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말씀   >   설교전문

설교전문

천국에서 보는 지금 (누가16:19-31) [2018년 9월 16일, 성령강림후 열일곱째주일]
2018-09-16 13:13:17
박신진 목사
조회수   22
설교일 2018-09-16
설교말씀 누가16:19-31
설교제목 천국에서 보는 지금

천국에서 보는 지금

16:19-31

2018916[성령강림후 열일곱째주일/ 기독교교육진흥주일]

 

공중에서 내려다보고 찍는 드론 카메라

예전 TV 광고에서 아이가 뛰어가는데, 종이비행기가 멀리 한없이 날아가는 장면이 보이고 소년이 웃고 있던 내용이 있었습니다. 종이비행기는 자기 마당에 떨어지거나 잘 가야 문밖을 조금 날 정도였는데, 멀리 날아가면서 그 관점에서 소년을 그려주고 있는 것이 인상 깊었었지요. 그때만 해도 요즘처럼 날아다니는 카메라 드론이 이렇게 많이 퍼지리라 생각을 하지 못할 때입니다. 공중에서 내려다보고 찍는 카메라 드론은 무선 전파로 조종할 수 있는 무인 항공기를 말하며 벌이 윙윙 거리는 소리와 비슷하다는 뜻으로 드론이라고 불립니다. 군사용도로 처음 생겨났다고 해요. 하지만 최근엔 여러 가지로 활용되고 있습니다.

드론은 어디든지 갈수 있고 무엇이든지 볼 수 있습니다. 방송국 촬영 시 갈 수 없는 곳을 촬영한다든지, 산불이 났을 때 화재의 진원지를 찾아내 물과 화학물질을 뿌릴 수도 있으며, 추석이나 설날과 같은 명절에는 고속도로 교통순찰의 역할도 합니다. 앞으로는 택배를 드론으로 가져다 줄 것이라고 합니다. 드론의 매력은 하늘에서 땅을 내려다보는 겁니다. 요즘은 어린이들 장난감으로도 큰 인기를 누리고 있습니다. 미래학자인 토머스 프레이 다빈치연구소장은 오는 2030-32년에는 10억 개의 드론이 다닐 것이며 현재 드론활용분야만 192가지나 된다.”고 합니다. 이런 추세라면 30-40년 뒤에는 “11드론시대가 온답니다.

지난 평창동계올림픽 개막식에서 밤하늘에 드론을 띄워 오륜기를 형상화하는 것을 보고 사람들이 무척 놀랐지요. 이정도로 모든 분야에 다양하게 쓰일 것입니다. 이것이 가진 문제는 하늘에서 개인의 사생활을 다 들여다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언제 어디에 떠서 우리를 감시하고 있을지 모르는 것입니다. 늘 땅에서 하늘을 올려다보던 우리가 하늘에서 땅을 다 내려다보면 어떨까요? 사뭇 다른 세상을 느낄 것입니다.

 

부자와 나사로 이야기

부자와 나사로의 이야기는 잘 알려진 말씀입니다. 저는 82년도에 첫 목회에 나섰습니다. 군에서 갓 제대하여 머리가 밤송이 같았고, 군대에서 찐 살이 채 빠지지도 않았을 때, 여름성경학교를 맞이했습니다. 조그만 시골마을교회에서 여름성경학교를 하려니 부족한 것이 많았습니다. 열심 있는 선생님들과 외부에서 참여한 두 분의 선생님들이 협력하여 첫 여름성경학교를 했는데, 선생님이 많지 않은 데 비하여 아이들이 많이 와서 전도사가 직접 6학년 반을 맡아야 했습니다.

그때 키가 작은 남자권사님과 여선생님, 남자 선생님과 함께 했던 인형극을 기억합니다. 그게 바로 부자와 나사로의 이야기였습니다. 우리는 함께 모여 성경을 대본 삼아 서로 역할을 분담하고 녹음을 했습니다. 그리고 재주 있는 선생님이 신문을 물에 불려 직접 종이찰흙을 만들고 인형을 제작했습니다. 생각해보면 모든 것이 어설펐고 요즘 동영상 드라마에 비하면 소박하기가 이루 말할 수도 없었지만, 그런 과정을 통해 성경의 이야기가 우리에게 강한 느낌을 주었습니다. 아이들도 부자와 나사로 인형극을 어찌나 재미있어 하던지, 여름성경학교의 특별 순서로 손색이 없었습니다.

부자가 이 땅에서 자색 옷과 고운 베옷을 입고 날마다 호화로운 잔치를 하면서 삽니다. 그때 부자의 대문에 나사로라는 거지가 있는데 부잣집 음식부스러기로 살고 있습니다. 헌데를 핥으며 그 부자의 대문에 누워 지내다보니 개들도 와서 헌데를 핥았습니다. 그러다가 죽어 나사로는 천국에 갑니다. 부자도 죽어 장사되었는데, 완전히 신세가 바뀝니다. 나사로는 천사들에게 받들려 아브라함의 품에 들어가고, 부자는 지옥에 빠져 고통을 받습니다.

본문을 잘 읽어보면, 마치 드론이 하늘에서 땅을 내려다보듯이, 천국에서 지금을 보는 장면을 그려줍니다. 우리는 이 땅 위에 살면서 내세가 어떠할까를 가끔 생각하지만, 오늘의 성경말씀은 이것을 거꾸로 한번 보게 합니다. 지금에서 천국을 짐작하고 예측하는데, 한번 그곳에서 현재를 보면 어떨까, 성서는 이렇게 현세를 사는 우리들에게 거꾸로 보기를 권유합니다. 성서를 통해 모든 것을 거꾸로 보면 어떻게 될까요, 하나님의 관점에서 우리들의 현재는 어떤 삶입니까?

벌써 한두 주일 전부터 많은 분들이 성묘를 다녀옵니다. 명절을 앞에 두고 부모님이나 조부모님, 조상님들 묘를 돌아보는 것이지요. 왜 성묘를 하고 차례를 지냅니까? 우리가 그분들로부터 나온 열매요, 그분들은 우리의 뿌리라는 것을 잊지 말자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 앞서 세상을 떠난 조상님들과 믿음의 선배님들이 현재의 우리를 보면 어떨까요? 만약 그분들이 지금 되살아나 우리 앞에서 한마디 한다면 무슨 말씀을 하실까요? 추석명절을 앞에 두고 한번 물어볼 만한 주제입니다.

 

이웃을 배려하는 사랑의 생활

본문은 천국에서 지금을 볼 때, 우리가 너무 이웃을 배려하지 않고 사는 것을 보여줍니다. 부자는 자기의 부유함에 묻혀 자기 집 앞을 드나드는 거지 나사로가 얼마나 비참하게 사는지를 생각하지 않습니다. 겉옷은 그 사람의 사회적인 지위를 나타내는데, 부자는 고귀하고 위엄 있는 자색 옷을 입었습니다. 자색은 왕이나 귀족의 존엄을 나타냅니다. 속옷은 고운 베옷을 입었답니다. 그 시대는 속옷을 입었다는 것 자체가 부자의 신분을 드러냅니다. 대부분의 평민은 옷 하나로 그냥 살던 시대입니다. 더구나 그 천이 고운 베옷이었으니, 이 하나로도 얼마나 부자였는지 알 수 있습니다. 게다가 날마다 연락하였다, 잔치하였다 하니, 호화롭고 기름진 음식이 그칠 새가 없었겠지요.

그에 비하여 나사로는 집이 없는 떠돌이였습니다. 남의 집 대문 앞이나 추녀 끝에 사는 사람이니, 정처 없는 나그네요 거지 신세입니다. 부잣집의 부스러기를 먹으며 살았습니다. 말이 좋아 부스러기이지, 음식찌꺼기를 먹으며 살았습니다. 그러다보니 씻지도 못해 피부병이 생겼는데 헌데투성이로 부잣집 대문 앞에 버려졌다고 합니다. 아주 괴로움을 당하고 있었어요. 심지어 개들이 와서 그 헌데를 핥았습니다. 정결하지 못한 자여서 성전에도 들어갈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도 부자는 집 앞에서 얼씬대는 거지 나사로를 귀찮아할 뿐 사람으로 관심을 보이지 않습니다.

머지않아 4,50년 안에 50세 이상 대부분은 더 이상 이 세상 사람이 아닐 것입니다. 죽으면 부자도 없고 가난한 자도 없고 우리가 벌고 모아놓은 것을 다 두고 갈 것입니다. 그때 저 먼 곳에서 지금 우리의 모습을 보면 얼마나 이웃에 무관심했는지를 알고 부끄러워하게 될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본문은 부자와 가난한 거지를 대비하여 가난한 자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있습니다. 교회가 교회답게 되려면 고아와 과부와 이방인을 교회 안으로 맞아들여야 한다고 성서는 가르칩니다. 사회적 약자이며 가난하고 병든 이웃을 돌보라는 것이지요!

경제적인 가난한 자에 대하여 우리의 관심을 가집시다. 물론 찾아오는 거지나 도움을 요청하는 사람들에게 동정하는 것도 필요합니다. 그러나 이런 동정에는 요즘 너무 비리나 모순이 많습니다. 사람들의 동정심을 이용하는 사기꾼과 악덕 상혼이 너무 많은 세상입니다. 따라서 이제는 경제적인 가난으로 고통 받는 사람을 사회적인 구조와 국가의 복지체계로 도와주어야 합니다. 이런 일에 뜻을 모아주고 힘을 실어주며, 교회적인 역량을 모아 시행해야 합니다. 월드비전이나 사랑의장기기증운동, 북한돕기단체를 비롯하여 앞으로 교회가 해야 할 여러 가지 사회봉사에 여러분의 관심을 기울여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또 개인적으로도 병든 이들과 가난한 이들을 항상 관심을 가지고 돌보아야 합니다.

사회적인 가난한 자에 대하여 우리의 관심을 가집시다. 말하자면 모든 모임에 있는 소외된 사람에게 우리의 관심을 기울여야 합니다. 어떤 모임이나 집단에서 소외되는 사람들을 보면 꼭 그럴만한 이유가 있습니다. 한 번 더 생각해보면 그 사람 책임만도 아닙니다. 성격이 이상하거나 튀는 사람들을 자기와 다르다고 무조건 잘못되었다 하는 데에는 문제가 있습니다. 교회 안에서도 성격이나 습관이 별난 사람들이 왕따 되는 현상이 있습니다. 그런 이들은 다른 관점이나 다른 입장을 가진 것일 수도 있습니다. 사회적인 가난한 자를 외면하지 말고 돌아봅시다.

그리고 신앙적인 가난한 자를 돌아보는 명절이 되기 바랍니다. 주님을 알지 못하고, 복음의 사각지대에 머물러 있는 많은 사람들을 위하여 기도하며, 그들에게 복음의 빛을 비추어 주는 사명을 감당하는 것이 믿는 이의 마땅한 본분이지요. 그들에게 복음이 얼마나 복된 소식이며 생명을 얻는 길인지를 잘 가르쳐주고 안내하는 것입니다. 요즘 국회에서 차별금지법을 통과시킨다면서 종교를 강요해서는 안 된다고 하는데, 다른 것은 몰라도 바른 복음은 할 수 있다면 강요해서라도 믿게 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구원하는 진리를 깨우쳐 우리 모두에게 심판과 재앙을 피하게 하는 복음이기 때문입니다. 친척들과 가족들에게 조심스럽게 기회가 되는대로 복음을 전하여, 신앙적인 가난함을 면케 해주어야 합니다.

 

천국을 준비하는 소망의 생활

본문에 의하면, 천국에서 본 지금은 너무 천국을 준비하지 않는 삶입니다. 우리는 어느 날 죽습니다. 죽음은 모두에게 임하는 필연입니다. 그러니 죽음을 준비하고 죽음 이후를 생각해야 합니다. 나사로도 죽고 부자도 죽었습니다. 그런데 죽음 이후에는 모든 것이 뒤바뀝니다. 죽음 이후에는 심판이 있고 천국과 지옥으로 갈릴 것입니다! 우리는 천국을 믿고 지옥에 빠지지 않기를 기도하고 있습니다. 세상에서는 부자는 부족한 것이 없는 완벽한 삶이었으나, 내세에서는 나사로가 그렇습니다. 죽자마자 신분이 바뀝니다. 거지 나사로는 마치 왕이 된 것처럼 천사들에게 들려올라가 아브라함의 품에 안깁니다.

그에 비하여 부자는 지옥, 음부에 들어갑니다. 이는 스올이라고 하는 곳으로 악인의 처소요 고통받는 곳입니다. 우리는 부자가 부자로 살았을 뿐이지 세상에서 악을 행하거나 범죄했다는 기록을 볼 수 없습니다. 그런데, 천국을 준비하지 않고 현세의 즐거움에 빠져 사는 사람들은 악인처럼 취급됩니다. 지금 생활에만 만족하여 천국을 전혀 준비하지 않는 인생의 결과를 본문은 보여줍니다.

영원에 비해볼 때 현세는 순간과도 같습니다. 덧없는 지상생애에 너무 집착하기보다 영원과 절대라는 관점에서 다르게 살 필요가 있습니다. 먼저 하나님 나라와 하나님의 의를 구하는 삶이 얼마나 귀한 것인지요! 교회생활을 귀찮아하지 않고 정성을 다하여 주님을 예배하며 살아야 합니다. 부자는 지옥에 들어가 입술을 서늘케 할 물 한 방울을 구하지만, 큰 구렁이 끼어있어 건널 수 없다는 대답을 듣습니다. 살았을 때에 좋은 것을 받았으나 내세에 부끄럽고 불행하다면 그 생애는 성공한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을 잘 믿는 한 이발사가 면도를 하면서 목사님의 말씀이 기억나 손님에게 물어보았답니다. 마침 목에 비누거품을 칠하고 목줄 깨를 면도하면서 물었습니다. “손님, 죽을 준비가 되었습니까?” 깜짝 놀란 손님이 소름이 끼쳐 당장 뛰어 도망갔답니다. 여러분은 죽을 준비가 되었습니까? 지난 주간에 다니엘기도운동 컨퍼런스에서 간증하신 한 분이 목사님인데도 손자의 위급한 일을 당하여 죽을지도 모르는 상황을 만나니 기도도 나오지 않고 어찌할 줄을 모르겠더라 하시더군요. 기도를 저축해 두십시오, 위기의 때에 힘을 얻을 것입니다. 갑자기 죽음이 오면 어찌 하겠습니까? 현세에 충실하되, 기도하고 말씀 보면서 믿음으로 굳게 서서, 내세의 천국을 준비하는 사람이 됩시다.

 

말씀을 행하는 믿음의 생활

천국에서 지금을 볼 때, 우리는 말씀을 잘 행하는 사람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주님은 그들에게 모세와 선지자들이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모세는 율법 즉 오경의 말씀이고, 선지자는 예언의 말씀입니다. 말씀이 있다는 겁니다. 시험에 합격하는 것은 얼마나 시험을 잘 준비하여 치르느냐에 있는 것처럼, 천국과 지옥의 내세는 현세에서 얼마나 말씀대로 사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건널 수 없는 죽음의 강 너머에서 부자는 아브라함의 품을 바라보고만 있습니다. 말씀을 중히 여기지 않고 말씀대로 살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말씀은 우리 생애를 복되게 하는 복음입니다. 말씀은 현세를 바르게 살게 하며 내세에까지 이르게 하는 하나님의 열쇠입니다. 믿는 이들이 말씀을 중히 여기지 않고, 말씀을 듣기만 하여 행치 아니하면 진정으로 믿는 자가 아닙니다. 너무 유혹이 많고 세속의 삶에는 많은 모순과 문제가 있습니다. 우리가 말씀으로 강하게 무장하지 않으면 절대 승리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건성으로 교회에 다니지 말고 말씀에 마음을 두고 집중하십시오!

여러 해 전, 제가 어느 모임에서 매일 성경을 읽느냐고 하니까 조용- 했습니다. 가정예배를 드리고 있느냐고 하니까 역시 조용- 했습니다. 믿음을 위해 무엇을 하고 있느냐고 물으니까 계속 조용- 했습니다. 정말 큰일입니다. 어쩌면 여러분의 영혼에 대해 이리 무관심하고 무책임합니까? 하였더니 역시 조용했습니다. 믿는 사람들이, , 세상의 즐거움과 같은 세속 생활에 폭 빠져서 말씀을 행하는 믿음의 생활을 잃어버리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어떠십니까? 여러분은 말씀을 읽고 듣고 행함으로 내세를 준비하고 있습니까? 여러분은 지금 죽으면 천국 갈 준비가 되었습니까? 이 가을에 더욱 말씀에 마음을 두고 말씀 읽기에 힘쓰는 이들이 됩시다. 매일 성경 읽읍시다! 일 년에 성경 일독 합시다! 우리가 이 일을 위하여 새벽기도회에 성경 3장씩 읽는 것입니다. 새벽기도 진도를 따라오기만 해도 일 년 조금 더 지나면 성경 일독하게 됩니다. 가정예배를 매일 드립시다. 어려우면 한 주에 한번이라도 드립시다! 말씀대로 살기에 최대의 노력을 기울입시다!”

 

천국에서 보는 지금

저의 큰 딸아이가 사는 캐나다 토론토는 나이아가라 폭포에서 멀지 않아 손님들이 오면 그리로 안내하곤 합니다. 요즘도 사돈 가족이 와서 예전 살던 곳이니까 나이아가라 근처에서 쉬는 풍경을 보내왔더군요. 나이아가라 폭포에 가면 미국 쪽에서 보는 풍경과 캐나다 쪽에서 보는 풍경이 다릅니다. 같은 폭포를 보아도 규모나 느낌이 아주 다릅니다. 저는 공부하러 가는 길에 돌아오다가 미국 쪽에서는 보았는데, 그때만 해도 겨울이어서 그런지 더더구나 별 감흥이 없었습니다. 그러다가 우리 아이 결혼피로연을 토론토에서 하게 되어 갔다가 캐나다 쪽 폭포를 보았는데, 완전히 갑절도 더 되는 규모요 엄청난 감동을 맛보았습니다. 만약 미국서만 보았다면 나이아가라를 반만 본 것입니다.

우리 인생도 그렇습니다. 현세에서만 인생을 보면 반밖에 보지 못한 것입니다. 천국에서 보면 어떻습니까! 성경을 통하여 하나님의 관점으로 오늘을 보는 것이 바로 믿음입니다. 영원의 관점에서 오늘 하루를 보면 우리는 우리의 하루하루를 달리 보게 됩니다. 지금 굉장히 중요하게 생각했던 육체와 물질보다는 영혼과 구원의 관점에서 세상을 보게 될 것입니다. 믿음으로 보십시오! 천국의 눈으로 지금 내 생활을 돌아보셔야 합니다. 그러면 이웃에 더욱 관심을 가지는 사랑의 생활, 내세를 준비하는 소망의 생활, 하나님 말씀에 더욱 집중하여 배우고 읽고 행하기에 힘쓰는 믿음의 생활을 시작할 수 있습니다.

오늘은 기독교교육진흥주일이기에 더욱 강조하여 말씀드립니다. 천국에서, 영원에서 오늘을 보도록 아이들을 가르치십시오. 높은 곳에서 보는 드론과 같이, 하나님의 눈으로 세상을 보도록 해야 합니다. 땅의 것, 세속의 관점으로만 보면 참된 인생을 놓치게 됩니다. 그들로 하여금 하나님이 인도하시는 인생이 참된 인생임을 알게 해야 합니다. 믿음의 드론을 띄워 천국에서 보는 지금을 다시 발견하도록 가르치십시오! 추석명절이 다가오고 있는데 가정마다 천국을 준비하는 믿음의 가문을 이루기를 축복합니다. *

번호 제목 작성자 등록일 조회수 첨부 파일
417 찬송하며 감사하라! (시100:1-5) [2018년 11월 11일, 성령강림절후 스물다섯째주일] 박신진 목사 2018-11-10 7
416 두려움 (사41:8-14) [2018년 11월 4일, 성령24주] 박신진 목사 2018-11-04 10
415 교회를 새롭게 할 성숙한 믿음 (욥42:1-6,10-17) [2018년 10월 28일, 성령 스물셋째주일/종교개혁주일] 박신진 목사 2018-10-27 9
414 영혼을 지키는 감사 (골2:1-8) [2018년 10월 21일, 성령강림 제22주] 박신진 목사 2018-10-20 13
413 태풍이 몰아칠 때 (행27:9-26) [2018년 10월 14일, 성령강림후 스물한째주일] 박신진 목사 2018-10-14 16
412 꿈이 이끌어가는 사람 (창37:1-11) [2018년 9월 30일, 성령강림후 열아홉째주일/청년주일] 박신진 목사 2018-09-29 18
411 좋은 가족 (잠언31:10-31) [2018년 9월 23일, 성령강림후 열여덟째주일/ 추석앞 주일] 박신진 목사 2018-09-22 18
410 천국에서 보는 지금 (누가16:19-31) [2018년 9월 16일, 성령강림후 열일곱째주일] 박신진 목사 2018-09-16 22
409 지혜로운 선택(잠22:1-5) [2018년 9월 9일, 성령강림후 열여섯째주일/교회연합주일] 박신진 목사 2018-09-09 17
408 아나돗에 땅을 사라!(렘32:6-15) [2018년 9월 2일, 성령강림후 열다섯째주일] 박신진 목사 2018-09-01 22
407 영적 전투 (엡6:10-20) [2018년 8월 26일, 성령강림 후 열넷째주일, 왕국절 시작주일] 박신진 목사 2018-08-25 16
406 지혜로운 생활 (엡5:15-20) [2018년 8월 19일, 성령강림 후 열셋째주일] 박신진 목사 2018-08-18 15
405 참회의 계절 (시130:1-8) [2018년 8월 12일, 성령강림 후 열두째주일/ 남북평화통일 공동기도주일] 박신진 목사 2018-08-12 16
404 성령에 매여 사는 사람 (행20:22-27) [2018년 8월 5일, 성령강림후 열한째주일] 박신진 목사 2018-08-05 17
403 거룩함을 지키려면 (삼하11:1-15) [2018년 7월 29일, 성령강림후 열째주일] 김기훈 2018-07-28 28
1 2 3 4 5 6 7 8 9 10 ... 28