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전문
설교일 | 2025-10-0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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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말씀 | 시137:1-6 |
설교제목 | 내 고향 |
내 고향
시137:1-6
2025년 10월 5일 [성령강림후 열일곱째주일]
요즘 영화이야기는 예전에 소설과 같이 인생을 보여주는 거울이 된다. 400만 관객을 웃기고 울렸던 영화 <집으로>가 2002년에 개봉되었었다. 몇 년 전 추석에 재개봉된 적도 있다. 처음 개봉되었을 때, 함께 있던 전도사가 ‘목사님, 보셨어요?’ ‘뭘?’ ‘<집으로>란 영환데요, 이 영화 보고 나와서 사람들이 모두 자기 할머니한테 전화해서 잘 계시냐 안부 물었대요.’ 해서 보았던 영화이다. 거의 잊어버렸지만, 유승호란 배우가 어릴 적에 찍은 영화였다. 천방지축 손자 상우는 아버지는 없고 보호자인 어머니의 사정으로 인해 잠시 시골 외할머니 댁으로 내려간다. 말을 할 수 없는, 그리고 아마도 평생을 시골에서 살았을 것으로 짐작되는 외할머니 김을분 할머니를 서울에서 태어난 상우는 당연히 이해하지 못한다. 그러나 자기 엄마의 태어난 고향이고, 할머니가 살고 있는 고향에서 지내면서 상우는 외할머니의 마음을 이해하고 외할머니를 마음으로 그리워하면서 마무리된다.
이 이야기<집으로…>는 그냥 외할머니와 손자가 겪는 짧은 여름날의 일화로 설명하기엔 더 많은 뜻을 담고 있다. 영화에서 어린 손자 상우가 처음으로, 외할머니를 만난 뒤 직접 외할머니에게 건네는 대사는 “벙어리, 병신”이었다. 아무리 ‘아이’라는 것을 감안하더라도 용납하기 어려운 표현이다. 그런데 영화 속에서 말을 할 수 없는 외할머니는 이 단어에 반응을 보이지 않고 묵묵히 상우를 사랑한다. 상우는 무례하기 그지없는 버릇없는 외손자이다. 올바른 돌봄을 받지 못하고 자란 상우로서는 타인과 이야기하는 법을 몰랐던 것이다. 그러나 이것을 과연 상우만의 잘못이라고 이야기 할 수 있을까?
사랑 없는 각박한 어른들의 세상에 던져져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알지 못했던 아이 상우가 외할머니에게서 받았던 다함없는 묵묵한 사랑에 감동하고 마음의 고향 집을 발견하게 된다는 이야기는 사람들에게 큰 감동을 주었다. 그 영화를 본 사람들은 한결같이 영화관에서 나오자마자 시골 할머니 집에 전화를 걸어 할머니 안부를 묻거나 며칠 안에 시골집을 찾아갔다고 한다. 바쁜 도시생활에서 잃어버린 ‘내 고향’이 생각난 것이다.
이번 주간은 민족 명절인 추석이 있다. 3218만 명이 이동할 예정이라고 한다. ‘더도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는 속담이 있듯이 일 년 중에 가장 기후가 쾌적하고 먹을 것도 많고 즐거운 명절이 아닐까 생각된다. 요즘은 자기 차로 움직이니 귀향길과 귀갓길에 차가 많이 막힌다. 예전에는 기차와 고속도로가 붐볐다. 몇 달 전부터 차표를 예매하고 준비하여 떠나는데, 기차역이 너무 붐벼서 용산역에서 사람들이 한꺼번에 밀려 압사당한 일도 있었다. 정말 ‘목숨 걸고’ 집에 가는 명절인 셈이다.
우리는 집에서 태어나 집에서 자라고, 집을 나와 다니다가 집으로 돌아간다. 집은 우리 요람이요 터전이며 근거요 고향이다. 아무리 어렵게 외지를 돌아다녀도 부모님 계신 집이 있는 사람은 든든하다. 힘들어도 돌아가 쉴 집이 있는 사람은 생기를 잃지 않는다. 그러나 집이 없는 사람, 집을 잃은 사람은 ‘끈 떨어진 조롱박’처럼 이리저리 굴러다니며 정처 없이 헤매면서 조그마한 일에도 두려워하고 예민하게 군다. 조금만 어려운 일이 생기면 어떻게 살아야 할지 알지 못하게 된다. 돌아갈 집이 없기 때문이다. 여러분의 집은 마음의 안식처인가? 여러분은 부모형제가 있는 집이든지 한 식구 가정이든지, 가족공동체가 살아 있는가?
추석 명절에 사람들은 자기 집, 자기 고향을 찾아간다. 길이 막혀서 평소보다 몇 배나 시간과 노력이 걸리는 줄 알면서도, 고통과 불편을 감수하면서 경비를 들여 고향을 찾는다. 고향집을 찾으려는 마음은 간절하다 못해 처절하다. 그러나 요즘은 가족해체와 재구성의 시대다. 전통적인 가족 개념이 많이 변화되었다. 그러기에 명절에 집과 고향을 생각하는 것이 많이 달라졌다. 우리에게는 고향이 있는가, 더 나아가 우리는 우리 집이 있나, 이런 생각을 현대인은 해보지 않을 수 없다. 여러분에게는 돌아갈 고향집이 있는다? 나는 돌아보니까 어머니 돌아가신 3년 전, 그전에 아파서 병원과 요양원을 드나드시던 4년 전에 고향이 없어졌더라. 나는 명절에 갈 곳이 없다. 고향에 살고 있으나 고향같은 마음이 들지 않는다.
오늘 우리가 함께 읽은 시편은 이스라엘이 바벨론 포로로 잡혀갔을 때 고국을 그리며 부르는 노래이다. 어릴 적부터 집을 떠나 타향생활을 해야 했던 나는 이 시인의 마음이 나는 대변해주어서 신학교 다닐 때부터 이 시를 좋아하였다. 보니 엠이라는 그룹이 이 시편을 가지고 부른 노래가 7-80년대에 한때 유행했다. ‘By the rivers of Babylon there we sat down, yeah we wept when we remembered Zion.' 먼 타국에 포로 잡혀가서 고생하는 이스라엘 사람들은 고향을 생각할 때마다 울었다. ‘우리가 바빌론의 강변 곳곳에 앉아서, 시온을 생각하면서 울었다. 그 강변 버드나무 가지에 우리의 수금을 걸어두었더니, 우리를 사로잡아 온 자들이 거기에서 우리에게 노래를 청하고, 우리를 짓밟아 끌고 온 자들이 저희들 흥을 돋우어 주기를 요구하며, 시온의 노래 한 가락을 저희들을 위해 불러 보라고 하는구나.’
나는 바벨론 포로로 이방 땅에 살던 이스라엘이 왜 고향 시온만 생각하면 눈물이 나는지 알 것 같다. 그들은 공부하기 위해 잠시 부모님 집을 떠나온 나와는 비교도 되지 않도록 먼 길을 떠나와 포로의 노예생활을 하며 많은 고생을 하였다. 나는 돌아갈 수 있었지만 그들은 평생 돌아가지 못할지도 몰랐다. 나는 성공을 위한 잠시 고생이었지만, 그들은 노예의 신분이 되어 희망 없이 살아야 했다. 그러기에 이 시편을 읽을 때마다 나는 이스라엘을 생각하며 깊은 위로를 받았다.
몇 년 전만 해도 매년 초등학교 동창회에서 보낸 ‘알리는 말씀’이라는 엽서를 받곤 했었다. 요즈음은 그마저 오지 않는다. ‘중추가절을 맞이하여 회원 여러분의 가정에 항상 건강과 행운이 함께 하시길 기원드립니다. 아뢰올 말씀은 본교 제16회 안동동부초등학교 총동창회 체육대회를 개최하고자 하오니, 회원 여러분께서는 공사 간 다망하시더라도 부디 참석하셔서 자리를 빛내 주시기 바랍니다.’ 그런데 꼭 모이는 시간은 추석 앞둔 주일 아침 9시 30분이다. 절대 목사가 참석할 수 없는 시간이다. 이렇게 나는 목사라는 이유로 일찌감치 동창들로부터 버림받았다.
나는 삼척 정라진에서 태어나 두 살 때부터 목회하시는 전도사 아버지를 따라 식구들이 이사 다녀서 여러 곳을 다녔다. 초등학교 5학년이 되면서 경북 안동으로 교회를 옮기신 아버지를 따라 이사를 하였고, 중학교에 다녔다. 부모님과 함께 집에서 생활하던 중학교 때까지만 해도 고향이라든지 집이라는 개념이 별로 없었다. 내가 고향집을 처음 마음 깊이 느낀 것은 중학교를 마치고 서울로 공부하기 위해 떠나온 이후였다. 서울에는 사람도 많고 집도 많고 차도 많았다. 그러나 내게는 아무도 없었다.
나 혼자 서울이라는 적막강산에 고립되어 허전하고 외로웠다. 부모님, 동생들, 친구들이 너무 보고 싶었다. 고등학생이면 제법 자라 남자였는데, 밤이면 이불을 덮고 고향이 그리워 울곤 하였다. 친구들과 뛰어다니던 안동시 옥정동 골목골목, 앞집 뒷집 옆집, 거기 있던 나무들과 겨울이면 햇볕이 내리쬐던 남의 집 문지방까지 새록새록 생각났다. 다정하게 말을 걸어주던 교회 형들 누나들. 동네 친구들, 학교 근처, 무엇보다 선교사들의 집을 개조해서 만들어 잔디가 아름다웠던 학교 도서관이 생생히 눈에 그려졌다. 아름다운 고향집은 늘 나를 슬프게 하였다. 왜냐하면, 나는 고향을 잃었으므로!
여러분은 고향에 살고 있는가? 장로님들, 권사님들, 많은 교우들, 고향에서 어머니 아버지와 함께 사는 걸 보면 부럽다. 그런데 또 다른 눈으로 보면 고향에서 사는 사람들을 보면 지루하고 답답하다. 고향을 떠나지 못하고 아직도 동네 어른까지 깍듯이 대하면서 매일이 그날인 삶을 사는 것도 생각해보면 얼마나 힘들겠는가? 고향을 지키며 평생 사는 사람들은 대처에 식구들 데리고 나가 살아보고 싶다- 하는 마음이 있을 것이다. 그런가 하면 외지를 많이 떠돌다 이곳에 와서 나름 적응하며 사는 사람들은 열심히 살아도 남의 땅, 남의 마을이라는 생각이 또 있다. 도계에서 지내다가 이곳에서 정착한 장로님들이 셋이나 있다. 조희철 장로, 이정록 장로, 유영민 장로다. 어떨까? 사투리 표현으로 ‘아리까리할’ 것이다. 한 고향이면서도 같은 동네는 아닌 곳에서 살다가 삼척으로 와서 산다. 고향도 아니고, 타향도 아닌 것이다.
서울에서 나는 공부하러 온 경상도 학생이었다. 모양새가 벌써 촌티가 나서 서울 아이들하고는 색깔이 달랐다. 아무래도 초라했겠지. 또 말투가 경상도 하고도 안동은 엄청 사투리가 강하다. 내가 “안녕 하시이껴?” 하고 인사하면 안동 ‘껴껴이’ 왔다면서 주변 사람들이 다 웃고 나는 졸지에 광대가 되었다. 더구나 목사 아들은 어쩐지 어울리기 어려웠다. 이런 요소들이 나를 고립시켰고 홀로라는 외로움을 많이 느끼게 하였다. 고향에서는 누구나 동질감을 느끼고 쉽게 ‘나다운 나’가 되는데, 타향에서는 이질감을 느끼고 고립되어 외로움을 느끼기 때문에 힘들다. 나만 다르다는 느낌, 이 고독이 고향을 간절히 찾게 만든다.
고2가 되던 여름방학에 나는 설레는 마음을 안고 부모님 계신 집으로 돌아갔다. 그해 봄에 아버지는 안동에서 밀양으로 임지를 옮기셨고 나는 처음 그 교회 사택으로 찾아갔다. 그렇게 낯설고 이상할 수 없었다. 분명 아버지와 어머니가 나를 반겨주고 동생들도 “오빠 왔다, 형 왔다!” 하면서 좋아하는데, 너무 집이 어색하고 남의 집 같으며 동네도 정이 붙질 않았다. 그날 밤, 잠이 오지 않아 거의 밤을 새웠던 것을 지금도 기억한다. 눕기만 하면 잠을 잘 자던 내가 밤새 잠을 못 잔 건 처음이었다. 서울에 있을 때는 부모님 계신 집이 고향이었다. 그러나 밀양에 오니 나는 서울놈이었다. 밀양에서는 서울놈, 서울에서는 촌놈이었다. 이것이 청소년 시절의 내게 충격이었다!
나는 어디에 가도 고향 그리는 마음을 채우지 못하는 사람이었다. 서울에 있으면 돌아갈 고향이 있는 듯하고, 옛날 살던 곳으로 가면 다시 나는 서울 사람이 되고 말았다. 나는 진짜 촌놈도 아니고, 그렇다고 세련된 서울 도시인도 아닌 경계인이었다. 그렇게 어디에서도 이방인인 채로 여기까지 왔다. 그러나 어느 때에 나는 이것이 나만의 일이 아닌 것을 알았다. 현대인들은 누구나 고향을 잃어버리고 향수를 가지고 있는데, 그 향수는 어디에서도 채워지지 않는 아쉬움이 있다. 사람들의 마음 깊은 곳에 변치 않는 고향에 대한 그리움이 있다. 현대인의 특징은 모두가 ‘경계인’이라는 것이다. 누구에게도 고향은 그대로 남아있지 않는다. 고향은 너무 변해 버렸다!
시인 정지용은 ‘고향’이라는 시에서 이런 형편을 노래한다. ‘고향에 고향에 돌아와도/ 그리던 고향은 아니러뇨./ 산꿩이 알을 품고/ 뻐꾸기 제철에 울건만,// 마음은 제 고향 지니지 않고/ 머언 항구로 떠도는 구름.// 오늘도 뫼 끝에 홀로 오르니/ 흰 점 꽃이 인정스레 웃고,// 어린 시절에 불던 풀피리 소리 아니 나고/ 메마른 입술에 쓰디쓰다.// 고향에 고향에 돌아와도/ 그리던 하늘만이 높푸르구나.’
청소년 시절 나는 고향을 떠난 후에 어디 가도 나답지 않았다. 살아남기 위해서, 지지 않으려고, 나름대로 발버둥을 열심히 공부하느라 했지만, 늘 평안이 없었다. 지금도 그때를 생각하면 하나님 은혜로 여기까지 버텨왔구나 싶다. 정말 나답게 살았는가, 사는 맛과 멋을 느끼며 후회없이 달려왔는가, 그런 생각을 해보게 된다.
나는 청년 시절에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게 되었다. 그 예수님이 우리들처럼 고향을 잃어버린 사람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미국 드류대학의 이정용 박사는 예수님의 모습을 이렇게 그려주고 있다. ‘예수님도 자기 고향에서 이방인처럼 배척당하셨다. 주님은 고향에 왔지만 고향 사람들이 받아들여 주지 않았다. 예수님은 당시 유대 전통에서 떨어져 나와 있는 사람과 같았다. 유대 사회에서 전통을 지키는 바리새인, 서기관, 사두개인들은 예수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예수님은 동족에게서 배척을 받았고, 이방인처럼 여겨졌으며, 자기 종교 전통에서 낯선 사람이었다. 그는 고향에서도 환영을 받지 못했다.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의 새도 깃들일 곳이 있건만, 예수님은 머리 둘 곳이 없었다. 예수님은 이 땅에는 본향이 없었다. 왜냐하면 그는 세상에 속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예수님의 본향은 하나님의 나라였다.’ (Jung Young Lee, Sermons to the 12, p.25f)
예수의 복음으로 거듭난 우리는 이 땅에서 ‘경계인’으로 살아간다. 고향에 있지만 참 고향이 되지 못한다. 진정한 마음에 고향, 내 마음을 받아주고, 나를 나답게 해 줄 곳은 어디란 말인가? 현대인은 거의 고향을 떠나 외지를 이사다니며 산다. 학교 때문에, 직업 때문에, 또는 가정을 이루기 위하여, 자녀들 키우기에 좋은 곳을 찾느라. 은퇴 이후의 삶을 살아가기 위해 고향을 떠나고 정들었던 마을과 거리를 등지게 된다. 이 현대인들의 ‘고향상실성’(homelessness)을 어디서 무엇으로 보상할 수 있을까? 우리는 예수님처럼 고향 잃은 사람들이다! 그리스도인은 거듭났기에 이 땅의 기준과 가치를 따라 살지 않는다.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이 무엇인가? 그것은 예수님처럼 된다는 것이다. 예수님이 고향을 잃어버리고 고향에서 버림받은 것처럼 우리도 무엇인가를 위하여 고향에서 버림받은 ‘경계인’이 되었다. 그리스도인은 이 세상에서 이방인이다. 그들은 세상에서 나그네요 잠시 머무는 거류인이다. 왜냐하면 세상은 그들에게 영원히 거할 장소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들은 세상에서 나그네이다. 그리스도인이 돌아가기를 원하는 참 고향은 그들이 나고 자란 장소가 아니다. 서울이나 원주나 지방의 어떤 마을이 아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나라, 곧 천국이다. 우리는 고향에 가기 위하여 과거의 어릴 적의 땅으로 갈 필요가 없다. 이미 그곳은 어릴 적의 그 고향이 아니다.
이정용은 계속 이렇게 말한다. ‘참 고향은 이 나라에서 멀리 떨어진 어떤 곳에 있지 않다. 천국은 바다 건너 어딘가에 있는 것도 아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나를 다스리시는 바로 여기에 있다. 하나님 나라는 내가 아이였을 때의 오래 전 과거에 있지 않고, 지금 있다. 하나님의 임재하심은 이 순간 바로 여기에서 내게 나타난다. 그러므로 내 고향은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하는 바로 지금, 여기이다. 하나님이 내 아버지가 되시고 내가 그의 자녀가 될 때, 그때 거기에 하나님의 나라가 있다. 우리가 거주하는 땅이 하나님의 땅이고, 내가 이 땅에 거주하는 사람들에게 형제가 된다. 그리스도 안에서 보이지 않는 벽이 허물어지고 서로 소외시켰던 감정이 사라져 버린다. 거기에는 진정한 일치와 하나 됨이 있다. 출신이 다르고 생활수준이 다르며 문화가 다르고 말투가 다르다고 서로 차별하는 것이 없다. 이러한 참 고향은 세상에 있으나 세상에 속한 것은 아니다.’(Ibid. p.26)
물론 우리는 추석에 고향을 찾고 어릴 적의 추억을 회상할 수 있다. 동창들을 만나고 어릴 적 놀던 개울과 동구 밖 길도 걸어볼 수 있다. 나도 커서 안동이나 밀양에 가보았다. 이제 나는 고향에서 살고 있다! 매일이다시피 정라진 바닷가에 나간다. 그러나 깊이 생각해보면 참 고향은 이곳이 아니다. 나는 이곳에서도 이방인이요 경계인인 것이다! 진정한 고향은 어디냐?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사는 곳이다! “바로 여기!” 하나님과 함께 하는 곳, 여기가 고향이다!! 누가복음 17장에서 예수님은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가운데 있다 하셨고, 다른 복음서에서도 하나님 나라가 가까이 왔다고 하셨다. 그것은 오래 전 과거나 앞으로 다가올 먼 미래가 우리의 고향이 될 수 없고, 바로 지금 여기, 믿음을 가지고 서로 사랑하며 사는 곳이 하나님 나라요 고향인 것을 말씀하신 것이다.
시편 137편은 분명 고향 잃은 자들의 슬픔을 노래한 뛰어난 시편이지만, 나그네 된 바빌론의 강가에서 수금을 걸어놓고 슬퍼하고만 있을 것이 아니라, 어디서나 그곳에서 희망의 씨앗을 심고 평화의 강물을 흐르게 하는 복된 삶을 시작하라고 우리에게 격려한다. 내게 있어 이 말씀은 고향을 찾으려는 갈망을 하나님을 사랑하는 열정으로 바꾸는 것을 뜻한다. 하나님과 동행하는 생활이야말로 지금 여기에서 우리에게 참 고향을 만들어 줄 수 있다. 내 주 예수 계신 곳이 그 어디나 천국이요 고향이다. 오늘 여러분이 예수님 안에서 이 고향을 찾게 되시기를 바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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