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전문
| 설교일 | 2026-01-18 |
|---|---|
| 설교말씀 | 잠언15:13-18 |
| 설교제목 | 매일이 잔칫날 |
매일이 잔칫날
잠언15:13-18
2026년 1월 18일 [주현절후 둘째주일]
"사향은 사향노루 속에 있지만,
사향노루는 그것을 찾을 수 없네.
그래서 그것을 찾아 초원을 헤매다닌다네."
(- 인도 시인 까르비-)
사향노루가 자신 안에 있는 사향을 보지 못하고 초원에서 사향을 찾아 헤매이듯, 내면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자신의 정체성을 찾기 위해 일생을 다른 곳을 기웃거리며 헤매이고 있는 우리 자신을 비유한, 인도 시인 까르비의 시이다.
우리 기독교, 특별히 개신교회는 인간의 죄와 허물로 인한 비극적인 상황을 강조하면서 하나님만이 우리 죄를 사하시고 복된 인간의 삶을 가져다주실 수 있다고 믿는다. 거기서 강조하는 것은 두 가지인데, 하나는 인간이 가진, 죽음에 이르는 죄의 본성이고, 또 하나는 우리에게 생명과 복을 주시는,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이다. 인간의 죄와 하나님의 은총을 너무 강조하여 극단으로 나아가 이단이 된 교파가 구원파이다.
그러나 성서에서는 그 사이에 필요한 인간의 지혜를 말하고 있는데, 그것이 바로 잠언과 같은 지혜문학이 추구하는 길이다. 인간의 죄와 하나님의 은혜를 일방적으로 강조하다보니 인간의 역할을 아주 없어졌고, 인간의 전적인 타락과 오직 은혜만 남게 되었다. 사실 성경은 제3의 길을 많이 보여주고 있는데, 그것이 내면의 지혜를 추구하는 인간 책임의 길이다.
인간에게는 죄와 악만 있는 게 아니라 지혜도 있다. 하나님은 인간에게 지혜를 주셔서 자기 내면을 성찰하면서 초월의 길, 행복의 길을 찾게 하셨다. 그것을 정리하여 길을 밝힌 것이 지혜문학으로서 구약에서는 시편 1편을 비롯한 지혜시들이 있고, 잠언이 대표적이며, 욥기와 전도서와 같은 ‘저항의 지혜’, 혹은 ‘회의의 지혜’가 있다. ‘명철한 자의 마음은 지식을 요구하고 미련한 자의 입은 미련한 것을 즐기느니라. 고난 받는 자는 그 날이 다 험악하나 마음이 즐거운 자는 항상 잔치하느니라.’ 오늘 본문 14-15절 말씀이다! 여기서도 명철한 자, 스스로 밝은 자와 마음이 즐거운 자는 항상 잔치한다고 말한다!
억지로 얻는 행복
사람들은 성공의 4요소가 지능지수, 지식, 기술, 자세라고 한다. 이 네 가지 성공의 요소 중 가장 중요한 것은 자세인데, 전체의 90%에 이를 것이라 한다. 아무리 기술이 좋아도 자세가 잘못되어 있으면 그 기술이 잘못 쓰여질 수 있고, 아무리 지식이 있어도 사업가로서, 경영자로서, 학자로서의 자세가 잘못되어 있다면 그 지식이 소용없고, 아무리 지능지수가 높아도 자세가 잘못되어 있다면 오히려 일을 그르친다는 것이다. 그래서 반드시 자세가 되어 있어야 한다. (김삼환 설교집 1집, p.456)
행복도 그러하다. 여러 가지 조건이 있지만, 결국은 자세, 즉 마음이 중요하다. 사람은 누구나 행복하기를 원하고 행복을 찾지만, 모든 사람이 늘 행복한 것은 아니다. 어떤 사람은 평생 행복한 순간을 모아보니 30여 시간 밖에 되지 않았다고 하고, 한 노시인은 말하기를, “지난 75년간 내 생활 가운데 정말 즐거웠던 날은 고작 28일, 그러니까 4주밖에 되지 않았다”고 하였다. 아니, 우리가 얼마나 평생 행복해지려고 엄청나게 애쓰는데, 이렇게밖에 안 되나? 여러분의 생애는 얼마나 행복했으며 즐거웠던 날이 얼마나 되었는가?
행복하기를 바라지 않는 사람은 없다. 그러나, 행복하려고 이것저것을 쟁취하고 가진다고 행복해지지는 않는다. 남들보다 수입이 적고 작은 집에서 산다고 불행하게 생각하지 말라. 작은 집에서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큰 집에서 불행하게 사는 사람이 있다. 물론 여러분은 할 수 있는 대로 정당하게 많은 돈을 벌라, 큰 집을 구하라, 좋은 학벌과 건강한 육신을 얻도록 노력하라. 그러나 이런 것들이 저절로 행복을 가져다준다고 생각하면 큰 착각이다. 행복은 투쟁해서 얻을 수 있는 것도 아니요, 애쓴다고 늘 찾아지는 것도 아니다. 행복하기 위해서 능력 있는 배우자를 얻으려 애를 쓰고, 행복하기 위해서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돈을 벌지만, 그렇게 억지로 얻은 행복은 진정한 행복일까, 곧 무너질 수 있다.
더 큰 밥그릇으로 먹는다고 밥이 더 맛있는 것은 아니듯이, 큰 집이나 많은 수입이 늘 행복을 보장하는 것은 아니다. 사람들은 같은 차를 타더라도 편하고 전망 좋은 자리를 차지하려고 은근히 노력하는데, 편한 자리에 앉아 가는 사람이 가장 즐거운 여행을 하는가 하면 그렇지 않을 때가 많다. 어느 여행모임에 조금 늦게 도착한 부부가 처음에는 불만스러웠다. 왜냐하면 아무도 양보하지 않아 나이가 많은 이 사람들이 제일 뒷자리에 앉아 자기보다 젊은 사람들이 떡하니 앞자리에 편하게 앉아 가는 걸 보아야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참 여행이 무르익자 뒷자리가 떠들기도 좋고 놀기도 좋고 활발한 사람들이 모여있어서 가장 재미있었다. 그러니까 앞에 있던 사람들이 부러워서 자기 자리를 버리고 뒤로 몰려왔다더라.
행복과 불행의 이치를 알고 지혜롭게 살면 행복은 저절로 따라온다. 사람의 행복은 멀리 있는 것은 아닌데 사람들은 멀리서 찾고, 남이 행복을 가져다 줄 것으로 헛되이 기다리고 있다. 행복하기 위해서 많이 가지고 높이 오르려고 급히 달려가던 걸음을 잠깐 멈추어 보라. 주일마다 주님께 나와 딱 멈추어서, ‘나는 자연스럽게 진정으로 행복한지’를 물어보라. 그리고 눈을 들어 지혜를 얻어, 억지로 얻는 행복이 아닌, 진정한 행복의 길을 찾으라!
그날이 다 험악한 사람
영원히 불행한 사람은 남 탓하는 사람이다. 자기 행복이나 불행이 남에게 달려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여자는 조롱박 팔자라고, 어느 남자에 매여있느냐에 행복이 달렸다느니, 남자는 여자 하기 나름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이다. 자기 성격마저 남의 탓으로 돌리니 어리석은 사람들이다. 결혼 초기 뭘 모를 때에 자기 성격이 아내 혹은 남편 탓이라고 여기는 사람들이 있을 수 있다. 아내가 챙겨주지 않고 남편이 도와주지 않아서 자기가 변변찮게 살고 있다고 투정을 부리기도 한다. 그러나 조금만 생각해보면 전혀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다 자기에게 달려있다. 누구 탓을 하는가? 스스로 불행을 자초하는 사람은 누구와 살아도 불행하고 어디에 있어도 불행하다. 드물게 무책임한 남편, 지혜롭지 못한 아내 때문에 어려움을 겪는 사람도 있지만, 일반적으로 행복은 절대 남이 책임질 수 있는 일이 못된다.
어떤 여자분이 내게 이런 얘기를 한 적이 있다. 자기는 너무나 불행하단다. 왜냐하면 첫째는 부모를 잘 만나지 못했기 때문이고, 다음은 제대로 된 스승을 만나지 못했기 때문이며, 끝으로는 남편을 잘 못 만났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정말 그런가? 여러분도 혹시 그렇게 생각하시나? 여러분의 행복과 불행은 다른 사람들에게 달려있나? 물론 모든 것을 다 제공하고 배려하는 부모님, 좋은 스승, 자상한 배우자는 행복을 더 가깝게 하는 훌륭한 조건인 것은 틀림없다. 그러나, 행복과 불행은 모든 것이 내게서 시작됨을 인정해야 한다.
영원히 불행한 사람은 또 혼자 행복하려는 사람이다. 욕심이 많아 자기만 가지려는 사람이 행복할 것 같지만 결국은 불행해진다. 이런 사람은 돈 독(毒)이 올라 정신없이 ‘소유’하는 데에만 애를 쓴다. 많이 소유하려 하다보면 소유에 치여 자기 존재에 충실하지 못하게 되고, 혼자 행복하려고 하다보면 결국 참된 친구를 잃게 된다. 벼락부자가 되려고 애를 쓰는 남자가 돈 때문에 행복해질까, 불행해질까? 여러 여자를 사귀어서 쾌락을 느끼려는 남자가 여자 때문에 행복해질까, 불행해질까? 물론 예외가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많이 가졌다고 행복한 것은 아니다. 경쟁에서 이겨서 얻는 행복은 가볍고 얄팍하다. 남을 울리고 내가 웃는 것은 잠깐이요, 깊고 충만한 행복이 되지 못한다. 남을 아프게 하고 자기가 평안을 누릴 수는 없다.
행복은 절대 나만의 것이 될 수 없다. 훔친 도둑은 쪼그리고 자지만 도둑맞은 사람은 발 뻗고 잔다. 함께 웃을 수 있어야 인간이 누릴 수 있는 참된 행복이 있다. 그러기에 받는 행복보다 주는 행복이 훨씬 크다. 사도 바울도 에베소 장로들을 작별하는 자리에서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이 있다고 하신 주님 말씀을 기억하라’고 유언처럼 남겼다. 도움받는 나라보다 도와줄 수 있는 나라가 더 행복하며, 복음을 받아 피선교국이 되었던 시절보다 이제 선교사들을 보내며 어려운 나라를 돕는 복음의 수출국이 된 지금이 훨씬 행복하다.
항상 잔치하는 사람
지혜로운 사람의 생활은 매일이 잔칫날이고, 스스로 빛을 찾은 명철한 사람은 날마다 잔치하는 사람이라고 잠언은 우리에게 말한다. 오늘을 행복하게 살지 못하는 사람은 영원히 불행할지 모른다. 중요한 것은 <지금 여기에서의 삶>이다. 주님이 우리를 구원하시고 복된 미래를 약속해 주셨으니, 죄에서 자유한 은혜를 가지고 소망 중에 기뻐하자. ‘유교는 제삿집과 같고, 불교는 초상집과 같으며, 기독교는 잔칫집과 같다’고 초기 조선기독교인들은 말했다. 옳다! 매일이 잔칫날처럼 즐겁기를~!! 새해에는, <Be happy always! 항상 행복하시라!>
어떤 사람이 거지를 만났다. “한 푼만 주세요.” 보니까 남루한 거지가 너무 불쌍해 큰맘 먹고 만 원을 주었다. 그런데 이 돈을 받은 거지가 깔끔하고 으리으리한 비싼 식당에 들어가는 것이었다. 그리고는 아주 훌륭한 음식에 포도주까지 시켜 식사를 하였다. 이 사람은 어이가 없었다. 그래서 이 거지에게 신경질적으로 물어보았다. “이거 봐요, 이 돈으로 아껴 쓰면 며칠 굶지 않고 먹을 수 있을 텐데, 왜 그렇게 한꺼번에 없애버리는 거요?” 거지가 대답했다. “나는 이 시간을 최고의 시간으로 즐기고 싶었습니다. 내일은 또 내일이지요.”
은행에 잔고를 엄청나게 남기고 살만한데도 항상 쪼들리게 걱정하며 사는 사람들이 많다. 지금 주어진 것을 행복하게 누릴 줄 아는 사람들이 되라. 신혼 부부는 10평대의 집이면 넉넉하게 살 수 있고, 2인용 작은 냉장고만 있어도 족하다. 그런데, 자꾸 비교하고 먼 미래를 미리 염려하여 불만스럽게 생각하고, 지금 주어진 것을 충분히 누리지 못한다면 어리석은 일이다. 여러분의 하루를 축제로 만들고, 여러분의 식사를 만찬으로 만드시라. 같은 음식이라도 그냥 냄비가 올라오고 솥째 상에 올려놓아 원시인처럼 되는대로 먹는 사람들이 있다. 그런가 하면 별 반찬이 아니라도 촛불을 켜고 찬양을 불러가며 폼나게 먹는 식사가 있다. 월급이 얄팍한 박봉에도 조선시대 임금처럼 살 수 있고, 수천만 원을 벌면서도 이웃을 향한 사랑의 손길 한 번 펼치지 못하며 사는 사람이 있다.
재산이 적어도 하나님 잘 섬기며 사는 것이 큰 부자로 살면서 매일 스트레스 받는 것보다 낫습니다(16절). 김치에 된장찌개를 먹으면서 서로 사랑하는 것이 갈비에 등심을 먹으면서 서로 미워하는 것보다 행복합니다(17절).
예수 잘 믿는다는 것이 무엇일까? 바르게 살면서 행복하게 사는 것이다. 밥을 먹으나 잠을 자나, 일을 하나 사람을 만나나 늘 기뻐하며 감사하는 마음, 이것이 그리스도인의 마음이다. 세례받은 것은 탕자가 돌아와 아버지와 함께 여는 잔치요, 성찬예식에 참여하는 것은 주님과 함께 하는 기쁨과 감사의 식탁이며, 말씀을 듣는 것은 풍성하고 다양한 영의 양식을 나누는 축제이다. 찬송은 하나님이 주시는 기쁨의 노래이며, 기도는 믿는 자가 하나님과 나누는 친밀한 대화이다.
장례를 치루다보면 불신자들이 왜 교인들은 사람이 죽었는데 노래를 하느냐고 의아해 하는 경우가 있다. 매일이 잔치인 사람들은 죽음도 천국으로 가는 길목이기 때문에 노래할 수 있다. 이별의 슬픔이야 어쩔 수 없지만, 천국의 기쁨으로 죽음마저 이길 수 있는 것이 그리스도인이다. 죽을 때에도 찬송을 부르며 기뻐할 수 있는 것이 참 그리스도인 아니겠나? 마음의 즐거움은 얼굴을 빛나게 한다(13절). 하나님이 주신 마음의 평화와 기쁨이 우리 표정을 지나 다른 사람에게 전해질 것이다. 참 그리스도인은 항상 잔치하는 사람이다.
3대째 예수 믿는 성결교 청년이 이렇게 말했다. “우리 집은 예수 믿어서 망했다.” 왜? 자기 할아버지가 예수를 믿어서 장로까지 되었는데, 하도 믿음이 좋아서 모든 재산, 논밭을 예배당 짓는 데 팔아 건축헌금 하다보니, 할아버지는 재산의 반을 팔아 하나님께 바쳤다. 그런데 아버지는 할아버지보다 믿음이 더 좋았단다. 그래서 아버지는 나머지 논과 밭을 팔아서 모두 외국에 교회를 짓고, 또 선교한다고 외국으로 다녔단다. 그래서 자녀들은 가난해져서 늘 보리밥만 먹었다. 추운 겨울에도 내복도 못입고 다녔다 한다. 대학에 다닐 때 경영학을 전공했는데, 속상하니까 하는 말이 “우리 집은 예수 믿어서 망했다” 였다.
그런데 할아버지가 매일 가정예배를 드리면서 손자녀들의 이름을 부르며 기도했고, 같이 예배드릴 때면 안수 기도를 해주었단다. 대학을 졸업하고 난 다음에 사업을 하는데 성령님이 지혜를 주시더라는 것이다. 좋은 사람을 만나게 해주셨다. 이 사람이 준재벌이 되었다. 그래서 성결교회에서 봉사 많이 하는 자랑스러운 장로가 되었는데, 바로 이만열 장로라는 분의 간증이다. 예수 믿으면 사는 데 제약이 많고 망하는 것처럼 보여도 사실은 놀라운 복을 받는다! 하나님이 그 영혼을 구원해주시고 성령을 부어주셔서 지혜를 주시고, 좋은 사람 만나게 해주시며 갈 길을 열어주시고, 크고 놀라운 일을 하게 하신다! 그러니 예수님의 자녀들이여, 기뻐하라! 하나님을 삶의 근본으로 삼고, 예수 모시고 사는 지혜로운 사람, 명철한 사람은 매일이 잔칫날이다. 예수님을 소유했으니, 대박난 인생이 된 것이다.
2026년 새해에는 매일이 잔칫날이 되기를 축복한다. 진정한 사랑은 자기 행복을 남에게 전달하는 것이다. 자기 안에 행복이 없으면 남을 참으로 사랑할 수 없다. 예수님은 십자가 길에서도 부활의 아침을 생각하며 당신의 평안을 제자들에게 주셨다(요14:27).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사랑이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매일이 잔칫날 같을 것이고, 항상 잔치하는 사람이 될 것이다! 그 사람이 세상으로 나아가 이웃을 사랑하며 살 것이다. 내가 미치지 못할 기이하고 특별한 일을 부러워하며 살 것이 아니라, 이웃과 함께 이미 주신 행복을 감사하며, 예수가 함께 계시니(!), “지금 여기에서” 항상 잔치하는 사람으로 살아가기 바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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