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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 시작하는 교회 (행2:42-47) [2020년 5월 3일, 부활절 넷째/ 어린이주일]
2020-05-02 11:55:22
박신진 목사
조회수   75
설교일 2020-05-03
설교말씀 행2:42-47
설교제목 새로 시작하는 교회

새로 시작하는 교회

2:42-47

202053[부활절 넷째/ 어린이주일]

 

사상 초유의 바이러스 전염으로 인한 사회적 거리두기 실행 때문에 교회에 예배가 정상으로 돌아오지 못하는 지 삼개월 째이다. 교회는 이번 주일에 11주 만에 교회학교예배를 재개하였고, 다음주일부터 주일 점심애찬과 오후예배를 재개함으로 모든 예배가 완전 회복된다. 참으로 긴 시간이었고 교회로서는 어려운 과정이었다. 교회예배 없이 영상예배만 드린 주일이 세 번, 오직 11시 예배만 드린 주일이 4, 911시 예배로 두 번 드린 주일이 3번이다. 이러다가 예배드리는 것 잊어버리는 건 아닐까, 믿음에 큰 지장을 가져오지는 않을까 하는 염려가 우리 사이에 많았다.

신학자들 가운데는 어쩔 수 없이 교회문을 닫고 예배를 영상으로 가정에서 드릴 수밖에 없는 이럴 때 교회가 교회생활을 다시 점검해보고 새로 시작하는 마음으로 새출발하는 것도 괜찮다고 하는 사람도 있었다. 컴퓨터가 프로그램이 엉켜서 잘 운영되지 않고 고치기도 어려우면, 중요한 자료만 빼내고 처음부터 새로 시작하는 리셋을 실행하는 것도 방법이라고 한다. 이처럼 교회생활 리셋을 시도해보라고 권하기도 한다.

사람과 교회도 이 땅위에 존재하고 있으므로 완전하지 못하여 때로 고장날 때도 있고 잘못될 때도 있다. 이번에는 외부적인 사회문제 때문에 예배를 중단하고 교회생활을 멈추어야 하는 일이 생겼다. 그러므로 리셋하는 마음으로 우리의 교회활동과 예배, 믿음에 대하여 다시 점검하고 시작하는 것도 우리 영적 생활에 매우 유익하다고 할 수 있다. 어떻게 해야 하겠는가? 새로 출발하는 프로그램이 있는가? 그게 바로 성경이다. 특별히 사도행전은 신약시대의 교회가 어떻게 시작되었는지 보여준다.

만약 우리의 신앙과 교회생활을 새로 시작해야 한다면 어디에서 할 수 있을까? 사도행전에 나오는 초대 예루살렘교회가 그 모델이다. 모든 시대 모든 교회가 늘 본받고 돌아가야 할 교회의 모습이 여기에 나온다. 처음 시작할 때 교회는 어떠했는가? 본질적 요소가 무엇이었나? 성령이 불같이 임하고 믿는 이의 수가 날마다 늘어갈 때의 교회의 모습은 어떠했나를 살펴보자. 초대교회에서 행하였던 일들을 오늘에도 행할 때 우리의 교회생활을 즐겁고 보람있으며 교회는 부흥될 것이다.

 

42절은 베드로의 설교에 3천 명이 회개한 이후에 예루살렘 교인들의 신앙 모습을 요약해서 보여준다. 내용상 본절은 초대교회의 생활을 묘사한 것으로 43절부터 47절까지의 내용에 포함되는 것이다. 원문학자들은 앞부분에 연결되는 절로 구분하였다. 외적인 숫자가 엄청나게 늘어나는 데 이어 내적인 생활의 발전이 따랐다. 역시 교회는 교인들이 변화될 때 진정으로 바로 되었다 할 수 있다.

그들은 네 가지에 힘썼다. 사도들의 가르침을 받는 데에 힘썼고, 서로 교제하는 데에 힘썼으며, 떡을 떼기에 힘썼고, 그리고 기도하기에 힘썼다. ‘전혀 힘쓰니라는 말씀은 그 일에 헌신하였으며, 변함없이 지속하였다는 말씀이다. 여러분도 초대 예루살렘 교인들처럼 즐겁고 보람있게 교회생활하기 바란다. 여러분도 초대 예루살렘 교인들처럼 영적으로 크게 부흥되고 강력한 믿음의 사람들로 살아가기를 바란다. 새로 시작하는 마음으로 사도의 가르침을 받기, 교제, 애찬, 그리고 기도- 이 네 가지에 힘쓰자!

 

사도의 가르침을 받기

첫째로, 사도의 가르침을 받기에 힘썼다. ‘가르침을 받아라는 말이, 영어를 쓸 줄 아는 분들을 위해 참고로 말씀드리면, ‘they devoted themlves to the apostles' teaching'라고 되어 있다. 이 말은 사도들이 가르치기에 힘쓴다는 것이 아니라, 교인들이 사도들의 가르침을 힘써 받는다는 말이다. 예로부터 가르침을 잘 받는 시대가 영적 부흥의 시대요, 위대한 시대이다.

한국교회의 진정한 부흥은 사도의 가르침을 잘 받을 때 일어났다. 유명한 부흥사가 도시에 오면 모든 교회 교인들이 그 말씀 듣기를 사모하여 열 일을 다 멈추고 가르침을 듣기 위해 구름같이 모여들었다. 김교신 선생 같은 이는 유영모 선생의 가르침을 듣기 위하여 정릉에서 서대문 어귀까지 매 주일 걸어서 다녔다. 따져보니까 10km가 좀 더 된다. 아마 빠른 걸음으로 3시간 이상 걸렸다. 가르침을 받기에 힘쓰던 그 시절에는 사람들이 영혼이 깨어있었고 교회가 영적 부흥을 이루었다. 우리도 대학시절에 유명한 강사의 말씀을 듣기 위해 수유리에서 연세대학으로 버스 타고 다녔고, 명동 YWCA 강당으로 가르침을 받으러 다녔다. 그리고 그때 배운 것이 지금 이 나이 될 때까지 진정으로 남아있는 가르침인 것 같다.

어느덧 사람들이 가르침을 받는 데 열정이 식었다. 가르침을 받기보다는 가르치려고 하고 남에게 자기주장을 펴는 데에 익숙한 시대이다. 그러다 보니 배워야 할 이유가 너무 많은 젊은이들과 배울 기회가 없어서 기회가 있을 때 부지런히 배워야 하는 사람들까지 배우려 하지 않는다. 우리 시대의 영적 위기는 가르침을 받지 못하는 데 있지 않을까? 초대교회처럼 가르침을 받는 데에 더욱 집중하고 노력하자. 가르치는 사람보다 가르침의 내용, 그 가르침의 본질이신 예수 그리스도와 복음에 집중할 때 변화와 부흥이 일어날 것이다.

사도들의 가르침은 설교다. 설교시간에 가르침을 받기에 노력하는 사람들은 영혼이 깊어지고 풍성해진다. 잡념에 사로잡히고 자꾸 들락거리는 사람은 아무래도 은총을 받기에 어렵다. 사도들의 가르침은 성경공부다. 사도들의 가르침은 신앙 독서다. 사도들의 가르침은 강의나 교육이다. 이런 것에 열심을 내는 교회는 틀림없이 부흥된다. 70-90년대 교회들의 부흥과 발전에는 성경공부 프로그램에 교인들이 대다수 참여하여 말씀으로 깨우치고 감동하여 사람들이 변화되고 헌신한 것이 주된 요인이었다.

사경회에 참여 안 하고, 부흥회를 부담스러워 하며, 수요성경공부 참여에 힘쓰지 않고, 새벽기도회의 말씀읽기와 사경에 소홀하는, 이런 모든 게으름과 무감각이 우리를 무기력하고 싫증나는 교회생활에 머물러 있게 한다. 결국 지루한 교회생활, 형식적인 신앙생활을 하는 데에는 말씀 듣기 소홀이라는 이유가 있다. 자기 집 반찬에 맛을 들이지 못하고 달고 고소한 바깥 반찬만 찾다가 당뇨에 혈압 걸리는 사람처럼, 이미 하나님이 교회를 통하여 풍성한 영적 식탁을 마련해주시는 데도 자꾸 바깥을 다니며 구정물을 마시다가 신천지, 하나님의교회, 구원파 이단에 빠진 자들이 얼마인가! 통탄할 일이다!! 말씀대로 권하니 마음을 새롭게 하여 사도의 가르침 받기를 힘쓰라!

 

성도의 교제

둘째로, 초대 예루살렘교회는 서로 교제하기에 힘썼다. 교제라는 말은 사도행전에 몇 번 쓰였으나 바울서신에서도 많이 나타난다. ‘코이노니아이다. 초대 교부들은 교회를 성도의 교제라고 정의하였다. 그만큼 성도의 교제는 우리 신앙생활에 본질이고 핵심이다. 하나님과의 교제는 성도들과의 교제로 나타난다. 믿는 사람들끼리 어떤 차원으로 어떻게 교제하는가를 보면 그들의 믿음이 어디에 있는지를 금방 알아볼 수 있다.

교제, 코이노니아라는 이 말은 정신적 교제와 물질적 교제를 다 포함하고 있다. 교제의 차원이 많이 있다. 초대교회의 교제는 깊었고 폭이 넓었다. 초대교회 공동체는 주 예수의 이름으로 이루는 재산공유 공동체였다. 재산과 소유를 다 팔아 재산을 공유하면서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눠주며, 집에서 떡을 떼며 음식을 먹었다. 그냥 스쳐지나가는 의례적인 교제가 아니다. 깊게 교제할수록 심령이 변화되고 각양 은사를 맛보게 된다. 오래 신앙생활을 했는데도 성도의 교제가 인간적이고 세속적인 차원을 넘어서지 못했다면 깊이 반성해 보아야 한다.

함께 맛있는 음식을 먹으면서 농담을 나누거나 게임이나 운동을 하는 차원이 아니다. 그들의 교제는 안으로는 구원의 감격과 기쁨을 함께 나누고, 밖으로는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재산과 소유를 팔아 각 사람이 필요한 대로 나눠주는 수준이었다. 마음이 하나 되었고, 내 것 네 것을 따지지 않고 평등한 사회, 함께 어울리는 사랑의 공동체를 이루었다. 많은 시대의 사람들이 한번 이뤄보기를 원하는 내 것 네 것이 없이 재산을 공유하고 함께 사는 원시공산사회가 이때 이뤄진 것이다. 사람들의 탐욕과 사회의 구조상 이런 재산공유공동체가 역사 속에서 계속되지는 못하였다. 그러나 초대교회가 그런 정신을 실천했다는 것을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우리의 교제도 이와 같은 수준을 바라보며 발전해 가야 하겠다.

우리는 천국을 향해 나아가는 길벗들이다. 천국 동창생이며, 삶의 이상을 향해 뜻을 모으고 힘을 모으는 사람들이다. 여기에 얼마나 기쁨이 있고, 재미가 있으며, 발전이 있고, 의미가 있겠는가! 성도의 교제는 정말 보화와 같이 고귀하고 아름다운 것이다. 내 신앙생활을 돌아볼 때, 청년시절에 매주 성경공부하던 동료 청년들과 깊은 영적 교제가 있었다. 후에 베델이나 성경공부 프로그램을 함께 한 성도들과 영적 교제가 풍성했다. 깊은 대화를 나누고, 슬픔과 기쁨을 수시로 함께 나누며, 서로 마음의 깊은 만남이 있는 교제가 교회 안에서는 있어야 한다. 그때 건강하고 내실 있는 영적 생활이 이뤄질 것이다.

 

애찬과 성찬

셋째로, 그들은 떡을 떼기에 힘썼다. 떡을 떼었다는 것은 세 가지를 생각해볼 수 있다. 성찬과 애찬, 그리고 보통 식사의 경우이다. 아마 이 세 가지를 다 겸한 것이었을 것이다. 초대교회에서는 같이 모여서 먹는 애찬과 성찬을 같이 시행했다. 그러다가 두 가지는 차차 분리되었고 나중에 애찬은 교회 내에 부자와 가난한 자 사이의 갈등을 일으키는 원인이 되었으므로 폐지되고 성찬만 남았다. 떡을 떼는 데에 힘썼다는 말이 무슨 뜻일까 하겠지만, 이 말씀은 열심히 모였다는 말이다. 마음을 같이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었다. 요즘 식으로 말하면 같이 집에서도 밥을 해먹고 식당에도 같이 다니며 찻집이나 놀이모임도 다니면서 많은 시간을 함께 있었다는 것이다.

요즘 대부분의 교회들이 2부 예배 후 전교인 애찬을 나눈다. 코로나19 사태로 10여 주 하지 않으니 그것도 허전하다. 다음 주부터 애찬이 정상적으로 회복될 예정이다. 이번에 주방을 개비하였다. 이번 봄의 교회 수리 12천 공사 가운데 주방 집기를 교체하고 모든 설비를 수리하는 데 5천만 원 들었다. 식사준비로 매주 돌아가며 애쓰는 여선교회에 힘이 되기를 바라며, 이 기회를 빌어 치하를 드린다. 음식 봉사하는 이들에게 건강을 주시고 그리스도의 사랑을 부어주시기 바란다. 음식을 나눌 때 성도들이 모여 나누는 음식은 애찬이다. 그리스도의 사랑을 의미하는 아가페를 써서 아가페밀이라 한다. 즉 밥을 나누면서 사랑을 나눈다는 것으로서, 순전한 마음이 모여 하나 되는 자리이다.

애찬을 나눌 때는 기쁜 마음으로 감사하며 먹어야 한다. 하나님께 감사하고 수고하신 분들에게 감사해야 한다. 무엇보다 애찬을 위해 예산이 지출되고 묵묵히 수고를 고루 나누어 감당하고 있다. 먹는 이들은 당연하게 여기지 말고 수고하는 이들을 위해 말 한마디라도 격려를 아끼지 말라. 남자들은 몇 주에 한 번씩 돌아오는 주방청소 봉사를 기쁨으로 감당해주시고, 사정이 여의치 않아 봉사 못 했던 이들은 이제부터라도 기회 있는 대로 함께 주방에서 봉사하시라. 섬길 때는 부득이함으로나 억지로 하여 불평이나 원망이 생기지 않도록 하고, 감사하면서 기쁨으로 봉사하라.

또한 떡을 뗀다는 말씀은 그리스도를 기념하는 거룩한 성례를 따라 성찬을 행하는 것이다. 성찬을 받을 때는 믿음으로 받고, 주의 죽으심과 부활 안에서 하나님과 영적으로 깊이 교통하고 하나 되며, 나아가 모든 성도가 주 안에서 하나 되는 일을 이루게 된다. 성찬을 믿음으로 받고 감사하며 성찬에 동참하라! 성찬을 거행하기에 힘쓰며 그 성례를 철저히 믿음으로 받을 때 교회는 부흥되며 성도들의 영혼은 건강하게 성장한다.

 

기도- 간구, 도고, 감사(딤전2:1)

초대 예루살렘교회가 힘쓴 네 번째 일은 기도였다. 교회는 처음부터 기도에 힘썼고, 결정적인 순간 기도로 발전하며 문제를 해결하였다. 무엇보다 교회는 기도하는 모임이다. 주님은 성전을 청결케 하실 때 내 집은 기도하는 집이라고 말씀하셨고, 실제 기도의 모범을 보이셨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보이는 교회는 보이지 않는 기도의 힘으로 발전하고 있다. 기도의 등불을 끄지 말자. 기도의 용사가 교회를 살린다. 스스로 심지를 돋우라.

기도의 깊이만큼 믿음이 깊어진다. 기도의 분량만큼 영혼이 풍성해진다. 특별히 간구와 도고와 감사를 주님께 드리자(딤전2:1). 구체적인 간구의 기도는 우리 삶의 초점을 더욱 분명하게 하고 삶의 동기를 유발시켜 힘있는 생활을 하게 한다. 우리는 주님 앞에 우리 삶의 문제를 구체적으로 그림으로 그려 보고하듯이 간구함으로 더욱 구체적인 목표와 비전이 있는 생활을 하게 된다. 간구의 기도를 드리는 사람들은 눈동자가 희미해지지 않고 눈빛이 앞을 향해 빛나게 된다.

중보의 기도를 많이 드리자. ‘누군가 널 위해 기도하네.’ 마음이 지쳐있고 스스로 설 수 없이 기진맥진할 때, 중보의 기도로 연결되어있는 영적인 연대의 줄이 여러분을 일으켜 줄 것이다. 지금은 내가 남을 위해 기도할 수 있지만, 언젠가는 누군가 날 위해 기도해주지 않으면 일어설 수 없을 때가 올지도 모른다. 그때를 위해서라도 할 수 있을 때 힘 내어 기도를 저축하라. 남을 위해, 서로를 위해 쉬지 말고 기도하자. 의인의 기도는 병든 자를 일으킨다.

감사의 기도가 더욱 드려지게 하자. 감사의 기도는 우리를 불평과 원망과 분노에서 벗어나게 한다. 정말 짜증나고 모든 것이 싫어질 때, 작은 감사의 조건이라도 찾아 하나님께 감사의 기도를 드려보라. 때로 아무리 생각해도 감사할 것이 없을 때에라도, 조건 없이 하나님께 감사하며 시작해보라. 그러면 내 심령의 색깔이 달라진다. 우울에서 명랑으로, 낙심에서 소망으로, 조급함에서 여유로움으로!

 

초대 예루살렘교회는 네 가지에 힘씀으로 교인들이 바로 서고 교회는 건강해졌다. 무려 석 달의 혼란기를 지나 코로나19 생활방역으로 옮겨가는 이때, 교회는 처음부터 새로 시작할 때이다! 사도의 말씀 받기에 열심 내기를, 깊고 실제적인 성도의 교제가 이뤄지기를, 애찬과 성찬에 믿음으로 참여하기를, 그리고 기도에 힘쓰기를 주의 이름으로 권면한다. 이때 교인들은 본질의 생명력과 활기로 돌아가고 교회는 새로운 부흥의 시기를 맞이할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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