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떡을 떼심으로 알려지심 (누가24:25-35) [2025년 10월 12일, 성령강림후 열여덟째/ 세계성찬주일]
2025-10-12 13:10:13
박신진 목사
조회수   6
설교일 2025-10-12
설교말씀 누가24:25-35
설교제목 떡을 떼심으로 알려지심

떡을 떼심으로 알려지심

누가복음 24:25-35

20251012[세계성찬주일]

 

날씨는 맑아 하늘 높고 바람 시원하여 살기 좋은 계절이다. 그렇게 덥고 가물더니 비도 많이 내려 하장면의 광동댐이 넘쳐 수문을 개방하니 개울가에 가까이 있으면 위험하다는 문자를 받기도 하였다. 메말랐던 모든 대지에 물이 넘치고 날씨도 신선하여 살기 좋은 때이다. 하나님께서 주일을 지켜 교회에 나오는 성도들을 사랑하시며 자비와 은총을 베푸셔서 평안과 기쁨이 넘치게 하신다. 오늘은 10월 들어 둘째주일로 예배드리는 날이며, 성령강림후 열여덟째주일이다.

원래는 지난 주일이 세계성찬주일이다. 명절 앞둔 주일이라 못 나오는 이들이 많이 있어서 우리교회는 이번 주일로 한 주 늦추어 세계성찬주일로 지키기로 하였다. 그렇게 절기를 마음대로 날짜를 바꿀 수 있느냐 하겠으나, 세계성찬주일은 성찬식의 의미를 새롭게 이해하고, 주 안에서 한 떡과 한 포도주에 참예하여 한 몸된 교회가 다시 한번 일치와 평화를 이루도록 다짐하는 주일이기 때문에, 특별히 한 가정이라도 더 나올 수 있는 주일로 지키기로 하였다.

우리는 부활하신 예수님이 두 제자의 엠마오길 위에 나타나셔서 제자들에게 성경말씀을 가르쳐주시고 가까운 집에 드셔서 떡을 떼어주셨던, 누가복음의 말씀을 읽었다. 이 말씀에서 우리가 길 위의 사람인 것과, 주님을 만나 성경말씀을 풀어 해석해주시고 떡을 떼어 주실 때 눈이 밝아져 주님을 알아보게 된 사실을 중심으로 세계성찬주일에 주시는 은혜를 나누고자 한다. 바라기는, 여러분도 여러분의 엠마오길에서 말씀과 성찬으로 가슴이 뜨거워지고 눈이 밝아져 부활하신 예수를 만나기를 바란다!

 

1. 사람은 길 위의 존재이다. 세계적인 신약성서학자요, 민중신학자이기도 했던 안병무 박사는 사람을 가리켜 도상의 실존이라고 표현한 적이 있다. 신약학자인 안 박사는 성서를 바탕으로 사람이 길 위에 있다는 것이 인생의 가장 큰 특징이라고 풀어 말한다. 이것은 사람이 어디론가 가는 과정에 있고, 이 땅 위에서 완성은 어렵고, 항상 길을 찾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언젠가는 길을 찾을 수 있으며, 길을 찾은 사람은 그 길찾은 기쁨으로 끝까지 그 길을 가게 될 거라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사람은 미완성으로 나서 완성을 향하여 계속 나아가다가 언젠가 완덕에 이르기도 하고, 아니면 미완성인 채 인생을 마친다는 것이다.

여기 글로바와 다른 제자는 예루살렘에서 엠마오로 내려가고 있다. 언젠가는 제자들이 예수님을 따라 갈릴리에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던 때도 있었다. 빌립은 예수님 부활승천하신 뒤에 전도하러 사마리아 길로 들어설 때도 있었다. 지금 두 제자는 예수님의 십자가를 보고 나서 실망하여 엠마오로 내려간다. 예수님의 공생애는 어디에서 가만히 머물러 계신 적이 없고, 이 땅 위에서 나그네 같이 계속 다니시면서 사역하셨다. 제자들도 길 위에서 오늘은 이곳, 내일은 저곳으로 다녔다. 이것은 바로 우리 인생을 압축하여 보여주고 있지 않는가? ‘사랑하는 자들아! 거류민과 나그네 같은 너희를 권하노니, 영혼을 거슬러 싸우는 육체의 정욕을 제어하라.’(벧전2:11) 베드로도 우리 삶을 가리켜 거류민과 나그네 같다고 하였다.

여러분은 지금 어떤 길 위에 있는가? 물론 평생 강원도 영동 혹은 삼척에서 사신 분도 있을 것이다. 그런 지리적인 이동보다도 영적인 상태를 묵상해 보기 바란다. 지금 여러분은 어디에 있으며 어디로 가는 길 위에 있나? 어디에서 왔다가 어디로 가는가? 길 위에 있는 우리는, 어딘가에 아직 도달하지 않았다고 실망하지 말고, 이미 지나쳐 왔다고 속상해하지 말며, 항상 자신을 돌아보고 재어보면서 길을 생각하며 나아가야 한다.

그들이 실망하였을 때 내려가는 길 위에 있었는데, 거기에서 주님을 만났다. 처음에는 그들이 알아보지 못했다. 사람들은 흔히 내려갈 때, 바쁠 때, 고난 당할 때 주님이 함께 하심을 알아채지 못한다. 실망과 낙심이 그들의 눈을 가려서 그 길이 구원의 길, 희망의 길로 이어지고 있음을 알아채지 못할 때가 많은 것이다. 주님은 언제나처럼 그 길에서 제자들과 함께 가시는데, 제자들이 알아보지 못하였다. 엠마오길의 두제자처럼 우리도 주님이 함께 하심을 알아보지 못할 때가 많다.

오래 전에 소설가 공지영 씨의 <수도원기행>이라는 책을 읽었는데, 작가 공지영은 청년이 되면서 학생 시절에 열심히 믿던 주님의 품을 떠나버렸다. 너무 불공평하고 힘없는 하나님이라고 불평하면서 말이다. 그는 하나님이 사람들을 떠나버렸고 멀리 계시다고 생각했다. 그러다가 18년 만에 다시 냉담했던 믿음을 회복하여 눈물 속에서 주님 품으로 돌아왔다. 주님께로 돌아와 보니까 멀리 계시고 자기와 상관 없다고 생각했던 하나님이 이미 자기와 함께 계셨으며 늘 그 자리에 계셨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문제는 주님이 멀리 계신 것이 아니라, 자기가 알아보지 못한 것이었다.

공지영 소설가는 유럽에 있는 여러 수도원을 기행하면서, 성자들의 삶의 향기를 취하고자 했다. 그러다가 주님을 만나고 기도하며 사는 수도원은 바로 우리 삶의 한가운데 있다는 사실을 깊이 깨닫는다. 주님의 자취와 향기를 찾으러 수도원을 기행했지만, 내 삶의 한가운데 그 수도원이 있다는 것을 깨닫고 돌아온 것이다. 알고 보면 모든 성도들은 이 세속의 수도원에서 생활하는 세속 수도자이다. 수도원 중에 제일 귀한 수도원은 내 마음의 수도원이 아니겠는가!

우리는 하나님이 멀리 계시고 도무지 교회생활에 은혜가 되지 않아 신앙생활을 중단하고 싶은 유혹이 생길 때, 주님을 탓하거나 다른 사람을 핑계하기 보다, 우리의 어두운 눈을 밝혀 주시라고 주님께 기도해야 할 것이다. 이미 주님은 우리와 함께 하고 계신데 내가 모르고 있을 때가 너무 많이 있기 때문이다. 길 위에서 제자들은 예수님과 함께 내려가고 있었다. 그런데도 처음에는 알아보지 못하였다. 지금 여러분에게도 예수님이 여러분의 인생길에 함께 하고 계심을 믿으시라! 다만 우리 눈이 어두워 보지 못하고 우리 감각이 둔하여 알지 못하는 것이다.

 

2. 오늘 본문은 두 제자가 말씀을 들을 때에 마음이 뜨거워지고 눈이 밝아졌음을 알려준다. 25-27절을 보면 예수님이 두 제자에게 성경말씀을 자세히 설명해주셨다. 32절을 보면, ‘그들이 서로 말하되 길에서 우리에게 말씀하시고 우리에게 성경을 풀어주실 때에 우리 속에서 마음이 뜨겁지 아니하더냐 하고.’ 주님이 말씀하시고 성경을 풀어주실 때에, 마음이 뜨거워졌다. 말씀을 잘 살펴보면 말씀을 풀어주실 때 마음이 뜨거워지고, 떡을 나누실 때 눈이 밝아진 거라고 구분해서 말하기보다는, 그 두 일이 이뤄질 때, 두 가지 현상이 함께 일어났다고, 두 현상을 묶어서 보는 것이 타당하다. 즉 말씀과 성찬, 성찬과 말씀이 엠마오길에서 있었는데, 그러자 두 제자의 마음이 뜨거워지고 눈이 밝아졌다는 것이다.

교회 다니고, 예배드리고,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고 구원에 이르기까지 하였으나, 아직도 뭔가 미흡하다고 목말라하는 사람들이 많다. 무언가 예수님이 느껴지고 보이고 믿어졌으면 좋겠는데, 확실하기보다는 수수께끼처럼 모호한 채로 느껴질 뿐이다. 이 과학시대는 실증주의시대이다. 확실한 사실증거를 필요로 한다. 나에게 하나님을 보여달라는 것이다. 부인할 수 없게 확실하게 믿어지는 무언가를 내놓으라는 것이다. 할 수 있다면 수학이나 물리학공식처럼 하나님은 이거다, 실증해달라는 것이다. 그러나 철학자 야스퍼스의 말처럼, ‘증명될 수 있는 신은 신이 아니다.’ 우리의 논리와 경험으로 파악하는 신은 나보다 작은 신에 불과하다, 그는 하나님일 수 없다. 그러므로 우리는 모호하고 애매하지만 겸손함으로 계속 찾아갈 뿐이다. 여기에는 말씀이 바르게 이해되고 적용되는 일이 있어야 한다. 엠마오길의 두 제자가 그날 경험한 것이 바로 이것이다!

나의 간증을 나눌까 한다. 신학교 2학년, 나는 고민하고 있었다. 하나님은 살아계심이 분명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은혜로 죄를 사하시어 내 중심을 바꾸시고 나를 거듭나게 하신 것이 분명한데, 내게 한번 주신 인생을 목사가 되어 주께 드리는 것이 가장 바른 선택일까, 아니면 내가 하고 싶은 다른 일을 하여 인생을 누리면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것이 옳은 것일까? 마침 신학생 리트릿을 떠나게 되었다. ‘리트릿이 뭐냐 하니, 퇴수회라 하는데, 물러나 수련하는 시간, 자기를 돌아보는 시간이라는 말을 들었다. 정말 내게 적합한 시간이라고 생각했다. 무언가 하나님이 응답을 주시겠지!

그런데 응답은 생각보다 빨리 다가왔다. 퇴수회 주제강연에 해당하는 첫 시간에 말씀을 통하여 하나님은 너를 선지자로 부른다, 이스라엘을 하나님 뜻대로 살게 하는, 하나님 말씀만을 받들어 전했던 선지자와 같은 사람이 오늘도 필요한데, 너는 그런 사람이 되라는 소명을 가슴 뜨겁게 느끼게 하셨다. 다른 모든 말씀이나 그 퇴수회의 경험은 거듭거듭 그런 소명을 내게 느끼게 하였다. 그날 밤 퇴수회에서 나는 완전히 열정적으로 그 소명을 받지 않을 수 없었다. 어느 정도로 그때의 경험이 강했느냐 하면, 나는 신학교 2학년 2학기였던 그 가을내내 이 선지자적 소명만을 생각하면서 울며 지냈다. 채플에서 기도할 때, 말씀들을 때, 찬양을 듣거나 부를 때, 눈물바람이었다. 말씀이 마음을 뜨겁게 했던 것이다. 말씀은 지금도 하나님을 알게 하고, 우리 가슴을 뜨겁게 하며 눈을 떠서 예수님을 볼 수 있게 한다. 그 하나님이 오늘도 여러분을 만나주시기를 축복한다!

 

3. 성서는 말한다. 또한 그들의 마음이 뜨거워지고 어두운 눈이 밝아진 것은 예수님이 떡을 떼어서 주셨을 때라고... 29-31절은 이렇게 기록되어 있다. ‘그들이 강권하여 이르되 우리와 함께 유하사이다. 때가 저물어가고 날이 이미 기울었나이다 하니, 이에 그들과 함께 유하러 들어가시니라. 그들과 함께 음식 잡수실 때에 떡을 가지사 축사하시고 떼어 그들에게 주시니, 그들의 눈이 밝아져 그인줄 알아 보더니 예수는 그들에게 보이지 아니하시는지라.’

이 말씀이 그냥 엠마오길에 동행했던 예수님과 저녁 한끼를 나눠먹은 이야기로 볼 수도 있을까? 이 본문을 잘 보면 떡을 떼어주신 일은 바로 성만찬을 의미한다. 이 구절은 전형적인 성만찬 구절이다. ‘떡을 가지사, 축사하시고, 떼어, 그들(제자들)에게 주시니.’(29) 길 위에서 제자들에게 예수님이 나타나셨으나, 제자들이 보지 못했다. 그런데 성찬을 받을 때 저희 눈이 밝아져 예수님을 알아보았다. 얼마나 놀랍고도 기쁜 경험인가! ‘, 예수님이 우리와 함께 하셨구나!’ 이때의 감격은 체험해 본 사람만이 알 것이다.

여기 그들이 예수께서 함께 유하실 것을 강권하였다고 되어 있다. <그들이 강권하여 이르되 우리와 함께 유하사이다. 때가 저물어가고 날이 이미 기울었나이다 하니, 이에 그들과 함께 유하러 들어가시니라.> 성찬을 나누기 전에 무슨 일이 있었는가? 아직 눈이 어두워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했으면서도 글로바와 다른 제자 이 두 사람은 예수님을 강권하여 함께 유하시기를 요청하였다. NIV 영어성경에 보면, 주님에게 강하게 우리와 함께 머물러달라!’고 강청하였다. 성찬에는 주님의 임재, 주님의 동행이 있어야 한다. 주님이 우리 영혼에 계시지 않는 성찬, 주님이 멀리 떠나버린 성찬처럼 공허하고 황당한 것이 어디 있겠는가! “때가 저물고 날이 이미 기울었으니, 여기 오셔서 우리와 함께 머물러 계십시오!” 부활 이후 모든 교회의 성만찬에는 주님께서 오셔서 우리와 함께 해주심을 요청함으로 이뤄진다!! 주님을 모시자! 주님이 함께 하시는 성찬이 되게 하자!! 그들은 성찬을 받았고, 예수님을 알아보았다.

그들은 후에 예수께서 떡을 떼심으로 자기들에게 알려지신 것’(35)을 말한다. 떡을 떼셨다는 것은 바로 성만찬을 주신 것을 가리킨다. 십자가 지시기 전, 마지막 밤에 예수께서 성만찬을 직접 제자들에게 베푸신 후, 성만찬은 특별한 은혜의 방법으로 교회가 지켜왔다. ‘떡을 떼심으로 자기들에게 알려지신 것이라는 35절의 구절은 성만찬이 계시의 통로요 구원의 증거인 것을 말하고 있다. 그리스도인은 주님의 뜻을 따라 예수께서 세상에 다시 오실 때까지 성만찬을 할 것이다(고전11:26).

성만찬은 그분의 살과 피를 상징한다. 예수님은 받아먹으라, 이것은 내 몸이다하셨고, “받아마시라, 이것은 내 피라하셨다. 요한복음을 보면, 예수님의 살을 먹고 피를 마시는 자마다 예수께서 그 사람 안에 있고 영생을 얻으리라고 약속하셨다(6:54). 우리는 성만찬을 통하여 믿음으로 예수님의 생명을 이어받고 예수님의 구원에 참여하게 된다. 말씀과 함께 성만찬으로 주님과 연합하고 일치하게 된다. 그리하여 예수님의 관점으로 생각하고, 예수님처럼 보며, 예수님같이 행동하는, 구원받은 사람들이 될 것이다.

성만찬은 이렇게 주님을 먹고 마심으로 거룩하고 영원하신 하나님과의 일치와 연합을 이루게 하고, 더 나아가 한 피 받아 한 몸 이룬 성도의 공동체로 우리를 부르심으로, 사람과 사람을 하나되게 하신다. 성만찬을 받는 우리는 어떤 이유로도 나뉘어지거나 원망과 시비를 가질 수 없다. 주님이 성만찬 속에서 우리를 하나되게 하셨기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성만찬은 하나님과 화해하게 하고 이웃과 화해하게 하시는 하나님의 은총이다.

 

주님과 함께 말씀공부를 하고, 주님이 주시는 성찬을 받은 제자들은 변화되었다. 그들의 마음이 뜨거워지고 눈이 밝아지자 어떻게 하였을까? 엠마오길에서 예루살렘길로 그들의 행로가 바뀌었다! 그들은 부활의 복음을 믿지 못하고 십자가의 죽음으로 실망하고 좌절하여 엠마로로 내려가는 중이었다. 그러나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고 나서 가슴이 뜨거워지고 눈이 밝아져 예루살렘으로 돌아서 올라가기 시작하였다. 생명의 복음을 전하는 거룩한 교회와 예배가 살아있는 곳으로! 내려가는 길에서 올라가는 길로! 그들의 걸음이 바뀌었다!!

길 위에서 지금도 어디론가 가고 있는 우리가 오늘도 성찬을 받음으로 가슴이 뜨거워지고 눈이 밝아져 주의 길을 가게 되기를 바란다. 매일 신령한 떡을 사모하며 신령한 은혜를 공급받기 바란다! 주님이 여러분 안에, 여러분 한 분 한 분이 주님 안에 거하기를 소원한다. 그리하여 주님과의 연합을 이루라! 오늘도 성찬을 받을 때, 가슴이 뜨거워지고 눈이 밝아지기를 축복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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