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전문
설교일 | 2025-10-1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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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말씀 | 히4:14-16 |
설교제목 | 은혜의 보좌 앞에 나아가자! |
은혜의 보좌 앞에 나아가자!
히4:14-16
2025년 10월 19일 [성령강림후 열아홉째/ 전도축제선포주일]
오늘부터 전도축제가 시작된다! 우리는 6주 동안 ‘전도해야 산다!’고 <전도 필생>을 부르짖으며 전도대상자를 위해 그 영혼을 사랑하며 매일 기도하고 교회에서부터 시작하여 모든 생활에 전도실천을 적용할 것이다. ‘내가 전도할 사람이 누구일까?’ 하고 열심히 찾아보았다. 내 주위에는 이미 다 믿는 사람 뿐이고 전도대상자는 모르는 사람이다. 내 마음 속에 전도대상자 두 분을 정해놓았다. 그 밖에도 누군가 예비된 자를 만나면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리라 다짐해본다.
전도해야 내가 산다. 우리는 예수를 믿음으로 불신자에서 신자가 되어 죄사함의 은혜와 거듭남의 축복을 누리게 되었다. 우리 안의 성령님은 우리에게 명령하기를, 하나님은 세상의 모든 불신자를 신자로 만드시기 위해 종말계획도 미루고 기다리고 계신데, 우리가 떨쳐 일어나 한 영혼이라도 구원하기를 힘써야 하지 않을까 하신다. 그러므로 구원받은 우리는 전도해야 그리스도의 참 제자가 되고 진정으로 살아날 수 있다. 성도는 그냥 믿는 데에 머물러 있어서는 안 되고, 제자가 되어야 하는데, 제자가 되려면 전도해야 한다!
전도해야 세상이 산다. 세상 열 사람이 여러 말을 할지라도 인생의 갈길, 참된 구원의 길을 보여주시는 분은 예수 그리스도시다! 그러므로 어떤 교훈이나 가르침이나 정보나 비결이라도 우리를 구원에 이르게 할 수 없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만이 우리를 구원에 이르게 한다. 따라서 배운 자도 가진 자도 잘난 자도 높은 자도, 무식한 자도 가난한 자도 못난 자도 병든 자도 모두 예수 믿어야 구원받는다!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이 사실을 전할 책임을 성도는 가지고 있다. “예수 믿어야 산다!‘고 전해야 한다.
전도할 때 하나님이 기뻐하신다. 부활승천하신 후 제자들이 예수님과 함께 모였을 때, 예수님은 재림과 종말의 시기를 묻는 제자들에게 ‘때와 시기는 하나님께서 예수님의 권한에 두셨으니 우리가 알 바가 아니요, 오직 성령이 우리에게 임하시면 우리가 권능을 받고 온 세상에 예수의 증인이 되어야 한다’고 가르쳐 주셨다(행1:6-8). 주님 재림하실 역사의 종말이 이를 때까지 성령의 권능을 받고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예수의 증인이 되는 것, 즉 전도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불신자를 신자로, 신자를 전도자로!” ‘그러므로 우리는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히4:16하)’ 신자인 우리가 먼저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가고, 세상 모든 사람이 은혜의 보좌 앞에 나오게 해야 한다!! 신자인 우리가 먼저 전도자가 되는 것이 교회의 본분이요 할 일이다. 우리는 무조건 전도자가 되어야 한다. 오래 믿은 분들이나 처음 믿음 분들을 가릴 것 없이, 점잖은 사람이나 활동적인 사람이나 가릴 것 없이, 우리 모두는 전도자가 되어야 한다. 전도자가 되어서 무얼 하나? 불신자를 신자로 삼아야 한다.
경기도 일산 신도시가 생길 때, 예수님을 사랑하고 교회를 사랑하는 목사가 있었다. 주일이면 교인들과 함께 뒷동산으로 나가 “일산은 우리의 밥이다! 일산은 예수님의 밥이다!” 이렇게 외치게 했다고 한다. 그리고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열심히 전도하였다. 이웃교회 동료목사로서 왜 저렇게 무식하게 목회를 하나, 교인들이 힘들겠다, 조금 창피했다. 그러나 창피를 무릅쓰고 전도하니까 하나님은 성도들을 하나같이 강한 그리스도의 제자로 만드셨고, 교회는 크게 부흥했다.
예수님을 믿는 것이 무엇인가? 예수 믿는 사람은 어떤 영적 자세를 가져야 할까? 되는대로, 내 맘대로 믿는 게 신앙생활은 아니다. 우리는 참된 믿음의 도리를 알아야 한다. 히브리서 4장 14-16절 말씀은 믿는 도리를 우리에게 깨우쳐준다. 예수님은 대제사장의 영적 전승을 따라 이 세상에 오셨다. 그 말은 예수를 통해야 하나님을 만나고 하나님께 이를 수 있다, 예수님이 하나님께 이르는 연결다리가 되신다는 것이다. 예수님이 친히 말씀하시기를,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요14:6) 하셨고, 제자들은 예수를 가리켜 “다른 이로써는 구원을 받을 수 없나니 천하 사람 중에 구원을 받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라”(행4:12) 하였다.
먼저 오늘 성경 말씀은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의 대제사장으로서 하나님께로 이르는 길이 되신다는 전제 아래 세 가지를 말하고 있다. 첫째로, 14절, 예수 구원의 도리(예수 이름)를 굳게 잡아야 한다. 히브리서의 주제는 예수가 대제사장이므로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들은 예수님을 꼭 통과해야 한다는 것이다. 오늘 읽은 말씀은 히브리서 전체의 본론으로 들어가는 부분이다. ‘우리에게 큰 대제사장이 계시니.’ 앞의 3장 1절에서, ‘우리가 믿는 도리의 사도이시며 대제사장이신 예수를 깊이 생각하라!’ 한 것을 다시 일깨운다. 예수님은 구약의 레위지파 어떤 대제사장보다 크고 우월하신 대제사장이시다. 그분은 승천하신 이 곧 하나님의 아들 예수시다!
예수가 누구신가? 하나님이시다. 천지를 다스리는 높으신 왕(주재)이시오, 역사를 주관하며 생사를 지으신 하나님 그 자체이시다. 우리가 믿는 예수, 우리가 따르는 예수, 우리가 전하는 예수는 하나님이신 분이시다. 우리는 그냥 위대한 선생이나 어떤 종교의 창시자를 믿고 따르는 오합지졸들이 아니고 천지의 주재이신 하나님을 믿고 따르는 사람들이다. 그러니 믿는 도리를 굳게 잡아야 한다! 전도하는 데에 있어 중요한 것은 우리가 바른 믿음에 서는 것이다. 포도나무 가지가 포도나무 줄기에 붙어있으면 저절로 열매를 맺는 것처럼 바른 믿음의 줄기에 서있으면 전도는 저절로 되고 전도가 힘이 붙는다. 중요한 것은 ‘믿는 도리를 굳게 잡을지어다!’ 예수, 그 이름을 통하여 하나님께 이른다!
둘째로, 15절, 죄를 없애고 죄를 이겨야 한다.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의 연약함을 동정하지 못하실 이가 아니요, 모든 일에 우리와 똑같이 시험을 받으신 이로되 죄는 없으시니라.’ 여기서 주목할 단어는 죄다. 대제사장의 중보가 죄를 짐승에게 전가하여 불살라 바침으로 죄를 사하고 하나님께 이르게 하는 것이 아닌가? 이처럼 예수는 죄없으신 어린양이시지만 죄를 감당하셨다. 예수님이 죄가 없으신 자로서 죄의 형벌을 지셨다는 사실이다! 우리가 전도하는 것은 무슨 조폭단체 회원모집하듯이 분위기 조성하며 가스라이팅 시켜가지고 줄줄이 나오게끔 하는 게 아니다. 죄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사람들을 인도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의 전도목표는 죄를 씻어 우리 마음 중심이 깨끗해지는 것이다. 근원적인 성결에 이르자! 예수님은 우리의 연약함을 너무 잘 알고 계신다. 예수님은 인간의 연약함을 아실 뿐아니라 친히 체험하셨다. 예수는 예루살렘을 보고 우셨고, 나사로의 무덤 앞에서 탄식하셨다. 인간성의 약점에 대한 단순한 지식이 아니라, 많은 체험을 하셨고 깊은 동정을 가지신 분이 예수시다. 이와같이 인간성의 약점에 대한 체험과 깊은 관심을 가지심으로 그가 우리 대제사장이 되실 수 있다.
사람의 몸을 입고 인간의 삶에 들어오신 예수는 인간이 받는 모든 시험을 받으셨다. 나실 때부터 부활승천하실 때까지 인간고의 모든 면을 체험하신 것이다. 광야에서 극한의 시험을 겪으셨고, 마지막 겟세마네 동산에서 땀이 흘러 피처럼 되기까지 시험당하셨다. 그는 극심한 시험을 받으셨으나 그 시험은 내적인 죄의 욕망에서 일어난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죄의 결과로 나타나지 않으셨다. 그리스도의 말씀과 생애에서 죄의식의 흔적을 찾을 수 없다. 그러므로 그리스도는 죄 없으신 하나님이시다. 시험을 받으시지만 죄는 없으신 그에게서 인성과 신성의 신비로운 결합을 볼 수 있다. 이로 이분에게서반이 죄의 문제가 해결될 수 있다.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라! 그러면 우리 심령의 깊은 곳을 오염시키고 있는 죄를 씻을 것이다!
셋째로, 16절, 긍휼하심을 받고 은혜를 얻기 위해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가야 한다. 그리스도가 우리의 완전하신 대제사장이고, 그 안에서 우리 심령의 죄가 깨끗이 씻기워 정결한 심령이 될 수 있기 때문에, 은혜의 보좌 앞으로 담대히 나아가야 한다. 신앙으로 산다 하면서도 이따금 시험에 빠지고 자신의 나약함을 절실히 느낄 때가 많다. 그때마다 우리는 주의 긍휼과 은혜를 받아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은혜의 보좌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 긍휼과 은혜는 비슷한 말이지만, 긍휼은 과거의 지은 죄에 대하여, 은혜는 앞으로 신앙생활을 위하여 받는 것이다.
‘은혜의 보좌’는 하나님의 앉아계시는 곳, 하나님의 현존을 의미한다. “보좌”라는 말이 계시록에만 40회나 나타난다고 한다. ‘은혜의 보좌’는 곧 하나님의 보좌로 그곳이 은혜의 근원인 것을 강조하는 표현이다. 오늘날 하나님이 계신 은혜의 보좌는 하나님의 성전이 교회이다. 우리는 교회로 나와야 한다. 그곳은 기도하는 집이요, 하나님의 이름이 있는 곳이다. 어디서나 주의 이름으로 세워진 교회가 은혜의 보좌이다. 열심히 신앙의 본을 보이는 의사 장로님이 있었는데, 그분은 자기를 찾으려면 세 곳에 오면 된다고 했다. 하나는 자기 가정이 있는 집이요, 또 하나는 교회요, 그리고 직장인 병원이라고 했다. 우리도 은혜의 보좌인 교회로 은혜받기 위해 달려나와야 한다. 전도는 사람들을 교회로 나오게 하는 것이다.
또 오늘날 하나님이 계신 은혜의 보좌는 예배자리이다. 예배가 드려지는 시간과 공간이 은혜의 보좌이다. 우리도 은혜의 보좌가 있는 예배자리, 예배시간으로 나와야 한다. 예배가 드려지는 그 시간에 바닷가에 가있든지 산위에 올라 창조주 하나님을 경배하는 것도 좋지 않을까 하겠지만, 은혜의 보좌가 있는 예배자리를 결코 놓쳐서는 안될 것이다. 전도는 불신자를 예배의 자리로 인도하는 것이다. 전도초청주일은 교회의 문턱을 완전히 낮춰서 그 주일에 사람들을 예배자리에 나오게 하는 것이다. 이것도 못하고 안한다면 우리 죄를 사하시고 구원해주신 예수님께 너무 죄송한 일이 아니겠는가? ‘하나님, 은혜의 보좌인 예배자리에 예수 안믿는 내 친구, 내 가족, 내 이웃을 데려오겠으니, 그 주일에 예수님 만나게 해주세요!’ 기도하면서 인도하라!
이번에 전도축제선포예배를 위해 말씀을 전하려고 자료를 찾으니까, 어떤 책의 제목이 이러했다. <전도, 하면된다!> 그래 전도, 하면된다. 어렵다 힘들다 하지 말라! 전도는 하면 된다! 또 KBS PD를 하다가 그만두고 전도에만 전념하던 어떤 권사님을 강조하기를, <전도는 쉽다> 하였다. 오늘 히브리서 말씀을 읽고 믿는 도리를 전한 뒤에 이 믿음의 바탕 위에서 은혜의 보좌로 사람들을 데려오려고 생각해보니, 전도가 그리 어려운 것이 아니다!
전도가 쉬운가 어려운가 하면 사람들은 어색하게 웃으면서 “사실 어렵죠!” 한다. 전도는 쉽다? 실감 안 나. 그러나 성경적 전도는 쉽다! 사람들은 전도는 목사나 전도사와 같은 전문가가 해야 한다고 말한다. 특히 젊고 물불 안 가리는 전도사님들이 전도하라고 젊고 패기있는 종들에게 전도사라는 이름을 분인 것이 아닌가 한다. 남다른 교육을 받고 전도특강을 수십 번은 들어야 가능하다? 힘드니까 오래 직분을 맡고 교회생활을 하는 분들도 전도를 피해가려 한다. 목사님들은 “양이 양을 낳는가, 목자가 양을 낳는가?” 하면서 양들이 전도해야 한다며 자신들은 하지 않는다. 목사인 나도 전도가 힘들었다. 둘씩 전도하라 해서 한 사람이 사람을 만나고 한 사람이 그 자리에 무릎 꿇고 기도하라 해서 그대로 했었다. 딱 무릎을 꿇었는데, 눈녹은 땅이 질척거려 무릎에 흙물이 스며들어왔다. 눈물이 나오더라.
그러나 전도가 어려워보여도 실상은 쉽다! 요한 15장에 나오는 말씀, 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 스스로 열매를 맺을 수 없음 같이! 스스로 맺는다. 이것처럼 쉬운 게 어디있나? 저절로!! 차 오토 기능을 맞춰놓으면 속도대로 그냥 간다! 아주 쉽다, 매우 쉽다-보다 더 쉬운 것, 스스로 열매 맺음! 내가 하려면 어렵다. 그러나 내 안에서 주님이 하시면 매우 쉽다. 하지 않고는 못 배긴다. 그러기 때문에 바른 믿음 위에 먼저 서라! 주님께 붙어있으라! 주 계신 곳에 나 있고, 주 가시면 나도 간다. 빨리 가시면 나도 빨리 가고, 천천히 가실 때는 나도 천천히 가라. 주님이 오른쪽으로 가실 때 나도 오른쪽, 주님이 왼쪽으로 가실 때 나도 왼쪽이다. 이렇게 주님께 붙어있고, 심겨있으면 쉽다, 저절로 된다.
왜 전도가 어려운가? 주님 안에 거하지 않고 주님과의 교통이나 삶이 없기 때문이다. 주님이 하시도록 나를 드리지 않기 때문이다. 이번에 전도할 때 내가 하려 하지 말라! 내 머리로, 내 감정으로, 내 의지로 하려하면 금방 지친다. 가게문을 열고 들어가 “안녕하세요? 제일교회에서 나왔습니다!” 하면 예수 믿는 사람들은 환영할지 몰라도 예수 안 믿는 사람들, 전도해야 할 사람들은 다 반대하고 싫어할 것이다. 극심하게 반대하여 ‘도대체 밥먹고 뭘하러 다니는 거예요?’ 쏘아붙이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내가 하지 말고 내 안에 계신 하나님께서 하시게 하라! 하나님이 하신다면 쉽다, 내가 하면 어렵다.
인천은 오랜 선교역사 동안 감리교회가 복음을 전한 지역이다. 거기 복음화율은 30%가 넘는다. 지역주민의 3분의 1이 예수 믿는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일반 사회에서 기독교에 대한 이해도가 높다. 기독교를 어려워하지 않고 편하게 받아준다. 인천의 어느 초등학교에서 있었던 일이다. 초 4년 어린이가 교장실 문을 두드렸다. “똑, 똑, 똑!” 누구세요, 들어와도 돼요. 그러자 그 아이는 교장실에 예의바르게 인사하고 들어가 전도하였다. 중요한 것은 아이의 마음속에 예수님이 계셨다는 것이다. 그날, 교장선생님이 아이의 손을 잡고 영접기도를 하였고, 자기 학교 학생에게 전도받은 교장선생님은 그날로부터 그리스도인이 되셨다.
우리 삼척지역도 무속신앙을 가지고 해신이나 산신을 믿는 사람도 있다. 그런 분들은 우리와 종교가 달라도 나름의 영성이 있다. 하루는 경기도 부천에서 70세 된 보살 할머니가 전도를 받고 예수를 믿게 되었다. 그분에게 예수를 전해주어 믿게 만든 사람은 부천 일신장로교회 주일학교 5학년 학생이었다, 복음 전할 때 묵주와 염주, 불교서적들을 다 내어주고 예수를 믿었다고 한다. 그 어린이도 예수께 붙어있어 교회학교 선생님 말씀대로 전도했더니 무당이 회개하고 돌아와 예수 믿었던 것이다. 어렵지 않다! 전도는 쉽다!!
원로목사님 한분이 전도대와 함께 전도를 나갔다. 어떻게 집 문에 들어서서 인사를 하고 전도를 하려는데, 30분 동안 아무 대꾸도 안 하고 젊은 부인 둘이 송편만 만드는 것이었다. 인격모독을 당할 정도로 무관심으로 내외하던 젊은 부인들을 보고, 예순이 넘은 목사님이 복음의 마음 문을 닫아버린 그 영혼들이 너무 불쌍하여 무릎을 꿇고 통곡하셨다. 그러자 이 두 사람의 마음 문이 열리고 눈물을 흘리며 복음을 받은 일이 있었다. 이것은 좀 어려운 전도였을까? 그러나 그들이 복음을 받아들이는 것은 참으로 쉬웠다고 할 수 있겠다.
먼저 예수 믿는 신자인 내가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가자! 믿는 도리를 굳게 잡고, 죄사함의 은혜를 믿으며, 이웃을 은혜의 보좌 앞으로 초청하자! 그리하여 스스로 되는 전도에 들어가자! 내가 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이 하시는 것, 내가 말하는 것이 아니라, 성령께서 말씀하시는 것, 이것이 믿음으로 하는 쉬운 전도의 비결이다. “불신자를 신자로, 신자를 전도자로!” 은혜의 보좌로 담대히 나아가고, 내 이웃, 내 벗들도 은혜의 보좌 앞으로 함께 나가도록 하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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