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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을 뜬 사람 (요한9:13-23) [2020년 3월 22일, 사순절 넷째주일]
2020-03-21 10:07:35
박신진 목사
조회수   163
설교일 2020-03-22
설교말씀 요한9:13-23
설교제목 눈을 뜬 사람

눈을 뜬 사람

요한9:13-23

2020322[사순절 넷째주일]

 

정보과학의 기술이 말 한마디로 모든 것을 시행할 수 있게 하는 시대가 되었건만, 박쥐로부터 전파된 것으로 알려진 코로나19 바이러스로 전 세계인이 두려움에 떨고 있다. 중국 다음으로 우리나라가 초기에 확진자가 많이 생기는 듯하여 걱정하였으나, 이제는 유럽이 확진자가 급증하고 사망자도 많아져서 전염병의 중심지가 된 것 같다. WHO(국제보건기구)의 거브러여수스 회장이 결국은 판데믹(세계대유행)을 선언하였다. 며칠 전에는 독일 총리가, 이어 프랑스 대통령이 국민을 향해 호소문을 발표했다. 미 대통령 트럼프도 국가비상사태를 선포하며 3억 명이 넘는 모든 미국인에게 일 인당 1000달러의 재난기금을 풀기로 했다는 소식도 들린다.

코로나19의 진원지이지만 이제는 진정세에 접어든 중국은 자기네 나라에서 이 모든 질병이 발생했다는 오명을 벗기 위한 허세를 부리느라 오히려 대국의 이미지를 잃어버리고 있다. 이 일에 대한 대처를 보면 중국이나 미국보다는 독일, 프랑스가 그래도 수준 높은 나라라는 생각이 든다. 자기 이미지 손상을 걱정하는 시진핑이나 차기 대선 의식하느라 전전긍긍하는 트럼프 모두 국민 편에서 보면 아쉽기는 마찬가지인 것 같다. 이런 재난 상황에서 그래도 미국이나 중국과 좋은 관계를 잃지 않는 것은 나라 경제를 위해서 다행이라고 할 수 있겠다.

이제 코로나19 자체 못지않게 문제가 되는 것이 경제와 삶의 모든 부문이다. 어쩔 수 없이 교육부에서도 3차 등교연기를 하여, 46일에 개학을 하는 상황이 되었다. 이런 상황을 맞이하여 교회도 사회적 책임을 감당하고 힘을 모아 악한 전염병을 예방하는 데 동참하기 위해 정말 어려운 결정을 내렸다. 그것은 앞으로 두 주, 학교 개학할 때까지 영상예배, 온라인예배를 드리기로 한 것이다.

예전에 이승만 대통령이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라고 했는데, 이제는 흩어지면 살고 뭉치면 죽는다.’라고 하면서 사회적 거리 두기를 강조하는 시대가 되었다. 이제 우리는 고통을 확산시키거나 사람들을 공포에 떨게 만드는 거짓말이나 가짜뉴스를 멀리하고, 이 특별한 시기에 힘을 합쳐 전염병에 대처하며 서로를 위해 기도하고, 사회를 건강하게 만들고 나라를 새롭게 하는 아름다운 정신을 키워나가야 하겠다.

 

오늘 사순절 넷째주일을 지나면서, 예수님 당시 실로암못 가에 가서 눈을 씻고 나서 눈이 떠진 한 사람 얘기를 읽었다. 그는 구걸하던 시각장애인이었는데, 눈을 뜨고서 하나님을 찬양하는 신자가 되었다. 중요한 사실은 여기 눈을 뜬 사람은 눈만 뜬 게 아니라 마음의 눈이 떠져서 예수님을 알아보고 믿음을 가지게 되었다는 것이다. 오늘 예수님을 통해 눈을 뜬 사람과 그를 시비하고 비판하는 바리새인들의 이야기를 통해 우리에게 주시는 교훈을 듣기 바란다.

지금 예수님은 소경이요 거지였던 사람의 눈을 고쳐주신 기적을 행하셨다. 소경을 고친 이 사건은 돌 같은 마음이라도 녹아지게 하고 부드럽게 했어야 할 사건이다. 그렇지 않으면 바리새인들은 기적의 신기함과 위대함에 충격을 받아 그 기적이 하나님께서 하신 일인지 알아보는 동안만이라도 잠시 조용히 있는 게 마땅했다. 그러나 예수님에 대한 미움과 비난하는 마음은 그들을 쏜살같이 그렇게 비판하고 정죄하는 데에로 몰아갔기 때문에 눈이 떠진 그 사람은 마치 무슨 큰 죄라도 지은 사람처럼 쩔쩔매야만 했다.

16절을 보면, ‘바리새인 중에 어떤 사람은 말하되 이 사람이 안식일을 지키지 아니하니 하나님께로부터 온 자가 아니라 하며 어떤 사람은 말하되 죄인으로서 어떻게 이러한 표적을 행하겠느냐 하여 그들 중에 분쟁이 있었더니.’ 이게 지금 싸울 일인가? 안식일을 지키지 않는 죄인이 이런 표적을 행할 수 있느냐를 따지고, 그런 예수님을 비난하고 있다. 이들은 계속하여 이 일을 따지고 예수님과 눈 뜬 사람에게 시비를 걸고 있다. 19, ‘이는 너희 말에 맹인으로 났다 하는 너희 아들이냐 그러면 지금은 어떻게 해서 보느냐?’ 이렇게 자꾸 따지니까 나중에는 그들 부모도 자기 아들이 눈을 떴는지, 누가 눈을 고쳐줬는지 말도 못했다. 23, ‘이러므로 그 부모가 말하기를 그가 장성하였으니 그에게 물어보소서 하였더라.’

 

우리가 여기서 먼저 알 사실은 무슨 가르침이나 하나님의 일에 대하여 함부로 비판하거나 남을 비난해서는 안 된다사실이다. 어릴 적부터 목회하는 부모님을 보면서 사람들 때문에, 특히 교인들이 하는 말 때문에 굉장히 힘들어하고 괴로워하는 모습을 많이 보았다. 책임 없이 함부로 비난하고 비판하는 말이다. ‘교회는 싸우는 곳이라는 인식이 사람들 사이에 심어져 있다. 교인이 교인을 무서워한다. 무슨 일로 상담하다가 제발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아주세요한다. ‘왜요? 함께 기도해야지요하면, 말이 무서워요 한다. 교회 안에서 도는 말 소문 때문이다.

오늘 눈을 뜬 사람을 앞에 두고 바리새인들이 함부로 말하고 비판하니까 아무도 무서워서 그 일로 인하여 하나님께 영광돌리지 못하고 죄지은 사람처럼 쩔쩔매고 있는 것을 보라! 물론 안식일에 그 일을 행하신 것은 문제를 삼으려면 문제가 될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은 극히 일부분의 일일 뿐이다. 맹인의 눈을 뜨게 하다니! 얼마나 놀라운 일이 일어났는가! 얼마나 기뻐하며 축하할 일인가! 얼마나 하나님의 이름이 높임을 받으며 하나님 나라의 능력이 선포될 사건인가! 그런데 바리새인들의 비난과 비판 때문에 이 모든 일이 무슨 큰 추문을 일으킨 사건인양 되었다. 부모들도 쉬쉬, 나은 사람도 쩔쩔매고, 예수님을 시인하는 자는 출교하기로 결의를 했기 때문에 그리스도를 비난하고 미워하는 바리새인들만 기가 살아있다.

마태 71절에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말씀하시기를, “비판을 받지 아니하려거든 비판하지 말라.”고 하셨다. ‘너희가 비판하는 그 비판으로 너희가 비판을 받을 것이요, 너희가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가 헤아림을 받을 것이니라.’(2) 물론 할 말은 해야 한다. 사람들은 사람을 억압하고 분위기를 몰아가지 말라, 나도 할 말은 해야 하겠다고 한다. 사실을 분별력 있게 말하면 똑똑하고 훌륭한 일이라도 한 것처럼 으쓱하는 분위기가 있다. 그러나 그러는 동안 그리스도의 몸은 상처를 입으며, 하나님의 능력과 영광은 제약을 받게 된다.

나도 무슨 모임 같은 데에서 바른 소리를 잘하는 편이었다. 그래서 유능한 사람, 실력 있는 사람이라고 인정받는 듯하여 기분 좋았다. 그러나 어디 가서 남을 비판하고 옳은 말로 비난하면, 당장은 뭔가 할 말을 한 것 같고, 내가 뭔가 할 일을 한 것 같지만, 사실은 하나님의 영광이 가려지는 것이다. 그러면 기도가 막히고, 사탄이 나 때문에 좋아하는 것을 느끼게 된다. 우리는 성령을 기쁘시게 해야지 사탄을 기쁘게 해서는 안된다. 남을 비난하고 무슨 일을 비판하는 것은 성도가 피해야 할 일이다.

여와 야로 나뉘어 서로 비판한다. 수십 년 우리나라의 정치 모습이다. 문제는 국민들마저 둘로 나누어져 대립하는 것이다. 편 가르기, 진영논리로 모든 걸 다 박살을 낸다. 지난 설날에 어떤 교인 가정에서 정치 얘기가 나와서 아버지와 결혼한 아들이 대립이 되어서 결국 아버지가 나라 말아먹을 놈!”이라고 소리를 치고 화를 내서 아들네 가족이 잔뜩 화가 나서 집에 갔다고 하더라. 그래서 부모자식 간에도 정치얘기는 하지 말라고 한다. 명절에 음식 하나 해오지 않고 맨입으로 오느냐, 부모에게 드리는 금액이 그것밖에 안 되냐, 애들은 왜 그렇게 버릇이 없느냐 등등. 이런 비판들을 하기 시작하면 가정은 파탄이 나고 만다.

비판하는 그 비판으로 먼저 자신을 비판하라! 남의 눈에 있는 티를 빼내려고 하는데, 제 눈에는 들보가 있다고 하지 않으셨나? 내 눈에 잔뜩 들어있는 들보는 못 보고 남의 눈에 티만 빼려고 하다가 모든 일을 망친다. 우리는 잘못을 고쳐주고 때로는 사랑으로 책망해야 할 때도 있지만, 내 눈에 들보를 빼는 심정으로, 사랑으로, 자신부터 돌아보는 겸손함으로 이 일을 해야 한다. 비난만 하지 말라, 함부로 비판하지 말라!

이번 코로나 사태 때에도 비판하기에 익숙해진 이들이 인터넷과 언론을 비난과 미움과 편 가르기로 도배를 하고 있다. 그냥 자기만 할 일이지, 혼자 비판하기가 아쉬워서 그 내용들을 다른 사람에게 열심히 보내는 사람들이 있다. 비판하고 비난하며 미워할 것을 남에게 부추기는 것이다. 이건 비판하는 것보다 더 나쁜 것이다. 바리새인들의 유구한 비판의 악습은 오늘의 교회와 사회에서도 계속되고 있다. 비판하지 말고 사랑하라! 고칠 것, 잘못한 일이 발견되면 먼저 많이 기도하라! 그리고 나부터 고치고 사랑으로 고쳐주라!

이사야는 선지자로 부름받기 전에 성전에서 하나님을 만났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천사를 보내 숯불로 이사야의 입술을 지져주셨다. 진짜 그리스도인이 되려면 비판하는 입술을 성령의 불로 태워버려야 한다. ‘제단 숯불 내 입술에 대니 어찌 주저할까 주여 나를 보내주소서!’ 주님이 보내시는 곳으로 사명 가지고 가려면, 먼저 제단 숯불로 내 입술을 지져 정결케 해야 한다. 비판하는 입술을 지져주소서! 비난하고 미워하는 마음을 십자가 사랑으로 불살라 주옵소서!

 

눈을 뜬 사람이 어떻게 되었나? 그는 바리새인들이 두려워서 담대하게 순교적 정신으로 예수님의 치유과 구원을 간증하지는 못했다. 그는 눈을 뜨고서도 쩔쩔맸다. 두려워했다. 그러나 성경을 보면 그가 확실히 육신의 눈도 떴지만 마음의 눈, 믿음의 눈이 떠졌다.

1)육신의 눈을 떴는데 마음은 여전히 못 보고 있다면 얼마나 더욱 안타까울까! 여기 실로암 못가에서 눈을 뜬 사람은 믿음의 눈을 뜨고 예수가 구주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예수님의 신성, 하나님 되심에 눈이 떠진 것이다. 진짜 신앙인은 예수님을 하나님으로 발견하는 사람이다. 예수가 구주이심을 알 때 진짜 믿음의 눈이 떠진다. ‘나는 예수님이 좋은 분인 것도 알고, 배울 점이 많은 위인인 것도 알겠는데, 하나님의 아들인 것, 예수가 신이신 것은 아직 모르겠어요.’- 아직 믿음이 없는 것이다.

여러분의 눈이 떠지기를 축복한다. ‘예수가 하나님이십니다. 주님이 나를 구원하셨습니다. 내 모든 인생의 죄성과 악함을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다 가져가셨습니다.’ 이런 깨달음이 있기를 바란다. 이것이 믿음의 눈을 뜨는 것이다. 사랑은 그 사람이 얼마나 소중하고 귀한 사람인지를 알게 되는 것이다. 믿음은 예수님이 하나님이라는 사실에 눈을 뜨는 것이다.

2)예수님이 누구신지 눈을 뜨게 되면, 예수님이 내 안에서 하시는 일이 위대한 기적이요, 하나님을 보여주는 표적인 것을 알게 된다. 눈을 뜨지 못한, 마음의 소경들인 바리새인들은 예수님 비난하는 데에만 마음이 팔려있지, 그분이 행하신 위대한 일, 소경을 구원하신 역사를 보지 못하고 있다. 사람들이 공포와 두려움에 불안해하고 누가 뭐라면 금방 휩쓸려 잘못된 비판과 거짓 기사에 같이 흥분하고 욕하는 것을 보면 눈을 뜨지 못한 것 같다. 눈을 떠서 바라보라! 하나님의 위대한 일과 구원하시는 능력을 보라!

눈을 뜬 사람은 하나님이 행하시는 기적을 보았다. 그 능력을 체험했다. 구원하시는 역사가 일어남을 직접 경험하였다. 이것을 요한은 표적이라고 기록하였다. 기적인데 무엇인가 표하는 기적, 그 의미를 상징하는 기적이다. 즉 앞 못 보던 장애인이 눈을 뜬 이 기적은 하나님이 살아서 역사하심, 그리고 예수님이 바로 그 하나님의 일을 하시는 분이심을 보여주는 표가 되는 기적이었다는 것이다. 여러분, 소경이 눈 뜬 일은 역사 속에서 많이 있었다. 정확한 진단에 따른 적절한 안과 치료로도 많이 고쳤다. 그러나 여기 이 사람이 눈 뜬 기적은 바로 예수께서 행하신 기적,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보이는 기적, 예수가 하나님이심을 믿게 하는 기적이었다.

바리새인들은 그리스도께서 행하신 그렇게 많은 기적들을 보고도 멸시하며 지금까지 주님을 비판하는 데에만 모든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그들은 그리스도께서 행하신 기적들을 통해서 하나님을 순전한 마음으로 예배드리는 데 확신을 얻었어야 했다. 16절 끝, ‘그들 중에 분쟁이 있었더니.’ 하나님의 일에 대한 믿음으로 눈이 떠지지 않았기 때문에 그들은 소경이 눈을 뜬 역사 앞에서도 서로 싸웠다. 그리스도께서 소경의 눈을 뜨게 하심으로 자신이 메시아이심을 확실히 증명하셨다. 그러므로 바리새인들은 눈을 떠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을 보고 소경 됨을 벗어났어야 했다.

3)눈을 뜨면 또 나의 죄가 보이게 된다. 나의 죄가 보이면 남을 미워하고 용서하지 못한 것을 회개하게 된다. 41,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가 맹인 되었더라면 죄가 없으려니와 본다고 하니 너희 죄가 그대로 있느니라.’ 바리새인들은 아직 보지 못하고 있기에 죄가 그대로 있다. 그러나 마음의 눈을 뜨면 죄가 보인다. 자기 죄를 인정하고 깨달으면 어떻게 되는가? 남이 용서가 되고 미움이 사라지게 된다.

저는 목회를 하면서 성도들의 많은 고백을 들었다. 며느리가 말하기를 자기를 핍박하고 뭐든지 못한다고 타박하던 시어머니가 미워서 도저히 용납이 안 됐는데, 눈이 떠지니까 오히려 자기 죄와 허물이 깨달아지고, 그렇게 자기 죄에 눈을 뜨니까 미워했던 시어머니를 사랑하게 되더라는 것이다. 교인들 간에도 뒤에서 남의 말한 것, 함부로 화내고 왕따시킨 것 등, 큰 오해를 품고 있다가도 자기 죄에 대해 눈이 떠지면 남을 품을 수 있고 함께 갈 수 있는 여유가 생긴다.

 

오늘 소경이 눈을 뜨게 하신 예수님의 기적 사건, 그 이후의 이야기를 성경말씀으로 읽었다. 여기에서 우리는 남을 비난하고 비판하기를 좋아하는 바리새인들의 악습을 보았다. 비판하지 말라, 그 비판으로 자기를 비판하리라! 또 이 소경은 눈을 떴는데, 바리새인들은 아직 눈 뜨지 못한 소경이라고 주님은 가르쳐주신다. 예수님이 누구신지 눈을 뜨고 바라보라! 하나님의 아들, 영원하신 구주시다. 주님이 일으키시는 기적과 위대한 능력을 눈을 뜨고 바라보라! 주님은 위대한 일을 행하신다, 우리를 구원하시고 새롭게 하신다. 무엇보다 눈 뜬 사람은 자기 죄를 바라볼 줄 아는 사람이다. 눈을 뜨면 자기 죄가 보이므로, 다른 이들을 용서하고 용납하며 사랑할 수 있다.

주여, 눈 어두워 항상 남을 비판하고 미워하던 우리를 변화시켜 주소서! 지금 내게 오사 우리의 소경 된 것을 고쳐주시고, 눈을 뜬 사람이 되게 하소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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