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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와 자녀를 위하여 울라! (눅23:26-31) [2025년 2월 16일, 주현후 여섯째주일]
2025-02-15 14:52:12
박신진 목사
조회수   48
설교일 2025-02-16
설교말씀 눅23:26-31
설교제목 너희와 자녀를 위하여 울라!

너희와 자녀를 위하여 울라!

누가23:26-31

2025216[주현후 여섯째주일]

 

요즈음 사람들 마음이 메말라서 눈물마저 말라버렸다는 얘기를 듣는다. 실제로 눈물이 너무 안 나와서 문제인 사람들이 많다. 원주 살 때 한번은 선배 목사님이 눈수술을 했다 해서 병원에 문병을 갔다. 눈 수술을 했다는데 별로 아파보이지 않아서 이유를 알아보았더니, 눈물샘에서 눈으로 눈물을 흐르게 하는 관이 막혀서 그것을 뚫어주는 작은 수술을 했다는 것이다. 우리 눈에는 눈물을 공급하는 관이 있어서 눈물이 흘러야 눈이 청결하고 건강하게 유지되는데, 그 눈물선이 막히면 눈꼽이 끼거나 충혈이 되어 많이 괴롭다. 백내장 수술이나 안질환을 앓는 이들 중 많은 분들이 인공눈물을 쓰는 것도 눈물 대신 눈의 상태를 유지시키려는 것이다.

그러나 교우들 얘기를 들어보면 어떤 분들은 눈물이 너무 많아서 곤란하다는 이들도 있다. 어떤 사람은 세상길로 방황하다가 처음 교회에 나왔는데, 교회문을 열고 들어올 때 사람들의 찬송 부르는 소리를 듣자 봇불 터지듯 울음이 치솟아 통곡을 했다고 한다. 어떤 성도는 교회 왔을 때 시시때때로 눈물이 너무 나서 민망할 때가 많다고 한다. 누가 툭 건드리기만 해도 눈물이 나오고, 어떤 찬양을 부르다가 눈물샘을 건드리기만 하면 댐이 터지듯 울게 된다는 것이다. 울 이유가 없는데도 이유없이 폭풍눈물을 흘리게 되니까 주변 사람들이나 가족들까지 걱정하게 된다고 한다.

어쩌다 예배를 드릴 때에나 교회에서 기도하다 눈물이 나서 주체 못할 때가 있는데, 이는 우리 눈을 청결하게 할 기회이니 기뻐할 일이다. 새벽기도 때나 예배 때 기도하면서 눈물을 흘리는 것은 눈만 청결케 하는 것이 아니고 마음까지 청결케 하는 효과가 있다. 나도 어느 때 기도하다 눈물을 흘리고 나면, 눈이 씻어지고 마음이 맑아지는 것을 느낀다. 눈물의 은혜다. 많은 경우에 울면 영혼이 치유되고, 하나님을 향해 마음이 열린다. 마음이 메말라 감동이 없고 눈물이 부족한 우리들에게 주님은 눈물의 은혜를 주신다.

여러분은 어떤 일이나 말씀 때문에 예수님의 은혜를 깨닫게 되었는가? 대부분 은혜는 눈물과 함께 임한다. 말씀 듣다가 눈물을 흘리고, 찬송 부르다가 눈물이 넘쳐흐를 때도 있으며, 기도하면서 눈물을 쏟기도 한다. 한국 교회는 눈물을 먹고 자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아버지 집에서 눈물 흘리는 것은 흉이 아니다. 목사관에서 자란 나는 어릴 적에 아침에 일어나면 새벽기도가 길어져 아침까지 눈물 흘리며 기도하는 분들을 가끔 볼 수 있었다. 대체적으로 은혜가 충만할 때 눈물이 풍성했다.

 

예수님이 십자가 지시던 날, 채찍에 맞아 넘어지고 쓰러지며 골고다 언덕을 오르셨다. 우리 죄를 대신 감당하신 그리스도의 고난은 견디기 어려운 죽음의 고통을 겪는 것이었다. ‘그들이 예수를 끌고 갈 때에 시몬이라는 구레네 사람이 시골에서 오는 것을 붙들어 그에게 십자가를 지워 예수를 따르게 하더라.’(26) 구레네 출신 시몬은 알렉산더와 루포라는 초대교회 지도자들의 아비이며, 예수님의 십자가를 억지로 지고 간 사람이다. 예수님이 십자가 지시던 날, 그는 십자가 언덕길 입구에 있다가 억지로 십자가를 지고 갔지만, 하나님은 예수님과 고난을 함께 당한 그에게 자녀의 복을 더해주셔서 아들들은 초대교회의 저명한 그리스도인 지도자가 되었다.

많은 사람들이 가슴을 치고 슬피 울며 예수님을 따라갔다. 그러자 예수께서 돌이켜 그들을 향하여 말씀하시기를, “예루살렘의 딸들아, 나를 위하여 울지 말고 너희와 너희 자녀를 위하여 울라.”고 하셨다. ‘나를 위하여 울지 말고,’ 예수님의 고난과 십자가, 그 고통과 아픔의 길을 공감하며 눈물흘리는 것은 귀하지만, 거기에서 더 나아가 우리 자신과 자녀들을 위하여 눈물을 흘리라고 주님은 말씀하신다! 여러분은 눈물이 있는가? 이 시대는 눈물의 감동과 눈물의 기도를 회복해야 할 때이다. 눈물이 메마르고 감동할 줄 모르는 이 세대에 눈물을 되찾는 성도가 되자. 나의 영혼을 위하여 울자! 가족과 나라를 위해 울어야 할 때다!

 

예수님이 울라 하신 그 눈물은 슬픔의 눈물이다. 이어지는 27절을 보면, ‘또 백성과 및 그를 위하여 가슴을 치며 슬피 우는 여자의 큰 무리가 따라오는지라.’ 하였다. 인생에는 고난이 있고 고난을 슬퍼하는 슬픔이 있다. 고난과 슬픔은 아프고 힘들지만, 인생에서 없어서는 안되는 한 요소이기도 하다. 슬픔은 인생을 성숙하게 하고 때로는 잘못된 부분을 바르게 한다.

인간은 거짓된 자아 속에서 그릇된 인생을 사는 경우가 너무 많다. 특히 요즈음은 가짜 뉴스가 판을 치고 인공지능까지 개발되어 사람을 현혹시키기 때문에 정신을 차리기 힘들다. 이런 경우를 가리켜 바울은 육신을 좇는 자”(8:5)라고 했다. 그 결국은 사망에 이르느니라! 모든 사람은 육신을 가지고 있지만 참된 자아는 육신에 있지 않고 영에 있다. 사람들은 거짓된 자아인 육신의 소욕에 이끌려 육신대로 살려 한다. 이런 육신의 욕망을 추구하는 헛된 자아는 고난과 슬픔을 통과할 때 참된 자아로 거듭날 수 있다. 사람이 고난을 통과하고 인생의 슬픔을 겪을 때, 비로소 성숙해지는 것은 고난과 슬픔이 인간의 헛된 욕망을 제어하여 참된 자아를 발견하게 하기 때문이다.

다윗을 보자! 그가 이스라엘이 암몬과 전쟁하고 있는데, 왕궁에서 한가하게 낮잠을 잤다. 저녁 무렵 왕궁 발코니를 산책하다가 목욕을 하고 있는 우리아의 아내 밧세바의 미모에 마음을 빼앗겼다. 그는 불의한 방법으로 그 여자를 취한 후에 권세를 악용하여 우리아 장군을 죽게 했다. 죄에 죄를 더하고 악에 악을 쌓은 것이다. 이때 하나님께서 선지자 나단을 보내어 그를 엄히 책망하셨고, 다윗은 회개했다. 그 후에 결국은 밧세바를 궁정에 들여 아기를 가지게 했는데 하나님은 그를 치셨다! 다윗은 밧세바와의 사이에서 얻은 아들을 잃었다. 그때 다윗은 식음을 전폐하고 울며 하나님께 기도하였다. 슬픔의 눈물이었다. 다윗은 이 슬픔의 눈물을 충분히 흘린 뒤에야 이스라엘의 성군이 될 수 있었다.

인간은 고난과 슬픔을 통과할 때 참 인간이 된다. 슬픔의 불가마 속에서 은금처럼 단련되어야 참된 자아를 찾을 수 있다. 이 세상에는 가난과 질병, 전쟁과 재앙, 여러 가지 실패의 경험 속에서 슬픈 눈물을 흘릴 때가 많다. 그러나 낙심하지 말라! 슬픈 눈물이야말로 인생을 성숙하게 하는 자양분이 될 수 있다. 푸시킨의 <생활>이라는 시이다. ‘생활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하지 말라!/ 슬픔의 날을 참고 견디면 머잖은 날 기쁨 오리니./ 현재는 언제나 슬픈 것 마음은 미래에 사는 것,/ 모든 것은 한 순간에 지나고,/ 그리고 지나가버린 것은 그리워지는 것이리니!’ 슬픈 눈물이 흐를 때, 슬픔만큼 우리 영혼이 정결해진다!

 

예수님이 울라고 하신 그 눈물은 통회의 눈물이다. 우리의 지은 죄로 인하여 슬퍼하며 울며 돌아올 때 사랑과 자비가 풍성하신 하나님은 우리를 용서하시고 풍성한 은혜로 채우실 것이다. 요엘은 패역하고 범죄한 이스라엘을 향하여 이렇게 예언한다. “여호와의 말씀에 너희는 이제라도 금식하고 울며 애통하고 마음을 다하여 내게로 돌아오라 하셨나니, 너희는 옷을 찢지 말고 마음을 찢고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로 돌아올지어다. 그는 은혜로우시며 자비로우시며 노하기를 더디하시며 인애가 크시사 뜻을 돌이켜 재앙을 내리지 아니하시나니.”(2:12-13)

옷을 찢지 말고 마음을 찢으라는 요엘 선지자의 말씀은 우리를 일깨운다!! 무슨 일이 생기면 남을 손가락질하기 전에 자신의 죄를 돌아보자. 국회의원들 선거 때 권력자로부터 부당한 지원을 받아 불법 공천되었다고 매일 뉴스에 나오니 우리가 다 국회의원들을 무슨 범죄자 보듯 한다. 그 공천받은 사람들 누구 위해 선거운동 했나? 선거자금 누구한테 썼나? 바로 TV 보면서 욕하는 지역구민들 밥 사주고 교통비 주고 활동비 주느라 쓴 것 아닌가? 잘했다는 게 아니라 작금의 정치를 보면서 누구를 비난하나? 먼저 우리 모두가 통회의 눈물을 흘릴 때다.

아버지께 자신의 재산을 달라고 하여 먼곳을 떠돌다가 거지가 되어 돌아온 둘째 아들이 돼지우리에서 잘못을 깨닫고 탄식한다. 성경에 기록되어 있지는 않지만 그 행간을 자세히 읽어보면 그는 돼지와 함께 쥐엄열매를 먹으면서 엄청난 통회의 눈물을 흘렸을 것이다. 다윗이 밧세바가 간통하고 우리아를 죽게 한 후에 나단 선지자의 불같은 꾸짖음을 듣고 침상이 눈물로 뜰 정도로 울며 통회자복하지 않았는가!

사도 바울은 죄가 많은 곳에 은혜도 많다 하였거니와, 죄를 깨닫고 통회의 눈물을 흘리는 곳에 은혜가 충만하다. 지난 한 주간도 무슨 죄를 지었나? 알고 지은 죄, 모르고 지은 죄, 부지불식간에 하나님과 사람 앞에 지은 죄가 쇠털같이 많으니 통회하고 자복하며 회개하자. 통회의 눈물이 풍성한 교회가 은혜 충만한 교회다. 기도할 때마다 통회의 눈물이 충만하면 영혼이 맑고 경건한 사람이 틀림없다.

 

예수님이 울라 하신 그 눈물은 감사와 감격의 눈물이다. 말씀 앞에서, 복음 앞에서 감사의 눈물을 회복하기를 바란다. 성만찬과 설교는 직접적으로 주의 사랑을 증거해준다. 성만찬을 받을 때마다 눈물을 흘리는 사람들이 있다. 감격과 감사의 눈물이다. 설교 들을 때, 찬양할 때, 성만찬 받을 때마다 펑펑 우는 집사님이 있었다. 옛날의 어려움과 지금 주시는 은총에 감사감격하여 눈물이 저절로 쏟아지는 것이다. 예배 때마다, 집회 때마다 예수의 사랑과 구원이 깊이 깨달아지는 영적 체험이 있어 감사와 감격의 눈물로 영혼을 씻기 바란다.

우리교회에서 무슨 행사를 하거나 지방회 같은 것을 열면, 공교회를 주시어 거룩한 예식으로 주의 백성들을 복주시는 하나님의 은혜에 감격하지 않을 수 없다! 이때 흐르는 눈물은 우리를 정화시키며 거룩한 공교회의 소속감을 강하게 하여 경건한 주의 백성이 되게 한다. 한달이 지나고 일년이 지나도 감격의 눈물을 흘려보지 못하는 메마른 마음에는 성령의 역사가 일어나지 않는다. 대속의 피가 흐르는 교회에만 들어오면 눈물이 흐르고, 예수 이름만 들어도 감사하는 사람이 정상적인 믿음의 사람이다!

인간은 하나님을 발견할 때 그 위엄과 영광의 빛 앞에서 감격의 눈물을 흘리게 된다. 저는 재작년 가을 스페인 성지순례 갔을 때, 두 군데에서 특별히 감격하여 눈물을 흘릴 수밖에 없었다. 한 군데는 파티마 성당에 무릎으로 광장을 걸어가며 기도하는 사람들을 보았을 때 감격의 눈물이 솟았다. 또 바르셀로나의 사그라다 파밀리아’(성가족성당)의 엄청난 위용과 스테인드 글라스의 신비하고 영광스러운 빛을 바라볼 때 하나님의 옷자락을 뵙는 듯 하여 눈물을 주체할 수 없었다. 우리 주위에서 일어나는 사건과 들려오는 소식으로 하나님의 현존을 발견하고 감격의 눈물을 흘리는 성도들이 되기 바란다.

 

예수님이 우리와 우리 자녀들을 위하여 울라 하신 눈물은 감사와 감격의 눈물이다. 불평과 원망의 눈물을 자주 흘리면서 감사할 줄 모르는 사람들이 많다. 감사의 눈물을 회복하자. 생각해보면 감사하다. 영어로 ‘think’ 생각하면, ‘thank’ 감사하게 된다! 생명을 지켜주신 것을 감사하자. 건강한 것을 감사하자. 가족이 이만한 것을 감사하자. 어려움을 당했지만 망하지 않은 것을 감사하고, 시련 가운데 더 큰 은혜 주심을 감사하자.

믿음이 성숙할수록 감사할 줄 알며, 감사의 눈물을 회복할 때 우리의 영혼은 참으로 풍요로워 진다. 금식을 해보았는가? 일주일, 혹은 보름씩, 특별한 각오를 가지고 40일 금식하는 이들이 있다. 금식은 자신을 비우는 훈련이요, 주님께로 가까이 다가가려는 각고의 노력이다. 그런데 금식을 하고 나면 한 끼의 식사가 얼마나 감사한지, 감사의 눈물을 흘리지 않을 수가 없다.

가족이 건강하게 유지되는 것은 정말 감사할 일이다! 저의 작은 경험을 나누자면, 공부를 위해 가족들과 여러 달 떨어져 있었는데, 아내와 아이들을 보고 얼마나 감사의 눈물을 삼켰던지!! 지금도 그때의 감사를 잊지 않으려 노력한다. 있어주면 감사한 것이다! 함께 하면 감사와 감격을 잊을 수 없다! 감사의 눈물을 회복하라! 우리가 너무나 당연하게 여기는 것들이 사실은 은총의 선물임을 깨닫자. 은혜 주시고 구원해 주신 것을 감사하라. 여기까지 지켜주신 에벤에셀의 하나님께 감사하자. 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다. 가족들과 함께 손잡고 안아주며 지낼 수 있는 게 정말 감사하다! ‘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라’, 고백했던 바울의 마음으로 감사의 눈물을 하나님께 드리자.

 

요즈음 새벽기도회에 요한복음을 읽고 있다. 지난 주간에는 나사로의 죽음과 부활 사건을 읽었다. 이런 장면이 나온다. 요한복음 1133절부터, ‘예수께서 그가 우는 것과(마리아가) 또 함께 온 유대인들이 우는 것을 보시고 심령에 비통히 여기시고 불쌍히 여기사, 이르시되 그를 어디 두었느냐 이르되 주여 와서 보옵소서 하니, 예수께서 눈물을 흘리시더라.’ 35절까지 말씀이다! 마리아도 울고, 함께 온 유대인들도 울고, 특별한 것은 예수님도 우셨다는 사실을 성경이 보여준다. 눈물을 통하여 소통하고 하나 되었으며, 눈물이 나사로를 살리신 예수님의 부활기적을 가져오기 위한 준비였음을 성경이 보여준다.

너희와 너희 자녀를 위하여 울라!” 십자가의 길에서 주님께서 그를 따르는 여성들에게 부탁하신 말씀이다. 지금은 성도의 눈물을 회복할 때이다. 기도할 때, 예배드릴 때, 찬송 부를 때, 말씀 들을 때, 성령의 감동을 받아 슬픔의 눈물을 통과하여, 통회의 눈물, 감격과 감사의 눈물을 흘리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란다. 부흥회를 앞에 두고, 특별히 새벽기도 강조주간으로 지킨다. 생활이 바쁘고 피곤한 분들도 많겠지만, 분발하여 새벽기도에 힘쓰자! 무엇보다 여러분의 마음이 눈물을 회복하여 복음의 씨앗을 받아들이기에 합당한 옥토가 되기를 바란다!

주께 힘을 얻고 그 마음에 시온의 대로가 있는 자는 복이 있나이다. 저희는 눈물 골짜기로 통행할 때에 그곳으로 많은 샘의 곳이 되게 하며 이른 비도 은택을 입히나이다.’(84:5-6) 주님은 우리의 기도에 응답하시며, 우리의 눈물을 주목하신다! 영혼이 깨어있어, 슬픔의 눈물, 회개의 눈물, 감사와 감격의 눈물이 흐를 때 하나님 나라의 문이 열릴 것이다!! 성도의 눈물이 뿌려질 때 교회는 성장하며, 성도의 눈물이 있을 때 가정은 눈물을 먹고 일어나며, 성도의 기도에서 눈물이 마르지 않을 때, 주 안에서 최후 승리자가 된다. 눈물로 씨를 뿌리는 자는 기쁨으로 거둘 때가 올 것이다(12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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