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전문
설교일 | 2025-03-3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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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말씀 | 시51:8-13 |
설교제목 | 새 사람, 새 마음 |
새 사람, 새 마음
시51:8-13
2025년 3월 30일 [사순절 넷째주일]
안녕하신가? 전국이 경북 의성에서 시작되어 경상도 지역에 주로 번져나가는 산불 때문에 이만저만 걱정이 아니다. 설교를 준비하던 목-금요일에 산불이 급격하게 안동을 거쳐 청송, 영양, 영덕 등으로 퍼져 26명이 목숨을 잃고 계속 피해가 확산되고 있었다. 오늘까지 사상자가 더 늘어난 것으로 알고 있다. (현재 뉴스의 결과?) 초속 27m급 강풍이 불어 엄청난 불길이 퍼져나갔다. 승용차로 피신 중 도로에서 차에 불이 붙어 사망한 사례도 있었다. 피해를 입은 경상도 지역은 고령층이 많이 사는 지역이어서 순식간에 퍼지는 화마를 피하지 못하고 주택, 마당, 도로 등에서 연기에 질식해 숨지거나 집이 무너져 함께 매몰되기도 했다.
산불의 원인은 지금 파악 중에 있지만, 처음 의성에서 성묘하다가 켜놓은 촛불에서 불이 산으로 옮겨붙어 확산되었다고 한다. 심한 바람이 불 때 불을 잘 관리 못해 불이 옮겨붙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지를 우리는 철저하게 깨닫고 있다. 정말 불씨 하나를 조심하지 않으면, 온 세상을 태울 산불이 퍼질 수도 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되겠다.
우리는 사순절을 보내면서 죄의 위험성을 생각한다. 불씨 하나가 온 산을 태우고 수많은 사람들을 죽게 하거나 집과 생활의 터전까지 사라지게 하는 것처럼 세속과 욕망의 바람이 심하게 불 때 죄를 무심하게 저지르며 사는 것이 얼마나 큰 문제가 일으키는가? 우리는 다윗의 죄가 우리아의 가정을 파괴했고 왕궁과 수많은 사람들의 삶을 위협한 것을 보았다. 우리 삶을 위협하는 죄를 발견하고 처리하지 않고는 행복하고 올바른 삶을 누릴 수 없다. 거짓과 범죄 위에 쌓아올려진 평안과 행복은 오래 갈 수 없다. 그러니 자기를 성찰하여 죄를 깨닫고 바른 회개로 나아가 죄를 뿌리뽑는 참된 그리스도인들이 다 되시라!
우리 찬송가에 나오는 곡들 중에 가장 많은 곡이 실려있는 사람은 화니 제인 크로스비 여사이다. 평생 7천 곡의 찬송시를 작사했는데, 우리 찬송가에 번역해 실린 것이 21곡이다. 미국 뉴저지 드류 대학 바로 앞에서 살았던 분이다. 그는 맹인이었고 평생을 하나님 뜻대로 살고자 하는 열망을 가지고 시각장애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을 찬송하는 시편을 작사하면서 살았다. 크로스비가 가사를 쓴 279장, “인애하신 구세주여 내가 비오니, 죄인 오라 하실 때에 날 부르소서!”를 사람들은 많이 부른다. 여기 이 찬송에서 경건한 생활에 힘썼던 크로스비가 자신을 죄인으로 철저히 인정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어떤 목사님 한 분은 명절 때만 되면 설이든 추석이든 이 찬송을 부르셨다. 그리고 이 찬송을 부르면서 늘 우셨다고 한다. “왜 저분은 명절 때만 되면 ‘인애하신 구세주여’를 부르면서 우시는 걸까?” 사람들이 궁금해했다. 그러자 그분이 자기 얘기를 하셨다. 목사님은 6.25전쟁 때 남쪽으로 넘어온 분이다. 북한에서는 공무원이었다. 남한에 와서 신학을 하고 목사가 되었다. 목사님이 북한에 사실 때 이미 아내가 있었다. 그리고 자녀 둘이 있었다. 그런데 남한에 내려와서 통일되기를 기다리고 기다려도 되지 않는 것이다. 10년이 지나도 통일이 되지 않았다. 그래서 남한에서 다시 결혼을 하였다. 그리고 또 남매를 낳았다. 그러자 이제는 통일이 될까봐 걱정이 되는 것이다. 통일이 되면 북한에 있는 가족은 어떻게 되는가? 통일이 되면 좋지만 또 겁이 나는 것이다. 그래서 목사님은 ‘죄인 오라 하실 때에 날 부르소서’ 하면서 늘 죄인의식으로 살았다고 한다. 이처럼 죄 문제는 정말 쉽지 않은 문제이다!
오늘날 교회의 큰 문제 중에 하나는 그리스도인이 되는 과정에 대해 보통 모호한 개념을 가지고 대충 지나가려 한다는 점이다. 죄에 대한 철저한 자각과 회개도 없고, 그 다음 단계의 전진도 없이 그냥 두루뭉수리 그리스도인이 되어버리고 마는 것이다. 먼저 그리스도인이 되려면, ‘나는 이런 죄인입니다!’ 하는, 죄에 대한 실제적이고 분명한 자각이 있어야 한다. 마치 히브리인들이 출애굽할 때 홍해바다를 건너고 광야를 지난 후에 약속의 땅 가나안에 이르는 것처럼, 진정한 그리스도인은 먼저 죄에 대한 철저한 깨달음과 회개라는 홍해를 건넌 후에 구원받은 자의 자리로 들어가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경우가 많다! 그리스도인 중에 오래 교회생활을 하면서도 진정한 구원의 기쁨과 하나님과의 살아있는 교제와 동행이 없는 것은, 죄에 대한 확실한 회개와 용서의 감격이 없기 때문일 경우가 많다. 다윗은 처음에 죄를 회개하지 않았다. 적당히 행복을 누리려다가 선지자 나단에 의해 제동이 걸렸다. 그리고 회개한 이후에 비로소 하나님이 인정하시는 왕이 될 수 있었고, 밧세바와의 가정도 지킬 수 있었다.
자신을 돌아보고 마음 깊은 곳에 내재되어 있는 죄를 발견한 사람은 ‘죄인 오라 하실 때에 날 부르소서!’ 하면서 하나님을 찾게 된다. 하나님은 십자가 밑에서 자신을 발견하고 슬퍼하며 고통스러워하는 죄인들을 용서해주시고 자유케 하신다. 할렐루야! 몸을 입은 하나님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죄 용서의 은혜를 찬양하자! 그런데 불신자가 참된 그리스도인이 되려면 죄를 인식하고 회개하여 죄를 해결하기만 한다고 되는 것이 아니다. 참된 그리스도인은 여기서 멈추지 않고 한 걸음 더 나아간다. 그다음 단계는 자신으로 하여금 끊임없이 죄를 짓게 만드는 내면의 끔찍한 세력을 확인하고 그것을 미워하는 것이다.
용서받는 은혜는 크고 놀랍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은 여기에 머무르지 않는다. 정말 중요한 문제는 끊임없이 용서를 구하게 만드는 ‘내면의 그 무엇’이다. 사순절은 십자가의 은혜로 나아가는 절기이기 때문에 먼저 은혜로써 우리를 용서하셨고 의롭다함을 얻는 구원의 기쁨이 우리에게 있다. 그런데 그 감격과 은혜를 따라 우리는 거기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야 한다. 그것은 우리를 죄짓게 만드는 내면의 마음을 바로 세워 거듭남의 자리에까지 나아가는 것이다! 이 문제에 대해 분명해야 한다. 우리는 그때그때 마다 죄짓고 용서받는 수박 겉핥기식의 복음주의를 경계한다.
죄사함의 은혜를 받았으니 이제 내 안에 그 무엇을 바로잡아야 한다. 나를 용서받지 않으면 안되는 상황으로 몰아가는, 내 안의 그 무엇을 새롭게 해야 한다. ‘하나님이여, 내 속에 정한 마음을 창조하시고, 내 안에 정직한 영을 새롭게 하소서!’(10절) 다윗은 여기서 이렇게 부르짖고 있다. ‘진짜 제 문제는 이것입니다. 내 마음이 잘못된 것입니다.’ 이제 다윗은 사람이 새로워져야 하는데, 그것은 내 마음을 정결케 하는 것이라고 고백한다. 참된 그리스도인이라면 누구나 이렇게 할 것이다. 우리는 죄사함의 은혜를 경험하게 되면 그 이후에 당연히 자신에게 새로운 성품, 새 마음이 필요하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이것이 바로 ‘거듭남’이다! 참된 그리스도인은 용서받고 보다 선한 삶을 살기로 작정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함을 깨닫는다.
오늘 10절을 보면 ‘정한 마음’을 창조하시고 ‘정직한 영’을 새롭게 하소서 하였다. 정한 마음은 영어성경에서 ‘pure heart’, 말 그대로 순전한 마음을 가리키고, 정직한 영은 ‘steadyfast spirit’ 이것은 착실하고 단단한 영혼이다. 우리말로는 ‘견고한’이라고 번역할 수 있다고 성경 난외주에 기록되어 있다. 진정한 그리스도인은 자신이 새로 태어나야 하며 하나님께서 자신의 영혼 깊은 곳을 만져주시고 새롭게 해주셔서 견고하고 튼튼한 영혼이 되게 해주셔야 한다는 것을 깨닫는다. 즉 거듭나야 한다, 하늘로서 새롭게 태어나야 한다.
나는 오래 전 청년시절에 만났던 독실한 그리스도인 한 사람을 기억한다. 그는 ROTC 학군단 대위였다. 우리 아버지가 담임하시던 교회에 출석하기 시작했는데, 얼마나 신실하고 믿음이 좋은지 모두가 주목하고 있었다. 어느날 바로 밑의 여동생이 좀 기분이 나빠서 내게 와서 물었다. “오빠, 왜 김선생은 나에게 ‘거듭났느냐?’ 그런 걸 왜 물어봐? 어련히 목사 딸이 교회다니며 거듭나지 않았을까봐, 좀 무례한 사람인 것 같애.” 결국은 내게도 와서 물어보았다. 박선생은 거듭났느냐고. 나는 웃으며 얼버무렸다. 그러나 신학교를 들어갔고, 4학년이 되어 그 교회에서는 이미 전도사로 불리고 있었음에도, 거듭났는지 나는 점검해보지 않았음을 알았다.
어떤 전도자가 육에 속한 사람에게 “반드시 거듭나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새 생명을 받아야 합니다.”라고 사람들에게 권면하면 좀 기분 나빠하면서 그렇게 말하는 사람을 이상하게 여길 것이다. 그러나 참된 그리스도인이라면 이 내적 질문을 피해갈 수는 없다. 우리는 육에 속한 사람에서 영에 속한 사람으로 변화되어야 한다. 육에 속한 사람, 거듭나기 전의 옛사람으로는 우리 삶을 바로잡을 수 없기 때문이다. 우리는 물론 한두 번의 죄를 용서받을 수는 있다. 마음에 걸리는 죄들을 하나님께 고백함으로 잠시 자유함과 평안을 누릴 수도 있다. 그러나 육에 속한 사람은 새사람이 아니다. 우리는 원죄가 있고 타락되었기 때문에 번번이 다시 죄를 짓고 용서받아야 할 것이다.
나는 이번 주일에 참된 그리스도인이 거쳐야 할 필수적인 믿음의 단계를 말씀드리고자 한다. 솔직하게 지금 내 영혼이 어디에 있는지를 물어보라. 한 청년 장교 그리스도인이 진실한 열정을 담아서 우리에게 물어보았을 때, 우리 영혼이 충격을 받았듯이, 지금 성령이 여러분을 향하여 묻는 말씀을 귀기우려 듣기 바란다. ‘당신은 거듭났는가? 당신은 새 사람이 되었는가? 당신의 마음은 정결한가?’ 여기서 ‘여러분은 거듭났는가?’ 묻지 않고 ‘당신은’이라고 물은 것은, 이 질문이야말로 ‘신 앞에 선 단독자’로서 우리 각자가 점검해야 할 질문이기 때문이다. 거듭나지 않으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는 예수님 말씀에, 유대 사회에서 산헤드린 공의회 회원, 우리로 말하면 국회의원인 니고데모가 깜짝 놀랐듯이 우리도 거듭났느냐, 새사람이 되었느냐, 성자가 되었느냐는 질문에 자신있게 대답할 사람이 얼마나 될까?
거듭남의 교리는 우리 스스로 온전케 될 가능성이 전혀 없다는 것을 가르쳐준다. 마르틴 루터는 하나님의 말씀을 깊이 연구하고 기도에 힘쓰는 수도사였다. 그런데 시편과 갈라디아서를 연구할 때 하나님 앞에서 우리가 바로 서는 일은 불가능하다고 깨달았다. 자신의 힘으로는 어찌할 수 없고, 아무리 노력하고 애써도 되지 않으며, 금식하고 땀흘려 기도해도 헛될 뿐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수도원에서 독방 금식을 했고 기도했으며, 로마 순례여행을 다녀왔고, 그 여행에서는 성당 계단을 무릎으로 기어오르기도 했다. 자신의 힘으로 구원얻기 위해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은 뭐든 해보았지만 결국 원점으로 돌아왔다. 인간의 힘으로는 새 사람이 될 수 없다! 이것이 루터의 결론이었다.
사실 이것이 바울의 결론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내가 한 법을 깨달았노니 곧 선을 행하기 원하는 나에게 악이 함께 있는 것이로다. 내 속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되, 내 지체 속에서 한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내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으로 나를 사로잡는 것을 보는도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로마서 7장 21절에서 24절 말씀이다! 내가 선을 행하려 하는데도 이상하게 내 마음 속에 다른 법, 다른 욕망이 나를 죄로 이끌어간다는 것이다. 바울은 탄식한다! 아~ 누가 이 사망의 몸에서 나를 건져내랴!! 어거스틴도, 파스칼도, 마틴 루터도, 요한 웨슬리도, 사도 바울도 스스로 죄와 악을 멀리하고 선을 행하는 사람이 되지 못한다는 것이다!
인간이 거듭나야 한다, 새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교리를 사람들은 좋아하지 않는다. 이것은 우리 자존심을 상하게 한다. 그런데 새사람이 되어야 한다 할 때 우리가 관심을 가져야 할 대상은 인간이 아니라 우리가 대면하는 하나님이시다. 하나님은 중심이 진실함을 원하신다(6절). 자신은 선하기 이를 데 없으며 어쩌다 보이는 성격상의 문제는 손쉽게 고칠 수 있다, 마음먹기 나름이다 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새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이 복음을 마음속으로 받아들이기 어렵다. 궁극적인 문제는 교만, 자기 만족, 자긍심, 그리고 자기 과신이다. 복음이 들어오면 우리 자아는 치명타를 입는다. 썩 내키는 일이 아니다! 거듭나야 한다, 새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말씀은 거북하고 자존심을 상하게 하는 교리이다. 그런데 죄를 회개하고, 그것을 온전케 하기 위해 거듭나 새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것은 기독교의 핵심교리이다!!
다윗은 자신을 돌아보고 살폈으며, 자신의 죄가 무엇인지를 깨닫고 자기 본성 존재 깊은 곳에 진실함이 없는 것을 탄식하며 회개하였다. ’주의 얼굴을 내 죄에서 돌이키시고 내 모든 죄악을 지워 주소서.’(9절)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것은 마음이라.’(렘17:9) 예레미야 선지자가 깊이 통찰하였던 것처럼 인간의 죄악된 본성을 다윗도 깨달았다. 여러분은 자신을 얼마나 신뢰하고 있나? 믿을 건 그래도 나 자신 뿐이다, 그렇게 생각하는가? 그렇다면 여러분은 아직도 주제 파악을 못하고 있는 것이다. 하나님 앞에 우리 자신이 설 때, 우리는 스스로 손을 쓸 수 없는, 전적으로 죄되고 무력한 존재들이다. 우리가 선한 마음으로 노력할 때에도 우리 중심이 부패되어 있어서, 여전히 이기적이고 한편으로 악한 것을 바라고 있다.
자기 중심이 바로 서야 한다. 히브리서는 적절하게 이런 우리를 보여준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있고 활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판단하나니, 지으신 것이 하나도 그 앞에 나타나지 않음이 없고 우리의 결산을 받으실 이의 눈앞에 만물이 벌거벗은 것같이 드러나느니라.’(히4:12-13) 하나님 차원에서 우리를 살피면 적나라하게 모든 것이 드러나게 되어 자기 속내와 은밀한 부분까지 다 드러난다. 그럴 때 우리 마음은 여전히 죄짓고자 하는 욕망을 버리지 못하고 이기적이고 파괴적이며 육의 욕망으로 가득찬 마음이라는 것이다. 자신을 합리화하고 제 행동을 변명하는 일에 전문적인 사람인 것이다. 우리는 위선과 거짓이 가득한데, 주께서는 중심이 진실하고 순전하기를 원하신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께 기도할 수밖에 없다. ‘하나님이여! 내 속에 정한 마음을 창조하시고 내 안에 정직한 영(견고한 영)을 새롭게 하소서!’(10절)
죄를 회개하여 용서받고 자유와 해방의 기쁨을 얻는 것도 좋지만, 정말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새사람이 되는 것이다. 좋은 나무가 아름다운 열매를 맺고 못된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는 것처럼, 중요한 것은 새사람이 되는 것이요, 새사람이 되려면 새마음을 가져야 한다. 그런데 새마음은 내게서 오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에게서 오는 것이다. 우리 자신을 조명할 외부의 빛이 우리에게 필요하다! 정결한 마음이 필요하고, 새로운 성품이 있어야 한다! 문제는 세상이 아니라 우리 마음이다! 다윗을 범죄하게 한 것은 밧세바 때문이었을까, 암몬과의 전쟁이 피곤해서였을까? 아니다! 저주받을 대상은 우리 마음 속에 있는 죄이다! 우리에게는 정한 마음, 새마음이 필요하고 그 마음은 하나님께로부터 온다. 자신의 힘으로는 그런 마음을 창조할 수 없다. 마음을 깨끗하게 하려고 애를 쓰면 쓸스록, 점점 더 오염된다. 우리에게는 소망이 없다.
새사람이 되어야 하고, 새사람이 되려면 새마음이 필요한데, 그것은 하나님께로부터 온다! ‘주의 구원의 즐거움을 내게 회복시켜 주시고 자원하는 심령을 주사 나를 붙드소서.’(12절) 주님이 왜 이 땅에 오셔서 복음을 전하시고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셨을까? 왜 그렇게 해야만 했을까? 우리가 죄를 짓고 돌아와 회개하고, 또 죄를 짓고, 이렇게 죄와 회개를 되풀이하다가 지옥으로 떨어지는 것이 안타까운 나머지 천국으로 슬쩍 들어가게 하신 것일까? 하나님은 그렇게 얍삽하신 분이 아니다. 더 이상 죄를 짓지 않도록 하기 위하여, 견고한 마음을 새롭게 지으시기 위해, 근본적으로 해결하는 길을 보여주신 것이다. 그것은 거듭남과 새로운 창조를 이루는 것이다. 다시 태어나며 하나님의 성품에 새롭게 참여하게 되는 것이다!
‘하나님은 사랑이셔, 그러니까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너를 용서하신 거야. 그러니 이제부터 마음 고쳐먹고 새출발하라고.’ 복음은 이렇게 새롭게 노력하라고 우리를 부추기는 것이 아니다! 복음은 죄를 용서하며 새로운 삶을 살도록 노력하라는 것으로 그치지 않는다. 새로 태어나게 하며,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하며, 또 새마음을 주시어 하나님의 성품에 참여하게 한다. 흔들리지 않는 새마음이 우리 자아 속에 확립되어야 한다. 복음은 하나님께서 우리 가운데 찾아와 거하시도록 하신다! 나를 내려놓고 하나님과 하나되게 하시어, 새로 태어나 새세상에서 새마음으로 살아가게 하신다!!
첫 번째로, 죄인임을 자각한다! 두 번째로, 우리의 연약함을 깨닫고 회개하여, 하나님의 사랑으로 죄를 용서받는다. 세 번째로, 하나님이 주시는 새마음, 새 성품을 입음으로 새사람이 된다. 여러분 모두가 새마음으로 새사람이 되며, 구원의 즐거움을 회복하여 견고하게 서기를 축복드린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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