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전문
설교일 | 2020-09-0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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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말씀 | 이사야19:1-15, 23-25. |
설교제목 | 그날에 복이 있을지어다! |
그 날에 복이 있을지어다!
사19:1-15, 23-25
2020년 9월 6일 [성령강림후 열넷째주일, 교역자보건주일]
장마철, 습할 때에는 집안의 곰팡이가 문제다. 계속 되는 장마와 태풍으로 집이 습하여 여러분의 집이나 교회도 이곳 저곳 곰팡이의 습격을 조심해야 한다. 오래전 다른 도시에 살 때, 사택이 지금처럼 새로 지은 아파트였는데, 중간 층쯤의 맨 귀퉁이 집이었다. 그랬더니 바깥 베란다의 끝부분 수납공간에 봄부터 곰팡이가 생겼다. 처음에는 수시로 털어내고 닦아내며 지냈는데, 여름 들어서는 워낙 번성하니까 막을 수가 없었다. 나중에는 얼마 지나면 아주 심한 것만 끌어내는 정도로, 번성한 곰팡이 구역을 포기하고 살았다. 겨우겨우 참고지낼 뿐이었다. 문제는 이사할 때였다. 곰팡이가 심하다는 것이다. 오히려 우리가 얼마나 힘들었는데 치우며 살았다고 하여 처리비용을 아파트와 우리가 얼마씩 부담하는 것으로 타협이 되었다.
지금 곰팡이 같은 세속의 때와 죄의 더러움이 믿는 자들의 생활에까지 들어와 힘들게 하고 있다. 곰팡이와의 전쟁을 치르는 가정들처럼 죄악의 문제가 세상을 덮고 우리 생활에 들어와 있다. 세상을 사랑하며 영적 음행에 빠져 맘몬과 세상의 권력과 성공을 구하며 두 마음을 품었던 하나님 백성들을 향한 진노가 나타나고 있다. 이 시대의 혼란스러운 가치관과 가정파괴, 바이러스의 세계전파, 또 세상 사람들의 여론에 교회가 심한 오해와 비난을 피하지 못하고 있는 것에 이르기까지, 이미 하나님께서 한국교회를 심판하고 계심을 우리는 느낀다.
한참 교회가 부흥되고 사회가 복음화의 가능성을 보일 때 우리는 하나님께서 이 나라를 복음으로 구원하여 온 세계의 모범이 되게 하시는가 하는 생각까지 했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은혜를 잊어버린 지도자들과 성도들이 복음의 순수성을 변질시키고, 하나님과 천국보다 이 땅의 부귀영화를 탐하는 영적인 음행에 빠지자, 우리 안에 계신 성령님께서 근심하기 시작하였다. 이제 교회에서 예전처럼 성령의 직접적인 역사와 교통이 많이 나타나지 않는가? 하나님을 예배하는 하나님 백성들이 그 나라와 하나님의 의에는 별 관심이 없고 세상 즐거움에 취하여 세상의 출세와 칭찬에 더 집착하고 있으니, 어찌 사탄의 조롱거리가 되지 않겠는가!
강단에까지 세속의 누룩이 섞인 세속주의와 음란이 범람하니, 드디어 하나님께서 심판하시는 때가 가까이 오지 않았는가, 두렵다. 하나님은 교회를 징계하시고 세상을 심판하신다. 노아시대는 세상에 죄악이 가득하고 그 마음으로 생각하는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 물로써 세상을 심판하셨다. 소돔과 고모라는 그에 대한 부르짖음이 크고 죄악이 심히 무거운 것을 천사가 와서 살핀 후에 불과 유황으로 심판하셨다. 북이스라엘은 우상숭배와 포악을 앗수르를 통하여 심판받았고, 남 유다는 그들의 불신앙과 죄악 때문에 바벨론에 의해 멸망했다. 물론 하나님은 노하기를 더디하시고 구원하시기를 기뻐하시는 하나님이시다. 그러므로 더 늦기 전에 요즈음 같은 심판의 징조가 있을 때 회개함으로 하나님의 구원하심을 기다리자!
오늘 본문 앞부분, 19장 1-15절은 이집트에 대한 심판의 말씀이고, 뒷부분 23-25절은 이스라엘 앗수르 이집트에 대한 축복의 말씀이다. 먼저 앞부분에 나오는 심판의 말씀부터 살펴보면, 고대 이집트와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멀리하다가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단계적으로 멸망할 것이라는 말씀이다. 성서의 심판선언은 공갈하거나 겁주려는 것이 아니고, 우리 현실을 밝히 보여주면서 돌아와 회개할 것을 깨우치는 말씀이다. 이사야 19장의 이집트에 대한 심판선언은 오늘날 한국교회, 더 나아가 이 사회의 상황과 너무나 비슷하지 않은가!
먼저, 정신적으로 약해지는 것이 하나님 심판의 첫 번째 과정이다. 가치관이 혼란에 빠지고 사람들의 정신 역량이 쇠약해진다. 3절, ‘애굽인의 정신이 그 속에서 쇠약할 것이요, 그의 계획을 내가 깨뜨리리니 그들이 우상과 마술사와 신접한 자와 요술객에게 물으리로다.’ 이집트 멸망의 첫 단계는 속에서부터 가치관이 약해지고 정신이 쇠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요즘 시대를 말하자면 한마디로 정신이 없다. 사람들을 하나로 통합하고 이 사회를 정신차리게 하는 가치관을 아무도 세우지 못하고 있다. 정치인이 하거나, 사회의 정신적 지도자가 있거나, 아니면 그 시대의 지배종교가 그 역할을 해야 하는데, 근대화 이후에 그 역할을 해야 할 기독교가 분열되어 갈등하다 보니 바른 가르침을 제대로 제시하지 못하였다.
물질문명의 번성과 발전은 엄청난 속도로 진행되는 데 비하여 정신문명은 발전은커녕 오히려 쇠퇴하고 있다. 젊은이들도 자유와 편리는 추구하지만 정신적 가치와 가르침을 찾지 않는다. 우리 시대에 정신적 가치와 영적 지혜를 추구하는 사람은 이상한 사람 취급을 받는다. 고대 이집트의 발달된 문명도 정신이 쇠약할 때 심판을 피할 수 없었다. 정신이 발전하면 균형과 조화를 갖춘 수준 높은 정신문명이 확립되지만, 지금처럼 정신이 쇠약해지면 진영논리와 극단적인 사고방식이 사회를 이끌어가게 된다. 한마디로 목소리 큰 사람이 이기는 사회다. 따라서 우리 사회도 이집트처럼 하나님의 역사심판을 피하기 어렵게 되었다.
다음, 경제적인 붕괴와 실패가 반복된다. 정신적인 붕괴는 물질적인 붕괴를 가져온다. 정신적으로 실패하면 물질적이고 경제적인 실패가 따라온다. 가정에서 식구들의 마음이 화합되지 않고 신앙이나 정신적 가치로 하나 되지 못하면 결국은 가족들이 뿔뿔이 흩어져 방황하게 되고 모든 경제생활을 비롯한 생활 전체가 무너지는 것은 시간문제다. 나라도 그렇다. 컴퓨터의 발전은 눈이 부실 정도이고, 인공지능 소위 AI시대가 다가와 4차 산업혁명이 이뤄진다고 하는데, 사람들의 정신과 영적 수준은 이전 시대보다 못하다. 발달된 물질문명을 정신이 담아내지 못하는 시대가 되면, 차츰 물질적 세상도 무너질 것이라고 본다.
7-8절, 기본산업이 어려움을 겪는다. ‘나일 가까운 곳 나일 언덕의 초장과 나일강 가까운 곡식 밭이 다 말라서 날려가 없어질 것이며, 어부들은 탄식하며 나일강에 낚시를 던지는 자마다 슬퍼하며 물 위에 그물을 치는 자는 피곤할 것이며,’ 정신문명이 피폐한 이들은 결국 각종 사업까지 무너진다. 9절. ‘세마포를 만드는 자와 베 짜는 자들이 수치를 당할 것이며.’ 거기에 더하여 고용이 무너진다. 10절. ‘그의 기둥이 부서지고 품꾼들이 다 마음에 근심하리라.’ 반년 이상 계속되고 있는 코로나 펜데믹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느냐 할 때, 믿음의 상실과 정신문명의 피폐에 대한 하나님의 경고와 심판이 경제와 우리 생활기반의 붕괴로 나타나는 것으로 봐야 하지 않을까?
결국, 정치적인 해결마저도 혼란을 겪게 된다. 멸망의 세 번째 단계는 지도자들이 세울 대안들이 문제를 점점 더 어렵게 할 것이다. 정치적인 갈등과 대립이 날카로워져서 내란이 일어나고 곳곳에 전쟁이 발발하는 것이다. 11-12절, ‘소안의 방백은 어리석었고 바로의 가장 지혜로운 모사의 책략은 우둔하여졌으니 너희가 어떻게 바로에게 이르기를 나는 지혜로운 자들의 자손이라 나는 옛 왕들의 후예라 할 수 있으랴? 너의 지혜로운 자가 어디 있느냐, 그들이 만군의 여호와께서 애굽에 대하여 정하신 뜻을 알 것이요, 곧 네게 말할 것이니라.’ 국민의 대표들이 법을 만들고 지혜로운 자들이 정치권에 자문을 한다고 하는데, 문제해결은커녕 점점 더 어리석은 해결책을 제시하는 것이다.
13절을 보면, ‘소안의 방백들은 어리석었고 놉의 방백들은 미혹되었도다. 그들은 애굽 종족들의 모퉁잇돌이거늘 애굽을 그릇 하게 하였도다.’ 나라의 모퉁이돌 같은 정치 엘리트들이 자꾸 헛방을 쏘는 것이다. 언론들도 제대로 된 진단과 해결책을 내놓을 생각은 하지 않고, 가짜뉴스 받아 옮기기에 여념이 없다. 14절에, ‘여호와께서 그 가운데 어지러운 마음을 섞으셨으므로 그들이 애굽을 매사에 잘못 가게 함이 취한 자가 토하면서 비틀거림 같게 하였으니,’ ‘어지러운 마음’ 즉 혼란의 영이 사람들에게 들어와 사람들을 잘못 이끌며 싸움만 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마지막 15절, ‘애굽에서 머리나 꼬리며 종려나무 가지나 갈대가 아무 할 일이 없으리라.’ 여기서 ‘머리나 꼬리’, ‘종려나무 가지나 갈대’는 ‘높은 자와 낮은 자’, 또는 ‘가난한 자와 부유한 자’를 나타내는 상징적인 표현이다. 사회의 각계각층이 혼란의 영에 빠져서 비틀거리며 잘못 가고 있다는 것이다.
한 나라의 흥망성쇠를 볼 때, 영적 부흥과 정신적 기초가 얼마나 중요한가를 역사는 보여준다. 이웃 중국의 경우도 나라가 혼란하고 열방이 시끄러울 때 정신적 지도자가 시대를 바르게 해석하고 지혜를 펴서 나라를 다스리면 얼마 지나지 않아 나라가 평안하고 살기 좋은 때를 맞이하게 된다. 반면에 지도자와 백성들이 내적 기초, 정신적 역량을 제대로 키우지 않을 때 번성했던 나라도 금방 멸망해버리고 말았다. 로마는 영원할 줄 알았다.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 하지 않았는가! 그러나 그들에게는 절대적 가치관이 없었다. 절대적 기초가 없는 로마는 그렇게 강성한 국가였지만 허약한 기초 때문에 망했다. 그들의 신 마저도 너무 인간적이고 쉽게 변하는 존재였기 때문에 로마는 안에서 무너졌고, 이때 야만인들의 침입은 이미 내적으로 무너진 로마를 빨리 붕괴하게 한 수단일 뿐이었다.
우리 사회도 지금 영적 기초를 쌓을 때이다. 우리 스스로를 돌아볼 때 경제적이고 기술적인 수준은 빛나게 올라가고 있지만 정신적 기초가 매우 허약하다. 그 대표적인 현상이 자살률이 세계 1위 2위를 다투는 현실이다. 물질은 예전보다 풍성해졌다. 좋은 것 먹고 깨끗하고 아름다운 집에서 좋은 차 타고 다닌다. 그러나 정신은 공허하며 영혼은 병들어 있다. 원래 인류는 어디에서 시작되었는가? 하나님이 시작하시지 않았나? 꼭 성경을 안 믿어도 창조를 시작하신 어떤 ‘실재’가 있을 것 아닌가? 이 시작과 종말에 대하여 지혜를 가져야 하고, 근본적인 문제에 뿌리를 내려서 안정을 찾아야 한다. 바로 하나님이시오, 죄 문제의 해결자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시다. 하나님께 지혜의 근원이 있고, 구원하는 길이 하늘에서 임할 것이다. 그러므로 멸망의 징조가 드러날 때, 구원하시는 하나님께로 돌아오라!
지금 이 나라의 상황을 보면 이만저만 걱정되는 것이 아니다. 코로나 상황에서도 민심이 모아지지 않고 지나치게 양극화되고 있다. 여러분, 제발 극단적인 얘기로 국론을 분열되게 하지 말고, 말 한마디라도 나라를 세우고 일이 되게 하라! 나라는 아직도 전쟁의 그림자를 지우지 못하고 외국군대는 국방을 도와준다며 이 나라에 주둔하여 있고 핵무기는 계속 개발되어 불안이 그치지 않는다. 평화를 말하면서도 대적의 칼날을 내려놓지 않으니 어찌하랴! 이집트를 향한 멸망의 경고는 곧 우리를 향한 말씀이다.
그런데 여기서 멸망의 경고 속에서도 하나님은 희망을 선포하고 있다. 16절부터는 ‘그 날’의 소망이 무려 6번이나 기록되어 있다. 16, 18, 19, 21, 23, 24절. ‘그날에 애굽이 부녀와 같을 것이라. 그날에 애굽 땅에 가나안 방언을 말하며. 그날에 애굽땅 중앙에는 여호와를 위하여 제단이 있겠고. 그날에 애굽이 여호와를 알고 제물과 예물을 그에게 드리고 경배할 것이요.’ 21절까지 내용이다. 23절에 보면, ‘그날에 애굽에서 앗수르로 통하는 대로가 있어.’ 이스라엘을 계속해서 괴롭혀왔던 나라가 앗수르와 이집트인데, 이 두 강대국이 서로 왕래하며 하나님을 함께 경배할 때가 올 것이다. 우리는 믿음을 가지고 기도해야 하겠다.
우리나라 상황에 이 말씀을 적용해보면, 미국 하고 중국, 혹은 소련 일본이 자기네 나라 이익을 지킨다면서 우리나라를 괴롭히던 일을 다 그치고, 서로 왕래하면서 하나님의 공의로운 뜻대로 행할 날이 올 것이다. 하나님은 공의롭고 사랑이 많으신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강대국들이 정신을 차리고 모든 나라들, 특히 자기들보다 작은 나라를 공의롭게 대할 때가 올 텐데 그때 전쟁은 그치고 평화 통일을 이룰 수 있을 것이다. ‘그날에 이스라엘이 애굽 및 앗수르와 더불어 셋이 세계 중에 복이 되리니, 이는 만군의 여호와께서 복 주시며 이르시되 내 백성 애굽이여, 내 손으로 지은 앗수르여, 나의 기업 이스라엘이여, 복이 있을지어다 하실 것임이라.’(24-25절)
‘그날’, 히브리어로 “하욤”은 희망의 날이요, 회복의 날이며, 해방의 날이요, 축복의 날이다. 하나님의 정의와 평화와 사랑이 온전히 이뤄지는 날이다. 우리나라도 영적 기초, 신앙적 기초가 바로 세워져 열방의 복이 되는 날이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치셨으나 고치실 것이고, 온전케 하실 것이다. 22절, ‘여호와께서 애굽을 치실지라도 치시고는 고치실 것이므로 그들이 여호와께로 돌아올 것이라. 여호와께서 그들의 간구함을 들으시고 그들을 고쳐 주시리라.’ 물론 우리가 이런 날이 오도록 노력해야 하겠으나, 우리가 노력한다고 다 되는 게 아니고, 하나님의 역사섭리 속에서 ‘그날’이 올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온전케 하심과 은혜를 믿고 기다리면서 기도해야 한다.
현대세계는 어떠하든지 사회주의의 도전을 외면할 수 없게 되었다. 자본주의와 사회주의는 결국 어느 지점에서 만날 것이고, 지금 우리사회가 경험하는 혼란과 갈등은 바로 그런 현상이 겉으로 나온 것이다. 러시아의 양심으로 불리던 알렉산드르 솔제니친은 이미 1979년에 이런 예언을 하였다. 미국이 공산 세계를 압도적으로 앞서왔으나, 앞으로 날이 갈수록 공산사회는 강해지고 서구사회가 무너지기 시작할 것이다. 그 이유는 세 가지라고 하였다. 지금 세상을 보면 솔제니친의 예언이 실제가 되고 있다.
첫째, 미국사회는 본래 신본주의, 하나님 중심 사회였는데, 인본주의, 인간중심 사회가 되었기 때문이다. 둘째, 서구 사회는 신앙으로 사는 사회였는데, 이제는 물질을 최고 가치로 아는 유물론 사회가 되었기 때문이다. 셋째, 서구사회는 하나님의 말씀과 교훈이 도덕성과 사회생활의 관습이었는데, 사회의 다원화로 인하여 어쩔 수 없이 많은 법률을 만든 법률 지상주의가 서구사회 쇠퇴의 원인이라는 것이다. 즉 하나님 대신에 인간 중심, 신앙 대신에 물질 중심, 하나님 말씀과 교훈 대신에 법률 지상주의가 서구사회를 점점 쇠퇴하게 했다는 지적이다. 여기에 공통점이 하나 있는데, 한결같이 하나님을 부정한다는 사실이다. 하나님을 부인하니 하나님께 인색하고 부정적인 삶을 살게 되었고, 그 결과 건강한 시장경제 질서는 쇠퇴하고 유물론적 경쟁사회가 되었다. 인간은 서로 잡아먹는 이리가 되었고, 서로 이용하는 장사꾼이 되었다.
이제 결론은 하나 밖에 없다! 하나님께로 돌아가야 한다. 하나님을 절대가치로 삼아야 한다. 하나님이 아닌 인간, 신앙이 아닌 물질, 하나님의 교훈이 아닌 인간이 만든 법률이 인간의 삶을 유지하고 발전하게 할지 모르나, 그 결과는 이집트의 멸망처럼 멸망하는 도시가 되고 마는 것이다. 오늘 우리는 기후문제, 핵전쟁, 환경문제, 식량과 에너지의 고갈 때문에 생존의 문제가 심각하다. 그 때문에 우리 삶은 불안하고 근심으로 가득하다.
우리는 먼저 하나님 나라와 그 의를 구하는 인생을 살아야 한다. 정신의 요구를 먼저 채워 인생의 기초를 든든히 해야 한다. 하나님의 뜻이 하늘에서 이뤄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게 해달라고 기도해야 할 것이다. 그러면 모든 생존의 문제와 명예와 소유의 문제까지 해결해주실 것이다. 그날에 하나님이 복이 되게 하실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을 바라보며 회복하는 영성의 삶을 살아야 한다.
에라스무스는 마틴 루터와 동시대 사람인데, “못을 뽑아내려면 다른 못을 박아야 한다.”는 유명한 말을 하였다. 이전의 잘못된 습관을 뽑아내려면 새로운 습관을 못 박아야 한다는 원리를 말한 것이다. 그리스도인은 이전의 불만의 습관인 못을 뽑아내고, 새로운 감사의 습관이란 못을 박아야 한다. 이전의 욕망과 게으름의 습관인 못을 뽑아내고, 경건과 성실함의 습관인 못을 박아야 한다. ‘그날에 이스라엘이여, 복이 있을지어다!’ 지금은 멸망으로 가는 기차에서 내려 소망의 나라로 가는 복된 기차를 타야 한다. 이때에 그렇게 살도록 성령께서 도와주시기 바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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