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전문
| 설교일 | 2026-08-3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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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말씀 | 삼상16:6-13 |
| 설교제목 | 마음에 드는 사람 |
마음에 드는 사람
삼상16:6-13
2026년 8월 30일 [성령 열넷째주일/왕국절]
지금 여러분의 나이는 어떻게 되시나? 사람에게는 다섯 개의 나이가 있다고 한다. 첫째, 물리적 나이이다. 흔히 우리가 말하는 ‘몇 살입니다.’하는 나이이다. 물리적 시간으로 계산되는 나이이다. 이 나이에 따라 학교도 가고 또래 집단을 형성해 가며 상하 순위를 매기기도 한다. 둘째, 사회학적 나이이다. 물리적 나이와는 달리 사회 안에서 자기 영역에서 얼마나 실력을 발휘하고 위치에 있느냐 하는 나이이다. 젊어도 어른일 수가 있다. 비록 어려도 유능하고 지위가 높으면 사회적인 우위를 차지하기도 한다.
셋째, 생물학적 나이이다. 외관상으로 보여지는 나이이다. 난 분명 십대인데 남들은 나를 아저씨로 본다. 중년에 이른 50대인데 30대로 착각해준다. 요즘 70 노인이 50대 같아서 깜짝 놀라게 하는 일이 있다. 그렇게 평가를 받으면 본인은 기분이 좋을 것이다. 넷째, 신체적 나이이다. 신체 기능이 얼마나 건강하게 그 나이에 맞게 작용하는가 하는 나이이다. 혈압, 당수치, 근육량, 그밖에 심전도나 뇌파검사를 하면, 나이보다 젊거나 늙다는 평가를 할 수 있다. 장애나 부진이 있어 신체나이가 물리나이를 넘어서거나 미달할 수 있다.
마지막, 우리가 꼭 체크해야 할 나이는 ‘자기 평가 나이’이다. 이것은 스스로 평가할 수 있는 ‘내면적인 자기 인생의 나이’를 말한다. 자신이 걸어온 삶을 돌아보면서 스스로 평가할 수 있는 나이는 얼마인가? ‘40이 지나면 자기 얼굴에 책임을 져야 한다.’는 말이 있다. 사람이 자기 나이만큼 의식적으로 목표나 의미를 가지고 걸어온 인생이 있는가 하는 점이다.
실제로 우리의 나이가 어떠냐에 따라 활기있게 젊어보이기도 하고, 무기력하게 늙어보이기도 하는가 하면, 호감과 신뢰를 주는 나이로 보이기도 하고, 초라하고 불안해 보이는 나이로 보이기도 할 수 있을 것이다. 정말 중요한 나이가 자기 내면에 스스로 매길 수 있는 나이가 아닐까? 여러분은 얼마나 살아왔는가? 그리고 얼마나 여러분의 내면이 성숙하며 신뢰받을 만한 삶이 되어가고 있는가? 호감과 신뢰를 주는 사람인가, 부담과 짜증을 불러오는 사람인가?
중세 유럽에서 일어난 일이다. 음악회를 열게 되었는데 그날 마침 폭풍우가 와서 아침부터 비가 많이 내렸다. 이런 날은 아무리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도 올 수가 없을 것 같았다. 거기다가 날씨가 우중충하니 연습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래서 대부분의 단원들은 연주가 마음에 들지 않으니, 음악회를 취소하고 표를 물려주자고 했다. 그런데 지휘자가 이런 나쁜 일기에도 음악을 들으러 오는 사람들을 배반할 수 없으니 최선을 다해 연주하자고 했다. 그날 연주를 했고, 연주가 끝났을 때 메모 한 장이 지휘자에게 전달되었다. 단원들을 집중하게 하더니, “주목, 주목!” 지휘자가 그 쪽지를 읽었다. 거기에는 이런 글이 있었다고 한다. “참 좋은 연주였습니다. 왕으로부터.” 아! 왕이 그 자리에 참여했던 것이다!! 그날의 연주는 사실 대성공이었다! 왕의 마음에 드는 음악회였기 때문이다. 여러분은 누구에게나 마음에 드는 사람이 되기를 바라고, 여러분의 인생을 연주라 한다면, 마음에 드는 아름다운 연주가 되길 바란다!
우리 인생의 주관자이신 하나님 앞에서 우리 인생 경영은 어떻게 평가받을 수 있을지, 생각해보자! 하나님 마음에 드는 인생인가, 사람들 마음에는 드는 인격인가? 성경에 나오는 인물 중에 다윗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다윗은 하나님 경외하는 데는 일등인 사람이다. 사도행전 13장의 바울의 설교에 의하면, 다윗에 대한 말씀이 나오는데, 거기에 ‘내가 이새의 아들 다윗을 만나니 내 마음에 맞는 사람이라 내 뜻을 다 이루리라 하시더니’라고 되어 있다.
하나님 마음에 맞는 사람,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사람, 하나님 마음에 꼭 드는 사람이 바로 다윗이다. 왜 하나님이 그 많은 인물 가운데 저 시골에서 목동으로 자란 무명의 다윗을 쓰셨을까? 하나님이 마음에 들어하시는 사람, 하나님이 인정하시는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우리 모두 하나님 마음에 드는 사람이 되기 바란다. 하나님 마음에 드는 사람이라면 사람들 마음에도 드는, 매력적인 사람이 될 것이다. <마음에 드는 사람>! 하나님 마음에 들고, 사람들 마음에 드는 사람이 되기를!! 나는 이제 은퇴를 7-8개월 남겨두고 있다. 지금 후임으로 오실 목사님을 찾고 있다. 하나님 마음에 꼭 드시는 목사님을 찾도록 기도하자! 그리고 솔직히 사람들, 우리 마음에도 꼭 드는 분이 오셨으면 좋겠다.
1. 하나님은 중심을 보신다.
처음 왕으로 기름을 부어 세운 사울이 실패한 때문에 사무엘은 매우 마음이 상하였다. 이럴 때 하나님께서 찾아오셔서 말씀하신다. 16장 1절, “여호와께서 사무엘에게 이르시되 내가 이미 사울을 버려 이스라엘 왕이 되지 못하게 하였거늘 네가 그를 위하여 언제까지 슬퍼하겠느냐? 너는 뿔에 기름을 채워 가지고 가라. 내가 너를 베들레헴 사람 이새에게로 보내리니 이는 내가 그의 아들 중에서 한 왕을 보았느니라 하시는지라.” 사울은 선지자 사무엘의 영적 권한을 침해하면서 독단적으로 제사를 드렸고, 자기 욕심에 눈이 멀어 아말렉의 것을 완전히 진멸하지 않고 자기 것으로 삼는 불순종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하나님은 사울의 시대가 끝났음을 선언하시면서, 새로운 인물 하나님 마음에 드는 사람을 세우시겠다고 하신다.
사무엘은 새로운 후계자를 세우기 위해 이새의 집으로 갔다. 그 집에서 아들들에게 두 가지를 요구한다. 스스로 성결케 하여 거룩하게 몸가짐을 하는 것과 하나님께 드리는 제사에 정성껏 참여하는 것이었다. 첫째 아들 엘리압이 왔다. 사무엘이 그 아들을 보니 외모가 특출했다. 사무엘은 잘생긴 외모가 마음에 들어 ‘여호와의 기름 부으실 자가 과연 주님 앞에 있도다.’ 하고 생각했다. 그런데 하나님이 아니라고 하신다. “여호와께서 사무엘에게 이르시되 그의 용모와 키를 보지 말라. 내가 이미 그를 버렸노라. 내가 보는 것은 사람과 같지 아니하니 사람은 외모를 보거니와 나 여호와는 중심을 보느니라 하시더라.” 7절 말씀이다.
엘리압은 장자였다. 이스라엘은 완전히 장자 우선 사회이다. 왕이 세자들 가운데 왕세자를 세운다면 우선 장자를 세울 것이었다. 그러나 하나님은 엘리압이 장자이지만 그를 버리신다. 외모는 출중하나 중심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둘째 아비나답이 나온다. 하나님은 그 둘째도 아니라고 하신다. 사람들의 생각이 많이 빗나가기 시작한다. 셋째 삼마의 차례가 되었다. 우리나라는 셋째를 좋게 평가하는 경향이 있다. 속담에 셋째 딸은 인물도 안 보고 데려간다는 말이 있다. 남자도 셋째 선호가 약간 있다. 세종대왕이 셋째다. 머리도 좋고 성공률이 높다는 말도 있다. 하지만 ‘셋째일까?’ 하는 마음도 무너진다.
그 후 넷째부터 일곱까지 모두 아니라고 하신다. 여러분, 하나님의 마음과 그 길을 때로는 인간이 짐작하고 판단할 때도 있지만, 항상 우리 생각대로 되는 것은 아님을 알아야 한다. 하나님의 길과 인간의 길은 같지 않다. 겸허히 주님의 길을 받아들이고 그분의 판단을 따라가야 한다. 사무엘은 당황했다. 기도하는 선지자였지만 많은 것들이 빗나갔기 때문이다. 이에 사무엘은 이새에게 “너의 아들이 전부냐?” 라고 묻는다. 이새는 막내가 있지만 그 아이는 양을 치는 목동이라고 하였다. 사무엘은 사람을 보내 그를 데려오라고 하고, 그가 오기 전에는 식사 자리에 앉지 않겠다고 했다. 다윗은 원래 전혀 기대되지 않던 인물, 의외의 카드였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이가 그니 일어나 기름을 부으라!” 말씀하신다. 그리고 13절에서 ‘이날 이후로 다윗이 여호와의 영에게 크게 감동되었다.’ 라고 나온다.
사무엘이나 이새나 인간은 똑같이 외모를 본다. 항상 외모를 중심으로 판단할 때가 많다. 아니라 하지만 그런 경향이 여전히 많다. 외모가 멀쩡해서 현혹되어 번번이 당하면서도 또 외모를 보다가 잘못 판단할 때가 있다. 이새는 막내아들 다윗이 왕으로 기름부음 받을 것을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깜’이 아니라고 생각한 거다. 그런데 하나님은 중심을 보시고 다윗을 왕으로 세우신다. 훈련을 시작한 게 아니라 기름을 부어버린 거다! 다윗은 아브라함의 14대손으로 성경의 인물 중 가장 많이 언급되는 인물이다. 약 1천 번이나 언급되었고, 예수님도 별명이 ‘다윗의 후손’이다. 왜 구약에서 다윗인가? 우리는 생각해보아야 한다. 왜 예수님도 다윗에 비교되었는가, 우리는 알아볼 필요가 있다!
토크쇼의 여왕 오프라 윈프리 쇼에 제스라는 청년이 출연한 적이 있다. 제스는 ‘자기 모습이 전부 다 기형이다’라고 말한다. 턱선은 비대칭, 눈은 사시, 머릿결이나 피부도 이상하다는 것이다. 자신은 사람이 아니라 추한 괴물이라고 한다. 누가 보더라도 너무나 멋진 미남인 제스가 왜 자신에 대해 이렇게 끔찍하게 생각할까? 그것은 제스가 ‘신체이형장애’를 앓고 있기 때문이다. 정상적인 용모를 가진 사람이 자신의 외모에 심각한 기형이 있다고 인식하는 정신질환이다. 이 병에 걸리면 성형중독에 빠지게 된단다.
여러분은 혹시 외모에 지나치게 민감한 것은 아닌가? 사람들의 눈에 들기 위해 지금도 외모에 모든 공을 들이는데, 그래도 항상 만족치 못하는 상황은 아니신가? 하나님 보시기에는 어떨까? 자신의 내면에는 무관심한 채 겉모양의 화려함에 치중한다면 결국 문제가 일어날 수밖에 없다. 마음이 건강하고 아름다울 때 부족한 외모도 채워질 수 있지만, 마음이 병들어 있으면 끝내 외모까지 병들 수밖에 없다. 외모는 중요하다. 그러나 정말 중요한 것은 마음에서부터 우러나오는 외모이다. 마음의 눈이 바르지 못하면 아름다운 자신조차 추한 괴물로 보는 법이다. 중심을 보시는 하나님 앞에 합당한 자가 되기 바란다.
2.다윗의 중심은 어떠하였나?
다윗은 첫째, 자기가 맡은 일에 성실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중심은 성실함이다. 선지자의 방문인데 호기심은 왜 없겠으며, 보고 싶은 마음이 어찌 없었겠는가? 제일 막내니까 떼라도 써서 그 자리에 오고 싶었겠지. 그러나 다윗은 두말없이 들에 나가서 양을 지켰다. 자기 일에 책임감을 가지고 성실히 임한 것이다. 하나님은 그런 사람을 쓰신다.
모세를 보라! 처가살이를 하면서 양무리를 성실하게 돌본다. 과거의 왕자생활을 그리워하지도 않고 불평하지도 않았다. 40년의 세월을 처가살이 목동생활을 한다. 낮고 천한 자기 신세를 받아들이고 성실하게 감당한다. 그곳에 하나님께서 찾아오셔서 호렙산에서 떨기나무 불꽃가운데 그를 부르신다. 그를 부르실 때 떨기나무 앞에서 ‘네가 선 곳은 거룩한 땅이니 네 발에서 신을 벗어라!’ 하신다. 성실한 생활이 있는 곳이 거룩한 땅이요, 하나님이 역사하시는 곳이라는 뜻이다!
베드로도 밤이 새도록 어부로서 그물을 던진다. 보통 어부가 그물을 던지다 잘 안되면 그날은 잘되지 않는 것으로 여기고 몇 시간 일하다가 그냥 가지 않겠나? 그런데 베드로는 철야를 했다. 잡은 것이 없어도 밤새며 그물을 내리던 그 밤에 주님께서 베드로를 찾아오신다. 결과에 연연하지 않고 성실하게 최선을 다한 것이다. 그때 우리 예수님이 오셔서 그를 부르시고 수제자로 삼으신다.
둘째, 다윗은 정직했다. 왕상 14:8, “내 종 다윗이 내 명령을 지켜 전심으로 나를 따르며 나 보기에 정직한 일만 행하였더라.” 법궤가 예루살렘에 들어올 때는 춤추며 기뻐하였고, 사울과 세 아들이 전쟁터에서 죽자 진심으로 슬피 곡하였다. 정직한 다윗의 품성은 많은 사람을 감동시켜 장군들과 모사들이 다윗을 많이 따랐다. 다윗은 한때 다윗을 죽이려고 애썼던 사울왕의 아들 요나단과도 우정을 끝까지 유지하였다. 다윗의 정직한 성품이 서로 믿을 수 있게 하였기 때문이다. 상황이 바뀌어도 변함없이 진실을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정직은 그리 쉬운 것이 아니다. 그러나 말째인데도 정직하니까 으뜸이 되었다. 가난해도 정직하면 결국은 그 사람이 성공한 인생이 되더라.
잠언 30장 8-9절에 아굴의 기도가 나온다. 요약하면, 가난하고 힘들다고 도적질하거나 거짓말하지 않게 해주시고, 부자가 되어 하나님을 모른다고 하는 사람이 되지 않게 달라는 기도이다. 사람이 너무 가난하면 남의 것을 탐내다 훔칠 수 있고, 거짓말할 수 있는데, 그런 죄를 짓지 않게 해달라는 것이다. 가난하면 정직을 잃어버릴 수 있고 부자가 되면 하나님의 은혜를 잃어버릴 수 있는데, 그렇게 되지 않게 기도한다.
2007년 7월 어느 날, 40년 전에 무임승차한 열차요금을 내는 것으로 화제가 된 사람이 있었다. 산악관련 업체를 운영하던 박재곤이라는 이가 59년 7월에 미처 내지 못한 열차요금을 48년이나 지나서 이제야 낸다면서 10만 원 권 수표 여러 장을 가져오자 철도청에서 당시 열차요금을 계산하여 요금을 받았다고 한다. 이 사람은 한 번도 본 적은 없는 사람이지만,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정직한 사람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40년 이상 많이 늦었지만 그 양심의 소리를 아주 외면하지 않았다는 것이 중요한 것이다. 양심을 속이는 사람이 아니라 누가 뭐라 하지 않았지만 스스로 양심을 따라 행하는 사람이었다는 점이 중요한 것 아닐까?
하버드대학교는 청교도 출신 하버드 목사님이 자기 재산을 다 기부하여 시작한 학교이다. 한번은 노부부가 하버드대학교를 찾아왔다. 철도회사를 경영해서 돈을 많이 번 사람이었다. 캘리포니아 주지사를 지냈고 상원의원까지 지낸 분이다. 그분들은 1884년에 15살 외아들과 이탈리아를 여행하던 중 장티푸스로 아들을 잃고 말았다. 집에 돌아와 재산을 다 정리해서 그 학교에 기부하려고 찾아간 것이다. 아들의 꿈이 하버드대학에 가는 것이었다.
총장이 근무하는 건물에 가서 총장님을 만나러 왔다고 수위에게 말하니 수위는 노부부의 검소한 외모를 보고 냉대했다. 노부부가 “우리는 이 학교에 돈을 기부하러 왔으니 총장을 만나야 한다”고 수차례 말해도 수위는 막무가내로 거절했다. 결국 총장을 만나지도 못하고 샌프란시스코로 돌아왔다. 그리고 하버드대학교와 같은 수준의 학교를 지어야겠다고 작정하고 자기들의 돈 2,100만 달러를 기부해서 학교를 설립한다. 그때 알래스카주를 산 돈이 720만 달러일 때이니까, 엄청난 기부금액이었다. 그 할아버지의 이름이 바로 릴런드 스탠퍼드였기 때문에 대학 이름을 스탠퍼드라고 지었다. 한번은 우리 사위가 미국에 출장을 가서 스탠포드대학 인근에 갔다가 좋은 대학이라고 사진을 찍어보낸 적이 있었는데, 정말 웅장한 캠퍼스를 가지고 있더라. 수준이 높은 대학이다. 사람은 외모를 보기 때문에 실수하는 경우가 많다. 스탠퍼드 대학교가 처음 세워졌을 때 학교 정문에 이런 구절을 써놓았단다. “중요한 것은 사람 속에 뭐가 담겨있는지 깊이 보는 것이다. 외모로 판단해서는 안 된다.”
세상은 마음에 드는 사람을 찾고 있다. 어디서나 언제든지, 누가 보든 안 보든 성실하고 정직하라! 다윗처럼 어떤 때든지 자기 맡은 일에 최선을 다하라! 손해를 보더라도 거짓말하지 말아라! 하나님 마음에 드는 사람이 되고, 사람들에게도 마음에 드는 사람이 될 것이다! 우리교회에도 먼저는 하나님 마음에 드는 분, 나아가 온 교인들이 존경하고 따르는 목사님이 선임되기를 바란다! 어쩌다 하나님 마음에는 드는데, 사람 마음에 들지 못할 때가 있다면, 하나님 마음에 들기를 먼저 애쓰고, 그리고 나서 사람 마음에도 들기를 힘쓰면 된다. 중심을 보시는 하나님을 먼저 생각하고, 그분 마음에 드는 사람이 되라! 결국 사람들도 이해하고 받아들여줄 때가 올 것이다. 주님은 중심을 보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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