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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 사랑하라!" (요13:34-35) [2026년 1월 4일, 성탄후둘째/ 신년주일]
2026-01-04 13:51:38
박신진 목사
조회수   7
설교일 2026-01-04
설교말씀 요한13:34-35
설교제목 "서로 사랑하라!"

서로 사랑하라!”

요한 13:34-35

202614[성탄후 둘째/ 신년주일]

 

새해 인사, 신년 평강! <새해에는 평안하시기를 바랍니다!> 건강하시고 가정이 두루 평안하시며 하는 일들이 잘되기를 바란다. 한해 전, 25년 초에 감독회장은 새해를 맞이하며 새 출발을 다짐한다면서, 갈렙과 같이 믿음의 눈을 떠서 보이지 않는 저 너머의 영원을 보는 눈을 가지기 바란다고 하였다. 저는 거기에 한 가지를 더하여 덕담하겠다. 믿음의 눈과 현실의 눈을 함께 뜨라! 새해에는 믿음으로 위대한 천국을 바라보고, 지혜의 눈을 떠서 현실에 합당한 행동과 삶을 살아내는 제일 성도들이 되기 바란다.

 

기독교는 사랑의 종교요 교회는 사랑의 공동체이다.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창조가 이뤄졌고 예수님의 사랑 안에서 사죄의 은혜가 나타났다. 그러나, 사랑의 공동체라고 자신있게 말할 만큼 사랑을 실천하고 사랑 안에 거하고 있는지 돌아보게 된다. 말과는 달리 사랑의 실천이 개인 생활이나 교회 전반에서 뒤떨어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음을 우리는 인정할 수밖에 없다. <세상 모두 사랑 없어 냉랭함을 아느냐/ 곳곳마다 사랑 없어 탄식소리 뿐일세./ 악을 선케 만들고 모든 소망 이루는/ 사랑 얻기 위하여 저들 오래 참았네.> 3절은 이렇게 이어지고 있다. <어떤 사람 우상 앞에 복을 빌고 있으며/ 어떤 사람 자연 앞에 사랑 요구 하도다./ 먼저 믿는 사람들 예수 사랑 가지고/ 나타내지 않으면 저들 실망하겠네.>

우리가 실제로 사랑하려면 우리 생활에 구체적으로 반영되어야 하고, 교회의 프로그램과 활동에 나타나야 하는데, 이 일이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말로는 쉽지만 실천에는 많은 어려움이 따르고 희생이 있기 마련이다. 은평구 어떤 교회에서 결핵에 걸려 죽어가는 사람을 불쌍히 여겨 결핵약을 먹이고 주사를 맞게 하고 영양에 도움이 되는 음식을 주면서 도왔다. 결핵약을 많이 먹기가 싫으니까 이 사람이 자포자기하여 안 먹으려 하는 것을 교인들이 지켜 서서 먹게 하였고, 소화 흡수가 잘 안되어 소화제까지 먹여가며 병을 낫도록 엄청나게 노력했다. 이렇게 8개월을 하니 드디어 완치되었다. 본인은 물론 도와준 교인들도 함께 기뻐하였다. 그런데, 이 사람이 병이 다 나으니까 술을 먹고 아내를 매일 구타하는 게 아닌가? 그 아내가 교회에 와서 원망하기를 차라리 그 사람 결핵으로 죽게 했으면 우리가 마음 편히 살았을 `텐데 왜 고쳐놓아 속을 썩이냐고 했다.

사랑은 정말 쉽지 않다. 올해 우리교회가 <서로 사랑하는 교회>라는 표어를 가지고 시작하는데, 사랑이 쉽지 않다는 것을 먼저 알고 출발해야 한다. 사랑에는 많은 인내가 필요하고 희생이 필요하다. 에리히 프롬은 <사랑의 기술>이라는 책에서 사랑은 마음만 가지고는 안되고 그만한 인격과 훈련이 있어야 제대로 실천할 수 있다고 했다. 어린아이들이 밥을 먹거나 걸음을 걷는 것도 수많은 실패와 실수를 이겨내며 훈련해야 되듯이, 사랑도 훈련하고 노력하며 인내해야 할 수 있다.

사람들이 한두 번 사랑의 실천을 해보다가 그 결과가 잘 나타나지 않고 어려움에 부닥치게 되면 그만두어버리기 때문에 결국 사랑을 행하지 못하고 말만 하다가 말게 된다. 마음만 가지고는 안 된다. 주님이 원하시는 사랑은 마음만 가지고 말과 혀로만의 사랑을 하는 것이 아닌, 행함과 진실함으로 인내하고 희생할 줄 아는 사랑이다.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서로 사랑하자! 사랑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 사랑하는 자마다 하나님께로부터 나서 하나님을 알고,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요일4:7-8)

 

여러분의 가정이 사랑으로 가득해지기 바란다. 여러분의 생활이 사랑의 실천으로 아름다워지기 바란다. ‘자녀들아, 우리가 말과 혀로만 사랑하지 말고 행함과 진실함으로 하자! 이로써 우리가 진리에 속한 줄을 알고 또 우리 마음을 주 앞에서 굳세게 하리니. 이는 우리 마음이 우리를 책망할 일이 있어도 하나님은 우리 마음보다 크시고 모든 것을 아시기 때문이라.’(요일3:18-20) 말과 혀로만이 아닌 행함과 진실함의 사랑을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생각해보라!

 

1.사랑을 실천하려면 따로 놀지 말고 <함께 해야> 한다. 사랑의 실천에 있어 처음이요 나중이 되는 것이 함께 하는 것’(companionship)이다. 경상도 말로 우야든동 함께 해라!’ 사랑은 교회당에 앉아서 더러운 세상을 떠나서 교회로 들어오시오라고 하는 것으로는 안되는 거다. 사랑이 필요한 사람들, 문제 있는 사람들과 같이 산다는 것이 중요하다. 교회 안으로 너무 끌어 들이려고만 하고, 우리 수준으로 자꾸 올라오라고만 하지, 그 사람들 수준으로 내려가는 것을 하지 못하고 있다. 예수님은 죄인된 우리와 함께 하시기 위해 베들레헴의 말구유로 오셨다. 함께 낮춰줘야 하고, 내려가야 한다. 사랑은 어두움과 고난과 아픔이 있는 곳에 함께 있는 것이다. 새해 배너를 보라, 예수님이 키를 잔뜩 낮추셔서 아이같은 우리를 사랑하시고 우리와 키를 맞추어 주신다! 그러니 우리도 죄인들, 불량한 사람들이라도 키를 낮추어 함께 할 때 사랑이 이뤄지지 않겠는가?

어떤 사람이 사랑을 실천하기 위해서 어려운 중에도 돈이 필요한 사람에게 돈을 빌려주고 보증을 서주었다. 나중에는 돈이 많은 줄 알고 너도나도 돈을 꾸러 왔다. 그래서 무슨 돈이 있다고 자꾸 돈을 꾸러 오냐고 했더니, 누구는 꿔주고 누구는 꾸어주지 않으니 사람 차별한다고 크게 화를 내면서 원수를 삼았다. 그래서 그 사람 입장에서 바라보니, 꿔준 내가 꿔주더라도 지혜롭게 하지 못한 것을 알았다. 차츰 사람들 모습이 이해되고 대화가 되며 조금씩 사랑을 할수 있게 되었다. 함께 하기!! 이해하고 같이 있어주는 것이 사랑이다.

가족들끼리 비난하거나 정죄하거나 도망하지 않고 그 아픔을 내 아픔으로, 그 약점을 내 약점으로 받아들이고 함께 할 때 사랑이 실천된다. 어려울 때 어려움을 함께하며 이해한 가족들은 사랑으로 어려움을 이겨낼 수 있었으나, 서로 비난하고 정죄하며 자기들 입장만 주장하던 가족들은 이혼하거나 고통을 이기지 못하고 해체되는 아픔을 겪었다. 특별히, 어려울 때, 내 뜻대로 잘 안될 때, 어려운 상황이 오래 지속될 때, 가족들이 함께 하느냐, 함께 하지 못하느냐에 그 가족의 행, 불행이 달려있더라!

 

2.사랑은 <스스로 설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다. 어린이를 사랑한다고 자꾸 주면 어린이를 망치기 쉽다. 결혼한 자녀들은 자꾸 도와주지 말고, 스스로 서게 하는 것이 원칙이다. 물론 예외도 있을 것이다. 자꾸 주기만 하면 거지근성을 길러주고 나중에는 원망을 듣게 된다. 무조건 준다고 사랑이 아니라 스스로 설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 사랑이다. 자식을 사랑할수록 자식의 인격과 자존심을 세워 자립하게 해야 하는데, 자녀들이 해야 할 일을 부모가 늘상 대신해 주며 키우면 게으름뱅이 바보가 되고 만다.

잘못하고 있는 사람들도 사랑한다고 자꾸 잘했다고만 하면 자신의 잘못을 고칠 줄을 모르게 된다. 사랑은 분명한 판단력을 가지고 해야 할 일을 할 수 있도록 사람을 일으켜 세우는 것이다. 절대 꾸짖지 않고 무조건 격려하고 칭찬만 하는 것은 위험한 사람이 죽도록 내버려 두는 것일 수도 있다. 한국교회는 교인들이 너무 목회자만 의지하고 아이같은 교인을 양산하고 있다. 겨우 세례받은 신자나 수십 년을 믿은 신자나 신앙적으로 발전하지 못한 경우가 많다. 어린아이와 같은 신앙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무조건 믿는 미신적인 신앙을 조장해서는 안된다. 무지몽매에 빠진채 늘 남을 의지하고 스스로 설줄도 모르면서 사랑한다 하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요일3:7을 보면, ‘자녀들아, 아무도 너희를 미혹하지 못하게 하라! ... 죄를 짓는 자는 마귀에게 속하나니.’

스스로 서게 하는 것이 사랑이라면, 자식의 잘못을 방관해서는 안 된다. 남편이나 아내의 잘못을 방임하는 것은 함께 죄를 짓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형제자매들이 잘못된 길로 가는데 가만두는 것은 사랑이 아니라 위험에 이르도록 방관하는 것이다. 믿음의 가족들이 신앙과 삶에 잘못한다면, 내가 오해를 받더라도 바로 세워주어야 할 책임이 우리에게 있다. 그냥 웃으며 괜찮아, 어때?” 하면 그 사람이 자신의 잘못을 잘하는 일로 오해하여 대담하게 죄를 짓거나 잘못된 길로 갈수 있다. 논쟁을 하고 불편해지더라도 배려와 돌봄으로 바로 잡는 것이 사랑이다. 사랑 안에서 격려하고 기도하면서 스스로 설 수 있게 도와주자!

 

3.사랑은 <예수 복음을 전해주는 일>이다. 전도하는 것보다 더 큰 사랑이 없다. 전도는 많은 선한 일 중에서 그 사람의 내면, 영혼을 바른 길로 인도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웃이 잘못하는 것을 보면서도 괜챦아, 그럴 수도 있지 하는 것은 사랑인 것 같지만 사실은 그 사람을 죽이는 일이다. 목마른 사람에게 물을 주는 것은 물 마시는 얼마간 기쁨을 주고, 빵을 하나 주는 것은 한나절을 기쁘게 해줄 수 있지만, 예수 복음을 주는 것은 평생 죄악과 어둠에서 나오게 하는 일이다. 교회를 데리고 나오고 복음을 듣게 하며, 많은 대화와 인도를 통해 복음의 길로 나오게 하는 것이 진정한 사랑이다.

지역사회를 돌아보니, 이제는 와서 이야기를 해달라거나, 청소나 밥을 해달라는 것보다 돈을 달라는 분들이 많다. 한 주간을 지나다보면 그런 전화를 몇 번씩 받는다. 목소리를 다 죽어가게 하면서, ‘하나님을 섬기니까 사람도 도와주지 않아요?’ 하면서 자기에게 돈을 좀 줄 수 없느냐고 한다. 모든 것이 돈으로 환산되는 시대이다. 그러나 돈보다 귀한 것이 있으니, 복음을 주는 것이다. 어떤 감옥에서 원한에 가득차 세상을 미워하고 자기를 기소하고 재판한 검사와 판사를 미워하던 죄수가 있었다. 이 사람의 큰 걱정은 자기가 출소하기 전에 자기를 재판한 판검사가 죽는 것이었다. 제 손으로 그 판검사들을 죽여야 하는데 먼저 죽으면 원수를 갚을 수 없다는 것이었다. 그런 사람은 돈도 필요 없고 집도 필요 없다. 원한에 차서 자면서도 이를 벅벅 갈면서 욕을 해대는 삭막한 영혼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그 죄수에게 예수가 들어갔다. 복음이 들어간 것이다. 그랬더니 그 사람 영혼이 고결하고 아름다운 영혼으로 바뀌어 새사람이 되었다. 이 사람이 예수님을 영접하고 눈물뿌려 회개한 다음에 자기에게 전도한 사람에게 말하기를, 자기가 새사람 되었다는 표로 예수님께 무언가 선물을 하고 싶은데 가진 게 아무 것도 없으니까, 감옥 안에서 사람들이 제일 싫어하는 변기청소를 하겠다고 자원하였다. 이 악질 죄수가 이렇게 변하니까 감방 분위기가 싹 변하여 모두가 복음을 듣고 예배를 드렸다. 그래서 감방교회가 되었단다.

복음 전하는 것은 그냥 전도지 들고 사영리 설명해주고 영접기도 따라하게 한 뒤에 그 주일에 교회로 불러 등록시키면 다 된 것이 아니다. 반복하여 구원의 도리를 설명해주어야 하고, 거기에 합당한 사랑과 돌봄, 관심과 기도가 따라야 한다. 그 무엇보다 이 모든 과정에 예수님의 사랑이 흘러들어가 메마른 영혼을 죄와 허물에서 건져내도록 해야 한다!

 

4.사랑은 <서로 나누는 것>이다. 줄 줄도 알아야 하지만 받을 줄도 알아야 한다. 사랑에 갈급한 사람은 사랑을 줄 줄도 알아야 하지만 먼저 사랑을 받을 줄 알아야 한다. 이 주는 것과 받는 것이 적당하여 잘 될 때 사랑이 이뤄진다. 여자 교인이 친절하게 다가가 복음을 전하면 많은 남자들이 자기를 좋아해서 관심을 가지는 줄 알고 이상하게 반응을 한다. 이럴 때 관심을 그냥 관심으로, 영혼에 대한 돌봄과 안내이면 그냥 돌봄으로 받아야 하는데 그러질 못한다. 서로 나누어야 한다. 소통이 이뤄지는 것이 사랑이다. 가진 사람들만 나누는 것이 아니라 없는 사람들도 나눌 수 있다. 콩 한쪽이라도 나눌수 있고, 콩 한쪽도 없을 때는 보이지 않는 것으로 나눌 것이 너무 많다. 따뜻한 사랑의 눈빛, 위로와 격려의 말, 신앙고백과 간증들을 나누면 사랑이 풍성해질 것이다.

열심히 나누시라! 소극적인 사랑은 열매가 빈약하다. 자기를 열어보이고 마음과 마음이 만나지도록 열심히 나누시라! 돈이 있으면 돈을 나누고, 밥이 있으면 밥을 나누고, 건강이 있으면 몸으로 봉사하고, 시간이 있으면 시간을 바쳐 함께 있어주면 된다. 사랑은 절대 무리해서 되는 것이 아니다. 오늘 사랑하고 내일 미워하는 것은 사랑이 아니다. 그냥 내 삶 속에 이웃이 기쁘게 같이 있도록 마음을 열고 가진 것을 나누는 것이다.

 

전라남도 고흥군에 속한 소록도는 한센병 환자들을 향한 사랑이 꽃피는 사랑의 섬이다. 나병이라고도 하는 한센씨병은 천형이라고 해서, 한번 걸리면 사회와 격리되고 가족들과도 헤어져서 살 수밖에 없는 무서운 병이기에 환자들은 소록도에 따로 모여서 살아가야 했다. 그러나 거기에는 말없이 수고하고 사랑함으로 그들과 함께 걷는 봉사자들의 손길이 있었다. 새벽이면 바람에 실려 종소리가 울렸고, 누군가는 환자들의 식사를 준비했고, 누군가는 아픈 몸을 이끌고 밭을 일구었다. 사랑은 거창한 것이 아니었다. 상처난 발을 씻겨주는 사람, 편지를 대신 써주는 사람도 있고, 누군가는 병실에 앉아 하루종일 이야기를 들어주기도 하였다. 그들에게 가장 큰 치료는 약이 아니라, “당신은 혼자가 아닙니다!”라는 눈빛과 손길이었다.

의료인들과 목회자나 선교사들 가운데, 외부로 나가면 정상적인 삶을 누릴 수도 있었지만, 스스로 소록도를 택한 사람들도 있다. 푸른 눈의 외국인 자매들도 있어, 평생을 소록도 한센인들을 위한 사랑의 봉사자로 산 사람들도 있다. 소록도에서 피어난 사랑의 이야기는 특별한 영웅들의 이야기가 아니라, 오늘의 삶의 자리에서 실천할 수 있는 삶의 방식임을 우리에게 일깨워준다.

어디서나 사랑은 실천, 봉사다. 사랑은 너와 나 사이에 있는 그 무엇이다. 인생은 내가 가지고 있거나, 남이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 나와 너 사이, 함께 하는 그 삶의 자리에 핵심이 있다. 여러분의 생활 주변에서 사랑이 나타나기를 바란다. 여러분의 매일 매일의 삶이 사랑으로 가득한 삶이 되기를 축복한다. 남의 도움이 전혀 없이 살 수 있는 사람도 없고, 남을 도와줄 것이 전혀 없는 사람도 없다. 우리는 돕고 도움받으며 살게 될, 누구나 사랑이 필요한, ‘사랑의 불치병 환자들이다!

 

자녀들아, 우리가 말과 혀로만 사랑하지 말고 오직 행함과 진실함으로 하자. 초대 요한교회에서도 말과 혀로만 사랑한 사람들이 많았던 모양이다. 그때나 지금이나 진실한 사랑을 실천하기는 어렵고 그런 사람은 많지 않았던가 보다. 그러니, 오늘부터 주 안에서 사랑을 이루는 성도들이 되라! <함께 있어줍시다. 바로 잡아주며 스스로 설 수 있게 합시다. 복음을 전해줍시다. 나누며 삽시다.> 그때 바로 천국이 우리 삶에 임할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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