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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예수와 함께 (누가2:41-51) [2025년 12월 27일, 성탄후첫째/ 송년주일]
2026-01-04 13:47:51
박신진 목사
조회수   7
설교일 2025-12-28
설교말씀 누가2:41-51
설교제목 다시 예수와 함께

다시 예수와 함께

누가2:41-51

20251227[성탄절후 첫째주일, 송년주일]

 

연말이라 만나야 할 사람도 많고 챙겨야 할 일들도 너무 많아 분주하기 이를 데 없다. 이럴 때 급하게 달려가다 불쑥 내 앞에 다가올 새해를 생각하면 좀 쉬었다가 가고 싶고, 어딘가에서 좀 멈추고 싶은데, 그러지 못하고 송년주일을 맞이하고 말았다. 한 젊은 권사가 내게 목사님, 학교 다닐 때는 수업 50분이 그렇게 길 수가 없었고, 하루 지나가는 게 오래 걸렸던 것 같은데, 점점 세월이 빨리 지나가는 것 같아요. 한달 일년이 금방 지나가네요하더라! 정말 세월이 쏜화살과 같이 지나가버렸다.

오늘 본문은 너무도 익숙하고 알려진 말씀이지만, 그 깊은 뜻을 새기지 않고 쉽게 지나쳐버리는 본문이다. 소년 예수가 열두 살 되었을 때, 부모님과 함께 예루살렘에 올라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하룻길을 가도록 보이지 않으셨던 사건이다. 소년 예수 실종사건이랄까? 부모는 하룻길을 돌아오면서 찾았고, 예루살렘 성전에서 사흘 후에야 찾게 되었다. 예수는 마침내 성전에서 율법교사들 가운데 앉아계시며 율법을 가지고 대화하는 가운데 발견되었다. 이 본문을 통해 우리는 한가지 중요한 신앙적 질문을 마주하게 된다. “나는 지금 예수와 함께 가고 있는가?” 하는 질문이다. 오늘 우리는 <다시 예수와 함께>라는 주제로 이 문제를 생각해보고자 한다.

 

1. 함께 간다고 생각했으나, 함께 있지 않았던 시간

예수님이 열두 살 되었을 때 부모를 따라 나사렛에서 예루살렘으로 여행을 했다. 본문 43절을 보면 이런 말씀이 나온다. “그 날들을 마치고 돌아갈 때에 아이 예수는 예루살렘에 머무셨더라. 그 부모는 이를 알지 못하고.” 요셉과 마리아는 예수님이 당연히 일행 중에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친척들과 함께 움직였고, 많은 순례자들이 있었기에 굳이 확인하지 않았다. 함께 있다고 생각한 것과 실제로 함께 있는 것사이에는 큰 차이가 있다.

그 거리는 서울에서 원주보다 조금 먼, 80마일 정도이고, 길이 평탄치 않았으며 걸어가야 했다. 예루살렘 성전예배를 드리기 위해서 올라갔던 것이다. 그런데 예루살렘에서 모든 의식을 끝내고 무리들이 고향으로 돌아올 때 소년 예수는 동행하지 않았다. 나사렛 여행단의 행렬은 매우 길어서 그 전체를 다 보려면 온종일이 걸렸다고 한다. 이들이 고향으로 돌아갈 때는 여자들과 어린아이들이 한 무리를 이루어 앞서서 가고, 남자들과 조금 큰 아이들이 그 뒤를 따랐다. 그런 까닭에 마리아는 예수가 보이지 않는다고 할지라도 그가 남자들의 무리에 있는 것으로 생각했고, 또 요셉은 그가 어린 소년들의 무리에 끼어있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요셉과 마리아는 귀향길에 분주하여 예수를 챙기지 못한 채 돌아오고 말았다. 하룻길을 걸어가면서도 당연히 예수가 있으려니 하였다. 귀향하는 무리들이 날이 어두워지면서 가족별로 인원을 점검하였는데, 요셉과 마리아는 그때서야 예수가 보이지 않음을 알게 되었고 깜짝 놀랐다. 다음날 귀향길에 오른 사람들 앞뒤를 살피면서 하룻길을 찾았다. 늘 자상하게 예수를 돌보았던 마리아와 요셉도 예루살렘에 머무는 동안 여러 일에 마음이 나뉘다보니 정작 예수가 없는 것을 모르고 여행길을 계속했던 것이다.

한해를 마치며, 여러분은 혹시 예수 그리스도와 동행하지 못하고 그분을 잃고 있지 않았나? 세상일에 분주하고 인간적인 생각이 앞서서 우리의 삶과 믿음에서 예수님을 잃어버리지 않았는지? 주님과의 만남, 주님과의 교제, 주님께 집중하는 영적 생활을 하고 있는가? 주님과 교회를 위하여 봉사하는 중에도 예수를 잃어버릴 수 있다. 형식과 습관과 편리한 방식에 매여 교회생활을 하다보면 예수 없이 교회생활을 하고, 예수 없이 예수를 섬기는 모순이 생길 수 있다. 문제는 예수를 잃어버렸으면서도 예수를 잃었는지 모르고 있다는 사실이다.

우리의 신앙도 이와 비슷하다. 우리는 나는 예수 믿는 사람이다”, “교회 다닌다”, “기도한다라고 말한다. 그러나 정작 하루의 선택과 결정, 감정과 우선순위 속에서 예수님은 보이지 않을 때가 많다. 신앙의 관성, 익숙함 속에서 예수님이 내 삶의 중심에서 빠져나가신 줄도 모른 채 걸어가고 있다. 요셉과 마리아는 하룻길을 간 후에야 예수님이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신앙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잃어버린 하룻길인지도 모른채 멀쩡하게 교회생활을 하는 사람들을 볼 수 있다. 한순간에 멀어지는 것이 아니라, 하루하루 조금씩 예수 없이도 괜찮다고 느끼며 살아가다 보니 어느새 거리가 생긴 것이다.

 

2. 잃어버린 예수를 찾기까지의 사흘

본문 45절은 이렇게 말한다. “만나지 못하매 찾으면서 예루살렘에 돌아갔더니.” 예수를 잃어버린 사실을 깨달은 후, 그들은 즉시 방향을 바꾼다. 예루살렘으로 돌아간 것이다. 예수님을 다시 만나기 위해서는 반드시 돌아가야 할 길이 있다. 신앙은 언제나 회복의 방향이 분명하다. 그리고 사흘 만에 예수님을 찾았다. 사흘은 단순한 시간의 길이만이 아니라, 부모의 불안, 자책, 간절함이 응축된 시간이었을 것이다. 예수님을 찾는 과정은 언제나 쉽지 않았다. 그러나 그 사흘의 시간은 헛되지 않았다. 왜냐하면 예수님은 성전에서, 곧 하나님의 말씀 가운데 계셨기 때문이다.

잃어버린 예수를 다시 찾느라고 그들은 사흘이 걸렸다. 하루는 모르고 왔고, 하루는 되돌아갔으며, 사흘째가 되어서야 비로소 예수를 찾았다. 그러나 예수 없이 갈 수는 없는 길이기에 그 사흘은 결코 낭비가 아니었다. 제일 한심스런 날이 모르고 갔던 하루다. 여러분의 신앙이 예수가 함께 있지 않고 제 기분과 의지에 따라 점점 멀어져가는 어리석은 하루와 같은 신앙이 되지 않기를 바란다. 갈수록 점점 멀어진다. 그나마 예수가 없음을 알고 찾는 하루는 복되다. 예수가 없어 애를 쓰지만 그러나 예수를 찾아가는 여정이다.

지난 한 해 동안 우리 신앙의 길을 한번 돌아보자. 혹 예수 없이 여기까지 왔다면 어디에서 예수님을 잃어버린 것인지 살펴보라. ‘나는 오래 믿었기 때문에 당연히 예수님이 나와 함께 하실 거야하는 그릇된 믿음에 머물러 있지 말아야 한다. 우리 부모님이 충성하는 임원이니까 예수님이 함께 하실 거라고 속단하지 말라. 내가, 내 마음과 의지가 주님을 사랑하며 주님과 만나며, 주님과 동행하는지를 물어보아야 한다. 예수 그리스도는 당신이 기뻐하시는 곳에 계신다. 우리가 그분을 잃어버리지 않고 그분과 함께 하려면 그분의 영광의 이름에 합당하도록 믿고 따라야 한다.

여러분의 생활에 예수가 어디에 계시는가? 예수를 찾으라! 예수를 회복하라! 우리가 다시 예수를 만나고자 할 때, 그분은 늘 같은 자리에 계신다. 말씀의 자리, 기도의 자리, 예배의 자리이다. 우리가 멀어진 것이지, 주님이 떠나신 적은 없다. 우리 교회생활은 하나님께 예배와 성도들의 친교가 핵심 가치이다. 이 중심을 바르게 하고, 기도와 말씀으로 경건생활에 힘쓰고, 전도와 봉사로 주의 뜻을 실천하는 것이다. 그런데 그리스도와 함께 하는 이런 건강한 신앙생활을 잊어버리고 지극히 미미한 상태로 주변을 서성이고 있는 아웃사이더 신앙인들이 있다.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예수를 잃어버린 것이다.

 

성전에서 예수를 찾은 마리아는 아이야, 어찌하여 우리에게 이렇게 하였느냐? 보라 네 아버지와 내가 근심하여 너를 찾았노라고 걱정에 차서 속상한 감정을 표했다. 그러자 예수께서 어찌하여 나를 찾으셨나이까, 내가 내 아버지 집에 있어야 될 줄을 알지 못하셨나이까라고 대답했다. 육신의 부모님에 대한 순종과 하늘 아버지에 대한 절대적 순종 사이에 긴장관계가 나타난다.

물론 예수님은 사람으로 이 세상에 오셨기에 육신의 부모에게 순종했다. 그러나 하나님의 뜻을 받드는 데 우선순위를 두셨다. 물론 우리는 자녀로, 사회인으로 인간적인 의무를 결코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 그러나 어떤 것에 더욱 중요한 우선순위를 두느냐의 문제가 나올 때 신앙생활을 우선하는 믿음의 결단을 할 수 있어야 한다.

 

3. 성전에 계신 예수

예수님은 어머니 마리아의 말에 이렇게 대답하신다. “내가 내 아버지의 집에 있어야 될 줄을 알지 못하셨나이까?”(49) 이 말씀은 예수님의 정체성을 처음으로 분명하게 드러내는 고백이다. 예수님은 단순히 부모를 따라다니는 아이가 아니라, 하나님의 뜻 안에 사는 존재이셨다. 여기서 예수가 어디에서 무엇을 하였는가에 우리는 주목해야 한다. 예수는 성전에 계셨다. 나사렛에서 예루살렘으로 가는 길에는 소년의 관심을 끌 수 있는 것이 많이 있었다. 오래된 전쟁터도 지나갔고, 아름다운 동산에 피어있는 꽃도 그의 눈길을 끌었을 것이다. 주막에 매어있는 말이나 사람들이 모여 물건을 사고파는 시장도 그의 눈에 신기했다. 그러나 소년 예수는 성전에 계셨다.

예수와 함께 다시 시작하려면 성전, 즉 교회에 와야 한다. 예배드리는 곳, 말씀 배우는 곳, 성도의 교제가 이뤄지고, 주께 한 마음으로 섬기는 곳에서 시작해야 주님과 함께 갈 수 있다.

 

고양교회 어느 여자 집사, 아이들에게 그리 자상하게 하는 엄마가 아니었다. 아버지와 형제들이 거의 의사여서 부자 집 딸로 자랐는데, 집의 일이 잘 풀리지 않아 꽃 농장 비닐하우스에서 살았다. 아이들이 착하고 똑똑했지만 좀 힘들어 했다. 그래도 한 가지, 아이들 교회생활만은 철저하게 시켰다. “죽더라도 교회 앞에서 죽어라!” 자녀들이 잘 되었다!

 

예수는 말씀을 나누고 있었다. 예수와 함께 하려면 말씀으로 돌아와야 한다. 소년 예수는 선생들 중에 앉아 말씀을 듣기도 하고 묻기도 하였다. 말씀이 어느 때보다 넘쳐나는, 말씀의 홍수시대이지만, 의외로 말씀에 갈증을 느끼는 사람들이 많다. ‘보라, 날이 이를지라. 내가 기근을 땅에 보내리니 양식이 없어 주림이 아니며 물이 없어 갈함이 아니요, 여호와의 말씀을 듣지 못한 기갈이라. 사람이 이 바다에서 저 바다까지, 북쪽에서 동쪽까지 비틀거리며 여호와의 말씀을 구하려고 돌아다녀도 얻지 못하리니, 그날에 아름다운 처녀와 젊은 남자가 다 갈하여 쓰러지리라.’(아모스 8:11-13)

이것은 그냥 설교나 성경공부가 부족해서가 아니라, 진실하게 말씀을 나누는 사람들과의 만남이 부족한 것이다. 사람들은 성경공부에 대해서 말할 때, 무슨 프로그램이나 전문적인지도자들을 자꾸 말하는데, 이것은 초점을 놓친 것이다. 우리에게 이미 성경이 열려있다. 얼마든지 말씀을 들을 수 있도록 많은 기회가 주어졌다. 문제는 진실하게 신뢰하는 모임에서 말씀을 나누고 적용하는 것이다. 속회와 선교회에서 그것을 하라! 그때 예수님과 새롭게 시작할 수 있다!!

 

4. 다시 예수와 함께

그러나 놀라운 사실은, 그다음 구절이다. “예수께서 함께 내려가사 나사렛에 이르러 순종하여 받드시더라.”(51)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시지만, 다시 부모와 함께 내려가 순종의 삶을 사신다. 하나님의 뜻과 일상의 삶은 분리되지 않는다. 참된 신앙은 성전 안에서만이 아니라, 나사렛의 평범한 삶 속에서도 이어져야 한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혹시 지금 우리의 인생길에서 예수님을 잃어버린 채걷고 있지는 않는가? 바쁘다는 이유로, 오래 믿었다는 이유로, 예수님이 당연히 내 삶에 계실 것이라 생각하며 확인하지 않은 채 살아가고 있지는 않는가? 요셉과 마리아는 예수님을 주목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를 잃었다. 사람들과 여행에 몰두한 나머지 예수를 잃었다. 사흘 동안 애쓴 결과 그들은 예수를 발견하고 예수와 다시 시작할 수 있었다. 성전으로 돌아오고 말씀으로 돌아올 때에 잃어버린 예수를 찾게 될 것이다. “내가 아버지 집에 있어야 될 줄을 알지 못하셨나이까?” 여러분의 마음이 갈라져 있다면, 하나로 모아서 성전으로 돌아와야 한다. 여러분의 흩어진 생활과 시간들이 정돈되어 말씀으로 돌아오기 바란다.

죄 사함의 은총은 예수로만 온다. 불교나 유교나 도교로도 좋은 도덕과 종교성을 얻을 수 있다. 마호멧의 코란이나 노자의 도덕경이나 공자의 논어가 우리에게 주는 지혜와 교양은 뛰어날 것이다. 그러나 사람을 죄로부터 구원하여 하나님 나라에 이를 수 있게 하는 길은 오직 예수이다. 그분이 죄를 위해 십자가를 지셨고 그분이 홀로 죽음에서 부활하셨기 때문이다. 다른 방법이 있다면 내게 가르쳐 주라. 예수 없이도 인간이 죄를 근본적으로 해결하여 인간의 참 삶을 회복할 수 있다면 내게 말씀해 주기 바란다. 예수 없이 우리가 잘 해 나갈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교만과 무지에서 오는 착각이다.

 

오늘 본문은 우리에게 말한다. 잃어버렸다면 돌아가라. 불안하고 두렵더라도 찾아 나서라.

그리고 예수를 다시 만났다면, 다시 함께 내려가라. 신앙은 특별한 사건이 아니라, 다시 예수와 함께 살아가는 반복적인 결단이다. 오늘의 가정에서, 일터에서, 관계 속에서 예수와 함께 걷는 것이다.

신앙의 목표는 멀리 가는 것이 아니라, 예수와 함께 한 걸음을 걷더라도 바로 가는 것이다. 속도가 아니라 방향이며, 성공이 아니라 동행이다. 오늘 우리의 기도가 이것이 되기를 바란다. 오늘 말씀은 51절에서 이렇게 끝난다. ‘예수께서 함께 내려가사 나사렛에 이르러 순종하여 받드시더라. 그 어머니는 이 모든 말을 마음에 두니라.’ 부모와 함께 내려와 순종하셨다! 내려와, 교만과 성급함과 무지를 버리고 겸손하게 예수님은 내려와 하나님과 부모님께 순종함으로 본을 보이셨다. 주님, 다시 예수와 함께 걷게 하소서.” “내려와 순종하게 하옵소서!”

 

한해를 마무리하면서 다시 예수님께 집중하자. 다시 예수와 함께 시작하라. 다시 예수와 함께! 여러분 속에 예수를 잃어버린 옛사람의 과거가 지나가 버리고, 예수와 함께 하는 은혜의 새아침이 동터오기를 좋으신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바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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