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전문
| 설교일 | 2025-11-1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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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말씀 | 시136:1-9 |
| 설교제목 | 하나님께 감사하라! |
하나님께 감사하라!
시136:1-9
2025년 11월 16일 [추수감사절/ 성령스물셋째주일]
오늘 추수감사절을 맞이하는 사랑하는 제일가족들 모두에게 기쁨과 감사가 넘치기를 기원한다. 사도 바울은 ‘항상 기뻐하라’(살전5:16) 하였고, ‘범사에 감사하라’ 하였다. 그리스도인은 항상 기뻐하며 감사하는 사람이다. 순결한 이상적 교회는 ‘기쁨이 충만한 교회’다(바클레이). 하나님이 우리 안에 천국의 보화를 주셨고, 그 보화를 발견하였으니 기뻐할 수밖에 없다. 항상 기뻐하며 감사하는 긍정적인 생활 태도는 성도의 마땅한 본분이고, 사탄의 권세를 이기는 힘이 되며, 은혜로운 성도의 생활을 할수 있는 비결이다.
사람들은 웃으면 불경건하지 않을까 막연히 염려한다. 전통 유교관습에는 웃는 것을 천박하게 보았다. ‘울다가 웃으면 00에 뭐가 난다’고 하는 근거 없는 속설도 있다. 울다가도 웃어야지 웃다가도 사람들이 보면 부끄러워할 필요가 어디 있는가? 거룩하다고 얼굴을 굳게 하여 인상을 쓰는 것은 기독교적 경건이 아니다. 성경은 기쁨이 없는 종교를 알지 못한다. 기독교는 어떤 환경 어떤 처지에서도 샘처럼 솟아나는 기쁨을 소유한 종교이며, 그리스도인은 항상 기뻐하는 사람이다.
‘웃는 낯에 침 뱉으랴’는 속담이 있듯이, 늘 웃는 사람은 시험에 들지 않는다. 스트레스를 받기는 하지만 쌓이지는 않을 것이다. ‘우리는 행복하기 때문에 웃는 것이 아니라 웃기 때문에 행복한 것이다.’(지그 지글러) 우리는 예수님 때문에 웃는다. 구원받았기 때문에 기뻐한다. 우리 죄를 사하시어 죄 씻음 받은 영혼이 되게 하셨기 때문에 감사한다. 웃는 사람, 웃는 가정, 웃는 교회를 만들어 결국에 웃는 나라를 건설하자.
오늘 추수감사절에 두 분의 간증을 먼저 들어보려 한다. 두 분은 이웃에 사는 교우들로서 함께 고백할 하나님의 은혜가 있다. 박순옥 권사님과 김영숙B 집사님이다.
절대적 감사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고 모든 일에 감사한 것은 어디에서부터 오는 것일까? 이러한 기쁨의 영성, 웃음의 신앙생활은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하나님께 대한 감사의 마음은 우리 모든 삶을 긍정적으로 바라보게 하고 기쁨이 충만하게 한다. 어떤 시련과 고통을 당할지라도 이 기쁨을 빼앗아 갈 자가 없다. 그러므로, 하나님께 감사드리는 마음을 가지고 그 감사를 예배로써 나타내고 예물로써 표현하는 것은 하나님보다는 여러분 자신을 위해서 참으로 귀하고 유익한 것이다.
하나님께 드리는 이스라엘의 감사는 세가지 특징을 갖는다. 첫째로, 절대적 감사이다. 절대적 감사에 반대되는 말은 상대적 감사, 혹은 조건적 감사라고 할수 있겠다. 우리가 하나님께 감사드리는 것은 어떤 조건 때문에, 무엇이 이뤄졌기 때문이 아니다. 만약 우리가 조건을 달아 하나님께 감사드린다면 하나님을 시험하는 것이 될 것이고, 상대적인 감사를 드리기로 한다면 감사드리기 보다는 불평할 일이 많아질 것이다.
하나님께 드리는 우리의 감사는 절대적인 감사이어야 한다. 조건이 없다, 무조건 감사드리는 것이다. ‘신들 중에 뛰어난 하나님께 감사하라! 주들 중에 뛰어난 주께 감사하라!’(2-3절) 욥이 모든 것을 다 잃어버렸을 때에도 감사를 잃지 않고 하나님을 찬양한 것처럼 무조건의 감사를 하나님은 믿음으로 보고 의로 여기신다. 우리가 이 나라 이 땅, 대한민국과 삼척 동해에 사는 것도 무조건 감사하자. 자연과 대지 위에서 살게 하신 것도 무조건 감사하자. 지금의 내 모습 이대로를 무조건 절대 감사하자.
원래 추수감사절은 미국의 Thanksgiving Day에서 유래되었다. 신앙의 자유를 찾아 영국을 탈출했던 청교도(퓨리턴)들은 혹독한 시련을 거쳐야만 하였다. 1620년 10월에 ‘May Flower'호를 타고 63일 간의 고된 항해 끝에 12월 21일 신대륙 메사츄세츠 주 플리머스 항에 도착했을 때, 영접자도 없었고 안내자도 없었다. 추위를 피할 한 칸 집도 없었고 한 끼의 식사를 줄 이웃도 없었다.
남자 78명, 여자 24명 중, 정착 1년이 채 되기 전에 44명이 희생당했다. 살아남은 사람들 중에서도 병들고 나이많은 이들과 어린이를 빼면 일할 수 있는 장정은 너무도 적었다. 그런 와중에도 교회를 짓고 학교를 지었지만 집도 없이 지낸 그들이 첫 농작물을 수확했을 때 눈물의 예배를 인근 인디언들과 함께 드릴 수 있었다. 눈물과 가난 속에 드린 감사절이다. 이것이 추수감사절의 유래이다.
메이플라워호를 타고 미국 플리머스에 상륙한 청교도들의 일곱가지 감사기도가 있다고 한다. 첫째, 180톤 밖에 안 되는 작은 배지만 그 배라도 주심을 감사, 둘째, 평균 시속 2마일로 항해했으나 117일간 계속 전진할 수 있었음을 감사, 셋째, 행해 중 두 사람이 죽었으나 한 아이가 태어났음을 감사, 넷째, 폭풍으로 큰 돛이 부러졌으나 파선되지 않았음을 감사, 다섯째, 여자들 몇 명이 심한 파도 속에 휩쓸렸지만 모두 구출됨을 감사, 여섯째, 인디언들의 방해로 상륙할 곳을 찾지 못해 한 달 동안 바다에서 표류했지만 결국 호의적인 원주민이 사는 곳에 상륙하게 해주어서 감사, 일곱째, 고통스러운 3개월 반의 항해 도중 한 명도 돌아가자는 사람이 나오지 않았음을 감사-이다.
미국은 감사절로 시작된 나라이다. 지금도 미국은 11월 셋째 목요일을 국경일로 정하고 사흘동안 추수감사 축제를 지킨다. 교회들은 11월 셋째주일을 감사주일로 지키면서 잘 차려놓고 실컷 먹고 기뻐한다. 미국인들이 세계에서 비난도 받지만 그래도 세계의 중심국가가 되는 것은 그들이 감사를 아는 나라이기 때문이다. 무조건 감사하자, 절대적으로 감사하자! 감사하는 인생이 복 받는다, 감사하는 나라가 잘 된다.
구원해주신 은혜에 대한 감사
이스라엘의 감사는 둘째로, 구원해주신 은혜에 대한 감사이다. 이스라엘이 무조건 감사할 수 있었던 근거는 ‘과거의 구원’이었다. 이스라엘은 한때 이집트에서 400년 이상 노예로 살았다. 그들은 자유케 해달라고 부르짖어 기도했고, 하나님은 그 기도에 응답하셔서 모세를 보내어 이스라엘을 광야를 건너 가나안으로 인도하셨다. 모세의 뒤를 이어 여호수아는 가나안에서 하나님이 기뻐하실 민족, 바르고 힘있는 나라를 세우려고 애썼다. 이러한 목표를 이루기 위해 모세에게 십계명을 주시고 거룩한 기준을 세워주신 것이다. 모세는 백성들에게 하나님께 감사드리고 감사의 예물을 드릴 것을 명령한다. 이것이 바로 모세 오경의 골격이다.
시편에서는 하나님의 사랑과 자비에 대하여 말한 뒤에 하나님을 찬송하며 그 은혜를 잊지말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과거에 구원해주신 은혜를 잊어서는 안된다. 우리는 세월과 함께 잊어버리는 일이 많은데, 원한은 잘 잊지 않고 감사를 쉽게 잊어버린다. 그래서 은혜는 물에 새기고 원한은 돌에 새긴다 고 하지 않았을까?
미국 시카고 북쪽 에반스톤의 게렛 신학대학원에는 이런 이야기가 전해온다. 한번은 신학교 옆에 있는 미시간 호수에서 조난사고가 일어나 많은 사람이 물에 빠져죽었다. 그때 게렛신학교 학생 한 사람이 물에 뛰어들어 수십 명을 건져주었다. 그 사람은 그때 구조하느라 병이 나서 오래 앓다가 그만 죽고 말았다. 그가 병상에 있을 때, 그를 찾아와 감사한 사람은 건져 준 사람 중에서 어린 소녀 하나 뿐이었다고 한다. 이렇게 우리는 감사를 잊기 쉽다.
감사를 잊기 쉬운 우리들이기 때문에 우리는 더욱 받은 은혜를 기억하고 감사하기에 힘써야 한다. 수술 후 재활훈련을 하던 어떤 여자가 왜 자기에게만 이런 일이 일어나느냐고 하나님께 불평하고 있었다. 마침 재활센터에서 만난 한 할머니가 천천히 걷는 연습을 하고 있었다. 다리가 자유롭지 않았지만 밝은 표정의 할머니를 보고 말을 걸게 되었다. “할머니, 힘드실 텐데 어떻게 그렇게 웃으세요?” 그러자 할머니는 잠시 숨을 고르며 미소로 답했다. “새댁, 내가 걸을 수 없는 날이 3년이었어. 근데 지금은 비록 느려도 한걸음 한걸음 걸을 수 있잖아! 나는 하나님께 매일 감사한다우, 오늘도 일어설 수 있다는 게 기적이지.” 이 자매는 자기가 조금 불편한 세월을 지나는 것을 불평했던 것을 부끄러워하고, 이만하기를 감사한다는 마음으로 치료에 임하기로 하였다. 굳어있던 마음이 풀어지자 정말 몸까지 빨리 회복되는 것이었다.
예수께서 우리를 위해 돌아가셨다. 십자가에서 흘리신 피의 사랑을 잊지 말자. 우리 죄가 주홍같이 붉을지라도 양털같이 희게 되리라고 약속하셨으며, 약속대로 주의 이름을 부르는 모든 자에게 구원을 베풀어주셨다. 구원받은 이에게 진정한 평안과 자유함이 있으며 거룩함과 복된 인생이 열려진다. 이런 모든 것이 우연히 되었거나 자신이 잘나서 되었다고 착각하지 말고, 구원해주신 은혜에 대하여 하나님께 감사를 잃지 말자.
일상사에 대한 감사
이스라엘의 감사는 셋째로, 작은 일상사에 대한 감사이다. ‘여호와께 감사하라, 그는 선하시며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1절) 선하시며 인자하신 하나님이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주시니 감사할 일이다. 먹어서 배불리고 옥토를 주시어 수고한 만큼 거두게 하신 것을 감사하자! 일상의 작은 일에 감사하는 것이 우리 삶에 얼마나 풍성한 은혜를 주는가? 한 번은 어떤 여대생이 다섯 명의 소녀와 함께 식당에 앉아서 머리를 숙여 조용히 감사의 기도를 드렸다. 소녀들 가운데 몇몇이 비웃었다. 기도를 마쳤을 때 그녀는 그들에게 왜 웃었느냐고 물어보았다.
“너희들은 감사하지 않니?” 대학생이 물어보았다. 소녀 하나가 대답하였다. “뭐가요? 우린 음식값을 치렀는데요.” “그 돈은 어디서 났는데?” 그녀가 물었다. “집에서 받았지요.” 한 소녀가 대답하였다. “아빠는 그것을 어떻게 버는지 아니?” “일을 해서 벌지요.” “아버지가 어디서 힘을 얻어 일을 할수 있다고 생각하니? 그 모든 것이 어디로부터 오겠니?” 그날 저녁 두 명의 소녀가 더 식사기도를 하였고, 다음 날에는 여섯 명 모두가 기도를 하게 되었다.
우리가 ‘감사의 태도’를 가지고 살면 작은 일상의 일들이 다 감사할 조건으로 가득차게 될 것이다. 여러분 삶에서 감사할 조건을 개발하고 그것에 대하여 마음과 입술로 감사하며 기도할 때마다 감사한다면 여러분의 삶은 훨씬 활기가 넘치고 힘이 있게 될 것이다. ‘촛불을 보고 감사하는 사람에게는 전등불을 주시고, 전등불을 보고 감사하는 사람에게는 달빛을 주시고, 달빛을 보고 감사하는 사람에게는 햇빛을 주시고, 햇빛을 보고 감사하는 사람에게는 햇빛도 달빛도 전등불과 촛불도 필요없는, 영원한 천국의 빛을 주신다.’(Spurgeon)
감사요법(Thank-you Therapy)
감사가 점 하나만 바꿔찍으면 검사가 된다. 우리 마음에 감사한 마음보다는 검사하고 평가하려는 마음이 늘 있다. 비판하고 문제의식을 가지며 따지는 마음은 메마르고 빈곤하다. 요즘 교육받은 젊은이들은 비판의식이 강한 편이다. 건강한 비판의식은 사회를 발전시키는 동력이 되지만, 자신의 마음에는 여유와 감사를 잃어버리게 하는 독소로 작용할 수도 있다. 감사나 기쁨을 알지 못하고 늘 욕구불만에 시달리는 것은 스스로 불행을 재촉하는 길이다.
훌륭한 의사이며 ‘천국의 열쇠’를 비롯한 여러 책으로 많은 사람들에게 감명을 끼쳤던 크로닌 박사는 정서적 불안으로 고생하는 사람들에게 ‘감사요법’을 처방해준 웨일즈의 한 의사에 관하여 말했다. 의기소침하며 비관적이고 온갖 문제투성이를 지닌 한 환자가 그에게 왔을 때 그 의사는 심각한 병에 대한 증상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다음과 같은 조언을 하곤 하였다. “나는 당신이 6주동안 당신에게 호의를 베푸는 사람을 만날 때마다 ‘감사합니다’라고 말하라고 권합니다. 당신의 진심을 보여주고 웃으면서 그 말을 강조하십시오.”
환자들은 때때로 자기가 감사해도 사람들이 반응을 보여주지 않는다고 불평했지만 의사는 계속하면 효과를 보리라고 권하였다. 그런데 대부분의 환자들이 그렇게 6주를 실천하였을 때 전혀 달라진 모습으로 돌아왔다. 인생에 대한 슬픔의 감정에서 해방되어 갑자기 자신들이 좀더 친절하고 우호적인 사람들이 되었음을 확인하게 되었다. 연말까지 작정하고 감사를 생활화하라고 권면한다! 틀림없이 한 해를 우리 속에 감사를 회복하며 보낼 때, 새해를 평안과 기쁨으로 맞이할 수 있으며, 질병까지 치료할 수 있을 것이다.
감사하면 행복해진다. 하나님께 감사드리며 살다보면 거룩해진다. 1)그냥 무조건 감사하자! 2)과거에 구원해주시고 은혜 주신 것을 감사하자! 3)일상생활의 모든 작은 일에 하나님의 사랑이 깃들어 있음을 깨닫고 감사하자!! 웃음, 기쁨, 감사를 잃는 것은 그것 자체가 지옥이며, 감사를 회복하는 것은 그것 자체가 천국이다. “하나님께 감사하라!!” 무엇이 많아져서, 이뤄져서 감사하는 것이 아니라, 감사하는 삶의 자세가 우리를 복되게 할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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