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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나니아와 삽비라 사건 (행4:36-5:11) [2019년 11월 24일, 성령강림 후 마지막주일]
2019-11-29 09:22:03
관리자5
조회수   125
설교일 2019-11-24
설교말씀 사도행전 4:36-5:11
설교제목 아나니아와 삽비라 사건

아나니아와 삽비라 사건

4:36-5:11

20191124[성령강림후 마지막주일]

 

성경에는 비극적인 사건이 많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왜 좋은 일도 많은데 그런 비극적인 일을 성경이 기록해 놓는 것일까요? 그것은 인간의 삶에 즐겁고 행복한 일만 있지 않고 비극적인 일들도 많기 때문입니다. 또 비극적인 사건이 주는 교훈과 가르침을 잘 받으면 우리 삶에 그런 비극이 줄어들고 하나님을 바로 믿으며 잘 살 수 있기 때문에, 성경에 그대로 적어놓았습니다. 구원받기 위해서, 행복해지기 위해서 성경은 비극적인 사건들을 보여줍니다.

교회에 오래 다닌 은혜로운 성도들은 예수 안에서 잘 되고 성공한 해피엔딩의 사건들에 익숙합니다. 그리고 어둡고 고통스러운 사건들은 감추고 그런 잘 된 사례들을 두고두고 말합니다. 그러나 사실 성경은 사도행전만 보더라도 엄청난 사건을 그대로 보여줍니다. 예수를 따르던 제자들 가운데 가룟 유다의 비극적인 죽음(1), 돌 맞아 순교한 스데반(7)과 요한의 형제 야고보의 죽음(12)과 같은 사건입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에서 아나니아와 삽비라 부부의 갑작스런 죽음(5)입니다. 그런데 비극적인 사건이라고 다 불행한 것만은 아닙니다. 거기에는 하나님의 큰 섭리와 교훈이 들어있습니다.

 

아나니아 삽비라, 마귀를 따라가다

오늘 우리가 본 성경말씀은, 사람이 죽어나가는 비극적인 사건입니다. 예루살렘교회에서 있었던 일인데요, 하나님 앞에 예물 드리는 일로 성령을 속인 일이 드러나 아나니아가 죽습니다. 젊은 사람들이 시신을 싸서 메고 나가 장사를 지냈습니다. 정상적인 장례도 치르지 못한 것이죠. 그로부터 세 시간 쯤 지났을 때 아내 삽비라가 와서 또 교회 앞에서 거짓말을 하다가 쓰러져 혼이 떠나니 사람들이 남편 곁에 장사를 지냈습니다. 한 날에 사람이 죽어나가고 가정이 없어졌습니다. 이런 상황이 일어났다면 교회가 얼마나 충격을 받고 지역사회에서 어려움을 당하겠습니까! 이 교회가 유지될 수 있었을까요? 대단히 걱정스럽지 않습니까?

다른 일도 아니고 헌금드리다가 속인 일 때문에 이런 일이 일어났습니다. 사실 헌금 문제를 정확하게 하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속이려고 속인 것이 아니고 조금 아까운 생각이 들 때도 있고, 실제로 정확하게 계산하지 못하여 본의 아니게 속일 수도 있습니다. 우리도 헌금드릴 때 계산할 때가 있지 않습니까? 믿음으로 마음껏 드리면 좋겠지만 여러 가지를 생각하게 됩니다. 아예 인색하게 마음을 닫고 헌신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죠. 그럴 때마다 죽어야 한다면 저를 포함하여 여기 살아남을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싶기도 합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앞 부분의 말씀을 참고해보아야 합니다. 구브로에서 난 레위족 사람이 있으니 요셉이라는 사람입니다. 바나바라는 별명으로 불렸지요. ‘그가 밭이 있으매 팔아 그 값을 가지고 사도들의 발 앞에 두니라.’ 후에 바나바라고 주로 불리게 되는 요셉은 같은 시기에 밭을 팔아 드렸습니다. 그런데 아나니아는 드리다가 징계를 받아 죽습니다. 왜일까요? 성경을 보시겠습니다. ‘아나니아라 하는 사람이 그의 아내 삽비라와 더불어 소유를 팔아’, 여기까지는 같습니다. 그런데 그 값에서 얼마를 감추매 그 아내도 알더라. 얼마만 가져다가 사도들의 발 앞에 두니.’ 얼마를 감추었습니다. 그럴 수도 있지요, 무슨 쓸 일이 있었을지 모릅니다.

문제는 헌금이 아니었던 겁니다. 베드로가 아나니아에게 말합니다. ‘아나니아야, 어찌하여 사탄이 네 마음에 가득하여 네가 성령을 속이고 땅 값 얼마를 감추었느냐?’(3) 여기 악한 영인 사탄과 거룩한 영인 성령이 나옵니다. 우리는 보통 성령을 따르거나 마귀를 따르거나 하지 않고 중간지대에 있다고 생각할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성령을 따르지 않으면 마귀를 따르는 것입니다. 성경은 중간지대라고 생각하는 곳이 바로 마귀에게 순복하는 곳임을 알려줍니다. 야고보서를 보면, ‘그런즉 하나님께 복종할지어다. 마귀를 대적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피하리라.’(4:7)합니다. 하나님께는 복종하고 동시에 마귀에게는 대적해야 합니다. 이어서 약4:8을 보면, ‘하나님을 가까이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가까이하시리라. 죄인들아, 손을 깨끗이 하라. 두 마음을 품은 자들아 마음을 성결하게 하라.’라고 가르칩니다.

그 순간 아나니아와 삽비라는 두 마음을 품고 하나님을 속였습니다. 결국 사탄이 마음에 가득하여 성령을 속이고 땅 값 얼마를 감추었습니다. 마귀를 따르면서도 다만 성령을 따르지 못할 뿐 나는 아직도 믿음 안에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마귀를 대적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피하리라!’(4:7) 혹시 여러분 가운데 성령께 순종하지 않고 애매하게 있으면서 마귀를 따르는 이들이 있을까 염려됩니다. 마귀를 멀리하고 대적하십시오! 그렇지 않으면 마귀가 여러분을 삼켜버릴 것입니다. 지금 이 순간 성령께 순종하십시오!

초대교회 성도들이 모두 재산을 다 갖다 바친 것은 아닙니다. 재산을 다 바쳐야 하는 것은 아니었어요. 사정에 따라 했습니다. 그러나 교회를 속이고 하나님을 속인 것이 문제입니다. 그것은 교회의 하나 됨을 해치고, 성령을 속이며, 하나님의 거룩한 전인 교회에 상처를 입힌 것입니다. 바나바의 경우를 보면 밭을 팔았기 때문에 재산 모두를 판 것으로 볼 수도 없어요. 그러나 정직하게 사도들의 발 앞에 두었습니다. 사도들의 발 앞에 둔 것은 사도들의 절대적 권한에 맡겼다는 것입니다. 사도의 권위에 조건 없이 완전히 맡김으로 하나님께 온전히 드린 것입니다. 그런데 아나니아와 삽비라는 얼마만 가져다가 사도들의 발 앞에 두었기 때문에 결국 하나님께 온전히 드리지 않은 것이 되었습니다.

헌금은 우리 인격을 대표하는 것입니다. 네 물질이 있는 곳에 네 마음이 있다 하셨으므로 하나님께 헌금을 드리는 것은 우리 믿음과 인격을 대표하여 드리는 것입니다. 그런데 거기에 마귀와의 타협이 있었다는 것은 우리 인격 전체를 하나님 앞에서 속인 것입니다. 이것은 결과적으로 교회의 일치를 깨고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는 태도였습니다. 성령을 근심케 만들고 마귀를 기쁘게 하는 일이었던 것입니다. 아나니아 삽비라는 자기 마음 속에 들어온 마귀에게 속았습니다. 그래도 된다고 생각하며 하나님을 속이고 무시했습니다. 아나니아는 헌금의 일부만 사도들의 발 앞에 두었으므로, 결국은 하나님께서 위임한 사도를 속인 것입니다. 자기 감정과 생각대로 하나님을 잘못 섬기다가 벌 받은 것입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함

이런 일이 일어났을 때, 교인들의 태도를 봅시다. 이런 흉한 사고가 났으니, ‘에구, 기독교도 별 수 없구나.’ 하고 교회를 떠나버릴 수도 있습니다. ‘내가 무슨 좋은 꼴을 보겠다고 사람이 죽어나가는 교회에 나간단 말이야?’ 할 수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지금도 기복적인 신앙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 믿으면 몸이 건강하고 만사가 잘 되고 복을 받는다, 교회 나가면 악귀가 물러간다는 생각입니다. 기복적인 신앙생활에서는 믿는 이의 삶이 잘 되어야 하고, 궂은 일 흉한 일은 없어야 합니다. 그러나 기독교는 물질이나 건강의 복을 구하는 종교가 아니라 죄악을 이기고 하나님과 동행하는 구원의 종교입니다. 궂은일이나 험한 일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것이 인생의 실체니까요. 기독교 신앙은 그런 모든 비극을 이기고 구원과 행복을 이루어가는 믿음입니다.

인간에게는 원죄가 있습니다. 생각보다 얼마나 악하고 끈질기고 지독한지, 인간의 실상을 볼 때 깜짝 놀랄 정도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비극적인 사건 속에서 한편으로 인간의 죄를 바라보고 또 한편으로는 구원하시는 하나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구원하시는 능력만이, 그리스도의 십자가만이 우리를 구원하여 참된 행복과 평안으로 인도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아나니아 삽비라가 죽는 이런 사건을 볼 때 인류 모두에게 깃들어있는 죄악을 더욱 아파하고 기도하면서 하나님께 다가가는 것이 믿음의 사람이 가질 태도입니다.

초대 예루살렘교회로 다시 돌아가 보겠습니다. 성경을 자세히 보면, 지금 아나니아 삽비라가 하나님의 징계를 받았습니다. 그들이 하나님을 속이고 인격적으로 바르게 하나님을 섬기지 않으면서도 믿음과 충성을 가장하여 교회를 기만하다가 성령의 징계를 받습니다. 하나님께서 직접 그 부부를 치리하셨습니다. 교회를 쉽게 생각하고 하나님을 함부로 여기는 이들이 있습니다. 교회는 그렇게 쉽게 볼 기관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뜻을 알면서도 함부로 거역하다가는 어떻게 될지 모릅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함부로 여기고, 하나님의 뜻대로 행치 않고 성령을 거역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수 없습니다. 아나니아 삽비라가 그랬습니다!

그들은 한순간에 하나님의 영원한 징계를 받았습니다. 아나니아와 삽비라는 돌이킬 수 없도록 성령의 치리를 받아 제대로 절차도 밟지 못하고 장사되었습니다. 여러분, 그러자 온 교회와 이 일을 듣는 사람들이 다 크게 두려워하니라.’(11) 두려워했습니다. 이것은 인간이 약한 마음으로 세상을 두려워하고 마귀를 두려워하는 마음이 아니고, 하나님의 심판과 통치에 대한 거룩한 두려움, 하나님께 대한 두려움이었습니다. 믿음의 두려움입니다.

우리도 하나님의 심판의 현실을 만날 때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징계와 심판을 두려워하지 않으면 대책이 없습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십시오! 하나님은 온 세상을 지으시고, 인간의 죄를 사하시며, 행불행과 생사를 주관하시는 영원하신 구주이십니다! 만약 교인이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는다면 헛 믿는 것입니다. 교회가 커도 하나님을 두려워함이 없이 오만방자하다면 실상은 교회가 아니요 허상일 뿐입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으면 교회는 혼란해지고, 세상은 온갖 죄악이 번성하여 스스로 멸망할 것입니다. 한마디로 아나니아 삽비라는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았어요! 하나님을 쉽게 보다가 심판을 가져왔고, 심판 이후에야 교회는 하나님을 두려워합니다!

 

말씀을 계속 전해야 한다

하나님을 두려워하십시오! 죄를 멀리하고 성령을 가까이 하십시오. 마귀를 대적하고 하나님을 가까이하며 성령께 순종해야 합니다. 이게 어려운 말씀입니까? 이해되지 않습니까? 왜 지금도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성령님께 순종하지 않습니까? 교회는 이 모순된 세상 속에서 계속 말씀을 선포할 뿐입니다. 여러분, 말씀대로 사셔야 합니다. 믿음은 감정대로 사는 게 아니고 말씀대로 사는 겁니다. 함부로 생각하여 자기 판단대로 교만하게 살지 마세요. 하나님을 가까이하고 죄와 마귀를 멀리하는 것, 거기에만 길이 있고 구원과 참된 행복이 있습니다.

우리는 성경이 죄악의 문제에 침묵하고 있지 않다는 사실에 주목합니다. 지금 아나니아와 삽비라 사건은 초대교회의 추문입니다. 어떻게 이런 비극적인 일이 일어났을까, 아마 사도들은 창피해서 얘기하고 싶지도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이것을 처음부터 끝까지 상세히 전해줍니다. ?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사탄이 그 마음에 가득하여 성령을 속이고 하나님을 시험하는 가증한 일들이 얼마나 처절한 징계를 가져오는지, 얼마나 무서운 심판 앞에 서게 되는지를 알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그러자 온 교회와 이 일을 듣는 사람들이 다 크게 두려워했습니다!

교회는 오랫동안 부끄러운 일이나 충격적인 사건이 일어나면 감싸주려고 했습니다. 상처를 싸매고 아픔을 위로하는 것은 교회의 오랜 미덕입니다. 그것을 나무랄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지나쳐 죄악이 상습적인 행동이 되어 주님의 교회를 더럽히고 하나님의 영광을 가릴 때에는 침묵하지 말아야 합니다. 교회는 죄를 죄라고 말씀으로 깨우쳐주어야 합니다. 죄가 속속들이 퍼져서 우리 영혼까지 더럽힐 때에는 죄를 죄라고 해주어야 합니다. 욕을 먹지 않게 하기 위해서 죄를 방관하는 것은 안 됩니다. 5:1을 보면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만일 누구든지 저주하는 소리를 듣고서도 증인이 되어 그가 본 것이나 알고 있는 것을 알리지 아니하면 그는 자기의 죄를 져야 할 것이요 그 허물이 그에게로 돌아갈 것이며.’ 죄를 알려 더 큰 죄를 막으라는 것입니다.

물론 죄는 미워해도 죄인은 사랑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죄가 드러나고 마귀역사가 나타날 때 쉽게 어떤 사람을 들어 까발리고 정죄해서는 안 됩니다. 그러나 죄가 분명하면 죄자체는 드러내야 할 때가 있습니다. 물론 교회와 지도자가 신중히 판단할 일입니다. 그 사람이 내 편이라고, 그 일에 내게 해당하는 일이라고 적당히 감추고 죄를 편들어주면 죄가 습관이 되고 잘못된 상식이 되어 돌이킬 수 없는 타락이 단체로 일어나게 될 것입니다. 그것이 적지 않은 교회에서 지금 일어나고 있는 현실입니다. 죄를 깨끗이 씻어내고 물리쳐야 합니다. 그러려면 아나니아 삽비라의 경우처럼 아프고 충격적일지라도 죄를 드러내고 말해야 합니다.

교회 안에 제2, 3의 아나이아와 삽비라가 있을 때, 아프지만 우리가 그런 죄의 현실을 말해야 할 때가 있습니다. 요즘 교회에 우상숭배가 있습니다. 음란과 쾌락풍조가 있습니다. 탐욕과 교만으로 하나님께 불순종합니다. 죄와 모순, 악한 영의 세력은 다른 누구가 아니라 바로 내게 지금도 역사하고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이런 죄악의 역사가 마귀와 함께 나타날 때 말씀으로 대적해야 합니다. 거기에서 멈추면 안 됩니다. 주께서 고쳐쓰시던지 아니면 주께서 데려가시든지 하실 것입니다. 하나님이 권면하고 용서하시면서 기다려주시지만, 죄와 악을 반복하여 행하면, 은총의 기간이 끝나고 징벌과 심판을 피할 수 없습니다.

 

죄를 말하고 지적해야 한다

오늘날 교회를 볼 때, 심각할 정도로 죄악이 교회 안에까지 들어와 번성하고 있습니다. 세속의 물결이 높은 파도가 되어 교회의 배 안으로 들이쳐서 배가 파선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이제 죄를 죄로 알지 않고 서로 감싸주고 정당화 합리화하여 죄 없는 듯이 살아갈 때는 지나갔습니다. 죄의 현실, 불신앙의 삶이 가져오는 비극적인 현상을, 사실대로 알아야 합니다. 교회가 시도 때도 없이 복과 사랑과 위로만을 선언하는 것은 정말 교회의 타락을 부추기는 일입니다. 진정한 복과 사랑과 위로가 임하기 위해서라도 먼저 죄와의 싸움을 선포해야 하고, 말씀 안에 깨어있기를 다짐해야 합니다.

아나니아 삽비라의 죄악을 겉으로 볼 때는 별 일도 아니었습니다. 하나님께 안 드린 것이 아니잖습니까? 많이 드린 중에 일부를 감추어 둔 것이 그리 큰 죄입니까? 그러나 그것은 하나님을 속이고 교회를 속이며 성령을 속인 일입니다. 그것은 복음으로 전진해나가야 할 교회에는 암적인 요소와 같았습니다. 하나님의 말씀 앞에 우리 자신을 내어놓아야 합니다. 우리에게 얼마나 깊은 죄와 불신앙이 있는지를 돌아보기 바랍니다.

사실을 까발리고 사람을 정죄하는 것이 능사는 아닙니다. 우리는 죄는 미워해도 죄인은 감싸고 돌보고 지켜주어야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 앞에서 우리가 버려야 할 교만과 죄악과 모든 탐욕과 음란, 거짓을 고치기 위해서는 드러내야 할 때가 있습니다. 언제까지 감추고만 있겠습니까! 교회마다 아나니아 삽비라 사건에 버금가는 비극적인 일이 가끔 일어납니다. 이런 하나님의 징계를 경험하면서도 어찌 죄를 감추기만 하겠습니까! 우리 안에, 곁에, 우리 옆에 가득차 있는 모든 부정과 타락과 극단적인 이기주의와 육체의 소욕을 회개해야 합니다.

계속 말씀 앞에서 이런 죄악들이 부딪히게 해야 합니다. 아직도 지금 영적 상황을 파악하지 못하고 무지와 교만으로 함부로 교회에 피해를 주며 하나님 뜻을 거슬러 말하는 자들이 있습니까? 안 될 일입니다! 하나님의 진노가 발 앞에 이르기 전에 회개하고 성령께 순종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꺼져가는 등불도 끄지 않으시며 상한 갈대도 꺾지 않으시는 사랑의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나 동시에 하나님은 무서운 위엄과 권세로 죄악과 믿음 없음을 징벌하시고 심판하시는 공의의 주님이십니다.

엄위하신 하나님은 죄를 용납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교회를 거룩하게 다스리십니다. 왜 가끔 하나님의 심판이 무섭게 나타납니까? 하나님이 이런 일을 우리에게 주실 수가 있나 낙심할 정도에 이르게 하십니까? 죄를 더 이상 보고 계실 수 없기 때문입니다. 무슨 말을 더하겠습니까? 하나님은 공의로우시며 영원히 선하십니다. 아나니아 삽비라 사건을 보면서 우리는 두렵고 떨림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밖에 없습니다.

 

기적이 나타나고 교회가 부흥되다

놀랍게도 이 사건 이후에 예루살렘교회는 망하지 않고, 오히려 이 일이 하나님을 믿게 하고 교회가 부흥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온 교회와 이 일을 듣는 사람들이 다 크게 두려워하니라.’(11) 이어서 12, 아나니아 삽비라의 사건 이후로, ‘사도들의 손을 통하여 민간에 표적과 기사가 많이 일어나매 믿는 사람이 다 마음을 같이하여 솔로몬 행각에 모이고,’ 모였습니다! 13, 14! ‘그 나머지는 감히 그들과 상종하는 사람이 없으나 백성이 칭송하더라.’ 하나님의 공의로운 심판에 교회가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순종하는 것을 보고, 세상 사람들도 교회를 시비하지 못하고 오히려 칭송하였습니다. 그리고 이런 부흥이 일어나죠. ‘믿고 주께로 나아오는 자가 더 많으니 남녀의 큰 무리더라.’ 여기 병고침의 역사와 귀신을 쫓아내는 능력이 크게 나타납니다! 할렐루야!

사도행전을 보면 비극적인 사건을 믿음으로 받아들일 때 교회가 오히려 부흥됩니다. 가룟 유다가 피밭이라는 곳에서 죽은 이후에 맛디아 사도가 보충되었을 때, 성령강림의 역사가 바로 이어졌습니다. 스데반이 돌에 맞아 죽은 순교사건 이후에는 이방선교가 시작되었습니다. 야고보가 순교당하고 베드로가 감옥에 갇혔을 때는 이방인의 사도인 바울이 본격적으로 선교의 무대로 나오는 때였습니다. 사도행전을 보면, 초대교회의 역사는 묘하게도 죽음의 사건 이후에 교회가 부흥하고 복음의 능력이 나타납니다. 하나님의 공의로운 심판과 징계 이후에 오히려 주의 교회가 부흥되고 말씀이 흥왕하여가며, 기적과 능력이 나타납니다!

하나님은 죄악을 징계하십니다. 믿는 이의 불의를 심판하십니다! 주의 자녀들의 타락을 그냥 두고 보지 않으십니다! 거짓을 일삼으며 하나님을 능멸할 때 무섭게 징벌하십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징계와 심판을 보며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마음으로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가 경배해야 합니다. 그리고 마귀와 죄악을 멀리해야 합니다. 지금이야말로 믿음으로 하나님께 반응해야 할 때입니다. 이제 하나님께서 우리교회를 믿음으로 새롭게 세우시고 부흥의 새 시기를 여실 때임을 믿으십시오! 하나님을 두려워하십시오! 하나님이 이루실 일을 믿음으로 보며 순종하십시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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