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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부터는 (고후5:14-19) [2026년 3월 8일, 사순절 셋째주일]
2026-03-07 14:22:30
박신진 목사
조회수   10
설교일 2026-03-08
설교말씀 고후5:14-19
설교제목 이제부터는

이제부터는

고후5:14-19

202638[사순절 셋째주일]

 

이해인 시인의 사순절시가 있다. <또다시 당신 앞에> 라는 시인데, 이런 구절이 있다. ‘살아 있는 거울 앞에 서듯/ 당신 앞에 서면/ 얼룩진 얼굴의 내가 보입니다// “죄송합니다라는 나의 말도/ 어느새 낡은 구두 뒷축처럼 닳고 닳아/ 자꾸 되풀이할 염치도 없지만/ 아직도 이 말 없이는/ 당신께 나아갈 수 없음을 고백하오니/ 용서하소서 이 죄인// 여전히 믿음이 부족했고/ 다급할 때만 당신을 불렀음을/ 여전히 게으르고 냉담했고/ 기분에 따라 행동했음을/ 여전히 나에겐 관대했고/ 이웃에게 인색했음을// 여전히 불평과 편견이 심했고/ 쉽게 남을 속단하고 미워했음을... 용서하소서 주여// (중략) 재의 수요일 아침/ 사제가 얹어 주신 이마 위의 재처럼/ 차디찬 일상의 회색빛 근심들을/ 이고 사는 나// (중략).주여 내 마음을 깨끗이 만드시고/ 내 안의 굳센 정신을 새로하소서.’

사순절을 어떻게 지내야 하는지 잘 보여주는 시라고 생각된다. 오늘은 사순절 셋째주일이요, 봄의 둘째 주일이다. 낮에는 낮에와 같이 행하라는 로마 13장 말씀과 같이 사순절을 사순절처럼 살아가는 성도가 되시기 바란다. <> 하면 봄꽃과 푸른 잎들, 화창하고 따뜻한 날씨만을 낭만적으로 생각하는 이들이 많은데, 사실은 봄에는 생명이 움트기 위하여 죽을 정도로 힘을 들여 자기를 열고 깨어나는 새싹들의 노력이 이뤄지는 계절이다. 봄에는 이겨내야 할 추운 겨울바람이 남아있고, 언 땅을 뚫고 고개를 내미는 새싹의 치열한 자기극복이 있다. 봄은 고통스럽게 자기를 깨뜨리고 나가는 자기 부인의 계절이요, 안에서부터의 변화가 이뤄지는 내적 변화의 계절이라 하겠다.

 

중학교 때 무지하게 무서운 음악선생님이 계셨다. 음악 시간이 공포의 시간이었다. 화성학 같은 어려운 음악이론을 가르치시면서, 아이들이 잘 모르면 중학생이 그런 것도 모르냐면서 무조건 때렸다. 음악이 있는 날에는 아이들이 쉬는 시간에도 음악공부 하느라고 시끌시끌했다. 음악 시간을 알리는 종이 울리면 아이들은 바짝 얼어있었다. 나는 음악을 좋아하는 편인데도 그런 음악시간이 싫었다. 그러나 선생님한테 눌려 공포 속에 보내는 음악시간이라 해도, 끝나는 종이 딩동댕동!” 울리면 선생님은 두말 않고 조용히 물러갔다. 아이들은 해방감을 느끼며 좋아했다.

사람이 시간을 가지고 맘대로 쓰는 것 같지만, 사실 시간이 사람을 좌지우지하며 부린다. 어두워진 밤은 우리를 잠자게 하고, 밝아오는 아침은 자리를 털고 일어나 일하게 한다. 점심시간에는 밥을 먹게 하고, 약속 시간이 되면 사람을 만나게 한다. 봄이 되면 겨울의 묵은 자리를 떨치고 학생들은 새학년이 되어 공부하러 학교에 가고, 여름에는 화창한 야외에서 주로 생활하다가, 가을이 되면 잎을 떨구고 한해의 열매를 찾아본다. 약속된 주일 예배 시간이 되면 교인들은 거룩한 자리, 예배로 나온다. 시간은 우리로 하여금 어린 티를 벗고 어른의 일을 하게 한다. 시간은 삶을 움직인다. 우리라는 존재는 시간 위에서 움직인다.

시간이 뭔지, 아이들이 고등학교를 졸업하면 다음 주부터 사복을 입고 여자아이들은 화장을 하고 나온다. 대학을 졸업하면 그때부터 누가 뭐라지 않는데도 부모에게 용돈 타는 것을 부끄러워한다. 새해가 되고, 봄이 되어 학년이 올라가면, 학생들은 거기에 맞추어 한 등급 높은 삶을 살아간다. 초등학교에 들어간 아이들을 보면 그렇게 의젓할 수 없다. “학교가 좋아, 유치원이 좋아?” 물어보면 뭘 그런 걸 물어보냐는 듯이, “아이, 학교가 좋아요!” 한다. 놀란 토끼눈을 하고 선생님 말씀에 귀를 쫑긋 기울이던 1학년들이, 2학년이 되면 그렇게 여유가 있고 자기 목소리를 내는 것을 보면 웃지 않을 수 없다.

 

바울은 새로운 시간을 말한다. 삶의 시간이 바뀌었다고 선언한다. “그러므로 우리가 이제부터는 어떤 사람도 육신을 따라 알지 아니하노라. 비록 우리가 그리스도도 육신을 따라 알았으나 이제부터는 그같이 알지 아니하노라.”(16) 입대시간이 되면 누구나 군인이 되어버리나, 제대시간이 되면 예외 없이 민간인의 신분으로 달라진다. 모든 것이 시간에 따라 달라진 것이다. 결혼식 전날 신부는 잠을 설친다. 이제는 되돌릴 수 없음을 알기 때문이다.

성경은 그것을 <이제부터는>이라고 콕 집어 말한다. <From Now!> 그리스도가 모든 사람을 위하여 대신 죽으셨기 때문에 이제부터 그분을 위해 사는 것이 마땅하다고 한다! <이제부터는> 어떤 사람도 육신을 따라 알지 않겠다고 하면서 바울은 이렇게 선포한다.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17) 이제부터는 이전과 같지 않다! 이제부터는 다르다! 그리스도 때문에 옛 것은 지나갔고 모든 것이 새로워졌다. 왜 이제부터는 달라졌을까? 무엇이 이제부터 달라진 새 생활을 하게 하는가?

죽음이다. 그리스도의 죽음, 그 안에 있는 우리의 죽음 때문에 이제부터 우리가 달라진다는 것이다. “우리가 생각하건대 한 사람이 모든 사람을 위하여 죽었은즉 모든 사람이 죽은 것이라.”(14) 왜 어제도 아니고, 내일도 아니고, 이제부터 모든 것이 달라지는가? 왜 내가 새로운 피조물이 되는가? 그것은 예수께서 우리를 대신하여 죽으신 것을 이제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리스도께서 죄에 대하여 죽으셨고, 우리도 함께 죽었기 때문에, 새로 살게 되었다.

교우가 갑자기 죽으면 사랑했던 사람들은 대단히 충격을 받는다. 거의 몇 달을 공황상태에 빠져 멍하니 정신없이 지내는 사람도 보았다. 희로애락을 같이 했던 가족은 그 죽음이 결코 남의 죽음이 아니다. 그 때문에 내가 달라진다. 그리스도의 죽음이 우리와 무슨 상관이 있나? 죄를 대신한 그리스도의 죽음은 곧 죄에 대한 나의 죽음이기도 하다.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도 옛사람이 죽었다! 그리스도의 죽음은 마치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처럼 우리를 깨어나게 하고 새롭게 살도록 부른다. 이제는 이렇게 살 수 없다!!

그가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으심은 살아있는 자들로 하여금 다시는 그들 자신을 위하여 살지 않고 오직 그를 대신하여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신 이를 위하여 살게 하려 함이라!”(15) 죽음은 이전 것을 뒤흔들면서 모든 것을 바꾸어 놓는다. 그동안 우리는 자기 입장에서 판단하고 감정표현하며 다투며 살아왔다. 자기를 지키는 데 급급하였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 죽으심으로, 그리스도와 함께 우리의 옛 자아가 죽었다. 이제부터는 우리도 그리스도를 위하여 살 수 있게 되었다.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는 이전에 알지 못하던 시간으로 초대된다. 이제는 새 날이 되었고 새 때가 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니 새 생활을 하라! 그런데 새 생활이란 용서하는 생활이요 화해하는 생활이다. 바울 입장에서는 이 말씀이 엄청나게 힘든 자기 경험에서 나온 말씀이었다. 이제부터는 육신을 따라 알지 아니한다!

에베소에서 바울은 고린도교회의 소식을 듣는다. 일명 큰 사도라는 이들이 교회에 들어와 이적과 은사를 행하고, 신령한 일들을 가르치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게다가 이들의 설교는 힘이 있고 능력이 있었다고 하였다. 교인들은 이들을 보면서 하나님 같은 사람들로 부르면서 따르고 있었다. 바울은 급히 고린도로 향했다. 그러나 바울은 거기서 충격적인 수모를 당한다. 그를 대하는 교인들의 태도와 시선이 전 같지 않고, 어떤 사람들은 바울을 향해 능력도 부족하고 신령하지도 않으며 설교도 형편없다고 공개적으로 모욕했다. 바울은 심한 충격에 깊은 상처를 받고 에베소로 돌아온다.(그말씀 10-2, p.202)

그는 깊이 번민하였다. 왜냐하면 그들이 추종하는 사도들은 사실 위험한 가르침을 전하는 이단들과 불량한 지도자들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자신의 불편한 마음과 책망을 담은 편지를 보냈다. 그 편지가 마지막 편지가 될지도 몰랐다. 그런데 디도를 통해 의외의 반가운 소식을 듣게 된다. 그것은 자신이 보낸 편지를 읽고 고린도교인들이 회개했다는 소식이다. 바울은 다시 펜을 들어 화해의 소식을 전한다. 이것이 고린도후서요, 이 본문이다.

그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를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고 또 우리에게 화목하게 하는 직분을 주셨으니 곧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 계시사 세상을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며 그들의 죄를 그들에게 돌리지 아니하시고 화목하게 하는 말씀을 우리에게 부탁하셨느니라.”(18-19)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다툼과 미움의 시간이 지나고, 화해와 기쁨의 시간이 왔다는 것이다. 십자가 위에서 우리의 옛사람이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음을 인정하는 사람은 그리스도와 함께 용서와 화해의 삶을 사는, 새로운 시간으로 나온 사람이다.

이전에 하던 일을 하지 않고, 이전에 행하지 않던 일을 한다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죽으심은 서로 싸우던 시간을 지나고 서로 사랑하는 새 시간을 시작하게 한다. 자신을 위하여 타인을 비난하며, 불신하고 억압하고 원망하고 불평하던 시간은 지나갔다. 이제 우리와 화목하신 그리스도 때문에 타인을 위해 자신을 낮추고 비워 세상을 화해하게 하는 자로 행동할 시간이 왔다. ‘보라! 지금은 은혜받을 만한 때요, 보라! 지금은 구원의 날이로다!’(5:17)

화목하라! 화해하라! 시비 걸지 말고 용서하라! 이제는 원망불평하지 말고 감사할 때요, 평가하고 미워할 때가 아니고 일단 용납하고 사랑할 때이다. 무조건 사랑하고, 품어주라! 그리스도께서 죄인 된 우리를 살리시려 우리를 대신하여 죽으셨으니, 우리도 기꺼이 용서하고 용납해주어야 한다. 그리스도가 우리를 대신하여 십자가 위에서 죽으실 때 우리도 옛 자아가 죽었기 때문이다!

 

필립 얀시의 놀라운 하나님의 은혜’(IVP, 1999)에 이런 이야기가 있다. 1880년대 노르웨이의 외딴 시골 교회를 배경으로 한 아이작 디네센의 <바베트의 만찬>이라는 소설이 있다. 노르웨이 외딴 시골에 루터교 금욕주의 신자들이 모여사는 동네가 있다. 그들은 속된 세상을 등지고 근검절약하며 경건한 삶을 추구하는 사람들이었다. 주일이면 온 동네 사람들이 교회에 모여 천국을 사모하며 예배드린다. 나이드신 목사님에게 마르틴느와 필리파라는 두 딸이 있었다. 그 중 동생인 필리파는 마을로 요양 온 프랑스 오페라 가수인 파팽에게 청혼을 받았다. 그러나 마을의 금욕적인 분위기 속에서 필리파는 쾌락에 물드는 것 같아서 파팽과 헤어진다.

그후 15년이 흐르고, 아버지는 돌아가신다. 목사님이 돌아가신 후에 교인들 사이에 관계가 극도로 나빠진다. 사업상의 문제로 앙심을 품게 되고, 30년 동안 숨겨온 불륜이 드러나기도 하고, 10년 넘게 말을 안하고 틀어진 노인들도 있었다. 이런 시간들 속에서 교인들 대부분이 떠나고, 남은 교인은 얼마 되지 않았다. 예배도 찬양도 생기가 없고 그나마 돌아가신 목사님 두 딸이 남아서 교회의 명맥을 근근이 이어간다.

그러던 어느 날 밤 한 여인이 만신창이가 된 채로 마르틴느와 필리파를 찾아온다. 그 여인의 이름은 바베트. 그 여인은 프랑스 오페라 가수인 파팽의 메모를 가지고 왔는데, 그 메모엔 바베트는 요리할 줄 압니다.”라고만 쓰여 있었다. 프랑스 내전 통에 남편과 아이들을 잃고 자신마저 목숨이 위태로워 피신해야 했던 차에 시골 외딴 마을의 필리파라면 그녀를 거두어 줄 수 있겠다 싶어 옛 청혼자 파팽이 보낸 것이었다. 이렇게 해서 바베트는 목사의 두 딸 집에서 집안일과 교회 일을 도우며 산다. 그렇게 12년이 지난다.

그러다 바베트가 어느 날 프랑스에서 온 편지를 받고 좋아한다. 그 동안 프랑스에 있는 친구를 통하여 복권을 샀는데, 이번에 만 프랑이 당첨되었다는 것이다. 마르틴느와 필리파는 바베트가 곧 프랑스로 떠날 것이라 짐작한다. 한편 교회는 고인이 된 목사님의 생신 100회째 추도예배 준비로 어수선하다. 바베트는 목사님 추도예배의 저녁 식사를 직접 준비할 수 있게 해달라고 부탁한다. 12년 만에 처음하는 부탁이라 마르틴느와 필리파는 거절하지 못한다.

바베트가 주문한 음식 재료들이 몇 주에 걸쳐 배로 운송된다. 마을 사람들은 바베트의 부엌으로 옮겨가는 음식 재료들을 보면서 경악을 금치 못한다. 자신들이 입에도 대지 않던 샴페인부터 시작해서, 소머리, 꿩고기, 거북이, 바다 생물 들 등. 사람들은 삐죽거리면서 혀는 찬송과 감사하는 데 쓰라고 있는 것이지, 외국산 음식이나 탐하라고 있는 게 아니다.”라고 말하면서 못마땅해 했다.

1215, 추도일이 되었다. 두 자매는 그날 만찬에 아버지 생전에 친분이 있던 로벤헬름 장군이 참석한다는 소식에 기뻐한다. 식사가 시작되자 마을 사람들은 약속대로 침묵을 지킨다. 말을 하는 사람은 장군 뿐이다. 그는 음식과 음료와 와인을 먹으면서 감탄한다. 교인들은 여전히 그 진귀한 요리들을 아무 말 없이 무표정으로 먹는다. 그런데 시간이 흐르면서 저녁 만찬은 점점 냉랭한 교인들의 마음을 풀어놓기 시작한다.

분위기가 점점 훈훈해지면서 교인들은 목사님의 생전 이야기도 꺼낸다. 작년 유난히 추웠던 크리스마스 이야기도 꺼낸다. 그리고 사업 계약 때 사기를 쳤던 남자 성도는 끝내 상대에게 잘못을 빌었고, 원수같이 지내던 두 노파도 말문이 터졌다. 한 할머니가 트림을 하자 옆자리 할아버지는 대뜸 할렐루야!”로 받아주었다. 마지막 바베트가 메추라기 새끼 요리를 내오자 장군은 이 요리는 유럽에서도 딱 한 군데, 한 때 여자 주방장의 명성이 높았던 파리에서 유명한 카페 앙글레라는 식당에서밖에 보지 못했다면서 감탄한다.

식사가 끝나고, 열한 명 교회 노인들은 교회 밖으로 나가 우물가에 둘러 모인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서로 손을 잡고 평소 함께 부르던 찬송을 힘차게 부른다. 이 광경을 보면서 두 자매는 감사의 말을 전한다. 그러자 바베트가 대답한다. “제가 한때 파리에 있는 카페 앙글레의 주방장이었답니다.” 그날의 만찬에 바베트는 복권 당첨금을 다 쏟아부었고, 그 정성과 사랑의 힘으로 시골 교회는 화해의 새 시대를 열게 되었다.

 

우리에게도 노르웨이 외딴 마을에서 일어났던 일이 일어날 수 없을까? <이제부터는> 용서와 화해를 새 시기를 살아가라고 바울은 말한다. 새봄 사순절기에, 여러분에게 권면한다! 봄에 이불 먼저 털어내듯이, 묵은 원망과 섭섭함을 털어내고 화해하라! 여러분이 지금까지는 혹 까칠한 성격이었더라도 <이제부터는> 그리스도와 함께 따뜻하고 다정한 사람으로 새로 시작하라! 화목한 가정, 서로 교제하는 즐거운 교회를 온전히 이루기 위해 나부터 새로운 마음과 생활로 나서자.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 계시사 세상을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며, 그들의 죄를 그들에게 돌리지 아니하시고 화목하게 하는 말씀을 우리에게 부탁하셨느니라.”(1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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