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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이 이끌어가는 사람 (창37:1-11) [2018년 9월 30일, 성령강림후 열아홉째주일/청년주일]
2018-09-29 22:03:08
박신진 목사
조회수   19
설교일 2018-09-30
설교말씀 창37:1-11
설교제목 꿈이 이끌어가는 사람

꿈이 이끌어가는 사람

37:1-11

2018930[성령강림후 열아홉째주일/ 청년주일]

 

부천의 한 교회 목사님이 한번은 부천부개동에 있는 아파트에 심방을 가는데, 경비원이 막더랍니다. 그래서 제가 목사인데, 교인 심방 왔습니다.” 했더니, 아래위로 살펴보더니 교회에서 나온 것 같지 않은데요?” 하더랍니다. 그러더니 교적부를 쳐다보면서 수금 나오셨지요?” 그렇게 얘기하는 거였습니다. 비가 부슬부슬 오는 날인데 무슨 카드책 같은 것을 들었겠다 가방도 들고 있으니, 월부 상품대금 수금 나온 사람으로 보았던 모양입니다. 꽤 큰 교회 목사이고 심방전도사까지 함께 가던 길이라 민망해져서 옆에 있던 전도사님이 이분은 우리교회의 목사님입니다. 여기 심방 오셨구요, 00호실에 가려 합니다.” 그러자 고개를 갸우뚱하더니 올라가라 하더랍니다. 목사님은 목사라고 하는데도 수금 사원 같다고 하던 경비원에 얘기가 못내 마음이 걸리더랍니다.

사람에게 어떻게 보이느냐가 우리 마음에 늘 걸리는 건 사실이고 사람들은 어떻게 보일지에 신경을 많이 씁니다. 그렇지만, 더 중요한 것은 정말 나는 어떤 사람이냐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정말 어떤 사람입니까? 저는 이런 질문을 드리고 싶습니다. 여러분은 꿈이 이끌어가는 사람입니까, 필요가 이끌어가는 사람입니까? 어떤 사람은 꿈을 가지고 삶의 의미와 목표를 향해 힘있게 나아가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또 어떤 사람들은 매일 매일 주어진 생활에서 유지하고 앞가림하기에 급급한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제가 요즘 한해 한해 살아가면서 타성에 빠져 거룩한 꿈을 잃어버리지 않았는가, 반성합니다. 설교를 할 때 꿈을 바라보며 설교하는가, 또 한 주 목사의 역할과 위치를 지키기 위해 설교하는가 스스로 생각해 봅니다. 출근할 때 꿈을 따라갑니까, 목구멍이 포도청이라 먹고 살려고 할 수 없이 직장에 나갑니까? 가게 문을 열 때 꿈을 바라봅니까, 매출을 바라보며 하루하루 견딥니까? 오늘은 꿈이 이끌어가는 사람, 요셉이야기를 해보려 합니다.

 

1.성화되지 못한 요셉의 가문

야곱의 아들들은 이스라엘의 반열에 들어있었으나 성화되지 못하였습니다. 이 말은 하나님의 백성이라고는 하나 그들의 생활과 인격이 그에 미치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다말은 가나안 여인들과 놀러 나갔다가 세겜에게 강간당하였고, 그 일에 화가 난 르우벤을 비롯한 야곱의 아들들은 세겜족을 속여 할례를 받게 하고는, 몰살시켜 버렸습니다. 게다가 재산을 노략하였습니다. 그러고도 그들은 전혀 죄의식을 느끼지 못하였습니다. 세겜족의 죄에 대한 마땅한 응징이라고 생각했던 것이죠.

그뿐 아니라 더욱 충격적인 사실은, 35장 끝부분에 보면, 르우벤이 아버지의 첩이며 자기의 배다른 어머니인 빌하와 통간하였습니다. 십계명을 어겼고 걸리면 죽음입니다. 그러면서도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인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했으며 자기들에게 아무 문제가 없다고 판단하였습니다. 겉으로 보기에 그들은 구원받은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이었으나, 살아가는 내용을 들여다보면 그들은 타락한 죄인이요 살인과 간음과 방탕을 일삼는 멸망 받을 백성이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하나님은 그들을 위한 구원계획을 가지고 계십니다. 바로 그들에게 요셉을 세우신 것이지요. 하나님은 구원계획을 요셉을 통하여 꿈으로 보여주십니다. 처음에는 그것이 명백하게 나타나지 않고 숨겨진 채 드러납니다. 요셉은 하나님 앞에 꿈꾸는 자였으며, 꿈을 붙들고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드리는 순종자였습니다. 그러나 무언가 하나님이 요셉을 통해서 이루시려는 계획을 담은 그 꿈을 얘기할 때 형제들은 왜 요셉이냐?’며 화를 내면서 요셉을 버릇없고 나쁜 동생으로 더 미워합니다. 아버지 야곱은 이 상황에서 계속 침묵하면서 상황을 관리하기만 했지 꿈을 붙잡지 못합니다. 그 몫은 요셉의 일이었습니다. 요셉은 하나님이 보여주신 꿈에 사로잡혀 그 꿈이 이끄는 대로 살기 시작합니다.

 

2.요셉이 미움 받은 이유

본문은 아버지로부터 그토록 사랑받던 아들 요셉이 하나님이 주신 꿈 때문에 배다른 형제에게 미움을 받아 죽을 뻔했다가 결국 애굽에 종으로 팔려가게 되는 과정을 설명합니다. 요셉은 자기의 배다른 형들과 함께 양을 치면서 그들의 잘못을 아버지에게 고자질했습니다. 또 아버지는 요셉을 너무 사랑해서 다른 형제들과는 다르게 대우합니다. 채색옷을 입히지요! 요셉이 고자질을 하고 편애까지 받았다면 미움 받을만하지 않습니까!

채색옷의 편애는 형제들로서는 화나는 일이었지만, 잘못을 고해바친 데에는 다른 면이 있습니다. 고자질은 공동체에서 비신사적인 간첩행위이지만, 그 후 요셉이 얼마나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변함없이 정직하고 성실했는지를 생각한다면, 오히려 요셉의 정직함이 형제들의 거짓됨과 부딪힌 것이라고 봐야 옳습니다. 형제들이 세겜에서 어떤 짓을 저질렀습니까? 그들은 여전히 악에 빠져 살면서 자신들이 잘못 살고 있음을 깨닫지도 못하고 있습니다. 요셉은 그들의 잘못을 보고 그들과 동참하지 않을 뿐 아니라 아버지에게 일러바쳐 고치려 합니다. 그 당시에 형들의 잘못은 아버지만이 고칠 수 있는 것이었으니까요. 그러니 요셉이 옳은 것을 포기할 것이 아니라, 형제들이 타락과 잘못을 회개해야 할 점이 있는 것이죠.

더 나아가 요셉은 아주 황당한 꿈을 꾸어서 형제들을 화나게 만듭니다. 그 꿈은 곡식단이 자기에게 절하는 꿈, 해와 달과 열 한 별들이 자기별에게 절하는 꿈입니다. 아버지의 사랑을 좀 받는다고 해서 아예 씨족을 다스리는 왕이 되겠다는 것이냐고 형제들은 분개하죠. 여기에 대해 형제들은 미워하고 시기하였으나, 아버지 야곱은 꾸짖으면서도 그 꿈을 마음에 두었습니다. 요셉이 왜 미움을 받습니까? 죄 짓고 타락한 사람들 사이에서 홀로 바르고 정직하게 살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바로 그리스도의 모습입니다. 요셉은 창세기가 보여주는 그리스도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요셉의 생애를 묵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3.요셉의 꿈

요셉은 눈치도 없이 황당한 꿈을 꾸고 그것을 남들에게 말해서 미움을 받는 어리석은 사람이 아닙니다. 요셉도 20이 다 된 청년이고, 그런 판단쯤은 할 줄 아는 분별력 있는 사람입니다. 여기서 꿈은 단순히 잠재의식을 보여주는 것 뿐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계시하는 도구입니다. 꿈을 통하여 하나님은 당신의 말씀을 요셉과 가족들에게 보여주신 것입니다. 생각해보세요! 하나님의 택하신 백성이라 하면서 야만의 죄인과 같이 생각과 생활이 거짓되고 이기적이며 타락하여 사는 형제들을 구원하기 위해 하나님이 무엇을 하셨겠습니까?

하나님은 형제 중에 거룩하고 정직한 한 사람을 택하셨습니다. 바로 요셉이죠. 그리고 그로 하여금 모두를 다스리게 함으로 형제와 가문 전체를 하나님께 돌아오게 하시려는 원대한 계획을 가지셨던 것입니다. 그것을 꿈으로 보여주셨던 겁니다. 야곱과 형제들이 꿈에 대하여 무시하지 않은 것은 그들이 그토록 화를 내거나 마음에 두었다는 데에서도 나타납니다. 그러나 그들은 꿈을 통하여 임한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지는 않습니다.

첫 번째 꿈은 하나님이 곡식 즉 양식의 문제로 특별한 구원의 계획을 이루실 것을 보여줍니다. 그들은 농사짓는 백성들이 아니지만 곡식단을 보여주심으로 하나님이 무엇인가 중요한 계획을 양식의 문제를 통하여 이루신다는 것을 암시하십니다. 그러나 형제들은 이 꿈의 의미를 들으려고 하지 않고 요셉을 미워하며 그 꿈을 거부하고 말지요.

두 번째 꿈은 해와 달과 열 한 별이 다 절하는 것으로서, 하나님이 요셉을 높이시리라는 꿈입니다. 요셉은 실제로 총리대신이 되고, 그의 형들은 곡식을 사기 위해 그를 찾아가 무릎을 꿇고 절을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요셉을 지극히 높여 하나님의 구원을 완성시키시는데, 형제들에게 꿈을 통해 알려주십니다. 왜 미리 보여주시고 알려주신 것일까요? 그들도 꿈의 사람이 되도록, 하나님의 구원계획에 동참하도록 보여주신 것입니다.

 

4.꿈에 대한 형제들의 반응

요셉의 꿈에 대한 가족들의 반응입니다. ‘그 형들은 시기하되 그 아비는 그 말을 마음에 두었더라(11).’ 야곱의 아들들은 꿈 이야기를 듣고 그를 시기하고 미워하여 결국 죽이려고 하지요. 그들이 이런 식으로 반응한 것은 그들에게 아무 문제가 없다고 생각한 까닭입니다. 형제들은 자기들이 얼마나 타락했는지, 얼마나 이기적이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지 않는지, 전혀 깨닫지 못합니다. 그들은 다른 사람들을 죽이고 재산을 다 빼앗았음에도 불구하고 아무 잘못이 없으며 구원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만일 그들이 자신들의 타락과 잘못을 조금이라도 의식하고 하나님 앞에 겸손히 있었더라면, 그런 꿈이 제시되었을 때 하나님의 구원계획을 깨달을 수 있었을 텐데 말입니다!

형제들은 하나님께서 무언가 아주 중요한 일을 이루기 위해 요셉을 택하셨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그토록 요셉을 미워했습니다. 다른 사람을 죽이고 작은 어머니와 간통을 하면서도 그것이 죄이며 하나님이 얼마나 근심하는 것인 줄을 자각하지 못했습니다. 저는 이 말씀을 설교하면서 마음이 아픕니다. 우리도 그런 상태에 있지 않나 두려운 마음이 들기 때문입니다. 아프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을 병원에 데려가는 것이 힘든 것처럼, 자신이 죄인인 줄 전혀 자각하지 못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를 거부합니다.

야곱은 조금 다른 반응을 보입니다. 우선 요셉을 책망해서 그 꿈으로 교만한 마음을 가지지 못하도록 하는 한편, 자신은 이 꿈을 마음에 새겨둡니다. 왜냐하면 야곱은 가족들 가운데 벌어지고 있는 죄악에 대하여 깊이 고민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디나가 강간당할 때 침묵하고 있습니다. 아들들이 세겜족을 멸할 때도 침묵하였지요. 르우벤이 빌하와 통간할 때도 아무 말도 못하고 있습니다. 죄가 아니라고 인정하는 것인가요? 그런 것 같지는 않아요. 다만 자기가 이 죄를 감당하기에는 벅차다고 생각했습니다.

야곱은 족장으로서 자식들의 죄를 치리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려면 자식들을 죽여야 합니다. 가나안 여인들과 어울리다 강간당한 디나도, 세겜족을 처참하게 죽이고 재산을 빼앗은 자식들도, 자기 첩과 통간한 아들도 다 죽여야 합니다. 죽여도 그 죄는 없어지지 않지만, 죄에 대한 정당한 방법은 죽음뿐이었습니다. 아마 야곱은 하나님이 죄를 해결해 주실 것을 기다리고 있었을지 모릅니다. 자기 집을 가득 채우고 있는 타락과 음란과 폭력으로 그는 고민하고 있었습니다. 그때 요셉의 꿈을 통하여 하나님의 말씀이 임하였습니다. 그러자 야곱은 그것을 마음에 두었습니다.

 

5.우리의 꿈은 죄를 이기고 하나님 나라 이루는 꿈

여러분, 솔직히 말해서 우리는 어떻습니까? 나는 오늘 청년주일에 이 본문을 택하여 설교하면서 자꾸 우리를 돌아보게 됩니다. 바로 우리 이야기가 성경에 나와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우리는 어떻습니까? 죄를 이기지 못합니다. 죄를 지으면서 죄인 줄 깨닫지 못합니다. 요셉의 형들과 비슷하지 않습니까? 우리가 감추고 아닌 척하지만, 우리 가운데에도 음란과 거짓과 폭력, 이기적인 공격들이 끊임없이 일어납니다. 내가 살겠다고 남을 죽이는 일이 계속 일어나고 있습니다. 우리가 교회에 다니므로 구원받은 백성이라고 하면서 죄를 바라보고 그냥 흘러가고 있습니다. 우린 성화되지 못했습니다. 진정한 구원을 알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불신자보다 나을 게 없습니다!

게으름 아니면 욕망입니다. 게으름에 빠져 옳은 일을 행하지 않습니다. 기도해야 하는 걸 알면서도 기도하지 않고, 거룩한 백성이 세상에서 구별되어 살려면 주일을 절대 거룩하게 성수해야 할 줄 알면서도 이번 주에 별 일 없이 주일을 범합니다. 영적 게으름이 죽음에 이르도록 우리를 끌고 갑니다. 그러다보니 꿈에 붙들려 사는 사람이 아니고 욕망에 붙들려 사는 사람이 됩니다. 그리스도인이라 하면서 거룩한 삶에 대해 완전 무책임으로 나가거나 아니면 쾌락을 빙자한 적극적 범죄에 가담하여 죄를 밥 먹듯 물 마시듯 합니다.

요셉은 꿈꾸는 사람이었습니다. 꿈에 이끌려 살았습니다. 요셉의 꿈은 무엇입니까? 형제들 사이를 가득 채운 죄를 이기고,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하나님 나라를 생활 속에서 이루는 꿈입니다. 하나님은 곡식단이 일어나 절하는 꿈, 하늘의 별이 자기에게 절하는 꿈을 통하여 정직하고 거룩한 사람이 하나님의 뜻을 이루도록 부르시는 하나님의 뜻을 어렴풋하게나마 깨닫게 하셨습니다. 요셉은 노예로 팔릴 때도 형들을 원망하지 않고 꿈을 잃지 않았습니다. 보디발의 집에 가정노예로 들어가서 고생할 때도 하나님 두려워하는 마음으로 주인 보디발 아내 귀부인의 유혹에 빠지지 않고 자신을 지켰습니다! 요셉은 꿈을 보여주시는 하나님께 순종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말씀 앞에 오늘 서 보십시오! 말씀을 통하여 또는 사건을 통하여 임하시는 하나님의 구원 계획에 대하여 우리는 순종합니까, 거부합니까, 기다리고 있습니까? 하나님은 말씀을 믿고 그리스도의 구원사역을 믿는 우리도 하나님이 보여주시는 구원의 꿈을 붙들고 나아가기를 요구하십니다. ‘너는 청년의 때에 너의 창조주를 기억하라. 곧 곤고한 날이 이르기 전에, 나는 아무 낙이 없다고 할 해들이 가깝기 전에, 해와 빛과 달과 별들이 어둡기 전에, 비 뒤에 구름이 다시 일어나기 전에 그리하라!’(12:1-2)

 

맺는 말씀 -꿈이 이끄는 대로 사는 사람

저는 공부하기 위해서, 그리고 연회 일을 보느라 미국을 여러 번 갔지만 아쉽게도 알래스카는 가보지 못하였습니다. 여러분도 아시는 대로 알래스카는 미국 영토입니다. 텍사스 주의 두 배가 넘고 미국 본토 전체의 5분의 1에 해당되는 큰 땅입니다. 원래 알래스카는 소련의 영토였습니다. 그랬던 것을 1867년에 720만 달러를 주고 미국에서 사들였습니다.

미국이 소련으로부터 알래스카를 살 때 국회 동의 없이 대통령과 국무장관 둘만의 합의로 전격적으로 성사시켰습니다. 그 사실을 나중에 안 국회에서 난리가 났습니다. “얼음덩어리 알래스카가 그렇게 필요했으면 겨울에 꽁꽁 얼어붙은 미시시피 강의 얼음을 깨다가 안방에 둘 것이지 아무 쓸모없는 땅을 720만 달러나 주고 샀느냐?”고 엄청나게 공격했습니다. 그때 대통령이 국회에 나가 많은 국회의원들 앞에서 사과했답니다. ‘이미 사버렸으니 어떻게 하겠느냐, 국회에 통과를 시켜야 했지만, 그렇게 되면 매스컴에서 떠들고, 소문이 퍼져 소련에서 팔지 않겠다고 하거나, 값을 비싸게 부를 것 같아서 국무장관과 의논해서 사게 된 것이니 이해해 달라.’는 얘기였습니다.

그러나 국회에서는 결국 조사단을 조직해서 대통령과 국무장관을 걸어 넣으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조사단이 가서 보니 알래스카는 백금이 가득한 곳이었고, 풍부한 어장이 있어서 어업이 활발하게 이뤄지는 곳이었으며, 삼림도 무성하고 석유가 무한정 매장되어 있었습니다. 알래스카는 얼음창고가 아니라 보몰창고였던 것입니다. 알래스카를 사기 위해 큰돈을 쓰기로 결정한 대통령과 국무장관은 비난을 받을 것이 아니라 상을 받아 마땅한 것이었습니다. 의원들은 코가 납작해져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각하, 의회에서 있었던 당신의 사과를 돌려드립니다. 우리가 잘 몰랐습니다. 알래스카는 얼음창고가 아니라 보물창고입니다.” 사람들은 그제야 대통령과 국무장관의 결단과 행동을 이해하였다고 합니다.

여러분, 희생이 따르고 다수가 원하는 일이 아닐지라도 바른 선택은 미루어서는 안 됩니다. 여러분의 꿈을 세월과 돈을 지불하고라도 사십시오! 하늘 뜻이 이뤄지는 여러분의 알래스카, 하나님이 지어주신 본래 인간의 아름다운 모습대로 살 수 있는 길, 죄와 타락을 이기고 인간 속에 있는 악을 정복하여 하나님 뜻대로 살게 하는 그 나라, 그 위대한 삶을 이루어가기 위해서 오늘부터 거룩한 꿈을 붙잡기를 결단하십시오! 우리가 치러야 할 희생과 대가는 무엇입니까? 교회생활이 그리 완벽해보이지 않아서 많은 약점과 부족함을 가지고 있지만, 그 속에 하나님의 위대한 꿈이 무르익고 있음을 우리가 잊어서는 안 됩니다. 이것을 키우고 바로 세워야 합니다. 청년들이여, 여러분의 교회생활을 지금부터 바르게 하십시오! 그것이 여러분의 미래를 풍요롭게 거룩하게 할 알래스카인 것입니다!

여러분은 진정 누구입니까? 진정한 그리스도인은 죄를 이기고 하나님 나라 구원을 널리 펼치려는 거룩한 꿈에 붙들려 사는 사람들입니다. 청년 여러분, 거룩한 꿈에 붙들려 사는 요셉이 되십시오! 그것이 진정한 행복이요, 의미요, 삶의 기쁨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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