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전문
설교일 | 2018-07-2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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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말씀 | 사무엘하 11장 1-15절 |
설교제목 | 거룩함을 지키려면 |
거룩함을 지키려면
삼하11:1-15
2018년 7월 29일 [성령강림후 열째주일]
2018년 전반기, 올해 들어 세계의 스마트폰 시장의 점유율은 14.5%의 애플을 누르고 다시 삼성 갤럭시가 21.7%를 차지하여 1위가 바뀌었습니다. 애플과는 분기별로 순서가 바뀔 정도로 경쟁이 치열합니다. 여기다 중국의 후발주자 샤오미와 화웨이도 경쟁에 뛰어들어 품질에서는 애플과, 가격에서는 샤오미와 경쟁하느라 우리나라의 삼성은 치열한 나날을 보내고 있습니다.
지금 삼성이 선전하고 있는 폰이 G9인데, 재작년에 G7이라는 모델이 문제를 일으켰었지요. 일부 모델에서 배터리가 폭발하는 사고가 있었습니다. 전 세계에서 250만대 정도가 팔린 상태에서 35건의 배터리 폭발사고가 접수되었습니다. 100만 대 중 24건 불량인 셈이었습니다. 불량률로 보면 미미한 비율입니다. 10만 분의 2에 불과하니까요. 그런데 삼성전자는 250만대 전량 교체해주겠다고 발표했습니다. 250만 대를 새 걸로 교체해주는 데 1조 5천억 원 정도가 들어갈 것으로 추산했습니다. 기자회견에서 전량 리콜 비용에 대해 묻는 질문에 삼성전자 무선사업부 고동진 사장은 “비용을 구체적으로 말씀드리기는 어렵지만 마음이 아플 정도로 큰 금액이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그는 “이 같은 결정을 내린 것은 고객의 안전이 가장 중요하기 때문이다.”라고 덧붙였습니다.
처음 배터리 폭발사고가 알려지자 사람들은 막 화를 냈습니다. 그렇게 비싼 핸드폰을 팔면서 안전검사도 제대로 하지 않았느냐고 비난했던 것이죠. 하지만 삼성에서 250만 대 전량 교체라는 파격적인 대책을 발표하자, 여론은 하루아침에 달라졌습니다. 1조 5천억 원에 이르는 교체 비용을 감당하면서라도, 안전문제에 적극적으로 대응하겠다는 삼성의 태도에 박수를 보내면서 신뢰감이 오히려 높아진 겁니다. 막대한 금전적인 손실을 보았지만, 기업에 대한 신뢰를 회복하자, 올해 들어 드디어 점유율 1위를 되찾아오게 된 것입니다. 올해 전반기에만 삼성은 7800만 대의 스마트폰을 판매하여, 재작년의 250만대 리콜의 엄청난 손해를 다 복구했습니다.
1.죄와 유혹에는 예외가 없습니다.
오늘날 그리스도인이 세상에서 불신을 받고 욕을 먹을 때가 많습니다. ‘그것이 알고 싶다’ 같은 프로그램에서 교인들이나 지도자들의 문제를 특집으로 다루어서 다 까발립니다. 기독교의 신뢰도가 떨어지는 것입니다. 창피해서 얼굴을 들지 못할 정도입니다. 왜 이런 일이 생깁니까? 교회를 단골로 망신주어 하나님을 반대하려는 마귀의 계락일 수도 있어요. 전문적인 폭로팀들이 그리스도인들의 비리를 확대하고 선전하여 자기들의 밥으로 삼아 상습적으로 괴롭히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 모든 내용을 깊이 돌아보면, 역시 우리가 거룩하지 못한 데에 원인이 있습니다. 모함이나 계략이라 하더라도 그리스도인들은 엄청난 댓가를 치루더라도 더욱 하나님 앞에 바르고 거룩하게 서야 합니다. 말하자면, 삼성 갤럭시가 제품들을 리콜하여 새 제품으로 교체하듯이, 하나님의 사람들이 거룩하게 다시 시작해야 할 때입니다. 지금 정말 ‘그리스도인들이 거룩하다’고 하나님이 인정해주시고, 세상에서 알아준다면 교회에는 희망이 있습니다.
오늘 우리는 다윗의 가장 큰 실수를 성경에서 읽었습니다. 다윗이 누구입니까? 이스라엘 유다의 역대 왕들 중에 다윗 같은 이가 없다 할 만큼 크고 위대하며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왕입니다. 왕상 15장 5절에 다윗의 인생을 성경은 이렇게 요약합니다. “이는 다윗이 헷 사람 우리아의 일 외에는 평생에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하게 행하고 자기에게 명령하신 모든 일을 어기지 아니하였음이라.” 모든 왕들은 다윗을 모범으로 삼아 다윗처럼 되기를 꿈꾸도록 역사가들은 사무엘서와 역대기에 기록하고 있습니다. ‘우리아의 일’이 무엇이기에 다윗 생애의 치명적인 오점으로 언급하는 것일까요? 성경은 그토록 훌륭했던 다윗 왕이 왕들 중에 가장 심각하고 치명적인 실수를 범했음을 보여줍니다.
오늘 성경 사무엘하에서는 다윗의 실수를 대서특필했으나, 역대기에는 이 부분이 완전히 빠져있습니다. 다윗의 치명적인 실수를 역대기 저자는 말하고 싶지 않았던 것입니다. 역대기의 마음을 알만 합니다. 다윗에게서 배울 점이 얼마나 많은데, 하필 다윗의 실수와 결함을 지적해내야 하느냐는 겁니다. 그러나 사무엘은 유혹 앞에 무너지며 실패하는 다윗의 모습을 살펴보며, 누구나 죄와 실수는 있다, 그러니 유혹과 죄 앞에서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이것을 가르쳐줍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이 세상에서 믿음으로 거룩하게 살아야 합니다. 그러려면 죄와 허물의 문제를 어떻게 해야 할까요?
여기서 우리가 알 것은, 죄에는 예외가 없다는 사실입니다. 누구든 죄와 유혹에서 자유로운 사람은 없습니다. 정치권에서 그래도 제일 도덕적이고 양심적이라는 진보정당의 대표가 몇 년 전에 정당한 절차를 밟지 않고 불법 자금을 받았다가 문제가 되자 아파트에서 뛰어내려 자살했습니다. 엊그제 국회장으로 치러진 노회찬 의원 영결식은 온 국민의 애통함 속에서 치러졌습니다. 우리가 여기서도 알게 되는 사실은 죄에는 예외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여러분, 누구나 항상 정신 차리고 죄를 심각하게 돌아보아야 합니다. ‘나는 죄가 없으려니.’ 하고 함부로 남을 비난하고 물고 뜯을 일도 아닙니다. 요한 8장에 보면 간음하다 현장에서 잡혀온 여인 앞에서 예수님이 묻습니다.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있거든 이 여인을 돌로 치라!” 이 한 마디에 다 양심에 가책을 느껴 하나씩 나갔습니다.
2.우리는 항상 죄에 대해 깨어있어야 합니다.
때는 희망의 계절 봄이었습니다. 오늘 성경 1절을 보면, ‘그 해가 돌아와’라고 되어 있으니, 유대력으로 새해가 되는 아빕월입니다. 3-4월이지요. 차가운 비가 많이 내리는 우울한 절기 겨울이 지나가고 화창하고 신선한 봄이 왔습니다. 한편 이스라엘 군대는 암몬과의 전투가 치열했습니다. 한번 이겼지만 다시 전쟁에 출전해야 했습니다. 요압의 군대는 암몬을 멸하고 수도 랍바를 함락시키려 날마다 군사들을 동원하여 전쟁을 벌였습니다.
이렇게 이스라엘 군대가 모두 출정할 정도로, 숙적을 물리치는 중요한 전쟁 중에 있을 때, 다윗 왕은 어디에 있었을까요? ‘다윗은 예루살렘에 그대로 있더라.’ 더욱이 2절에 보면, ‘저녁 때에 다윗이 그의 침상에서 일어나.’ 다윗이 낮잠을 자고 해질 무렵에 일어났습니다. 전쟁터의 치열한 상황에 비해 볼 때 한가하고 안일한 다윗왕의 모습입니다. 물론 이스라엘 주변 지역은 한낮의 더위를 피해 낮잠 자는 관습이 있습니다. 그러나 국가적으로 치열한 전쟁이 벌어져서 초긴장 상태에 있는 가운데 왕이 낮잠을 저녁까지 잤다는 것은 너무 안일한 태도에 빠져있는 것입니다. 다윗은 그 전쟁터에 요압과 모든 군인들을 보내고 자신은 나가지 않았습니다. 여기에 문제가 있습니다.
가야 할 곳에 가지 않고 있어야 할 곳에 있지 않으면 문제가 생깁니다. 이 부분을 KJV 성경은 ‘tarry’라는 단어를 씁니다. ‘지체하였다. 늑장을 부렸다.’입니다. 실제로 다윗은 요압 장군이 암몬의 랍바를 함락시킨 후에야 전선에 나타납니다. 이스라엘의 저녁은 오후 3시부터 시작되기 때문에, 전쟁터에 백성들을 다 보내놓고 다윗은 낮잠을 자고 늦으막이 일어나 왕궁 옥상을 거닐었습니다. 이때 목욕을 하는 한 여인의 모습이 눈에 들어온 것입니다. 지금은 전시입니다. 긴장하고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다윗은 깨어있지 않았고, 이런 영적 긴장이 풀린 틈으로 죄와 유혹이 스며들어 왔습니다.
그리고 이 때는 전쟁터에 법궤가 나가있던 때였어요. 충성스러운 우리아가 다윗이 집으로 들어가 쉬며 아내 밧세바와 동침할 것을 권하자. 우리아가 이렇게 말하지 않습니까? ‘언약궤와 이스라엘과 유다가 야영 중에 있고 내 주 요압과 내 왕의 부하들이 바깥 들에 진 치고 있거늘 내가 어찌 내 집으로 가서 먹고 마시고 내 처와 같이 자리이까. 내가 이 일을 행하지 아니하기로 왕의 살아계심과 왕의 혼의 살아계심을 두고 맹세하나이다.’(11절) 법궤가 있는 곳에 다윗은 있어야 했습니다. 말씀이 있는 곳, 하나님의 임재 처소에 있어야만 했던 것이지요! 오늘날 우리 제일교회 성도들의 영적 형편을 돌아볼 때도 동일한 상황에 있습니다. ‘주저하고 늑장부리고 있습니다.’ 예배자리, 기도자리, 주님의 말씀이 있는 곳에 가기를 주저하고 열심내지 않습니다. 모든 은혜 받는 자리, 거룩한 모임을 회피하는 것이지요.
내친 김에 말씀드리는데, 오늘날 믿는 이들의 주일 성수 개념도 많이 흐려졌습니다. ‘요즘 누가 율법주의로 믿나요, 여름에는 한두 번 빠져주는 정도의 센스(!)가 있어야지요.’ 이렇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나 주일예배에 빠지는 유혹, 충성스런 참여를 회피하려는 유혹에 꼭 죄가 함께 간다는 사실을 잊지 마십시오. 주일에 하나님께 나와야 합니다. 우리는 거룩해지려면 예수께로 나와야 합니다. 마태 8장, 나병환자의 경우, 주님 앞에 나와서 “원하시면 저를 깨끗하게 하실 수 있나이다.”(2절) 그렇게 말씀드립니다. 그렇습니다. 주님이 원하시면 우리는 거룩해질 수 있습니다. 그러자 주님께서 이렇게 선포하십니다. “내가 원하노니 깨끗함을 받으라!” 그러자 즉시 그의 나병이 깨끗하여집니다. 주일에 주님께로 나와야 합니다. 그러면 깨끗함을 얻습니다! 나병 같은 죄가 깨끗해집니다. 주일을 철저히 성수하세요, 그러면 거룩한 백성이 됩니다.
열왕기하 5장에 보면, 아람의 장수 나아만이 이스라엘 여종의 말을 듣고 먼 길을 여행하여 하나님의 종에게 찾아옵니다. 나병을 고치기 위하여, 즉 정결하고 거룩하게 되기 위하여 하나님의 사람을 찾아온 것입니다. 말씀을 듣기 위하여, 만져주심을 바라고 주님께로 오는 겁니다.주의 종 엘리사의 말에 순종함으로 아기 피부처럼 나았습니다. 거룩해지려면 주님께로 찾아와야 하는데, 거룩한 주일에도 거룩한 장소와 시간을 외면하고 세속적이고 죄 짓는 곳으로 달려가니, 법궤가 있는 곳을 외면하고 왕궁 발코니를 걷던 다윗과 다를 바가 어디 있습니까? 이렇게 신앙생활을 소홀히 하니까 거룩하지 못한 것이요, 죄가 우리를 지배하고 있는 것입니다!
거룩함을 지키려면 나와 주께 절하십시오! 예배해야 합니다. “아버지께서는 자기에게 이렇게 (영과 진리로)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신다.”(요4:23)하지 않았습니까? 거룩해지려면, 죄를 이기려면, 하나님의 구원과 영광에 동참하는 영광스러운 삶을 회복하려면, 하나님을 예배해야 합니다. 토트 티하메르, “벗들이여, 이것을 생활 원리로서 결정하도록 하라. 쉬는 날이거나 아니거나 날씨가 좋고 나쁨을 막론하고, 몸의 상태가 어떻든지 소풍이나 그 밖의 놀이에 청함을 받았더라도 우선 주일예배에 참석하라. 하나님께서는 그대들을 기다리신다. 사람이 하나님께 대한 의무를 먼저 다하지 않고서는 다른 일에 착수할 수 없는 것이다.”
3.작은 죄도 물리치고, 지금 즉시 돌이킵시다.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에게 있어서 문제는 시대가 변하고 우리에게 인생을 자유롭게 성숙하게 살 수 있는 기회가 있는데, 유대 율법주의자들처럼 신앙생활을 할 수는 없지 않느냐 하는 점입니다. 그래요, 우리는 얽어매는 종교를 믿기 보다는 자유케 하는 종교, 우리를 힘들게 하는 믿음을 가지기 보다는 행복하게 하는 믿음을 가지기 원합니다. 그러나 그러기에 더욱 죄를 멀리하고 이길 수 있는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죄는 죄를 부르기 때문에 죄를 철저히 물리치고, 작은 죄가 우리 삶에 나타날 때 분명하게 회개하고 끊어버려야 합니다. 자유는 좋지만, 방종이 되어 신앙의 원칙과 충성을 잃어버리면 자유의 이름으로 죄의 종노릇을 하게 됩니다.
다윗의 경우, 처음에는 간음, 이어서 살인, 거기에 계속 이어지는 거짓이 따라왔습니다. 전쟁터에 나가지 않고, 법궤가 있는 곳에 왕이 있지 않았을 때 문제가 생겼는데, 처음에는 왕이 후궁도 얻는데 눈에 띠는 여자를 취할 수도 있지 뭘 그러냐, 이런 마음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다가 간음을 감추느라 충성스러운 우리아를 죽음에 이르도록 하였으며, 결국 치졸한 사람이 되고 맙니다. 이것이 다 한 가지 죄가 다른 죄를 부르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작은 죄, 한 가지 죄에서부터 끊어버려야 합니다.
깨진 유리창 이론이 있습니다. 범죄학자 제임스 윌슨과 조지 켈링이 만든 개념입니다. 1980년대 중반에 뉴욕시는 급속도로 빈민굴처럼 변질됐는데, 시 정부와 경찰이 이를 보면서도 방치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런데 1995년에 뉴욕시장에 취임한 루디 줄리아니는 강력한 의지를 가지고 뉴욕시 정화작업에 돌입했습니다. 시 주요거점에 CCTV를 설치해서 낙서한 사람들을 끝까지 추적했어요. 또 지하철 내부벽을 깨끗하게 청소하고 범법행위를 집중적으로 단속한 것입니다. 시정부가 범죄근절의 강력한 의지를 가지고 있음을 거듭 확인한 뉴욕시민들은 자신들의 과거행태를 바꾸기 시작합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서 도시는 깨끗해졌고, 범죄도 눈에 띠게 줄어들었습니다. 죄와 싸우십시오! 죄가 물러갈 것입니다. 작은 죄를 멀리 하세요, 그러면 곧 여러분은 거룩해져서 세상에서 존경받는 사람들이 될 수 있을 겁니다.
도산 안창호는 생활 속의 독립운동을 일으킨 지도자라 할 수 있습니다. 그는 25살 때 미국 샌프란시스코로 떠납니다. 그가 미국에 간 이유는 선진국의 교육을 배워 조국의 교육을 일으켜 세우겠다는 생각이었습니다. 그는 미국에서 맨 처음 한 일이 고등학교에 입학하는 일이었는데, 미국의 고등학교는 18세까지만 입학할 수 있다는 규정이 있었습니다. 주위 사람들은 나이를 속여서 18살이라 해도 백인들은 모르니 그렇게 들어가라 했습니다. 그러나 안창호는 교육을 배우려는 이가 거짓으로 일을 시작할 수 없다면서 거절합니다. 그리고 솔직하게 자기 나이를 밝혀 들어가지 못하게 되었으나, 교장선생님이 18세 규정은 미국인들을 위한 법이니 조선인에게는 저촉되지 않을 수도 있다면서 그를 받아주었습니다.
구 후에 안창호는 조선노동자들에게 진실하게 말하고 행함이 있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합니다. 바로 무실역행이지요. ‘죽더라도 거짓이 없으라!’ 이 정신으로 미국사회에서 정직하고 성실한 민족으로 인정받으며 살게 됩니다. 살전5:22, ‘악은 어떤 모양이라도 버리라.’ 간음과 거짓의 유혹이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이 징직과 지조는커녕 세상 사람들과 아무런 차이가 없다면 어떻게 거룩함을 지킬 수 있겠습니까!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서슴없이 거짓을 늘어놓고, 거짓 계약에 거짓 장사를 합니다. 아이들을 키우면서도 얼마나 자주 거짓말을 합니까? 죄를 버려야 합니다. 해서는 안 되는 말은 입 밖에 꺼내지도 마십시오. 가지 말아야 할 곳에 가지 말며, 하지 말아야 할 행동은 시작도 하지 마십시오! 왜냐하면 죄는 죄를 부르기 때문에 아예 입구에서, 작은 것에서부터 막는 것이 좋습니다.
작은 죄라도 심각하게 생각하고 물리쳐야 하지만, 죄에 대하여는 지금 즉시 돌이켜야 합니다. 나중에 하지, 내년에 하지 하다가 큰 일 납니다. 지금 죄를 떠나야 합니다. 다윗은 밧세바를 취하여 아기를 가졌으면서도 회개할 줄을 몰랐습니다. 어느 날 선지지 나단이 다윗을 찾아옵니다. 나단은 비유로 다윗을 깨우칩니다. 비유를 듣고 다윗은 남의 얘기인 줄 알고 “이 일을 행한 그 사람은 마땅히 죽을 자라!”(삼하12:5) 합니다. 자기 말로 자기를 죽음에 정죄한 것이지요. 남을 비판하고 남의 말 하는 것이 이렇게 무섭습니다. 교만하지 말고 함부로 남을 정죄하지 마십시오. 그러자 나단이 강력하게 외칩니다. “당신이 그 사람이라!”(삼하12:7)
이때 다윗이 회개했습니다. ‘다윗이 나단에게 이르되, 내가 여호와께 죄를 범하였노라 하매, 나단이 다윗에게 말하되 여호와께서도 당신의 죄를 사하셨나니 당신이 죽지 아니하려니와, 이 일로 말미암아 여호와의 원수가 크게 비방할 거리를 얻게 하였으니 당신이 낳은 아이가 반드시 죽으리이다 하고.’(삼하12:13-14절) 죄의 악순환을 끊는 길은 잘못을 알았을 때 솔직하게 회개하는 것입니다. 다윗은 조금 늦었지만 회개하였습니다. 하나님은 그에게 긍휼을 베푸십니다. 사람은 죄 지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깨닫고 회개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심판을 두려워합시다. 하나님은 죄와 잘못도 바로 심판하지 않으시고 기다려 주십니다. 회개할 기회를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은총의 유예기간이 끝나기 전에 회개하십시오.
거룩함을 지키게 하옵소서!
삼성이 브랜드의 가치와 신뢰도를 지키려 엄청난 희생을 감수하지 않았습니까! 그것은 훗날 회복으로 나타났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지금 세상이라는 시험대에 올려져 있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믿음을 증명해보여야 합니다. 그것은 죄를 이기고 거룩함을 지키는 데 있습니다. 항상 깨어 있으십시오! 인간은 죄인이며, 조금만 틈이 있으면 유혹에 빠져버립니다. 작은 죄라도 멀리하여 다른 죄들이 들어올 여지를 아주 없애버려야 합니다. 이럴 때 모든 그리스도인은 항상 예배와 은혜 받는 모임을 통해 주님 앞으로 나오기를 힘써야 합니다. 죄와 허물을 깨달았다면, 즉시 회개하고 물리쳐야 합니다. 하나님은 상한 마음을 위로하시고 회개하는 영혼을 용서하십니다. 그리하여 항상 주의 백성의 거룩함을 지켜주십니다.
다시 말씀드리지만, 인간은 죄인이며 본질 상 진노의 자식입니다. 이 사실을 절대 잊어서는 안 됩니다. 그러나 우리가 죄에서 씻음을 받고, 예수 안에서 작은 죄도 멀리 할 때, 거룩함을 지킬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이 거룩함을 지킨다면, 은혜와 평안, 존귀함이 우리 삶에 임할 것이어요! 거룩함을 지키려 영혼이 깨어있고 노력하는 것이 성도의 마땅한 본분입니다. ‘주여, 회개함으로, 예수를 믿음으로, 죄를 멀리하고 다시는 죄를 짓지 않게 하심으로, 우리를 거룩하게 지켜주소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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