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전문
설교일 | 2025-04-2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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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말씀 | 고전15:20-28 |
설교제목 | 다시 사신 그리스도 |
다시 사신 그리스도
고전15:20-28
2025년 4월 20일 [부활절]
시골에서 누에를 키워 고치를 내다팔던 집에서 자란 한 청년이 후에 신학자가 되어 미국에서 목사와 교수로 활동하셨다. 드류대학에서 가르치셨던 이정용박사다. 그분이 어느 책에서 어릴 적에 누에가 자랄 때의 모습을 얘기했다. 자기는 그 모습을 기억하며 부활의 현실을 조금 이해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누에는 처음에 조그만 알의 형태로 되어있다. 그러다가 부화하여 작은 애벌레가 되어 자란다. 그것이 한 잠 두 잠 석 잠, 자면서 아주 큰 누에가 되는데, 한참 누에가 뽕잎을 먹을 때는 잠사에서 서걱서걱 소리가 들릴 정도이다. 이렇게 잘 먹고 자라던 누에가 때가 되면 고치가 되어 잠을 잔다. 어린 시골 소년은 아마 누에가 그렇게 집을 짓고 들어갔나 보다 했다. 그런데 어느 날 잠사에 들어가 보니 크고 화려한 나방이 날아다니고 있더라는 것이다. 하나님의 생명이 이루어가는 기적적인 변신!! 바로 이것이 부활절에 일어난 일이다.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피조물은 변화되었다. 하나님 나라 복음은 어디서나 생명을 잉태하고 창조해낸다! 예수님의 생명창조, 부활 안에서 새 하늘과 새 땅이 열렸다!
오늘은 부활절이다. 기독교인에게 성탄절보다 더 좋은 날이다. 왜냐하면 성탄절은 주님이 태어나신 날이지만, 부활절은 돌아가셨다가 죽음의 권세를 이기고 다시 살아나신 날이기 때문이다. 주님은 로마의 권력과 유대민중들의 극단적인 신념 앞에 체포되고 처형받아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다. 주님이 십자가에서 돌아가실 때 하늘도 땅도 슬퍼하여 천지가 세 시간동안 캄캄하였다. 죽음은 생명의 소멸을 의미한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심으로 제자들의 소망과 열정은 끝나버리고 말았다. 인생을 성공적으로 살았든, 세계적으로 유명해졌든 죽음 앞에서는 아무런 힘이 없다. 죽음은 한평생 쌓은 모든 것을 한순간에 파멸시킨다. 제자들에게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사흘 만에 주님은 다시 살아 더 이상 죽음의 지배를 받지 않으셨다. 우리가 사랑하는 주님이 다시 살아나셨다. “예수 부활 하셨네!!” 할렐루야!!! 그리스도인의 부활신앙에는 이와 같이 생명에 대한 감격과 감사가 있다.
부활의 관점에서 세상에는 두 종류의 사람이 있다. 죽음의 지배를 받는 사람들과 생명의 능력으로 사는 사람들이다. 아담 이후로 사람은 죽음의 지배를 받는다. 죄의 삯은 사망이라는 말씀대로 하나님을 배반하고 멀리 떠난 인간에게 피할 수 없이 죽음이 왔고, 이 죽음의 그림자를 벗어나지 못한 채 사람들은 불안해하고 미워하며 싸우고 죽이다가 죽음에 삼켜지는 허무한 인생을 살고 있다. 주님은 사람으로 이 세상에 오셔서 이 죄와 죽음의 현실을 해결하시기 위해 선한 싸움을 싸우시다가, 결국 십자가로 죄의 값을 치루시고 죽음을 감당하셨다.
그러나 하나님은 생명을 내시고 생명으로 세상을 가득하게 하시는 뜻을 가지고 계시므로, 당신의 아들 예수를 죽음 가운데 두지 않으시고 생명으로 되살리셨다. 창조하신 하나님은 번성케 하시고 복되게 하시고 기뻐하게 하시며, 결국에 모든 생명을 다시 살리신다. 따라서 주님은 다시 살아나셨다. 주님은 죽음을 이기시고 생명으로 살아나셨다. 주님은 죽음의 권세를 이기시고 생명의 능력으로 살아나셨다! 창조주 하나님은 오늘 부활의 능력으로 재창조의 역사를 이루신다!! 따라서 오늘 말씀대로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음의 지배를 받지만,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생명을 얻을 것이다(22절)!
여러분은 죽음의 지배를 받고 있는가, 생명의 약동을 경험하고 있는가? 사망이 한 사람으로 말미암았으니, 죽은 자의 부활도 한 사람으로 말미암는도다!(21절) 죽음처럼 외롭고 허무하고 쓸쓸하고 괴로운 인생을 살고 있다면 여러분은 죽음의 지배를 받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생명의 능력으로 일어난다면 기쁨이 있고 평안함과 함께 하는 사랑과 보람이 있는 삶을 영위할 것이다. 죽음의 지배에서 생명의 능력으로, 여러분 모두의 삶이 이 예수 부활의 아침에 다시 변화되기를 바란다.
죽음의 지배를 받는 사람은 절망한다. 죽음은 절망이다. 이제 다시는 만날 수 없다. 얘기할 수도 없고, 따뜻한 손으로 어루만질 수 없다. 노래할 수도 맛있는 밥을 함께 먹을 수도, 어울려 운동을 하거나 좋은 곳에 갈 수 없다. 그래서 죽음은 모두에게 슬픔이 된다. 죽음의 지배를 받는 사람은 쉽게 절망하고 낙담한다. 그러나 생명의 능력으로 일어서는 사람은 희망을 가진다. 아이가 태어나면 모두가 기뻐한다. 그것은 무한한 희망을 그 아이는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 아이가 무엇일 될지 모른다. 온 백성을 잘 다스려 크게 민족을 유익하게 할 대통령이 될지, 좋은 목사님이 될지, 훌륭한 선생님이 될지, 과학자가 될지, 좋은 아내와 엄마가 될지, 모른다. 무한한 희망의 이름이 아기이다. 그래서 기뻐한다. 생명의 능력을 일깨우는 사람은 슬픔 한가운데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고 기쁨을 회복한다.
죽음의 지배를 받는 사람은 불안해하며 늘 염려한다. 걱정이 많다. 죽음이 등 뒤에 도사리고 있기 때문에 안정되지 못한다. 늘 “양양”대면서 “어려워. 힘들어.”하는 이들은 죽음의 지배를 받는 것이다. 자녀들이 조금만 성적이 떨어져도 세상이 망한 것처럼 난리가 난다. 장사가 하루만 안 돼도 시름이 가득하고, 남이 한 번만 자기에게 섭섭하게 하면 화를 풀지 못한다. 왜 죽음이 불안하니까, 언제 굴러떨어질지 모르니까. 그러나 생명의 능력으로 일어서는 사람은 든든하다. 고난의 한가운데에서도 염려로 벌벌 떨지 않는다. 하나님은 생명을 지으셨고 우리는 생명으로 가득한 사람이므로 염려 없다는 기본적인 정서가 있다. 힘들어도 “괜찮아. 할 수 있어.” 하는 사람은 생명의 다스림을 받는 사람이다.
죽음의 지배를 받는 사람은 본질적으로 무기력하다. 자기의 힘없음을 인정하기 싫으니까, 막아보려고 더 힘을 추구한다. 육체의 힘, 권세의 힘, 돈의 힘을 추구하느라 인생이 무엇인지를 돌아볼 겨를도 없고, 감격하고 사랑할 줄 모른다. 그러나 생명의 능력을 가진 사람은 본질적으로 힘과 생기가 있다. 그래서 굳이 힘을 더 많이 가지려고 아옹다옹하지 않는다. 이미 있는 것을 누리고 충분히 감동하느라, 겉으로 보이는 권세나 부귀가 없어도 그리 비참해하거나 낙심하지 않는다.
한국 정치는 정치적인 힘을 추구하는 것 자체가 목적이었다. 부정과 편법을 써서라도 권력을 잡으면 되었다. 힘을 가지고 무엇을 할 것인가는 별로 중요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제 한국의 정치도 힘만 추구하는 것이 아니고 힘으로 무엇을 할 것인가가 중요해졌다. 그래서 수단도 옳아야 하고 방법도 정당해야 한다. 곧 닥쳐 올 조기 대선도 널리 국민을 유익하게 할 실제적인 힘을 만들어 주는 정치적 사건이 되어야 한다. 우리 삶에 정치가 굉장히 중요한데, 생명이 약동하는 정치가 되도록 기도해야 한다! 한국 정치에 생명을 움돋게 하는 정치인이 당선되어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사람을 위하는 정치를 할 수 있기를 기도하자.
그리스도께서 다시 살아 최후의 원수인 죽음을 이기셨다(26절)!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더 이상 세상의 불의가 죄악이 우리를 휘두르지 못할 것이고, 죽음에 지배당하지 않을 것이다. 그리스도께서 죽음을 이기시고 부활하신 것이 우리에게 복음이 되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오늘 네 분의 어른과 2명의 어린이들이 세례받았다. 세례는 죄악에서 거룩으로, 죽음에서 생명으로 거듭난 것을 기념하는 교회의 예식으로 하나님이 허락하시고 주관하시는 예전이다. 세례받는 이들은 죽음을 이기고 생명으로 부활한 것이다. 축하한다. 우리 모두가 세례의 은혜 가운데 절망의 지배를 받지 않고 생명의 능력으로 돋아나기를 축복한다!
부활절 예배에 참석한 이들과 함께 나누고 싶은 노래를 들려드린다. 특히 오늘 세례받으신 이들을 축하하며 부르는 우리 남성들의 노래다.
살면서 듣게 될까
언젠가는 바람의 노래를
세월가면 그때는 알게될까
꽃이 지는 이유를
나를 떠난 사람들과 만나게될 또 다른 사람들
스쳐가는 인연과 그리움은 어느 곳으로 가는가
나의 작은 지혜로는 알수가 없네
내가 아는건 살아가는 방법뿐이야~
조용필의 노래, 연예인 남성팀 ‘뜨거운 싱어즈’가 불러서 눈물을 자아냈던 노래다! <바람의 노래>! ‘이제 그 해답이 사랑이라면 나는 이 세상 모든 것들을 사랑하겠네!!’
언제나 기쁨으로 얼굴이 빛나는 꽃장수 할머니가 있었다. 늘 그것을 궁금해 하던 한 단골 손님이 어느 날 할머니에게 물었다. “할머니는 걱정 근심이 전혀 없으신가 봐요.” “천만에요. 사람에게 걱정 근심이 없을 수 있나요.” “그런데 어떻게 그렇게 항상 웃으며 생활하실 수가 있죠?” “그것은 ‘3일의 비밀’을 가지고 인생을 살아가기 때문이랍니다.” “할머니, ‘3일의 비밀’이라는 게 뭐죠?” “그것은 걱정거리가 생길 때마다 하나님께 기회를 드리고 3일을 기다리는 것, 즉 무덤에서 3일 만에 부활하신 주님을 믿는 것입니다. 때로는 숫자대로 3일이 아닐 수도 있지만 주님의 부활 원리는 늘 동일하지요. 그래서 나에게는 어떤 암흑 같은 고난일지라도 얼마 지나면 광명의 열매로 끝난답니다.”
부활절은 무엇인가? 죽음의 지배 아래 있던 세상이 예수 그리스도께서 죽음과의 싸움에서 이기셔서 생명이 힘을 얻는 세상으로 바뀐 것이다. 그리하여 사랑으로 살게 되리라! 그리하여 생명을 꽃피우리라! 이 부활절에 여러분 모두에게 이 부활의 생명이 싹트기를 기원한다. 죽음이 지배하는가, 생명이 인도하는가? 매일의 삶 속에서 구체적으로, 실제적으로 부활 생명으로 살아나기를 축복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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