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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에 찾아온 사람 (요3:1-15) [2026년 3월 1일,삼일절기념/ 사순절 둘째주일]
2026-03-01 16:13:24
박신진 목사
조회수   2
설교일 2026-03-01
설교말씀 요3:1-15
설교제목 밤에 찾아온 사람

밤에 찾아온 사람

3:115

202631[삼일절기념/ 사순절 둘째주일]

 

여러분, 최근에 밤을 경험해 보았는가? 대부분의 사람들은 밤에 집에 등불을 켜놓고 쉬거나, 잠을 잔다. 요즈음은 독서보다 TV시청이나 SNS 콘텐츠를 보느라고 시간을 보내는 사람들이 많다. 우리 부부도 저녁 시간에 인도네시아에 있는 딸 가족과 카톡이 연결되면 30, 한 시간이 금방 지나간다. 그러다보니 사람들에게 밤은 머무는 시간이 아니고 지나가는 시간이 된다. 그래서 밤은 경험하기보다는 스쳐지나간다고 해야 하겠다.

그러다가 밤에 잠들지 못하고 깨어있게 된다거나 무슨 사고라도 당해서 피곤하고 긴 밤을 보내야 할 때는 밤이 얼마나 긴지, 밤이 얼마나 무섭고 외로운지, 밤이 얼마나 우리를 위기에 빠뜨리는지 알게 된다. 사람은 밤을 잘 지내야 낮도 잘 살 수 있다. 밤잠을 설치면 피곤하고 몸과 마음이 약해져서 해야 할 일도 빠뜨리고 사람들 앞에서 허둥대며 낮잠이라도 자야 정신을 차릴 수가 있다. 갱년기의 여자들이나 노인들이 어려워하는 것 중에 하나가 잠을 깊이 자지 못하고 자꾸 깬다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 교우 가운데에도 잠을 잘 자기 위해 멜라닌 같은 수면보조제를 써야 하는 분들도 꽤 있다.

 

하루에도 밤과 아침이 있듯이, 신앙에도 밤이 있고 낮이 있다. 믿음의 밤은 영적인 면에서 어둡고 불안하며 위험한 시기이기에, 질문이 많은 시간이다. 확신보다는 망설임이 많고, 고백보다는 계산이 앞서는 시간이다. 그러나 그 밤이 헛된 것은 아니다. 밤이 있기에 아침이 오고, 어둠이 있기에 빛이 분명해진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자신이 신앙의 밤에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내 신앙의 형편은 지금 밤인데 낮인 줄로 알고 함부로 설치다가는 영혼이 상처를 입게 되고, 남을 가르치려고 했다가 자기도 길을 잃고 남도 길을 잃게 만든다.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는 천국 문을 사람들 앞에서 닫고 너희도 들어가지 않고 들어가려 하는 자도 들어가지 못하게 하는도다.’(23:13) 자기가 믿음은 있는데, 아직 확실히 밝게 알지 못하고 경험도 부족하고 연약하구나, 자기 영혼은 아직 밤에 머물러 있구나 하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러면 계속 진리를 찾고 주위의 사람들, 믿음의 선각자들에게서 배울 수가 있다. 그런데 되지 못하고 된 줄로 아는 사람들, 어두운 밤에 머물러 있는 사람들이 남을 가르치려고 하다가 나도 넘어지고 남까지 넘어뜨리게 된다.

오늘 본문에는 니고데모라는 한 사람이 등장한다. 본문은 이렇게 시작한다. “바리새인 중에 니고데모라 하는 사람이 있으니 유대인의 지도자라.” 그는 이미 종교적 성공을 이루고 사회적 지위를 가진 사람이었다. 산헤드린 공의회 회원으로 알려져 있는데, 이는 지금의 국회의원이다. 그러나 그 성공은 그를 완전한 평안으로 데려다주지 못했다. 그는 겉으로 보기에 햇빛처럼 빛나는 사람이었으나 해결되지 못한 마음의 밤이 있었다. 그래서 그는 밤에 예수께로 찾아온다. 이 밤은 단순한 시간상의 밤이 아니라, 그의 영적 상태를 보여주는 상징이다. 그의 마음, 그의 영혼은 아직 밤의 어두움을 벗어나지 못한 채 있었다. 오늘 우리는 밤에 예수님을 찾아온 한 남자 니고데모의 이야기를 나누고자 한다.

 

믿음의 밤: 확신 없는, 겉으로의 공경 (14)

니고데모는 밤에 예수께 왔다. ‘그가 밤에 예수께 와서 이르되’(2) 왜 밤이었을까? 사람들의 시선을 피하기 위함이었을 수도 있고, 자기 내면의 질문을 조용히 확인하고 싶었기 때문일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그는 예수를 찾아왔지만 아직 온전히 드러내지는 못한 상태였다는 사실이다. 그는 예수께 정중하고 확실하게 말한다. “랍비여, 우리가 당신은 하나님께로부터 오신 선생인 줄 아나이다.” 여기에는 존경이 있다. 인정도 있다. 그러나 아직 고백은 아니다.

겉으로 모든 신앙생활을 빠짐없이 다 한다. 그러나 하나님과의 관계가 확실하지 않다. 믿음의 확신이 없다. 인간 예수는 믿으나 신 예수를 믿지 못하고 있다. 믿음의 밤에는 이런 특징이 있다. 예수를 선생으로는 존중하지만, 구주로는 고백하지 못한다. 하나님의 역사에 대해서는 말하지만, 자기 삶의 주권은 내려놓지 못한다. “우리가 아나이다!”라고 말하지만, 사실은 마음 깊은 곳에서 여전히 묻고 있다. 신앙 앞에 정직한 사람들은 기도할 때마다 치열하게 고민한다. 차라리 내 믿음이 그러한가 하여 고민하는 사람은 가까이 왔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은 밤에 머물러 있으면서 낮에 있는 척 한다. 믿음이 없으면서 믿음 좋은 척 한다. 그래야 아무 문제 없느니까! 정말 믿음의 사람, 거듭난 사람인 줄 알았는데, 결정적인 때, 위기의 때, 고난의 때, 지루하고 지칠 때가 오면 드러나고야 만다. 그 사람은 아직 믿음의 밤이었던 것이다. 니고데모의 밤은 불신의 밤은 아니었다. 그러나 미완성의 믿음인 밤이었다. 그리고 주님은 그런 밤을 외면하지 않으신다. 여러분의 영혼은 밤인가, 낮인가? 문제는 내가 밤에 머물러 있음을 아는 것이다!

 

예수님은 니고데모의 인사말에 길게 답하지 않으신다. 오히려 그의 중심을 바로 찌르신다.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 니고데모는 어떻게를 묻기 전에, 이미 예수께서 <무엇이 문제인가>를 보여주신다. 문제는 지식의 부족이 아니라, 존재의 상태다. 믿음의 밤에 있는 사람은 흔히 이렇게 생각한다. 조금 더 알면 되겠지!

조금 더 노력하면 되겠지!

조금 더 경건해지면 되겠지!

그러나 예수님은 말씀하신다. ‘조금 고치는 것으로는 안 된다. 다시 태어나야 한다.’ 거듭남은 자기 노력이 아니라 새 창조이다. 행동방식을 바꾸는 것, 고치는 것이 아니라 중심이 바뀌는 것이다. 존재가 새로워져야 한다. 믿음의 밤을 지나 아침으로 가기 위해서는, 행동을 아무리 많이 바꾸어도 안 된다. 생활의 일부가 바뀌어서도 안 되고, 출발점 자체가 바뀌어서 삶의 방향이 달라져야 한다.

니고데모는 묻는다. “사람이 늙으면 어떻게 날 수 있사옵나이까?” 우스꽝스러워 보이는 질문이다. 그러나 사실 매우 진지하다. 거듭나지 못한 니고데모는 예수님의 말씀을 자기 이성의 틀 안에서 이해하려고 애쓴다. 의심하는 사람은 질문이 많다. 이 질문들은 틀린 것이 아니다. 오히려 신앙의 중요한 과정이다. 문제는 질문이 머무는 자리가 어디인가를 돌아보라! 질문이 나를 예수께로 데려가면 은혜의 질문이다. 질문이 나를 나 자신에게 가두면 밤은 길어진다. 니고데모는 아직 땅의 언어로 하늘의 일을 이해하려는 밤에 머물러 있었다.

 

물과 성령으로: 성령의 역사 (512)

예수님의 말씀이다.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 여기서 예수님은 거듭남의 주체가 인간이 아니라 성령이심을 분명히 하신다. 바람의 비유를 통해 말씀하신다. “바람이 임의로 불매 네가 그 소리는 들어도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는 알지 못하나니믿음의 아침은 모든 것을 이해한 후에 오는 것이 아니다. 성령의 역사는 설명의 대상이 아니라, 위에서부터 무한하게 내려오는 경험의 은혜이다. 밤이 깊을수록 사람은 통제하려 하고, 아침이 가까울수록 사람은 맡기기 시작한다. 니고데모의 신앙은 지금 어둠에서 낮으로, 통제에서 맡김으로 옮겨가는 새벽에 서 있다.

물로 나는 것은 죄를 씻는 것, 죄사함 받는 것이다. 여러분은 예수 그리스도 구원과 희생의 보혈로 거듭났다. 예수의 희생이 우리 죄값을 치루었고, 예수의 피흘림이 우리 죄를 사하시어 깨끗게 하였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선생이신 예수를 지나 구주이신 예수에게 확실히 이르러야 한다. 그래야 죄사함 받은 새 영혼으로 거듭날 수 있다.

성령으로 나는 것은 말하자면 존재의 비약또는 존재의 초월을 말한다. 구원받은 우리가 천사들처럼 거룩해지고,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며, 예수 닮아가는 삶을 살기 시작하는 것을 말한다. 성령으로 난 사람이 교회를 이루고, 성령으로 예배할 때 하늘 영광이 나타나며, 성령으로 이 땅 위에서 살아갈 때 위대한 하나님 나라가 이 땅 위에 나타날 수 있다. 물로 난 정결한 그리스도인을 보고 세상은 존경하지만, 성령으로 난 그리스도인을 보고 세상은 깜짝 놀라며 하나님을 두려워하게 될 것이다.

 

니고데모는 다시 묻는다. “어찌 그러한 일이 있을 수 있나이까?” 이 질문은 여전히 이해의 질문이지만, 이전과 다르다. 처음에는 어떻게?”였다면, 이제는 <가능한가?>이다. 이것은 한 걸음 더 깊이 들어온 질문인 셈이다. 예수님은 그를 꾸짖으시면서도 포기하지 않으신다. “너는 이스라엘의 선생으로서 이러한 것들을 알지 못하느냐?” 믿음의 아침으로 가는 길에는, 자기 확신이 무너지는 경험이 반드시 필요하다. 아는 줄 알았던 것이 흔들리고, 붙들고 있던 자존심이 내려놓아질 때, 어둠이 서서히 물러가고 새벽빛이 동터오게 된다.

감리교회에서는 이름이 널리 알려진 한 목사님이 젊은 시절 영국에서 공부할 때, 하루는 저녁 작은 파티에서 사람들과 함께 먹고 마시며 대화를 나누고 있었는데 몸집이 좀 큰 영국여자 한 분이 다가와서 한국에서 온 학생이냐, 이런 대화를 하다가 갑자기 이렇게 물어보더라는 것이다. “Are you a born-again Christian?”(당신은 거듭난 크리스천입니까?) 사실은 이런 질문은 굉장히 도발적이고 무례한 질문이어서 이런 직설적인 질문을 처음 받았을 때 무척 당황했다고 한다.

그래서 대답한다는 것이, ‘물론이지요, 나는 거듭난 크리스천일 뿐아니라, 한국감리교회의 정회원 목사이고, 박사과정을 공부하기 위하여 영국에 온 사람입니다.’ 뭐 이렇게 주저리주저리 얘기했다고 한다. 그러자 그 짖궂은 영국 여자가 다시 묻더란다. ‘그러니까, 거듭났냐고요, 당신은 거듭난 크리스천이 맞습니까?’ 조금 기분은 나빴지만 이 젊은 엘리트 목사님은 자신을 돌아보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고 한다.

나는 오늘 그 질문을 여러분에게 돌려드린다. 여러분은 거듭난 크리스천인가? 아마 여러분은 이렇게 대답할 것이다. 아니, 내가 세례받은 게 언제인데, 나는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삼척제일교회의 집사이고, 충성하고 헌신하는 권사야! 나는 장로인 걸, 신학생이고 전도사 목사인데? 찬양대원이야, 전도대라니까! 그래서 어쨌다는 것인가? 여러분은 거듭났는가? 여러분의 영혼은 밤에 있는가, 낮에 있는가?

당시 산헤드린 공의회의 회원이었다면 율법에 정통했을 것이고, 모든 지식과 경험, 지위와 권세에 한 군데도 꿀릴 데가 없는 사람이었다. 그가 밤에 예수님을 찾아와서 거듭나지 않으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다는 말씀을 듣고 있지 않은가? 그렇다면 여러분의 믿음은 밤인가, 낮인가? 여러분은 어두움에 속한 일을 벗고 빛의 갑옷을 입었는가?

 

어둠에서 빛으로! (1315)

하늘에서 내려온 자 곧 인자 외에는 하늘에 올라간 자가 없느니라.’(13) 몸을 입으신 성자 예수가 아니고는 밤에서 아침으로 우린 인생을 인도할 자가 없다는 말씀이다. 마침내 예수님은 밤의 끝자락에서 아침의 복음을 선포하신다.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 같이 인자도 들려야 하리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여기 인자 예수 그리스도에게 신앙의 핵심이 있다. 인간이 올라가는 길이 아니라, 하나님이 내려오시는 길이다. 인간의 이해가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이 계시된 길이다. 노력의 종교가 아니라, 은혜의 종교이다.

믿음의 아침은 내가 밝히는 빛이 아니라, 십자가에서 비추는 빛이다. 니고데모는 영적인 밤, 확신이 없는 밤에 예수님을 찾아와 인자 예수 안에서 빛을 발견했다. 우리는 밤을 통과하지만, 아침을 만들어내지는 못한다. 동터오는 아침은 주님이 열어주신다. 예수를 따라가라! 예수를 붙들라! 예수 안에 거하라! 예수 한 분이면 우리 존재의 어둠은 사라지고, 아침의 빛 가운데 거할 것이다!!

밤에 찾아온 사람 니고데모, 아침의 증인이 되었다. 니고데모는 이 밤 이후, 점점 변화한다. 우리 존재를 거듭나게 하는 말씀 안에 거하라! 후에 그는 공개적으로 예수를 변호하고,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의 장례에 참여하였다. 밤에 주님을 찾아와서 말씀을 듣고 말씀 안에 거함으로 그는 낮의 사람이 되었다. 밤에 왔던 사람은, 결국 빛 가운데 서는 사람이 되었다. 사도 바울은 로마서 13장에서 이렇게 말한다. ‘또한 너희가 이 시기를 알거니와 자다가 깰 때가 벌써 되었으니, 이는 이제 우리의 구원이 처음 믿을 때보다 가까웠음이라. 밤이 깊고 낮이 가까웠으니, 그러므로 우리가 어둠의 일을 벗고 빛의 갑옷을 입자!’(11-12)

 

사랑하는 삼척제일교회 성도 여러분!!

혹 오늘 여러분의 영혼은 어디에 있는가? 여러분의 신앙이 아직 밤에 있는가?

거듭나지 못했거나, 거듭 났으나 아직 어둠 속에 머물러 있는가?

질문이 많고, 확신이 약하고, 조심스러운 믿음의 자리인가?

 

주님은 그 밤을 부끄러워하지 않으신다. 밤에 찾아온 니고데모를 맞아주신 것처럼, 주님은 오늘도 우리의 밤을 아침으로 이끌어 가신다. 사순절은 겟세마네 동산에서 밤을 새우며 기도하시던 주님의 모범을 따라가는 믿음의 계절이다! ‘내 영혼은 아직 밤에 머물러 있습니다. 그러므로 빛 자체이신 주님을 바라보고, 주님 닮아가기를 원합니다. 우리에게 믿음을 주셔서 빛 되신 주님 안에 머물게 하시고, 밤에서 낮으로 변화시켜 주옵소서!’

밤에서 낮으로 나아올 때 큰 구원의 기쁨이 있다. 그 기쁨은 사람이 어쩌지 못하는 기쁨이다. 죄인은 기뻐할 이유가 없으나 죄를 회개하여 거듭남으로 용서와 구원을 발견한 사람은 기쁨이 넘치게 된다. 3세기의 순교자였던 사이프리안은 세상에서 환난과 핍박을 받으면서도 영원한 기쁨을 발견했다는 글을 남겼다. 구원의 은혜는 환경과 여건을 넘어서는 빛을 우리에게 준다. 말씀 안에서 우리 심령이 물과 성령으로 변화되면 성령께서 넘치는 빛으로 채우신다.

맨발의 성자 이현필은 가난하고 어려운 생활, 거지같은 생활을 하면서도, 하나님 주시는 빛으로 충만한 생활을 하였다. 이 기쁨과 영광은 물과 성령으로 거듭난 사람이 누리는 축복이다. 거듭난 여러분 속에 빛이 임하여,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 나라가 열려지기를 바란다. 그러므로 밤에 머물지 말라! 질문하되 떠나지 말고, 이해하지 못해도 예수를 바라보라!! 예수 말씀을 붙들라!!! 들려올려진 인자를 바라볼 때, 우리의 믿음은 밤에서 아침으로 나아가게 될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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