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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의 소원과 거룩한 생활 (창4:6-7) [2026년 2월 22일, 사순절 첫째주일]
2026-02-22 10:49:34
박신진 목사
조회수   3
설교일 2026-02-22
설교말씀 창4:6-7
설교제목 죄의 소원과 거룩한 생활

죄의 소원과 거룩한 생활

4:6-7

2026222[사순절 첫째주일]

 

우리는 지난주간 수요일을 재의 수요일로 지키면서 이마에 재를 바르고 우리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을 가졌다.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지니라!’는 선언 앞에 아멘!” 하며 우리가 죄인인 것과 우리 인생이 유한한 것을 고백하였다. 그러니까 218일 성회수요일을 시작으로 주일까지 포함하면 6주간에 나흘이 더 들어가는 46일의 기간이 사순절 기간이 된다. 올해 부활절이 45일 주일이니까, 우리는 그날까지 주일 여섯 번을 뺀 40일을 사순절로 지킨다.

40일을 은혜롭게 보냄으로 그리스도와 연합하기 위하여 우리는 말씀과 기도에 집중한다. 불순종으로 하나님의 뜻에서 벗어났던 지난날을 회개하며 더욱 거룩해지도록 노력한다. 풍요와 탐욕의 세상에서 이 세대를 본받지 않고 거슬러 거룩한 길로 갈 수 있도록, 절제와 금욕을 훈련하고, 어려운 이웃과 나눔으로 그리스도의 발자취를 따라가는 삶을 실천한다. 그리하여 온전히 주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믿음의 길을 걷고자 하는 것이다.

사순절을 온전히 지키면 빛나는 부활절의 은혜를 온전히 누릴 것이다. 우리가 사순절을 잘 지키자고 권면하는 것은 성도들을 고달프고 힘들게 하여 종교의 노예를 만들기 위함이 아니라, 바른 믿음을 생활 속에 자리잡게 함으로 그리스도를 닮아가서, 진정한 구원의 기쁨과 은혜를 누리게 하기 위함이다. 사순절을 절제와 금욕의 기간으로 주의 발자취를 따라가노라면, 부활생명이 가득차서 우리 삶에 평안이 임할 것이다! 불안, 우울증, 점점 커져가는 두려움, 염려와 근심과 많은 헛된 생각들이 사라지고 그리스도의 보혈로 정결한 영혼이 될 것이다! 이웃 간에 미워하고 경계하고 어색했던 관계가 지나가고 따뜻한 사랑과 관심과 용납이 흐르는 좋은 관계가 회복될 것이다!

 

마음이 어떠냐?”

창세기 4장은 인류 최초의 예배 이야기이자 최초의 갈등 이야기다. 가인과 아벨은 모두 하나님께 제물을 드렸다. 겉으로 보기에는 둘 다 예배자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아벨과 그의 제물은 받으셨고, 가인과 그의 제물은 받지 않으셨다. 이 사건 앞에서 가인의 마음은 급격히 흔들렸다. 성경은 가인이 몹시 분하여 안색이 변하였다”(5)고 말한다. 그때 하나님께서 가인에게 찾아오셔서 이렇게 물으신다. “네가 분하여 함은 어찌 됨이냐? 네 안색이 변함은 어찌 됨이냐?”

여기서 우리는 매우 중요한 신앙의 장면을 만난다. 하나님은 즉시 가인을 정죄하지 않으신다. 벌부터 내리지 않으셨다. 먼저 질문하신다. 이 질문은 심문이 아니라 초대이다. “지금 네 마음에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느냐?”라는 부드럽고도 깊은 물음이다. 신앙인은 자기성찰을 할 줄 아는 사람이다. 자기를 돌아보고 객관화할 줄 아는 사람이 깊은 믿음에 이르게 된다. 거룩한 생활은 언제나 여기서 시작된다. 외적인 거룩한 행동을 몇 가지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내 마음의 상태를 직면하는 것에서 시작된다. 하나님은 가인의 제사보다 가인의 마음을 보셨고, 가인의 행동보다 가인의 내면을 먼저 다루고자 하셨다.

우리의 신앙도 마찬가지이다. 우리는 예배하고 봉사하며 헌신한다. 그러나 하나님은 늘 우리에게 물으신다. “지금 네 마음은 어떠하냐?” 거룩은 외형의 단정함보다 마음의 진실함에서 출발하기 때문이다. 본문은 이와 비슷한 일이 태초에 있었음을 보여준다. 첫 사람 아담과 하와에게서 태어난 첫 자식들이 바로 가인과 아벨이었는데, 가인이 아벨을 죽이는 비극이 일어났다. 본문은 형이 동생을 죽이는 참극이 일어나기 바로 전, 그 위험한 마음 상태를 살피시고 하나님께서 가인에게 경고하시는 장면이다. 이런 일이 일어나다니 하나님의 인류 창조는 실패했는가? 하나님이 창조하신 첫 가정은 실패한 것인가! 그러나 사실은 이것이 오고 오는 세대의 모든 인간에게 죄의 현실을 경고해주시는 강력한 역사 교육이다.

 

죄가 문에 엎드려 있다.”

하나님은 가인에게 매우 두려우면서도 중요한 말씀을 하신다. “죄가 문에 엎드려 있느니라. 죄가 너를 원하나 너는 죄를 다스릴지니라.” 이 말씀은 죄에 대한 가장 현실적인 묘사이다. 성경은 죄를 추상적인 개념으로 말하지 않는다. 죄는 인격처럼 묘사된다. “너를 원한다.” 죄에는 소원이 있다. 죄도 갈망한다. 죄는 가인의 마음을 탐한다. 여기서 문에 엎드려 있다는 표현은, 마치 맹수가 먹잇감을 노리며 웅크리고 있는 모습을 떠올리게 한다. 죄는 멀리 있지 않다. 이미 문 앞에 와 있다. 그러나 아직 문을 넘지는 않았다. 이 지점이 매우 중요하다.

죄는 언제나 기회를 기다린다. 분노, 시기, 열등감, 억울함, 비교의식, 인정받고 싶은 욕망. 이런 감정들은 그 자체로 이미 죄라고 단정할 수는 없지만, 죄가 들어올 수 있는 문이 된다. 죄는 그 문 앞에서 조용히, 그러나 집요하게 기다린다. 거룩한 생활이란 죄가 존재하지 않는 삶이 아니다. 죄의 유혹이 전혀 없는 삶도 아니다. 거룩한 생활이란 죄가 문 앞에 와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문을 열지 않는 삶이다.

많은 신앙의 실패는 큰 사건에서 시작되지 않는다. 대부분은 마음속에서 조용히 자라는 감정 하나에서 시작된다. 가인의 분노는 단번에 살인으로 이어진 것이 아니다. 먼저 안색이 변했고, 마음이 상했고, 비교했고, 억울해했고, 그 감정을 하나님 앞에서 풀지 않았다. 그때 죄는 문 앞에서 힘을 얻는다.

 

죄가 너를 원하나

7절 하반절 말씀을 보라. ‘죄가 너를 원하나 너는 죄를 다스릴지니라.’ 죄가 너를 원하다니! 히브리어 원문은 이것을 해석하기가 조금 난해하다. 그래서 이전 번역은 이렇게 되어 있다. ‘죄의 소원은 네게 있으나 너는 죄를 다스릴지니라.’ 죄의 소원이라는 말은 또 무슨 뜻인가? 여기서 죄의 소원이란, 죄를 짓고자 하는 욕망을 말한다. 지금 가인의 마음속에는 죄의 욕망이 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것을 다스리라고 가인에게 명령하신다. 가인은 인류 최초의 아들로서 이 죄를 다스려야만 했다. 그러나 그는 실패했고 결국 돌이킬 수 없는 범죄자로 기록되었으며, 축복의 반열에서 제외되고 말았다.

하나님은 가인에게 경고하신다. ‘네가 분하여 함은 어찌 됨이며 안색이 변함은 어찌 됨이냐? 네가 선을 행하지 아니하면 죄가 문에 엎드려 있느니라.’(6-7절상) 죄는 마치 맹수처럼 문에서 노리고 있다. 지금 마음속에 있는 분노가 있다, 위험한 욕망이 들어있다, 잘못된 호기심이 들어있다. 이것들, 분노, 욕망, 호기심은 죄짓게 할 기회를 찾고 있으며, 그 기회가 주어지기만 하면 덤벼들어서 죄를 짓게 하고야 만다. 이것은 가인 한 사람의 문제가 아니다. 누구나 죄의 소원을 마음속에 가지고 있어서 이것을 다스리지 못하면, 죄짓게 되고 잘못 살게 된다.

왜 그렇게 하지 말라는 것은 하고 싶은지! 인류가 아담의 후예라서 그럴까? 금지한 것은 더 먹고 싶고 만지고 싶고 가지고 싶다. 먹지 말라는 것은 더 먹고 싶고, 하지 말라는 일은 더 하고 싶으며, 기회만 있으면 죄짓는 일에 동참하려는 호기심으로 가득한 것이 인간이다. 아이들만 그런가? 어른들도 그렇다. 남자들만 그런가? 여자들도 그렇더라.

지난 주간에 많은 정치 경제 스포츠 소식 가운데 눈에 띠는 소식이 있었다. 어떤 20대 여자가 남자와 모텔에 같이 가서 약을 탄 음료를 먹여 죽음에 이르게 했는데, 이것이 한 건이 아니라 두 건이며, 어쩌면 더 있을지도 모든다는 황당한 소식이었다. 이것을 보면 여자가 저지른 살인의 죄이지만, 남자가 유혹에 빠져 적극적으로 호응하여 생긴 일인 것을 알 수 있다. 죄의 소원이 있어, 거기에 함부로 호응하면 태산같이 깊고 큰 죄에 빠져버린다.

가인은 특별히 악한 사람이 아니다. 우리 모두에게 가인의 일면이 다 있다. 죄의 소원이 있다. 가인은 하나님에게서 아벨처럼 인정받지 못했다는 것을 받아들일 수 없어서 시기심 때문에 분노가 치솟아 죄짓고 싶어 했다. 그러나 저주의 아들 가인과 축복의 자녀들이 갈라지는 것은 어떻게 죄의 소원을 다스리느냐에 달려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축복을 지키려면, 죄의 소원을 다스려야 한다. 본래 지음받은 거룩한 하나님의 형상을 잃지 않고 유지하려면, 죄의 소원을 물리쳐야 한다. 한 번 뿐인 우리 인생을 행복하고 바르게 살려면, 매일 마음속에 일어나는 악한 죄의 소원을 다스리지 않으면 안 된다. 죄의 소원을 다스림으로 실수하지 않고 범죄 하지 않고 거룩한 생활을 하는 성도들이 되기 바란다.

 

너는 죄를 다스릴지니라

하나님의 말씀은 경고로 끝나지 않는다. 하나님은 가인에게 말씀하신다. “죄가 너를 원하나 너는 죄를 다스릴지니라.” 이 말씀은 단순한 도덕적 요구가 아니다. 하나님은 가인에게 너는 이미 실패한 존재라고 말하지 않으신다. 오히려 너는 죄의 노예가 될 수밖에 없는 존재가 아니다라고 선언하신다. 이것은 은혜의 말씀이다. 죄가 강력하다는 사실과, 인간에게 선택의 가능성이 주어진다는 사실이 함께 주어진다. 하나님은 가인을 로봇처럼 조종하지 않으신다. 가인을 무력한 피해자로도 보지 않으신다. 하나님은 가인을 선택할 수 있는, 성숙한 존재로 대하신다.

거룩한 생활이란, 죄없는 완벽한 생활이 아니라, 죄를 다스리는 싸움을 포기하지 않는 삶이다. 죄는 우리를 원한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에게 다스릴 수 있다고 말씀하신다. 여기서 다스리다는 말은 단번에 정복한다는 뜻이 아니다. 지속적인 경계, 반복적인 선택, 하나님께 의지하는 태도를 포함한다. 거룩은 단번에 완성되는 업적이 아니라, 매일 반복되는 내적 싸움이요, 방향성이다.

거룩한 생활은 감정을 하나님께 가져오는 삶이다. 가인의 비극은 분노 자체가 아니라, 그 분노를 하나님께 맡기지 않은 것에 있다. 하나님은 이미 가인에게 말을 걸고 계셨다. “왜 분노하느냐?” 그 질문에 가인이 자신의 마음을 쏟아놓았다면 역사는 달라졌을지도 모른다. 거룩한 사람은 분노하지 않는 사람이 아니다. 시기심이 없는 사람도 아니다. 거룩한 사람은 자기 안에서 일어나는 모든 감정을 하나님께 가져가는 사람이다. 감정을 숨기지 않고, 미화하지 않고, 폭발시키지도 않고, 하나님 앞에 그대로 내려놓는 사람이다.

우리는 종종 신앙인답게 보이기 위해 감정을 억누르거나 포장한다. 그러나 억눌린 감정은 사라지지 않는다. 문 앞에 엎드린 죄에게 먹잇감이 된다. 하나님은 우리의 감정을 두려워하지 않으신다. 오히려 그 감정을 통해 우리를 가르치신다. 거룩한 생활은 감정 없는 삶이 아니라, 감정이 하나님께 인도함을 받고 길들여지는 삶이다.

 

죄를 다스리려면?

1. 죄 짓고 싶은 욕망을 어떻게 다스려 거룩한 생활을 하려면 어떻게 할 것인가? 하나님 앞에 나아가야 한다. 사람들은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것을 가장 무기력한 방법으로 여긴다. 자기가 할 수 있는 것을 다 해보다가 안 될 때 비로소 하나님께 나아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마음을 바꿀 수 있는 분은 하나님밖에 없다.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것이 가장 적극적인 해결방법이며 유일한 방법이다. 내 마음을 하나님 앞에서 바꾸는 것, 이것이 중요하다. 마음속에서 모든 일이 일어난다. 그리고 마음을 바꾸려면 하나님 앞에 나아가야 한다.

원주 있을 때 부흥회 강사로 오렸던 한 목사님은 어려서 고생을 많이 하셨다. 청소년 시절에는 안 해 본 것이 없을 정도였다. 그러다가 17살에 서울에 올라와서 혼자 살면서 힘들 때마다 그 어려움을 이기고 나갔는데, 여러 번 넘어질 뻔하였다. 그때마다 성전을 찾아가 밤을 새워 기도하며 하나님의 사랑으로 역경을 극복했다고 한다.

죄의 소원이 일어날 때, 인생의 고빗길을 맞을 때 하나님 앞에 나아가라! 그때가 바로 하나님께 나아갈 때이다. 기도로 나아가라! 정성과 믿음을 기우리는 예배로 나아가라! 그때 모든 것이 달라질 것이다. 전에는 모두 환경 탓이요 당신 탓이요 돈 때문이었는데, 하나님 앞에 나아와서 마음이 바뀌고 보니, 세상이 달라진다. 내가 조금만 바뀌면, 내가 조금만 웃어주면 별 문제가 아닌 것을 알게 된다.

 

2. 죄 짓고 싶은 욕망을 다스려 거룩한 생활을 하려면, 말씀을 붙들어야 한다. 하나님은 가인에게 명령하셨다. 하나님의 말씀은, 맹수처럼 죄가 문에 도사리고 있으니, 가인은 죄의 소원을 다스려야 한다는 것이었다. 하나님 말씀대로 굳게 붙들고 가인이 죄의 소원을 다스렸다면 얼마나 그에게 복이 되었을까! 그러나 가인은 그렇지 못하였고, 이 치명적인 실수가 우리 모두에게 강력한 경고와 교훈이 되고 있다.

복 있는 사람은 악인들의 꾀를 따르지 아니하며 죄인들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도다.’(1:1-2) 그렇다! 말씀을 묵상하고 그 말씀을 생활 속에 적용하며, 그 말씀대로 살고자 최선을 다하는 사람, 들은 말씀, 읽은 말씀, 깨달은 말씀들을 마음 비에 꼭꼭 새겨 절대 흘려버리지 않고 인생의 등불로 삼는 사람, 그런 사람은 죄의 소원을 이기고 거룩한 생활을 하는 복된 사람이다!

죄의 유혹과 위험이 다가올 때, 말씀을 붙들고 나가라. 틀림없이 이기게 될 것이다. 화가 날 때, 실망했을 때, 허무할 때, 낙심할 때, 잘못된 유혹에 빠지려고 할 때 말씀을 묵상하라. 말씀을 굳게 붙들라. 그때 죄를 다스리고 거룩한 생활을 하는 축복의 백성이 될 것이다.

 

3. 죄 짓고 싶은 욕망을 다스려 거룩한 생활을 하려면, 선을 행할 결심을 해야 한다. 본문에서 보여주는 말씀이다! ‘네가 선을 행하면 어찌 낯을 들지 못하겠느냐?’ 지금 가인은 하나님께 삐쳐서 똑바로 쳐다보지도 않는다. 낯을 들지 않고 눈을 내리 깔고 있다. ‘하나님, 이러실 수 있습니까? 내가 아벨보다 못한 게 무엇이며, 내 제사를 왜 아벨의 제사와는 차별하여 받으십니까?’ 이런 원망과 분노의 감정이 가득하다. 이에 대하여 하나님은 선을 행하라고 말씀하신다. 이 말씀은 무슨 뜻일까?

여러분, 컵에 무엇인가가 차 있으면 다른 것을 또 담을 수 없다. 그릇에 맛있는 찌개가 담겨 있으면 거기다 숭늉을 담을 수 없다. 이처럼 우리 인격의 그릇에는 무엇인가가 담겨야 한다. 아무것도 담기지 않은 채 멍하니 있으면 틀림없이 죄가 담기게 된다. 방향 없는 마음, 의지 없는 생활에는 필연적으로 악이 들어오게 된다. 선행은 이미 거룩한 마음과 인격을 가진 사람들이 그 결과로 행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죄의 욕망이 가득한 생활 속에서 자기를 지키고 거룩한 생활을 하려는 사람이 의도적으로 행하는 일이 되어야 한다. 죄지을 욕망이 일어날 때, 하나님께 불평이 생길 때, 사탄이 자꾸 역사할 때, 이름 없이 빛도 없이 선을 행하라!

 

 

죄가 너를 원하나 너는 죄를 다스릴지니라!’ 죄가 문제가 아니다, 다스리고 물리치면 된다!! 죄를 이기는 거룩한 생활은 세상과 단절된 삶이 아니다. 오히려 세상 가운데서 마음의 문을 지키는 삶이다. 매 순간 하나님 앞으로 나아가라, 말씀을 묵상하라, 선을 행하라! 가인은 하나님의 경고를 무시했고, 결국 문을 열어주고 말았다. 죄는 우리를 원한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를 더 원하신다. 하나님은 우리를 향해 말씀하신다. “너는 죄를 다스릴지니라.” 죄를 다스리면 여러분 삶에 거룩과 평안, 형통함과 영생이 있을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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