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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을 아는 일 (렘9:23-24) [2024년 12월 31일, 24-25 송구영신예배]
2025-01-19 13:22:53
박신진 목사
조회수   6
설교일 2024-12-31
설교말씀 렘9:23-24
설교제목 하나님을 아는 일

하나님을 아는 일

9:23-24

24-25 송구영신예배

 

나는 태어날 때부터 교회 주택에서 자랐고, 교회마당이 놀이터였으며, 교회 친구가 내 친구들이었다. 교회는 내 생활의 요람이며 터전이었다. 우리 아버지는 목사, 우리 어머니는 친구들에게 교회 아줌마였다. 그러나 이렇게 하나님 곁에서 생활했지만, 다 자랄 때까지 하나님을 안다고 할 수 없었다. 막연하게 하나님을 의식하고만 있었고, 하나님에 대해서(about) 몇 가지 알았을 뿐이다. 하나님을 잘 알지 못한 채 교회 안에서 살고 목사 아들인 것이 불안한 적도 있었다. 그래서 하나님을 알아보려고 애쓰기도 하였다. 그러자 그럴수록 하나님은 더 모를 분이셨다.

내가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알기 시작한 것은 고등학교를 지나 신학대학에 가서였다고 생각된다. 하나님을 알아보겠다고 깊은 밤 홀로 교회에 나가 기도하다가 무서워서 떨어보기도 하고, 하나님을 알 수 있을까 하여 캄캄한 밤에 하늘의 별을 하염없이 바라보며 꽤 긴 시간 묵상에 잠겨본 적도 있다. 그러다 신학교에 가서 하나님의 말씀을 깊이 듣고 소명을 깨닫게 되니, 하나님이 알아지는 것 같았다.

예수님이 누구인지 날마다 성경을 읽으며 배웠고, 하나님의 성품과 역사를 공부하기 시작하였다. 성령께서 내 마음 속에서 어두움을 물리치고 밝은 지혜의 빛을 비춰주셔서 하나님을 알아갈 수 있게 하셨다. 그러나 하나님이 얼마나 크고 심오하고 위대한지 하나님을 조금씩 알아갈수록 모르는 것이 더 많아졌다. 누군지 나에게 지금 이렇게 물어본다면, 선뜻 쉽게 대답하기 힘들겠다. 진정으로 하나님을 아는가? 아직도 모르는 게 너무 많다.

복음주의 목사 토저가 60년대에 미국 교회의 문제를 이렇게 말했다. 첫째는, 믿는 자가 성장하지 않고 항상 어린아이로 머물러 있으며 다만 살만 찌는 현상이다. 둘째는, 믿는 자가 교회 안에서 마땅히 해야 할 일을 알지 못하고 오직 참관만 하는 것이다. 셋째는, 믿는 자가 서로 일치되지 않고 분열과 다툼만 일삼는 것이다. 토저 목사님은 이것을 해결할 수 있는 길은 하나님을 알 때만이 가능하다라고 했다. 이 문제는 현재 우리 한국교회에 해당된다. 해결은 역시 하나님께 대하여 바로 알고 행하는 믿음으로 가능하리라.

 

한 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이하는데, 나는 여러분께 묻는다. 2024년이 지나가는 것도 알겠고, 2025년이 다가오는 것도 알겠다. 그리고 이 모든 시간과 역사를 주관하시는 분이 하나님이시라는 것도 막연히 알겠다. 그런데, 당신은 그 시간의 주인 되신 하나님을 아는 사람인가? 하나님을 단지 지식과 정보로 아는 데 그치는 것만이 아니라, 인격적으로 아는 삶, 친밀하게 아는 관계인가? 내 인생 전체를 하나님이 어떻게 끌고 가시는지, 하나님이 언제 어떻게 나타나며 일하시는지 알아가는 삶이 되고 있는가?

그냥 성경 지식을 아는 것만으로는 안 된다. 교리 몇 가지 안다고 하나님을 안다 할 수는 없다. 하나님에 대해서 건네 듣고 주워들은 것을 안다 할 수 없고, 하나님과의 관계, 하나님과의 친밀도가 높은 것, 하나님과 직접 체험적이고 깨달음이 있는 만남을 가진 것을 안다라고 성경에서 말한다. 히브리어로는 야다라고 한다. ‘친하다, 특별한 사이다.’ 그런 뜻이다. 하나님을 안다는 것은 다른 말로 하면, 당신은 하나님과 교제하고 하나님 안에서 깨어있고 살아가는 것이다. 당신은 하나님과 매일 매순간 연결되어 하나님께 내가 알려진 자가 되고, 하나님을 내가 아는 분이 되어 서로 따뜻하고 분명하게 연결되어 있는가? 모든 인간은 의식하든 의식하지 못하든 다 하나님을 찾는 사람들이다. 불신자들조차도 내용을 몰라서 그렇지, 다 하나님을 향하고, 하나님 안에 있기를 원하고 하나님을 알기 바란다.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들을 보면 두 종류로 나누어진다. 하나님을 아는 사람들과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들이다. 하나님을 아는 것은 그냥 지식을 가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생명에 참여하는 것이다. ‘하나님을 알 때 영적인 성장이 있다. 하나님을 알 때 기쁨과 생동감이 넘친다. 하나님을 알 때 지혜와 명철이 있다. 하나님을 알 때 은혜와 평강이 있다. 하나님을 알 때 강하고 용맹을 발한다. 하나님을 알 때 하나님의 성품에 참여하게 된다.’(홍성건, 하나님의 성품에 참여하는 사람, p.196f) 신앙생활에만 이것이 해당되는 게 아니고, 우리 모든 생활이 그렇다. 하나님을 알 때 방향을 알고 의미를 알고 살아도 참으로 사는 것이다.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들은 살았으나 실상은 죽은 사람들이다.

 

우리가 자랑할 것- 하나님을 아는 것

오늘 우리가 읽은 예레미야 선지자의 말씀은 이렇다. 지혜로운 자는 지혜를 자랑치 말고, 용사는 용맹을 자랑하지 말라! 부자는 그 부함을 자랑치 말라. ‘자랑하는 자는 이것으로 자랑할지니 곧 명철하여 나를 아는 것과 나 여호와는 인애와 공평과 정직을 땅에 행하는 자인 줄 깨닫는 것이라.’(24)

지혜와 힘과 재물, 이 세 가지는 세상이 자랑하는 대표적인 것들이다. 이 세상 사람들은 학벌이나 지식, 재물, 그리고 힘과 외모를 자랑한다. 이것이 세상의 기준이요 목표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것으로 삶의 기준을 삼아서는 안 된다고 하신다. 얼마나 물질적으로 풍요로우며, 얼마나 힘과 외모를 가지고 있고, 얼마나 학벌을 갖추고 똑똑하냐로 모든 것을 판단하는 세상이 되었다. 학벌과 외모와 돈, 이것으로 우월감에 빠져 교만하기도 하고, 열등감에 빠져 실망하기도 한다.

안타까운 것은 하나님 나라의 질서를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까지 이런 것들을 자랑거리의 기준으로 삼는다는 것이다. 그러나 예레미야는 분명하게 하나님의 뜻을 전한다. 이것들은 결코 우리의 자랑거리가 아니다! 주님이 기뻐하시는 자랑거리! 정말 우리 삶에 가장 필요한 것은 바로 하나님을 바로 아는 것이다. 자랑하는 자는 하나님이 누구신지를 아는 것을 자랑하라! 지식적으로, 정보의 양으로 아는 것이 아니라, 인격적으로 아는 것이다! 하나님과의 살아있는 관계, 생활에서 실제 나타나는 친밀함으로 하나님을 아는가 하는 점이다.

 

하나님을 알 때의 유익- 자란다!

그러므로 우리가 여호와를 알자. 힘써 여호와를 알자. 그의 나타나심은 새벽 빛 같이 어김없나니 비와 같이, 땅을 적시는 늦은 비와 같이 우리에게 임하시리라.’(6:3) 호세아 선지자의 이 말씀은, 최소한 진정한 그리스도인이라면 하나님을 알기에 힘써야 한다는 것이다. 여기서 늦은 비는 이스라엘에서는 봄비다. 봄비처럼 촉촉이 내려 우리를 적시어 생명력을 넘치게 하는 것과 같이 그렇게 하나님을 아는 것은 복되다!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친밀하게 아는 것이 왜 이렇게 중요한가? 하나님을 알 때 비로소 영생이 있고 영적으로 성장하기 시작한다. ‘오직 우리 주 곧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저를 아는 지식에서 자라가라. 영광이 이제와 영원한 날까지 저에게 있을지어다.’(벧후3:18) 살아있는 것은 다 자란다. 여기서 자란다는 것은 꼭 키나 양이 자란다는 것이 아니라, 변화된다는 것이다. 은혜와 저를 아는 지식에서 자라가는 것은 신앙생활에 생명이 있느냐 없느냐를 결정하는 중요한 지표이다.

요한일서의 말씀 중에 이런 말씀이 있다. ‘자녀들아 내가 너희에게 쓰는 것은 너희 죄가 그의 이름으로 말미암아 사함을 받았음이요, 아비들아 내가 너희에게 쓰는 것은 너희가 태초부터 계신 이를 알았음이요, 청년들아 내가 너희에게 쓰는 것은 너희가 악한 자를 이기었음이니라.’(요일2:12-13) 여기서 영적인 면에서 아이들의 특징이 무엇인지, 영적인 청년의 단계에 무엇을 해야 하는지, 영적인 아비는 어떤 특징을 가지고 있는지 보여준다.

사람은 몇 살이든지, 사회에서 어떤 위치와 직급에 있든지, 예수를 믿는 그때 거듭난다. 영적인 아기가 된다는 것이다. 영적으로 태어난 사람은 거기에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자란다. 갓난아이, 유년 어린이, 청년, 아비의 단계로 자란다. 태어나지 않으면 자랄 수 없고, 생명있는 것은 자라지 않을 수 없다!

 

지혜와 명철, 은혜와 평강

하나님을 알 때 사람들은 지혜로워진다. 사람들은 지식이 많아지면 지혜도 많아지는 줄 안다. 학교를 많이 다녀 가방끈이 길어지면지혜로운 줄 안다. 그러나 지혜와 명철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다. 이 세상 지식이나 학위로 얻을 수 없다. 세상에 학벌 좋은 바보들이 얼마나 많은가! 하나님이 주시는 지혜와 명철이 없기 때문이다.

거룩하신 하나님을 알 때 비로소 하나님의 지혜와 명철을 얻게 된다. 모든 교육은 하나님을 아는 데에 바탕을 두어야 한다. 지혜 없이 기술과 지식만 추구하면 그 지혜로 세상을 불행하게 만들고 위험한 일을 이루는 사람이 될 수도 있다. 이 시대의 교육이 심각한 위기를 만났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그것은 근본적으로 하나님을 아는 지혜로운 삶을 추구하지 않는 데에 있다. 악한 지혜, 즉 마귀로부터 오는 지혜를 이기려면 거룩한 지혜, 위로부터 난 지혜를 찾아야 한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을 아는 데에서 오는 지혜이다.

하나님을 알 때 또한 은혜와 평안이 있다. 황지에 가면 유명한 연못이 있다. 물이 맑고 수량이 많아 맑은 물이 콸콸쏟아져 나온다. 거기에서부터 낙동강 물이 발원하여 수백리를 흐른다. 이처럼 하나님은 은혜의 공급원이어서 하나님을 알면 하나님으로부터 끊임없이 은혜가 흘러나온다. 그 은혜를 받을 때 우리가 온전케 되며, 굳세게 되며, 강하게 된다. 우리가 은혜를 받아야 하는데, 그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을 아는 데에서 가능하다.

하나님을 알 때 또 평안을 얻게 된다. 다니엘과 세 친구들은 하나님을 아는 사람이었기 때문에 풀무불 속에서도 사자굴에서도 평안이 있었다. 두려움이 없었다. 베드로도, 바울과 실라도 복음을 전하다 감옥에 갇혔으나 평안하였다. 오히려 그들을 지키는 간수들이 두려워하였고, 바울은 간수를 향하여 오히려 안정을 시키고,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받으리라!”고 담대히 복음을 전한다.

 

어떤 사람이 교회를 다니기 시작했는데, 먼저 믿는 선배 신자가 말하기를, “매일 한 시간씩 시간을 내어 기도하고 말씀보라!”고 권하였다. 이 사람은 순진한 마음으로 매일 하나님 알고 친밀해지기 원하여 기도하며 말씀을 공부하였다. 그런데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러나 이 사람은 꾸준히 포기하지 않고 시간을 내서 하나님 알기를 더욱 힘썼다.

어느 날, 여전히 하나님 앞에서 알기를 힘쓰고 있을 때, 누군가 자기 곁에 함께 있음을 알게 되었다. 온 방 안이 감미로움과 평안함이 가득차 있었다. 부드럽고 인자한 손길이 어깨에 와닿는 것을 느꼈다. 그날 이후로 그는 하나님을 더욱 친밀하게 알아가기 시작하였고, 그의 생활과 성품이 바뀌기 시작하였다.(홍성건, 하나님의 성품.., p.195 개정인용) 사람은 누구나 진리와 하나님을 찾는다. 하나님 찾는 노력은 죽을 때까지 계속될 것이다. 그리고 언젠가 주께서 허락하신 카이로스의 시간에 하나님을 아는 기쁨으로 춤추며 노래하리라!

나는 하나님을 앎으로 영적으로 변화되고 자라가는 삶이 되기를 열망하고 있다. 여러분도 그렇게 되시기를! 새해에는 더욱 하나님을 아는 사람들이 되자! 하나님을 아는 자는 영생에 이른다. 행복은 어디에서 오느냐? 하나님을 아는 데에서 온다!! 하나님을 아는 자에게 주시는 영생의 은혜와 지혜와 평강이 가득하기를! 세상은 어둡고 우리는 연약하여도 하나님을 아는 사람의 앞길에 능력과 기쁨이 충만하여 더욱 행복할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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