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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적 전투 (엡6:10-20) [2018년 8월 26일, 성령강림 후 열넷째주일, 왕국절 시작주일]
2018-08-25 14:06:45
박신진 목사
조회수   17
설교일 2018-08-26
설교말씀 엡6:10-20
설교제목 영적 전투

영적 전투

6:10-20

2018826[성령강림 후 열넷째주일]

 

영적 전쟁

신앙생활에 영적 전쟁 개념이 있습니다. 우리는 복음과 하나님을 위하여 영적 전쟁을 치르는 중이고, 대적은 마귀이며 하나님의 권위와 도움으로 이 전쟁에서 승리하지 않으면 온전히 설 수 없고 열매 맺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재림으로 역사가 완성되기까지 하나님은 영적 전쟁을 통해 당신의 자녀들을 부르시고 지키시며, 온 세상에 하나님의 뜻이 성취되게 하신다는 겁니다. 안일과 무의미 속에 빠져있는 나태한 신앙생활에 경종을 울리는 말씀입니다. 이 영적 전쟁을 치루는 개별 현장의 싸움을 우리는 영적 전투라고 합니다. 세계사적인 영적 전쟁이 치러지는 가운데, 내 개인의 생활 영역에서, 우리 가정과 교회에서 치르는 영적 전쟁이 바로 영적 전투입니다. 영적 전투는 개별적이고 실제적인 영적 싸움입니다.

성도들이 삶에서 만나는 영적 전투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는 영적 훈련을 게을리해서는 안 되겠죠. 선교의 발걸음을 소홀히 해서도 안 됩니다. 오늘날 성도들이 많이 안일해져서 기도하는 일과 선교하는 일에 예전 같은 열심을 내지 못합니다. 여름이면 대부분의 교회가 연합집회나 기도원집회에 다녀오곤 했었고, 8-90년대에는 선교열기가 뜨거워서 여름이면 꼭 그 교회에 속한 CCC를 비롯한 선교단체에서 몇 명씩 단기선교를 갔고, 교회적으로도 아시아 아프리카 선교를 많이 했었지요. 샘물교회에서 아프가니스탄에 보낸 선교팀이 납치되어 두 명이 순교하는 일이 있고 나서 교회의 단체선교에 대한 회의가 일어나면서 선교의 열기가 많이 식어졌습니다. 기도와 선교의 열기를 회복하시기 바랍니다!

초한지에 보면 유방이 함양을 차지하고 만족하여 거기에 안주하고 있을 때, 번쾌라는 장수가 와서 이렇게 말합니다. “주군께서 함양에 안주하고 계시니, 이룬 것을 다 잃을까 염려됩니다.” 이룬 것에 안주하면 더 발전할 수 없고 얻은 것까지 잃을지도 모릅니다. 교회도 지금은 안주할 때가 아니라 기도하고 선교할 때입니다. 교회와 성도들은 분발하여 일어서야 합니다!

기도를 통한 영적 부흥과 선교에 관심을 가집시다. ‘마귀의 간계를 능히 대적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전신갑주을 입으라.’ 본문 11절의 말씀입니다.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을 상대하는 것이 아니요 통치자들과 권세들과 이 어둠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을 상대함이라.’ 12절 말씀이죠. 우리의 싸움은 영적 전투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혈과 육의 전투로만 생각하기 때문에 세상의 육적 힘과 세력을 모아 이기려 하고 돈으로 해보려 합니다. 그러나 우리 크리스천은 여기에 하나 더 생각할 것이 있는데, 그것은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본질적인 싸움인 영적 전쟁이 있다는 것입니다. 성경은 영적 전쟁을 보여줍니다. 선지자들이나 사도들이 영적 전쟁을 승리로 이끌기 위해 말씀을 가지고 성령의 도움을 얻어 죽기까지 싸웠습니다. 그들은 교회와 사회에서 적고 큰 문제와 부딪히면서 영적인 각개전투에서 승리하였기에, 복음과 하나님 나라가 보전되고 확장되어 온 세상에 주의 뜻이 성취되었습니다.

 

사라왁의 영적 전쟁

우리교회도 지난 수십 년 동안 영적 전투를 그치지 않고 해왔습니다. 우리교회의 부흥과 기도의 결과로 많은 선교의 열매를 맺었습니다. 한 가지 예를 들자면, 10여 년 전부터 사라왁선교에 우리교회가 관심을 가졌었습니다. 교회를 두 개 건축하지 않았습니까? 2013년에 다로교회와 따잠교회를 봉헌했습니다. 사라왁은 우리교단에서 제일 먼저 선교사를 파송한 곳입니다. 보르네오 안에 사라왁과 사바라는 말레이시아 주가 있고 나머지는 인도네시아 땅입니다. 그 위쪽에 브루나이라는 왕국이 있습니다. 사라왁은 소수민족이 모여 사는 지역이 많습니다.

그 중에 대표적인 종족이 이반족입니다. 3세기부터 그곳에 산 이반족은 12세기에 칭기즈칸이 세계지배를 위해 영역을 확장할 때 보르네오 섬까지 몽골 군대들이 와서 시작된 종족입니다. 그곳 소수민족과 결혼을 해서 피가 섞였는데 그 종족이 이반족으로서, 몽골피를 받아서 우리와 비슷합니다. 골격이 크고 힘이 세어 건장하고 전투를 잘 합니다. 이반족은 머리 사냥을 하는 무서운 종족입니다. 칼과 도끼로 머리를 잘라 해골을 만듭니다. 그리고 집집마다 해골을 걸어 놓는데, 해골이 많을수록 힘이 있는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들은 영적인 세계를 전혀 모르고 육적이고 본능적인 것으로만 사는 사람들입니다. 사람이지만 짐승과 크게 다르지 않은 것이지요. 1940년대까지 사람 목을 자르는 머리 사냥 문화가 이어졌다고 합니다. 그러다가 호주에서 선교사님들이 오셔서 이들에게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리하여 그들 대부분이 예수를 영접하고 영적인 세계를 접하게 되자 저절로 머리 사냥 문화가 사라집니다. 복음과 야만은 함께 갈 수가 없는 것이죠. 복음이 이기자 야만이 사라졌습니다. 복음의 은혜는 삶을 변화시킵니다. 이게 바로 영적 전투의 결과입니다.

이런 머리 사냥 문화를 가진 사람들이 공동체에서 살아남기 위해 만든 것이 바로 롱하우스’(longhouse)입니다. 말 그대로 긴 집입니다. 우리가 선교하러 갔을 때에도 우리교회 선교팀이 롱하우스에서 함께 밥도 먹고 하룻밤 자기도 했었지요. 한 마을 사람들이 긴 집으로 이루어진 공동주택에 모여 함께 삽니다. 집은 각각 붙어 있고 마루는 하나로 수십 채가 이어져 있습니다. 이 공동 마루에서 잔치를 하기도 하는데, 우리가 머물렀던 롱하우스의 마루가 수백 미터는 되었을 것입니다.

거기에는 촌장이 있는데, 이 촌장이 예수를 믿으면 롱하우스에 사는 수십 수백 가구가 다 예수를 믿습니다. 그래서 촌장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이 아주 중요합니다. 보통 촌장에게 전도를 하면 사람들이 착해서 다 예수를 믿습니다. 우리가 머물렀던 다로지역도 많은 사람들이 이미 크리스천이 되어서 자기들끼리 예배를 드리기도 하였습니다. 수백 미터 공동마루 겸 현관에서 기도회도 하고 식사도 하고 축제도 하였습니다.

이 소수 민족 가운데 룬바왕족이라고 있었습니다. 이 민족은 숫자가 적은 소수민족이어서 힘에서 이반족에게 밀립니다. 그래서 정글 안으로 피신하여 그곳에 몰래 숨어 살았어요. 그러다 그곳까지 공격하면 또 더 깊은 밀림으로 들어가고, 공격하면 또 더 깊이 들어갑니다. 그런데 룬바왕족은 가장 깊은 정글 속으로 들어가 살고 있었습니다. 밀려들어간 것이죠. 서양 선교사들이 들어가서 이 룬바왕족에게 복음을 전했습니다. 외롭게 생존의 위협을 느끼며 살던 룬바왕족은 모두 예수를 영접하여 100% 복음화가 되고 말았습니다. 소수민족 가운데 완전히 복음화된 민족은 룬바왕족 뿐이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들이 하나님을 잘 믿어서 그 4-5대 후손들이 사라왁의 의사, 변호사, 교사, 은행원 등 고위직은 다 차지하게 되었습니다. 룬바왕족은 종족으로는 깊은 밀림으로 밀려나서 쫓겨난 약소종족이었는데, 그들이 복음을 듣고 예수를 다 믿자 복음의 힘으로 사라왁에서 가장 강력한 종족인 된 것입니다. 예수 믿으면 이렇게 잘되고 복을 받는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 자체가 영적 승리입니다. 그래서 복음이 룬바왕족을 통해서 사라왁에 크게 왕성해집니다. 예수 믿고 정신 차려 공부하고 의식화되어 사라왁의 지도자가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중요한 자리는 기독교인들이 다 차지하고 있으면서, 한 가정에서 무조건 목사 한 명을 만들어 냅니다. 자녀 6-7명을 낳으니까 아들 한 명은 똑 목사가 되게 합니다. 그들은 신앙의 대를 계속 이어가고, 술과 담배는 전혀 입에도 대지 않습니다. 그 소수민족인 사라왁을 지배하는 것이 놀랍지 않습니까! 그만큼 영적 전쟁이 중요합니다. 믿음으로 변화를 가져오는 겁니다.

 

영적 전투를 위한 마음가짐

우리는 혈과 육의 전투를 하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사람끼리의 세력 싸움, 내 편이냐 네 편이냐 하는 경쟁에 매여 있어서는 안 됩니다. 또 돈 문제로 얽혀서 언제까지 밀고 당길 것입니까? 이것은 다 혈과 육의 싸움입니다. 교회 안에서는 이런 것들을 넘어서야 합니다. 우리는 영적 싸움에 부름 받았으므로 영적 전투를 준비하기 위한 전신갑주를 입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취하라, 이는 악한 날에 너희가 능히 대적하고 모든 일을 행한 후에 서기 위함이라.’(13)

아시안게임에서 우리나라 축구팀이 이란을 이겼지요. 그런데 이란의 국호가 영어로 IRI라고 합니다. 이란 이슬람공화국(Islamic Republic of Iran)입니다. 이렇게 나라이름에 종교를 뚜렷이 붙여놓은 것을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우리는 영적 전쟁에서 이슬람을 주목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요즘 이슬람이 영적 전투에서 기독교를 계속 이겨먹고 있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좀 전에 사라왁 선교 얘기를 했는데, 지금 말레이시아는 이슬람 국가입니다. 원래 그 나라는 이슬람 국가가 될 수 없는 나라입니다. 지리적으로 주변 국가가 다 불교 국가입니다. 태국, 라오스, 베트남, 미얀마가 다 불교입니다. 이슬람 국가인 파키스탄 방글라데시 이란 사우디는 너무 먼 곳에 있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말레이시아가 이슬람 국가가 되었을까요? 14세기에 아랍 상인들이 배를 타고 장사를 했는데, 중국과 필리핀을 드나들면서 중간에 머무는 곳이 바로 말레이시아였습니다. 상인들이 돈이 많으니까 왕족과 결혼을 했답니다. 한 아랍 상인이 말라카 왕족과 결혼을 합니다. 그러자 그 왕국에 이슬람 종교를 퍼뜨린 것입니다.

기독교 국가인 네덜란드가 말레이시아를 점령했었고, 또 영국이 와서 통치를 했습니다. 그런데 두 나라가 서양문화와 영어를 보급하면서, 경제적인 착취를 엄청나게 해갔습니다. 그래서 말레이인들이 네덜란드를 아주 싫어했습니다. 경제로는 이득을 취했을지 몰라도 네덜란드와 영국은 영적 전쟁에서는 패배한 것입니다. 말레이족이 영국을 향해 독립운동 할 때 도와준 사람이 누구였을까요? 바로 무슬림들이었습니다. 그래서 말레이시아는 이슬람과 가까이하게 되고 동남아시아에서 유일한 이슬람 국가가 되었습니다. 그들이 기독교 국가의 언어인 영어를 쓰고 있는데도 종교는 이슬람이 되어버린 것입니다. 안타까운 일이죠.

그런데 문제는 말레이시아에 있는 무슬림들이 한국에 와서 이슬람을 선교하려 하는 겁니다. 그들의 선교정책은 결혼 정책입니다. 말레이인들은 아시아인이니까 우리와 얼굴색이 그리 다르지 않습니다. 그런데 결혼을 하면 배우자는 100% 무슬림으로 만듭니다. 한 목사님 따님이 말레이시아 유학생과 사랑해서 결혼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교회에 나왔습니다. 찬양대도 하고 크리스챤이 되었으니까 목사 딸과 결혼했습니다. 그리고 아기 둘을 낳았습니다. 그런데 그 이후에 싹 변했습니다. “우리는 무슬림이예요. 이슬람 사람과 결혼했으니 이슬람 교인이 되어야 합니다.” 애를 둘 낳았는데 어떻게 합니까? 목사 딸이 할 수 없이 이슬람이 되었습니다. 그러지 않으려면 이혼해야 합니다. 아이들을 잃어버리게 됩니다.

말레이시아와 한국에 영적 전투가 이뤄지고 있습니다. 말레이족이 친절하여 국내에 있을 때 교회도 나오고 하니까 국제결혼 합니다. 한국에 있을 때 교회에 등록을 하고 크리스챤이 됩니다. 그러니까 완전히 기독교인이 된 줄 알고 국제결혼을 합니다. 그런데 결혼해서 그 나라에 가면 싹 바뀝니다. 그들은 2020년까지 한국에 이슬람 선교사를 10만 명 보내는 것을 목표로 세웠다고 합니다. 정신 차리고 영적 전투에 임하지 않으면 영국처럼 됩니다. 영국은 몇 넌 전부터 국교회인 성공회에 주일예배 드리는 인원보다 이슬람회당에서 예배드리는 인원이 더 많다는 통계가 나왔습니다.

 

기도와 영적 무장

우리의 싸움은 마귀와의 싸움입니다. 혈과 육으로는 결코 이길 수 없는 싸움입니다. 마귀, 공중 권세 잡은 자와의 영적 전투라는 것입니다. 현대 기독교인들은 마귀 얘기를 하면 반발을 하고 싫어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사탄 마귀 귀신이 어디 있느냐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목사님들 가운데도 사탄 마귀 얘기를 전혀 하지 않고 윤리, 도덕, 예절만 설교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사탄을 봤느냐, 마귀는 없다.”라고 얘기하는 교인들도 많습니다. 우리가 마귀를 증명해 보일 수는 없지만 성경이 분명히 말하고 있습니다. 눈에 보이지 않지만 마귀는 있습니다! 지금도 있습니다. 기독교 지성은 마귀를 부정해야 하는 것입니까? 그렇지 않지요! 오히려 영적인 전투의 심각성을 알수록 마귀를 대적해야 합니다.

우리는 마귀를 보지 못합니다. 우리 지성과 감성과 의지, 육체의 힘과 사회적 힘으로도 마귀를 이길 수 없습니다. 우리가 경험하는 대로 오히려 우리는 마귀에 이용당하고 판판이 질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는 마귀를 못 보지만, 마귀는 우리를 봅니다. 우리 육체만 보는 것이 아니고 마음까지 들여다봅니다. 우리의 정체는 노출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불리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니 어떻게 이길 수 있습니까? 도저히 이길 수 없습니다. ‘영적 전투는 마귀와의 싸움인데, 우리는 못 보고 마귀는 다 보고 있으니, 이 싸움에서 우리는 질 수밖에 없다!’ 이 사실을 뼈저리게 느끼고 정신 차려야 합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이 영적 전투에서 이기는 길은 하나님을 의지하고 하나님께서 싸워주시게 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는 성령님께 싸움을 대신 해달라고 강력히 요청해야 합니다. 그러면 성령님이 우리를 무기로 써서 전투에 임하십니다. 그 요청이 바로 기도입니다. 여러분, 우리의 영적 전쟁은 기도로써 이깁니다. 즉 하나님의 힘을 이용해서 이기는 것이지요! 영적 세계를 모르는 사람은 기도할 줄을 모릅니다. 그러니 크리스챤이라 하면서도 기도하지 않습니다. 자기 힘으로만 자기 재주로만 무언가를 하려 합니다. 어떻게 영적 전투에서 이깁니까? 우리에게는 기도가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오직 기도 외에는 이런 류가 나갈 수 없습니다!!

오늘 본문은 이와 같이 영적 싸움의 본질을 말하고 나서 우리가 해야 할 영적 무장을 가르쳐줍니다. 무장하십시오! 무기력하게 아무 대비도 없이 질 준비만 하지 말고, 성령님께 기도하고 예수님과 동행하면서 우리도 영적인 무장을 게을리 하지 말아야 합니다. 하늘과 땅 사이의 영역을 지배하는 마귀는 간계를 부려 사람들을 하늘로부터 분리시킵니다. 그 싸움에 이기기 위해서 우리는 주님의 능력으로 강건해져야 합니다.

그런즉 서서 먼저 진리의 허리띠를 띠십시오! 허리띠는 허리를 졸라매어 긴장하게 하고 싸움에 뛰어나가게 하는 것이지요. 진리로 모든 것을 단단히 정비하고 흐트러지지 않도록 하라는 것입니다. 말씀을 듣고 배워 해야 할 일과 하지 말아야 할 일을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 의의 호심경을 붙입니다. 호심경은 이사야 5917절에 쉬르얀이라는 히브리어 명사로 가슴을 보호하는 갑옷입니다. 가슴막이입니다. 적들은 주로 심장이나 폐를 노리기 때문에 가슴을 잘 지켜야 합니다. 악한 사탄 마귀는 성도의 양심과 심령골수를 찔러내기 때문에 자기 의보다는 칭의의 은혜로 가슴을 굳건하게 해야 합니다.

평화의 복음 신발을 신어야 합니다. 로마군인들은 밑창이 두껍고 바닥에 징이 박힌 칼리가라는 군화를 신어 오랜 행군에도 몸에 탄력을 잃지 않게 했습니다. 성도의 군화는 지속적인 복음 실천이 주는 평화입니다. 그 위에 믿음이 방패를 들어야 하지요. 나무 두 겹을 붙이고, 헝겊과 가죽을 씌우고, 군데군데 쇠를 붙인 방패입니다. 불화살을 막을 수 있는 것이므로, 성도는 의심의 불, 유혹의 불, 낙심의 불이 옮겨 붙지 않도록 믿음의 방패를 들어야 합니다.

또한 성도는 구원의 투구를 써주어야 해요. 투구, 머리 보호 장비이지요. 머리 숙인 것은 실패와 죽음을 말하고, 머리를 들면 위풍당당한 기개와 승리를 말합니다. 구원받은 자로 당당히 서야 마귀를 물리칠 수 있습니다. 그 위에 성령의 검을 드십시오!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이것은 성도의 공격 무기입니다. ‘마카이라는 로마군인이 사용하는 길이 60cm, 5cm의 예리한 칼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인 은 성령을 통해 주어지며, 성령을 통해 하나님의 말씀이 검처럼 강력하고 예리하게 역사합니다. 그러니 마귀는 강하지만 영적 전투에 나설 때 성도는 조금도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우리에게는 마귀를 이길 성령님이 계시며, 우리는 충분히 무장하고 있습니다.

 

승리하기 위하여

여러분, 이길 준비 되셨습니까? 기적과 능력이 나타날 것입니다. 이 세상이라는 전장에서 하나님의 위대한 승리를 나타낼 준비는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을 통하여 그 승리를 이루시고자 하십니다. 떨쳐 일어나 전쟁터로 달려가십시오! 이번 주간에도 여러분의 생활 속에서 마귀를 대적하기 위해 나아가십시오! 마귀는 우리를 무너뜨리려 한 길로 왔다가 일곱 길로 물러갈 것입니다. 결론은 기도와 영적 무장, 그리고 선교입니다! 땅 끝까지 복음을 전하십시오! 그리스도만이 온 세상의 구주라고 힘 있게 증거하십시오! 깨어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영적 무장을 하고 기도하고 선교할 때, 여러분 모두가 영적 전투의 승리자,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싸우는 위대한 영웅이 될 것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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