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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건한 생활 (야고보1:26-27) [2020년 10월 18일, 성령강림후 스무째주일]
2020-10-17 15:52:37
박신진 목사
조회수   405
설교일 2020-10-18
설교말씀 야고보1:26-27
설교제목 경건한 생활

경건한 생활

1:26-27

20201018[성령강림후 스무째주일]

 

오늘 예배드리러 나온 모든 성도에게 하나님의 놀라우신 은혜와 기적이 나타나기를 축복한다. 요즘 우리나라에는 트로트 열풍이 불고 있으나, 한때 팝송이 많이 불려지기도 했다. 미국 가수 마돈나의 노래 중에 “Open Your Heart!”가 있었다. “마음을 여세요!”. “마음을 여세요, 그건 그렇게 어렵지 않아요, 당신이 그저 열쇠만 돌린다면!”

마음을 여는 열쇠가 무엇일까? “Yes!”하는 마음이다! 긍정적인 마음, 모든 것을 인정하고 시인하는 밝은 마음이다. ‘아멘의 영성이라고 할 수 있다. 그때 하늘이 열리고 축복이 임하여 여러분의 삶이 변화되고 밝아지는 기적이 있을 것이다. 그때 말씀이 육신이 되는 기적이 내 생활에도 임하게 될 것이다.

 

오늘 읽은 말씀에는 경건이란 말이 세 번이나 나온다. 전통적으로 경건은 하나님께서 베푸신 은혜에 대한 인간의 응답이다. 감리교회는 경건주의인데, 경건주의에서는 하나님의 주도적인 은혜에 응답하여 인간이 성화의 삶으로 나아가는 것이어서 믿음의 영역에서 구원받은 사람의 책임이 강조된다. 일반적으로 경건은 다음과 같은 것이다.

1)경건은 은혜에 대한 감사와 감격이다. 모름지기 믿음의 삶에는 감격이 살아있어야 한다. 말씀을 들을 때 말할 수 없는 마음의 찔림과 깨달음 때문에 뭉클하게 되고, 기도할 때 내 죄가 기억나고 하나님의 은혜가 감사하여 펑펑 울게 되며, 믿음의 형제자매들과 교제하고 함께 하는 기쁨이 얼마나 큰지 감동하게 된다. 한마디로 경건한 사람은 감동과 은혜가 넘친다.

2)경건은 죄와 율법에서 자유한 삶의 방식이다. 거룩한 생활은 처음부터 능숙하게 이뤄지지 않는다. 우리는 죄에 익숙해져 있고 죄짓고 싶은 마음이 깊은 곳에 자리잡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율법과 계명으로 처음에는 다스려야 한다. 그러나 점점 습관이 되고 생활화되면 그때는 율법과 계명의 통제에서 자유롭게 하나님의 뜻을 행할 수 있게 된다. 기쁘게 자발적으로 거룩해지는 것, 이것이 경건이다.

3)경건은 성숙한 은총의 삶이다. 우리는 처음 어린아이처럼 믿다가, 믿음이 변화되고 자라면서 어린아이의 일을 버리고 성숙해진다. 어릴 때에는 자기만 위해달라고 한다. 어릴 때에는 자기중심적이다. 어린아이는 이기적이다. 그러나 자라면서 남을 배려하고 인정할 줄 알며, 부모님께 보답하려고 노력한다. 성숙한 그리스도인은 자기 뜻대로만 행하지 않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기 위해 힘쓴다.

4)경건은 성령을 모시고 하는 평화의 생활이다. 경건한 사람은 스스로 평화롭다. 그뿐 아니라 다른 사람들과 평화를 이루며 산다. 잠깐의 평화는 누구에게나 있지만 하나님이 주시는 참 평화, 변함이 없는 평화는 성령이 내 안에 계실 때 이뤄진다. 경건하면 성령께서 우리를 평화롭게 하시며, 우리의 생활로 다른 이들과 평화를 이루게 하신다.

5)경건은 예배와 찬양의 삶이다. 경건한 사람은 항상 어디서나 하나님을 예배하며, 정규적으로 이뤄지는 공적예배에 적극적으로 참여한다. 경건은 찬양의 삶이다. 찬양의 기쁨과 감격으로 죄악을 이기며 우울과 허무를 이기고 마귀를 이기며 산다. 경건은 예배와 찬양으로 온 세상을 거룩한 기쁨으로 채운다.

 

오늘 성경에서 야고보 사도는 좀더 깊은 경건에 대해 언급하며, 경건한 생활을 세 가지로 말한다. 첫째, 경건한 생활은 혀를 재갈 먹이는 것이다(26). “누구든지 스스로 경건하다 생각하며 자기 혀를 재갈 물리지 아니하고 자기 마음을 속이면 이 사람의 경건은 헛것이라.” 혀로 만들어 내는 말이 독을 가지기 시작하면 인디언의 독화살보다 무섭다. ‘말 많은 집은 장 맛도 쓰다.’는 속담이 있다. 많은 말 속에 독한 말, 악한 말, 헛된 말이 들어있기 마련이다.

깜빡이는 한 점의 불티가 넓고 넓은 숲을 태우고, 반 마디 그릇된 말이 평생의 덕을 허물어뜨린다.’ 이는 동양의 고전 명심보감의 가르침이다. 재작년 겨울바람에 불티가 날려 동해 망상해변의 산과 나무, 집과 가게들은 일시에 태워버린 것을 기억한다. ‘혀는 죽이는 독이 가득하다.’(3:8) 집회서에는 이런 말도 있다. ‘총에 맞아 죽은 사람보다 말에 맞아 죽은 사람이 더 많다.’

혀를 재갈물려야 경건이 시작되고 완성된다. 깊은 침묵이 존귀하신 주님께로 우리를 인도하는 경우가 많이 있다. 하나님은 인간의 말이 그치는 곳에서 말씀을 시작하신다. 말을 멈추라! 자랑하고 변명하고 설명하는 모든 말을 잠깐 그치라. 그래야 경건해진다. 엘리야가 만난 하나님은 침묵 속에서 말씀하시는 하나님이셨다. 왕상 19장을 보면, 엘리야가 깊이 기도할 때 처음에 크고 강한 바람이 산을 가르고 바위를 부수었다. 그러나 바람 가운데에 하나님이 계시지 않았다. 바람 후에 지진이 있었다. 그러나 지진 가운데에도 여호와 하나님은 계시지 않았고, 지진 후에 불이 있으나 불 가운데에도 하나님은 계시지 않았다.

그런데 불 후에 세미한 소리가 있었다. 그때 하나님이 나타나셔서 엘리아야! 네가 어찌하여 여기 있느냐!” 부르셨다. 여기 세미한 소리는 히브리어로 콜 드마마이다. 침묵의 소리!! 하나님은 강한 폭풍보다 지진보다 불보다 강하게 찾아오시는데 침묵 속에서이다! 말은 나뭇잎과 같아서 너무 무성하면 열매가 적다. 경건한 생활을 하려면 말을 줄이고 묵상과 기도를 늘리기를! 통성기도하지 말라는 말이 아니라, 내 말과 변명과 자랑을 그치고 하나님과만 조용히 대화하라는 것이다.

 

둘째, 경건한 생활은 환란 당하는 자를 돌아보는 것이다. 27절상,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정결하고 더러움이 없는 경건은 곧 고아와 과부를 그 환난 중에 돌보고.” 경제적으로 곤궁하고 심리적으로 압박 당하는 사람들이 우리 주위에 많이 있다. 신앙인들이 경제적으로 돕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 책임질 수 없는 재정적인 문제가 일어나 오히려 시험에 들 수 있다. 그래서 교회전통에서는 믿는 이들끼리의 돈 관계를 말리고 경계한다. 할 수 있으면 돈거래로 얽히지 말라. 돈 잃고 사람 잃기 쉽다. 그러나 마음 상한 자들을 도울 수 있다. 그러나 섣부르게 돕네하지 말고 겸손하게 함께 있어주고 밝게 응답해주라!

어디서 인용하는 한 이야기이다. 목회자의 마음을 아프게하는 한 신실한 성도가 있었다. 어렸을 때부터 가족을 위해 헌신하고 희생, 제대로 칭찬 한마디 듣지 못했다. 춥고 배고픈 어린 시절, 꽁꽁 언 손으로 밥을 지어 부모를 대접하고 동생들을 챙기는 소녀였다. 칭찬 들으려고 한 일은 아니지만, 착하기만 한 이 소녀의 행동을 다른 가족들은 당연한 것처럼 여겼다. 소녀는 마음이 추워졌고 허기가 가득찼다.

배움에 대한 욕구는 높았지만 가난한 가정을 위해 돈을 벌어야 해서 그 길을 가지 못했다. 교복 입은 친구들을 마주 대할 용기가 없어 담장 밑으로 허둥대며 숨던 모습도 사진처럼 또렷이 기억한다. 마음이 위축되어서 변변한 직업을 찾는 것도 여의치 않아 풍파 많은 젊은날을 보냈다. 겉모습을 보면 넘치는 재기와 눈에 띄는 미모에 놀랄 정도지만, 육십이 넘어가는 나이에도 여전히 마음이 추워, 누군가 따뜻하게 대해주고 마음을 채워주면 영혼까지 내어줄 정도로 정에 굶주려 있다.

배우지 못했다는 설움이 열등감으로 자리잡아 무심코 다가온 한마디에도 상처를 입고 절망의 구덩이에 빠져 허우적댄다. 어느 순간에는 과도한 화를 내어 주변 사람들을 당황스럽게도 한다. 주변 사람들이 그의 상처가 던지는 돌덩이에 맞아 나가떨어지는 경우가 허다했다. 자녀들과 가족들도 그를 회피하고 거리를 두었다. 반복되는 이야기에는 춥고 배고픈 시절의 어린 경험이 못처럼 박혀있다. 자기에게 춥게 대했던 엄마와 형제들에 대한 원망이 꼭 박혀있다. 그때 미처 표현 못한 분노나 원망을 지금 만나는 사람들에게 쏟아내곤 한다.

이걸 심리적 투사라고 한다! 내 마음의 것을 상대에게 던지는 것이다. 빨간 안경 쓰면 모든 것이 빨갛게 보이고, 파란 안경을 쓰면 파랗게 보이는 것 같은 것이다. 자신 마음에 있는 것을 통해 세상을 보는 것이다. 그러나 정작 자기가 무슨 안경을 짙게 쓰고 세상을 보는지 모르고 있다. 상대가 빨갛다, 파랗다 라고만 한다. 자신의 수치심, 분노, 외로움, 적대감을 타인에게 투사한다. 끊임없이 자신의 감정을 해소할 먹잇감을 찾는다. 허기진 마음에 모든 것이 빠져들고 만다. 이와 같이 불안하고 혼란스런 상황에서는 더욱 깊은 자기 성찰과 기도가 필요하다.

정말 심리적인 어려움, 마음의 깊은 상처와 문제는 좀처럼 해결하기 어렵다. 그러나 경건한 사람은 그들 곁에 있어준다. 환란 당한 자들은 자기를 성찰하고 서로 협동하며 하나님을 바라봄으로 이겨낼 수 있다. 우리 주위에 마음이 어려운 사람들이 참 많다. 예수님을 대하듯 환란 당하는 자를 대하는 생활이 경건한 생활이다. 경건한 사람은 언제나 그늘진 곳에 마음을 둔다. 불행을 막고 평화롭고 사랑이 넘치는 나라를 이루려고 하는 것이 바로 경건한 생활이다. 정결하고 더러움이 없는 경건은 바로 어려운 자를 돌아보는 것이다.

 

셋째, 경건한 생활은 자기를 지켜 세속에 물들지 않는 것이다. 원래 세속이란 악하지 않다. 하나님은 세상을 아름답게, 좋게 지으셨다. 그러나 세속의 삶이 향락과 욕심을 위해 쓰이게 될 때 그것은 죄가 되고 악이 된다. 세상 속에서 살되, 더럽고 죄된 세속에 물드는 생활이 있고, 그런 세속을 변화시키는 생활이 있다.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하지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안에 있지 아니하니,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부터 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부터 온 것이라. 이 세상도, 그 정욕도 지나가되 오직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자는 영원히 거하느니라.’(요일2:15-17)

경건한 생활은 탈세속하는 것이 아니다. 불교에서 출가하듯이 속세를 떠나 산에 들어가면 경건해지느냐? 아니다! 산에 들어가면 시간이 많아서 잡념이 더 생긴다. 수십 년 전에 정기적으로 기도원에 들어가곤 하였다. 매년 두 차례정도 기도주간을 가졌다. 어떤 때는 기도원에 들어갔는데 정신이 맑아져 하루 종일 기도가 안 되는 때도 있다. 인간은 어찌된 영문인지 세속에 물들기가 정말 쉽다. 악성습관이 생기는 것이다. 잡초는 심지 않아도 나고 가꾸지 않아도 번성해진다.

월남전이 벌어졌을 때 어떤 분들은 목숨 걸고 돈 벌러 간 사람도 있다. 그중에 잘 되신 분이 돌아와서 친구들이 환영회를 해주었다. 식사를 나누는데, 친구 한 분이 물어보았다. 2년 동안 그곳에서 생활하면서 월남말 배운 것 있으면 해보라고. 그러자 이분이 무척 난처해하면서 몇 마디 배운 것이 상소리뿐이라 미안하지만 못하겠다고. 이상하게 좋은 말은 배우려고 귀를 기울여도 잘 안 되지만 못된 말은 스쳐 지나가도 배워지는 것이다. 조금만 방심하면 세속에 물드는 것은 시간문제다. 방송을 통해서, 인터넷을 통해서, 유투브를 통해서, 놀이를 통해서 게임을 통해서 세속에 물들어, 이 물이 빠지지 않아 고생한다. 이 시대에 인터넷 문명을 버릴 수는 없지만, 잘 분별하여 쓰라. 자기를 지켜 세속에 물들지 않게 하는 것이 경건한 생활이다.

 

존 패들리(Jon Pedley)라는 영국의 젊은 백만장자가 있었다. 패들리는 부모로부터 재산을 물려받아 부자가 된 사람이 아니었다. 이동통신사 에섹스를 창업해 부를 모은, 자수성가형 인물이었다.

그렇지만 패들리의 삶이 평온했던 것은 전혀 아니었다. 오히려 그는 절도와 사기 혐의로 유죄판결을 받았던 전과자였다. 처음 손댔던 벤처 사업이 실패하자 술독에 빠져 매일 밤 엄청난 음주에 빠져 살기도 했다. 두 자녀의 아버지였지만, 부인하고는 끝내 이혼하고 말았다.

2002년에는 운전하다가 밴을 들이받아 6주 동안 의식불명 상태에 빠지기도 했다. 잠 한숨 안 자고 술을 마시다 새벽 5시에 차에 올라, 시속 144km로 운전하다가 깜빡 잠이 들어 큰 사고를 냈던 것이다. 이 사고로 한쪽 시력을 잃어야 했지만, 그래도 목숨은 건졌다. 정말 죽다 살아났다. 그런데도 그는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그러던 어느 날 친구에게 끌려가다시피 하여 교회에 갔던 것이 페들리의 삶을 바꾸었다. 페들리는 말한다. “500명의 성도들이 예배를 드리고 있었는데 이전에 본 것과 많이 달랐다. 성도들에게 믿음이 충만했다. 내가 돈은 많고 더 큰 차를 몰며 집도 훨씬 큰데, 그런데 그들에겐 평화가 더 많아 보였다.” 이후 교회의 신앙훈련 프로그램에 참여하면서 그의 삶은 경건하게 달라지기 시작했다. 여섯 살 아들이 아빠가 완전 다른 사람이 된 것 같아요.”라고 할 정도로 기뻐했고, 페들리는 밤이면 사람들을 위해 길거리로 나가 전도하기 시작했다.

이후 페들리는 수십억 달러의 농장주택과 운영하던 회사도 정리하고, 우간다 남서부 키게지라는 시골 마을로 떠난다. 영국에서 평생 모은 재산을 팔아 자선기금을 만들어 그 마을에 병원 및 식수, 교육시설을 지어 가난한 주민들이 혜택을 볼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드디어 그가 경건한 사람이 된 것이었다!

무엇이 전 재산을 다 털어 남을 돕겠다고 나서게 만들었을까? 페들리는 이전까지는 철저하고 완벽하게 자기 중심적이었다.’고 하면서, 하지만 주님을 만나고 나서, ‘무엇인가를 세상에 돌려주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고 고백했다.

 

경건한 생활로 돌아오라!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정결하고 더러움이 없는 경건은 자기 혀를 재갈물려 함부로 말하지 않는 것이요, 환란 당하는 사람들을 돌보는 것이며, 자기를 지켜 세속에 물들지 아니하는 것이다! 오리는 더러운 물 위로 지나가도 그 물이 속으로 배지 않는다. 연꽃은 흙탕물 위에 살아도 흙탕물이 연꽃에 배지 않는다. 우리도 세상에서 살되 경건한 생활로써 세상을 변화시키며 살아야겠다!

적극적 사고방식으로 유명한 노만 빈센트 필 목사는 항상 설교 스트레스를 짊어지고 살았다. 그러다가 병원에 가서 의사를 만났다. 그러자 의사가 목사님에게 이렇게 말했다. “목사님, 설교준비하는 일에 집중하지 말고 하나님께 집중하세요!” 목사님이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때부터 하나님께만 집중하는 경건한 생활을 하니 놀라운 사역의 열매가 맺혔다!

여러분도 경건해지려고 애쓰지 말고 하나님께만 집중하라! 예수님만 따라가라. 그리하면 경건의 생활로 돌아오게 될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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