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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의 말씀- 발에 등, 길에 빛 (시119:105-112) [2026년 7월 12일, 성령강림후 일곱째주일]
2026-08-01 15:45:19
박신진 목사
조회수   10
설교일 2026-07-12
설교말씀 시119:105-112
설교제목 주의 말씀- 발에 등, 길에 빛

주의 말씀- 발에 등, 길에 빛

119:105-112

2026712[성령강림후 일곱째주일]

 

몇 주 전, 주재오 성도가 새벽기도 오다 교회 문 앞에서 만나 큰소리로 물었다. “목사님! 새벽기도 때 시편 119편은 어떻게 할 거예요?” 새벽기도에 늘 나오고 있는 성도들이 매일 성경을 한 장씩 읽는데, 시편 119편 한 장은 176절이나 되어 하루아침에 읽을 수가 없는데, 어떻게 할 건지 궁금해서 미리 물어보는 것이다. 성경 읽기에 대한 이런 관심에 반갑기도 하고 질문이 갑작스럽기도 해서, “~ 시편 119편은 몇 부분으로 나눠서 며칠 동안 읽을 거예요!” 라고 대답해주었다. 주 성도는 요즘 성경쓰기도 하고 있다. “, 정말! 성경 쓰는 게 힘들대요!!” 하면서 가능하면 올해 안으로 성경쓰기를 끝내고 내게 검사를 맡고 싶은데 어렵다고 하였다.

여러분은 어떻게 말씀과 함께 하는가? 말씀 읽는 재미, 말씀 공부하는 기쁨을 알고 있는가? 항상 말씀에 깨어있고 눈뜨고 있어, 이 험한 세상의 파도를 잘 이기며 살기 바란다! 정라진만 나가봐도, 건넛부리에 작은 고깃배가 주욱 정박해있다. 배는 물에서 떠나면 안 된다. 물은 배를 지탱하는 힘이 된다. 그런데 배를 가만히 보면 물에 있다고 해서, 물 위에 떠 있어야지 물속에 들어가 버리면 큰일 난다. 물속에 들어가면 침몰이다. 가끔 일어나는 해상사고는 결국 물 위에 떠 있어야 할 배에 물이 들어와 배가 물속으로 들어가 버리는 것이다.

영적인 면에서 우리는 이런 일에 유의해야 한다. 세상은 물이고 신앙은 배와 같다. 성도는 세상을 저버려서는 안된다. 우리는 세상에서 그리스도인으로 살도록 부름받았다. 기독교는 불교와는 다르다. 항상 교회는 시장과 학교와 병원과 함께 세상 가운데 있었다. 그런데, 세상 가운데에서 살아가는데, 세상 위에 떠 있어야지 세상 속에 빠져버리면 안 된다. 성도들이 세상 현실 속에서 살기 때문에 세상을 떠날 수는 없지만, 세상 위에 떠있지 못하고 세속의 물결이 넘쳐서 뒤집히면 영적 사고가 일어난다. 이런 일은 비일비재하다. 세상 위에 떠 있지 못하고 세속의 죄악과 유혹에 빠져버리는 신앙을 세속주의라고 한다. 세속의 물결이 자꾸 넘어올 때 자신을 잘 지켜야 한다. 우리 영혼을 세상 파도에 방치해 두면 곧 영적인 전복사고가 날 수 있다. 세상 안에 살되, 세속에 빠지지 말라! 세상 속에 빠지면 영적으로 치명적인 위기를 만난다. 이렇게 되지 않도록 세상을 이기며 살아가기 바란다!

 

생명의 등불인 말씀

오늘의 본문은 지난 주간에 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나흘 동안 읽은 시편 119편의 한 말씀이요, 마침 이번 주의 말씀, 성구일과이기도 하다. 시편 119편은 모든 22개의 단락이 모여서 176절이나 되는 거대한 한 편의 시를 이루고 있다. 22개의 단락은 구약 성서에서 쓰는 히브리어의 22글자를 머릿글자로 하여 8절씩 22단락을 만든 거대한 시편이다. 한 단락의 여덟 절마다 같은 문자로 시작하는 단어를 쓴 것이다. 얼마나 조직적이고 철저한 질서를 가진 시편인지!! 이 시편은 다 말씀, 율법, 계명과 규례를 사랑하고 지킬 것을 노래한다.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15) 세상 속에 빠지지 않고 세상을 이기며 다스리며 살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주의 말씀을 가까이하고, 말씀 붙들고 살아야 한다. 세속주의에 빠져버리지 않고, 세상을 잘 다스리고, 세상 속에서 하나님 뜻을 이루며 살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말씀 안에서 살아야 한다! 말씀을 도외시하고 세상으로만 달려가면 세속주의에 빠져서 우리 영혼이 병들고 빈사상태에 빠지게 된다.

요즘 우리 교인들이 골프, 파크 골프들을 많이 치고 있다. 가끔씩 목사님 사모님도 치지 않겠느냐고 권유하는 전화도 온다. 지난번 교회 체육대회 때 파크골프 종목이 있는데, 모두 잘 치시더라. 어떤 분은 침착하면서 세련된 폼으로 치는데 참 보기 좋았다. 정말 자연을 벗삼아 이렇게 더불어 운동을 하면 재미있을 것 같다. 여기다가 부담스럽지 않게 차 내기를 한다던가, 어쩌다가 밥도 내기 시합을 하면 스릴도 있고 즐거움이 배가될 것 같다. 참 건전한 놀이라고 생각된다.

우리는 세상에서 사람들과 어울리며 현대사회의 문화와 스포츠를 즐기고, 정치경제의 현실을 항상 살피며 그런 것을 신앙의 범위 안에서 잘 소화하며 살아야 한다. 기독교는 타락하지 않기 위해 가끔 절제된 생활을 요구하기도 하지만, 세상을 즐기며 살도록 하나님이 허락하셨다. 그러나 여기에 조건이 붙는데, 세상 재미에 빠져 말씀을 소홀히 하면 안된다. 스포츠 모임, 운동이나 취미 클럽, 성도들끼리 모여 차도 나누고 힘이 되는 대로 밥도 먹으러 다니는 일들, 다 건전하고 귀한 일이어서 아무런 거리낌을 가질 필요가 없다. 다만, 말씀을 공부하는 모임을 아주 도외시하며 세속 취미에만 치중한다든지, 세속의 모임에 치우쳐 거룩한 예배 모임과 기도 모임을 아주 폐한다는지 하는 것은 우리 영혼이 매우 위험한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균형과 조화가 필요하다!

어찌하면 세속의 물결이 우리 영혼의 배를 뒤집지 않도록 지킬 수 있을까? 여러분의 영혼은 안전한가? 지나치게 외롭고 우울하거나, 비참하고 화가 나는 정신적 문제가 생길 수 있고, 세상일에 정신없이 바쁘면서도 이게 아닌데 하는 생각이 든다면, 하나님께 나아와 내가 제 자리에 서있는지, 바로 가고 있는지 꼭 물어봐야 한다. 불신자는 말할 것도 없고 신자들 가운데에도 지나친 세속주의 파도가 휩쓸려 와서 인생의 배가 뒤집힐 상황에 빠져있는 사람들이 많다고 생각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말씀의 울타리를 튼튼하게 세우는 일이다. 내가 신학교 4학년 때 아버지가 경기도 파주 금촌이라는 곳으로 교회를 옮겨 가셨다. 그 교회는 시골 읍 소재지의 교회였는데 청년들이 많았다. 서울로 대학을 다니거나 직장생활하는 청년들이 6-70명 나오고 있었다. 그 교회는 청년 담당 장로님을 중심으로 그룹 성경공부를 열심히 했다. 말씀을 깊이 알아서라기보다는 교회에서 함께 어울려 무엇인가를 한다는 것이 좋았다. 단순한 답을 쓰고 그것을 비교해 보고, 그리고 자기 경험과 결심들을 함께 나누는 과정이었다. 그런데, 성경말씀을 읽고 자기에게 적용하여 쓰는 시간이 그렇게 평안하고 힘이 되며 주님과 함께 하는 기쁨이 있었다. 함께 소그룹으로 모여 자기가 써온 답들을 서로 나누고 말씀 안에서 자기 얘기를 하고 듣는 것이 얼마나 풍성한 마음의 위로와 내적인 기쁨을 주었는지! 돌이켜보면 그런 성경공부가 힘이 되고 청년 시절을 든든하게 지켜주었었다!

우리교회가 말씀에 더욱 관심을 기울이고 말씀이 주는 가르침에 귀를 기울이며, 말씀을 적용하고 실천하는 데 힘쓰는 교회가 되기를 바란다. 특히 요즘 젊은 세대는 활자세대를 벗어나 영상세대가 되었다고 하는데, 그러다보니 너무 세속문화에 사로잡히는 것 같다. 삼척사람들이 얼마나 책읽기를 힘들어 하는지 안다. 그러나 하나님 말씀은 생명을 주는 계시의 말씀이다.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다! 환하게 불을 다 켜지 않아도 손에 후레쉬 하나만 들으면 앞길이 환하게 밝혀지지 않는가? 말씀에 재미를 붙여 보라!

말씀으로 돌아오는 백성은 결코 망하지 않는다! 이단들이 자꾸 말씀 공부를 빌미로 하여 우리를 유혹하는데, 그것은 성도들이 말씀을 공부하지도 않고 말씀대로 순종하는 데 약하기 때문이다. 그 말은 말씀에 깊이 집중하는 사람들은 결코 이단에 빠지지 않는다는 얘기이기도 하다. 이 여름에 틈틈이 말씀 보고 은혜를 누리는 시간을 가져야 한다! 특히 하나님이 속회로 묶어주시는 것은 말씀을 배우고 나누라는 뜻이다. 각자 성경 읽다가 받은 은혜를 나누어보기도 하고, 공과 내용을 자기에게 적용하여 기도하기 전에 자기 느낌과 생각을 대화해보라! 큰 유익이 있을 것이다.

 

말씀의 세 가지 유익

1. 주의 말씀은 고난에서 우리를 소성케 한다. ‘나의 고난이 막심하오니, 여호와여 주의 말씀대로 나를 소성케 하소서.’(107) 소성케 한다는 말씀은 살아나게 하다, 활력이 넘치게 하다는 뜻이다. 고난이 특별한 경우에 특별한 사람에게 찾아오는 것이 아니라 누구에게나 언제나 찾아올 수 있지 않은가! 실패하거나 뜻대로 되지 않거나 너무 어려운 상황이 거듭되는 것, 또는 감당하기 어려운 힘든 일들이 닥쳐오는 것이 고난이다.

생각지도 못했는데 아이 다니는 학교에서 연락이 온다. 애가 사고를 쳤다는 거다. 남편이 자기 몰래 보증을 선다. 떼이고 나서야 연락이 온다. 갑자기 건강검진에 이상이 나타나 병원에 가서 정밀검사를 받으니 암이라는 것이다. “기억상실증이 있는가 왜 이리 자꾸 잊어버리지?” 하다보면 어느 때에 치매가 걸렸다는 진단을 받는다! 고난의 때에 사람은 의기소침해지고 자신감을 잃으며 실망하고 좌절한다. 해보기도 전에 의욕이 꺾여 주저앉아 버린다.

고난 자체보다는 고난이 가져오는 실망과 좌절이 더 무섭다. 인테리어 업자가 현장에서 사다리에서 떨어져 목 디스크가 파열되었는데 목 이하 모든 부분이 마비가 되고 말았다. 보통 사람보다 더 건장한 남편이요 아빠였는데, 장성한 딸이 아빠 병원침대를 밀고 가며 아빠, 아빠한테 이제 신경질 안 부릴게!” 울부짖는다. 이런 때에 하나님의 말씀이 좌절감과 실망에서 우리를 건져준다. 낙심하여 어둠 속에 빠지거나 당황하여 길 잃지 않도록 우리 마음을 밝혀준다. 하나님의 위로와 치유가 말씀을 통하여 우리에게 임하는 거다. 우리 마음을 살아나게 해준다.

고난의 때에 주의 말씀을 의지하라. 그러면 주의 말씀이 우리를 활력 있게 하고 영혼을 깨워 일어나게 한다. 요즈음 직장 남성들이 고난 때문에 좌절하는 경우가 의외로 많다. 엄청난 경쟁 구조 속에서 스트레스에 시달린다. 작은 실수나 별 것 아닌 소문 때문에 결정적인 불이익을 당하거나 직장생활이 중단되기도 한다! 그러므로 한가한 노인들이나 여유있는 사람들에게만 말씀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분주한 생활에 시달리는 직장인, 사업가들이나 학생들, 가정주부들, 아이 키우는 엄마들이 더욱 말씀을 가까이 해야 한다. 치열한 고난의 삶의 현장에서 말씀을 보아야 한다! 말씀이 고난에서 우리를 소성케 하기 때문이다!

 

2. 주의 말씀은 위기에서 우리를 지켜준다. ‘나의 생명이 항상 위기에 있사오나, 나는 주님의 법을 잊지 아니하나이다.’(109) 원수는 그의 생명을 노리고 시시각각 다가오고 있다. ‘악인들이 나를 해하려고 올무를 놓았사오나, 나는 주의 법도들에서 떠나지 아니하였나이다.’(110) 악인들, 마귀는 내 앞에 올무를 놓고 내가 걸리기를 기다리고 있다. 죄를 짓고, 게으르고 무책임하게 함부로 행동할 때, 자칫 그 올무에 걸려서 큰 위험에 빠질 수 있다. 그럼에도불구하고 주의 말씀을 등불처럼 켜고 나가면 잘못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주의 말씀이 생명의 등불이라는 게 그 말씀 아니겠는가!

119편의 시인은 풍랑이 이는 바다와 같이 기막힌 인생의 절망과 위험을 느낀다. 사실 바다가 한시도 안심할 수 없듯이, 인생도 항상 위험이 내재하고 있다. 전쟁터에서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르듯이, 인생의 전쟁터에서 여러분의 인생도 그리 안심하고 있을 수는 없다는 것을 아셔야 한다. 그러므로 말씀이 우리를 위기에서 건지시도록 말씀의 방벽을 세워놓기 바란다. 여러분, 그릇된 안심으로 위험을 준비하지 않다가, 인생의 위기가 도둑처럼 닥칠 때 어찌하려고 그러시나!!

사람들은 어려울 때일수록 말씀을 보거나 들을 여유가 없다고 말한다. 그러나 우리는 위기에 주님의 말씀을 붙들어야 한다. 어떤 부인 집사는 모든 것이 다 문제가 없이 평안한데, 자신이 우울증에 빠지고 말았다. 남편은 군인 장교, 잘나가는 사람이고, 아이들은 어리지만 예쁘고 똑똑하게 자라는데, 문득 자기 마음을 잡을 수가 없었다. 사람과의 연락을 끊고 두문불출하기도 하고, 괜히 무언가를 해보려고 애를 써보기도 했으나 더 괴롭기만 했다. 그러다가 저녁시간에 교회에 나와 주의 말씀을 붙들기 시작했다. 말씀에 귀를 기울이고, 말씀에 재미를 붙이니, 말씀에 집중하는 만큼 천천히 자기 마음을 말씀이 치유하였다. 복잡한 생각과 얽힌 감정을 정리하고 평안하게 만들어 주었다. 위기에서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를 건져줄 것이다. 말씀과 기도로 이길 것이다. 말씀과 기도 앞에 어떤 위기도 힘을 잃을 것이다!!

 

3. 주의 말씀은 우리 마음에 즐거움이 된다. 시인은 거듭 주의 말씀이 우리에게 기쁨이 되며 즐거움을 준다고 고백한다. ‘주의 증거들로 내가 영원히 나의 기업을 삼았사오니 이는 내 마음의 즐거움이 됨이니이다.’(111) 앞에서, ‘주의 말씀의 맛이 내게 어찌 그리 단지요, 내 입에 꿀보다 더하니이다.’(103) ‘주의 법이 나의 즐거움이 되지 아니하였더면 내가 내 고난 중에 멸망하였으리이다.’(93)

TV에 나온 문소리라는 배우가 이런 얘기를 했다. 자기는 남편이 돈이 없는 것은 용서가 되는데 재미없는 것은 용서가 안 된다는 것이다. 어려울 때 웃음을 주고 재미있게 해주면 남편이 너무 사랑스럽다고 하더라. 요즈음 많은 사람들은 오히려 그 반대의 경험을 하고 있다. 인생이 지루하고 따분한 거다. 가족이나 친구들이 너무 사람을 답답하고 재미없게 만든다. “, 뛰쳐나가고 싶다!” 그런 말이 절로 나온다. 그래서 술을 마시고, 노름을 하고, 인터넷 게임을 하고, 동창들끼리 사고를 친다. 교제해서는 안 되는 사람과 만나다가 문제를 일으키고, 해서는 안 될 일, 가서는 안 될 곳에 가는 것은 대부분 인생이 재미없어 뭔가 재미있고 흥분되는 일을 만들어보려 하다가 일으키는 문제이다.

신앙생활도 더욱 지루하게 만드는 것 중에 하나인지도 모른다. 말씀이 지루하고 따분한 것이 된다. 예전에는 교회생활이 재미있고 익사이팅한 것이었다. 새롭고 흥분되는 일이었지! 여름성경학교 때 아이들이 소리쳐 노래하며 율동하고 뛰어다닐 때 보면 눈이 반짝반짝 빛났다. 요즘은 교회가 너무 재미없어졌다. 성경처럼 재미없고 설교처럼 지루한 게 어디 있을까,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어찌하면 말씀이 우리 마음에 즐거움이 될 수 있을까? 말씀은 원래 굉장히 즐거운 것이다. 이 말씀의 즐거움을 회복하여 신앙생활이 재미있어지게 하라!!

말씀으로 즐겁게 되려면 말씀에 대한 감수성이 깨어나야 한다. 대학 가서 처음에 쓴 커피를 사람들이 왜 먹는지 잘 몰랐다. 커피를 마시게 되면 설탕을 세 스푼 쯤 넣어 마셨다. 커피 맛이 아니라 설탕 맛으로 먹는 거였다. “아이, 선배님, 그게 뭐예요? 커피를 마시는 거예요, 조청을 마시는 거예요? 커피는 블랙으로 마셔야 제 맛이지요.” 그때부터 촌사람 취급받지 않으려고 쓴 커피를 블랙으로 마셔보았다. 그랬더니 커피 맛을 조금 알 것 같은 것이다. 미국 샌프란시스코에 있던 선배가 아침 식전에도 큰 잔으로 한 잔씩 블랙커피를 마시더라. 처음에는 잠이라도 깰까 하여 흉내를 내보았더니, 나중에는 커피 맛을 정말 알겠더라.

모름지기 성도들은 말씀의 맛을 알아야 한다. 커피 맛은 알면서 말씀의 달고 향기로운 맛을 몰라본다면 되겠나? 커피 맛은 몰라도 좋으나 말씀의 맛은 알아야 한다. 말씀은 정말 오묘하다. 말할 수 없는 기쁨과 평안을 그 속에서 발견할 수 있다. 말씀이 너무 좋아 여러 가지 번역, 여러 가지 판으로 집에다 두고 번갈아 가며 읽고, 세 가지 색연필로 각각 표를 해면서 아껴가며 읽었던 적도 있었다. 그때 삶이 의롭고 순수하면서도 즐거웠었다.

 

마음을 기울여

시인은 주의 의로운 규례를 지키기로 맹세하고 굳게 정하였나이다.’(106) 한다. , ‘내가 주의 율례를 길이 끝까지 행하려고 내 마음을 기울였나이다.’(112) 라고 다짐한다. ‘마음을 기울였다!’는 말씀을 기억하라! 중심이 주의 말씀 쪽으로 이미 기울어 있으면 생활 전체가 주의 말씀을 향하여 다가가게 된다.

말씀이 꿀보다 더 달고, 말씀처럼 기쁘고 즐거운 게 없다는 것을 알 때까지 마음을 기울여말씀과 가까이 하라! 말씀의 즐거움을 회복할 때까지 말씀을 붙들어야 한다. 말씀이 우리에게 주는 기쁨은 세상의 어떤 것보다도 완전하며 진실하다! 말씀의 즐거움을 알면 마음이 평안하고 든든해진다. 말씀이 즐거워지면 저절로 거룩하고 경건한 사람이 된다. 즐거워하는 걸 이길 수는 없다. 말씀이 즐거워지면 영혼이 잘됨같이 범사가 잘 된다. ‘내 인생에 말씀의 등불을 켭니다! 마음을 기울여(!) 주의 말씀을 읽고 배우고 새깁니다!’ 결단하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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