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말씀   >   설교전문

설교전문

왜 고난받으셨나? (이사53:1-6) [2020년 4월 5일, 종려/ 수난주일]
2020-04-04 15:05:51
박신진 목사
조회수   519
설교일 2020-04-05
설교말씀 이사야53:1-6
설교제목 왜 고난받으셨나?

왜 고난받으셨나?

53:1-6

202045[종려/ 수난주일]

 

오늘은 수난주일이다. 오늘 주일에 나귀를 타고 초라한 모습의 왕으로 예루살렘에 입성하신 예수 그리스도는 이 한 주간 십자가의 고난을 받으셨다. 사람들이 종려나무 가지를 흔들며 왕이신 예수님을 환영했다 해서 오늘을 종려주일이라고도 한다. 왕의 입성 주일이라는 것이다. 왕으로 예루살렘에 입성하신 예수는 왕궁을 접수하거나 성전을 차지하지 않으시고, 오히려 채찍에 맞으시고 조롱을 받으신 후에 영문 밖으로 끌려가셔서 골고다언덕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셨다.

왜 예수님이 고난받으셔야 했나? 왜 예수님은 그토록 고통스럽게 십자가에 달리셔야 했을까? 오늘 수난주일은 정말 어렵게 모인 예배이다. 역병이 온 세계를 강타하고 있다. 어쩌면 금방 끝나지 않을 대재앙이 될지도 모른다. 예수님의 수난을 생각하며 그 의미를 찾아 오늘에 살리는 주일이 되어야 할 것이다. 본문은 고난받는 종에 대한 네 번째 노래의 중심부분이다. 이 말씀은 고난받는 종 메시아가 왜 고난받으셨나?’를 적고 있다.

 

교회에 처음 나온 분들도 교회의 상징이 십자가라는 것은 다 안다. 십자가는 예수께서 우리를 위해 피흘리고 죽으셨다는 것을 상징하는 징표이다. 바로 이러한 예수의 사역을 가장 잘 보여주는 말씀이 본문이다. 우리가 전한 것을 누가 믿었느냐?(1절상) 여기서 우리가 전한 것이 선지자가 평소에 많이 전한 메시아 예언이다. 메시아 예언을 그렇게 전했는데도 누가 도대체 믿었단 말이냐? 여호와의 팔이 누구에게 나타났느냐?(1절하) 여호와의 팔은 하나님의 권능인데, 바로 앞장 10절에 이런 말씀이 나온다. ‘여호와께서 열방의 목전에서 그의 거룩한 팔을 나타내셨으므로 땅끝까지도 모두 우리 하나님의 구원을 보았도다.’ 열방의 목전, 온 세상 앞에 여호와의 능력이 나타나지 않았느냐, 왜 못 믿느냐는 것이다.

그는 주 앞에서 자라나기를 연한 순 같고 마른 땅에서 나온 뿌리 같아서, 고운 모양도 없고 풍채도 없은즉 우리가 보기에 흠모할 만한 아름다운 것이 없도다.(2) 주 앞에서 자라났다는 표현은 하나님의 특별한 보살핌과 사랑이 메시아에게 집중되었음을 가리킨다. 그러나 연한 순이나 마른 땅에서 나온 뿌리는 다 너무 약하고 멸망할 만한 안 좋은 상황을 말하는 것으로서, 메시아가 망해버린 다윗 왕조에서 나온다는 뜻이다. 메시아는 멸시를 받고 여러 가지 고생을 많이 했으며, 사람들에게서 인정을 받지 못해서 얼굴을 돌릴 정도였다.

그런데 알고 봤더니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는 징벌을 받아 하나님께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 하였노라.(4) 자기 죄로 벌을 받는 줄 알았더니 알고보니 우리의 병을 대신 지고 우리 슬픔을 당하는 것이었다. 여기서 5절 중요한 말씀이 나온다.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 메시아가 고난을 받고 상처를 입은 것은 우리 허물과 죄 때문이었다. 그분이 징계를 받아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낫게 되었다.

이제 우리 자신을 돌아보니,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모두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6) 양이 착한 것 같아도 은근히 고집이 세고 제멋대로다. 항상 우리는 양 같이 착한 척 하면서 하나님을 거역한다는 것이다.

 

메시아 예수가 세상에 오셨다. 예수는 왕도 아니고 뛰어난 학자도 아니며 내세울 만한 것이 없는 분이었다. 예수는 고난받으셨다. 그러나 그분이 메시아시다! 1)우리의 슬픔을 담당하셨다. 2)간고를 많이 겪으셨다. 고생살이가 심했다. 3)우리 죄악 때문에 상처를 받으셨다. 4)우리의 허물 때문에 많이 찔리셨다. 가시에 찔리고 창에 찔리고, 사람들의 말에 찔리셨다. 5)우리를 평화롭게 하기 위해 징계를 받으셨다. 6)우리를 낫게 하기 위해 채찍에 맞으셨다. 뼈와 징이 박힌 채찍으로 엄청나게 맞으셨다. 7)질고, 병을 많이 앓았다. 왜 메시아이신 예수가 고난받으셨나? 우리 죄악을 담당시키시기 위해서이다. 우리 죄 때문에 우리가 받을 벌을 대신 받으신다. ‘여호와께서는 우리 모두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다.’(6절하)

누군가 죄를 지으면 그 댓가를 치러야 속죄할 수 있는 것이 보편타당한 진리다. 그러나 다른 사람의 죄를 담당하여 그 댓가를 치르려면 그만한 자격이 있어야 한다. 이스라엘 백성이 지은 죄에 대해 진실한 속죄가 이뤄지려면, 그 종은 허물이 없고 죄가 없어야 한다.” 죄인이 같은 죄인을 대신하여 속죄할 수는 없다. “거룩하고 악이 없고 더러움이 없고 죄인에게서 떠나 계시고 하늘보다 높이 되신 이”(7:26)라야 다른 죄인의 죄를 속죄할 수 있다. 그 어떤 위인이나 종교적인 인물이라도 사람은 이러한 속죄의 사역을 전혀 감당할 수가 없다. 죄 없으신 의인만이 죄를 대속할 메시아가 될 수 있다.

구약에는 유월절에는 아사셀이라는 양 한 마리를 택하여 온 백성들의 죄를 짊어지워 광야로 보내 죽게하는 관습이 있다. 바로 예수님은 유월절 양으로 인류를 위하여 십자가에서 죽으신 것이다. 오직 의로우신 예수 그리스도만이 중보가 되시며 속죄의 제물이 되실 수 있다.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적 고난과 속죄, 그리고 구원 교리는 선하신 그리스도의 피에 의해서 되는 일이다. 예수만이 죄를 속하실 메시아가 되실 수 있다. 하나님과 동등하시고 죄 없으신 의인이신 그분만이 인간의 뿌리 깊은 죄를 사하시고 하나님의 의에까지 올리실 성결한 제물이 되신다. 예수가 왜 고난받으셔야 했나? 인간의 죄를 사하기 위해서이다.

죄가 깊이 존재하고 있고 죄의 극악성이 얼마나 지독한가! 속죄가 없이는 인간이 구원받을 수 없다. 여기 본문이 보여주는 대로, 대신 죄와 허물을 감당하시는 메시아의 사역, 이것이 없이는 인간을 죄에서 속죄할 길이 없다. 하나님이 택하신 죄 없으시고 의로우신 그리스도의 속죄가 없을 때에는 사죄가 불가능하다. 선지자가 전한 것, 여호와의 권능의 팔은 바로 이 사죄의 능력이다. 그리스도의 속죄가 구원의 길을 보여주는 것이고, 그 길을 알려주는 것이다.

요한복음 1934절에 보면, ‘그 중 한 군인이 창으로 옆구리를 찌르니 곧 피와 물이 나오더라.’고 되어 있다. 피는 죄를 대속하는 예수의 보혈이고, 물은 씻어주는 물을 말한다. 예수님의 십자가 고난은 피로 죄를 사함 받고, 물로 지은 죄를 씻음 받는 역사를 이루었다. 곧 예수님의 피로 죄사함의 은혜를 얻었고, 매일의 삶 속에서 성령의 강이 흘러 더러워진 것을 성화하는 역사를 누린다는 것이다.

요즘 미세먼저 때문에 와이셔츠를 사흘만 입어도 목이 새까매진다. 그만큼 공기가 안 좋아졌다. 그러니 세탁하고 씻어야 깨끗이 입을 수 있다. 구원받은 우리가 예수의 십자가 고난으로 죄 사함을 받았으나, 살다보니 세속화되고 어지러워지고 유혹에 넘어진다. 그래서 씻어야 한다. 매일 세수만 해서는 안 되고 샤워하고 목욕해야 한다. 말씀으로 성령으로 씻어야 한다. 예수님이 왜 고난 받으셨나? 질고와 간고를 받으신 것은 우리를 구원하시고 성화시키시려고 하신 것이다.

 

미국도 하루 사망자가 1500명이 넘어가고 있으며, 전세계에 코로나 환자가 100만을 넘어섰다. 요즘 차츰 전염병 전문가 중에 장기화를 준비해야 한다고 전망하는 사람도 있다. 100년 전에 유럽과 전세계를 강타했던 스페인 독감의 경우는 2년에 걸쳐 발병했고, 3차 유행까지 퍼지면서 전세계에 엄청난 피해를 주었다. 이번에 자료를 보고 알았는데, 사망자가 천만 명이 넘었다고 한다. 의학이 발달하고 대처능력이 좋아지긴 했어도, 치료제가 나오거나 전세계 60% 이상 발병되는 상황이 되어 끝날 텐데, 둘 다 1년을 넘길 것으로 본다.

의료대처 능력이 뛰어난 나라들이 피해를 덜 볼 것이라고 한다. 학교, 자영업자들은 이번 학기에 빨리 회복될 것을 기대하기보다 온라인 강의나 장기 사업구상을 조금씩 해야 할 것이라는 진단도 나온다. 현재 전세계적 확산을 단기적으로 막는 데 실패했고, 앞으로 2-3개월에 폭발적 확산을 예상하는 사람들이 많다. 따라서 장기 대비를 시작해야 한다고 한다. 이 시기에 무너지는 사업도 있고, 오히려 잘 되는 사업도 일부 있다고 한다. 이 시기에 환경오염이 오히려 줄어들고 있으며, 사람들이 극도로 위생에 신경쓰다 보니까 지난겨울에는 독감환자 수가 급격히 줄어들어서 우리나라는 과거보다 사망자 수는 오히려 줄어들 수도 있다고 한다.

예수님은 우리를 구원하시려 고난받으셨는데, 우리에게는 왜 이런 질병의 극심한 고난이 닥쳐왔을까? 쉽게 결론을 내릴 수는 없다. 그러나 우리가 감당할 수 없는 이 큰 재난 앞에서 먼저 인류는 겸손해야 한다. 그동안 행복과 생명을 스스로 만들기라도 할 듯이 우리가 너무 교만했다. 인간은 창조주의 손 안에 있다. 하나님이 허락하신 범위에서 행복하고 평안할 수 있다. 또 창조주 하나님께로 돌아가야 한다. 자연훼손, 기후재난, 핵문제, 빈부격차를 회개하라! 하나님의 뜻을 물으며 기도하는 사람들이 되어야 한다. 이제 죽음과 역병의 위협 앞에서 제로 베이스로 돌아가 인류문명에 일대 반성이 있어야 한다고 주님께서 요구하시는 것이라고 본다.

 

수난주간에 생각할 것은 예수님이 극심한 고난을 당하셨다는 것이다. 이번 주간에 전 세계는 극심한 코로나19의 고난을 당하는데, 그리스도는 고난을 겪으시면서도 그것을 단호히 이겨내셨다. 예수 그리스도는 고난의 깊은 곳에서 인성의 고통을 다 겪으시면서도, 한편으로 그 안에 신성이 조화가 되어 그의 영혼의 모든 능력을 심오하게 하였다. 예수 그리스도의 고생은 말하자면 다른 이를 구원하기 위한 거룩한 고생이었던 것이었다. 주님은 극심한 육체적 고난, 사회적 고난, 영적 고난을 겪으셨다. 고난의 가장 깊은 곳까지 들어가 지옥과 죽음을 경험하셨다. 십자가는 인류가 만들어놓은 사형도구 가운데 가장 고통이 극심하고 잔인한 형벌도구였는데, 그리스도는 그것을 짊어지고 죽으셨다.

그리스도의 고난은, 1)가장 가까운 친구까지, 제자들까지 예수님을 이해해주지 못했던 고생이다. 그를 아는 사람도 그를 잘 몰라주는 것이 얼마나 외롭고 힘든 일인가! 그는 고난을 당했으나, 가까운 제자들이나 어머니마저 그를 잘 이해하지 못했다. 2)원수들, 바리새인과 로마 군병들이 악의에 찬 자세로 대적해 왔기 때문에 마음고생을 많이 하셨다. 그들은 예수님을 가장 잔인하게 쫓아다녔다. 3)백성에 의해 버림받는 고난을 당하셨다. 빌라도의 법정에서는 시위가 일어났는데, 그것은 바라바를 풀어주고 예수를 십자가에 못박으라는 것이었다. 예수님은 군중들로부터 버림받으셨다.

그의 죽음이 얼마나 부당하고 억울했으면 천지가 진동하고 하늘의 해가 빛을 잃었으며 성전 휘장이 찢어졌겠는가! 바울은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죽으셨다.”(5:8)고 했다. 찬송시인 시빌 알렉산더는 저 멀리 푸른 언덕에 그 십자가 위에, 주 예수 나를 위하여 못박히셨도다.”라고 노래하였다. 여기서 <>는 마음이 상한 <>, 힘이 없어 적에게 사로 잡힌 <>이며, 가난과 질병에 시달리는 <>이다. 이런 <>를 위해 십자가의 죽음을 당하신 것이다.

 

양 같은 유대인들은 다 제 길로 갔다.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6) 양들이 하나님에게서 떠나갔다고 분명하게 말한다. 우리는 하나님의 집을 떠나서 그릇된 길로 가는 중이다. 창조주, 우리의 영원한 아버지, 우리의 거룩한 친구 되시는 하나님의 집으로부터 우리가 떠나 있다. 하나님이 거하시고 다스리시며 은혜의 빛을 비추시는 거룩한 집을 잃어버렸다. 집으로 돌아가라! 감사와 사랑, 존경과 순종이 없어진 것은 그 거룩한 집을 떠났기 때문이다. 다 양 같아서, 겉으로 착해 보이지만 고집 세고 제멋대로이다. 영적 질서가 없고 따라서 진정한 안식과 기쁨이 없다. 양들이여, 고난을 당할 때, 이제 각기 제 길로 가던 길에서 떠나 아버지의 집으로 돌아가라!

각기 제 길로 간다. 죄가 되는 잘못은 많은 길을 가게 만든다. 때로는 별 것 아닌 일로 우리 마음이 뒤틀리게 하여 불신과 부인의 길을 가게 만들고, 때로는 영적 반역과 하나님의 구원을 경멸하는 길을 가게 만든다. 어떤 때는 죄의 방종에 빠지게 하고, 그 외의 여러 가지 형태 속에 빠지게 만든다. 각기 제 길로 가는 것이다. 또한 나태와 신성한 의무에 대한 무관심, 죄가 되는 태도를 취하게 만들고 형식주의에 빠지게 한다. 경건의 본질은 외면한 채 경건의 모양만 보여주는 것이다.

그러나 이 모든 죄의 길 중에서도 모든 사람에게 가장 보편적인 길이 있으니 그것은 하나님의 뜻에 거역하고 인간의 뜻을 내세우는 일이다. 우리는 고집 센 양처럼 각기 악한 마음이 명하는 대로 자기의 길을 간다. 주님은 내 뜻대로 하지 마시옵고, 주님 뜻대로 하옵소서.’ 기도하였으나, 오늘의 그리스도인들은 주님 뜻대로 하지 않고 내 뜻대로하느라 주님의 길을 버리고 말았다. 결국 하나님에게서 멀리 떨어졌다.

 

주님이 왜 고난받으셨나? 죄를 사하시려 고난받으셨다. 주님은 고생을 하시고 병으로 애쓰셨으나 그 모든 고난은 바로 우리 죄를 사해주시고 평화를 누리게 하시려는 것이었다. 눈이 잘못되어 주님을 알아보지 못하고 멸시하였으며, 자기 고집대로 멋대로 자기 길로 그릇 가는 양들을 속죄하기 위해 고난받으셨다. 고생하고 병을 앓는 메시아 그리스도께서 대신 맞고 대신 상처를 받았으며 대신 찔리셨다. 주님이 고난받으시므로 우리 죄가 사함을 받고 주님이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가 평화를 누린다.

우리에게는 왜 고난이 왔나? 주님의 고난으로 죄사함을 받는다면, 우리에게 온 코로나19의 고난은 우리를 겸손하게 한다. 또 불신앙과 성적 방탕, 배금주의를 회개하고 하나님께로 돌아가게 한다. 자연파괴, 환경훼손, 전쟁연습, 빈부격차의 잘못을 회개하고 하나님의 도움을 겸손히 구해야 할 때이다. 거기에서 더 나아가 그리스도의 제자 된 우리들은 주님이 세상을 위하고 남을 위하여 고난받으신 것을 본받아, 우리 몫에 주어진 고난을 감당하여 평화와 사랑을 이루는 평화의 일꾼들이 되어야 하겠다. 십자가에 달리신 그리스도를 바라보면서, 고생이 많고 어려움이 있더라도 사랑과 평화의 일꾼들이 되기를 축복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믿음을 가지고,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면서, 오직 감사할 뿐이다. 하나님께서 전염병에서 우리를 보호하실 것이다. 하나님께서 모든 피해도 다 이기게 하시며 지켜주실 것이다. 그러나 그리 아니하실지라도, 우리는 감사하며 나아갈 뿐이다. 4‘감사라고 들어보셨는가? ‘그럼에도 감사/ 그럴수록 감사/ 그러니까 감사/ 그래도 감사가 그것이다. 인간의 죄를 대속하기 위해 그리스도께서 고난받으신 시기에, 온 세상에 전염병의 위험이 있지만, 그럼에도 감사하고, 그럴수록 감사하며, 그러니까 감사하고, 그래도 감사하자!! *

 

댓글

댓글쓰기 권한이 없습니다.
번호 제목 작성자 등록일 조회수 첨부 파일
764 하나님의 중간평가 (신16:9-12) [20025년 7월 6일, 맥추감사절] 박신진 목사 2025-07-05 3
763 마음의 평화(빌4:6-9) [2025년 6월 29일, 성령강림후 셋째주일] 박신진 목사 2025-06-28 15
762 감사하며 삽시다! (골3:15-17) [2025년 6월 22일, 성령강림 둘째/ 순교자기념주일] 박신진 목사 2025-06-22 28
761 문제보다 큰 은혜 (누가8:26-39) [2025년 6월 15일, 삼위일체/ 성령강림후 첫째주일] 박신진 목사 2025-06-15 35
760 매일 주님과 함께 (요14:8-17) [2025년 6월 8일, 성령강림절] 박신진 목사 2025-06-11 33
759 가정을 지키는 네 기둥 (시78:5-8) [2025년 6월 1일, 부활절여섯째/ 평신도주일] 박신진 목사 2025-06-11 25
758 마음 속의 불 (로마1:16-17) [2025년 5월 25일, 부활절 여섯째/ 웨슬리회심287주년기념주일] 박신진 목사 2025-05-24 59
757 교회의 영광과 은혜 (마태16:13-18) [2025년 5월 18일, 교회창립114주년 기념주일] 박신진 목사 2025-05-17 55
756 든든하고 행복한 가정 (시127:1-5) [2025년 5월 11일, 부활절넷째/ 어버이주일] 박신진 목사 2025-05-13 60
755 네 손으로 붙들라! (창21:14-21) [2025년 5월 4일, 어린이주일] 박신진 목사 2025-05-03 68
754 지혜를 구하는 마음 (역대하1:7-13) {2025년 4월 27일, 부활절 둘째주일] 박신진 목사 2025-04-26 71
753 다시 사신 그리스도 (고전15:20-28) {2025년 4월 20일, 부활절] 박신진 목사 2025-04-26 65
752 너희는 하나님과 화목하라! (고후5:18-21) [2025년 4월 13일, 수난(종려)주일] 박신진 목사 2025-04-26 65
751 변화냐, 죽음이냐? (렘31:31-34) [2025년 4월 6일, 사순절 다섯째주일] 박신진 목사 2025-04-05 85
750 새 사람, 새 마음 (시51:8-13) [2025년 3월 30일, 사순절 넷째주일] 박신진 목사 2025-03-30 96
1 2 3 4 5 6 7 8 9 10 ... 5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