서 쉼을 실천한 폐업이었다.

유대인들은 안식일을 철저히 지키는 것으로 유명하다. 금요일 저녁 해지는 시간이 안식일 시작 시간인데, 금요일 해지기 전(보통 18분 전)에 샤밧 촛불이라고 하는 2개의 안식일 촛불을 자기들이 살고 있는 근처 회당에서 켜며 시작한다. 하나는 '기억하라(20:8)'는 촛불, 하나는 '지키라(5:12)'는 촛불이다. 안식일을 기억하고 지키라는 의미를 담고 있으며, 평일과의 경계를 긋고 가정의 평화를 기원하는 유대인의 핵심 전통이다.

그들은 안식일에 회당에 갈 수 있도록 가능하면 회당에서 1km 안으로 이사를 온다고 한다. 한국의 교인들은 이사할 때 교회 근처 1km 안을 따지는 사람들이 별로 없는데, 유대인들은 안식일에 걸을 수 있는 거리를 택하기 위하여 가능한 한 회당 가까운 곳을 찾는다고 한다. 이처럼 안식일이 되면 집 가까이 있는 회당으로 가서 촛불을 두 개 켠다. 과거 구원을 기억하는 촛불과 미래 말씀대로 살 것을 약속하는 촛불이다. 미르바 던은 유명한 교수요 작가인데 그분도 자기 책 <안식일>에서 철저히 안식일을 지킴으로 평안을 누리고 몸과 마음이 건강하게 생활한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이 시대가 휴가가 절박하게 필요한 시대가 되었다. 아마도 정신없이 바쁘게 돌아가는 현대인들에게 휴식과 비움을 통해 재창조를 하기 위해 멈춤이 필요한 것을 사람들이 알게 되었기 때문이 아닐까? 그런데 사람들이 잘못 쉬고 있다. 멈추고 쉬어야 하는데, 더 바삐 어딘가를 가고 무언가를 하려 한다. 어디를 그렇게 많이 돌아다니는지! 주일밤에 피곤에서 집에 돌아와서 월요일에 학교나 직장 가기 싫어하는 모습이다. 잘못된 쉼이다.

원래 기독교는 현대적 의미의 휴가를 잘 알고 있다. 바로 우리의 안식일 전통이다. 우리나라에 복음이 전해진 때부터 주일성수는 절대 포기할 수 없는 신앙인의 금과옥조였다. 안식일을 의미하는 히브리어 샤바트멈추다, 쉬다라는 뜻을 가진 단어와 어근이 같다. 우리 기독교 전통은 유대인의 안식일과 다르게 주일을 지키면서도, 태초에 세상을 창조하신 하나님께서 매 주말마다 멈추어 쉬면서 일터의 분주함에서 물러서서 하나님을 예배하게 하신 주일신앙을 꾸준히 지키고 있다. 그 근본되는 안식일 신앙을 따라 그리스도인들도 매 주일을 멈추어 쉬며 하나님을 예배한다. 그러니 인간이 세상에서 가끔씩 쉬고 멈추어야 하는 것을 제일 먼저 깨닫고 지키는 사람들이 하나님의 백성들이요 교회인 셈이다.

예전에는 노무관리, 제품관리가 사업경영에 중요한 요점이었다면, 이제는 쉼을 어떻게 관리하느냐가 상당히 중요한 사업 주제가 되었다. 앞서 콜레트라는 회사가 스스로 엔딩을 선언했다고 소개했듯이, 우리시대는 스스로 지나친 집중과 몰두를 해제하여 유연하게 상황을 조절할 줄도 아는 사람들이 앞서가는 시대가 되었다. 공부도 좋고 일도 좋지만, 청춘이라면 멈추어 쉬고 놀 줄도 알아야 매력 있고 건강한 사람이다. 그런 사람들이 창의적이고 파워풀하다. 물론 사람은 누구나 자기 분야에서 일을 잘하며 실력도 있어야 하지만, 멈추어 쉬면서 시와 예술을 즐기고 하나님을 예배하며 기도하고 자신을 충전할 줄도 아는 사람이 미래사회를 선도할 것이다.

 

1.푸른 풀밭 쉴만한 물가

다윗은 푸른 풀밭 쉴만한 물가를 노래한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그가 나를 푸른 풀밭에 누이시며 쉴 만한 물 가로 인도하시는도다.’(1-2) 다윗은 인생의 목자 되신 하나님께서 푸른 풀밭과 쉴 만한 물 가로 인도하신다고 노래한다. 실제로 다윗은 이스라엘의 초대임금이었던 사울과는 달리 시를 쓰고 노래할 줄 아는 낭만적인 목동이요 가객이었다. 그는 하나님이 푸른 풀밭 쉴 만한 물가의 평안하고 쉼이 있는 곳으로 우리를 인도하신다고 고백한다.

본문은 오고 오는 세대의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애송하는 대표적인 다윗의 시편이다. 평생 전쟁을 치르고 많은 피를 흘려야 했던 다윗이었다. 다윗 왕권은 피의 강을 이루며 보전되었다. 권력의 주류에서 밀려 한때는 적진 블레셋으로 들어가 살아남으려고 미친 사람 흉내도 내야 했고, 아들 압살롬이 자신을 반역하여 예루살렘을 내줄 때 피눈물을 흘리며 도주해야 했던 고단한 인생이었다. 그러나 그는 푸른 초장 쉴 만한 물가를 항상 꿈꾸며, 그곳을 향해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느끼고 위로받았다. 노래하며 시를 쓰며 하나님을 예배하는 동안, 다윗의 인생에는 항상 푸른 풀밭이 펼쳐져 있었고 맑고 시원한 물이 흐르고 있었던 것이다.

예수님은 분주한 생활로 식사할 겨를이 없을 때에 제자들에게 따로 한적한 곳에 와서 쉬라고 말씀하셨다. 여기에서 노동과 휴식이 조화를 이루고 리듬 있게 움직이는 것을 볼 수 있다. 제자들은 예수님과 함께 전도를 나가 여러 가지 기적과 변화를 체험했다. 귀신이 물러가며 병자가 나았다. 예수님에게서 가르침을 받은 사람들이 변화되는 것을 보았다. 그리고 예수님께 와서 보고하니 예수님은 쉬라고 하신다. 이것을 요즘 우리 생활에 적용하면, 일도 열심히 하고 살림도 잘 하며 공부도 최선을 다해야하지만, 주일이면 멈추고 교회에 나와 예배드리며, 친구들하고 찬양하고 쉴 줄도 알아야 한다. 쉴 줄 모르는 사람은 미래의 리더가 될 수 없다!

분주하게 일을 하면 무엇인가 결과가 나타난다. 물건도 더 만들고, 팔기도 더 팔고, 돈을 더 벌수 있다. 공부를 오래 하는 만큼 문제를 많이 풀 수 있고, 일을 많이 하는 만큼 빨리 집을 살수도 있고, 부유한 삶을 누릴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은 대단한 기적이 아니다. 양적인 기적이다. 오히려 쉬면 훨씬 나은 기적이 나타난다. 그것은 질적인 기적이다. 쉬면 위로를 받을 수 있다. 기쁨이 조용히 내 마음을 채울 수 있고 평안을 얻을 수 있다. 집은 좀 작을지 몰라도 가정은 더욱 행복할 수 있다. 작은 차를 탈지 모르지만, 그 차에 타고 있는 사람들은 훨씬 여유롭고 부드러워진다. 하나님은 쉼을 통해 사람을 좀 더 고상하고 성숙하게 만드신다. 그러기에 하나님은 우리에게 쉬라고 하신다. 예수님도 전도여행을 다녀온 제자들을 향하여, “너희는 따로 한적한 곳에 가서 잠깐 쉬어라!”고 친절하게 권유하신다(6:31)

마가복음에 보면 가장 위대한 보리떡 다섯 개 물고기 두 마리의 기적이 바로 이 제자들의 휴식 다음에 나온다. 어떻게 보면 진정한 휴식이 위대한 기적을 가져왔다고도 할 수 있다. 열심히 일해서 일어나는 기적이 많다. 잠을 안자고 공부하면 자격증을 딸 수 있다. 종일 앉아보지도 못하고 땀 흘려 일할 때 회사에 유익을 끼치며 월급도 많이 받을 수 있다. 노력한 만큼 결과가 나타난다. 그러나 요즘은 그에 못지않게 쉼이 주는 기적이 많다. 쉼에서 사람이 바뀐다. 쉼에서 태도가 달라질 수 있다. 착한 사람, 좋은 사람이 되는 것이다. 쉼에서 망가진 가정이 회복되고, 가족들이 서로에게로 돌아오게 된다. 치열한 경쟁에서 이기는 도시생활의 기적이 있는가 하면, 쉬면서 얻는 산골생활의 기적, 강원도의 기적이 있다. 이번 여름에도 복잡한 길과 더위에도 강원도로, 동해안으로 내려오지 않는가!

 

2.영혼의 소생

푸른 초장 쉴 만한 물가는 우리 영혼을 소생시킨다. ‘내 영혼을 소생시키시고.’(3) 푸른 풀밭 쉴만한 물가의 휴가와 안식을 통하여 하나님은 우리 영혼을 소생시키신다! 노동과 쉼의 이런 조화를 통하여 우리 인생은 생기를 얻으며 회복된다는 것이다. 지난 주간에 찌는 듯한 복 더위에 비는 내리고, 후텁지근한 가운데 왠지 우울증에 빠지려는 듯이 모든 것이 권태롭고 힘든 날이 있었다. 전에는 친구들과 모여 운동을 함께 하거나,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해소했는데, 이제는 어디 꼭 가고 싶은 데도 없고, 뭐 특별히 맛있는 음식이 당기는 것도 아니고, 그렇더라. 내가 이 나이 되도록 무얼 했나, 그런 무기력감에 잠도 오지 않을 때가 있다.

45년째 목회일정에 매달려 바쁘게 지내다보니 친구들도 다 떠나버린 것 같고, 이렇다 할 취미생활도 못하고 아이들이 가정이라는 둥지를 하나 둘씩 떠나가고, 나는 뭔가- 이런 맘이라고나 할까? 어느날은 새벽기도 시간이 다가오도록 멍하니 무기력하게 잠 못 들고 있었다. 누구에게나 심리적인 침체기가 있다, 영혼의 밤이 찾아올 때가 있는 것이다. 목회자들도 마찬가지다. 영혼이 살아나야 한다. 현대인들은 배고픔의 절박한 고통을 경험하지 않고 적이나 맹수들의 위험도 절실하게 느끼지 않지만, 고독과 무기력과 무의미에 빠져 엄청나게 힘들어 한다.

공장굴뚝의 산업화시대가 지나고, 복잡다단한 정보화시대가 끝까지 이르면서, 사람들이 이제 인공지능의 4차산업화 시대가 되었다고 하지 않는가? 스마트폰, 인터넷, 인공지능이 인간의 영혼까지 책임지려는 시대가 되고 있다. 그러나 이렇게 모든 게 발달해도 우리 영혼은 하나님만이 소생시킬 수 있다. 하나님께로 돌아오라! 너무 멀리 가지 말라! 하나님만이 푸른 초장 쉴만한 물가로 우리를 인도하시며 영혼을 살아나게 하신다. 영혼의 어두운 밤에는 하나님만이 우리 존재의 어두움을 물리치는 빛이 되신다.

예수님은 말씀하시기를,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11:28) 하셨다. 원주 학성교회가 몇 년 전에 큰나무교회라고 교회 이름을 바꿨는데, 교회 입구의 성구는 바꾸지 않은 채 그냥 있더라! 입구 한 기둥에 오라, 쉬게 하리라!’하였고, 다른 기둥에 가라, 함께 하리라!’ 한 것이다. 예수님이 우리 모두를 당신께 오게 하는 것은 쉬게 하려는 것이다. 우리가 믿음을 가지고 주님께 나아가면 우리에게 쉼을 주신다. 주 안에서 쉬면 마음이 쉼을 얻는다! 영혼이 살아난다. 교회에 나왔는가? 예배로 나오셨나? 예수님 안에서 편히 쉬면서 영혼의 소생함을 얻으라!

예전에 사람들은 일 잘 하기 위해 쉰다고 했다. 사람들이 쉬는 것은 경제를 위하여, 생산을 위하여 도구와 수단이었다. 그러나 성서를 보면 우리는 일 잘하기 위해 쉬는 게 아니다. 오히려 일하고 수고하는 것이 영혼의 쉼을 위함이다. 하나님은 사람을 잔잔한 물가로 인도하시는 분이시다. 사람을 푸른 풀밭에서 뒹굴게 하시는 분이시다. 쉼이 있는 인생을 살 때 영혼이 살아난다는 것이다. 서로를 괴롭히고 힘들게 하지 말고, 하나님의 계획대로 좀 쉬게 두라! 쉬는 것을 함께 즐거워하고 인정해 주어야 한다.

서양의 기능적인 사고방식에 길들어져서 우리는 일하는 시간, 노동시간만을 중요하게 여긴다. 그 노동의 결과로 주어지는 휴식, 영혼이 살아나 삶을 마음껏 누리는 것을 중요하지 않게 여긴다. 그러나 성경은 하나님은 시간을 창조하시고, 일곱째 날 시간의 주인임을 피조물과 함께 느끼고 누리셨음을 보여준다. 창조가 계속되던 엿새보다 창조를 마치고 쉬시는 일곱째 날을 복주시고 거룩하게 하셨다. 열심히 일해서, 노동해서 무언가를 생산하는 것도 귀하지만, 그 노동의 결과로 쉬면서 존재의 기쁨을 누리고 평안을 얻는 것이야말로 참으로 귀하고 거룩하다.

하나님은 일보다 쉼을 더 중요하게 여기신다. 우리는 일하기 위해서 쉰다고 보는데, 사실은 쉬기 위해서 일하는 것이며, 쉴 때 우리가 인생의 깊이를 맛보게 되고, 하나님의 안식에 초대된다. 바쁘게 하루 일을 마치고 남편이 집에 돌아왔는데, 아내가 계속 빨래하고 청소하는 게 좋겠는가, 쉬면서 남편을 맞이하는 게 좋겠는가? 더 사랑스러운 부부가 되려면 서로의 존재 앞에서 멈출 줄 알아야 한다. 우리는 저녁시간이나 주일날에는 쉬면서 존재의 근원이신 하나님을 바라봐야 한다. 하나님도 그것을 기뻐하신다!

 

3.영원한 하나님의 집

우리에게 왜 휴식이 중요할까? 우리에게는 영원한 안식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오늘의 휴식은 영원한 안식의 훈련이요 준비이다. 어거스틴이 얘기했듯이, 영원한 아버지 하나님의 품에 안기기까지 우리에게는 참된 안식이 없다. 우리는 결국 하나님의 집으로 돌아갈 것이다. ‘내 평생에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반드시 나를 따르리니 내가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살리로다.’(6) 오늘의 시편 말씀에서 이 마지막 절이 주는 위대한 위로와 평안에 비할 것이 어디 있겠는가! ‘내가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살리로다!’ 저는 많은 교우들의 영혼을 하나님께로 환송하면서 마지막 작별로 이 말씀을 귀에 들려주곤 했었다. 우리는 영원한 아버지의 집에 거할 것이다. 언젠가 그 집에 들어갈 것이다.

헬무트 틸리케 교수가 어렸을 때 이런 경험을 한다. 2차 세계대전이 한창일 때 그는 청소년이었다. 봄철 어느 날 뒷동산에 산책을 나갔는데 동산에 라일락꽃이 만발했다. 그 향기를 맡으며 동산을 걸어가는데 갑자기 이상한 냄새가 났다. 그 냄새를 찾아가 봤더니 총에 맞아 죽은 병사의 시체가 썩는 냄새였다. 그는 너무 놀랐고, 하나님이 창조하신 이 아름다운 동산에 죽음의 냄새는 너무 끔찍한 경험이었다. 믿음이 없으면 죽음은 두렵고 무서운 것일 뿐이다. 죽음은 혐오스럽고 피하고 싶다. 헬무트 틸리케는 청소년 시절에 겪은 이 일을 계기로 죽음의 두려움을 어떻게 극복할 수 있느냐 하는 문제를 생각하면서 신학을 공부해서 목사가 되었고, 함부르크 신학대학교 총장이 되었다.

죽음은 두렵고 싫은 것이지만, 하나님이 기다리시는 영원한 집으로 들어가는 통로가 된다. 우리는 진정한 안식, 인류의 최후의 목표는 죽음 이후에 성취됨을 믿는다. 이 땅 위에서 휴식과 예배를 통하여 하나님을 겸허히 따르는 성도들은 죽음이 우리를 사로잡을 때에 두려워하기 보다는 영원한 아버지 집에 살 소망을 간직하게 된다. 죽음은 어두운 무저갱으로 추락하는 것이 아니라, 영원한 아버지의 품, 푸른 풀밭 쉴만한 물가로 나아가는 것이다! 그렇다! 우리에게는 영원한 소망이 있으니 여호와 하나님의 집에서 주님과 함께 존재의 충만을 누리며 영원히 살 것이다.

 

여러분의 생활에 진정한 안식이 있나? 얼마나 쉼이 있는가? 주님은 우리를 쉬게 하시는 분이시다. 인생을 제대로 살기 위해서는 분주함이라는 적을 몰아내야 한다. 세상에는 노 젓는 자가 많이 필요하지만, 작살을 들고 쉬면서 백경을 기다리는 사수가 정말 필요하다. 매일 성실하게 살고 열심히 일하되, 가끔 쉬면서 인생의 진정한 목표와 삶의 중심을 들여다보라! 주님은 우리를 푸른 풀밭 쉴만한 물가로 인도하시며, 우리 영혼을 살리신다. 그러니 영원한 집에서 완전한 쉼을 누릴 수 있도록 하자! ‘목자 없는 양처럼 방황하지 말고, 이번 여름 이번 주간에도 아버지 하나님께로 돌아와 진정한 쉼을 누리시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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