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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소금과 빛 (마5:13-16) [2026년 2월 8일, 주현절 다섯째주일]
2026-02-07 14:17:21
박신진 목사
조회수   2
설교일 2026-02-08
설교말씀 마5:13-16
설교제목 세상의 소금과 빛

세상의 소금과 빛

5:13-16

202628[주현절 다섯째주일]

 

너무 유명한 말씀,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요 빛이다.” 제자들을 훈련시킨 말씀, 말하자면 그리스도인을 제자로 훈련시키는, 훈련의 대원칙이다. 이 말씀은 두 가지 사실을 전제로 하고 있다. 1)그리스도인은 세상 속에서 산다. 세상과 동떨어진, 고립된 사람이 아니다. 문제 많은 세상 속에 들어가 적극적인 관계를 가지며 산다. 배는 바다에 있어야 배다운 배가 된다. 그런데, 배가 바다에 떠있어야지 바닷물 속으로 들어가버리면 큰일난다. 이처럼 그리스도인은 세상 속에서 살지만 세상을 이기며 산다. 세상 위에 떠있어야 한다. 세상 안에 살면서, 세상을 복음으로 이기며 살아야 한다!

2)그리스도인은 구별된 사람이다. 무언가 다르다. 세상에서 사는 천국의 시민이다. 한국사람은 미국에 가서 살아도 뭔가 다르다. 도저히 동화될 수 없는 무언가가 있다. 우리의 영원한 국적은 천국이다. 무언가 다르게 살 수밖에 없다. 물과 기름처럼 세상에 적응 못하고 살아서도 안된다. 반대로 문화에 젖어버려서 스며들어버려도(濕合) 안 된다. 문화 속에서, 세상 속에서 살되, 문화를 이끌어가고 문화를 변화시키며 살아야 한다. 구별된 사람, 책임있는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한다!.

월요일에는 아담처럼 하나님을 배신하고, 화요일에는 가인처럼 형제를 죽이고, 수요일에는 다윗처럼 간음하고, 목요일에는 아간처럼 도둑질하고, 금요일에는 아나니아와 삽비라처럼 하나님의 것을 가로채고, 토요일에는 가룟 유다처럼 주님을 배반하고 나서, 주일에는 하나님, 미안합니다~” 라고 한단다. 나는 어떻게 세상에서 살아야할까?

 

세상의 소금

먼저 소금을 생각해 보자! 소금의 역할은 많다. 방부제, 조미제, 의료제 같은 역할이다. 가정 부인이나 서민들이 볼 때 소금은 대중적인 재료이다. 누구나 안다. 쉽게 구할 수 있다. 하나님은 인간에게 소중한 것일수록 더욱 많이, 값싸게 주셨다. 그중 하나가 소금이다. , 공기, 소금과 같은 것들이다. 신자들은 대중적이며 평범한 데서 복음의 효능을 나타낼 것이다. 서민적이고 대중적인 신자 의식이 더욱 성서적이다.

첫째로, 썩는 것을 막아주는 역할이다. 오염시키며 썩게 하는 나쁜 균들을 막아준다. 사탄의 역사를 막고, 세상에 만연한 죄의 부패를 막는다. 그리스도인은 죄의 더러움에 대해 남보다 예민해야 한다. 죄에 대하여 무관심하거나 무대책이어서는 안 된다. 부정과 부패, 오류를 묵묵히 시정할 줄 알아야 한다, 소금처럼!

직장에 들어간 그리스도인, 그곳이 한 해에 부정한 방법으로 집 한 채 생기는 자리라면, 몇 년이 지나도 집이 생기지 않는다. 과거에 그 자리에 있으면서 집이 생겼던 사람들이 불안해진다. 자기와 같이 되어주면 편안한데 그렇지 않으니까 공격을 받고 인간관계가 불편해질 수도 있다. 직장에서의 갈등이 자신의 다듬어지지 못한 인격 때문인가, 의롭게 살기 위한 과정인가를 분별하라.

소금과 같은 그리스도인의 표본, 본회퍼 목사님, 히틀러의 독재시절, 존경받는 20대 초반에 박사를 받은 뛰어난 교수였다. 그러나 대학교수직을 버리고, 반히틀러 암살조직에 참여했다. 그는 감옥에 갇혀 2차대전 종전을 보지 못하고 사형당했다. 본회퍼의 반히틀러 운동에 동참하는 고백교회가 오늘까지 독일의 양심을 지켜주었다. 2차 대전 후에 독일은 유대인 학살에 대하여 콜 총리가 이스라엘에 무릎꿇고 눈물흘리며 사죄했다, 그것이 가능했던 것은 본회퍼와 같은 세상의 소금이 있었기 때문이다.

둘째로, 맛을 내는 역할이다. 음식의 맛을 더해주는 역할도 한다. 세상에서 진정한 삶의 의미와 사는 맛, 재미있게 해주는 사람이다. 세상은 쾌락을 추구함으로 재미를 느끼고 있으나, 그리스도인은 의미와 보람을 추구함으로 재미를 느낀다. 그리스도인이 있는 곳에 바른 목적이 세워지고 바른 방법이 주어진다.

시집간 그리스도인 부인이 시댁에 들어가 살면 세월과 함께 가정을 변화시키게 된다. 강퍅하고 교만한 가정이 사랑이 넘치고 부드러운 가정이 된다. 율법적이고 남을 정죄하던 가정이 복음적이고 수용적인 가정으로 변화된다. 그 가정에서 소금이 된 것이다. 맛을 내는, 짭짤한, salty Xn이 되라!!

강화의 한 동네에서 맛을 내는 그리스도인이 있었다. 너무 훌륭한 역할을 한다. 가난한 사람의 어려운 사정을 들어준다. 집을 팔아주고 직장을 구해준다. 자식들의 어려움이 있을 때 장학금을 연결해 주고, 병원에 소개해서 싸게 치료받도록 한다. 그 사람 때문에 동네 전 가구가 예수님을 믿게 되었다. 우리 젊은 시절까지 70가구에 50가구 이상이 그리스도인인 동네로 남아있었다.

 

조용한 개혁

소금의 위대함은 조용히, 안으로 이뤄지는 역사에 있다. 소금이 들어있는 것은 보이지 않는다. 처음에는 느끼지도 못한다. 그러나 썩음을 방지하고 맛을 내는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소금처럼 침투해 살라. 뭔가 크고 급진적인 사회개혁을 부르짖는 사람들이 있다. 그것도 중요하지만 언제나 개혁은 한 사람에게서 시작된다. 각자의 역할과 위치에서 소금의 맛을 유지하는 것, 녹아지는 것, 침투하는 것이 진정한 그리스도인의 개혁이다.

석유 버너와 알코올 버너. 알코올 버너처럼 소리내지 않고 할 일을 하는 것이 소금의 역할이다. 다른 사람의 잘못을 비판하고 소리높여 정죄하지 않고 자기 할 일을 다하는 것이다. 이런 사람들은 겉으로 보면 아무것도 아닌데, 접촉하면 할수록 무서운 감전을 받는 고압선과 같은 그리스도인이다.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이 조롱과 밟힘을 당하고 있다. 맛을 잃어버렸기 때문에 밟힌다. 타협하지 말라. 구별되라. 책임있게 말하고 행동하라. 녹아지는 생활, 침투하는 실천이 있게 하라. 그때 세상은 변화될 것이다.

 

 세상의 빛

그리스도인은 세상 속에서 그 진실성이 나타난다. 예배드릴 때, 교회 왔을 때 우리는 환경에 휩싸여 거룩하고 경건한 사람 같다. 그러나 세상 속에서 우리가 어떠한가, 이것이 가장 중요하다. 그리스도인은 세상과 동떨어진 삶을 살지 않는다. 세상 한 복판에서 소금이 되고 빛이 되어야 한다. 소금은 안으로 소리없이 녹아지는 것이고, 빛은 드러나게 바깥으로 뻗어나가는 것이다. 소금으로 녹아지고 빛으로 드러나라!

예수 믿는 우리는 또한 믿음 안에서 세상을 바로 알아야 한다. 세상과 그 세상 가운데 주인공으로 사는 인간에게는 양면이 있다. 선과 악, 빛과 어두움, 낮과 밤, 생명과 죽음이다. 사람들은 이 두 가지 측면 때문에 세상과 인간에 대하여 속아넘어가기 쉽다. 왜냐하면 두 가지 측면이 다 있지만, 보다 본질적이고 궁극적인 면이 무엇인가를 알아야 한다. 세상에는 선도 있지만 결국은 악이 드러난다. 세상에는 빛도 있지만 결국 어두움이 빛을 삼킨다. 세상에는 생명도 있지만 마지막에는 죽음이다. 물론 이것은 하나님이 창조하신 원래 모습이나 뜻은 아니다. 그러나 인간의 죄와 불순종으로 세상과 인간은 어두움과 죽음이 지배하게 되었다.

그리스도는 세상을 비추는 빛이다. 하나님의 빛이 그리스도를 통해 비췬다. 또한 신자도 빛이라고 말씀하신다. 그리스도는 참 빛이시오 빛의 근원이시다. 신자는 그 빛을 받아 세상에 비추는 반사체요 모사체이다. 하나님을 대면한 모세의 얼굴이 빛났던 것처럼.

따라서 신자가 빛된 역할을 하려면 먼저 마음에 빛을 받아야 한다. 말씀으로 지성이 밝아지고, 성령의 감동으로 감성이 경건하여지며,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따라 빛된 길로 나아가야 한다. , , 의가 빛으로 가득 차면 빛 된 사람이 될 수 있다. 빛이 없이는 빛을 비출수 없다. 근원이신 그리스도께 얼마나 가까우냐가 빛이 되느냐 마느냐를 결정한다.

 

빛의 역할

첫째로, 빛은 어두움을 물리친다. 빛이 있으면 절대 어두움이 존재할 수 없다. 어두움은 곧 빛의 없음이다. 빛이 밝으면 어두움이 있을 수 없다. 죄를 죄로 알지 못하는 것은 진리의 빛이 밝게 비추지 않았기 때문이다. 잘못하면서도 자기의에 빠져 잘못인 줄 모르는 사람은 빛이 밝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의 빛을 받으면 제일 먼저 어두움이 떠나간다. 태초에 빛이 있으라 하시매 빛이 있었다. 베드로는 그리스도를 만났을 때 그 빛을 감당치 못하여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입니다라고 고백하였다. 그리스도를 만난 초대교인들은 가슴을 치고 회개하며 이제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하였다. 바울은 다메섹 도상에서 그리스도 빛을 만났을 때 눈이 멀었다. 어두움의 것을 보던 것들이 끝난 것이다.

또한 빛은 어두움에 속한 것을 쫓아낸다. 빛이 없을 때에는 어두움에 속한 것들이 번성한다. 드러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빛이 비취면 어두움에 속한 것들이 쫓겨나게 된다. 겨우내 거름더미를 해두면 퀴퀴한 냄새와 함께 온갖 미생물이 산다. 쇠스랑으로 거름더미를 한 삽 뒤집어보면 그 속에 온갖 벌레와 지렁이들이 정신없이 도망간다. 어두움에 속한 것들은 빛이 오면 도망간다.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은 예수 오시기 전에는 제일 거룩하고 참된 것 같았다. 그러나 빛이신 예수님이 오시니 어두움에 속한 그들의 본성이 드러났다. 태양빛이 나타나니까 그들은 도망가거나 자기를 차단하거나, 예수를 미워하고 쫓아내려 하였다.

많은 부인들은 남편이 예수 믿게 되는 것을 소망한다. 그런데 남편이 회개하고 예수믿기 시작했다. 너무 말씀대로 잘 믿으려고 한다. 빛이 임하니까 어두움에 속한 것을 다 버린다. 하루 종일 예수님을 생각하고 매일 교회를 중심으로 산다. 부인이 당황해서 그렇게까지 믿으라는 것은 아닌데 하면서 부부 싸움을 하기까지 한다. 남편의 삶에 임한 빛이 어두움에 속한 부인의 위선까지 물리친 것이다. 자녀들이 예수 믿게 해달라고 기도한다. 그러다가 자녀들이 성령충만하여 헌신하니까 오히려 부모들이 당황하기 시작한다. 부모들 속에 있는 거짓 믿음이 노출되어 버리는 것이다.

 

둘째로, 빛은 빛에 속한 일을 하게 한다. 어두움에 있을 때에 하던 일을 밝을 때에는 하지 못한다. 드러나 있고 환하기 때문에 낮에는 단정이 행하게 된다. ‘어두움의 일을 벗고 빛의 갑옷을 입자, 낮에와 같이 단정히 행하고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입고 정욕을 위하여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 말라!’(13:12-14)

어두움에 속한 사람들과는 무언가 다르다. 라이프 스타일이 달라진다. 예수 스타일이 된다.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하는 양식의 기준이 달라진다. 이렇게 되면 어두움과의 싸움이 시작된다. 어두움에 속한 사람들이 무언가 다르다는 것을 알고 공격하며 시비한다. 충격을 받는다.

가치관이 달라진다. 무엇을 더 우선되게 삼느냐? 시간 사용하는 법, 돈 쓰는 법, 하나님과 사람을 섬기는 법, 자녀 교육관, 직장 생활 등등. 과거에는 자녀들이 좋은 대학가서 좋은 직장 얻고 좋은 배우자 얻는 것이 목표였으나, 그것이 인생의 전부가 아니라고 생각하게 된다. 세속적인 경쟁사회에서 더 이상 자녀를 비인격적으로 다루지 않고 하나님의 형상을 지닌 최고의 기업이라고 느끼게 된다. 인간화와 복음화를 생각하게 된다.

직업이나 생활에 있어서도 외적 성공이나 물질적인 표준이 변화된다. 돈을 벌고 권력을 쥐는 것이 과거의 직업관이요 생활관이나, 빛을 만난 후에는 더 영원한 가치와 일에 관심을 가지고 시간과 물질을 쓰게 된다. 그런 조건에 따라 성공을 평가할 때는 기쁨이 없고 평안이 없다. 늘 상대평가이기 때문에. 일등과 승리와 세상적 성공이 아니면 안되기 때문에. 그러나 빛이 임하면 그냥 기쁘고 감사하고 있는 그대로 사랑하게 된다. 괜히 기도하다 눈물이 나고, 하늘을 쳐다보아도 땅을 바라보아도 노래가 나온다. 여러분은 빛에 속하였나? 여러분의 등불은 환히 켜졌는가, 아니면 꺼져있는가?

 

등경 위에 두어라

말 아래 두지 말고 등경 위에 두라는 말씀은 높이 들려서 세상을 비추라는 뜻이다. 숨겨두면 안된다. 우리 믿음을 고백하고, 우리가 예수 믿는 사람이라는 것을 시인하라. 사람들 앞에서 나를 시인하면 천국에서 나도 너희를 시인하고, 부인하면 부인하리라! 교회 가면서도 저어기 가요~’ 이런 막연하고 애매한 신앙생활을 하지 말라.

생활 속에서 표현하고 드러내고 실천하라. 예수 스타일의 삶이 되도록 노력하라. 예수 냄새, 예수 향기. 속에서 익어 향기가 되어 나타나야 한다. 예수처럼 말하고 예수처럼 행하여 예수의 십자가 사랑이 자연스럽게 열매로 나타나게 하는 것이다. 처음에는 모르나, 아하 이것이 예수 스타일이구나 알게 된다. 그런데, 너무 갖다붙인 예수 냄새가 있다. 역겹다. 반감을 일으킨다. 자신도 감당하지 못할 것을 다른 사람에게 강요한다. 예수 냄새를 진하게 풍기나 실상은 없다.

먼저 소금처럼 맛을 간직하라! 먼저 믿음의 내용과 열정을 내 안에 가리자! 그리고 나서 등경 위에 들려야 한다. 등경, 룩크니아는 교회를 가리키기도 한다. 그러므로 너희 빛을 교회에 두어라는 뜻으로 해석할수 있다. 교회는 거룩한 곳, 믿음의 공동체이다. 믿는 사람은 교회에서 먼저 빛을 점화하고 자라게 해야 한다. 교회에서 말씀으로 짭잘해져야 한다. 빛이 타올라야 빛을 비출수 있기 때문이다. 교회에서 새는 바가지 바깥에 나가도 샌다. 소금이 되고, 빛이 되자! 소금으로 녹아지고, 빛으로 등경 위에서 비추자! 교회에서 꺼지는 불, 바깥에서는 더욱 타오를 수 없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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